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메리카치아빠스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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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idents of Travel in Central America, Chiapas and Yucatan 중앙아메리카 치아빠스와 유까딴 여행에서 있었던 일


출발: 벨리세(Belize)에서

바다에서 보이는 벨리세는 멋있다. 해변을 따라 가는 줄을 이루고 서 있는 하얀 집들과 그 사이사이에 우뚝 선 코코야 자나무 숲이 스티븐스와 캐서우드에게는 베네치아나 알렉 산드리아를 연상시켰다. 그러나 상륙하여 길에 들어서자 장 화 목까지 푹푹 빠지는 진흙탕 길에서 인간의 배설물 냄새 가 났다. 벨리세가 그 진면목을 드러낸 것이다. 가난하고 더 러운 열대 항구, 메소아메리카1)의 뒷문. 그러나 이것이 중 앙아메리카로 가는 문이었다. 캘리포니아는 아직 미국의 영 토가 아니었고, 멕시코 전체를 말로 달려 통과하지 않는 한 이 길이 유일한 통로였다. 항구의 거주민은 벨리세 강을 중 심으로 동서로 나뉘어 사는데, 주요 건물들은 서쪽에 있었 다. 서쪽에는 두 개의 큰 길이 있고, 멋대로 돌아다니는 돼 지들이 뚜껑을 덮지 않은 도랑에서 뒹굴고 있었다. 모든 집 들은 막대기 위에 세워졌고, 통풍을 위해 상대적으로 넓은

1) 멕시코, 과테말라, 벨리세, 온두라스를 포함하는 고대문명 지역을 일컫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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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코니에는 열대 꽃이 가득했다. 이들이 진흙탕의 거리에 생명감을 주고 있었다. 중앙의 거리 끝에, 중요한 순서대로 열거하면, 시청, 군대 사령실, 군대 막사, 사제관, 학교, 그리 고 묘지가 있었다. 거리 뒤쪽으로 중앙아메리카의 코코야자 나무 숲이 있으며, 사이에 보이는 붉은 모래 위에는 소나무 와 방목하는 가축들이 먹는 풀들이 자라고 있었다. 그 뒤로 한 줄로 보이는 어두운 녹색의 정글은 마치 중국의 만리장 성같이 보였다. 이 정글 덕분에 혼란하고 무질서한 중미로 부터 단절된, 작은 오아시스 같은 곳이 벨리세다. 인구는 약 6000명으로, 그중의 4000명은 흑인이다. 키가 크고, 반듯한 모습이 운동선수 같고, 피부는 검은 우단같이 부드러워 보 였다. 여인들은 붉은 목걸이로 아름답게 치장하고 있었다. 아침 식사를 하러 식당에 가서 앉자 두 사람은 다양한 인 종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빨간 조끼를 입고 있는 백인 영국 장교, 아주 공들인 옷을 입고 있는 두 사람의 물라또 (mulato)2). 아직 흑인에 대한 차별이 심각한 미국과 영국에 서 온 두 신사는 이 풍경을 보고 “여기서 피부 색깔은 취향 정도로밖에 생각되지 않는 듯하다”라고 썼다. 17세기부터 스페인 사람들은 까오바 나무를 자르기 위해 흑인 노예를

2) 흑인과 아메리카 원주민의 혼혈 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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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여왔다. 그때는 마야부족인 모빤(Mopan)3)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러나 이 부족은 흑인들에게 흡수되거나 전멸했 다. 흑인들은 원래 살았던 자연환경도 열대였던 관계로 적 응하기가 쉬웠다. 그리하여 급속하게 숫자가 늘어나, 지배 자들인 백인을 숫자적으로 압도했다. 벨리세뿐 아니라 카리 브해 주위의 대부분이 그런 사정이다. 이곳은 온두라스 및 과테말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이 접경지대로부터 아직 많은 의문에 싸인 중앙아메리카가 펼쳐진다. 지리학적으로 격동의 삼각지대라 불리는 곳으로, 1200킬로미터 길이의, 세속적인 스페인 사람4)과, 군데군데 위치한 셀바(selva),5) 그리고 호전적인 원주민들의 땅이다. 깎아지른 듯 솟아오른 땅과 이빨이 빠진 듯 파인 계곡이 이어진 산악 지대였다. 중앙 산맥은 없었으며 땅의 흙의 두 께는 얇았다. 중앙아메리카에는 안데스 고원 같은 자연적인 연결망이 없었다. 즉 지리학적으로 통일되지 않았다. 평평

