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텔레비전 문화사, 공영방송에서 리얼리티쇼까지 1950~2010 제롬 부르동 지음 김설아 옮김
대한민국,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2014
서론 유럽, 문화, 텔레비전
이 책은 다층적인 발전을 해 온 유럽 역사 속에서 거의, 또는 한 번도 다 뤄지지 않았던 부분인 유럽 영상 대중문화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이와 함께 유럽에 대한 학문적 견해 또한 제시하고 있다. 그동안 유럽 대륙 은 유럽 전체를 경제적, 정치적으로 통합하려는 의지와 각국 대중문화 가 지닌 민족주의적인 면을 강조하려는 동력 사이에서 깊은 갈등을 겪 어 왔다. 이 책은 이러한 갈등을 텔레비전을 중심으로 하여 분석하고 있다. 현재 유럽이 겪고 있는 ‘민주주의의 장애’는 문화적인 장애를 뜻 하기도 한다. 흔히 유럽인들은 그들을 대표하는 무엇인가가 제대로 마 련되어 있지 못하다고 느끼는데, 이는 사실 선행되어야 하는 어떠한 조 건이 충족되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유럽 여러 국가의 국민들로 하여금 자신이 유럽인이라는 것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는 먼저 동일한 집단에 속해 있다는 소속감을 지니도록 하거나, 어떠한 공 통된 역사나, 적어도 상징물이나 문양을 중심으로 공통된 감정이 형성 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민족적 차원에서 억압되어 왔던 것들이 대중문화를 통해 다시금 등장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러한 억압되었던 민족 감정의 회귀가 단 지 민족주의 정당의 재등장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고 생각해 왔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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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는 민족적인 영웅을 찾고 국가주의적인 드라마를 원하는 유럽의 집단 의식과 더욱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당시 텔레비전 문화는 같은 시 기에 발전해 가던 표준화(standardisation)의 영향을 톡톡히 받았다. 텔 레비전 뉴스와 오락 프로그램의 포맷들, 그리고 항상 독창적으로 보였 던 픽션물의 포맷들이 점점 비슷해져 갔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각 나라의 장르들이 형식적으로 서로 비슷해져 갔지만 내용 면에서 민 족주의적인 면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러한 현상은 세계화에 관해 가 장 잘 알려진 이론가 중 한 명이 지적한 내용이기도 하다(Wallerstein, 1997). 이 책의 주제는 무엇보다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는 많은 이들을 고민하게 만들었던 질문으로, 단지 유럽의 경제적 계 획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던져진 물음은 아니다. “유럽이란 무엇 인가?” “유럽에게 집단적인 정신, 또는 공동의 문화라는 것이 존재하 는가?”
모순된 표현 속의 유럽
약 20년 전 유럽연합의 급성장과 유럽 문화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고, 이에 ‘유럽’에 대한 질문이 급증하면서 이를 다루는 서적들이 쏟아져 나 왔다. ‘유럽’이란 많은 가치를 지닌 단어다. 이에 대해 한쪽에선 호의적 이면서도 인문주의적인 질문을 던진 반면(Morin, 1990), 좀 더 좌파적 인 성향을 지닌 쪽에서는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며 이에 비난을 가하기 도 하였다(Pietersee, 1993). 그렇다면 과연 유럽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이에 대해 과거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질문을 던져 오고 있다. 종교나 계몽주의가 초래한 정교(政敎) 분리 원칙과 관계된 문제일까? 민주주 의의 땅, 아니면 가장 잔인했던 독재 권력이 존재했던 땅을 말하는가? 인권의 땅인가 아니면 식민주의적이거나 신식민주의적인 인종차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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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인가? 유럽의 시작은 어디서부터이고 무엇을 계승하고 있는가? 그리 스 로마시대의 문명? 중세시대? 르네상스의 인본주의? 계몽주의? 아니 면 19세기 민주적 혁명? 문제는 시작점을 어디서부터 잡을 것인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유럽은 유혈이 낭자했던 분리와 전쟁으로 점철된 긴 세기를 거친 끝에 비로소 하나가 된 대륙이다. 오늘날 세계에 퍼져 있는 유럽의 유산들 중 대표적인 것 하나가 바로 민족주의 정신이니, 바로 이 민족주의를 초 월하려는 의지와 함께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유럽 건설 계획이 시작 되었다 하겠다. 유럽을 건설하자는 계획은 로마협정서의 서문에 나와 있듯이 “처참한 분쟁”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자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각기 다른 문화를 지닌 국가들이 그 안에 존속하고 있었으니, 이에 유럽 문화라는 것을 정의하고자 하던 이들은 난처해질 수밖에 없 었다. 그러자 유럽 건설을 지지하던 학자들은 “통합 속의 다양성”(Musolff, Schäffner & Townson, 1996), “다원성의 교류”(Morin, 1990) 등과 같 은 모순 어법을 쓰며 유럽을 표현하였다. 하지만 이들 표현이 담고 있 는 내용이 정확히 무엇인지, 이를 어떻게 실현시킬 것인지 제시한 계획 은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아마도 아르테(Arte)i)에서 한동안 시도했던 방식, 즉 2개 국어를 하는 진행자 2명을 같은 프로그램에 함께 세웠던 그 방식이 이에 대한 구체적인 실현 방안의 예가 아니었을까 한다. 역사 외에 지리적 문제도 있다. 유럽은 동쪽으로 갈수록 국가 간 경 계가 분명치 않았는데, 이는 과거부터 항상 그래 왔다. 냉전 시대 이후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서쪽의’ 유럽을 유럽으로 이해하곤 했다. 동쪽의 유럽 국가들까지 유럽에 포함된다는 공식적인 발언이 몇 번에 걸쳐 있
i) 프랑스와 독일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공영방송 채널이다-옮긴이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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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음에도 말이다.ii) 사실 베를린장벽의 붕괴와 터키를 유럽연합 회원국 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논쟁들은 서유럽 사람들이 유럽 확장에 대 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 주는 계기가 되었다. 유럽에 합류하고 싶어 하는 국가들의 열망은 굉장하지만, 각 나라의 합류 동기 가 항상 같은 것은 아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들 나라에게 유럽 문 화로의 동화가 유럽연합의 합류에 대한 주된 이유는 아니라는 것이다. 유럽 확장에 관한 논쟁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은 바로 경제 문제로, 이는 전(前) 공산주의 국가들과 관련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미 10년 전쯤 영국의 한 주간지는 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안정성을 수출하는 것인가, 아니면 유럽경제공동체 (EEC, European Economic Community) 내에 불안정성을 들여오는 것 인가?”(The Economist, 1999)
유럽 역사 만들기와 쓰기: 유로푸딩(유럽 섞기)인가 유로패치워크(유럽 잇기)인가?
