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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과 커뮤니케이션


커뮤니케이션이해총서 급변하는 커뮤니케이션 환경에서 새로운 지식에 대한 욕구가 높아지 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추어 하나의 커뮤니케이션 주제를 10개 항목으로 묶어서 달걀 꾸러미처럼 엮었습니다. 사회의 변화를 빠르게 알기 원하는 대중과 시대에 앞선 지식을 단시간에 알고자 하 는 연구자, 실무자, 학생에게 도움이 되는 책입니다.

편집자 일러두기 ∙ 인명, 작품명, 저서명, 개념어 등은 한글과 함께 괄호 안에 해당 국 가의 원어를 병기했습니다. ∙ 외래어 표기는 현행 어문규정의 외래어표기법을 따랐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이해총서

뇌과학과 커뮤니케이션 이재신

대한민국,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2015


뇌과학과 커뮤니케이션

지은이 이재신 펴낸이 박영률 초판 1쇄 펴낸날 2015년 5월 20일 커뮤니케이션북스(주) 출판 등록 2007년 8월 17일 제313-2007-000166호 121-869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 46 3층 전화(02) 7474 001, 팩스(02) 736 5047 commbooks@eeel.net www.commbooks.com CommunicationBooks Inc. 121-869 3rd F, 46 Worldcup north road Mapo-gu, Seoul, Korea phone 82 2 7474 001, fax 82 2 736 5047 이 책은 커뮤니케이션북스(주)가 저작권자와 계약해 발행했습니다. 본사의 서면 허락 없이는 어떠한 형태나 수단으로도 이 책의 내용을 이용할 수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이재신, 2015 ISBN 979-11-304-3666-1 04300 책값은 뒤표지에 표시되어 있습니다.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자연과학적 접근의 필요성

