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를 구속하는 열 가지 판결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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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케이션이해총서

표현의 자유를 구속하는 열 가지 판결 이승선

대한민국,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2014


표현의 자유를 구속하는 열 가지 판결

지은이 이승선 펴낸이 박영률 초판 1쇄 펴낸날 2014년 4월 15일 커뮤니케이션북스(주) 출판등록 2007년 8월 17일 제313-2007-000166호 121-869 서울시 마포구 연남동 571-17 청원빌딩 3층 전화 (02) 7474 001, 팩스 (02) 736 5047 commbooks@eeel.net www.commbooks.com CommunicationBooks, Inc. 3F Cheongwon Bldg., 571-17 Yeonnam-dong Mapo-gu, Seoul 121-869, Korea phone 82 2 7474 001, fax 82 2 736 5047 이 책은 커뮤니케이션북스(주)가 저작권자와 계약해 발행했습니다. 본사의 서면 허락 없이는 어떠한 형태나 수단으로도 이 책의 내용을 이용할 수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이승선, 2014 ISBN 979-11-304-0196-6 책값은 뒤표지에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는 사회적 사건

‘할 수 있다 할 것이다’의 기능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려는 장치들이 도처에 즐비하다. 헌법재판소나 법원이 표현의 자유를 확장하는 데 기여하 는 것도 사실이지만, 실은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판결 을 자주 내놓는다. 그러한 판결들의 영향력은 치명적이고 ‘결정적’인 까닭에 아주 천천히, 조금씩 확대돼 온 자유로 운 의견 표현의 방식들마저 된서리를 맞고 주춤거리게 된 다. 방송과 통신을 심의하는 위원회, 영화의 등급을 심의 하는 위원회 등도 표현의 자유를 확장하는 데 기여하기도 하지만 ‘결정적’일 때 자유로운 표현을 억압하는 매우 효 과적인 통제 도구로 쓰인다. 헌법과 법률, 시행령뿐만 아 니라 여러 종류의 심의 규정들이 표현 자유의 확장이냐, 위축이냐를 가르는 판단의 준거다. 물론 그 일을 재판관 이나 법관 혹은 심의위원 등 ‘사람’이 처리한다. 동일한 사 건에 동일한 법령을 적용할 때조차 ‘사람’에 따라 해석의 방향과 내용이 너무 다르다. 이를테면, ‘표결을 하기 전에 질의와 토론을 거친다’라는 법률 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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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질의·토론을 아예 생략하고, 처음 접한 법률 개정안 자료를 회의 진행 시스템에 입력한 지 33초 후 표결을 개 시한 의사 진행 절차가 위법하지 않다는 일부 헌법재판관 들의 판단은 ‘비상한 공적 관심’의 대상이 될 만하다. ‘할 수 있다’ 혹은 ‘할 수 있다 할 것이다’라는 규정이나 말도 표현의 자유를 확장하거나 위축하는 도구로 쓰인다. 헌법재판소법 제66조에 따르면 국회의장의 처분이 국회 의원의 권한을 침해한 때에 그 처분을 취소하거나 무효를 확인‘할 수 있다’. 2009년 헌법재판관들 다수는 앞의 ‘질 의·토론 없는 33초 후 표결’이라는 대단히 ‘비상한 공적 관심사’에 대해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을 침해한 위법 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위법·위헌적으로 만들어진 그 법률안을 ‘무효 확인’해 달라는 국회의원들의 청구에 대해 서는 ‘할 수 있다’라는 규정을 들어 ‘무효 확인을 하지 않았 다’(헌재의 이 비상한 결정은 9장에서 다루었다). 또 헌법 재판소는 2010년 이른바 ‘불온 도서’ 사건에서 관련 법령 에 ‘불온’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을 뿐 구체적인 규정 이 없기 때문에 명확성의 원칙에 위반되고 나아가 자의적 인 법 집행과 해석이 가능하다는 주장에 대해 ‘불온 도서’ 가 이러저러한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할 것이다’라는 모호한 언술로 어물쩍 넘어갔다. 법 집행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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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의 자의적인 집행 가능성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헌법재판소는 2002년 ‘불온 통신’의 개념은 너무 불 명확하고 애매하여 명확성의 원칙을 명백하게 위반한 것 이라고 판단했다. 동시에 2002년 헌재는 법의 집행과 해 석을 통해 ‘불온 통신’의 의미를 객관적으로 확정하기 어 렵다고 보았다. 다른 부문에서 발생한 ‘불온 도서’ 사건이 었더라면 아마 헌법재판소는 2010년에도 ‘불온’의 법적인 규정이 여전히 불명확하여 위헌이라고 판단했을 가능성 이 있다. 