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시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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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시


아즈(А)1)

베네딕트는 장화를 잡아당기고 잘 맞도록 바닥에다 발을 탁 탁 치고, 난로의 조절판을 점검했다. 그는 쥐가 먹기 좋게 빵 부스러기를 바닥으로 쓸어 내리고 한기가 들어오지 않도 록 창문을 걸레로 끼워 막고 우물로 가서 영하의 깨끗한 공 기를 코로 들이마셨다. 아, 좋다! 밤의 눈보라는 잠잠해졌고 눈은 하얀색을 띠며 장엄하게 내려앉았다. 하늘은 푸른빛 을 띠고 매우 높이 솟은 클렐2)이 꼼짝 않고 서 있었다. 다만 검은 토끼들이 이 꼭대기에서 저 꼭대기로 훌쩍 날아다닐 뿐이다. 베네딕트는 옅은 갈색의 턱수염을 위쪽으로 쳐들 고 잠시 서서 토끼들을 보며 눈을 찡그렸다. 새 모자를 향해 오는 한 쌍을 막아야 하는데, 돌이 없다. 고기 좀 먹는 건 나쁘지 않겠지. 그렇지 않아도 쥐란 것 들에 이미 신물이 났으니 말이야. 만약 검은 토끼 고기가 잠길 정도로 물을 붓고 일곱 번

1) 이 작품의 모든 장에는 러시아 알파벳의 명칭이 사용되고 있다. 이 명칭들 은 고대 러시아 알파벳에 사용되었던 것들로 현재는 사용되지 않는다. 2) 클렐(клель): 톨스타야가 만든 나무 이름이다. 러시아어로 단풍나무를 가 리키는 ‘클룐(клён)’과 전나무를 가리키는 ‘옐(ель)’의 합성어, 즉 ‘кл+ель’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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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 푹 끓여서 1∼2주 정도 햇볕에 두었다가 오븐에 찌면 틀림없이 독이 없어질 거야. 물론 암컷이 걸렸을 때 말이지. 수컷은 끓이든 끓이지 않 든 마찬가지야. 전에는 몰라서 허기지면 수컷도 먹었지. 그 러나 지금 누가 수컷을 먹겠어? 먹은 사람은 평생 가슴에서 쉰 소리와 가글거리는 소리가 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 는데 말이야. 더구나 다리는 말라 가고 검고 굵은 머리카락 이 귀에서 자라는데다 정신까지 이상해지는데 말이야. 베네딕트는 직장으로 가야 할 시간이라는 사실에 한숨 을 쉬었다. 그는 홈스펀 코트로 몸을 감싸고 이즈바3)의 문 은 들보로 막고 막대기를 찔러 넣었다. 이즈바에는 훔쳐 갈 것이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렇게 하는 건 그의 습관이었다. 고인이 된 엄마가 항상 그렇게 했던 것이다. 엄마는 ‘폭발’4) 전, 아주 옛날에 사람들은 자신들의 문에 자물쇠를 채웠다 고 이야기해 주었다. 이웃들도 엄마에게서 이렇게 하는 법 을 배워서 했다. 지금 그들의 촌락 전체는 나무로 문의 자물 쇠를 채운다. 물론, 이런 것이 자유의지라는 것일 게다. 일곱 개의 언덕5)에 걸쳐 고향 도시인 표도르 쿠즈미치

3) 이즈바(изба): 전형적인 러시아 농가로 보통 통나무로 지은 오두막이다. 4) ‘ ’로 표시된 부분은, 원전에 고유명사처럼 첫 글자가 대문자로 표기된 단어 들이다. 5) 일곱 개의 언덕: 모스크바를 가리킨다. 이는 15세기 말에 모스크바를 ‘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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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가 펼쳐져 있었다. 베네딕트는 2월의 햇빛을 즐기고, 익숙한 골목들에 감탄하면서 깨끗한 눈을 뽀드득뽀드득 밟 고 걸어갔다. 여기저기에 검은색 이즈바들은 높은 울타리 와 널빤지로 짠 대문 너머에 줄지어 있었다. 말뚝 위에는 돌 항아리나 나무 단지들을 말리기 위해 널어놓을 것이다. 