인간은 인간 중심의 사고에 익숙해 있다. 하지만 과학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거의 대부분의 인간 중심적 사고가 잘 못된 것이었음이 밝혀져 왔다. 익히 알다시피 불과 수백 년 전까지 인간은 모든 별이 지구를 중심으로 돌며 지구가 우주의 중심인 것으로 생각했다. 비록 아직까지 인간이 우주의 탄생 과정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해도 수 많은 신화와 종교에서 말하는 우주 탄생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인간 중심의 믿음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과학 에 의해 밝혀진 사례는 매우 많다. 일반 식물이나 동물 말 고도 현미경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 로 작은 미생물들이 이 세상에 가득 차 있다는 것도 비교 적 최근에야 알게 된 사실이다. 대부분의 외계 태양계들 이 두 개의 태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우리 태양계가 상당 히 예외적인 경우라는 것도 최근 들어 밝혀진 사실이다. 과학에 의해 새로이 세상을 이해하게 된 일들을 나열하자 면 아마 끝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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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그동안 인류가 이룩한 과학적 성 과들을 접하면 그것은 과학자들이나 이해하는 이야기이며 하루하루 평범하게 살아가는 우리와는 별로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의 항공우주국(NASA)이 촬영한 우주의 아름다운 사진들을 보며 우주는 신비한 곳이라고 경탄하지만 우주와 관련되어 밝혀진 과학적 사실들은 알 려 하지 않거나 받아들이기를 주저한다. 이는 아마도 인간의 삶은 몇 가지 원리에 기초한 자연 과학의 이론들로는 설명되기 어려우며 인문학, 철학, 사 회과학 등의 학문이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 대한 설명에 더 욱 적합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 실 이러한 생각이 반드시 틀린 것은 아니다. 우주에서 가 장 복잡한 구조를 지녔다고 생각되는 인간의 뇌는 다른 생 명체와 비교할 때 매우 특별한 존재다. 또한 화학이나 물 리같이 무생물들의 운동을 설명하는 과학적 이론들이 인 간 같은 특이한 존재의 생각과 행동을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인간 중심의 사고와 과학 하지만 생각해 보자. 이제까지의 과학적 발견에 의하면 우 주는 양자적 요동(quantum fluctuation)이라는 불안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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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를 겪다가 이른바 빅뱅(big bang)이라는 거대한 폭발 과 함께 탄생했다. 이후 에너지가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 입 자들로 변화하고 이들 입자들이 결합해 수소나 헬륨 같은 원소들을 만들어 냈다. 이들이 중력에 의해 서로 뭉쳐 별을 만들었으며 별들이 모여 은하를 만들었다. 그리고 우주에 는 이렇게 생긴 은하들이 1500억 개가 넘는다. 하나의 은하 가 평균적으로 수십억 혹은 그 이상의 별들로 구성되어 있 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실로 엄청난 규모의 별들이 우주에 존재한다. 지구는 그러한 수많은 별 중 하나에 불과하다. 중요한 점은 우주의 탄생부터 생명의 탄생까지 모두 물 리적 법칙을 철저히 따랐으며 이를 위배하는 일은 없었다 는 것이다. 우주의 모든 구성물은 중력, 약력, 강력, 전자 기력이라는 네 가지 기본 힘이 상호작용한 결과다. 그리 고 이들 힘의 작동 원리는 과학적 원리의 근간이 된다. 이 제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생명의 필수적인 활동들은 전 자기력(electromagnetic force: 전기력+자기력)에 근간을 둔다. 이른바 빛과 전자의 상호작용이 생명 탄생과 유지 의 기본적인 원리인 것이다. 다만 그 과정이 너무 복잡하 기 때문에 아직까지 많은 부분들이 아주 명확하게 밝혀지 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달 덕분에 이제는 과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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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많은 자료들을 얻을 수 있으며 이 에 대한 분석도 가능하게 되었다. 인류는 이미 수년 전부 터 태양계 탄생 초기에 만들어진 상태로 아직도 태양 주위 를 돌고 있는 혜성이나 운석에 우주선을 보내 시료를 채취 하고 분석하고 있다. 현재는 지구와 태양이 탄생했을 때 어떤 물질들이 존재했는가에 대해서도 상당 부분 밝혀졌 다. 화성에서는 지금도 탐사 로봇이 생명의 흔적을 찾아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지구상에 언제 어떻게 생명이 탄생했 는가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아마 영원히 그럴 것 이다. 왜냐하면 그 일은 이미 수십억 년 전에 발생했으며 유기물의 특성상 현재까지 그 흔적이 남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어떤 방법으로든 생명이 지구상에 출현했으며 이제 과학자들은 그 과정의 많은 부 분들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단 생명이 출 현한 이후 어떠한 과정을 통해 현재의 인류에 이르렀는가 에 대한 지식도 하루가 다르게 증가하고 있다. 어떻게 박테리아 같은 원시세포가 다세포 생명체로 진 화했으며 이들이 다시 식물이나 동물로 또한 궁극적으로 인간에까지 이르게 되었는가도 상당 부분 밝혀졌다. 특히 최근의 뇌과학 연구들은 측정 장비의 눈부신 발전에 힘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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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속속 새로운 결과들을 내놓고 있다. 과거에는 뇌의 구 조도 잘 파악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뇌가 작동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관찰하고 기록할 수 있다. 뇌의 각 부분이 어 떤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지 역시 빠르게 밝혀지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 인간이 뇌의 모든 작동 원리와 기능을 속속들이 파악하게 되었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인간 의 뇌는 약 1000억 개의 세포들이 수없이 많은 연결을 통해 상호작용하는 거대한 네트워크여서 그 복잡한 상호작용 을 모두 이해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인류는 뇌의 복잡한 상호작용의 많은 부분을 이해하고 있으며 신체 없는 마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을 안다.