그런데 헌재는 국가 안보 상황 등을 고려할 때 불 온의 개념을 오히려 ‘불확정 개념’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 다는 놀라운 ‘법적 견해’를 제시하기도 했다.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매달아도 돌아간다며 장난하는 말은 군 생활에 지친 병사들에게 일종의 비타민 같은 역할 을 ‘할 수 있다 할 것이다’. 우리 주변엔 신성한 군 복무를 조롱하는 언사들이 적지 않다. ‘군인’을 ‘사람’의 집단에서 제외시키며 희롱하는 일들도 잦다. ‘사람 만들려면 군대 보내야 한다’거나 ‘군대 가서 사람 돼 나왔다’는 말도 따지 고 보면 현역 군인에 대한 모독이라고 ‘할 수 있다 할 것이 다’. 언제는 사람이 아닌 자가 군에 입대했다는 말인가. 장 성한 아들을 군에 보낸 뒤 눈물을 훔치고 가슴을 태우며 초조하게 밤을 지새우는 신병과 초년병의 어머니들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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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모욕이다. 이 땅의 어머니들이 ‘사람’을 낳지 않았으면 도대체 무엇을 출산했다는 말인가? 군대를 ‘사람 만드는 곳’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일정한 개별 상황에 서 어떤 사람이 예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성숙한 의사 결정 을 하는 모습을 빗댄 것이려니 하지만, 그와 같은 표현은 그 대상이 직업 군인이든 의무 병역을 수행하는 장병이든 이 땅의 누구보다 심신이 건강하고 성숙한 ‘사람들’을 폄 하하는 ‘불온한’ 언술이라고 ‘할 수 있다 할 것이다’. 교사들의 정치적 활동과 표현 자유 영역 역시 여전히 꽁꽁 묶여 있다. 2014년 3월 27일 헌법재판소는 공무원과 교원들의 정치 활동을 금지하는 정당법과 국가공무원법 등이 ‘합헌’이라며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2011헌바42결 정). 대법원 판결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교사들의 표현 활 동을 확장하는 하급심 판결이 항소·상고심에서 기묘한 논리와 해석에 의해 ‘간단히’ 뒤집히는 사례들도 부지기수 다. 한 예를 보자. 2010년 대전지방법원의 한 재판부는 당 시 교사들의 시국 선언 행위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 판부는 교사들의 시국 선언 내용을 지지하지 않을지언정 이를 형사 처벌할 수는 없다고 평가했다. 1심 재판부는 1 차 시국 선언의 내용은 <PD수첩> 수사·용산 화재 사건 수사·각종 촛불집회 사범 수사에 대한 비판과 함께 노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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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전 대통령의 서거 원인에 대한 의견 개진, 미디어법 개 정 중단 촉구, ‘한반도 대운하 사업’ 반대, 공권력 남용에 대한 사과 촉구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으며 특정 정 당이나 정치 세력에 대한 지지나 반대 내용을 담고 있지 않아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제2차 시국 선언의 경우 주요 내용은 교사에게도 헌법에 보장된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 줄 것, 시국 선언 교사 징계 철회, 국민의 목소리를 존중하는 대통령의 자세 전환, 특 권층 위주 정책 지양, 사회복지와 교육복지 확대, 자사고 설립 등 경쟁 만능 학교 정책 중단, 학교 운영의 민주화 보 장 등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2차 시국 선언에 특정 정치 세 력을 지지 또는 반대하는 내용이 들어가 있지 않음은 자명 하므로 정치적 중립 의무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와 대법원은 교사들의 시국 선언 은 정치적 중립성을 침해할 만한 직접적인 위험을 초래한 다며 정치적 편향성과 당파성을 명확하게 드러낸 것이라 고 해석했다. 또 1차 시국 선언은 선거에 영향을 미치고, 현 정권에 반대하는 전선을 구축하려는 뚜렷한 정치적 의 도를 가지고 시국 선언의 형식을 빌려 왔다고 보았다. 공 권력의 행사와 주요 정책을 일방적으로 부정하고 평가하 고 공격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2차 시국 선언 역시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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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에 ‘정부의 조치가 군사독재를 떠올리게 한다거나 민주 주의 기본 질서를 파괴하는 공권력의 남용이라는 주장’이 담겨 있다며 정치적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실행한 것이라 고 판단하고 유죄를 확정했다. 서문이긴 하지만 두 차례 의 교사 시국 선언문 전문을 소개하기로 한다. 1심 재판부 의 견해가 합리적인지 아니면 항소심과 대법원의 판단이 적절한 것인지 비교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좀 더 자세 한 내용은 2장을 참고하기 바란다.