누 군가의 대저택은 좀 더 높이 솟아 있어서 그 사람의 나무 단 지들은 더 잘 마를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말뚝에 큰 통 하나를 꽂으며 ‘이봐, 난 부자야!’라고 하는 듯 얼굴을 똑 바로 들이밀 것이다. 그런 사람은 일터로 천천히 걸어서 가 지 않고 썰매를 타고 가려고 하며, 채찍을 휘두를 것이다. 그러면 썰매에 묶인 퇴화인은 장화 소리를 탁탁 내며 얼굴 이 창백해져서 입에 거품을 물고 혀가 밖으로 나오게 된다. 그는 일터까지 끌려가서 박힌 듯이 네 다리로 서 있을 것이 며 털이 많은 옆구리만 후ᐨ후, 후ᐨ후 하고 연신 흔들어 댈 것이다. 그러나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이빨을 드러내기도 하고, 주위를 둘러보기도 하는데…. 아, 레시6)는 그들을 안 잡아 가고 뭘 하는 건지, 이런 퇴

의 로마’라고 지칭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로마가 원래 일곱 개의 언덕 위에 있 다고 해서 생겨난 말로, 모스크바와 로마의 유사성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표현은 모스크바를 비유하는 것이다. 6) 레시(леший): ‘숲의 정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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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인들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것이 좋아. 그들은 무시 무시해. 넌 그들이 사람인지 아닌지 분간할 수 없을 거야. 얼굴은 인간과 닮았으며 몸은 털로 뒤덮여 있고 네 발로 달 리거든. 발마다 장화가 신겨져 있지. 그들은 폭발 전에도 퇴 화인으로 살았었다고 해. 그랬을지도 모르지. 지금은 살을 에는 듯 추워서 입에서 김이 뿜어져 나오며 턱수염은 모두 서리로 덮인다. 그래도 기분은 최고다! 농가 들은 단단하고 검은색이며 울타리 주위를 따라 눈 더미가 높이 있고 각각의 대문을 향해 오솔길이 만들어져 있다. 언 덕들은 부드럽게 아래로 내달리다가 올라가며 하얗게 굽이 친다. 눈이 덮인 내리막길을 따라 썰매들이 미끄러지고 썰 매 뒤에는 파란 그림자들이 뒤따른다. 눈은 온갖 색을 내며 파열하고, 언덕 너머에서 태양이 떠오르며 짙은 파란색 하 늘에 무지개를 만든다. 눈을 가늘게 뜨면 햇빛은 원 모양이 되고, 보슬보슬한 눈을 장화에서 털어 내면, 그 눈은 마치 익은 오그네츠7)들이 흔들리는 듯 반짝거린다. 베네딕트는 오그네츠들에 대해 생각했으며 어머니를 회

7) 오그네츠(огнец): 러시아어에서 ‘불’을 의미하는 ‘오곤(огонь)’을 바탕으로 톨스타야가 만든 말이다. ‘огнец’는 ‘огонь+ец(지소형 접미사)’로 추정되며, ‘작은 불’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또 ‘불처럼 빛나는 어린양(огонный агнец)’에 서 나온 말이라는 추정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톨스타야가 만든 가상의 식 물을 나타내며, 이것은 불빛을 발하는 식용식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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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바로 그런 오그네츠들 때문에 돌 아가셨다. 가련한 분. 그것들은 가짜로 판명되었다. 표도르 쿠즈미치스크라는 소도시는 일곱 개의 언덕 위 에 자리하고 있으며 그 주변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들판과 미지의 대지가 펼쳐져 있다. 북쪽에는 울창한 숲들과 풍해 를 입은 수목들이 있다. 가지들은 사람이 지나다닐 수 없을 정도로 서로 얽혀 있다. 가지가 많은 관목들은 바지를 잡아 당기고 높은 데 있는 가지들은 모자를 벗긴다. 나이 든 사람 들은 이런 숲에 키시가 살고 있다고 말한다. 