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은광
대한민국, 서울, 학이시습,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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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만나는 프레이리
홍은광 선생은 현장에서 발로 뛰며 행동하는 사회운동가다. 미시적으 로는 마을의 구체적 삶의 현장이 지니고 있는 문제를, 거시적으로는 사회 전체가 지니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해결하기 위 해 끊임없이 사람들을 만나고, 귀 기울여 듣고, 공감하고, 대화한다. 많은 사람들이 홍은광을 성원하고, 그에 대한 기대를 키우는 이유다. 그와 나는 사제관계다. 서울대학교에서 교육학을 공부하면서 인 연을 맺었다. 그는 비판교육론에 큰 관심을 기울였는데, 대학원 과정 을 공부하는 동안에 이론에 매몰되지 않고 항상 실천적 과제에 주목하 면서, 여러 교육운동 현장지도자들과 교류하고 선후배들과 함께 ‘프 락시스’ 모임을 키우는 데도 열중했다. 그는 정직하게 살아도 손해 보지 않는 사회, 경쟁보다 상생을 추 구하는 사회, 소수가 만들어가는 사회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만들어 가는 사회,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사회를 꿈꾸며, 그 꿈은 반드시 이루어 진다고 믿는다. 프레이리 교육론에 대한 연구는 그의 이러한 사회관 을 실현시켜가는 노정의 한 부분이다. 프레이리 교육론을 공부했지 만, 그렇다고 해서 프레이리에 빠져서는 안 되고, 더욱이 프레이리주
추천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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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는 잘 안다. 프레이리도 여러 교육 사상가 중 한 사람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프레이리는 세계적으로, 그리고 한국 교육운동에 많은 영향을 끼쳤고 공헌한 것은 분명하다. 이 책은 프레이리의 교육 론이 한국 교육운동 현장에서 어떻게 해석되었고, 어떤 영향을 끼쳤 는가를 보여준다. 그리고 현재와 미래의 한국 교육운동에 여전히 유 효한 프레이리의 철학과 방법이 무엇인가를 드러내려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프레이리 교육론에 대한 논의의 지평을 넓히고, 아울러 한 국 미래 교육운동의 과제를 가늠하고 있다. 홍은광은 프레이리를 새 롭게 만나는 기회를 우리에게 마련한 것이다. 좋은 책의 출판을 축하 한다.
2010. 2.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전 교육부총리 김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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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내며
‘우리는 어떤 교육을 하고자 하는가?’ 필자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 하고 싶었다. 그래서 프레이리의 교육사상을 연구했고, 그의 사상과 실천이 한국 교육운동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분석해 보고자 했 다. 이것이 이 책이 나오게 된 이유다. 물론 이 책이 그 질문에 직접적 인 답을 주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교육운동이 어떻게 지난 시 절을 겪어왔고, 그래서 어디서부터 출발점을 다시 찾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서 오늘날의 ‘진보적 (혹은 비판적) 교육론의 이념 부재 시대에 ’ 새로운 교육론을 정립하기 위한 단초가 마련될 수 있기를 바란다. 7년 전 석사 학위논문을 다시 꺼내 들어 출판을 결심하게 되었다. 언젠가는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이다. 물론 출판까지 할 만큼 내용이 있 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구심이 들지만, 그래도 보다 많은 사람들 과 프레이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기회를 만든다는 의미에서 부족한 책을 출판하기로 결심했다. 지금은 진보적 교육론의 ‘이념 부재의 시대임이 ’ 분명하다. 1980 년대의 의식화 교육론은 1990년대 중반 신자유주의적 교육론에 해체 당했고, 1990년대 후반의 이념적 혼란기를 거쳐 2000년대에는 진보적 교육론의 이념 부재의 시대가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여 전히 프레이리뿐만 아니라 진보적 교육론을 정립하기 위한 시도가 계