① 1차 교사 시국 선언: 6월 민주 항쟁의 소중한 가치가 더 이 상 짓밟혀서는 안 된다

6·10민주항쟁은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확인 한 자랑스러운 민주주의 역사다. 그런데 이 자랑스러운 6월 항쟁의 역사와 가치를 가르쳐야 할 우리 교사들은 국민들의 숱한 고통과 희생 속에 키워 온 민주주의의 싹이 무참히 짓 밟히는 현 상황을 목도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민주주의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심한 당혹감과 자괴감을 느끼고 있 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공권력의 남용으 로 민주주의의 보루인 ‘언론, 집회, 표현, 결사의 자유’가 심 각하게 훼손되고 있다. ‘인권’이 심각하게 유린되고 있다. 촛불 관련자와 <PD수첩> 관계자에 대한 수사가 상식을 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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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무리하게 진행되었다. 공안권력을 정치적 목적으로 동 원하는 구시대적 형태가 부활되고 있다. 노 대통령의 비극 적인 죽음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무모한 진압으로 용산 참사가 빚어졌고, 온라인상의 여론에도 재갈이 채워졌 다.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공헌해 온 시민사회단체들이 불 법 시위 단체로 내몰려 탄압을 받고 있다./ 역사의 수레바퀴 를 거꾸로 돌리는 민주주의의 위기는 이명박정권의 독선적 정국 운영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권의 독선은 민생을 위협 하고, 나아가 민주주의의 발전과 함께 발전해 온 생태와 평 화 등 미래 지향적 가치마저 위협하고 있다. 비정규직을 비 롯한 서민들의 생존권이 벼랑에 몰리고 있다. 낡은 토목 경 제 논리로 아름다운 강산이 파헤쳐질 위기에 놓여 있다. 꾸 준히 진전되어 온 남북 간의 화해와 평화가 심각하게 위협 받는 상황에 이르렀다. 국민의 생존과 국가의 미래가 총체 적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 교육 또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 고 있다. ‘사교육비 절반, 학교 만족 두 배’의 약속은 지켜지 지 않고 도리어 무한 입시 경쟁을 부추기는 교육 정책이 강 화되고 있다. 학교가 학원화되고, 사교육비가 폭증하며 공 교육의 파괴가 가속화되고 있다. 가진 자만을 위한 귀족 학 교 설립이 국가 교육 정책으로 강행되고 있고, 학교장의 독 단적 학교 운영이 나날이 강화되어 가고 있다. 교과서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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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교육의 정치적 중립이 위협받고 있다. 20년간 진전되어 온 교육 민주화를 거꾸로 돌리는 시대 역행이 진행되고 있 다./ 우리는 작년 온 나라를 덮었던 촛불의 물결, 올해 노 대 통령의 죽음에 대한 애도의 물결은 시대를 역행하는 현 정 부의 독선적 정국 운영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라 생각한다. 바로 22년 전 6월 항쟁 정신의 재현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국민이 선택한 정부가 국민의 버림을 받는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에 우리는 오늘 이 선언을 발 표하며, 현 정부의 국정을 전면 쇄신하여 국민의 신뢰를 회 복해 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또한 우리의 학교 현장에서 도 학교 운영의 민주화가 회복되기를 촉구한다. ○정부는 공권력의 남용에 대해 국민 앞에 사과하고 국정을 쇄신하 라. ○헌법에 보장된 언론과 집회와 양심의 자유와 인권을 철저히 보장하라. ○특권층 위주의 정책을 중단하고 사회 적 약자를 배려하는 정책을 추진하라. ○미디어법 등 반민 주 악법 강행 중단하고, 한반도 대운하 재추진 의혹 해소하 라. ○자사고 설립 등 경쟁 만능 학교 정책 중단하고, 학교 운영의 민주화 보장하라. ○빈곤층 학생 지원 교육복지 확 대하고, 학생 인권 보장 강화하라. - 2009.6.18. 6월 민주 항쟁의 소중한 가치를 기리는 정진 후 외 1만 6171명의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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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2차 민주주의 수호 교사 선언: 표현의 자유 보장하고 시국 선언 교사 탄압 중단하라!