유럽의 옛 역사와 최근 역사를 쓰는 것이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 가 다루는 주제인 유럽 텔레비전의 경계는 어디까지로 두어야 할까? 이 책은 텔레비전의 역사를 그 시초부터 다루고 있고, 서유럽을 중심으로 하여 다양한 지리에 놓인 다섯 개의 주요 국가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다루는 직업적인 논리와 정치적 논리들은 때에 따라 그 외의 국가들, 즉 벨기에, 네덜란드, 스칸디나비아 국가들, 그리고 포 르투갈에도 적용된다. ‘동유럽’ 국가라 불리는 나라들 또한 유럽에 포함되기는 하나, 적어
ii) 드골 장군은 “대서양에서 우랄 산맥까지의 유럽”이라는 표현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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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텔레비전과 관련해서는 이렇게 ‘서부’ 유럽만을 다루는 것이 옳을 듯 하다. 공영방송의 이상이 형성되었던 곳도, 1980년대 말 이후 탈규제화 와 함께 엄청난 변화를 겪었던 곳도 바로 서유럽이었기 때문이다. 전 (前) 공산주의 국가들의 텔레비전과 이들이 가진 특수한 문제점들까지 다루며 역사를 쓴다는 것은(Sparks, 1998), 본인이 보기엔 또 다른 텔레 비전의 역사가 지닌 문제점들까지 다루는 것이 될 것이다. 또한 이는 유럽 공영방송 모델을 한창 성장하고 있는 또 다른 방송 시스템, 즉 민 주주의적 특징을 거의 지니고 있지 않은 상업 텔레비전이 공산주의 공 영방송의 잔해 위에 구축되어 있는 방송 시스템과 대조하는 것이 될 것 이다. 필자는 여기서 ‘전통적인’ 공영방송의 역사를 처음부터 찬찬히 살 펴보되, 이를 무조건 이상화하거나 악마화하려는 두 개의 극단적인 방 법을 피하면서 공영방송에 대해 올바른 평가를 내리고자 한다. 공영 텔 레비전은 이에 대한 반대파들이 일찍이 주장했던 것처럼 권력에 순종 적이었고 기술중심주의적이었으며 비효율적인 면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공영방송에 대해 향수를 지닌 지지자들이 믿었던 것처럼, 이는 창조적인 면도 지니고 있었고 대중성 또한 지니고 있었다. 공영방송에 찬미를 보내던 영국의 마이클 트레이시(Michael Tracey, 1998)가 바로 후자에 속한다 하겠다. 1장과 결론에서 언급될 공영방송의 이상과 거리가 멀게도 텔레비 전 속 유럽은 민족주의적인 유럽, 즉 민족과 국가를 우선시하는 유럽 이다. 카탈로니아가 존재하는, 매우 특별한 경우인 스페인만이 이러한 민족주의적인 우월성을 앞세우지 않았을 뿐이다. 유럽 사람들은 언제 나 자신을 한 나라의 국민으로 인식해 왔지 유럽인임을 먼저 느끼지 않 았다. 게다가 여러 유럽 기관들은 각 나라 국민들에게 유럽인으로서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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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성에 대한 인식을 심어 주려 노력하지도 않았다. 사실 이러한 인식은 나라마다 상당한 차이가 있었는데, 유럽에 대한 강한 애착은 1951년에 유럽석탄철강연합(Communauté Europeenne du Charbon et l’Acier) 을 세운 여섯 국가들iii)을 중심으로 형성·지속되었다. 사실 유럽에 대 한 애착이라는 개념은 그 자체로서는 측정하기 힘든 것으로, 그 개념은 평가 방법에 따라 매우 달라진다. 유로바로미터(Eurobarometer)가 실 시한 조사에 따르면, 1994년에서 2005년 사이 자신을 ‘우선 유럽인’이 라고 느끼는 사람들의 비율은 줄어든 반면 자신을 자기 나라의 국민으 로만 인식하는 이들의 비율은 (33%에서 41%로) 증가했다. ‘유럽헌법’ 을 제정하자는 내용의 니스조약에 대해 아일랜드 국민(2001)과 네덜 란드, 프랑스 국민(2005)들은 국민투표를 통해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 했다. 이는 유럽에 애착을 느낀다는 발언을 조심히 다뤄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아일랜드 국민과 네덜란드 국민을 상대로 한 대부분의 여론 조사들은 오래전부터 이들 국민들이 유럽에 굉장한 애착을 가지고 있 고 유럽연합을 매우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는 결과들을 내놓았지만, 투 표 결과는 달랐던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유럽 국가들 사이의 인 식 차이는, 그것이 방송인의 문화이건 시청자 문화이건 간에 텔레비전 방송 문화에 그다지 많은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이에 대해선 뒤에서 살펴볼 것이다. 이처럼 민족주의의 저항 앞에서 연구자들은 유럽의 역사를 써 내 려가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들 연구자의 모습은, 각자가 보유 하고 있던 자본뿐만 아니라 시나리오 작가, 배우, 감독들까지 모두 섞어 가며 픽션물 제작을 통합하려던 1980년대 방송 직업인들의 모습
iii) 베네룩스(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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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비슷하다. 당시 영국의 채널4(Channel 4) 사장이던 제레미 아이작 (Jeremy Issacs)은 이러한 제작 환경에서 나온 결과물을 두고 유로푸딩 (Europudding)iv)이라는 약간의 아이러니가 섞인 표현을 썼다. 이후 이 용어는 유럽 “생산품”, 그중에서도 유럽 영화 작품을 만들어 내는 노력 이 부족한 상황을 묘사할 때 사용되었다. 물론 이 역시 반어법이 섞인 표현이었다. 연구자들은 이보다 유로패치워크(Europatchwork) 모델을 받아들 여 실행에 옮겼다. 이들의 저서들은 (서로 다른 국적을 지닌) 두 명의 연구자가 통합 속의 다양성이라는 모순 어법을 서론에 소개한 후, 각각 의 연구자가 자신의 나라를 분석하여 결론에 가서 그 연구 결과를 하나 로 묶는 식의 전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유로패치워크 모델은 나름의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이들 연구자의 저서를 살펴보면 대부분의 책들 이 제목에서 말하고 있는 ‘유럽’을 그 안에서 제대로 다루고 있지 않음 을 알 수 있다(Blumer 1992; Siji 1992; Morgas Spà & Garitaonandia 1995; Weymouth & Lamizet 1996; Euromedia Reaserch Group 1997; Buonanno, 1998/1999/2000). 패치워크 모델을 뛰어넘는 다른 모델을 제시한 이들은 극소수다. 그들 중 첫 타자가 바로 피터 험프리(Peter Humphreys, 1996)다. 그의 저서는 역사에 중점을 두며 정치와 미디어를 다루고 있다. 다음은 공동 으로 저술된 책으로, 챕터들이 텔레비전 장르별로 구분되어 있다. 거의 모든 챕터에서 저자는 자기 나라의 예만을 다루고 있다(Wieten et. al., 2000). 단지 두 챕터만이 예외인데, 하나는 토크쇼를 다루는 장이고 다 른 하나는 소프오페라(soap opera)를 다루는 장이다. 하지만 이 두 챕
