코랄 커뮤니케이션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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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케이션이해총서

코랄 커뮤니케이션 김형일

대한민국,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2014


합창으로 소통하기

음악의 등장 19세기 벨기에의 음악학자 페티스(Fetis)는 음악이란 “음 의 배합에 의해 사람의 감정을 감동시키는 예술”이라고 정의했다. 또 음악은 “인간의 감정이나 사상을 ‘음(sound)’ 을 재료로 해 표현하는 시간적·청각적 예술”이라고도 할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영역의 음과 소음을 소재로 해 박자·선율·화성·음색 등을 일 정한 법칙과 형식으로 종합해서 사상과 감정을 나타내는 예술”을 말한다. 오늘날 음악은 우리의 삶에서 보편적으로 존재하고 있 지만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기는 어렵다. 음악 은 소리로 표현되는 동시에 사라져 버리는 시간 예술이라 는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세월이 흐른 뒤에 그 흔적을 찾아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고대의 음악은 사람들 의 기억을 통해서 전승되었을 뿐이고, 음악을 기록하고 보 존하는 수단이 등장한 것은 음악이 발달한 지 꽤 오랜 후 의 일이다. 기보법 체계의 발달로 음악을 기록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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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었지만 후대에서 이를 가지고 똑같이 음악을 재현해 내 는 것 역시 불가능에 가깝다. 여기서 문득 드는 의문 가운데 하나가 음악이 먼저일까 말이 먼저일까 하는 것이다. 아주 먼 옛날 공동체를 구성 하기 시작한 우리의 선조들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생각 이나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말을 했을까, 아니면 소리의 높낮이나 길이, 억양을 다르게 내는 원시 음악의 한 형태 인 노래로 전달했을까? 고고학적 연구에 의하면 사람이 말로 의사소통을 하기 시작한 때는 약 8만 년 전, 노래 비 슷한 것을 흥얼거리거나 외침으로 표현하기 시작한 것은 약 50만 년 전부터라고 한다. 따라서 노래는 말에 앞서 감 정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수단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노래가 말보다 앞섰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사람 의 발성 기관 발달과도 관계가 있다. 노래는 성대의 울림 만으로도 충분히 부를 수 있지만 말은 그렇지 않다. 치아 나 입술, 혀의 기능이 상당히 발달해서 모음뿐 아니라 여 러 가지 자음까지 구사할 수 있을 정도로 신경 계통이나 기타 모든 조건이 섬세하게 발달한 후에야 비로소 말을 통 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따라서 말이 생기기 전에는 노 래를 통해서 자신의 욕구나 감정을 표현했을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음악을 통해 자연의 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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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움에 감탄하기도 하고, 이런 자연을 만든 창조자에 대한 경배와 찬양을 해 왔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연정 이나 비애, 희로애락의 온갖 감정들을 다양한 형태의 음악 으로 표출해 왔다. 언어가 발달하면서 음악적 감정 표현 은 더욱 풍부해지고 다채로워졌다. 이러한 감정 표현은 때때로 자신 내부의 에너지를 분출하는 개인 행위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다른 누군가에게 표현하고 전달하는 전형적인 커뮤니케이션 행위이기도 하다.