우리는 대한민국을 민주공화국이라 가르치고 있다. 대한민 국 헌법은 모든 국민에게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기본권으 로 보장하고 있다. 국민의 일원인 교사에게도 ‘언론과 표현 의 자유’는 당연한 기본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국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는 이유만으로 1만 7000에 이르는 교사 들을 전원 징계하겠다는 사상 유래 없는 교과부의 방침을 접하며, 우리 교사들은 이제 민주주의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당혹스러움을 느낀다. 입에 재갈이 물린 채 독재를 민 주주의라고 가르칠 수밖에 없었던 과거 군사독재 시절의 가 슴 아픈 역사를 떠올리며, 깊은 분노와 충격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교사는 교과서에 담겨 있는 생명, 평화, 정의 그리 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말로만이 아니라 몸으로 실천하며 가 르치는 존재다. 이런 교사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민주와 인권을 가르치라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시국 선언 교사 대량 징계는 민주주의의 기본 질서를 파괴하는 위헌적 인 공권력 남용이다. 철회해야 한다. 21세기는 ‘소통의 시 대’라 한다. 우리는 교사들의 시국 선언이 국민 대다수가 염 원하는 내용을 담았다고 판단한다. 현 정부는 최근 소통의 부족을 절감한다며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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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진심이라면 정당한 교사들의 목소리를 탄압할 게 아니라 경청해야 할 것이다.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 다. 우리는 국민의 목소리를 존중하고 이에 귀 기울이려는 대통령의 자세 전환이야말로 현 시국의 위기를 극복하고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다시 굳건히 세우는 길이라는 믿음으로, 표현의 자유 보장과 시국 선언 교사에 대한 징계 철회를 촉 구한다.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시국 선 언 교사에 대한 고발 및 징계는 철회되어야 한다. ○특권층 위주의 교육 정책을 중단하며, 사교육비를 감소하고 교육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자사고 설립 등 경쟁 만능 학교 정책을 중단하고, 학교 운영의 민주 화가 보장되어야 한다. - 2009.7.19. 정진후 외 2만 8634명의 교사 일동

이 지점에서 대전지방법원 김동현 판사가 쓴 이 사건 1 심 판결문의 요지를 몇 가지 추가하고자 한다. 이 판결문 은 수많은 대법원 판례와 헌법 관련 서적, 세계 각국의 입 법례, 유사 시국 사건에 대한 다른 법원의 판결 등을 참조 하면서 이를 각주 처리하고 있어 학술적 연구 자료로서도 매우 큰 가치가 있다. 1심 재판부는 첫째, 정파적 이해가 대립하는 사안에 대해 특정 정파의 의견을 대변하는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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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는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서 공익에 반한 다는 검사의 주장을 배척했다. 인간은 본디 정치적 존재 (homo politicus)로 사회생활과 관련된 행위는 정치성을 띤다면서 검사의 논리대로라면 정부에 대한 비판은 필연 적으로 야당 및 재야 정치 세력의 주장과 일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정부에 대한 비판을 전면적으로 봉쇄하는 결 과를 낳을 것이라고 보았다. 공무원도 국민의 일원으로 직무의 온전성을 해치지 않는 한 정부의 정책 기조에 대해 의견을 밝힐 기본권을 누려야 한다는 것이다. 또 정파적 이해 대립이 있는 사안이라는 이유만으로 정치적 의사 표 현을 처벌한다면 이는 권력을 비판하는 세력에 대한 탄압 수단으로 활용될 수밖에 없고 그것은 민주주의를 해치는 처사가 명약관화하다고 보았다. 둘째, 1심 재판부는 교사 들의 시국 선언 발표가 정치적·사회적으로 미성숙한 학 생들에게 여과 없이 수용되어 공익에 반한다는 검사의 주 장을 배척했다. 그러한 시각은 획일적 교육을 받고 정보 부재의 환경에서 성장한 기성세대의 낡은 경험에 근거한 편견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교사들의 시국 선언은 교실 바깥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학생들은 인터넷과 언론을 통 해 무한한 정보를 입수할 능력이 있고 비판적인 논술 교육 을 받고 자라난 학생들은 교사들의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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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정보 획득 과정에서 시국 선 언을 반대하고 비판하는 주장의 정보도 자연스럽게 수용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1심 재판부는 정부 정책을 비 판했다는 이유로 교사들을 형사 처벌하게 된다면, 이를 지 켜보는 학생들은 힘이 있는 자에 대한 비판은 손해만을 불 러온다는 교훈을 얻게 되고 그러한 교훈은 학생들에게 매 우 실제적·구체적인 것으로 이론의 여지없이 전해질 것이 라고 보았다. 그러할 경우, 비판과 견제를 통해 권력의 건전 성을 유지하는 현대 민주주의는 그 건강성을 잃게 될 위험 이 크고 따라서 시국 선언을 한 교사들을 형사 처벌하는 것 이야말로 반교육적이라고 판단했다. 이러한 재판부의 견해 를 반영한 무죄 판결은 항소심과 대법원에서 뒤집어졌다.

