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자율 규제와 법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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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케이션이해총서

인터넷 자율 규제와 법 황승흠

대한민국,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2014


자율 규제 2.0 = 자율 + 법

인터넷 규제의 새로운 출발점 인터넷이 의사소통의 중요 수단으로 등장하면서 인터넷 을 규율하려는 노력도 지속되어 왔다. 인터넷이 의사소통 수단인 만큼 현실의 어두운 그림자도 있는 그대로 모사할 수도 있기에 불법이 존재하는 정도는 현실에서 그것이 존 재하는 정도와 대략 일치한다. 인터넷 규제의 필요성은 현실의 규제 필요성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 럼에도 인터넷으로 구현되는 세계는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가상의 세계이므로 인터넷 규제는 그것이 가지는 고 유한 속성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2002년의 헌법재판소 결정은 인터넷의 속성에 대해 명시한 규범적 선언이다(헌 법재판소 2002. 6. 27. 99헌마480, 전기통신사업법 53조 등 위헌 확인). “인터넷은 공중파 방송과 달리 ‘가장 참여적인 시장’, ‘표현 촉진적인 매체’다. 공중파 방송은 전파 자원의 희소 성, 방송의 침투성, 정보 수용자 측의 통제 능력 결여와 같 은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그 공적 책임과 공익성이 강조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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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인쇄 매체에서는 볼 수 없는 강한 규제 조치가 정당화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인터넷은 위와 같은 방송의 특성이 없으며, 오히려 진입 장벽이 낮고, 표현의 쌍방향성이 보 장되며, 그 이용에 적극적이고 계획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는 특성을 지닌다. 오늘날 가장 거대하고, 주요한 표현 매 체의 하나로 자리를 굳힌 인터넷의 표현에 대하여 질서 위 주의 사고만으로 규제하려고 하면 표현의 자유 발전에 큰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 표현 매체에 관한 기술의 발달은 표현의 자유의 장을 넓히고 질적 변화를 야기하고 있으므 로 계속 변화하는 이 분야에서 규제의 수단 또한 헌법의 틀 내에서 다채롭고 새롭게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불온 통신 규정을 위헌이라 했던 2002년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미연방대법원의 ‘리노 대 미국시민권연맹(ACLU)’ 사건에 비견될 수 있는 인터넷 표현의 자유에 대한 선언이 며 인터넷의 특성에 대한 규범적 확인이다. 헌법재판소는 인터넷은 방송과 다른 매체이며 “진입 장벽이 낮고, 표현의 쌍방향성이 보장되며, 그 이용에 적극적이고 계획적인 행 동이 필요하다는 특성”을 갖는다고 하였다. 인터넷은 인쇄 매체에 가까운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질서 위주의 사 고만으로 규제하려고 할 경우 표현의 자유의 발전에 큰 장 애를 초래”할 수 있다. 인터넷과 같이 “표현 매체에 관한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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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의 발달은 표현의 자유의 장을 넓히고 질적 변화를 야기 하고 있으므로” 규제의 수단 또한 새롭게 강구해야 한다. 인터넷 규제 정책은 2002년 헌법재판소 결정 이전과 이후 로 나눌 수 있다. 기존의 질서 위주 사고만으로 규제하려는 것은 더 이상 통용될 수 없고 새로운 규제 틀을 제시해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새로운 규제 수단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이제까지의 논의를 바탕으로 볼 때 새로운 규제 수단이라는 것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그 림은 그려 볼 수 있다. 먼저 헌법재판소의 결정에서 “질서 위주의 사고”라는 것은 정부 규제만으로 인터넷을 규율하 려는 접근일 수 있다. 그러나 정부는 법적으로 강력한 집 행 수단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것이 가지는 여러 한계와 인 터넷의 특성 때문에 실효성이 문제되고 있으며, 헌법적으 로도 검열이라는 시비를 불러일으킨다. 인터넷에서 정부 규제에 대한 유력한 대안으로 사업자 자율 규제가 등장하 였다. 하지만 사업자에 의한 자율 규제가 순수한 의미에 서 사업자의 자율로 이루어진다는 접근이나 자율 규제가 정부 규제를 대체한다고 보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 이 그간의 경험이었다. 인터넷사업자의 법적 책임이야말 로 사업자의 자율 규제를 이끌어 내는 가장 중요한 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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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사업자의 자율 규제는 법적 책임이라는 리스크를 최 소화할 수 있는 적극적인 조치다. 사업자의 자율 규제는 인터넷의 규율이라는 공통의 목적을 갖고 있는 정부 규제 를 대체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하기보다는 정부 규제 와 사업자의 자율 규제가 서로 협력하는 모델을 만들어 냈 다. 개념적으로는 사업자의 자율 규제와 정부와 사업자 공동 규제는 구별되지만 현실적으로는 순수한 의미의 사 업자 자율 규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동의어다. 공동 규제는 자율 규제와 정부 규제가 법 제도의 틀에서 결합하는 것을 말한다. 자율이 ‘타율’을 의미하는 법과 결 합하는 것, 이것이 새로운 버전의 자율 규제 2.0이라 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가 “계속 변화하는 이 분야에서 규제의 수단 또한 헌법의 틀 내에서 다채롭고 새롭게 강구되어야 할 것”이라 했을 때 새로운 규제의 수단이 바로 법 제도와 결합한 자율 규제 2.0일 것이다.