iv) 이에 대해서는 2장에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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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들도 남부 유럽 국가들의 경우는 다루지 않았다. 왜일까? 사실 여기 서 문제가 되었던 것은 바로 언어였다. 북부 유럽 국가들에 대한 많은 정보들은 각 챕터의 저자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언어인 영어로 쓰여 접 근이 가능했던 반면, 남부 유럽의 주요 국가들에 관한 정보는 영어가 아 닌 그 나라의 언어로 쓰여 연구자의 접근이 어려웠던 것이다. 최근에는 유럽텔레비전역사네트워크(European Television History Network)v) 가 유럽 텔레비전 역사(Bignell & Fickers, 2008)란 책을 출간했다. 내가 쓴 책보다도 다루는 테마나 나라의 범위가 훨씬 넓다. 이 책은 일 관된 문제의식으로 매우 다양한 자료들을 통합적으로 다루는 데 현재 까지 가장 성공한, 유럽 텔레비전 역사 관련 저서로 평가받는다. ‘텔레비전의 유럽’이란?
서유럽은 공공 서비스라는 매우 복잡한 원리, 법적이자 정치적인 원리 의 메카라 할 수 있다. 19세기 말 국가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함께 나타 난 이 원리는 라디오방송 분야에 적용되었고, 방송인 집단은 이를 철저 하게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었다. 공공 서비스라는 용어는 이 원리를 실 행하는 기관들을 지칭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처럼 용어가 여러 의미를 지니는 것이 과연 유익할까? 공공 서비스에 대한 많은 논의가 필요하겠 지만 이 시점에서 꼭 필요한 것은 공공 서비스의 임무를 민영 텔레비전 이 수행토록 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일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단 하 나의 답이 있을 수 없다. 시대에 따라, 정치적 환경에 따라, 각 나라의 문화에 따라 그 답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영국의 독특한 상황
v) 텔레비전 역사에 대해 연구하는 연구자와 연구 기관이 이용하는 웹 사이트다(http://cms. let.uu.nl/ethn)-옮긴이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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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먼저 살펴보기로 하자. 공영방송은 세 가지 주요 원리들 위에 세워졌다. 정보 전달, 교양, 오락이 그 세 원리들이다. 이 순서는 중요한 의미를 띠고 있으니, 오락 이 앞의 두 임무에 비해 부차적이라는 것이다. 공영방송의 임무란 무엇 보다도 정치와 교육에 관계된 것이라 하겠다. 그런데 뒤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실용적이었던 원리를 고정적인 어떤 것으로 만들려 해 서는 안 된다. ‘공공 서비스’ 개념을 라디오와 텔레비전에 적용시킨 것 은 문제를 일으킬 만했던 것이다. 과거 공영방송은 이상화된 개념이었 지만 그 내용이 나라마다 동일하지 않았으니, 각 나라에서 그 개념과 내 용이 체계화된 것은 시간이 더 지난 후였다. 물론 BBC는 예외였다. 이 후 공영방송의 정당화에 대한 필요성이 커지고 공영 텔레비전에 대한 공격이 거세지면서, 공영방송의 원리에 우호적이었던 학자들과, 방송 기관의 보호가 바로 방송인의 이익에 대한 보호라는 것을 깨달은 방송 국 조합원들은 공영방송의 교리를 세우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한다. 하 지만 이미 때는 늦었으니, 텔레비전의 공공 서비스라는 생각 자체에 깊 게 반대하는 상업 세력의 공격 강도가 무척이나 강해져 있었던 것이다. 공영방송을 중심으로 유럽 텔레비전의 역사를 쓰는 것은 곧 위기 의 역사를 쓰는 것이다. 1980년대 탈규제화와 민영 텔레비전의 등장이 서구 유럽 전체에 끼친 영향에 대해 관련 분야 관계자들이 주목하기 시 작하면서 이에 대한 역사가 쓰이기 시작하였다. 경쟁 체제의 등장은 공 영방송 정책이 위기를 맞았다는 것을 알려 주는 역할도 했지만 한편으 론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언하는, 그러면서 결국 위기를 부채질하는 역 할도 했다. 이제 공영방송도 양적으로 측정될 수 있는 시청자에 주목하 면서 오락 프로그램의 양을 늘릴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는 예견된 일이었으니, 이미 지적했듯 당시 공영방송의 가치는 매우 “허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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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진” 상태였다(Blumler, 1992). 공영방송이 가진 문화적이고 교육적 인 야망이 결국 대중들이 선호와 충돌한 것이다. 더군다나 각국 정부가 수신료 이외에 광고 수익을 텔레비전 시스템 안으로 끌어 놓으면서 공 영방송의 기반은 더욱 흔들리게 되었다. 또한 대부분 나라에서 보도 프 로그램들이 권력에 종속되어 있다고 비난받고 있었던 만큼, 탈규제화 는 텔레비전을 정치적 압력에서 벗어나게 해 줄 탈출구로 여겨지기까 지 한다. 이후 탈규제화가 진행되면서 공영방송의 반격이 시작되었고 좌파 정부를 가지게 된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은 공영방송에 힘을 실어 주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오늘날의 공영방송은 다 시금 쇠퇴의 길에 들어선 것 같다. 1990년대의 반격이 어느 정도 성공 한 것 같았으나, 이후 미국식의 편파적 편성, 즉 대중성 위주의 편성이 다시 유럽 방송 환경에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앞으로도 공영방송은 계 속해서 여러 장르의 프로그램들을 골고루 제작하여 방송할 것이다. 하 지만 그 시청자의 수는 줄어들 것이고, 문화 정책의 주요 프로젝트로서 의미도 잃게 될 것이다. 일이 잘 풀릴 수도 있다. 공영방송의 유산이 테 마 채널의 숲에서 재건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케이블 채널, 위성 채널, 인터넷방송과 함께 시청률 경쟁을 벌여야 할 것이다.