커뮤니케이션 커뮤니케이션은 전통적으로 전달(transmission) 혹은 설 득(persuasion)을 위한 수단으로 이해되었다. 전달적 관 점에서 커뮤니케이션이란 송신자가 수용자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행동을 의미하며,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메시지가 채널을 통해 얼마나 효율적으로 전달되는가 하는 것이다. 설득적 관점에서는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송신자의 의도 가 중요하다. 설득이란 수용자 개인이나 집단의 태도, 의 견, 신념 등을 송신자의 의도대로 변화시키는 것을 말한 다. 따라서 이 관점에서는 커뮤니케이션 과정보다는 그 결과를 중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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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오늘날에는 커뮤니케이션을 참여자들의 상호 작용(interaction)으로 이해한다. 커뮤니케이션이란 말의 어원은 라틴어 ‘communis’에서 유래했는데 이 말은 ‘공통 (common)’ 혹은 ‘공유(share)’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여 기서 공동체(community), 성찬(communion) 등의 단어 가 파생되었다고 한다. 사전적으로는 ‘전달, 연락, 통신, 교통’ 등으로 풀이되고, 우리말로는 “사람들끼리 서로의 생각이나 느낌 따위의 정보를 주고받는 일”로 해석된다. 여기서 유추할 수 있듯이 커뮤니케이션은 혼자가 아니라 두 사람 이상이 공동으로 수행하거나 서로 무엇인가를 주 고받는 행위를 가리킨다. 이런 점에서 커뮤니케이션은 일 종의 사회적 상호 작용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사회학자인 쿨리(Cooley)가 커뮤니케이션을 “인간관계가 존재하고 발전하게 되는 메커니즘”이라고 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라 고 하겠다. 이런 관점에서 커뮤니케이션은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갖 는다. 첫째, 커뮤니케이션은 복수의 사람들 사이에서 이 루어지는 상호 작용(interaction)이다. 흔히 커뮤니케이션 에 참여하는 사람을 송신자(sender)와 수신자(receiver) 로 나누어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송신자는 정보의 전달 자로서 의미를 생산 혹은 부호화(encoding)하는 사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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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고, 수신자는 정보 전달의 대상으로 생산된 의미를 해 독(decoding)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하지만 이는 커뮤니 케이션 과정을 분석하기 위해 편의상 나누는 구분일 뿐이 다. 송신자와 수신자는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커뮤니케이 션 과정에서 계속 역할이 바뀌는 것이다. 둘째, 사람들은 이런 상호 작용을 통해서 서로가 의미 를 공유하게 된다.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목적은 다양하 다. 처음 만난 사람끼리 대화를 통해서 친해지고자 하는 인간관계의 형성을 목적으로 하기도 하고, 조직의 효율적 업무 추진에 필요한 명령과 지시, 결재와 보고를 하기 위 한 것일 수도 있다. TV나 신문과 같은 매스 미디어를 통해 사회에서 필요한 다양한 정보를 획득하기 위한 목적도 있 다. 상대방을 설득해 동의를 얻어내기 위한 목적으로 수 행하는 커뮤니케이션도 존재한다. 그러나 커뮤니케이션 의 목적이 무엇이든 먼저 참여자들끼리 의미를 공유해야 비로소 달성가능하다. 셋째, 사람들이 의미를 공유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인 상징(symbol)은 다양하다. 가장 기본적이고 강력한 상징 체계는 물론 언어다. 언어를 발명한 덕분에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언어 외에도 많은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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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적인 상징 체계가 존재한다. 만국 공통어라고도 할 수 있는 얼굴 표정이나 몸짓과 같은 신체 언어(body language)는 물론이고, 그림이나 기호와 같은 시각적 상 징도 동원된다. 이러한 특성들을 음악 활동에 적용해 보면 분명 음악은 커뮤니케이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지금까지 커뮤 니케이션학을 비롯한 사회과학 분야에서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이유는 음악을 개인의 예술적 표현 행위로 보는 경향이 강했기 때문이다. 음악을 개인의 예술 행위 로만 본다면 다분히 자기만족을 위한 도구라고 할 수 있지 만, 다른 사람들이 음악을 듣고 감동받을 때 비로소 그 가 치가 완성된다는 점에서 언어와 더불어 사람만이 갖고 있 는 고유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임을 알 수 있다.