키시는 어두운 나뭇가지 위에 앉아서 ‘키ᐨ이스! 키ᐨ이스!’ 하며 애처로운 야성의 소리를 지른다. 그러나 그 누구도 키시를 볼 수 없 다. 사람이 지나가면, 키시는 캭! 하며 이빨로 등을 으드득! 문다. 발톱으로 더듬어 주요 혈관을 찾아 끊어 놓고 인간의 혼을 빼놓는다. 키시에게 당한 사람은 이미 예전의 그 사람 이 아닌 채 돌아오며, 눈도 예전의 눈이 아니다. 그는 길인 지 아닌지도 분간하지 못한 채 걸어 다닌다. 이런 모습은 마 치 몽유병 환자가 달빛 아래에서 수면 상태로 손가락을 움 직이면서 걸어가는 것과 같다. 그런 사람들은 잠이 든 상태 에서 걷고 있는 것이다. 가끔 그를 붙잡아 집으로 데리고 가 서 재미 삼아 그 앞에 빈 대접을 놓고 숟가락을 손에 쥐여 준 후 ‘먹어’라고 말하면 먹는 시늉을 할 것이다. 빈 대접에서 한술 떠서, 입으로 가지고 가 씹어 먹을 것이다. 그런 후 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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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그릇을 닦아 내는 시늉도 할 것이다. 그러나 빵은 손에 없다. 이를 본 가족들은 배꼽을 쥐고 웃을 게 분명하다. 그 는 이제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심지어 본래 상태로 돌아갈 수도 없어서 매번 새로운 지시를 받아야 한다. 아내 나 어머니가 그를 불쌍하게 여기면, 아내든 어머니든 그를 헛간으로 데리고 가곤 한다. 그러나 그를 누군가 주시한다 면, 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야 한다. 거품이 사라지듯, 그도 곧 죽게 된다. 바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 키시다. 서쪽으로도 걸어가서는 안 된다. 거기에는 마치 길이 있 는 것 같다. 오솔길 같은 보이지 않는 길이 말이다. 계속 걷 다 보면 도시는 사라지고 들에서 달콤한 바람이 살랑거린 다. 모든 것이 좋다. 모든 것이 괜찮다. 그러다가 갑자기 서 서 가만히 생각하게 된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거 기에 왜 가야 하는 거지? 난 거기서 뭘 보겠다는 걸까? 정말 거기는 더 나을까? 후회하게 되면 어쩌지!’ 이런 생각도 하 게 된다. ‘뒤에 나의 이즈바가 있는데, 아내는 손으로 얼굴 을 가리고 울면서, 손가락 사이로 저 먼 곳을 볼 거야. 닭들 도 마당을 뛰어다니며 나를 몹시 그리워하고 있겠지. 집에 있는 난로에는 불이 지펴지고, 쥐들은 돌아다니고, 침대는 폭신할 텐데….’ 마치 버러지가 계속해서 심장을 갉아 먹는 듯한 느낌이 들 것이다…. 그러면 침을 뱉고 돌아가게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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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 뛰어가기도 할 것이다. 저 멀리 울타리 위에 걸린 항 아리들이 보이면, 눈물도 나올 것이다. 거짓이 아니야. 집에 가까이 갈수록 눈물이 솟구친단 말이야! 브라보!8) 남쪽으로도 가면 안 된다. 거기에는 체첸인들이 있다. 처음에는 천지가 스텝이어서 이를 보고 있노라면 눈이 빠질 지경이다. 그러나 스텝 너머에는 체첸인들이 있다. 작은 도 시 가운데에는 네 개의 창이 달린 감시탑이 있으며 네 개의 창마다 경비병들이 감시하고 있다. 체첸인들을 찾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들은 감시한다기보다는 오히려 늪에서 나 는 르자비9)를 피우며 나무젓가락을 가지고 노는 편이다. 어떤 한 사람이 세 개는 길고, 하나는 짧은 나무젓가락을 잡 고 있다. 그중에서 짧은 나무젓가락을 뽑는 사람은 꿀밤을 먹는다. 그러나 이렇게 놀다가도 창밖을 보곤 한다. 그들은 체첸인들을 발견하면, ‘체첸인이다! 체첸인이다!’라고 소리 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런 소리가 들리면 사람들은 사방 에서 뛰어나와 체첸인들에게 겁을 주기 위해 막대기로 항아