입법자들의 ‘헌법재판모욕죄’ 혹은 ‘입법 뭉개기죄’ 헌법재판소는 2009년 9월 24일, 누구든지 해가 뜨기 전이 나 해가 진 후에 옥외집회, 시위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한 집 시법 제10조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선고하고 2010 년 6월 30일을 시한으로 개정될 때까지 적용시켰다(2008 헌가25결정). 그러나 위헌 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2014 년 4월 현재 이 조항은 개정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헌법 재판소는 2014년 3월 27일, ‘해가 진 후부터 같은 날 24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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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지의 시위’에 해당 규정이 적용되는 한 헌법에 위반된다 는 ‘한정 위헌’ 결정을 내렸다[2010헌가2,2012헌가13(병 합)]. 헌재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입법자들은 ‘해가 뜨기 전 이나 해가 진 후’는 물론 ‘해가 뜬 후 그리고 해가 지기 전’ 조차 입법의 의무를 저버리고 있다. ‘헌법재판모욕죄’라는 죄명도 없고 ‘입법뭉개기죄’도 없으니 유권자와 시민단체 들이 밤과 낮으로 입법자들을 감시하고 견제할 뿐이다. 국회의원을 상대로 집회·시위를 하는 것도 그 방법의 하 나다. 3장은 국회 경계로부터 100미터 이내에서 집회와 시위를 금지한 규정의 위헌성 문제를 다루고 있다. 헌재 는 이곳에서 집회와 시위를 금지한 규정은 합헌이라고 판 단했다. 지금은 주춤한 것 같지만 한동안 우리 정치사에서 사람 의 이름을 영어 이니셜이 대신하였다. 김영삼,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은 YS와 DJ로 불렀다. JP는 김종필 전 국무총 리의 정체를 대신했다. 그들의 아들들도 이니셜을 동반했 다. 이를테면 누구누구 김현철이 아니라 간단히 ‘YS 차남 김현철’로 불렀는데 상황에 따라 ‘YS 차남’으로도 잘 통했 다. ‘DJ 삼남’도 마찬가지다. 급기야 두 사람의 이니셜을 하나로 합쳐 부르는 기막힌 용례도 등장했는데, 그 이름은 단순한 합성이라기보다 한국의 정치 지형을 상징하는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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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형 줄임말’이었다. DJP는 정치인 김대중과 김종필의 이 니셜을 ‘합하고 줄인’ 표현이지만 지역적 기반이 서로 다 르고, 정치적 이념의 차이가 있는 두 정당이 집권을 위해 협력한 정책 연합을 상징했다. DJP는 1997년 대통령 선거 에서 승리하고 DJ는 대통령, JP는 국무총리가 되었다. 그 후로 세 명의 대통령이 배출되었지만 그들은 대개 이니셜 보다는 이름 석 자로 온전히 불렸다. 다만, 이명박 대통령 을 MB로 줄여 부르기도 했으나 그의 정책과 정치력을 빗 대어 오히려 함량 부족을 뜻하는 ‘2MB’라고 희롱하는 사 람들이 많았다. 기가바이트(GB) 컴퓨터 용량 시대에 기 능이 상대적으로 작고 모자라는 메가바이트(MB) 급의 지 도자라는 힐난이었다. 더러 공영방송으로서 위상이 급락 한 한 MBC를 겨냥해 ‘2MB의 MB씨’라고 조롱하는 자들도 생겨났다. 인터넷과 모바일 커뮤니케이션 환경이 확장되 면서, 말과 글에 쓰이는 단어들은 외려 축약을 거듭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최근의 전유물은 아니다. 근대 장편 소설의 효시로 평가받는 이광수의 󰡔무정󰡕에 ‘검나’라는 단 순하고 우직한 청년 이야기가 등장한다. 1917년 ≪매일 신보≫에 연재되었던 작품이므로 벌써 100여 년 전의 일 이다. 키가 크고 얼굴이 거무튀튀한 경성학교 학생 김종 렬은 자나 깨나 나폴레옹을 하느님 이름 부르듯 입에 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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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았다. 보나파르트라는 그의 이름을 알지 못하고 그의 전기 한 권 읽지 않았던 김종렬은 모든 것에 나폴레옹을 인용했다. 학생들은 그의 얼굴이 검은 점을 감안해 ‘검은 나폴레옹’이라고 부르다가 후에 ‘검나’로 줄여 불렀다. 100 년 후의 디지털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 ‘응사’(응답하라 1994)나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를 스스럼없이 사용한다 고 하지만 기실 100년 전의 말 줄임 현상으로부터 크게 나 아간 것도 아니다. 이른바 ‘듣보잡’ 소송으로 알려진 2013 년 헌법재판소 모욕죄 헌법 소원 심판 사건을 살펴보면 더 욱 그러한 느낌을 갖게 된다. 후보자 비방죄가 합헌이라 는 헌재 결정에 이어 5장에서는 이른바 ‘듣보잡’ 모욕죄를 합헌으로 판단한 헌재 결정을 다루고 있다.

