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적절치않은생각들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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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적절치 않은 생각들: 혁명과 문화. 1917년 소고


1. 혁명과 문화

군주정이 펼치고 있는 여러 가지 국내 정치 활동을 살펴보면 사 고하는 인간의 질적·양적 발전을 전면적으로 억제하려는 관료 주의의 특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구정권은 무능하다. 그러나 자기보호 본능에 따라 구정권은 인간의 지성이 가장 위험한 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구정권은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러시아 지식 세력 의 성장을 억압하거나 왜곡하려 노력했다. 관료주의의 노예가 된 교회와, 최근 사회에 대한 폭력을 철저하게 수동적으로 받아 들이며 심리적으로 동요하고 있는 러시아 사회 역시 이런 파렴 치한 활동을 도왔다. 이런 상황에서 전쟁은 오랜 기간 동안 정신을 억압한 결과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다. 러시아는 문화적이고 훌륭하게 조직 화된 적들 앞에 무기력하고 무방비한 상태로 노출되었다. ‘러시 아는 진정한 문화의 정신으로 위선적인 문명의 억압으로부터 유럽을 해방시키기 위해 일어났다’고 외치던 사람들, 이 불행한 사람들은 당황해 입을 다물어 버렸다. ‘진정한 문화의 정신’은 무지와 혐오스러운 이기주의, 추악한 게으름과 무관심으로 판 명되었다. 풍부한 자원과 재능을 소유한 러시아의 정신적 황폐함, 문화 전반에서의 절대적 무정부 상태가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었다. 27


산업과 기계는 원시적인 상태로 비과학적으로 운영되고 있으 며, 과학은 어딘가 어두컴컴한 한구석에 놓여 있거나 관리의 적 대적인 감시 아래 놓여 있다. 검열에 의해 제한받고 왜곡된 예 술은 여론과 유리되어 인간의 생명력, 활기, 품격을 높여 주는 내용을 무시하고 단지 새로운 형식 추구에 몰두하고 있다. 인간의 내면과 외부 도처에는 공허함과 불안, 혼란과 기나긴 전투의 흔적이 도사리고 있다. 군주정이 혁명에 남겨 준 유산은 소름 끼칠 정도다. 가혹한 현실은 위로의 말조차 용납하지 않으며 진실을 말하 도록 강요한다. 러시아를 정신적으로 황폐화시키려는 군주정 은 놀라울 정도로 자신의 목적을 달성했다. 혁명은 그런 군주정을 전복시켰다! 그러나 어쩌면 혁명은 단 지 외형적인 피부병만을 치유한 것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혁명 이 정신적으로 러시아를 치유했거나 풍요롭게 했다고 속단해서 는 안 된다. “사소한 병이 중병이 된다”는 현명한 속담이 있다. 지적으로 풍요로워지는 과정은 아주 완만하게 이루어진다. 그 러나 이 과정은 우리에게 필수 불가결한 것이며, 혁명은 그 지 도자와 함께 즉각적으로 국가의 지식 세력을 발전시키기 위한 여건과 기관, 단체를 만들어야 한다. 지식 세력은 질적으로 가장 최상의 생산 세력이며, 모든 계 급은 지식 세력의 조속한 성장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는 전면적인 문화 발전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혁명은 자유로운 창조를 방해하는 장애물을 제거했으므로, 이제 우리 28


는 우리의 재능과 천재성을 우리 자신과 전 세계에 유감없이 보 여 주어야 한다. 우리의 구원은 노동에 있으며, 우리는 노동 속 에서 즐거움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세계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창조되었다.” 너무나 멋진 말 이며, 불변의 진리다.

<새생활> No. 1, 1917. 4. 18 (5. 1)1)

1) (옮긴이 주) 러시아는 1917년 10월 사회주의혁명 이전에는 율리우스력을 사용 했고, 혁명 이후에는 그레고리력을 사용하고 있다. 두 역법 사이에는 13일의 차이 가 있어 율리우스력으로 10월 사회주의혁명은 그레고리력으로는 11월이 된다. 이 작품에서는 율리우스력과 그레고리력을 모두 표시하고 있는데 1918년 1월까지는 율리우스력을 앞에, 괄호 안에는 그레고리력을, 그레고리력이 공식적으로 사용되 는 1918년 2월 이후에는 그레고리력을 앞에, 괄호 안에는 율리우스력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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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살인에 대해

새로이 탄생한 우리의 자유는 피로 얼룩져 있다. 누가 사흘 동안이나 넵스키 거리2)에서 사람들을 살해했는 지 모르나, 그 인물이 누구건 간에 그들은 악의에 찬 우둔한 사 람들이며, 썩어 빠진 구제도의 악습에 물들어 있는 사람들이다. 공정하게 논쟁하고, 서로 다른 의견을 발표할 수 있는 기회 를 갖게 된 지금, 우리가 서로를 살해하는 행위는 치욕스럽고 혐오스러운 일이다.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자유인이 라고 느끼지도, 인식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이다. 살인과 폭력은 폭정과 무능력의 증거일 뿐이다. 타인의 의지를 탄압하고, 인간 을 살해하는 방법으로 사상을 말살시키거나 사상의 오류와 의 견의 실수를 증명하지는 못한다. 위대한 자유는 개인을 탄압하는 범죄로 얼룩져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는 자신의 손으로 자유를 파괴할 것이다. 자유와 권리의 가장 무서운 적은 바로 우리 내부에 있다. 바 로 우리들의 우둔함과 잔인함이며, 군주정의 폭정과 잔인함이 우리 마음속에 심어 준 어두운 무정부성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가?