3) 마야 사람들은 산악과 강, 호수를 경계로 지역적으로 분리되어 살면서 약 30 여 개의 방언을 사용했다. 따라서 각 지역 이름은 그 지역의 방언이나 그곳에 사는 부족을 지칭할 때도 사용된다. 4) 스페인 사람들은 복음 전파를 핑계로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정복했으므로, 당시 스페인계는 군인과 사제들이 대부분이었다. 일반인, 즉 세속적인 사람들 은 나중에 갔다. 5) 중앙아메리카의 아열대 숲을 일컫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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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숲에 관을 씌운 듯이 보이는 높은 산으로부터 물이 세차 게 흘러내려 강에서 배를 운행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중앙 아메리카는 1823년에 정치적 용어로 고안된 것으로, 과테말 라(Guatemala), 엘살바도르(El Salvador), 온두라스(Honduras), 니카라과(Nicaragua)와 코스타리카(Costa Rica)를 포함한다. 1800년대의 중앙아메리카는 46만 제곱킬로미터 넓이의 무정부 지역이었다. 몇 세기 동안 중앙아메리카는 외국인들의 정치적·경제 적 음모의 초점이었다. 그곳에 대서양과 태평양을 이을 운 하6)를 만들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스티븐스가 도착했을 때 에는 영국인들의 세력이 컸다. 그는 벨리세에 도착하자 곧 맥도널드 대령을 방문했다. 까오바 나무로 만든, 여덟 명의 흑인이 젓는 12미터 정도의 통나무배를 타고 도착했다. 맥 도널드 대령은 그의 방문객들을 청사의 계단에서 맞이했다. 맥도널드는 직업군인이었다. 20년 종군하는 동안에 나폴레 옹이 일으킨 유럽대륙의 전쟁과 워털루 전투에도 참가했다. 그의 웃옷은 메달로 빼곡히 찼다. 그는 여왕과 당시의 미국 대통령인 밴 뷰런, 그리고 탐사자들의 성공을 위해 건배를 제안했다. 스티븐스는 이러한 건배에 전혀 익숙하지 않았으

6) 파나마 운하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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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방법으로 답례를 하여 공식적인 만찬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서로 이별할 때 맥도널드는 스티븐스의 팔짱 을 끼었다. 그리고 이 어수선한 땅으로 들어가려는 그에게 위험한 일이 생기면 유럽인들을 모아서 영국 국기를 게양하 고 자신에게 연락을 취하라고 했다. 그러나 대령은 스티븐 스와 캐서우드에게 비밀스러운 도시 빨렌께(Palenque)에 첫 번째로 도착하는 사람일 것이라고 하지는 않았다. 아마 도 암시했는지도 모른다. 스티븐스는 나중에 그의 말의 이 중적 의미를 알아채었다. 맥도널드 대령은 여행 비용에 대한 외무부의 결재를 기다 리지 않고, 스티븐스보다 먼저 빨렌께에 도착하도록 관할구 역의 두 사람을 보내기로 했다. 패트릭 워커(Patrick Walker) 는 1837년 벨리세에 도착했다. 그는 이 관할구역의 수장인 맥도널드가 아는 한 가장 모범이 되는 젊은이였다. 그는 1839년 1월까지 이런저런 임무를 수행하다가 ‘무기, 옷과 군 비품의 보호자이며 검사자라는 ’ 직함을 갖고 온두라스의 국 왕군 하사로 부임했다. 동시에 사령관의 보좌관으로 추천됐 다. 존 캐디(John Caddy) 중위는, 국왕군 포병대로서 ‘예술 적인 정보관으로 ’ 일했다. 1801년 퀘벡(Quebec)에서 태어 났고 왕립 군사학교에서 공부했다. 기계와 총기가 전공인 데, 예술을 조금 공부했고, 오랫동안 안띠야스(las Antillas) 25