합창음악 여러 사람이 함께 노래하면서 화성적 조화를 추구하는 합 창은 음악의 한 유형이다. 음악에는 기악과 성악이 있다. 기악(instrumental music)은 말 그대로 악기를 이용해서 소리를 내는 것이기 때문에 발성 기관의 생리적 조건에 따 라 제약을 받는 성악보다 음량, 음색, 음역 등에서 폭넓은 표현이 가능하며 악기 고유의 특성에 따른 다양한 음악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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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이 발전해 왔다. 반면, 성악(vocal music)은 표현의 다 양성에서는 기악을 따라갈 수 없지만 특별한 훈련이나 기 교 없이도 누구나 갖고 있는 목소리를 가지고 음악을 하는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서 성악이 가진 장점은 가 장 효과적인 상징 체계인 언어를 수반한다는 점이다. 가 사의 의미가 음악적 표현과 결합함으로써 더욱 쉽게 사람 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성악은 다시 독창과 중창 그리고 합창으로 구분된다. 독창(solo)은 말 그대로 한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서 노래하는 것을 말한다. 음악적인 표현은 물론 그 음악 에 담긴 감정이나 의미의 전달까지 혼자 해야 하기 때문에 웬만한 실력이 아니면 무대에 서는 것이 쉽지 않다. 물론 피아노나 오케스트라, 밴드 등의 반주가 뒷받침하는 경우 가 많지만 혼자서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성악을 전 공한 사람이나 전문적인 보컬 훈련을 받은 가수들에게도 부담스러운 일다. 비교적 적은 수의 사람들이 함께 노래하는 경우를 일컫 는 중창(vocal ensemble)은 여러 성부로 이루어진 곡을 노 래한다는 점에서 합창과 유사하지만 각 성부를 한 사람이 부른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한 성부를 혼자 노래하기 때문 에 독창과 마찬가지로 음악 실력이 필요한 동시에 다른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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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와 화성적 조화까지 이루도록 고려해야 한다. 나뉘는 성 부에 따라 2중창(duet), 3중창(trio), 4중창(quartet) 등으 로 구분한다. 합창(chorus)은 다성부의 곡을 연주하되 한 성부를 여 러 사람이 함께 노래하는 것을 일컫는다. 그래서 노래하 는 사람의 숫자가 중창보다는 많아지지만 숫자를 기준으 로 합창과 중창을 구분하는 것은 잘못이다. 다만 두세 명 이 한 성부를 노래할 경우에는 각자의 개성이 드러나 소리 를 통일하기 어렵기 때문에 통상 한 성부에 4명 이상이 노 래할 때 합창으로 분류하곤 한다. 단일 성부의 곡을 여러 사람이 부르는 경우는 제창(unison)이라고 한다. 이렇게 다양한 음악 가운데 이 책에서 주목하는 것은 합창이다. 합창도 다른 음악과 마찬가지로 작곡자가 자신 의 감정이나 사상을 표현한 것을 연주자 나름대로 해석하 고 연주하여 청중에게 전달하는 전형적인 음악 커뮤니케 이션의 하나다. 하지만 합창은 혼자가 아니라 여러 사람 이 함께 참여해 하나의 음악을 표현해 내는 공동체적인 활 동이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 차원에서 다른 음악 유형과 는 다소 다른 특성을 갖고 있다. 합창 지휘자는 먼저 어떤 곡을 연주할 것인지, 또 그 곡 에 담긴 작곡자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이를 나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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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로 해석하고 실제 연주 과정에서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를 결정해야 한다. 다음으로는 이렇게 결정해 마음속에 형성한 ‘음악의 상’을 실제 연주를 하는 합창 단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모든 단원들이 같은 감정과 의미를 공유해야 아름다 운 합창 연주가 가능해진다. 그리고 이렇게 완성된 음악 이 청중에게 전달되어 감흥을 불러일으킬 때 비로소 음악 커뮤니케이션이 완결되는 것이다. ‘코랄 커뮤니케이션 (choral communication)’이란 표현은 이와 같은 합창만이 가진 고유의 특성을 담기 위한 의도로 사용된 것이다. 오케스트라의 경우는 보통 악기를 전공한 사람들로 구 성되기 때문에 단원 각자가 어떻게 연주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으며, 자신이 맡은 파트에 대한 연습도 스스로 한 다. 지휘자는 이렇게 준비가 된 단원들이 자신이 추구하 는 음악적 방향을 따라올 수 있도록 이끌어 가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합창단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아마추어 단원들로 이루어진다. 물론 아마추어 합창단이 라고 해도 성악 전공자 혹은 전공은 아니지만 음악적으로 일정한 수준에 도달한 단원들도 많이 있다. 하지만 전체 적인 합창단의 음악적 수준은 그렇게 높은 편이 아니며 합 창단에서도 단원들 간에 편차가 심하다. 스스로 악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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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피아노 소리를 듣고도 자기 음을 제대로 내지 못하는 사람도 종종 있다. 따라서 지휘자는 합창 연습을 하면서 모든 단원들이 악 보를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기초적인 음악 이론도 가르쳐 야 하고 올바른 호흡과 발성 방법도 숙달시켜야 한다. 전 체적인 합창의 완성도를 높일 시간도 부족한데 성부별로 음정 연습을 시켜야 할 때도 있다. 이런 음악적인 면뿐 아 니라 모든 단원들이 음악의 즐거움을 느끼고 함께 참여하 도록 동기를 유발시켜야 한다. 전반적인 합창단 운영에 관련된 사항은 물론 단원들 간 사소한 갈등은 없는지 혹시 라도 소외된 단원들은 없는지 세밀하게 살펴서 해결책을 찾는 것도 지휘자의 몫이다.