8) 이 작품은 구비문학처럼 마치 독자 또는 청자에게 이야기해 주듯이 서술되 어 있다. 그러므로 구어, 속어, 사어(死語), 방언 등이 폭넓게 사용된다. 화자 는 서술하는 중간에 추임새처럼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말하거나 ‘너’라는 대상 을 향해서 이야기하듯 한다. 9) 톨스타야가 만든 말로, ‘녹슨’, ‘녹빛의’라는 의미의 형용사 ‘르자비(ржавы й)’에서 파생되었다. 여기서 ‘르자비(ржавь)’는 명사로 사용되었으며 늪에서 자라는 식물로 묘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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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를 때리기 시작할 테고, 그들은 황급히 도망갈 것이다. 언젠가 남쪽에서 두 사람이 도시로 다가왔는데, 노부와 노파였다. 우리는 항아리를 탕탕 소리 내 두드리면서 소리 치는데, 그 체첸인들은 그저 두리번거릴 뿐, 태평한 모습이 었다. 그래서 좀 더 용감한 우리는 부지깽이, 물렛가락을 들 고, 누군가는 또 다른 것을 들고 그들을 맞이하러 나갔지. 어떤 사람인지, 왜 방문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말이야. “골룹치크들, 우리는 남쪽에서 왔습니다. 2주 동안 걸어 다녀서 더 이상 걸을 힘이 없답니다. 가죽끈을 교체하려고 왔는데, 당신들에게 그런 물건이 있는지요?” 우리에게 어떤 물건이 있냐고? 우리들은 쥐를 먹는다. ‘쥐들은 우리의 지주(支柱)죠.’ 그렇게 표도르 쿠즈미치 님 이 가르쳐 주었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동정심이 많아서 각 농가마다 무엇인가를 가지고 모였다. 그리고 가죽끈과 교 환하고 그들을 풀어 주었다. 이후 그들에 대한 많은 이야기 가 있었다. 모두 그들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어떤 말을 했는 지, 그들이 왜 우리에게로 왔는지를 회상했다. 그런데 그들은 우리처럼 평범한 모습이었다. 백발의 노 부는 짚신을 신고 있었고 노파는 스카프를 쓰고 있었다. 눈 은 푸른색이었고 머리에는 뿔이 있었다. 그들에 관한 이야 기는 길지만 슬펐다. 베네딕트는 당시 어리고 아무것도 몰 랐지만 귀 기울여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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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에는 담청색 바다가 있다고들 하지. 그 바다에는 섬 하나가 있고 그 섬에는 탑이 있는 큰 저택이 있고 거기에는 황금색 침대가 있다는 거야. 그 침대에는 아가씨가 누워 있 는데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황금색과 은색으로 번갈아 나 있어. 그녀는 자신의 땋은 머리를 계속해서 푸는데, 다 풀게 되면 세상은 종말을 맞게 된다는 거야. 우리 사람들은 듣고 또 듣고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황금색’은 무슨 뜻이고, ‘은색’은 무슨 뜻이죠?” 그러면 그들은 말했다. “‘황금색’은 불과 같은 것이고 ‘은색’은 달빛과 같거나 아 니면 예를 들어 오그네츠가 빛나는 것과 같은 것일세.” 우리 사람들은 말했다. “그렇군요. 그럼 계속 이야기해 주세요.” 체첸인들은 말했다. “커다란 강이 있는데, 여기에서 걸어서 3년은 가야 하죠. 그 강에는 물고기가 살고 있는데, 파란색 깃털이 있어요. 그 물고기는 인간의 목소리로 말을 하며 울고 웃기도 하고 그 강을 따라 여기저기 걸어 다녀요. 그 물고기가 이쪽으로 걸 어가며 웃으면, 석양은 놀고, 하늘에 태양이 떠오르면서 하 루가 시작되는 거죠. 