에서 일했다. 1837년 4월에 벨리세에 도착했다. 이렇게 하 여 1839년 11월 13일 워커와 캐디가 출발했다. 워커와 캐디 는 어렵게 빨렌께(Palenque)에 도착하여 조사를 시작했다. 캐디는 건축물들을 그렸는데, 그 뒤에 캐서우드가 그린 것 과 비교하면 어린아이 수준이었다. 144일 후에 돌아온 패트 릭 워커의 결론도 당시에 지배적이던 의견과 같았다. 빨렌 께의 기원은 스페인에게 점령된 멕시코 제국을 비롯한 이 대륙의 문명과는 관계가 없다. 존 캐디 중위가 런던에서 그 의 그림들을 전시했을 때 사람들은 “이 유적은 아마도 이집 트ᐨ인도가 기원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런데 영국 외무부는 여행 비용 지불을 거절했다. “재무 부의 사전 허가를 받지 않았고 여행의 목적이 단지 과학적 시기심에서 미국 사람들보다 더 먼저 하려고 했던 것”이었 기 때문이다. 스티븐스와 캐서우드는 이런 사실들을 전혀 모른 채 낡 은 배 ‘베라 빠스(Vera Paz)’를 타고 벨리세를 출발했다. 그 들은 벨리세로부터 멀어질 때 세 발의 포성을 듣고 기겁했 다. “무엇 때문에 나는 이렇게 명예로운 존재가 되었지? 나 는 여러 도시를 방문했지만 이렇게 깃발과 포성으로 온 동 네 사람이 내가 떠나는 것을 알게 한 적은 없었다”. 스티븐 스는 자신이 공직자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26


베라 빠스는 카리브 해안의 마을인 뿐따 고르다(Punta Gorda)에 멈추었다가, 도자기의 푸른 빛 같은 열대의 하늘 을 거대한 연기의 기둥으로 더럽히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반달과 같이 생긴 만으로 들어섰다. 둘세(Dulce) 강물은 이 사발(Izabal) 호수로 흘러간다. 해오라기들이 물가를 나는 모습은 환상처럼 느껴지고, 이구아나들은 나뭇등걸에 꽉 잡 힌 것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이것이 화산과 지진의 땅에 들 어가는 입구란 말인가? 내전으로 상처 받고 혼란스러워진?” 둘세 강은 약 14킬로미터 정도 계속 좁은 폭을 따라간 후에 호수를 형성하며 넓어졌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투영하 는 이사발 호수는 잘 닦인 에메랄드 같았다. 호수의 한쪽 끝 에−항구이며 폭력과 혼란의 중심 상가인−이사벨(Isabel) 항구가 있었다. 코코야자나무와 바나나나무 사이 풀과 나뭇 잎으로 지붕을 덮은 오두막들이 흩어져 있었다. 나무로 된 유일한 건물은 암뿌디오 이 뿌예이로(Ampudio Y Pulleiro) 상점이었다. 거기서 주로 하는 일은 베라 빠스에서 짐을 내 리고 미꼬(Mico) 산의 좁은 길을 따라 그 짐들을 나를 마부 들과 계약하는 것이었다. 이 길은 중앙아메리카로 가는 주 된 길이었다. 옷이 찢어지고 진흙이 튄 마부들은 노새의 냄 새와 땀으로 얼룩진 자리를 펴고 잤다. 그들의 주위에는 침 이 없는 벌들이 그들의 땀을 빨며 훨훨 날고 있었고, 노새들 27


은 돌아올 힘을 얻기 위하여 사탕수수를 요란하게 씹고 있 었다. 탐사자들은 이러한 상황을 예상하고 준비했다. 한 정부 와 비밀스러운 도시들의 탐사를 시작하기 위하여 캐서우드 는 그의 오랜 경험으로 무엇이 필요한지 잘 알았다. 측량도 구, 여러 연7)의 도화지와 광학 사진기,8) 연필과 펜, 그림붓 과 세피아 잉크(이것은 그가 아주 좋아하는 것이다). 스티븐 스는 그보다는 가져가는 것이 훨씬 적었다. 그는 접는 야전 침대를 가져갔다(얼마 후에는 원주민들의 그물침대로 대치 되었다). 이전의 외교관들의 죽음에서 배워 모기장을 갖고 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거기다가 그의 외교관 프록코트 와 미국의 도장이 커다랗게 찍힌 신분증들, 이 모든 것들도 충분히 보호를 해줄 수 없는 상황에 대비해 권총 두 자루도 준비했다. 모든 탐사대원들은 마체떼(Machete)9)를 하나씩 준비했고, 스티븐스는 그 자신을 위해서 시가를 준비했다. 스티븐스는 그 지역의 사령관을 찾아갔다. 약 열네 살 정