책을 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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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교육문화연구회’에서 지속적으로 프레 이리의 저술을 번역, 발간해 왔고, 연구 활동도 계속하고 있다. 지금은 활동이 중단되었지만, 서울대학교 대학원 평생교육 전공 내 학습 모 임인 ‘프락시스(Praxis)’에서도 진보적 교육론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 었다. 필자가 몸담았던 진보교육연구소에서도 최근 비고츠키 교육론 을 재조명하면서 진보적 교육론을 재정립하기 위한 시도를 지속하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시도와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출판을 하게 되면서 이 책이 만들어지기까지 도움을 주신 수많은 분들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그분들 모두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싶다. 대학원에서 학문적 고민거리를 늘 던져주시며 자상하게 지도해 주셨던 김신일, 한숭희 교수님, 함께 비판교육론을 공부했던 프락시스 선후배님들에게 감사드린다. 특히 김신일 선생님의 논문 지 도가 없었다면 이 책은 출판되지 못했을 것이다. 선생님께서는 권위 를 앞세우지 않고 늘 제자들과 토론하고, 제자들의 의견을 존중해 주 셨다. 필자를 진보교육연구소로 이끌어주었던 천보선, 김학한 선생 님, 함께 공부하고 고민했던 손지희, 박영진, 최문경, 강신현, 손권봉 등 수많은 진보교육연구소 연구원들의 동행도 이 책을 쓰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논문을 쓰기 위한 면담에 흔쾌히 함께해 준 허병섭, 김상복, 박성 희, 박혜경, 신호승, 심성보, 이장원, 임재연, 천성호 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특히 병상에 계신 허병섭 목사님이 빨리 건강해지시길 기도한다. 최근 천성호 님의 한국야학운동사 의 출판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존경과 감사를 표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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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출판될 수 있게 도와준 학이시습 출판사의 김영희 편집 장에게도 감사드린다. 부족한 이 책을 읽어주시고 서평 쓰기를 마다 하지 않으신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와 심상정 전 대표, 최순영 민주노 동당 최고위원, 이재을 낙성대동 성당 주임 신부님, 이봉화 진보신당 관악지역정책 연구소 소장님께도 깊이 감사드린다. 지금 이 순간에서도 고민되는 것은 ‘우리의 가능성의 언어다 ’ .프 레이리가 비판과 분석을 넘어 새로운 진보적 교육론을 정립해 나갔듯 이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현실에서 시작하는 새로운 ‘우리의 참교육’ 의 이론과 실천을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 아주 조금의 역 할이라도 해낼 수 있기를 바라며 부끄러운 이 책을 세상에 내놓는다.
2010. 2. 홍은광
책을 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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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파울로 프레이리인가?
대부분 사람들에게 파울로 프레이리는 페다고지(Pedagogy of the oppressed) 라는 책을 쓴 브라질의 민중교육학자로 기억되어 있을 것이다. 그만큼 그의 사상은 페다고지 라는 그의 역작으로 대표되어 왔다. 한국에서 페다고지 는 1980년대 이후 대학가의 학습 필독서로 읽혀왔고, 교육운동 현장에서는 그의 방법론을 구체적으로 적용하고 자 하는 시도가 전개되어왔다. ‘프락시스’, ‘문제 제기식 교육’, ‘의식화 교육’, ‘대화’ 등 그의 교육론의 핵심적 개념들은 모두 1980년대 교육운 동의 핵심 고민을 아우르는 개념이었다. 물론 교육운동이 침체되고 비판적 민중교육 실천이 사라지면서 프레이리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프레 이리는 ‘보다 인간적이고 진보적인 교육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 대한 근본적 물음을 여전히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특히 그의 사후 신자유 주의적 교육 재편이 가속화되어 교육이 파탄 지경에 이른 교육 현실에 서, 그가 마지막까지 신자유주의에 대항해 지켜내고자 했던 해방교육 의 참의미를 함께 나누면서 현재 한국 교육의 현실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프레이리 사상은 1970년 미국에서 페다고지: 억압받는 자를 위 한 교육학 이 발간된 이후 세계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프레이리 의 페다고지 가 발간된 이후 프레이리 사상은 남미에서뿐 아니라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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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1