반대로 걸어가면서 울면, 그를 따라 어 둠이 드리우고 꼬리 위에 달이 실려 나오며 별들이 가득해 지는데, 그건 그 물고기의 비늘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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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람들은 물었다. “그러면 왜 겨울이 오고 왜 여름이 오는지 듣지 못했어요?” 노파는 말했다. “듣지 못했어요. 전 거짓말하지 않아요. 듣지 못했어요. 그렇지만 사실, 여름이 훨씬 유쾌한데, 왜 겨울이 있는 건지 많은 사람들은 기이하게 여기지요. 아마 우리들 죄 때문일 거예요.” 그러나 노부는 머리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니야. 자연의 모든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 거야. 나에게 어떤 행인이 이야기해 주었지요. 북쪽에 먹구름에 닿을 정도로 키가 큰 나무가 있다는 겁니다. 검고 옹이가 많 아 울퉁불퉁한 나무인데, 그 나무의 꽃은 하얗고 자ᐨ악ᐨ은 반점 같았죠. 나무에는 강추위가 살고 있는데, 그것은 나이 들었고 턱수염은 허리띠에 끼워져 있어요. 겨울이 다가오 고, 닭들이 무리를 지어 남쪽으로 향해 가면, 강추위는 일을 시작합니다. 이 나뭇가지에서 저 나뭇가지로 옮겨 다니며 손바닥을 치면서 ‘두ᐨ두ᐨ두, 두ᐨ두ᐨ두!’라고 중얼거리죠. 그런 다음 ‘휘ᐨ휘ᐨ휘!’ 하고 휘파람을 불어 댑니다. 그러면 바람이 일어나고 하얀 꽃들이 우리에게 흩어져 날아오는 거 예요. 바로 이것이 당신들이 눈이라고 부르는 거죠. 그러면 당신은 왜 겨울이 되었는가 하고 궁금하겠지요.” 우리 골룹치크들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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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맞아요. 그건 그렇게 되어야만 했을 거예요. 그런데 할아버지, 정말 여행하는 것이 두렵지 않으세요? 밤에는 어 떻게 하세요? 레시를 만나지는 않나요?” “아이쿠, 만났지요!” 체첸인이 말했다. “아주 가까이서 보 았지요. 예를 들면 바로 당신이 있는 그쯤에서 말이죠. 들어 봐요. 내 할멈은 오그네츠를 먹고 싶어 했어요. 가지고 오라 고 나에게 시켰지요. 그런데 그해의 오그네츠는 달콤하고 쫄 깃쫄깃하게 잘 익었어요. 난 갔지요. 혼자서 말이에요.” “혼자서요?” 우리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그렇죠!” 외지인은 자랑스러워했다. “그럼, 더 들어 보 세요. 난 걷고 또 걸어갔는데, 점점 어두워지더군요. 칠흑같 이 어둡지는 않고 그저 잿빛 정도가 되었어요. 난 오그네츠 가 겁내지 않도록 발끝으로 걸어가는데, 갑자기 ‘수ᐨ수ᐨ수!’ 하더군요. 그게 뭔가 하고 보았더니 아무도 없었어요. 다시 걸어갔죠. 그때 다시 ‘수ᐨ수ᐨ수’ 하더군요. 마치 누군가가 손바닥으로 나뭇잎들을 쓰다듬는 것 같았어요. 난 둘러보 았죠. 역시 아무도 없었어요. 또 걸어갔죠.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가 바로 내 앞에 있는 거예요. 방금까지 아무것도 없 었는데, 바로 여기 있는 거예요. 팔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말이죠. 사실 그렇게 크지는 않았어요. 아마도 내 허리나 가 슴 정도 올 거예요. 온몸은 마치 낡은 건초로 만들어진 듯하 고, 눈은 붉게 빛나고 있으며 발바닥이 손바닥 모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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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런 손바닥 모양의 발바닥으로 땅을 밟고 다니며 ‘차 파ᐨ차파, 차파ᐨ차파, 차파ᐨ차파…’라고 중얼거리더군요. 난 뛰었죠! 내가 어떻게 집에 오게 되었는지 모르겠어요. 