자율 규제 시스템에서 법 제도의 역할 인터넷 자율 규제와 법적 규제의 새로운 결합은 현재 가장 유력한 인터넷 규제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자율 규제 의 법제도화는 시민사회의 합의 기제를 통한 법적 규제의 실효성 확보의 차원이기도 하며, 민간의 자율 규제 역량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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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자원을 결합시키는 체제가 법적으로 구현되는 양 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자율 규제 시스템에서 법 제도의 역할은 어떠해야 하는가? 첫째로 법 제도는 사업자의 자율 규제 역량을 강화하거 나 자율 규제 기반을 조성하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이 를 위해서 중요한 것은 사업자의 법적 책임 한계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어디까지를 법적 책임으로 볼 것인가는 그 나 라의 여건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지만, 대개 입법에서 공 통적으로 보이는 것은 자율 규제의 기반 조성을 위해 면책 범위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사업 자에게 자율 규제를 ‘권유’하건 아니면 ‘강제’하건 간에 자 율 규제 조치를 하면 법적 책임이 면책된다는 확고한 인센 티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는 법이라는 자원을 이용하 여 사업자의 자율 규제 역량을 강화시킨다는 것이다. 예외 적으로 자율 규제의 강제는 있어도 법적 책임의 면책이 없 는 경우도 있다. 이는 사업자에 대한 허가권을 정부가 확고 하게 가지고 있을 때 성립될 수 있는 모델이다. 둘째로 논의할 수 있는 것은 법 제도에서 자율 규제와 정부 규제 간의 경계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점이다. 사업 자의 자율 규제가 실시되는 때에 기존 정부 규제와 관계는 어떻게 되는가를 법적으로 분명하게 하지 않으면, 정부 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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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와 자율 규제가 이중적 또는 중첩적으로 적용되어 사업 자는 이전보다 오히려 법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독일법과 같이 인터넷에 대해 오프라인 매체의 규 제 체제를 적용하지 않는다고 명시하는 것, 호주법과 같이 사업자의 자율 규제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에 한하여 정 부 규제를 강제할 수 있다는 것 등의 입법례가 있다. 자율 규제가 규제를 적게 하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결코 과거 보다 규제가 많아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셋째로는 대개 입법 사례들이 사업자 자율 규제의 절차 와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 다. 이는 자율 규제라는 것이 역사적 경험이 축적되어 있 지 않은 분야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법에서 구체적인 방법 과 절차를 제시하는 것이 자율 규제의 활성화에 보다 기여 할 것이다. 자율 규제의 실행 절차나 기구의 구성을 법에 서 명시적으로 제시할 수도 있다. 아니면 ‘약한 의미에서 법(soft law)’이라 할 수 있는 행동 강령(code of practice) 을 정하고 이를 준수하게 할 수도 있다. 행동 강령의 내용 도 일정한 기준을 법에서 제시할 수 있다. 행동 강령의 근 거와 기준을 국가법이 제시하고 그것의 구체적 내용은 사 업자가 정하고 준수하며, 국가법에서 자율 규제 준수에 따 른 법적 책임의 한계를 명확하게 해 준다는 것이야말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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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 규제와 법 제도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는 공동 규제의 전형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한국 법 제도의 인터넷 자율 규제 한국 법 제도를 개관해 볼 때, 미디어 영역에서 사업자 자 율 규제에 대한 규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청소년보호법의 ‘매체물 사업자에 의한 자율 규제 규정’과 방송법의 ‘방송 사업자에 의한 자체 심의 규정’을 들 수 있 다. 인터넷의 명예훼손 문제에 관하여 「정보통신망의 이 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통신망법’ 이라 한다)의 임시 조치 제도와 저작권 침해에 관하여 저 작권법에 규정된 온라인 서비스 제공자의 책임 조항 등이 사업자 자율 규제에 관한 것이다. 이와 같이 부분적으로 사업자 자율 규제에 관한 법 제도를 도입하기는 하였지만, 인터넷 규제 전 영역에서 포괄적인 수준의 사업자 자율 규 제에 대한 논의는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청 소년보호위원회 등과 같은 정부가 운영하는 법정 기구에 의한 인터넷 콘텐츠 심의 제도가 있어서다. 즉, 이미 정부 기구의 인터넷 콘텐츠 심의 제도가 확립되어 있는 상황에 서 사업자 자율 규제를 도입한다는 것은, 정부 기구의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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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넷 콘텐츠 심의 기구 역할을 축소하거나 아니면 폐지하 는 전제가 없는 이상은 이중 규제 또는 중복 규제의 상황 이 되어 사업자의 부담만 강화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 이다. 따라서 정보통신망법에서와 같이 “정보 통신 서비 스 제공자 단체는 이용자를 보호하고 안전하며 신뢰할 수 있는 정보 통신 서비스의 제공을 위하여 정보 통신 서비스 제공자 행동 강령을 정하여 시행할 수 있다”는 막연한 조 항만으로는 결코 사업자 자율 규제를 실행시킬 수 없을 것 이다. 