제3세계 비판교육이론의 한국 번역서 소개 연도와 출판사(2000년대 이전까지)
연도
저자
서명(원저명)
출판사
1979
프레이리
페다고지(Pedagogy of the Oppressed)
한국천주교평신도 사도직협의회
1979
프레이리
페다고지(Pedagogy of the Oppressed))
분도출판사
1979
프레이리, 일리치, 라이머, 워렌
민중교육론: 제3세계의 시각(Cultural Action for Freedom, Deschooling Society, School is Dead, Education for Justice)
한길사
1979
프레이리
1979
라이머
학교는 죽었다(School is Dead)
한마당
1980
카노이
교육과 문화적 식민주의(Education as Cultural Imperialism)
한길사
1984
엘리아스
의식화와 탈학교(Conscientization and Deschooling)
사계절
1984
워렌
정의를 위한 교육(Education for Justice)
현대사상사
1986
프레이리
페다고지(Pedagogy of the Oppressed)
광주
1986
프레이리
실천교육학(The Politics of Education)
1986
프레이리
교육과 정치의식(The Politics of Education)
1986
프레이리
교육과 의식화(Education for Critical Consciousness)
1988
프레이리 & 벳토
인생이 학교다(Essa Escola Chamada Vida)
분도출판사
1988
프레이리 & 쇼어
해방을꿈꾸는교육(A Pedagogy for Liberation)
이웃
1995
프레이리
교육과 의식화(Education for Critical Consciousness)
페다고지(Pedagogy of the Oppressed)
새밭
실천교육 학민사 중원문화
한마당
미,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페다고지 는 출 간 이후 수많은 진보적 교육학자, 교육 실천가들에게 ‘자유를 위한 해 방교육의 지침서로서 ’ 연구, 실천되어왔다.
왜 파울로 프레이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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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경우, 당시 미국에서 유학 중이던 선교사 가운데 해방신 학을 받아들였던 신학자들이 주축이 되어 프레이리 사상을 소개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민중신학자였던 문동환은 1970대년 초반 한국신학 대학교 교수직의 안식년을 맞아, 미국 뉴욕의 유니언신학대학원에서 1년을 지내면서 해방신학과 함께 그 사상의 맥을 같이하는 프레이리 의 교육론을 접했다(황미숙, 2000). 그리고 1971년 ≪세계와 선교≫ 에 프레이리 사상을 소개했다. 1979년 ‘한국천주교평신도사도직협의회가 ’ 페다고지 를 비밀 리에 펴내고, 같은 해 ‘새밭출판사에서 ’ 교육과 의식화 를 번역 출판 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프레이리 사상이 소개되었다(표 1 참조). 이때부터 기독교 야학·빈민운동에서 프레이리 교육사상의 영 향력이 점차 확장되어 1980년대 초·중반에는 야학운동과 빈민운동 의 기본적인 방향과 원리, 의식화론, 야학 교사의 기본자세에 대한 세 미나와 교육 자료로 널리 사용되었다(기독교야학연합회, 1985). 이후 야학운동의 주도 세력이었던 기독교 학생운동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프레이리 교육사상이 대학에 소개되어 1980년대 초반부터는 대부분 의 학생들이 학생운동의 입문 교재로 당시 금서(禁書)였던 페다고지 를 읽었으며, 이러한 흐름은 199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다. 이뿐 아니라 프레이리 교육사상은 교사교육운동에도 영향을 미 쳤다. 프레이리는 학교가 지배 이데올로기의 전파기구 역할을 한다고 비판했으며, 그의 실천은 비제도적 성인 문해교육에 중심을 두고 있 었다. 기존의 학교교육에 대한 프레이리의 비판은 이전까지 의문시되 지 않았던 한국 학교교육의 이론과 실제에 대해 비판적으로 검토할 계 기를 마련했고, 나아가 교사교육운동의 이념적 지향의 토대로서 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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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성낙돈, 1991). 일례로, 1985년 좌경·용공 시비로 폐간된, 교사 를 주 독자층으로 하는 무크지인 ≪민중교육≫ 1권에는 ‘민중야학’ 활 동에 대한 소개가 있으며, 1988년에 재간된 ≪민중교육≫ 2권에서는 민중교육운동의 전망(이은숙, 1985)에 대한 내용과 프레이리 저작에 대한 번역 글이 실린 바 있다. 1980년대 교사교육운동의 촉발이 된 ‘교 육 민주화운동의 ’ 이념적 모태가 야학운동에 있었다는 점에서 프레이 리 교육사상이 야학운동을 통해서 교사교육운동에까지 영향을 미쳤 다는 것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노동교육운동에서 프레이리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많지 않다. 