그렇 게 해서 내 마누라에게 오그네츠를 구해다 주지 못하게 된 거 죠.” 그때 듣고 있던 아이들이 물었다. “할아버지, 숲에서 또 어떤 정령을 보았는지 말해 주세요.” 노부에게 달걀 크바스10)를 조금 따라 주자 그는 이야기 를 시작했다. “내가 젊었을 때 얘기예요. 그때는 피가 뜨거웠지요. 아 무것도 두려울 게 없었어요. 언젠가 난 세 개의 통나무를 갈 대로 한데 묶어서 물 있는 쪽으로 내려갔어요. 강은 물살이 빠르고 넓었죠. 통나무 위에 타고 내려갔어요. 정말이라고 요! 여자들은 기슭에서 뛰어 내려가면서 소리치고 비명을 질러 댔죠. 모든 것이 예상한 그대로였어요. 사람이 물을 따 라 떠내려가는 걸 어디에서 볼 수 있겠어요? 지금은 통나무 속을 파내어 물 위를 타고 내려간다고 하더군요. 물론 거짓 말을 하는 게 아니라면 말이죠.” “거짓말이 아닙니다. 거짓말이 아니에요! 여기 우리의 표도르 쿠즈미치 님이 고안해 낸 겁니다!” 우리 사람들이 소

10) 크바스(квас): 러시아 전통 발효 음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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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쳤고 베네딕트는 그 누구보다 더 크게 소리쳤다. “표도르 쿠즈미치는 표도르 쿠즈미치일 뿐이죠. 우린 모 르니까. 학자도 아니니. 그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아 니잖아요. 괜찮아요. 난 두렵지 않아요. 루살카11)도, 보댜 노이12)의 거품도, 돌 밑의 꿈틀거리는 것도 무섭지 않아요. 난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물고기도 양동이 하나 가득 잡았 는걸요.” “그럼 그건… 할아버지, 거짓말하지 마세요.” “정말이야! 내 마누라가 진실을 말해 줄 거야!” “사실이에요.” 할머니가 말했다. “그랬어요. 난 그를 나 무랐어요! 양동이를 못 쓰게 만들어서 태워 버려야만 했죠. 그러나 새것도 속을 파내고 무두질해서 타르를 입힌 다음 세 번 말려서 르자비로 김을 쐬고, 파란 모래로 문질러야 해 요. 내 손은 온통 엉망이 되었고 녹초가 되었죠. 그렇지만 그가 용감한 행위를 하긴 했나 봐요. 그러고 나서 온 마을 사람들이 그를 보고 갔죠. 무서워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당연하죠.” 우리 사람들이 말했다. 노부는 만족했다.

11) 루살카(Rusalka): 러시아 민담에 등장하는 물의 정령으로, 여자의 모습을 하고 숲 속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혹한다. 12) 보댜노이(водяной): 물에 사는 남자 정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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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그렇게 한 사람은 나 하나일 겁니다.” 우쭐해 했다.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물고기를 아주 가까이 보고도, 그러니까 당신들이 있는 그 정도 거리에서도 살아남은 사람 말이에요. 암요! 난 용사였거든요. 대단했죠! 소리를 질러 대곤 했었어요! 창문에 붙어 있는 짐승 방광들이 터지곤 했 죠. 그런데다가 르자비를 단번에 얼마나 마셨는지! 한 드럼 을 배 속에 다 털어 넣었지요.” 그러나 그때 그 자리에 있던 베네딕트의 어머니는 입술 을 오므리면서 말했다. “당신은 자신의 힘으로 구체적인 이익을 만들어 냈나요? 공동체를 위한 이익이 되는 뭔가를 만들어 낸 건가요?” 노부가 화를 냈다. “골룹치카13), 전 젊은 시절에 한 다리로 바로 여기서 저 작은 언덕까지 뛰어갈 수 있었단 말예요! 그렇다고 소용이 있는 건 아니죠. 내가 소리를 지르면 지붕에서 짚단이 굴러 떨어지곤 했다는 걸 말해 두고 싶어요. 우리 혈족들은 다 그 렇답니다. 용사들이죠. 바로 지금 할멈이 진실을 말할 겁니 다. 나에게 티눈이나 종기가 생기면 주먹만 하답니다. 그보 다 작지 않죠. 말씀드리는데요. 나에겐 그만한 뾰루지도 있 었어요. 바로 그만 한 거요. 말해 보세요. 만약 알고 싶다면,