7) 연은 종이 500매를 일컫는 단위. 8) ‘카메라 루시다(camera lucida)’라고 불리는 것으로, 사진을 찍기 위한 것이 아니고 빛을 이용하여 사진과 같이 물체를 축소하여 볼 수 있는 도구다. 사진 기 이전에 풍경과 물체를 정확히 그리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9)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나무나 풀을 자를 때 사용하는 날이 넓은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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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되어 보이는 군인이었는데, 눈을 덮는 밀짚모자를 쓰고 문 앞에 보초처럼 서 있었다. 그러나 이 후안 페뇰(Juan Penol) ̃ 사령관은 스티븐스의 여권을 존중하더라도 아무런 안 전을 약속할 수 없다고 했다. 과테말라의 까레라(Carrera) 부대는 어쩌면 받아들일지도 모르지만, 모라산(Morazan) ́ 장군은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스티븐스는 중앙아메리카의 정치적 혼란에 세 갈래가 있다는 것을 알았 다. 모라산, 까레라, 그리고 페라라(Ferrara). 까레라는 원주 민이고 페라라는 물라또다. 까레라와 페라라 사이에 어떠한 공통 목적은 없지만, 두 편은 서로를 인정하고 있었고, 그들 의 적은 모라산 장군이었다. 그사이에 캐서우드는 토머스 러시(Thomas Rush)를 방 문했다. 그는 베라 빠스의 기계공인데, 영국인이었고 1.93 미터의 키에 어깨가 떡 벌어진 사람이지만, 말라리아에 걸 려 쓰러져 있었다. 그는 밤마다 오한으로 시달리면서 그와 동향인 사람을 가까이 두고 싶어 했다. 스티븐스는 그의 전 임 외교관인 제임스 섀넌(James Shannon)을 기억했다. 중 앙아메리카의 미국 공사였던 그는 이사발에서 죽었다. 그래 서 그의 무덤을 찾아보기로 했다. 마을 뒤편 잡목이 우거진 언덕에서 묘비에 ‘공무 담당(chargé d’affaires)’이라고 되는 대로 써놓은 무덤을 발견했다. 그는 동료의 무덤이 너무 쓸 29


쓸하게 느껴졌다. 최소한 장소를 알아볼 수 있도록 무덤 주 위에 야자나무를 심으라고 일렀다. 다음 날 해가 뜨자 탐사자들은 미꼬 산을 오르기 시작했 다. 도망자인 젊은 아구스틴(Agustin)은 마체떼에 베인 흉 터가 얼굴을 가로질러 나 있었다. 그와 벨리세에서 계약하 여 어젯밤에 노새를 준비하도록 했다. 아버지는 프랑스 사 람이었으나, 그는 산토도밍고(Santo Domingo)에서 태어났 다. 스티븐스와 캐서우드가 보기에 처음에는 그가 하는 일 에 대해 이해를 잘 못하는 것 같았으나 여행을 하면서 그가 상황에 따른 대처에 아주 능숙하다는 것을 알았다. 아구스 틴은 이미 미꼬 산의 좁은 길을 여행한 적이 있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여행가들은 노새 위에 앉아서 호 젓한 셀바에 취하여 스르르 눈을 감았다. 가끔 앵무새가 끽 끽대는 소리에 반색하며. 스티븐스와 캐서우드는 각각 권총 두 자루로 무장했다. 아구스틴은 권총과 마체떼를 가지고, 원주민과 노새들을 지름길로 이끌었는데, 칼집에 넣지 않은 마체떼를 높이 쳐들고 있었다. 그가 맨발에 끈으로 달아맨 박차는 죄수들의 쇠사슬처럼 쨍그랑 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침 햇살은 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 유리창을 뚫고 나가 는 것처럼 나무들의 잎사귀 사이로 빛났다. 그러나 길은 여 전히 질척거렸다. 이들이 길을 잃어버리고 완벽하게 단절된 30