공영방송: 국가, 유럽 그리고 미국
라디오텔레비전 방송의 공공 서비스는 언제 어디서나 항상 국가의 업 무로 인식되어 왔다. 공영방송을 지지하던 이들이나 반대하던 이들 모 두, 그리고 대중들 또한 이러한 생각을 지녀 왔다. 공영방송이 그 나라 와 맺고 있는 관계는 매우 중요하지만, 오늘날 공영방송에 대한 변호 속에서 이러한 관계는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다. 사실 두 가지 힘이 텔 레비전을 사이에 두고 끊임없이 충돌해 왔다. 매우 발전된 미디어 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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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을 갖추고 경제적으로 급성장하는 대규모 사회 속에서 등장한 ‘대중 (masses populaires)’, 즉 여가와 소비를 즐기는 ‘대중’과 텔레비전을 공 공 서비스로 만들려고 노력하는 복지국가가 텔레비전의 발전 과정에 관여해 왔던 것이다. 이와 함께 각 나라의 전통 또한 텔레비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쳐 왔다. 텔레비전의 주요 장르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 하나로 통합된 유럽 텔레비전의 역사를 제시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 지만, 각 챕터에서 독자들은 각 나라 방송 간의 차이점 또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텔레비전과 연극, 영화가 이루는 관계(3장), 기자들의 권력에 대한 종속의 정도(4장), 또는 텔레비전이 경찰이나 법원과 같은 다른 제도권 기관들과 맺는 관계(6장)를 다루는 부분에서 말이다. 공영방송은 유럽의 구축 과정에 참여하기도 하였는데, 바로 여기 에서 우리는 유럽 텔레비전 역사의 특이함을 엿볼 수 있다. 공통된 이 념하에 유럽의 통합을 이루겠다는 목적으로 텔레비전을 통해 각국에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려던 노력은 사실 프랑스-독일 공동 채널인 아르 테가 출범한 1980년대 말 이전에 시작되었다. 당시 유럽의 문화 정책에 담긴 노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장 모네(Jean Monnet)는 다음과 같은 발 언을 했다고 한다. “다시 시작한다면 문화부터 하겠다.” 하지만 실제로 모네가 이러한 발언을 했는지의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다. 분명 유럽은 석탄철강공동체를 중심으로 시작되었으나, 여기서 우리가 잊고 있는 점은 1950년대부터 텔레비전과 그 여러 장르들(뉴스, 연극, 버라이어 티), 그리고 그 기술들(생중계, 위성방송 등)을 이용해서 하나의 유럽 문화를 만들려는 노력이 존재해 왔다는 점이다. 결국 이러한 시도들은 연속된 실패로 끝나고 말았지만, 이들은 텔레비전뿐만 아니라 유럽 문 화, 텔레비전이 만들어 내는 사회적 신념에 대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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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 주었다. 유럽이 아닌 또 다른 대륙, 아니 하나의 나라가 서유럽 텔레비전 역 사와 많은 관계를 맺어 왔다. 바로 미국이다. 유럽의 대중문화, 특히 상 업화, 경쟁의 논리와 얽혀 있는 유럽 대중문화를 연구하는 모든 역사학 자들이 그러하듯 텔레비전 역사가들 또한 미국의 영향에 대한 논의를 피해 갈 수 없다. 그러나 이 주제는 많은 이념들과 관계되어 있는 만큼 조심스럽게 다뤄져야 한다. 사실 ‘미국화(américanisation)’는 오래전 부터 여러 나라에서 그 나라의 ‘국가적 정체성’을 ‘위협’하는 것으로 인 식돼 왔다. 또한 이 ‘미국화’ 개념은 여러 나라들이 자국의 문화를 보호 하기 위한 조치, 즉 영상 산업, 특히 픽션물 제작 산업의 보호와 지원을 위한 조치를 취하는 과정에서 전략적으로 조작되기도 하였다(3장). 이 러한 유럽의 대응은 추후 발생할 수 있는 미국의 ‘침략’에 대항해 동맹 국들을 모으려는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작전처럼 응용되기도 하였다. 어떻게 보면 공영방송의 보호도 미국화에 대한 투쟁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미국화를 거론하려면 미국화에 대한 담론 분석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 개념이 그만큼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앞 문단에 서 유독 많은 인용 부호들이 쓰인 이유다. 그렇다고 미국화 개념이 아 무런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는 단지 ‘미국화’가 일어났다는 것, (적어도 프로그램 포맷의 모방과 관련해서) 텔레비전이 출현한 초반부터 아무도 모르게, 그러다 점점 더 개방적으로 ‘미국화’가 진행되었다는 것을 머릿속에 새겨두기만 하면 된다. 이와 함께 우리는 미국화의 다양한 형태를 시대별로 구분하여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미 국 문화에 깊은 영향을 받은 유럽의 프로그램 제작자들이 ‘유럽식’ 포맷 을 발명하여 미국으로 역수출하고 있는 오늘날, 미국화는 다루기 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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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은 개념이 되었다. 현재 유럽 각 나라의 문화는 상업 텔레비전이라 는 틀 속으로 흘러 들어가 새롭게 주조되고 있다. 미국에서 만들어졌 으나 점점 그 초기의 모습에서 멀어져 가는 상업 텔레비전의 틀 속에서 말이다(Tunstall, 2008).