2) 1917년 4월 21일 페테르부르크의 넵스키 거리에서 임시정부에 반대하는 노동자 시위대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노동자 세 명이 살해당했으며 여섯 명이 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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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 능력을 갖고 있지 않고, 인간에 대한 잔인한 폭력 을 거부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자유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단순한 말 같지만, 행동으로 옮기기 어려운 말이다. 다 시 말하지만, 우리의 근본적인 적은 바로 우리 자신의 우둔함과 잔인함이다. 과연 우리는 이를 근절할 수 있으며, 시도라도 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미사여구가 아니다. 우리가 새로운 정치 여건과 세계 속에서 인간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얼마나 깊이 있 게, 진실하게 이해했는가에 대한 심오한 질문이다. 이제 우리 자신에게 살인에 대한 경멸과 혐오감을 길러야 할 때다. 어쩌면 우리는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또 다시 무기를 들 지도 모른다. 그러나 4월 21일에 보았던 위협적인 기관총들은 우스꽝스러웠으며,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유아적 성 격을 띠고 있었다. 그렇다. 자유로운 인간을 죽이기 위한 폭력의 행사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 총살당한 암 울했던 과거에 대한 기억이, 우리들에게 강압적으로 인간의 생 명을 빼앗는 사형집행인에 대한 무관심을 심어 주었는가? 총, 검, 주먹질로 무언가를 증명하려 하는 사람들을 비난할 만한 적절한 말조차 생각나지 않는다. 이런 행위에 반해서 우리 는 저항하지 않았는가? 이런 방법으로 우리의 자유는 탄압 받았 고, 우리는 노예상태로 전락하지 않았던가? 자, 외적인 노예상태에서 벗어난 우리는 아직 내적인 노예상 31


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가장 무서운 적은 바로 우리의 과거다. 여러분! 과연 우리는 과거의 악습과 잔재에서 벗어날 수 없 으며, 그 파렴치함을 잊을 수 없는가? 우리는 자신에 대해 더 성 숙하고, 깊이 있고, 사려 깊은 생각을 해야 한다.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힘을 아끼고, 순간의 감정에 빠져 분 열되지 말고, 다 같이 에너지를 결집해야 한다.

<새생활> No. 5, 1917. 4. 23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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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논쟁에 대해

몇몇 저널리스트들은 차르 정부 시대에 형성된 진부한 과거의 논쟁 방법을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맘에 들지 않는 사람의 머리를 한 방 때리든지, 옆구리나 갈비뼈에 가혹한 펀치를 가하고 있다. 물론 신문 지상은 구태의연하게 조용히 논쟁할 장소는 아니 다. 그렇지만 자유 언론은 개인에 대한 존경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만일 누군가를 공격할 필요가 있을 때는 그를 비난하거 나 비방할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을 때 해야 한다. 상대가 다른 사상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사상 투쟁에서 반드 시 그를 매도할 필요는 없다. 나는 논쟁에 있어 개인에 대한 인신 공격을 단호하게 반대하는 바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인신공격 을 허용했다는 점에서는 나 역시 잘못이 있음을 시인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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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3)지는 내가 <빛>지에서 <새생활>지로 활동 무 대를 옮긴 것을 이상하게 여기고 있다. 나는 이에 대해 해명할

3) (옮긴이 주) <말>: 1906년부터 1917년까지 페테르부르크에서 발행된 입헌민 주당의 중앙 기관지다. 게센과 밀류코프가 실질적인 편집장이었으며, 1917년 10 월 혁명 이후 폐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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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는 베르나츠키, 비노그라도프4) 등 오래전부터 존경 해 오던 다른 인사들과 함께 <빛>지를 창간하려고 했다.5) <빛>지는 급진적 민주주의당의 기관지로 계획되었다. 나 는 <빛>지가 러시아에 필요하며, 또한 우향적인 입헌민주당 원들과 좌향적인 사회주의자들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는 모든 사 람들을 흡수해야 한다고 확신하며 정당 창설 위원회에서 활동 했다. 이미 1910년부터 나는 그런 정당의 창설에 대해 생각해 왔다. 이후 이 문제에 대해 나는 게오르기 발렌티노비치 플레하 노프6)와 의견을 나누었다. 그는 이 제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 였으며, 그런 정당의 창설이 필요하다고 인정했다.