것처럼 느끼기까지는 데는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들의 앞에는 하얀 나비가 날아다니고, 주위에는 보이지 않 는 개구리 울음소리가 어두운 정글의 좁은 길을 멜랑콜리하 게 느끼게 했다. 마따빨로(Matapalo)와 까오바 나무들의 뿌 리가 길을 가로지르고 있어서 노새들의 발이 걸리곤 했다. 스티븐스는 고삐를 단단히 쥐고 떨어지지 않도록 노력했다. “다섯 시간 동안 진흙 도랑 가운데서 우리들은 몸을 질질 끌 며 걸었고, 깊은 숲을 어렵게 뚫고, 나무에 부딪치고, 나무뿌 리에 걸리고, 매번 걸음마다 조심해야 했고, 몸에 힘을 주어 야 했다. …우리들의 묘비명은 이렇게 될 수 있을 것이다. 노새의 머리에 몸을 던지고, 까오바 나무 둥치에 머리가 깨 지고 미꼬 산의 진흙에 묻혔다.” 한마디 불평도 없이 이 모든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던 프 레더릭 캐서우드는 노새가 나무뿌리에 걸려 드디어 그가 앉 아 있던 안장으로부터 거칠게 내동댕이쳐졌다. 그의 등이 나무에 아주 심하게 부딪쳤다. 진흙이 몸의 반을 덮고, 한참 동안 그의 입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한참이 지 나자, 그가 떨어진 구덩이에서 꼼짝도 않고 말했다. “여기에 온다고 하기 전에 이 망할 미꼬 산이 어떤 줄 알았더라면 당 신은 혼자서 중앙아메리카를 여행해야 했을 거야.” 이 길이 과테말라로 가는 큰길일 수 있을까? 이 길이 중 31


앙아메리카의 모든 나라가 필요로 하는 것을 만족시킬 만한 물건들이 지나는 길인가? 마부들은 유럽에서 오는 모든 물 건은 이 길을 지나간다고 주장했다. 아구스틴은 너무 많은 노새가 지나다니기 때문에 길이 망가져서 이렇게 되었다고 했다. 이날 오전 중에는 일행 중의 어느 누구도 재난을 피하지 못했다. 좁은 길을 돌자, 갑자기 키가 크고, 피부가 검고, 챙 이 넓은 파나마모자를 쓴 사람과 부딪쳤다. 어깨에는 과테 말라 뽄초(Poncho)10)를 걸쳤고, 손에는 칼집에 넣지 않은 마체떼를 들고 있었다. 허리에는 권총 두 자루가 튀어나와 있었고, 진흙이 튄 장화에는 마치 싸움닭의 발톱처럼 날카 로운 침이 나온 박차가 있었다. 이 남자가 모자를 벗고 영국 신사의 교양 있는 억양으로 말하자 모든 사람이 놀랐다. 그 는 자신의 길잡이들을 잃어버리고, 타고 온 노새는 두 번이 나 넘어져서 신경이 부서졌다고 했다. 미꼬 산의 진흙에 발 이 빠진 채로 브랜디 한 잔을 부탁했다. 그는 과테말라에 은 행을 세우려고 2년째 협상 중이라고 했다. 그의 모습은 스티 븐스가 농담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대신 스티븐스는 그가

10) 중남미에서 사용하는 겉옷으로 평소에는 어깨에 덮고 밤에는 깔고 잘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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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가를 얻을 것이라고 격려했다. 여행의 둘째 날, 스티븐스와 캐서우드는 구알란(Gualan) ́ 길을 찾았다. 햇살이 가득한 높은 땅에 낮은 나무들의 덩굴 이 뒤엉켜 지형은 변형되었다. 자줏빛이 감도는 산에는 소 나뭇과의 나무들이 가득 찼다. 믿을 수 없이 높은 정상이 있 었다. 환상적이었다. 어떤 곳에는 나무가 없었고, 어떤 곳에 는 식물이 가득 차서 구름까지 닿았다. 이제는 셀바 대신에 선인장들이 촛대처럼 서 있었다. 몇십 킬로미터를 어두운 녹색의 선인장이 이어졌다. 단단하고 가시 많은 팔들을 하 늘로 뻗은 선인장 뒤에는 소나무들, 소나무들 다음에는 미 모사의 숲, 창백한 노란 솜뭉치로 덮인 미모사는 밤의 공기 를 향기로 가득 채웠다. 멀리까지 셀바가 없이 트여 더욱 즐 거웠고, 푸른 언덕들은 소나무와 가축들이 먹는 풀로 가득 차 있어서, 캐서우드에게 영국의 전원에 대해 막연한 그리 움을 느끼게 했다. 이날 오후에 모따구아(Motagua) 강을 건너 엔꾸엔뜨로 (Encuentro) 마을을 찾았다. 벨리세를 떠난 이후에 처음 보 는, 사람이 사는 마을이었다. 스티븐스는 사람들이 순박하 면서도 기본적으로 지닌 품위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들 이 아내를 예의 바르게 대하는 모습은 잘 교육받은 스페인 사람이 여성을 대하는 것과 비슷했다. 여행자들을 말에서 33


