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다알바의집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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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스페인 시골 마을에 사는 여인들의 드라마



나오는 사람들

베르나르다: 60세 마리아 호세파(베르나르다의 어머니): 80세 앙구스티아스(베르나르다의 딸): 39세 마그달레나(베르나르다의 딸): 30세 아멜리아(베르나르다의 딸): 27세 마르티리오(베르나르다의 딸): 24세 아델라(베르나르다의 딸): 20세 하녀: 50세 라 폰시아(하녀): 60세 프루덴시아: 50세 [어린 계집애와 함께 등장하는 여자 거지] 문상을 온 여자들 [여자1, 2, 3, 4.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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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막



베르나르다 집의 하얀 방. 두꺼운 벽. 끝에 복숭아 그림이 그려져 있는 황포로 된 주름 커튼을 친 아치형 문들. 부들로 된 의자들. 전설에 등장하는 왕이나 요정들이 그려진 그림 들. 때는 여름. 음침하며 무거운 침묵이 무대에 흐른다. 막 이 오를 때 무대에는 아무도 없다. 종소리가 들린다.

(하녀가 나온다.)

하녀: 저놈의 종소리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구먼.

(폰시아가 소시지와 빵을 먹으면서 들어온다.)

폰시아: 저렇게 딩딩 우는 게 두 시간도 더 됐다고. 온 마을 신부들이 다 왔어. 성당이 예쁘게 치장되어 있더군. 명복을 비는 첫 미사에서 마그달레나가 기절을 했다지. 하녀: 걔가 가장 외로울 거예요. 폰시아: 제 아버지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애였지. 아이고! 이 렇게 우리가 잠시라도 우리끼리 있게 된 것이 얼마나 하느 님께 감사한지! 난 점심 먹으러 온 거야. 하녀: 베르나르다가 보면 어쩌려고요? 폰시아: 자기가 안 먹는다고 우리 모두 굶어 죽기를 바랄 거 69


야! 명령이나 할 줄 알고 지배나 하려고 드는 여자지. 그것 도 모자라서 발광하는 여자니! 내가 그 여자의 소시지 단지 를 열었지. 하녀: (아주 슬프게) 폰시아, 우리 애한테 주게 좀 주지 않을 래요? 폰시아: 들어와서 콩 한 줌도 가져가라고. 오늘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할 거야. 목소리만: (안쪽에서) 베르나르다! 폰시아: 문은 잘 잠겨 있어? 하녀: 예, 단단히요. 폰시아: 빗장도 걸어야 돼. 그 할망구 다섯 손가락은 열쇠 같 다니깐. 목소리: 베르나르다가 와! 폰시아: (소리를 지르며) 이제 온단다! (하녀에게) 잘 닦아. 물건에서 광택이 안 나면 얼마 남지 않은 내 머리카락을 몽 땅 뽑아 버릴 거야. 하녀: 무슨 그런 여자가 다 있담! 폰시아: 그 여자는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해 폭 군이야. 네 심장 위에 주저앉을 수도 있고 1년 동안 저주받 을 상판대기에 냉소를 지어 가며 네가 어떻게 죽어 가는지 지켜볼 수도 있는 여자야. 깨끗이 하라고! 그 유리도 깨끗하 70


게. 깨끗하게! 하녀: 문지르고 닦고 하느라 손에 피가 다 나요. 폰시아: 그 여자는 자기가 가장 깨끗하고 가장 고결하고 가 장 우아하다고 생각하지. 그 여자 남편은 불쌍하지만 잘 죽 은 거야.

(종소리가 그친다.)

하녀: 그 여자 친척들은 다 왔어요? 폰시아: 그 여자 친척들은 왔어. 남편 친척들은 그녀를 증오 해. 사람들은 죽은 남편을 보러 왔고 그의 명복을 빌었어. 하녀: 의자는 충분해요? 폰시아: 남아돌아. 바닥에 앉아도 되니까. 베르나르다의 아 버지가 죽은 후 사람들은 이 지붕 아래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어. 그 여자는 집이 자기 지배 아래 있다는 걸 사람들이 알기를 원치 않아. 빌어먹을 여자야! 하녀: 당신한테는 잘했잖아요. 폰시아: 30년 동안 그 여자 침대 시트를 빨고, 30년 동안 그 여자가 먹고 남긴 걸 먹으면서 기침을 할 때면 밤을 새우고, 낮에는 이웃 사람들의 일을 염탐해 그 여자에게 보고하기 위해 창밖을 내내 바라보며 보냈지. 우리는 서로 비밀도 없 71