이 책의 집필 동기 합창단의 분위기나 단원 각 개인의 음악적 역량이 어떻든 지 간에 지휘자는 이들을 이끌고 무대에 올라 일정한 음악 적 성과를 올려야 할 책임이 있다. 지휘자의 역량에 대한 평가는 합창단의 무대 연주를 통해서 내려진다. 그러다 보니 무대에 올라갈 시간이 다가올수록 예민해지는 지휘 자가 많다. 시간은 부족한데 연습 성과는 나지 않고 자신 은 초조한데 일부 단원들은 전혀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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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일처럼 여기는 경우도 있다. 결국 지휘자는 단원들 을 불신하게 된다. 그러나 지휘자의 이런 태도에 대해 단원들도 갑갑함을 느낄 때가 많다. 지휘자가 이것저것 요구하는 것은 많은 데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 다. 음악을 체계적으로 배운 적이 없는 단원들 입장에서 는 지휘자가 좀 더 친절하고 자세하게 알려 줬으면 하는 바람이 들곤 한다. 특히 지휘자가 단원들에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일 경우 전체 분위기는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 음악을 함께하는 즐거움은 사라지고 단원들도 지휘자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게 된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아무리 연습을 많이 해도 좋은 합창을 기대할 수 없다. 이 경우 지 휘자와 단원 사이에는 미묘한 갈등이 쌓이게 된다. 이러 한 갈등이 해소되지 않고 반복되다 보면 서로에 대한 신뢰 가 무너져 더 이상 합창을 같이할 수 없게 된다. 이 때문에 음악적 역량이 출중한 지휘자가 중도에 합창단을 떠나거 나 충분한 잠재력을 가진 합창단이 그 역량을 제대로 발휘 하지 못한 채 정체되기도 한다. 이것은 합창단의 음악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커뮤니케 이션의 문제다. 합창 단원들은 지휘자와 커뮤니케이션을 함으로써 자신들이 노래하는 음악의 감정과 의미를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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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지휘자의 지시에 따라 연주 활동에 참여한다. 문제 는 지휘자들이 단원들에게 이를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 기법에 있다. 기본적으로 지휘자는 합창 단원들보다 음악 적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이다. 지휘 전공이 아니 라도 성악이나 기악, 작곡 등 음악을 전공했고 아마추어 지휘자들도 일반 단원들보다는 음악적으로 훨씬 뛰어난 편이다. 하지만 합창 단원들 가운데는 지휘자의 음악 해 석이나 표현 방법에 대한 요구나 지시를 이해할 수 있는 기본 지식이 없는 경우가 많다. 더욱이 지휘자를 통해서 체계적으로 배우지도 못한 채 무대를 준비해야 하는 경우 가 대부분이다. 이 책 󰡔코랄 커뮤니케이션󰡕을 집필하게 된 동기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합창 지휘를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체계적 인 음악 교육도 받아본 경험이 없지만 지금까지 오랫동안 합창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아마추어 지휘자라는 한계 때문에 직접 합창단을 창단하거나 정식으로 초빙된 적은 없다. 지휘자의 공석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합창단을 맡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솔직히 이런 합창단을 지휘하 는 것은 새로운 합창단을 창단하는 것보다 어렵다. 속사 정은 모르지만 전임 지휘자에게 상처받은 단원들이 많기 때문이다. 새로운 지휘자에 대한 단원들의 반응은 다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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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어떤 단원들은 자신들의 실력이 부족하다며 끊임없이 자책을 한다. 반대로 어떤 단원들은 지휘자에 대한 의심 과 불만에 가득 차 있다. 이들 앞에 서면 어떻게 하나 보자 고 바라보는 냉소적 시선이 느껴진다. 그러나 합창이라는 것이 자신을 나타내기보다는 함께 하는 사람들을 배려함으로써 조화를 이루는 공동체 활동 이기에 합창 단원들의 기본 심성은 따뜻하다. 그래서 그 들의 눈높이에 맞게 소통하고자 노력하는 지휘자에게는 다시 마음을 열곤 한다. 이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신뢰가 쌓이고 합창하는 즐거움을 깨닫게 되며 다시 무대에 서고 자 하는 열정도 생겨난다. 음악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도 차근차근 알아들을 수 있게 표현하고 기초 발성부터 조금 씩 훈련을 하다 보면 자신감이 붙고 서서히 조화를 이루는 자신들에 대해 스스로 감동하기도 한다. 