내리게 하여, 겨우 나뭇잎으로 지붕을 덮은 정도이기는 하 나, 그들의 집에 받아들였다. 그들의 은혜로운 행동은 개인 적인 자부심에 바탕을 둔 자발적인 것이었다. 음식은 부족했 고, 또 매우 단조로웠다. 그래도 언제나 또르띠야(tortilla)11) 는 있었다. 삶아서 돼지기름에 살짝 볶고 마늘로 양념한 검 은 팥, 한 조각의 고기, 그리고 사탕수수 대를 넣어 끓인 달 콤한 검은 커피가 매일의 기본적인 메뉴였다. 여행자들은 모따구아 강을 따라 계속 걸었다−이름 하 여 왕의 길이다−구알란을 지나서, 소나무 숲과 떡갈나무 숲을 지나서, 사까빠(Zacapa)에 들어섰다. 이곳은 과테말 라에서 본 가장 큰 마을이었다. 길은 돌로 포장이 되어 있고, 길가에 붙여 지은 집들은 스페인 양식으로 깨끗하게 하얀 석회 칠이 되어 있었다. 주 광장에는 주홍색의 히비스쿠스와 잎이 넓은 야자나무가 있 었다. 정면의 장식이 모로12)식으로 된 큰 성당이 이 광장을 압도하고 있었다. 스티븐스와 캐서우드는 사까빠에서 가장 좋은 집으로 가 거대한 대문을 두들겼다. 프랑스 말을 하는

11) 중앙아메리카 여러 나라의 주식인 옥수수 전병으로, 고기나 야채, 콩을 싸 서 먹는다. 12) 아프리카 기원의 이슬람 종족으로, 스페인 남부를 점령하고 아랍 양식의 건물들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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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토도밍고 출신의 흑인이 맞이했다. 시종은 우아하게 말했다. 주인은 안 계시지만 신사 분들 이 그곳을 자신들의 집으로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그리하 여, 촛불을 켜달라고 하고 우리들은 편안하게 자리 잡았다. 밖에서 노새 발자국 소리가 들릴 때 나는 책상에서 글을 쓰 고 있었다. 잠시 후 신사 한 분이 들어서서, 칼과 박차를 벗 고 권총들을 식탁에 놓았다. 우리들과 같은, 또 다른 여행객 이라 가정하고 그에게 의자를 권하고, 저녁이 준비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그에게 함께 가자고 했다. 잠잘 때가 되어서야 우리들이 주인들 중 한 명에게 호의를 베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들이 좀 차갑다고 생각할 수는 있겠지만, 우리 들의 행동에 대해 불평은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스스로 자랑 스러워했다.” 다음 날, 치끼물라(Chiquimula)에 도착했다. 이 땅에 흉 터를 내고 있는 깊은 계곡을 지나자 스티븐스가 제일 처음 에 본 것은 문에 발을 걸치고 있는 젊은 여성이었다. 그녀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미소 짓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예 사롭지 않게 그의 흥미를 끌었다. 깊고 검은 눈과 잘 그려진 눈썹, 스티븐스는 즉시 이 집에서 머물 것이라는 의사를 표 시했다. 그래서 여성에게 뜻을 전했고 그녀는 예의 바르게 승낙했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스티븐스는 그녀를 아가씨로 35