이 지내 온 걸로 알고 있는데, 저주받을 여자 같으니라고! 눈 에 저주의 못이나 박혀 버렸으면! 하녀: 무슨 말을! 폰시아: 하지만 난 충실한 개야. 짖으라고 하면 짖고 동냥 온 사람들의 발꿈치를 물라면 물어. 내 자식 놈들은 그 여자의 땅에서 일하고 이제는 둘 다 결혼했지만, 언젠가 나도 지겨 워서 지쳐 버릴 거야. 하녀: 그날이 오면…. 폰시아: 그날이 오면 난 그 여자 방에 틀어박혀서 1년 내내 그 여자 얼굴에 침을 뱉고 있을 거야. “베르나르다, 이 침은 이것 때문이고, 이 침은 저 일 때문이고, 이 침은 또….” 이 렇게 해서 그 여자의 얼굴을 어린애들이 짓이겨 놓은 도마 뱀처럼 만들어 놓을 거야. 그것이 그 여자와 그 여자 친척들 의 본래 모습이라고. 물론 내가 그 여자의 인생을 시기하기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니야. 아직 그 여자에겐 다섯 명의 딸들 이 있지. 못생긴 다섯 명의 딸 말이야. 첫 번째 남편에게서 얻은 돈이 많은 장녀 앙구스티아스를 제하면 나머지는 수놓 은 레이스와 실로 짠 속옷만 잔뜩이라고. 물론 대대로 먹고 살 것은 있지만. 하녀: 나도 이제는 그 여자들이 갖고 있는 것을 가지고 싶어 요! 72


폰시아: 우리는 우리 손과 진실한 땅 구덩이 하나를 갖고 있 잖아. 하녀: 그게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은 우리 같은 사람에게 남 겨진 유일한 것이지요. 폰시아: (벽에 붙은 선반에서) 이 유리는 흠이 있어. 하녀: 걸레로 닦아도, 비누로 닦아도 안 없어져요.

(종소리가 울린다.)

폰시아: 마지막 명복 기도를 알리는 종소리군. 난 미사 드리 러 가련다. 신부가 노래하는 게 무척 마음에 들어. “우리들의 아버지” 부분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하는 게 마치 물로 조금 씩 조금씩 차오르는 항아리 같거든. 물론 끝부분에서는 닭 멱따는 소리가 나지만 그 소리를 듣는 게 영광스러워! 지금 은 옛날의 트론차피노스 사제 같은 사람은 없어. 돌아가신 내 어머니 미사에서 그분이 노래했었지. 벽을 진동시킬 정도 였고 마지막으로 아멘을 했을 때는 늑대가 교회에 들어온 것 같았거든. (흉내 내며) 아메ᐨ에ᐨ에ᐨ엔! (기침을 한다.) 하녀: 당신 목구멍이 가루가 되겠어요. 폰시아: 난 다른 것을 가루로 했는데! (웃으며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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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녀는 청소를 하고 있다. 종소리가 울린다.)

하녀: (노래를 하면서) 딩, 동, 댕, 딩, 동, 댕, 신이 그를 용서 하셨기를! 여자 거지: (어린애를 데리고) 신이시여, 찬양받으소서! 하녀: 딩, 동, 댕… 우리를 오래 기다리시기를! 딩, 동, 댕. 여자 거지: (화가 나서 목소리를 높여) 찬양받으소서, 신이 시여! 하녀: (화를 내며) 영원히! 여자 거지: 남은 거라도 있으면 해서.

(종소리가 그친다.)

하녀: 가시지 그러셔? 오늘 남은 건 내 차지야. 여자 거지: 넌 벌어다 주는 사람이라도 있지만, 난 내 딸과 단둘이야. 하녀: 개들도 혼자서만 산다고. 여자 거지: 사람들은 늘 남은 건 주는데. 하녀: 여기서 나가. 누가 너희보고 들어오라고 했어? 바닥 디뎌 놓은 것 좀 봐. (가 버린다. 다시 닦는다.) 기름칠을 해 서 반질반질한 바닥이며 선반, 주춧돌이며 쇠 침대들은 움 74


막에서 접시 하나와 숟가락 하나로 살아가는 우리 같은 사 람들에겐 정말 견디기 어려운 것들이지. 언젠가 이런 걸 이 야기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기를! (다시 종소리가 울린다.) 그래, 그래, 종소리야 울려 퍼져라! 가장자리를 금박으로 두 른 관과 관을 덮고 갈 비단 덮개도 물론 좋지! 당신도 나와 똑같이 있게 될 게요! 속이 불편하시겠어! 통부츠에 모직으 로 된 옷을 입고 건장했었는데, 안토니오 마리아 베나비데 스, 약 오르죠! 당신네 우리 문 뒤에서 내 속치마를 들어 올 리는 일은 이제 못하겠으니!

(무대 끝에서 머리에 만티야8)를 쓰고 커다란 검은 치마와 검은 부채로 상복을 차려입은 여자들이 둘씩 들어오기 시작 한다.)

하녀: (갑자기 고함을 지르며) 아! 안토니오 마리아 베나비 데스, 이제 이 집의 벽도 보지 않을 것이며 이 집의 빵도 먹 지 않겠죠! 당신을 시중든 사람 중에서 당신을 가장 사랑했 던 사람이 나였는데. (머리카락을 뜯으며) 그런데 당신이 떠 8) 만티야(mantilla): 스페인, 멕시코, 이탈리아 등지에서 여성이 의례적으로 머리에서부터 어깨까지 덮어쓰는 쓰개. 주로 비단이나 레이스로 만들며, 종교 적 행사에는 검은색으로 된 것을, 축제 때는 흰색으로 된 것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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났는데도 내가 여기서 살아야 하는 건가? 살아야 되나?