하지만 위에서도 논의하였지만 인터넷이라는 매체 의 성격으로 볼 때, 정부 기구의 동력만으로 원하는 규제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기 때문에 사업 자 자율 규제의 도입을 통한 정부와 민간의 공동 규제 모 델의 실행은 더 이상 논의를 지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사업자 자율 규제를 법 제도로 규정한다고 할 때 방송 법의 자체 심의 조항과 같이 법적으로 사업자에게 자율 규 제를 명령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법적으로 싱가포르 와 같이 정부가 인터넷 사업자에 대한 허가권을 가지고 있 다는 전제에서 가능한 것이다. 전기통신사업법에서 인터 넷 콘텐츠 사업자는 부가 통신 사업자로서 신고제로 운영 된다. 따라서 자율 규제를 명령하는 모델을 도입할 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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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다. 그렇다면 공동 규제 모델의 도입을 위해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할 법적 과제는 사업자의 법적 책임 한계를 정 하는 포괄적인 법 조항을 도입하는 것이다. 특히 한국 법 제도에서는 청소년보호법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책임만 부 여하고 이에 대한 면책요건이 없어 사업자에게 상당한 법 적 리스크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정보통신망법이 정하는 ‘임의의 임시 조치’ 규정도 같은 논의를 할 수 있다. 미국 연방 통신품위법의 ‘선한 사마리아인’ 조항을 가져오기는 했는데, 그것의 핵심 내용이라 할 수 있는 면책조항은 가 져오지 않았다. 정보 통신 서비스 제공자가 자신이 운영· 관리하는 정보 통신망에 유통되는 정보가 사생활 침해 또 는 명예훼손 등 타인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인정되면 자발 적으로 임시 조치를 할 수 있지만, 이에 대해서 어떠한 법 적 면책을 받을 수 없다. 타인에게 호의를 베풀면 오히려 법적 책임의 늪에 빠져 들 수 있는데 과연 ‘선한 사마리아 인’이 될 인터넷 사업자가 얼마나 될까 하는 의문이 든다. 정보 통신 서비스 제공자가 자신이 운영·관리하는 정보 통신망에 유통되는 정보에 대하여 피해자의 요청으로 임 시 조치할 경우 이로 인한 배상 책임을 줄이거나 면제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정보통신망법의 면책 조항과 온라인 서비 스 제공자의 책임을 제한하는 저작권법과 같이 사업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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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한 행위를 법이 정한 절차로 하였을 때 법적 책임을 면 책해 주는 규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를 인터넷 규제와 관련하여 보다 일반적인 수준에서 규정할 필요가 있다. 둘째로 사업자의 자율 규제와 기존 정부 규제의 경계를 명확히 해 주는 법적 조치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청소년 보호법의 자율 규제 규정을 보면, 인터넷 사업자가 어떤 정보에 대해서 청소년 유해매체물이라고 판단하면, 별도 의 심의 절차 없이도 법적으로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인정 하고 이에 대한 법적 효과를 발생시키도록 하고 있다. 그 러나 이 제도는 인터넷 사업자가 자체로 심의하여 청소년 유해매체물이라고 판단한 것에 대해서만 법적 효과를 규 정하고 있을 뿐이며, 청소년 유해매체물이 아니라고 판단 한 것에는 어떤 법적 효과를 규정하고 있지 않다. 다시 말 해 청소년 유해매체물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어떤 법적 면 책도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차피 정부 기구들의 사후 심의를 통해서 청소년 유해매체물 여부가 결정되므로 사업자는 스스로 심의해야 할 어떠한 동기도 부여받지 못하는 것이다. 청소년보호법의 자율 규제 조항 이 사실상 사문화한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라 고 볼 수 있다. 청소년 유해매체물이 아니라는 사업자의 판단에 대해서 법적 효과를 부여해 줄 수 있어야만 이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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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이 공동 규제로서 작용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독일의 청 소년미디어보호주간협약과 같이 사업자가 자율 규제를 실행하면 기존의 규제 적용을 제한하거나 의무 부담을 면 제해 주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정부 기구의 인터넷 콘텐츠 심의 제도를 축소하거나 폐지하는 방안도 검토하 여야 한다. 이러한 이니셔티브를 부여해 주어야만 사업자 가 자율 규제 영역에 자원을 투입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로 효과적인 자율 규제가 실행되기 위해서는 사업 자 자율 규제의 절차와 방법을 법적으로 정해야 하는데 이 를 위해서는 독일법이나 호주법이 정하는 자율 규제의 절 차와 방법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며, 정보통신망법의 임시 조치 규정이 정하는 절차도 많은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이 다. 어떤 경우에 사업자가 조치를 할 수 있으며, 그 조치를 위해서 거쳐야 할 절차는 어떤 것이며 그 조치로 인한 법 적 효과는 어떻게 되는지 법에 규정되어 있으면 사업자의 자율 규제는 보다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하게 운영될 것이 다. 물론 법률에 사업자 자율 규제에 관해서 세세하게 규 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느냐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사업 자 자율 규제는 국가 작용이 아니므로 법치주의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없다. 