마침내 무대에 서는 그들의 눈빛은 밝게 빛나고 한껏 머금은 미소와 아름 다운 노래는 바라보는 청중의 마음까지도 감동시키는 놀 라운 효과를 발휘하곤 한다. 합창 지휘자이기에 앞서 커뮤니케이션 연구자이기에 이러한 경험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자 하는 마음을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마침 재직하는 극동대학교에서 교 양과목으로 ‘대학 합창’을 개설할 기회를 얻어 몇 년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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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을 듣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었 다. 합창단의 음악적 성취를 높이는 데 효과적인 커뮤니케 이션 기법을 개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검증된 내 용을 여러 합창단을 대상으로 적용한 결과 상당한 효과가 입증되었다. 그동안 지휘를 맡았던 합창단은 활동 목적도 다르고 그 구성원도 다양했다. 어린이, 청소년, 대학생은 물론 여성, 남성, 혼성 합창단에 어르신들로 이루어진 실버 합창단까지 있었다. 단원들의 음악적 수준도 다양하다. 전 공자가 아니지만 독창자로 나서도 손색이 없을 만큼 음악 적 역량이 뛰어난 이들이 있는가 하면 옆에서 음을 들려줘 도 따라 부르지 못하는 이들도 간혹 있다. 합창 연습을 하는 여건도 다른 경우가 많다. 매주 정기 적으로 모여서 체계적인 연습을 할 수 있는 합창단이 있는 가 하면 연주를 앞두고 필요할 때 몇 번 연습하는 합창단 도 있다. 심지어 특별 연주를 위해 처음 모여서 잠깐 연습 하고 바로 무대에 올라가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렇 기 때문에 각 합창단의 특성과 수준에 맞게 곡을 정해야 하고 연습 방법도 각기 달라야 했다. 무대에서 이들의 음 악적 역량을 어떻게 최대한 끄집어낼 것인가 하는 것은 온 전히 지휘자의 역량에 달린 것이다. 하지만 접근 방식은 각기 달라도 모두가 하나로 결집해야 최고의 기량이 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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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공동체 활동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공동체 활 동의 요체는 구성원 간 상호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에 있다. 이 책은 커뮤니케이션 현상에 대한 그간의 연구 관심과 합창 지휘자로서 겪은 경험을 토대로 합창 활동에 꼭 필요 하다고 생각하는 음악적 요소와 커뮤니케이션 요소를 결 합시켜 정리한 것이다. 실제로 합창 연습을 할 때나 합창 단 세미나를 진행할 때 활용한 내용들을 중심으로 했다. 책의 수준은 합창이나 음악에 대한 기초지식이 없어도 합 창을 하고 싶다는 열정만 있다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최대한 쉽게 서술하고자 했다. 음악과 합창 의 커뮤니케이션 원리에서 시작해 기초 발성법과 합창 발 성과 발음, 합창 음악의 이해와 효과적인 합창 연습을 위 한 음악 요소에 대한 지식과 이론 체계, 합창 리허설과 무 대 연주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내용을 담았다. 다만, 이 책 의 기획 의도에 따라 10개의 아이템으로 나누어 집필하다 보니 친절하고 상세한 설명 없이 개념 위주로 다소 딱딱하 게 서술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 아쉬움이 있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 제시한 내용을 어느 정도만 숙지하고 있어도 합 창 활동에서 지휘자들의 요구와 표현을 이해하는 데 큰 도 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 아마추어 합창 단원들의 이해를 우선으로 하다 보니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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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 내용 가운데는 음악적으로 정확하지 않은 표현이나 다 소 잘못된 지식이 담겨 있을 수도 있다. 현장에서 실제로 활용하고 있지만 주류 합창 음악계에서는 일반적으로 통 용되지 않는 방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나름대로 주장하는 바에 대한 음악적 이론과 실제 근거를 찾고자 노력했으나 미처 못한 경우도 있다. 이런 간극을 메우면서 코랄 커뮤 니케이션 체계를 나름대로 정립하게 되면 합창 활동을 통 한 공동체의 감정 표현과 노래하는 즐거움을 맛보기 원하 는 이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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