텔레비전, 그리고 역사
여기서 문제가 되고 있는 용어는 유럽이라는 단어뿐만이 아니다. ‘텔레 비전’vi)의 역사가 무엇을 뜻하느냐에 대한 동의도 없다. ‘문화적’이라는 형용사에는 제한이 있는가? 있다면 어떠한 제한인가? 방송 직업인들의 문화를 말하는가, 아니면 시청자 대중의 문화를 말하는가? 여기서는 무 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텔레비전에도 역사가 있다는 이 아주 간단한 생각을 증명해 보여 야 하던 때가 있었다. 고급 예술 분야나 ‘인문학’ 분야의 연구자들, 그리 고 영화 연구자들은 오랫동안 텔레비전을 경시해 왔다. 결국 이들은 텔 레비전과 관계를 맺긴 했지만 사실 이에는 약간의 강제성이 개입되었 다 할 수 있다. 이후 이 매체에 대한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아졌음에도 텔레비전에 대한 연구자들의 깊은 불신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이 러한 좌파 성향의 엘리트주의를 대표하던 프랑스의 유명한 영화 평론 가 세르주 다네(Serge Daney)는 20년 전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순 전히 현재의 노예이기만 한, 이 깊이 없는 매체인 텔레비전은 그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기에 그만의 역사를 만들어 내지 못했고, 이를 연구 하는 역사가 또한 배출해 내지 못했다.”(Libération, 1988. 11. 13) 여기 이 영화 평론가는 역사라는 것을 열광적인 팬들의 기억에 남을 만한 작
vi) 기관을 말하는가? 기술 상품을 말하는가? 아니면 방송 직업인들의 그룹을 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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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들의 역사, 즉 비평가들의 비평을 토대로 한 역사로 이해하였던 것 같 다. 하지만 예술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는 예술이 비평 외에도 물질적 이자 사회적인 역사를 가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대중문화의 역 사는 당시에는 무시받고 멸시당하던 작품들이 때로 가까운 과거에 대 한 이해를 돕는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음을 알려 주었다. 그렇지만 텔 레비전 역사가가, 영화의 영역보다 훨씬 광대하지만 아무런 표지판도 없는 이 이상한 영역에 덩그러니 홀로 놓여 있는 것 같다고 한 다네의 지적은 매우 정확하다. 다시 말해 텔레비전 역사가에게는 좀 더 많은 상상력이 필요한 것이다. 다시 텔레비전으로 돌아가 보자. 미국과 영국의 연구자들에 따르 면 유럽에서의 텔레비전 역사 연구는 1980년대 들어 괄목할 만한 발 전을 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는 바로 내가 정치연구소(IEP, Institut d’Études Politiques)와 국립시청각연구소(INA, Institut National de l’Audiovisuel)가 공동으로 진행한 세미나를 준비하며 프랑스 텔레비전 에 대해 연구를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당시 세미나에는 어마어마한 수의 매체들뿐만 아니라 그동안 텔레비전에 대한 경멸과 걱정을 속에 꾹꾹 담아 왔던 문화적 엘리트들과 대학 학자들 또한 참여했다. 그 시기 텔레비전에 대한 갑작스런 정치적 이용은 연구자들과 방송인들의 흥미 를 돋우기도 하였는데, 텔레비전과 정치인들(Television and Politics) 은 당시 한 영국의 역사가(Smith, 1979)의 감수 아래 편찬되었던, 유럽 국가들의 텔레비전들을 최초로 비교 연구한 책의 제목이었다. 이후 텔 레비전의 탈규제화와 함께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 텔레비전은 더 이 상 TVE, BBC, RAIvii)와 같이 권력이 집결된 기관, 일률적인 통제가 가
vii) TVE는 스페인 공영방송, RAI는 이탈리아 공영방송 채널이다-옮긴이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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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한 기관으로 지속될 수 없었다. 프로그램이나 기능이 이전의 공영방 송과는 확연히 다른, 상업 텔레비전이라는 기관이 등장한 것이다. 상업 방송 출현에 대한 반대와 찬성의 논쟁이 뜨거웠으나, 이러한 여론에 전 혀 영향을 받지 않고 ‘새로운 텔레비전’이 등장한 것이다. 이때의 ‘새로 운 텔레비전’이란 이탈리아 학자(Silj, 1992)가 감수한, 유럽 텔레비전들 을 비교 연구한 책의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이 학자의 출생국인 이탈 리아에서는 상업 텔레비전이 그 나라의 문화를 단숨에 어지럽혀 놓았 으니, 그 정도가 다른 나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역설적이게 도 이러한 상업 텔레비전의 등장 이후 공영방송의 가치가 재조명되기 시작한다. 예전에 그리 비난을 받던 공영 텔레비전이 갑자기 해를 끼치 지 않고 절제된 미덕을 지닌 텔레비전으로 재평가되기 시작한 것이다. 공영방송과 민영방송의 대립은, 텔레비전 정책에 대한 몇몇 논쟁 들이 일고 난 이후부터 수많은 유럽 미디어 연구 작업의 중심 주제가 되 었다(Blumler, 1992; Humphreys, 1996; Weymouth & Lamizet, 1996). 그러나 탈규제화와 그 결과에 대한 이러한 집중적인 관심은 긍정적인 결과만을 가져오지 않았다. 정책적인 면이 연구되면서 텔레비전은 결 국 역사성을 얻게 되었으나, 같은 시기에 일어난 상업 텔레비전의 등장 은 그 역사의 나머지 부분을 어둡게 만들고 만다. 이탈리아 학자 움베 르토 에코(Umberto Eco, 1990)는 1983년 ≪에스프레소(Espresso)≫ 에 낸 한 기사를 통해 공영 텔레비전과 민영 텔레비전을 다른 방식으로 대립시킬 것을 제안한다. 텔레비전의 역사를 프로그램을 만드는 두 가 지 방법에 따라 정리하자는 것이다. 에코의 이러한 단순한 이항대립식 이해 방법은 남부 유럽, 특히 프랑스에서 많은 주목을 받게 된다. 그에 따르면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역사는 세계를 보여 주고 문화를 전수하 는 ‘팔레오텔레비전(Paleotelevisión)’과 자기도취적이고 시청자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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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에 집착하는 ‘네오텔레비전(Neotelevisión)’ 사이의 대립으로 정리 된다고 한다.viii)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이 있으니, 바로 이 러한 대립 방식이 탈규제화를 맞이하기 전, 매우 특수한 상황에 처해 있 던 이탈리아 텔레비전을 감안해 제안되었다는 것이다. 곧 보게 되겠지 만, 이외에도 텔레비전 역사를 서술하는 다른 많은 방식들이 연구를 통 해 나오게 된다.