사업자 자율 규제가 법적으로 규율 되는 것은 그것이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려는 것인 만큼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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략의 얼개만 법적으로 규정되면 충분하다. 구체적인 사항 에 대한 규율은 사업자 행동 강령으로 하면 된다. 사업자 자율 규제의 절차와 방법을 정하는 행동 강령에 대한 법적 근거를 부여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인 입법 체제일 것이다. 끝으로 인터넷 규제와 직접 관련성은 없지만 온라인 게 임에 대한 법적 규율인 게임 등급 분류의 자율 규제를 언급 하고자 한다. 온라인 게임은 게임이라는 특성과 함께 디지 털 콘텐츠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더구나 스마트폰으로 구 동되는 게임은 글로벌 수준에서 유통된다. 한국 법을 기초 로 하는 게임 등급 분류 제도는 게임의 글로벌 유통과 긴장 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게임산업 진흥에 관한 법 률」에서는 무선 인터넷으로 접속되고 스마트폰이나 태블 릿 PC에서 구동되는 게임에 대해서 오픈마켓 유통사업자 가 자체 등급 분류를 하고 이를 표시하는 경우에는 게임물 관리위원회의 사전 등급 분류를 받지 않도록 하고 있다. 국 외의 오픈마켓 유통 사업자에게도 이 규정이 적용되므로 애플이나 구글과 같은 사업자들이 자신이 운영하는 오픈 마켓을 통해 게임물관리위원회의 사전 등급 분류 없이도 게임을 유통시킬 수 있다. 게임 오픈마켓 유통사업자의 자 체 등급 분류는 국가 강제 등급 분류라는 틀 안에서 사업자 의 자체 등급 분류를 결합시켰다는 점으로 공동 규제의 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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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게임 등급 분류와 같은 콘텐츠 유 통 체제에서 인터넷 규제보다 더 앞서가는 자율 규제 시스 템을 구현한 셈이다. 게임 등급 분류에서는 청소년불가 등 급을 제외한 등급에 대해서는 등급 분류 업무를 민간 등급 분류 기관에 위탁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인터넷 규제는 방송과 통신의 규제 체제 통합 이후로 오히려 더 경직되는 경향이 있다. 정치·사회적 관심이 방송에 쏠리다 보니 인터넷 규제도 방송 규제를 닮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없지 않다. 게임 등급 분류의 자 율 규제 도입과 같이 좀 더 전향적인 자세로 인터넷에 자 율 규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황승흠 · 황성기 · 김지연 · 최승훈(2004). 󰡔인터넷 자율 규제󰡕. 커뮤니케이션북스. 황승흠(2008). 인터넷 콘텐츠 규제에 있어서 법제도와 사업자 자율 규제의 결합에 관한 연구. ≪공법학연구≫, 제9권 제4호. 한국비교공법학회. 황승흠(2014). 󰡔영화 · 게임의 등급분류󰡕. 커뮤니케이션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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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자율 규제

자율 규제는 자율의 의미 때문에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규제가 타율적인데 자율이라는 것이 가능한가? 자율 규제는 규제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규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부가 아니라 규제 대상인 사업자 스스로가 규제를 이끌어 가겠다는 것이다. '사업자 스스로'라는 의미에서 자율이다. 하지만 자율 규제는 사업자의 윤리 의식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다. 사업자의 법적 책임이 자율 규제의 동력이다. 그래서 자율 규제는 법적 규제와 결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율 규제 논의의 배경 왜 자율 규제가 필요한가? 여기에 대해서는 다양한 관점 에서 다양한 논거들이 제시되어 왔다. 인터넷이라는 매체 가 갖는 특성과 오프라인 매체에 대한 규율을 전제로 하였 던 기존의 법체계가 인터넷의 등장으로 한계를 지닐 수밖 에 없게 되었다는 점이 흔히 지적된다. 또한 인터넷이 가 지는 국제성이라는 특성 때문에 외국에서 관리하는 콘텐 츠에 대해서 자국법(自國法)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점도 거론된다. 무엇보다도 사업자가 실질적으로 인터넷 콘텐 츠의 유통을 ‘지배’하고 있으므로 사업자에 의한 조치가 규제 목표의 달성에 가장 효과적이라는 점이 인터넷 콘텐 츠 자율 규제의 출발점이라고 볼 수 있다. 자율 규제 논의의 배경에서 주목할 점은 이것이 표현의 자유와 검열 간의 긴장을 완화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제 기되었다는 것이다. 정부 기관의 직접적인 콘텐츠 규제 는 표현의 자유 침해 문제를 야기할 수 있으며 검열의 시 비를 불러일으킨다. 그럼에도 청소년 보호 등을 이유로 콘텐츠의 유통을 규제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는 여전히 존재한다. 이와 같은 긴장의 국면에서 정부가 아닌 사업 자 자율 규제에 의해서 콘텐츠의 유통을 규율하는 것이 검열 시비를 피하면서 사회적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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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제시되는 것이다. 실제로 인터넷 콘텐츠에 대한 자율 규제 논의는 1996년에 제정된 미국의 연방 통신품위 법(the Communication Decency Act)의 위헌 논쟁을 통 해서 본격 제기되었다. 즉, 인터넷 기업들이 자율 규제를 통해 문제 있는 콘텐츠를 걸러 낼 수 있는 시스템을 운영 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국가가 콘텐츠의 유통 여부를 ‘직 접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것이다. 자율 규제는 표현의 자유가 핵심 가치로 적용되는 미디어 영역에서 핵 심 가치를 훼손하지 않고서도 규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는 측면에서 새로운 규제 패러다임으로 제시된 것이다.