13) 골룹치크의 여성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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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아버지가 있으니 알아보려면 알아볼 수도 있어요. 그 아버지가 머리를 긁으면 양동이 반 정도의 비듬이 떨어 질 거예요.” “그만해요!” 우리 사람들은 떠들어 댔다. “할아버지, 당 신은 정령들에 대해서 말해 주겠다고 약속했잖아요.” 그러나 할아버지는 농담에 화가 난 것이 아닌 것 같았다. “그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을 겁니다. 여기에 들으러 왔 으면… 경청하세요! 말참견하지 말고. 저 여자가 모든 환상 을 깨 버렸군요. ‘이전 시대’ 사람인 것 같은데, 말투로 느낄 수 있지요.” “맞아요.” 우리 사람들은 어머니를 곁눈질했다. “‘이전 시 대’ 사람이죠… 할아버지, 시작해 주세요.” 체첸인은 숲의 공포에 대해서, 가로수 길들이 어떻게 다 른지에 대해서 또 이야기했다. 어떤 길이 진짜이며, 어떤 길 이 신기루, 초록빛 증기, 풀 뭉치, 마법, 환영인지를 구별해 야 한다. 그는 이 모든 특징들을 알려 주었다. 루살카는 노 을이 질 때 노래를 하며, 자신의 물의 노래를 칠면조가 우는 소리처럼 부른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처음에 낮고 깊게 으 으 으 으 으 하다가, 조금 더 높이 오우아아아, 오우아아아 한다는 것이다. 그때 숨죽이고, 양쪽을 살펴보아야 되는데 그렇지 않으면 강 쪽으로 끌려갈 것이라고 했다. 노래가 휘 파람 소리처럼 이이힉! 이이힉! 하는 소리가 나기 시작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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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정신없이 뛰라는 것이다. 매혹적인 읊조림에 대해서, 그 리고 그것을 얼마나 조심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또한 사람들의 다리를 붙잡는 릴로14)에 대해서도, 가장 좋 은 르자비를 어떻게 찾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이때 베네딕트가 튀어나왔다. “할아버지, 그러면 키시는 보셨어요?” 모두 바보를 보듯이 그를 보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무런 대답도 나오지 않았다. 용감한 노부는 배웅을 받았으며 다시 도시에 고요가 찾 아왔다. 감시는 강화되었지만 남쪽에서 그 누구도 우리를 더 이상 습격하지 않았다. 아니다. 우리 모두는 더욱더 많이 도시의 동쪽으로 다녔 다. 거기 숲들은 빛이 났으며 풀들은 길고 검은 점투성이였 다. 풀들 사이에는 하늘색을 띤, 귀여운 꽃들이 피어 있다. 만약 이 꽃들을 따서 씻고 빻아서 훑으면, 실을 자아서 아마 포를 짤 수 있다. 돌아가신 어머니는 이런 일에 솜씨가 없어 서 계속 성과가 없었다. 실을 꼬고, 방적하며, 아마포를 짜 면서 눈물을 흘리곤 했다. ‘폭발’ 전에는 모든 것이 달랐다고 한다. 오늘날과는 달리, 가기(가게)15)에 가서 원하는 것을