정치, 문화, 프로그램: 텍스트, 공동 텍스트, 콘텍스트
텔레비전에 대한 초기 연구들은 대부분 텔레비전의 정치·법적인 측면 과 텔레비전 기관들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처음으로 역사가들의 주 목을 끌었던 프로그램은 정치 관련 프로그램들로, 텔레비전 뉴스와 매 거진 프로그램(Jeanneney & Sauvage, 1982) 그리고 선거 캠페인 방송 들이 그것이다. 이후 역사가들은 텔레비전이 문화 분야와도 관계가 깊 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이때의 문화란 이 용어가 지닌 모든 의미를 포함하기도 하나, 여기서는 특히 인류학적 전통 안에서 말하는 문화와 관련이 깊다. 사실 ‘여가(loisir)’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도 있었다. 하지 만 당시 사회학자들은 이렇게 훌륭한 단어의 사용을 장려하지 않았으 니, 이는 분명 이 단어가 ‘진지하지 않음’, ‘그다지 중요하지 않음’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사실 어느 학자가 여가의 전문가 라 불리기 원했겠는가? 이러한 상황 속에서 결국 ‘문화’란 단어가 채택 되어 사용되었는데, 정작 이 단어로 혼란에 빠지는 것은 바로 우리다.
viii) 팔레오텔레비전은 1980년대의 탈규제화 이전, 공영방송이 번성하던 시기의 텔레비
전을 지칭한다. 에코는 이 시기를 두고 ‘텔레비전의 황금기’라 표현하기도 했다. 네오텔레 비전이란 탈규제화 이후, 즉 상업성을 중심으로 텔레비전이 발전해 가고 공영방송이 쇠퇴 해 가는 시기의 텔레비전을 지칭한다-옮긴이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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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이 책에서 말하는 문화는 무엇을 뜻하는가? 우선 이는 상징 성을 띤 콘텐츠라 할 수 있고, 몇 백만 명의 유럽인들이 매일 접하는 문 화 체제라 할 수 있는 텔레비전 프로그램들을 의미한다. 그런데 프로그 램들의 수는 많고 이들에 관한, 또는 이들을 시대별로 분석한 연구서의 수는 매우 적은 상황에서 텔레비전 프로그램들의 역사는 과연 어떻게 써야 할까?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여러 나라의 프로그램들 중에서 적절한 표본을 뽑아 그 영상을 다 본다는 것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한데 어떻게 그 역사를 쓸 수 있을까? 텔레비전 역사학자나 각국의 텔레비전 역사를 비교하는 연구자들은 혹시 보지도 않은 영화와 읽지도 않은 책 에 대해 글을 쓰는 연구자들처럼 그들의 연구를 행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에 대해 이중적인 대답이 가능하다. 우선 프로그램이라는 단어 를 살펴보자. 역사학자에게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분석한다는 것은 곧 프로그램의 텍스트(texte)ix)와 콘텍스트(context)를 함께 살펴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콘텍스트라? 우리는 이를 즉각적으로 사회적 콘텍스트 와 연결시켜 생각하곤 한다. 그런데 공동 텍스트(co-text)라는 것도 존 재한다. 이는 프로그램이 삽입되는 텔레비전의 전체적 텍스트를 말한 다. 콘텍스트는 수용자와만 관련되어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한 ‘프로 그램’은 대개 프로그램들이 순서에 맞춰 차례로 늘어선 그 가운데에 놓 이게 되고, 일정한 시간대에 편성된다. 우리는 방송 프로그램을 프로그 램의 ‘틀’이자 반복성과 상호 교체라는 특징을 지닌 편성표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잠시 여기서 한 가지를 지적하고 넘어가자면, 프로그 램(programme)이란 단어는 본래 방송된 것(émission)의 집합을 나타 내는 용어이고, ‘방송(émission)’이란 기술적 용어는 각각의 구분된 텔
ix) 프로그램의 내부적 특징들, 편집, 형식, 무대 장치 등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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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전 ‘텍스트’, 즉 개별 프로그램을 가리키는 데 쓰인다. 이 책에서는 프로그램(programme)이란 단어를 개별 프로그램을 나타내는 용어 (émission)와 별다른 구분 없이 사용하고자 한다. 자, 이렇게 (프로그 램, 더 자세히 말해 특정 개별 방송 프로그램을 가리키는) 텔레비전 텍 스트와 공동 텍스트, 즉 (1960년대 프랑스에서는 프로그램 표라고 불 린) 편성표(grille)에 대해 언급해 보았다. 그런데 편성표라고 하는 것이 맞을까, 편성표들이란 복수를 쓰는 것이 맞을까? 텔레비전 공동 텍스트 는 과거의 단일 편성표에서 여러 개의 경쟁적인 편성표들로 변해 가면 서 점점 더 복잡해졌다. 현재, 방송 전문인이나 시청자들은 하나의 특 정 프로그램이 같은 시간대에 방송되는 경쟁 프로그램들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경쟁 프로그램이 등장하면서 원래의 프로그램은 그만의 아우라를 잃게 되었고, 예전만큼 매력적으 로 보이지 않는 원(原) 프로그램의 인기 진행자는 경쟁 프로그램을 모 방하느라 분주해지게 되었다. 경쟁적인 편성표들은 적어도 표면적으 로는 프로그램의 진화를 이끌어 내었다 할 수 있다. 자, 그리고 사회적 콘텍스트가 있다. 이는 무엇보다 수용자와 관련 지어 생각해야 한다. 수용자에 대한 자료를 충분하게 보유할 수 없었던 책 역사 연구자들은 오래전부터 작품 해독만으로 작품이 어떠한 방식 으로 이해되고, 판독되고, 감상되는지 알아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작 업인지를 알고 있었다. 반대로 텔레비전 학자들은 너무 많은 자료들을 가지고 있어서 어려움을 겪는다. 프로그램들에 대한 소개 자료, 비평, 각종 반응들, 코멘트, 시청자들의 편지 등이 넘쳐나고 있고, 현대사 연 구자들은 인터뷰 자료와 시청자들의 추억에 대한 자료들까지 제공하고 있다(Méadel & Mascolo, 1996). 이러한 자료들에 근거하여 어떠한 특 정 시대 수용자들의 사회적 공간을 재구성해 나갈 수 있기에 우리는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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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가 보지 못하는 프로그램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이 러한 방식은, 연구 대상이 품고 있는 추상적인 특징들을 읽어 내고 분석 하는 연구 방식이 기호학자들에게 유익했던 것만큼이나, 우리 역사가 들에게 유익한 연구 방법이 될 것이다. 