대할 것인지 아주머니로 대할 것인지 몰랐다. 불행하게도, 그녀의 아버지라고 생각했던 남자가 그녀의 남편이었고, 동 생이라고 생각했던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이가 그녀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내 아들이에요.” 그녀는 밝 고 아름답게 미소를 지으며 손을 어린이의 머리 위에 놓았 다. 오랫동안 스티븐스는 아름다운 여자를 보지 못했다. 그 녀의 얼굴은 스티븐스에게 흥미로웠다. 그녀의 태도는 아주 정숙했고, 목소리는 달콤했고, 스페인어는 그녀의 입술에서 아름답게 발음되었다. 열 살짜리 아들이 있고, 시가를 피우 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스티븐스에게 그녀가 준 첫인상은 지워지지 않았다. 출렁이는 모따구아 강을 따라 캐러밴(caravan)의 방향은 이제 서쪽으로 향했다. 이 길은 꼬빤(Copan) ́ 으로 향하는 오 래된 길이었다. 옥수수 밭과 바나나나무들, 그리고 꼬치니 야(Cochinilla)13)의 농장이 있는 조용한 지역이었다. 사이 사이에 산이 있었다. 끝없이 적막했다. 높고 위압적인 산들 의 구름에 닿은 꼭대기도 녹색으로 덮였다. 뾰족한 산의 꼭 대기와 휴화산들이 도처에 보였다. 가끔 벌거벗은 어린아이

13) 천을 붉은 색으로 물들이는 벌레로, 풀 위에 산다. 구워서 물에 넣으면 붉 은 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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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석회를 칠한 흙집에서 나왔다가 급히 끌어들이는 손길에 의해 잡혀 들어갔다. 여행자들은 몇 개의 성당을 지났다. 초 기의 스페인ᐨ모로식의 건축은 아주 작은 마을에도 있었다. 몇 시간의 여행 후 꼬마딴(Comatan) ́ 마을에서 일곱 번째의 성당을 보았다. 전면에는 여덟 개의 로코코식의 기둥이 있 고, 각각의 작은 방에 네 명의 성자가 앉아 있었다. 종들은 조용하게 매달려 있고, 오래된 녹슨 쇠 십자가는 아주 높이 달려 있어서 성당의 지붕에서 자라는 풀들과 경쟁을 하는 듯 보였다. 성당 앞 광장의 녹색 잔디는 아주 푸르렀다. 그 리고 잔디 위로는 노새조차도 걸어 다니지 않은 것 같았다. 성당 앞에 시의회가 있었는데, 초가지붕의 길이가 약 12미 터쯤 되는 흙 건물이었다. 스티븐스가 철문의 쇠사슬을 벗기고, 여행자들은 크고 텅 빈 방으로 들어갔다. 유일한 가구로 상이 하나 있었다. 먹을 것을 찾으러 아구스틴을 보냈더니 달걀 한 개를 들고 돌아왔다. 이윽고 손잡이가 은으로 된 지팡이를 짚은 마을 의 촌장이 방문했다. 그는 그들이 무슨 일로 이곳에 왔는지 물었다. 스티븐스는 자신의 공식 여권을 보여주었지만 그는 읽을 줄 몰랐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수행원들과 떠나버 렸다. 여행에 지친 스티븐스와 캐서우드는 단 한 개의 달걀 과 차가운 빵 그리고 초콜릿으로 저녁을 때웠다. 어디에서 37


잘 것인지 의논하고, 몇몇 소나무 가지에 불을 피우고 그물 침대에 편히 누웠다. 각자 자신의 시가 연기에 둥그렇게 싸 여서 내일 도착할 예정인 몽상적인 폐허, 꼬빤에 대해 이것 저것 추정하기 시작했다. 그때 갑자기, 밖에서 걷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방은 불꽃이 튀는 소나무 횃불로 밝혀졌고, 한 떼의 남자들이 들어섰다. 모두 무장을 하고 있었다. 촌장, 하급관 리, 군인, 원주민, 그리고 메스띠소(Mestizo)14)들. 빛나는 군모를 쓰고, 칼로 무장한 젊은 하사관이 여권을 보자고 요 구했다. 아구스틴이 그것을 주었다가 받으며 하사관에게 서 류들의 성격을 설명했다. 주름이 가득하고 이빨이 빠진 원 주민 촌장은 하사관의 어깨 위로 머리를 박고 말했다. 옛날 에 그는 여권을 본 적이 있는데, 그것은 그의 손 크기의 작은 종이에 도장이 찍힌 거지 이렇게 책의 사분의 일 정도 되는 큰 종이에 도장이 찍힌 것이 아니라고 했다. 대화는 열띠어 갔다. 하사관은 우리 일행이 꼬빤으로 여행할 수 없으며, 지 금 치끼물라에 있는 카스카라 장군으로부터 정보가 올 때까 지 모두 꼬마딴에 수감되어야 한다고 했다. 스티븐스는 꿋 꿋했다. 시간을 잃어버리는 것보다 꼬빤으로의 여행 자체를