자율 규제 개념을 둘러싼 오해 그런데 일반적으로 자율 규제에 대해 이해를 잘못하고 있 는 경향이 있는데, 그 오해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어떤 이유에서건 민간 영역이 규제의 필요성을 자각하여 스스로 규제하는 경우에도 자율 규제의 개념을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자발적’ 자율 규제는 자 율 규제 이념형의 하나로 취급될 수 있지만 현실을 설명하 는 데는 혼동을 줄 수도 있다. 이러한 의미의 자율 규제는 행위자들 각각의 특수한 동기들에 기인하는 것으로 제도 밖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법 제도와 전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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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한 순수한 자율 규제를 상상하기는 어렵다. 둘째, 자율 규제의 개념은 ‘탈규제(de-regulation)’와 다 르다. 탈규제는 과도하거나 혹은 시장 요인을 약화하는 공적 규제를 제거하는 데 목적을 둔다. 하지만 자율 규제 는 어떠한 규제의 틀을 해체하거나 완화하는 데 목표를 두 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규제의 틀을 구축하고 운영하는 행 위자를 바꾸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셋째, 자율 규제는 정부 규제로부터의 회피, 정부와 대 결 혹은 계획된 분리를 의미하는 ‘비규제(un-regulation)’ 와도 다르다. 오히려 자율 규제의 구현 장치들은 정부의 규제에 완전히 독립하여 존재하는 경우가 드물며, 이러한 경향은 규제 대상이 미디어 영역에서 콘텐츠 통제일 경우 더욱 그러하다. 넷째, 자율 규제는 규제의 모든 요소들-규범, 판단, 집행, 기타 규제의 절차-이 자동적으로 규제되는(autoregulated) 상황으로 오해되기도 한다. 이러한 오해는 규 제 행위를 지배하는 규범들뿐만 아니라 그러한 규범을 구 현하는 장치들까지 전통적으로 규제 대상이 되었던 시장 영역으로부터 형성되어야 한다는 이상적 모델을 상정하 여, 자율 규제를 법적 규제의 안티테제로 만들어 버린다. 하지만 이는 법의 한계에 대한 너무나 단순한 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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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 규제와 법적 규제 비교 자율 규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대척점에 있는 법적 규 제와 비교할 필요가 있다. 법적 규제와 비교하여 자율 규 제의 장점으로는 첫째, 자율 규제는 당면한 문제들과 직접 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당사자들에 의해 실행된다는 점이 다. 인터넷 사업자들은 당면 문제들을 즉시 해결하는 데 필요한 수단들을 쉽게 이용할 수 있다. 반면 법 집행 기관 은 인터넷의 문제들에 대한 이해가 우선적으로 요구되고,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법제도화하는 경우에도 구체적 인 집행에서는 궁극적으로 인터넷 산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둘째, 자율 규제는 법적 규제보다는 유연한 방식이며, 또한 신속한 대응이 가능한 방식이다. 왜냐하면 인터넷 사업자들은 자신들의 관행이나 경영 방침을 신속하게 바 꿀 수 있으며, 항상 변화하는 현실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반면에, 법적 규제는 관련 입법들을 개정하기가 쉽지 않고, 또한 법 개정 절차는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절차이 기 때문이다. 셋째, 자율 규제는 법적 규제보다는 국제적인 방식이라 는 점도 하나의 장점으로 지적할 수 있다. 인터넷 사업자 들은 국제적인 차원의 협조가 보다 쉬운 반면, 법적 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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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원칙적으로 당해 국가 영역 내에서만 적용되며, 국가 간 협력에서는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이에 대해서 법적 규제의 장점은 첫째, 법적 규제는 모 든 국민들에게 구속력을 갖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반 면 자율 규제는 자율 규범 및 이의 자발적 준수를 담보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구속력이 없다. 둘째, 법적 규제는 본질적으로 입법으로 제도화하고, 국가의 강제력을 담보로 집행되지만, 자율 규제는 그렇지 못하다. 셋째, 법적 규제는 민주적인 의회의 결정에 기반을 두 고 있다. 반면 자율 규제는 종종 여타 관련 당사자들, 예컨 대 부모 등의 참여 없이 인터넷 산업 부문의 특수한 이해 집단에 의해서만 행해질 수 있다. 따라서 법적 규제는 사 업자에 의한 자율 규제보다 훨씬 더 강력한 도덕적 권위를 지니게 된다.

자율 규제와 법적 규제의 관련성 법적 규제를 통한 인터넷 콘텐츠 규율에 한계가 있고, (순 수한 이념형으로서) 자율 규제가 법적 규제를 완전히 대체 하지 못한다면, 결국 법적 규제와 자율 규제를 결합한 형태 가 현실적인 인터넷 콘텐츠 규율 형태가 될 것이다.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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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법적 규제와 자율 규제가 상호 조화롭게 이루 어져야 하고, 정부와 시민사회가 공동 주체로서 참여하는 공동 규제 시스템(co-regulatory system)이 효과적인 규제 방식으로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즉, 사업자의 자율 규제만 으로는 제재 등과 같은 의무 이행 강제 수단이 없어서 모든 사업자들이 자율 규제 시스템에 참여하는 것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며 일반적으로 적용하기도 힘들 것이다. 그리 고 법적 규제 시스템만으로는 급변하는 기술적 특성이나 국제성 때문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관련 당사자들의 협력 을 얻기가 어려워 실패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자율 규제가 성공적으로 정착하더라도, 인터넷의 법적 인 체계를 보호하는 궁극적인 책임은 정부에 있다는 사실 은 재론할 여지가 없다. 공공의 안녕과 사회적 안전이 염 려되는 경우, 정부는 당연히 법적인 조치를 취해야 하며, 그러한 정부의 고유한 역할을 자율 규제 절차가 대신해 줄 수는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 자율 규제는 정부 규제 또는 법적 규제의 완전 대체물이 아니다. 이 때문에 정부 규제 는 자율 규제의 출발뿐만 아니라 실행 단계에서도 여전히 위협 요인으로 작용한다. 아무리 순수한 의미의 자율 규 제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불법 콘텐츠에 대한 규제 권한은 정부(특히 사법 당국)에 있기 때문에 상시적으로 정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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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콘텐츠에 개입할 수 있는 통로를 가지고 있다. 이 는 법적으로 정부 규제의 한계를 명확히 설정해 주지 않으 면 자율 규제는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점은 공동 규제 시스템이라는 것이 단순한 합작 또는 결합이 아니라 자율 규제의 안정성을 보장해 주 는 현실적인 장치라는 점을 말해 주는 것이다. 인터넷 사 업자는 비록 자율 규제 이전보다 비용 면에서 추가 부담이 있지만, 법적 안정성을 얻어 오히려 더 큰 이익을 볼 수도 있다. 정부는 새로운 디지털 기술의 등장과 인터넷의 국 제적 성격 때문에 전통적 방식으로는 인터넷의 불법·유 해 콘텐츠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게 된 규제 환경에서, 콘텐츠 규제라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율 규제가 지니고 있는 여러 가지 장점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사업자의 역량을 동원하는 규제 체 제를 통해 보다 비용이 저렴하며 효과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자율 규제 체제란 ‘민간 영역이 전통적인 정부 영역에 해당되었던 규제 영역에 적극적으 로 참여하고, 정부 영역은 이러한 민간 영역의 활동과 역 할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협력·지원함으로써, 규제의 합 리화와 효율성을 추구하는 규제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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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이와 같은 의미에서 자율 규제는 정부와 사업자의 ‘공 동 규제 시스템’과 사실상 동의어로 볼 수 있다.