최근의 연구 동향을 살펴보면 텍스트의 내적 분석, 공동 텍스트와 콘텍스트의 분석을 모두 함께 적용 하려고도 하는데, 이 과정에서 텔레비전 매체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를 도와줄 수 있는 새로운 실마리가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현재 이러한 복합적인 연구를 진행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겠다. 이 책에서 나는 프로 그램 텍스트를 직접적으로 연구한 이들의 연구 결과물보다 공동 텍스 트와 콘텍스트에 집중한 텔레비전 역사 연구자들의 연구 결과를 다루 면서, 그 역사를 좀 더 개괄적이고 간결한 관점으로 살펴볼 것이다. 많은 유럽 국가들은 활발한 연구 활동의 결과로 약 10여 년 전부터 자신들의 텔레비전 역사를 가지게 되었다. 이와 함께 텔레비전 프로그 램에 대한 여러 연구 관점들이 형성되었는데, 이들은 문서로 된 아카 이브를(때론 영상 아카이브까지) 근거로 해서 만들어진 연구 관점들 이었다.x) 이렇게 각 국가에서 텔레비전 역사에 대한 연구물들이 나오 면서 우리는 장르와 포맷, 프로그램의 기원, 텔레비전에 대한 논쟁들을 유럽 차원에서 비교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 한 나라별 연구의 비교는 우리에게 매우 유익한 사실을 알려 주었다. 각 나라에서 개별적으로 이루어졌던 자주적인 연구들, 토착적 문화에 대한 연구 분석이라 소개되어 오던 각각의 연구들이 각 시기마다 비슷한 내 용의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는 사실이다. 이 책의 연구 관점은 바로 이러
x) 이에 대한 예들은 Grasso(1992), Hickethier(1998), Jeanneney(2000), Palacio(2001)의
저서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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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실에서 출발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 방향에 초점을 맞춰 생각해 본다면 유럽 텔레비전은 아주 일찍부터 ‘초국경적인(transnational)’ 텔 레비전이었다 할 수 있다. 미국 오락 프로그램 포맷의 전파, 픽션물의 위기, 프로그램 진행자의 ‘스타화’에 대한 비난 등과 같은 현상들이 거의 같은 시기 유럽 각지에서 관찰되었던 것이다. 역사를 비교한다는 것은 하나의 통합된 역사를 만든다는 것이다. 이때 연구자는 국가적 범위의 적합성에 대해 의문을 가져야 하고 (Bourdon, 2008) 이러한 역사적 통합의 이유에 대해 스스로에게 질문 을 던져야 한다. (프로그램 내용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정치적, 규범적인 면과 관련된 선택인가, (방송인들 간의 만남이 프로그램 포맷 에 영향을 주는 것과 같은) 텔레비전 매체만이 지닌 특수한 요인들과 관계된 것인가, 아니면 (1960년대 말 사회적 관습으로부터의 해방운 동 또는 사회적 투쟁의 발전과 같은) 초국가적인 문화 동력과 관계된 것인가? 텍스트, 즉 프로그램의 ‘내부적’ 특징을 제외하고 공동 텍스트와 콘 텍스트만을 다룬다는 점에서 이 책은 텔레비전이 지닌 미학적 잠재성 에 주목하는 이들에게 실망을 안겨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텔레비전의 예술적 가치에 대한 논의는 하지 않겠다. 사실 텔레비전은 항상 새로운 형태의 예술과는 거리가 먼 매체였다. 인정할 것은 인정해 야 한다. 텔레비전은 문학이나 영화와 같은 부류의 매체가 아니다. 어 떤 이들은 극장 영화가 텔레비전을 통해 재방송되고 조금이라도 인기 있다 싶은 문학작품이 텔레비전 극작품으로 각색되는 것을 보며,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처럼 텔레비전이 고급문화의 “신성을 박탈하 고” 고급문화를 통속화시켰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이 의견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간에, 어쨌든 텔레비전을 탐미적으로 논하려던 시도는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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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로 끝났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Frodon, 2002).
프로그램에서 장르로의 발전
시학(poétique)과 영화 이론을 바탕으로 성립된 장르의 개념은 텔레비 전 이론(Feuer, 1987; Jost, 1997; Bourdon, 2000; Mittell, 2005)과 그 역 사를 세우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사회 분석에 사용되는 다른 개념들처럼 장르라는 개념 또한 (이론가의 입장을 중시한) 객관주의자 적 개념과 (방송인, 미디어, 대중이 어떻게 장르를 이용했는가를 중시 한) 주관주의자적 개념 사이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리 는 모습을 보여 준다. 나는 객관주의자적인 특징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 은 채 장르에 대한 주관주의자적 관점, 즉 사회가 장르를 어떻게 이용해 왔는가에 초점을 맞춰 이 글을 써 내려 가고자 한다. 이런 식으로 생각 한다면 우리는 각각의 장르가 제작과 수용, 이 두 단계에 동시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자신만의 사회적인 논리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 다.xi) 또한 각각의 장르는 자신만의 특수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도 생 각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역사란 바로 세계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국가 간 상호작용의 역사로, 이것이 바로 장르의 발전 방향을 결정해 왔 다. 어느 나라에서나 텔레비전 텍스트는 안정적인 틀을 바탕으로 발전 된 대분류·소분류의 분류 체계에 의해 구분되어 왔다. 이렇게 구분된 항목들, 즉 각각의 장르들은 픽션물과 다큐멘터리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새로운 장르인 토크쇼가 뉴스에 영향을 주듯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했다.