‘신통방통’ 위원회의 ‘3대빵’ · ‘6대빵’ 의결 이명박정부는 집권하면서 ‘방송통신위원회(줄여서 방통 위)’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줄여서 방통심의위)’를 출범 시켰다. 여기까지는 외형상 나쁘지 않았다. 두 기구의 설 치와 운영에 관한 내용은 2008년 2월 29일 제정·시행된 ‘방송통신위원회의설치및운영에관한법률’에 담겼다. 그 런데 교묘하고 오묘하게도 이 기구들은 최고 권력자와 집 권당의 ‘방송 장악’을 매우 수월하게 만들 수 있는 법령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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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방송 프 로그램의 공정성 등의 위반을 이유로 법정 제재를 ‘의결’ 하면 방송통신위원회는 법정 제재 조치를 방송사에 명령 하는 이원적 구조였다. 방통위는 방송 심의뿐만 아니라 방송 정책 전반에 관한 사안을 관할하는 기구였다. 방송 사업자의 허가·재허가, KBS 이사 추천 및 감사 임명, MBC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및 감사 임명, EBS 사장·이사 및 감사 임명, 프로그램 및 방송광고의 운영과 편성 등이 방통위의 관할에 속했다. KBS이사회와 MBC방문진이사 회에서 사장을 선임하므로 방통위는 실질적으로 대표적 인 공영방송사의 사장을 ‘뽑거나 내칠’ 권한을 행사하는 셈이었다. 방통위 위원은 5명인데 구조적으로 대통령과 집권당이 위원장을 포함해 그중 3명을 장악하였다. 회의 는 ‘재적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하였으므로 의견이 갈린 정책 사안에서 통치 권력은 ‘언제나’ 이길 수밖에 없 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역시 대통령과 집권당의 지배 에 놓이게 되었다. 9명의 위원 중 3인은 대통령, 3인은 국 회의장, 3인은 상임위원회에서 추천하게 되었으므로 대통 령과 집권당은 방통심의위 의사를 지배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 운영 결과 쟁점 사안에 대한 의결은 일반적으로 6:3 으로 마무리되었다. 첨예한 쟁점에 대한 의결이 이뤄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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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방통위든 방통심의위든 야당 추천 위원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였다. 의결에 참여하여 ‘3:2’ 혹은 ‘6:3’으로 장렬하게 패하거나 아니면, 아예 의결장을 퇴장함으로써 ‘3:0’ 혹은 ‘6:0’의 이른바 ‘만장일치’ 의결을 낳는 데 일조하 는 것이었다. 6장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그러한 불행 한 방송 심의 사례를 다루고 있다. 잠자는 시민을 깨우려는 영화는 다양한 이유로, 여러 층위의 당대 권력과 불화한다. 정치권력을 장악한 자들뿐 아니라 지배적인 세력을 형성한 종교들이 영화적 표현에 대해 목에 걸린 가시처럼 사전 검열을 시도한다. 부스러 기 권력과 사이비 딱지가 붙은 종교인들도 영화 제작자에 게 테러를 가하고 영화 필름을 불태워 버리려고 덤빈다. 명분은 동서의 고금을 막론하고 유사하다. 진실을 왜곡하 고 선량한 시민들을 선동·오염시킨다는 것이다. 정치적 인 신념과 도덕적 가치판단의 차이가 극장 문을 잠그는 빗 장으로 쓰였다. 점잖은 시민들은 명예훼손이나 저작권 침 해를 내세워 영화 상영을 막으려 해 왔다. 한국에서 영화 검열 헌법이 시행된 1962년부터 1972년의 10년 세월 동 안,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영화 검열 사건들이 속출했다. 