과학적 발견에 대한 시각 문제는 우리가 이러한 급속한 과학적 진보와 그로 인해 등 장하는 많은 새로운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 이다. 무엇보다, 과학적 결과들은 일반인이 그 의미를 잘 이해하기 어렵고 설사 이해한다고 해도 기존에 우리가 가 지고 있던 신념들과 배치되는 경우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 는 것은 심리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천동설을 굳게 믿고 있던 중세 사람들이 지동설을 받아들이기까지 수백 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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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린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천동설과 지동설의 사례는 너무 극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과학적 사실이 수용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경우는 많다. 그리고 이러한 시간적 지연은 학계에 서도 발견되곤 한다. 기존의 학문적 신념과 배치되는 사 실들이 수용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최근 활 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마음’의 기원에 대한 논란들 역시 이러한 예에 속한다. 많은 신경과학자(neuroscientist)들 이 마음의 기원에 대한 과학적인 근거와 설명들을 제공하 고 있지만 아직까지 인문학자들은 이의 수용에 상당히 비 적극적이다. 이유는 하나다. 아직까지 과학적 설명이 완 벽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음은 과학적으로 설명되 기에는 너무 복잡한 대상이라고 주장한다. 지금은 우주의 탄생 과정을 재현하기 위한 거대 규모의 실험이 진행되고 있으며 이들 실험으로부터 물질이 질량을 어떻게 획득했는지를 설명해 낸 과학자가 노벨상을 수상하 는 시대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과학적 설 명을 거부하거나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토록 복잡해 보이는 이 세상의 현상들이 그토록 간단한 몇 가지 과학 원리에 의해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 만 플라톤 이래 서구 철학의 근간을 형성해 온 기원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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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탐구와 그에 대한 연역적 접근법은 아무리 복잡한 현상 이라도 그 기저에 작용하는 원리들은 매우 간단하다는 것 을 밝혀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이 러한 믿음의 대표적인 신봉자였으며 일반상대성 원리의 공식 역시 단순할 것이라는 예측 속에 연구를 진행했다. 그리고 그는 실제로 하나의 단순한 식으로 시공간이 하나 로 묶여 있음을 보여 주는 일반상대성 원리를 밝혀냈다.