xi) 일부 프로그램 제작자들이 일부 장르만을 선호하고, 수용자, 즉 시청자들이 여러 장르
의 프로그램 중 특정 장르만을 선택하여 본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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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이후에 나오는 대부분의 챕터들은 카테고리화되어 있는 주요 텔레비전 장르들을 중심으로 정리되어 있다. 현재 텔레비전을 꽉 채우 고 있는 이들 주요 장르들은 ‘리얼리티쇼’를 제외하고는 모두 타 미디어 와 연관이 있고, 텔레비전이 영상으로 내보냈던 (연극이나 공연 예술과 같은) 다른 형태의 사회 활동과도 관계를 지니고 있다. ‘픽션물(fiction)’ 은 감독과 배우들이 방송될 목적으로 쓰인 시나리오에 따라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프로그램들이다. ‘픽션물’이란 단어는 비교적 최근에 사용 되기 시작한 용어로, 예전에는 ‘드라마’, ‘시리즈’, ‘연속극’ 등의 다양한 용어들이 이 프로그램들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다. 그러다 1980년대 들어 픽션물이라는 카테고리가 생기면서 유사 프로그램들이 모두 여기 에 포함된다. 픽션 장르는 문화와 국가 정체성에 대한 논쟁과 관련이 깊다. 이보다 훨씬 전에 등장했던 장르 용어인 ‘보도(information)’는 텔 레비전 뉴스와 매거진 프로그램을 가리킨다. 이 장르는 정치에 관한 논 의, 민주주의 사회 내에서 텔레비전의 역할에 대한 논의 등과 깊은 관련 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이는 기자라는 카테고리의 직업군에 의해 만들어 진 장르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매일, 주 1회, 월 1회 등의) 일 정한 리듬에 따라 보여 주는 임무를 수행한다. ‘오락(divertissement)’ 장르는 다른 카테고리의 방송 직업인들, 즉 제작자(producteur)와 진행 자가 만들어 낸 장르라 할 수 있다. 앞의 두 장르들처럼 미장센, 즉 연출 된 장면을 포함하고 있으나 이는 단지 프로그램에 초대된 유명인, 게임 프로그램에 참여한 지원자와 같은 참가자들과 진행자들 사이의 활발한 상호작용을 위해서이지 연출된 이야기를 풀어 나가거나 정보를 전달하 기 위해서는 아니다. 이 책에서 마지막으로 다루는 장르는 리얼리티 텔 레비전(télévision-réalité)이다. 이는 그 시조라 할 수 있는 전통적인 오락 프로그램 장르보다 훨씬 더 많은 논쟁을 일으켰고, 더 나아가 텔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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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의 역할에 대한 논의를 극단적으로 몰고 가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러한 장르의 역사 쓰기에 빠져 들기 앞서 우리 텔레비전 역사 연구가들은 다음을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장르라는 것이 결국 텔 레비전이라는 매체, 즉 이전의 장르들을 그저 흡수만 하는 상태에 머무 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독창적인 영상 법칙까지 만들어 낼 줄 알았던 텔레비전이라는 매체가 이루어 낸 성과라는 것을 말이다. 또한 텔레비 전 역사가들은 현재 유럽 국가들이 유럽 방송인들의 자존심이었던 공 영방송이라는 법적이자 정치적 이상의 실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프로그램 포맷들을 만들어 수출하고 있다는 사실에도 주목해야 한다. 아이러니한 상황 아닌가?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이는 미국에서 탄생한 리얼리티쇼가 ‘유럽화’, 즉 ‘유럽식으로 재탄생’하여 성공적으로 역수출 되고 있는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이 책의 순서는 우연히 정해진 것이 아니다. 사실 장르의 수많은 분 류는 초국가적인 텔레비전의 논리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기는 하나, 이 책에서 밝히고자 하는 각 나라 텔레비전들 간의 연속적인 상호 작용을 살피는 데에는 방해가 될 수도 있다. 그리하여 이 책은 우선 어 떠한 장르가 어떠한 시대에 가장 큰 상징성을 가지고 있었고 가장 중요 하게 여겨졌는가를 고려하여 챕터의 순서를 정하였다. 내가 보기에 초 기 텔레비전, 즉 국가가 독점하고 있던 공영 텔레비전의 목표를 가장 잘 보여 주었던 장르는 픽션물이다. 이후 텔레비전은 강한 정치성을 띠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텔레비전이 대중적으로 성공하는 데 기여하기도 했으나 공영방송의 입지를 약화시키는 데도 한몫하였으니, 그때까지 항상 첫 번째로 강조되던 보도의 임무가 얼마 가지 않아 문제시되기 시 작한다. 이후 아직 탈규제화와 민영 텔레비전의 등장이 이루어지지 않 은 상황에서 방송사의 내부 경쟁으로 공영방송 내 오락 프로그램의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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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가 높아졌고 이는 또 다른 도전으로 이어진다. 대중성과 문화적, 교 육적 임무를 연결시킨 프로그램을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던 것이다. 그 다음 나타난 오락 프로그램의 아주 독특한 형태, 즉 지배적인 민영 텔레 비전 논리의 힘을 상징하는 리얼리티쇼와 함께 이 글은 자연스럽게 마 무리된다. 리얼리티쇼, 이 장르는 과연 항상 비난을 받아왔지만 결국 세계 방송에 대해 주도권을 쥐게 된 미국 텔레비전이 만들어 낸 성공적 결과물일까?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최종 평가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이 책이 보여 주는 역사는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다. 이는 대중적으 로 인기 있던 프라임타임대의 프로그램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일부 장르들은 직접적으로 다뤄지지 않고 있거나, 언급되 었다 해도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다. 매거진 프로그램과 픽션물의 진화 를 다루면서 언급하는 다큐멘터리 장르가 바로 그 예다. 뉴스와 매거진 프로그램 속의 주요 카테고리로 자리 잡은 스포츠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고 있으니, 이는 매우 특수한 분야와의 상호작용에 대한 이해를 필요 로 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 보면 다른 허점들도 눈에 띌 것이다. 보충 해야 할 것이 아직 많이 남아 있으나, 그래도 우리는 이 책이 미래의 역 사가들에게 일종의 가이드 역할을 해 주고, 연구자에게 일련의 질문 목 록을 제공해 주며, 동시에 유럽과 그 문화에 대한 어떠한 잠정적인 결론 을 제시해 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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