영 화 제작에 앞서 시나리오를 사전에 검열하여 수정하게 만 들고, 제작된 영화를 상영하기 전에 다시 한 번 내용을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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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했다. 상영 중인 영화라 하더라도 조금이라도 ‘불온한’ 이야기들이 회자되면 그 영화의 필름 영사를 정지시켰다. 이만희 감독은 두 편의 ‘반공 영화’를 만들었다가 오히려 ‘반공법’으로 치도곤을 당했다. 이 감독은 1965년 제작한 <7인의 여포로>라는 영화에 중공군을 사살하고 대한민국 으로 귀순한 인민군 장교를 등장시켰는데, 검열 당국은 인 민군 장교를 ‘너무 멋있게’ 묘사했다며 반공법 위반죄로 그를 구속했다. <7인의 여포로>는 전체 분량의 1/3이 잘 려 나간 뒤 <돌아온 여군>이라는 제목의 영화로 관객에게 돌아왔다. 검열 당국은 반공 영화를 한 편 만들라면서 이 감독을 석방했다. 당국의 ‘선처’로 풀려난 이 감독은 1966 년 <군번 없는 용사>를 제작했다. 피아와 선악의 구분이 명료한 ‘아주 확실한’ 반공 영화였다. 그런데 이번에도 정 보기관에 불려 갔다. 인민군 장교 역의 배우가 ‘너무 잘생 긴 남자’라며 당국은 감독의 ‘불순한’ 의도를 캐물었다. 신 성일이 그 배역을 맡아 벌어진 사단이었다. 영화 검열 헌 법 시대의 비극은 헌법전에서 영화 검열 조항이 삭제된 뒤 에도 계속되었다. 1984년 영화법이 개정되면서 영화의 사 전 심의 주체는 공연윤리위원회로 바뀌었다. 7장은 영상 물등급분류위원회의 <자가당착> 영화에 대한 두 번의 ‘제 한상영가’ 분류 사례를 다루었다. <자가당착>은 유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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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영화제에 초빙돼 상영되고 영화진흥위원회의 ‘예술 영화’ 인증을 받았다. 제한상영가 등급의 영화는 제한상영 관에서만 상영할 수 있는데 국내에 그러한 영화관은 없다. 선진국에서 광고 불매 운동은 태연하고 일상적이다. 우 리나라에서도 2000년과 2005년, 방송사를 상대로 광고 불 매 운동이 전개된 바 있다. 2000년 가수 서태지의 팬들이 SBS의 <한밤의 TV연예> 프로그램 광고주 불매 운동을 벌 였다. 4개 광고주가 광고를 철회했다. 2005년 MBC의 <PD수첩>이 ‘황우석 교수’의 연구 진실성에 의혹을 제기 하자 네티즌들은 강력한 광고 불매 운동을 전개했다. SBS 와 MBC의 프로그램 내용을 문제 삼아 광고 불매 운동을 벌였던 그때 그 사람들은 다른 나라 시민들처럼 ‘무사’했 다. 민·형사상 처벌을 받지 않았다. 한편, 종신 대통령을 꿈꾸던 박정희정권은 1974년 12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동아일보≫ 광고주들에게 ‘광고 게재 취소’를 압박하여 대형 광고주들의 광고를 게재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1974 년 10월 24일 기자들이 발표한 ‘자유언론수호대회 결의문’ 이 신문에 게재된 후 ≪동아일보≫ 보도 기사의 내용과 논조에 대한 정권의 불만이 광고주들에 대한 압박으로 표 출되었다. 오랫동안 광고해 온 대형 광고주들이 광고 동 판을 회수해 가고 이미 계약된 광고를 무더기로 취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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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의 계열사인 동아방송도 프로그램 광고주들이 광고를 철회하는 바람에 방송을 내보내지 못하기도 했다. 다음 해 동아일보가 수많은 기자들을 해고하면서 보도의 논조를 변형하자 대형 광고주들이 거짓말처럼 7월 중순부 터 ‘일제히’ 광고를 다시 싣기 시작했다. 정권에 충성하는 수하들이 ‘알아서 저지른 일’이라서 당시로서는 실정법상 의 위법 행위나 불법적 범죄라는 인식과 대응은 난망한 일 이었다. 그러나 30년 후 민주화된 나라에서 광고 불매 운 동은 ‘업무방해죄’, ‘강요죄’, ‘공갈죄’로 형사 처벌이 가능 한 ‘범죄’로 규정되었다. 8장은 광고 불매 운동에 대한 헌 법재판소의 결정 사례를 다뤘다.