4) (옮긴이 주) 폴 가브릴로비치 비노그라도프(1854∼1925): 러시아 태생의 영국 중세사가였다. 5) <빛>지는 유명한 자유주의적 성향의 교수들을 포함한 급진적 민주주의당의 기관지로써 1917년 초에 창간될 예정이었다. 고리키는 <빛>지의 문학 파트를 담당하려 했으나, 결국 <빛>지는 창간되지 않았다. 6) (옮긴이 주) 게오르기 발렌티노비치 플레하노프(1856∼1918): 러시아의 정치 가, 철학가이며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의 아버지로 평가받고 있다. 1875년부터 인 민주의자로 활동했으며, 인민주의자 단체 ‘토지와 의지’, ‘흑토 재분배’의 지도자였 다. 1880년 스위스로 망명한 그는 1883년 자술리치, 악셀로트, 데이치 등과 함께 러시아 최초의 국외 마르크스주의자 단체 ‘노동자 해방’ 그룹을 조직했다. 1898년 창설된 러시아 최초의 마르크스주의자 정당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창설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혁명이란 산업 발전의 산물이며, 혁명의 성패는 객관적인 경 제 여건에 달려 있다고 보고, 부르주아 민주주의혁명을 거쳐 사회주의혁명이 완성 된다고 생각했다. 1903년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제2차 당대회 이후 멘셰비키로 활동했다. 저서로는 ≪사회주의와 정치투쟁≫, ≪우리들의 불일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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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지의 창설을 준비하면서 나는 의식적으로 자중했고, 필요한 경우에는 자신을 억제하기도 했다. 나 자신에 대한 그런 억제를 나는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바로 당사자만 고통을 받기 때문이다. 내가 존경하는 <빛>지의 인사들 중 몇몇 사람 역시 스스 로를 위해 자중이 필요하다고 인정했다. <빛>지는 모종의 복잡하고 보이지 않는 문제들 때문에 발 간되지 못했다. 우리의 입헌주의자들조차 공화주의자들로 변 신하고, 광범위한 민주주의 대중이 노동자계급을 따르고 있는 상황으로 말미암아 나는 급진적 민주주의당의 창설이 이미 불 필요하다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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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마니아들은 나의 그런 ‘유연한’−물론 그들은 다른 말로 표현하겠지만−태도 변화에 대해 혹평을 가할지도 모른 다. 천성적으로 인색하지 않은 나는 그들에게 나를 비방할 구실 을 더 주고자 한다. 내 견해로는 인간은 자신이 하는 일이 본인 의 신념에 어긋날지라도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선한 일과 필요 한 일을 해야 한다. 오래전부터 나는 대부분의 국민이 수다쟁이 이고 한량인 나라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사람 들의 행위 능력을 일깨우는 데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이미 17년 동안 나는 자신이 사회민주주의자라고 생각했다. 35


그래서 어떤 어려운 일도 꺼리지 않으며 여력이 닿는 한 사회민 주주의당의 위대한 과업에 봉사했고, 다른 당에 봉사하는 것도 거부하지 않았다. 자신이 믿는 신념에 짓눌려 경직되고 완고해 진 사람들은 언제나 나의 호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이론적 으로 나는 그들의 단호한 확고함에 경탄하기도 하나 그들을 사 랑할 수는 없다. 한 가지 더 말한다면 나는 모든 분야에서 자신을 이단자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나의 정치적 견해에는 많은 모순이 있을 것이 다. 그러나 나는 그 모순을 제거할 수도 없으며, 제거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왜냐하면 내 영혼의 조화와 정신적 안정과 평안을 구하기 위해 활기차면서도 죄 많으며 불쌍한 러시아인을 고통 스러울 정도로 열렬히 사랑하는 나의 영혼을 없애야 하기 때문 이다. 이 고백으로 인해 나는 마니아들이 나를 혹독하게 비판할 만한 많은 근거를 제공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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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의 과제>에서 일하는 이바노프ᐨ라줌니크 씨는 독일 학자들에게 보내는 호소문에 서명했다고 나를 비난하고 있다.7) 나는 이 호소문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 호소문을 읽었는

7)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관련해 ‘문명화된 전 세계에 보내는’ 러시아 문화 활동 가들의 호소문은, 전쟁을 도발한 독일 정부에 협조한 독일 학자들을 비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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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호소문 밑에 나 자신도 모르는 내 서 명이 있다는 사실은 러시아 생활 속에 무수히 존재하는 인간에 대한 전횡을 보여 주는 수많은 경우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러 나 나는 자신을 변호하고 싶지도 않고, 그 누구를 비난하고 싶 지도 않다. 과학자들이 내분과 무의미한 전쟁에 참여하는 것을 반대하는 호소문이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 호소문에 사인할 것 이다. 과학이 유혈로 가득 찬 정치에 관여하게 되면, 인류의 훌 륭한 사상과 희망은 고통 받고 전 세계의 이성은 파괴된다. 결코 실수하지 않고,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으며, 모범 적으로 처신하는 사람들 앞에 나는 존경과 찬사를 보낸다. 그대들의 이름이여, 영원히 거룩하게 빛나라!

<새생활> No. 6, 1917. 4. 25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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