참고문헌 황승흠 · 황성기(2003). 󰡔인터넷은 자유공간인가?: 사이버공간의 규제와 표현의 자유󰡕. 커뮤니케이션북스. 황승흠 · 황성기 · 김지연 · 최승훈(2004). 󰡔인터넷 자율 규제󰡕. 커뮤니케이션북스. Ulrich Sieber(2000). “Legal Regulation, Law Enforcement and Self-regulation: A New Alliance for Preventing Illegal Content on the Internet”, in Jens Walterman & Marcel Machill(eds.). Protecting Our Children on the Internet:

Towards a New Culture of Responsibility. Bertelsmann Foundation Publishers. Gütersl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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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리노 대 미국시민권연맹

1996년 미연방의회는 통신품위법이라는 최초의 인터넷 규제 입법을 제정하였다. 통신품위법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사업자와 시민단체의 입장과 청소년 보호를 위해 불가피하다는 정부 입장이 맞섰다. 돌파구는 사업자가 제시한 자율 규제 방안이었다. 1997년 미연방대법원은 사업자와 시민단체가 제기한 통신품위법 위헌 소송인 리노 대 미국시민권연맹(ACLU) 판결에서 사업자 자율 규제가 가능하다는 것이 정부 규제에 대한 위헌성 판단의 한 이유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통신품위법의 입법과 위헌판결 1996년 2월 1일에 미합중국 연방의회를 통과한 ‘통신품위 법(CDA, the Communications Decency Act)’은 청소년 보호를 목적으로 인터넷의 성 표현물을 규제한 최초의 입 법이다. 통신품위법(CDA)의 입법 과정에서 다분히 즉흥 적인 측면을 엿볼 수 있다. 1995년 2월 1일, 제임스 엑슨 (James Exon) 상원의원은 “야만적인 포르노 업자들이 바 로 문 앞에 와 있습니다. 그들은 미국의 청소년에게 접근하 기 위해서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습니다”라고 미국 사회에 닥친 위험을 경고하면서 이제까지 행하지 않았던 인터넷 의 표현(speech)에 대한 규제를 제안하였다. 하원의 반대 가 있었지만 상하원 합동위원회에서 수정 통과된 법안에 는 인터넷을 규제하려는 엑슨 의원의 의도가 관철되었다. 1996년 2월 8일, 클린턴 대통령은 통신품위법이 포함된 ‘1996년 통신법(the Telecommunications Act of 1996)’에 서명하였다. 같은 날 ‘미국시민권연맹(ACLU, the 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은 다른 원고들과 함께 펜실베이니 아 연방지방법원에 통신품위법(CDA)의 두 개 조항이 수 정헌법 제1조가 보호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는 이유로 위헌 선언과 함께 잠정적 금지 명령을 청구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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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들이 수정헌법 제1조를 위반했다고 주장한 통신품 위법(CDA)의 두 개 조항은 인터넷에서 음란물을 18세 이 하의 미성년자에게 전송하는 행위를 규제하고 있다. “저 속한 표현” 조항은 “원격통신장치”를 이용하여 18세 이하 가 받을 것을 알고, 이들에게 음란 또는 저속한 표현물을 전송하는 자에 대하여 2년 이하의 구금을 할 수 있도록 하 고 있다. “명백히 불쾌한” 조항은 현재 지역공동체의 기준 에 의하여 평가할 때 명백히 불쾌한 표현이나 서술을 18세 이하의 사람에게 획득시킬 목적으로 대화식 컴퓨터 서비 스를 이용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1996년 6월 11일, 미연방항소법원 제3순회재판소는 두 조항의 위헌을 선언하고, 이의 집행에 대해서 잠정적 금지 명령을 내리는 역사적 판결을 내렸다. 이에 대해서 정부 는 즉각 연방대법원에 상고하였고, 미연방대법원은 1997 년 6월에 위헌판결(리노 대 미국시민권연맹)을 내렸다. 이 사건은 수정헌법 제1조의 인터넷 적용 문제를 전반적 으로 다룬 최초의 판결이다. 리노는 상고인이며 연방정부 의 법무부장관 겸 검찰총장인 재닛 리노를 뜻하고 미국시 민권연맹(ACLU)은 피상고인이자 처음 소송을 제기한 원 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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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표현의 자유 보장 리노 대 미국시민권연맹(ACLU) 사건에서 문제된 법적 쟁 점은 새롭게 등장한 매체인 인터넷에 어느 정도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할 것인가이었다. 미연방대법원은 “다른 매 스미디어는 다르게 취급한다”는 매체별 접근 방식으로 대 중매체에 대한 규제 방식을 다루었다. 미연방대법원은 연방통신위원회(FCC) 대 퍼시피카 재단 판결(1978)에서 라디오방송에서 비속어 7가지를 반복해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규제 조치는 비록 이 표현이 음란하지 않고 단 순히 저속한 표현이라 하더라도 헌법적으로 허용된다고 하였다. 무심코 라디오의 다이얼을 돌리는 청취자가 문 제의 방송을 듣게 되면 흘러나오는 비속어 7가지는 “예상 치 않은 공격”이 되리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불건전한 방 송 프로그램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방 법은 아예 방송을 타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사건에 서 법원은 라디오방송 프로그램이 가진 시민의 가정 내로 밀고 들어가는 강력한 ‘침투성’을 규제의 근거로 제시하 였다. 침투성은 정보 수용자 측에 통제 가능성이 결여되 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매체별 접근 방식은 이른바 ‘음 란전화(dial-a-porn)’가 문제된 세이블 통신주식회사 대 연방통신위원회(FCC) 판결(1989)에서도 적용되었다.