‘비상한 공적 관심사’와 생각의 차이 1993년 12월 27일 법률 제4650호로 제정된 ‘통신비밀보호 법’은 불량하고 부정한 대통령 선거 운동의 산물이다. 1992년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터진’ 이른바 ‘초원복집’ 사 건의 결과물이다. 그해 12월 11일 아침, 첫 번째 임기제 검 찰총장을 지내고 바로 직전까지 법무부 장관을 맡았던 김 기춘과 부산시장을 비롯한 지역 기관장들이 모여 민자당 김영삼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위해 ‘지역감정’을 부추기자 는 발언들을 쏟아냈다. 참석자들의 발언은 선거의 공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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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파괴하고 지역감정과 지역 차별을 고착화할 수 있는 음 습한 내용이었다. 이들의 대화 내용을 통일국민당 측에서 몰래 녹음, 폭로했다. 부산 지역 기관장들의 불법적인 선 거 개입 시도와 망국적인 지역감정 조장 발언에 다수 국민 들은 크게 놀랐지만, 곧 통일국민당은 외려 역공의 대상이 되었다. 여당과 주류 언론 매체들은 선거의 공정성 훼손 이나 지역감정 발언의 폐해를 은폐하고 대신 ‘불법 도청’ 행위라는 죄악의 굴레를 통일국민당과 그 당의 대통령 후 보에게 덧씌웠다. 영남권 유권자의 결집 효과를 가져온 초원복집 사건 후 ‘불법 도청’의 피해자 운운하던 김영삼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그의 집권기에 불법 적인 도청을 방지하겠다는 ‘통신비밀보호법’을 제정했다. 그러나 통신비밀보호법은 오히려 불법 도청을 법률상 ‘감 청’ 행위로 포장해 국가기관의 ‘합법적인 도청’을 정당화 함으로써 시민들의 통신에 대한 국가기관의 감시는 더 광 범해지고 체계화되었다. ‘양해라뇨, 제가 더 떠듭니다’란 발언으로 유명한 당시 부산지방경찰청장 박일룡은 김영 삼정부에서 제5대 대한민국 경찰 총수에 임명되었다. 김 기춘은 경남 거제를 기반으로 1996년부터 내리 3선의 국 회의원을 지내고, 2013년 박근혜정부의 청와대 비서실장 을 맡았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의 출세가도와 달리 고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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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겪은 언론인과 정치인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 통신비 밀보호법의 도청 관련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2011년 MBC 이상호 기자는 대법원에서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 다. 노회찬 진보정의당 의원은 2013년 그 규정으로 인해 국회의원직을 잃었다. 한겨레 최성진 기자도 2013년 이상 호 기자와 마찬가지로 통비법 위반의 유죄가 인정돼 ‘선고 유예’ 판결을 받았다. 두 기자에게 적용된 법리는 ‘비상한 공적 관심사’였다. 10장에서는 대법원의 ‘비상한 공적 관 심사’ 판결을 다루었다. 이 책에서는 6개의 헌법재판소 결정과 2개의 대법원 판 결 그리고 심의위원회가 의결한 2개의 심의 사례를 다루 었다. 대법원 판결 2개는 모두 1심에서 ‘무죄’가 선언되었 다가 항소심 법원이 유죄를 선고하고 대법원에서 원심이 확정된 경우다. 1심 재판부의 고뇌와 법관으로서 열정과 양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판결문 원본을 구해 읽어 보기 를 권한다. 상급심들의 판결문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 가 며 읽는다면 슬픔과 분노, 일상과 비상, 씁쓸한 재미와 우 울한 찬탄의 바다에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헌법재판의 경우 반대 의견까지 두루 살펴본다면 헌법재판관들의 해 당 쟁점에 대한 논리의 견결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표현물의 제작 과정에 참여한 전문가나 커뮤니케이션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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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에 종사하는 학자들이 심의위원회에서 펼치는 윤리 적·직업적 역량 역시 표현의 자유를 확장하거나 위축시 키는 데 치명적이다. 열 개의 판결이 한국에서 표현의 자 유를 위축하는 역할을 했다고 보는 필자의 시각에 대해 전 혀 동의하지 않는 독자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한 생각의 차이를 존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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