(200명의 여자가 들어오자 베르나르다가 다섯 명의 딸을 데 리고 등장한다. 베르나르다는 지팡이로 몸을 지탱하고 들어 온다.)

베르나르다: (하녀에게) 조용히 해! 하녀: (울면서) 베르나르다! 베르나르다: 말은 적게, 일은 많이. 장례에 온 손님을 치를 수 있게 이 모든 것들을 더 깨끗하게 하는 데 신경을 썼어야 지. 가, 여기는 네가 있을 곳이 아니야. (하녀는 흐느끼며 나 간다.) 가난뱅이들은 꼭 짐승 같다니깐. 본질이 다른 것으로 된 것 같아. 여자1: 가난한 사람도 고통을 느끼는 법이죠. 베르나르다: 하지만 콩 접시 앞에서는 잊어버려. 소녀: (조심스럽게)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죠. 베르나르다: 네 나이엔 어른들 앞에서 말하는 게 아니야. 여자1: 얘, 입 다물어. 베르나르다: 어느 누구도 내게 훈계할 생각은 하지 마. 다들 앉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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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는다. 침묵이 흐른다.)

(거칠게) 마그달레나, 울지 마. 울고 싶으면 침대 밑에서 울 어. 내 말 알아들어? 여자2: 밭일은 시작했나요? 베르나르다: 어제. 여자3: 태양이 납덩이처럼 떨어져요. 여자1: 이런 더위는 몇 년 만에 처음이에요.

(침묵이 흐른다. 모두가 부채질을 한다.)

베르나르다: 레몬주스는 준비된 거야? 폰시아: (병으로 가득 찬 큰 흰 쟁반을 들고 나와 나눠 준다.) 네, 베르나르다. 베르나르다: 사내들에게 줘. 폰시아: 뜰에서 마시고 있어요. 베르나르다: 그들은 들어온 데로 나가도록 해. 여기로 지나 가는 건 싫어. 소녀: (앙구스티아스에게) 페페 엘 로마노가 장례 치르는 남 자들과 함께 있었어. 앙구스티아스: 저기 있었어. 77


베르나르다: 그의 어머니가 계셨어. 얜 그의 어머니를 봤지. 얘나 나나 페페는 보지 못했어. 소녀: 제가 보기엔…. 베르나르다: 그래, 있었던 사람은 다라할리의 홀아비였어. 네 이모 옆에 딱 붙어 있더구나. 그 사람은 우리 모두 봤지. 여자2: (낮은 목소리의 방백으로) 못된 여자야. 아주 몹쓸 여자야! 여자3: (낮은 목소리의 방백으로) 살모사 혓바닥 같으니라고! 베르나르다: 교회에서 여자들은 미사를 집전하는 사람 이외 의 남자들을 바라봐서는 안 돼. 미사 보는 사람도 긴 가운을 걸쳤기 때문에 되는 거지. 두리번거리며 머리를 돌리는 건 간장을 태울 열을 찾는 거야. 여자1: (낮은 목소리로) 교활한 늙은 도마뱀 같으니라고! 폰시아: (입속으로 투덜대듯) 사내라면 오금도 못 펴는 할망 구 주제에! 베르나르다: (바닥을 지팡이로 치며) 신이여 찬양받으소서. 모두 함께: (성호를 그으며) 영원히 은혜와 찬양을 받으소서. 베르나르다: 머리맡의 성녀와 함께 편히 쉬소서. 모두 함께: 편히 잠드소서! 베르나르다: 성 미카엘 천사와 그의 정의의 칼과 함께. 모두 함께: 편히 잠드소서! 78


베르나르다: 모든 것을 여는 열쇠와 모든 것을 닫는 손과 함께. 모두 함께: 편히 잠드소서! 베르나르다: 축복을 받은 자들과 들판의 별들과 함께. 모두 함께: 편히 잠드소서! 베르나르다: 우리의 성스러운 자비와 땅과 바다의 영혼들과. 모두 함께: 편히 잠드소서! 베르나르다: 당신의 종 안토니오 마리아 베나비데스에게 안 식을 내려 주시고 당신의 성스러운 영광의 관을 건네주소서. 모두 함께: 아멘. 베르나르다: (일어서서 노래한다.) 레퀴엠 아에테르남 도나 에이스, 도미네.9) 모두 함께: (서서 그레고리오성가10)식으로 노래하면서) 에 트 룩스 페르페투아 루세아트 에이스.11) (성호를 긋는다.) 여자1: 그의 영혼을 기리기 위해 건강을 주시기를.

9) 주여, 그들에게 영원한 평화를 주옵소서(Requiem aeternam dona eis, Domine). 10) 성당 미사에서 부르는 노래로,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들이 라틴어로 부르 는 단조로운 톤의 노래 방식. 11) 그들에게 영원한 광명이 있기를(Et lux perpetua luceat e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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