이성과 감정 이제까지 자연과학적 접근법의 중요성에 대해 상당히 긴 분량을 할애해서 설명했다.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한 이유는 왜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적 연구들이 자연 과학적 연구 결과들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함이다. 오래된 역사에 대한 기록도 이제 과학적 고고학 분석에 의해 그 진위가 가려지고 있다. 과 거에 비해 놀랄 만한 정확도를 지니게 된 연대 측정 분석 결과들은 이제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몇몇 중요한 역사 기 록들이 사실과 다름을 알게 해 주고 있다. 인류가 어떻게 등장했으며 언어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에 대해서도 아직까지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 중요한 단계 들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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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속에서 이제까지 우리가 믿어 왔던 많은 인문학적 혹은 사회과학적 설명들이 사실은 잘못된 것이었음이 밝혀지 고 있다. 물론 과학에 대한 맹신주의는 항상 경계해야 할 것이다. 토머스 쿤(Thomas Khun)이 지적한 바와 같이 과 학적 결과들도 지배적 패러다임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곤 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들이 과학적 결 과들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을 결코 의미하지는 않는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우리는 기존의 신념에 위배되는 설 명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학자들도 그러하다. 한 가 지 예를 살펴보자. 이제까지의 일반적인 믿음은 인간은 이성적이며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감정은 불합리한 결정 에 이르도록 유도하기 때문에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에는 감정적 요인은 배제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이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개체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발전해 온 경제학 분야에서, 지난 2002년에 심리 학자인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이 역사상 처음 으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경제학자가 아닌 심리학자가 노벨경제학상을 받을 것이다. 그 이유는 그가 이제까지 경 제학이 전제해 왔던 것과 달리 인간은 많은 경우 이성적이 지 못하며 일상생활 속에서 내리는 대부분의 결정이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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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근거해 비합리적으로 이루어져 왔다는 것을 밝혀냈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그의 주장이 학계에 받아들여지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으며 심지어 미국의 어느 저명한 철학자 는 카너먼의 연구에 대해 “나는 바보들의 심리학에는 관 심이 없다”라는 말로 폄하했다. 인간은 이성적이며 논리 적이라는 전제를 믿어 온 철학자이기에 인간이 이성적이 지 않다는 심리학자의 주장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이다. 사실 전공과 무관하게 대부분의 학자들 역시 이와 유사한 반응을 보였다. 인간이 많은 경우 감정적이며 비 합리적이라는 주장을 학자들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비록 카너먼의 많은 연구가 감정의 역할에 대한 그의 주장 을 뒷받침해 주어도 말이다. 인간이 일상 속에서 얼마나 비합리적이고 감정적인 판 단을 내리는가를 보여 주는 예는 수도 없이 많다. 가령 우 리는 첫인상을 중요시한다. 그리고 웬만해서는 그 첫인상 이 잘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사실 우리의 첫인상이 얼마 나 정확할까? 그토록 짧은 순간에 그나마도 부족한 정보에 근거해 형성된 상대에 대한 인상이 과연 정확할까? 하지 만 한번 부정적으로 보기 시작하면 그 사람이 하는 일은 모 두 부정적으로 보인다. 그가 잘하는 일은 애써 외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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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내 판단이 정확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렵긴 하지만 상대에 대한 인상이 바뀌는 경우도 있 다. 언제일까? 그것은 내가 그에 대해 긍정적인 ‘감정’을 느꼈을 때다. 냉혈한인 줄 알았던 사람이 내 앞에서 눈물 을 보일 때 나는 그를 다시 보게 된다. 이전에는 그가 따뜻 한 사람임을 보여 주는 많은 합리적 증거들을 애써 무시해 왔지만 나의 ‘감정’이 움직이는 순간, 그에 대한 인상도 달 라지는 것이다. 우리는 이처럼 일상에서 이성보다는 감정 에 더욱 의존해 살아가는데 이는 대부분 우리의 의도와 무 관하게 일어난다.

이성과 감정 그리고 과학 최근의 뇌과학과 진화생물학 연구 결과들은 왜 우리가 감정 에 그렇게 의존하는가에 대해 과학적으로 설명해 준다. 진 화적으로 볼 때 동물의 뇌는 감정을 담당하는 부분이 먼저 등장했으며 이후에 이성을 담당하는 신피질(neocortex)이 등장했다. 감정을 담당하는 뇌는 장기 기억과 밀접하게 연 관되어 있으며 의식에 의해 지배받지 않는 독자적인 역할 을 담당하기도 한다. 예전에 경험했던 맛있는 음식을 다 시 보기만 해도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나며 나도 모르게 침 을 삼킨다. 자라를 보고 놀란 사람은 솥뚜껑만 봐도 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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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쿵쾅쿵쾅 뛴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나의 의도와 무 관하게 발생한다. 한마디로 자동인 것이다. 이처럼 진화적으로 이성보다 먼저 등장한 감정은 우리 의 의도와 무관하게 우리의 행동과 의사 결정 과정에 깊이 개입되어 있다. 비록 우리는 이성적으로 결정했다고 믿지 만 사실은 감정의 영향을 받은 결정을 내리곤 한다. 우리 는 모든 합리적 이유를 다 고려할 때 A라는 상대를 선택해 야 하지만 결국은 그렇지 않은 B라는 상대를 선택하는 멜 로드라마 속 주인공을 비난하지 않는다. 현실에서도 실제 로 그런 일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미디어를 이용할 때도 감정에 의해 영향을 받곤 한다. 어떤 특별한 목적을 위해 미디어를 사용하기도 하 지만 그냥 그것을 이용하는 것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끼기 도 한다. 미디어를 이용하는 자체를 즐기기도 하는 것이 다. 왜 시험을 앞두고도 게임에 빠지게 될까? 왜 저 연예인 은 나를 모르는데 나는 그 사람이 나온 드라마나 영화를 열성적으로 시청하며 그를 좋아할까? 심지어는 비싼 돈을 지불해 가며 그 사람이 광고하는 제품을 왜 살까? 그 제품 이 더 좋다는 객관적인 증거는 하나도 없고 오히려 비싼 모델료가 제품 가격에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은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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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우리는 이성이 시키는 대로 하기보다는 많은 경 우 감정이 이끄는 대로 행동한다. 그러면서도 인간은 합 리적 존재라고 굳게 믿고 있다. 비록 이성이 감정을 뛰어 넘는 논리적 추론 기능을 제공하며 그러한 이성에 의해 현 대 과학이 이룩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인간이 항상 이성 에 의존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인지 기능은 제한되어 있어서 가급적 아껴서 사용해야 하는 자원이기 때문에 정말 필요한 때에만 사용하기 때문이다.