14) 원주민과 스페인계 백인의 혼혈을 일컫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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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게 될 것을 염려했다. 하사관은 말했다. “여러분들은 앞으로 나가지도, 뒤로 물러서지도 못합니다.” 그리고 그의 여권을 달라고 했다. 스티븐스는 주지 않았다. 이 여권은 나 의 정부가 나를 보호하기 위하여 준 것이다, 고로 그에게 줄 수 없다고 했다. 캐서우드도 위엄을 갖추었다. 영국인들은 문명화되지 않은 사람조차도 이렇게 대접받는 것에 익숙지 않다. 하물며 모욕을 조용히 참는 것은 더더욱 그렇다. 그리 하여 국가 간의 권리에 대해 박식한 설명을 했다. 대사들의 신성한 지위에 대해 지적하고, 모든 시대의 외교적 면책 특 권에 대한 역사를 읊고, 당신들 비열한 불한당들은 미국의 분노에 직면할 것이라고 협박하며 끝냈다. 이 모든 얘기를 들었지만, 하사관은 캐서우드의 얼굴에 있는 교만함은 눈치채지 못했다. 스티븐스는 그의 여권을 가슴께의 주머니에 넣고 팔짱을 끼고 말했다. “원한다면, 힘 으로 가져가야만 할 것이오.” 군인들은 그들의 장총을 높이 들어 준비했다. 그들은 스 티븐스의 머리 약 90센티미터 거리에서 총을 겨누었다. 스 티븐스가 이 불안한 시기의 중앙아메리카에서 인간의 목숨 이 얼마나 하찮은가를 알았더라면 그는 항복했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전투적인 아구스틴이−횃불의 불길이 그의 얼굴에 난 흉터를 더 두드러지게 했다−불어로 크게 소리쳤 39


다. “주인님, 총을 쏘게 명령해 주세요. 이들 모두를 쫓아버 리기에는 한 방이면 충분합니다.” 이 순간 좀 더 나이가 들고, 좀 더 상식이 있는 하사관이 방으로 들어섰다. 군인들은 장총을 내렸다. 캐서우드의 요 청으로, 막 도착한 하사관이 그의 여권을 큰 목소리로 읽었 다. 그리고 스티븐스와 캐서우드가 돈을 내어 카스카라 장 군에게 편지를 보내기로 합의했다. 스티븐스가 글을 쓰고, 캐서우드가 이탈리아어로 번역한 다음 ‘비서라고 ’ 서명했 다. 공식적인 도장이 없었기 때문에 스티븐스는 그의 주머 니에서 최근에 나온 반 달러짜리 미국 동전을 양초에 눌러 편지를 봉했다. 방문 앞에 보초들이 섰다. 그 방이 감옥이 된 셈이었다. 이 과격한 에피소드에 지친 일행은 각자의 그물침대에 누웠 다. 한밤중에 방문이 다시 거칠게 열렸다. 또 한 번 같은 일 이 벌어졌다. 이번에는 스티븐스와 캐서우드가 권총을 준비 하고 전쟁을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럴 필요는 없었다. 그 들이 자유로우며, 꼬빤으로 가는 여행을 계속할 수 있다고 말하려고 온 것이었다. 이것은 미국 고고학의 별로 유쾌하지 못한 시작이었고, 스티븐스는 오랫동안 이 사건을 기억했다. 그리고 항의의 편지도 썼다. “미국의 비서인 존 포사이스(John Forsyth)에 40


그림 1. 마야 셀바의 풍경

게: 꼬빤으로 가는 길에 잡혀서 감옥에 있었다는 것을 알리 게 되어 유감입니다. 이 정부에 대해 불만을 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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