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극영 동시선집
반달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은하수를 건너서 구름 나라로 구름 나라 지나선 어디로 가나 멀리서 반짝반짝 비추이는 건 샛별 등대란다 길을 찾아라
≪어린이≫ 2권 11호, 1924. 11
99
고기잡이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갈가나 고기를 잡으러 강으로 갈가나 이 병에 가득히 넣어 가지고서 라라라라 라라라 온다나
선생님 모시고 가고 싶지마는 하는 수 있나요 우리만 가야지 하는 수 있나요 우리만 가야지 라라라라 라라라 간다나
솨솨솨 쉬쉬쉬 고기를 몰아서 어여쁜 이 병에 가득히 차며는 선생님한테로 가지고 온다나 라라라라 라라라라 안녕
100
설날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곱고 고운 댕기도 내가 드리고 새로 사 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
우리 언니 저고리 노랑 저고리 우리 동생 저고리 색동저고리 아버지와 어머니 호사하시고 우리들의 절 받기 좋아하셔요
우리 집 뒤뜰에다 널을 놓고서 상 들이고 잣 까고 호도 까면서 언니하고 정답게 널을 뛰기가 나는 나는 좋아요 참말 좋아요
무서웠던 아버지 순해지시고
101
우리 우리 내 동생 울지 않아요 이 집 저 집 윷놀이 널뛰는 소리 나는 나는 설날이 참말 좋아요
≪어린이≫ 2권 1호, 1924. 1
102
꾀꼬리
꾀꼬리 꾀꼬리 귀연 꾀꼬리 버드나무 그늘에 가만히 앉아 오고가는 사람을 기웃거리며 나뭇잎 한들한들 흔들입니다
꾀꼬리 꾀꼬리 노랑 꾀꼬리 초록 봉투 가만히 떨어뜨리고 가지 가지 뛰어넘어 지껄이면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눈짓합니다
노르게 또 노르게 꾸민 꾀꼬리 앵도앵도 선물을 고운 선물을 한 개 두 개 색실에 꿰어 왔으니 고마운 노랑새야 물고 가거라
≪어린이≫ 3권 7호, 1925. 7
103
옥토끼 노래
먼 산에 옥토끼 흰 눈에 싸여서 지나간 봄철을 꿈꾸고 있고나 먼 산에 옥토끼 눈 베개 베고서 춥지도 않은지 잠자고 있구나
커다란 소나문 산병풍 두르고 바람을 안고서 춤추고 있는데 옥 도끼 금 도끼 어디다 버리고 토끼만 꿈꾼다 달나라 꿈꾼다
바위틈은 샘물 남몰래 숨어서 갈짓자 걸음에 니나나 나나나 재밌는 노래가 하늘에 찼건만 토끼는 모르고 코 골고 있고나
≪어린이≫ 5권 2호, 1927. 2
104
할아버지
할아버진 자꾸만 주무시나 봐 옆에서 떠들어도 모르시나 봐 엄마가 손을 대도 모르시나 봐 저녁 해가 마지막 서산 넘어갑니다
할아버진 자꾸만 주무시나 봐 아버지가 흔들어도 모르시나 봐 사람들이 수성대도* 모르시나 봐 긴 바람에 까마귀 떼 울며 자릴 뜹니다
1964. 3. 27
* 수성대다: 수군거리며 시끄럽게 자꾸 떠들다.
105
길 잃은 아기
엄마도 모르게 아기가 거리로 나왔습니다 전차에 버스에 택시에 겁 없이 아기가 길을 질러갑니다 저쪽에서 호각 소리 요란하게 나는데 아니 그래 엄마는 뭘 하고 계신가요
엄마도 모르게 아기가 함부로 쏘다닙니다 자갈에 진흙에 빗나가 헛딛고 아기가 크게 울었습니다 골목에서 낯선 사람 불같이 닥치는데 아니 그래 엄마는 뭘 하고 계신가요
1964. 4. 6
106
별
하늘 위에 사는 별 바람을 쏘이며 구름 밖에 남는다
하늘 위에 사는 별 물소리 들으며 은하 가에 잠든다
한 잠 자고 나서 눈 비비고 두 잠 자고 나서 닭 소리 듣고
언제나 하늘 위에 사는 별 오늘 밤 또 쉬고 내일 다시 만나자
107
산 넘어 물 건너
산 넘어 저 마을엔 누가 사나 할아버지 할머니가 거기서 산다
물 건너 저 마을엔 누가 사나 아버지 어머니가 거기서 산다
할머니는 옛얘기가 일등 어머니는 새 노래가 일등 오늘은 어느 쪽을 내 먼저 갈까
108
소년 행진곡
샘물이 부른다 그 소리 들었니 연달아 시냇물 구슬 지어 나간다
강으로 바다로 나드는 물 앞당기며 우리 다같이 발소리 높이자 높이자
우리가 가는 곳 동이 터 오르고 우리가 멈출 때 강산이 열린다
배우고 익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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