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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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서 미연방대법원은 음란전화의 저속한 표현까지 금지 하고 있는 규제는 수정헌법 제1조 표현의 자유를 위반한 것이라고 하였다. 전화는 방송과 같이 다이얼을 돌리자마 자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전화를 걸고, 이 후에도 몇 단계의 버튼을 눌러야만 문제의 콘텐츠에 접근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성인들을 위해 저속한 표현을 허 용한다고 해도 청소년들이 저속한 콘텐츠에 접근하는 것 을 충분히 막을 수 있다. 결국 전화라는 매체는 방송에 비 해 ‘침투성’이 약하므로 정보 수용자가 콘텐츠를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통신품위법(CDA)을 옹호한 미연방정부 측은 퍼시피카 판결에서 나온 규제 원리를 인터넷에 적용해야 한다고 주 장하였다. 인터넷 매체는 방송 매체와 비슷한 특성을 가 지고 있기 때문에 청소년 보호를 위해 저속한 표현을 규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청소년들이 쉽게 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고, 마우스의 클릭만으로 성 표현물을 얻을 수 있다 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미연방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용 방식에서 인터넷은 스위치만 켜면 프로그램 이 나오는 방송과는 차원이 다르다. 먼저 인터넷에 접속 해야 하고, 여러 단계의 클릭을 해야만 저속한 표현에 접 근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이용자는 정보를 충분히 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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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인터넷에서 ‘침투성’은 방송에 비해 상당히 약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터넷은 방송 매 체와 동일하게 취급되어서는 아니 된다. 다시 말해서 퍼 시피카 판결을 적용할 수 없으며, 오히려 세이블 판결의 법리를 적용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인터 넷은 인쇄 매체와 마찬가지로 최대한 표현의 자유를 보장 해야 한다. 리노 대 미국시민권연맹(ACLU) 판결(1997)은 새로운 대중매체로서 인터넷은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 장해야 할 매체라고 법리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통신품위법의 실효성 논쟁 통신품위법(CDA)과 같이 음란물 또는 저속한 표현이 청 소년에게 전송되는 것을 규제한다고 했을 때, 문제가 되는 것은 인터넷의 성 표현물에 대한 청소년의 접근을 어떻게 적절히 통제할 수 있는가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기본적 으로 성인·청소년에 대해 음란물·저속한 표현 기준을 사용할 때 문제되는 것이다. 즉, 음란물에 포함되지는 않 지만 일반인에게 “명백하게 불쾌한” 성적 표현물을 ‘저속 한 표현’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성인들의 접근권은 인 정하되, 청소년의 접근을 엄격하게 통제하자는 것이다. 통신품위법(CDA)은 음란물 또는 저속한 표현을 청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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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 이하)에게 인터넷으로 전송하는 자를 처벌하고 있 다. 자신의 웹사이트에 성인의 접근이 허용되는 저속한 표현을 올려놓은 사람은 청소년의 접근을 막아야 한다. ‘전송’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기는 하지만, 인터넷의 특성 상 청소년에게 자료를 보내는 어떠한 행위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이 접속하는 순간 이미 전송이 완료되 는 것이다. 그러므로 통신품위법(CDA)의 처벌을 받지 않 으려면, 청소년의 접속을 막아야 한다. 현재 기술로는 인 터넷 이용자의 연령을 기계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은 없 다. 인터넷 이용자의 연령을 사실상 알 수 없기 때문에 인 터넷에 콘텐츠를 제공하는 자는 자신의 사이트에 청소년 이 접속하지 못하도록 하는 별도의 장치를 해야 한다. 통 신품위법(CDA)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이러한 장치가 확 실하게 청소년의 접근을 막을 수 있어야 하고, 적은 비용 으로 설치할 수 있어야 한다. 미연방정부는 청소년의 접 근을 통제할 수 있는 방안으로 신용카드 인증, 성인 아이 디에 의한 성인 확인, 웹사이트에 태그 부착을 제시하였지 만 법원을 설득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인터넷에서 청소년 의 성 표현물 접근을 막는 방법은 없는가? 불행히도 현재 의 인터넷 기술로는 연령으로 인터넷 사용자를 기계적으 로 범주화하는 방법은 없다. 이렇게 본다면 연령으로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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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넷 사용을 차별화하려고 했던 통신품위법(CDA)은 사 실상 불가능을 요구한 법이라 할 수밖에 없다. 만일 통신 품위법(CDA)의 방식대로 인터넷을 규제한다면, 인터넷 에서 청소년의 성 표현물 접근을 막지 못할 뿐만 아니라, 수많은 비영리단체나 개인의 사이트가 위축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인터넷에는 소수의 상업적인 사이트만 존재할 것이며 사용자는 비싼 사용료를 부담하 여야 하고, 결국 인터넷 자체가 위축되고 말 것이다.