그러나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중반의 기독교 교육운동, 노동야학 이 1980년대 후반의 노동운동의 중요한 기반으로 작용했다는 점, 그 리고 노동교육운동 스스로가 자신을 전체 한국 민중교육운동과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프레이리 교육사상을 직· 간접적으로 받아들였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프레이리 교육사상은 1970년대 중반 이후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한국의 민중신학, 기독교 교육운동, 야학운동, 학생운동, 교 사운동, 노동운동 등에 광범위한 영향을 주었다. 한국에서의 프레이 리 교육사상은 1970년대 초반에 유입, 소개되기 시작해 1979년을 기 점으로 대중적으로 소개되어 1980년대 후반까지 민중운동, 민중교육 운동의 주요 의식화 교재로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제 한적이지만 ‘민주주의의 확대와 ’ ‘민중운동의 침체라는 ’ 사회적 변화 와 함께 프레이리에 대한 관심 또한 줄어들었다. 이러한 경향은 프레 이리 교육사상이 실천 진영과 매우 깊은 연관을 맺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왜 파울로 프레이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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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필자는 프레이리 교육사상이 지금과 같이 단지 과거의 것 으로 치부되는 것에 대해서 깊은 안타까움을 느낀다. 외국의 경우 여 전히 프레이리 교육사상이 ‘비판교육학(critical pedagogy)’이라는 이 름으로 중요한 사상적 기반으로 여겨지며, 새로운 방향과 과제를 정 립하는 기본 원칙으로 계속해서 탐구되고 실천되고 있다. 그러나 이 에 비한다면, 한국에서 프레이리 교육사상은 1970년대 중·후반 급격 하게 받아들여졌으나,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후반까지 또한 급격 하게 그 관심이 멀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신자유주의적 교육 재편이 본격화되면서 ‘다 양화로 ’ 포장된 ‘파편화’, ‘자율로 ’ 포장된 ‘시장주의적 교육 재편이 ’ 광 폭하게 진행되는 현실에서 프레이리의 통찰력은 진정한 인간화 교육 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다시금 던져준다. 특히 프레이리 가 그의 인생 마지막 순간에 이 문제에 대한 통찰에 집중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필자는 프레이리 교육사상에 대한 전체 적이고 체계적인 소개, 한국 민중교육운동에서의 프레이리 교육사상 의 영향에 대한 분석, 억압적 교육과 신자유주의적 교육에 대해서 모 두 저항하고자 했던 그의 사상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오늘날 한국 교 육에서 프레이리 교육사상이 주는 시사점을 고민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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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추천의 글 | 새로 만나는 프레이리 v 책을 내며 vii
왜 파울로 프레이리인가? x
1
파울로 프레이리 교육사상의 배경
실천하는 지식인으로서의 삶 1
1
저발전, 비문해의 남미 상황 13 사상사적 배경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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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로 프레이리의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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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론과 지식론-‘앎’의 관계를 탐구하는 끊임없는 실천 38 교육사상-‘대화’를 통한 새로운 관계 맺기 44 사회사상-‘앎’, ‘대화’, ‘혁명’은 같은 것 50 프레이리 교육사상에 대한 비판과 검토 54
3
한국 민중교육운동의 전개
73
‘민중’ 개념과 1970∼1980년대 민중론의 전개 73 ‘민중교육’ 개념과 주요 특성 88
한국 민중교육운동의 역사적 전개 98
4
파울로 프레이리, 한국 교육을 만나다
프레이리 사상의 소개와 유입(1979년 이전까지) 154
154
한국 민중교육운동의 상황과 프레이리 교육사상 167
한국 민중교육 실천과 프레이리 교육사상의 영향 215
5
파울로 프레이리와 한국 교육의 미래 참고문헌 260
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