감정과 커뮤니케이션 이제 이 책의 주제인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커뮤니케이션이란 무엇인가? 커뮤니케이션학에서 가장 널 리 사용되는 모형 중의 하나가 전체 과정을 S-M-C-R- E, 즉 송신자(Sender)-메시지(Message)-채널(Channel) -수신자(Receiver)-효과(Effect)로 구분해 살펴보는 것이 다. 이러한 접근법이 전제하는 가정은 커뮤니케이션이란 분 리 가능한 몇 단계의 독립된 과정으로 이뤄져 있으며 이 과 정을 통해 전달되는 것은 메시지에 포함된 정보라는 것이다. 이는 방송국(S)이 뉴스(M)를 TV(C)를 통해 전달할 때 수용 자(R)가 시청하고 그 결과 어떠한 영향(E)을 받는 것 같은 전통적인 미디어 이용 상황에 적합한 모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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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실제 일상생활 속에서 이루어지는 커뮤니케이 션은 어떠한가? 내가 똑같은 말을 하더라도 어떤 상황 (context) 속에서 그 말을 하는가에 따라 상대방은 다르게 인식하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커뮤니케이션이란 기본적 으로 상황적 요인이 개입할 수밖에 없는 행위이기 때문이 다. 커뮤니케이션은 대개 두 가지 요인을 전달한다. 하나 는 ‘메시지 내용’이며 다른 하나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렇게 전달되는 상황적 맥락에 따라 메시지의 의미는 달라진다. 최근에는 디지털 통신기술의 발달과 함께 문자메시지 나 이메일 등 문자 중심의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하게 이용 되고 있다. 하지만 문자 중심의 커뮤니케이션은 상황적 정보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의미가 잘못 전 달되는 일이 빈번히 발생하곤 한다. 누구나 실생활에서 문 자메시지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오해한 경험이 아마도 한두 번씩은 있을 것이다. 이러한 단점을 일부나마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이모티콘(emoticon)이다. 이모티콘을 사용해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의 기분과 감정을 전달하고 이를 통해 문자메시지에 부족한 ‘상황’ 정보를 보 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기분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이모티콘이 보 다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할까? 그것은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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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으로 볼 때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고등동물의 커뮤니케 이션은 주로 감정 정보의 교환에 의해 이루어졌기 때문이 다. 인간이 비록 언어와 문자를 통해 다른 동물들에 비해 고차원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수행하지만 인간의 커뮤니케 이션 역시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감정 표현과 관련 된 정보들에 의존한다. 그리고 감정은 대부분 메시지 외 적인 요인들로부터 발견된다. 흔히 비언어적 커뮤니케이 션(non-verbal communication)이라고 부르는 표정, 몸 짓, 말투, 손짓, 자세 등이 메시지 자체의 내용보다 더욱 많은 역할을 하는 이유다.