인터넷 자율 규제 논의의 출발점 통신품위법(CDA)의 실효성에 관한 논쟁의 진정한 의의 는 인터넷에 대한 법적 규제가 명확하게 한계를 드러냈다 는 점이다. 그럼에도 청소년 보호라는 관점에서 이용자 의 연령을 기준으로 인터넷 접근을 통제하고자 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어떤 수단 으로 인터넷의 성 표현물에 대한 청소년의 접근을 통제할 수 있는가? 통신품위법(CDA)의 법적 규제 방식의 대안으 로 원고의 하나인 인터넷 사업자들은 자율 규제 방식을 제 안하였다. 사업자들이 제시한 것은 ‘인터넷 내용 선택 기 술 표준(PICS, Platform for Internet Content Selection)’ 을 기반으로 하여 웹사이트에 등급을 표시하고 이용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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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차단 소프트웨어를 통해 청소년의 성 표현물 사이트에 대한 접근을 통제하자는 것이다. 웹사이트의 등급은 획일 적인 단일 기관이 매기는 것이 아니라 각 주체가 자유로이 등급을 부여하는 것이다. 인터넷 내용선택 기술표준(PICS) 은 여러 주체들이 자유로이 매기는 등급이 다양한 차단 소 프트웨어와 호환될 수 있도록 해 준다. 인터넷 내용선택 기술표준(PICS)에 따라 등급을 매겨 이를 웹페이지에 메 타 태그로 달아 유통하고 이용자는 인터넷 내용선택 기술 표준(PICS)과 호환되는 차단 소프트웨어를 설치하면 된 다. 인터넷 내용선택 기술표준(PICS)은 개별 정보제공자 뿐만 아니라 제3자에게도 다양한 방식으로 인터넷의 정보 에 등급을 매길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한다. 현재의 관점에서 볼 때 인터넷 내용선택 기술표준(PICS) 기반의 등급 서비스는 성공적이라 보기 어렵다. 굳이 말 하자면, 정부 규제에 대한 대안 ‘논리’로서는 적절한 역할 을 하여 위헌판결을 이끌어내는 데 한 축이 되었지만 그 이후에 인터넷 내용선택 기술표준(PICS) 기반의 등급서 비스에 대한 사업자들의 열정이 식어 버렸다고 할 수 있 다. 인터넷 이용자들이 인터넷 내용선택 기술표준(PICS) 기반의 등급 서비스가 활성화되어 있다고 여길 만큼 등급 을 메타 태그로 달고 있는 웹사이트의 수는 많지 않다.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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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크로소프트의 익스플로러에는 인터넷 내용선택 기술표 준(PICS) 기반의 인터넷내용등급협회(ICRA) 등급 시스템 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옵션이 있지만 이 기능을 알고 있는 이용자도 극히 드물다. 그럼에도 인터넷 사업자들이 통신품위법(CDA) 논쟁에서 제시한 인터넷 내용선택 기 술표준(PICS) 기반의 등급 서비스는 인터넷 규율 체제에 서 자율 규제로 나아가는 중요한 전환점이었다고 할 수 있 다. 그 의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인터넷 규율 체제는 법적 규제 또는 정부 규제만 으로는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점이 명확히 인식되었 다. 리노 대 미국시민권연맹(ACLU) 판결이 인터넷 자율 규제의 출발점이라고 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둘째, 인터넷 규율에서 기술적 조치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이 같은 조치는 사업자 자율 규제가 기반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인터넷이라는 현상 자체가 기술의 산물이다. 따 라서 이에 대한 규율도 기술 기반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다. 이 기술을 작동시키는 것은 인터넷의 작동을 실질적 으로 담당하고 있는 사업자들이어야 한다. 셋째, 다른 시 각의 접근인데 법적 규제 없는 순수한 자율 규제는 현실적 이지 않다는 것이다. 리노 대 미국시민권연맹(ACLU) 판 결 이후 인터넷 내용선택 기술표준(PICS) 기반의 등급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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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에 대한 사업자들의 열정이 식어 버린 것이 그 예다. 인터넷 규율의 현실적인 모델은 사업자 자율 규제와 정부 규제가 결합하는 공동 규제가 될 수밖에 없다. 인터넷 자 율 규제에서 법 제도의 역할이 보다 중요해지는 것도 이러 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참고문헌 황승흠 · 황성기(2003). 󰡔인터넷은 자유공간인가?: 사이버공간의 규제와 표현의 자유󰡕. 커뮤니케이션북스. 황승흠(1999). 인터넷과 기본권-이른바 ‘불온통신’의 규제를 중심으로. ≪헌법학연구≫, 제5권 제2호. 한국헌법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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