생물의 진화와 커뮤니케이션 우리는 흔히 인간만이 커뮤니케이션을 한다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진화적으로 먼저 등장 한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은 다수의 동물 종에서 발견된 다. 또한 커뮤니케이션의 의미를 둘 혹은 그 이상의 개체 들끼리 신호를 주고받는 행위라고 확대해서 정의한다면 심지어 박테리아와 식물도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가령 식 물은 효모나 곰팡이 같은 균류의 도움을 받아 서로 커뮤니 케이션한다. 사실상 모든 생명체는 (넓은 의미에서) 커뮤 니케이션을 한다. 단지 인간만이 언어와 문자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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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다른 생명체가 커뮤니케이션을 한 다는 사실을 발견하면 매우 신기해한다. 왜 모든 생명체는 커뮤니케이션을 할까? 그것은 커뮤니 케이션이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도구 중 하나이기 때문이 다. 외로이 혼자 살아가는 경우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같은 혹은 다른 종의 개체와 상호작용하는 경우 중 어떤 것이 더 생존에 유리하겠는가? 최근에 밝혀진 바로는 굶 주린 박테리아는 주변의 다른 박테리아들과 연결되는 아 주 미세한 관을 만들고 그 관을 통해 양분을 공급받는다. 물론 이를 위해 박테리아들 간에 어떤 식으로든 커뮤니케 이션이 필요하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이 특별한 이유는 다른 동물들과 달리 ‘추상적’ 의미를 주고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만 이 추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아무리 다른 생 명체들이 커뮤니케이션을 한다고 해도 일차적이며 직접 적인 의미 전달에 머물 수밖에 없다. 이들의 뇌는 추상적 인 사고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연과학적 지식들은 넓게는 생명체, 좁게는 인 간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보다 심도 있는 이해를 가능하 게 해 준다. 하지만 이제까지 대부분의 사회과학 연구들 처럼 커뮤니케이션 분야의 연구들도 자연과학적 지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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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여 기서는 하나의 새로운 시도로서 뇌과학을 중심으로 자연 과학적 연구 결과들을 이용하여 커뮤니케이션 현상에 대 해 살펴보았다. 다만 이 책에서는 과학과 관련된 전문적인 용어나 지나 치게 복잡한 내용은 가급적 배제해 일반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뇌과학과 관련된 일반 서적들은 복 잡한 뇌 그림과 과학적 도표들로 페이지를 가득 메워 읽을 의욕을 꺾곤 했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깊은 이해를 위해 서는 그림이나 사진, 도표들을 활용해야 한다. 하지만 이 책은 과학에 대해 별다른 지식이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기에 과학적 내용은 최소화했다. 가급적 어떤 현상에 대한 설명을 제공할 때에만 과학적 사실들을 이용했으며 그 의미를 풀어서 전달하는 데 주력했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은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진 화적 관점에서 단세포부터 다세포 생물 그리고 인간에 이 르기까지 커뮤니케이션이 생존을 위해 필수적으로 요구 되는 도구라는 것을 살펴보았다. 이후 동물들의 커뮤니케 이션을 살펴보며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이 어떻게 등장 했으며 이것이 감정과 어떠한 연관성이 있는가를 설명했 다. 이후 고등동물이 어떻게 공감(empathy)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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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것이 뇌의 어떠한 기능에 의해 이 루어지는가를 서술했다. 또한 미디어와 뇌가 어떠한 연관 성이 있는지, 그리고 기술의 발달에 따라 향후 뇌가 미디 어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그 결과 뇌에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 제시되어 있다. 궁극적으로 자연과 학적 지식들의 도움을 받을 때, 그동안 그 기원과 이유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인간의 여러 가지 특징을 더욱 잘 이 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커뮤니케이션의 관점에서 설명 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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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자연과학적 접근의 필요성

01

커뮤니케이션의 진화적 기원

02

생명체와 커뮤니케이션

03

동물 커뮤니케이션

04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의 기원

05

인간의 뇌와 커뮤니케이션

06

감정과 커뮤니케이션

07

공감 커뮤니케이션

08

미디어와 뇌

09

뇌와 미디어 인터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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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미디어 환경과 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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