14) 릴로(Рыло): 러시아어로 ‘동물의 주둥이’, 또는 속어로 ‘얼굴’이라는 의미 를 지닌다. 그러므로 ‘주둥이 괴물’ 정도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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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입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시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 들이 다니던 이런 가기(가게)는 ‘저장고’ 같은 것이었다. 다 만 거기에는 물건들이 더 많이 있었고, ‘저장고의 날’에 물건 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하루 종일 계속 문을 열어 두었다고 한다. 믿기지 않는다. 정말 각자가 들러서 가지고 간다는 거 야? 경비원들을 많이 두어야 하잖아? 정말이지 우리를 풀어 놓기만 하면 모든 것을 산산조각 낼 거야.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깔려 죽을까? 사실 ‘저장고’에 가면 넌 누구 에게 무엇을 주었는지, 얼마를 주었는지, 왜 나에게는 주지 않는지 사방으로 눈을 굴리곤 하잖아. 그러나 봐도 소용없어. 제시된 것 외에 더 이상 가져갈 수도 없으니. 타인의 행운을 너무 넋 놓고 바라보지 마. ‘저 장고’의 일꾼들이 순식간에 당신의 목을 주먹으로 때릴 테 니. 자기 것을 받고 어서 꺼져 버려!라고 할 거야. 그렇지 않 으면 우리는 주어진 것도 빼앗길 거야. 넌 나무껍질로 짠 바구니를 들고 ‘저장고’에서 나와 자신 의 집으로 서둘러 가지. 아니, 아니야. 내 것이 다 여기 있 나? 혹 그들이 뭔가를 빠트리지 않았나? 아니면 뒤에 있던 15) 이 작품에서 의도적으로 잘못 말하고 있는 것은 괄호 안에 바른 표기를 부 기한다. 또한 이렇게 잘못 말한 것은 톨스타야가 의도적으로 모든 단어를 대 문자로 표기해 두었다. 즉, 원문에는 “МОГОЗИН(магазин)”으로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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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골목에서 몰래 훔쳐 갔거나 낚아채 간 건 아닐까? 라고 생각하면서 바구니 안에 손을 넣어서 만져 볼 거야. 그런데 이런 일은 자주 일어난다. 한 번은 엄마가 ‘저장 고’에서 까마귀 깃털을 받아 나왔다. 깃털 이발을 위한 것이 었다. 그러나 그것은 가벼워서 가지고 가는데 마치 없는 것 같았다. 집에 도착해서 마포를 벗겼는데 세상에, 깃털은 없 고 깃털 대신에 똥이 있었다. 엄마는 눈물을 흘리고 아버지 는 허허 하고 웃었다. 정말이지 어떤 웃기는 도둑이 한 짓 같아. 물건을 가지고 갔을 뿐만 아니라 기이한 생각을 해 낸 거지. ‘바로 이것이 당신 깃털의 가치라는 거야. 자, 여기 있 으니 받아라!’라고 비꼬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이웃에서 깃털이 나타났다. 아버지는 그에게 따 져 물었다. 어디서 난 거야? 장에서. 무엇과 바꾼 거야? 장 화하고. 누구 거? 이웃은 모른다고 하기 시작했다. ‘난 이랬 다’고 했다가, ‘난 저랬다’고 했다가, ‘난 르자비를 많이 마셨 어’라고 했다. 그에게서는 그 무엇도 얻을 수 없었다. 그렇 게 그들은 후퇴했다. 근데 ‘저장고’에서는 무엇을 주는 걸까? 물론 쥐 고기로 만든 진부한 칼바사16), 쥐 비계, 밀가루, 깃털, 그다음에 펠

16) 칼바사(колбаса): 우리나라 순대처럼 생긴 것으로 소시지의 일종이며, 러 시아 전통 음식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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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 장화, 부젓가락, 아마포, 돌 항아리 등 다양하게 나온다. 가끔 자작나무 껍질 바구니에 진흙투성이의 오그네츠를 놓 기도 한다. 그것들은 저기 어딘가에서 악취를 풍기는데, 그 들은 그것들을 그대로 내줄 것이다. 좋은 오그네츠를 얻으 려면 본인들이 직접 따러 가야 한다. 정확하게 마을의 동쪽에는 클렐 숲이 있다. 클렐은 가장 좋은 나무다. 그 나뭇가지는 빛나며, 나뭇진이 많고, 수액을 가득 담고 있다. 잎사귀는 뾰족하고, 무늬가 선명하며 물갈 퀴 같은 것이 달려 있다. 그 잎사귀에서는 몸에 좋은 향이 난다. 이게 바로 클렐이지! 이 나무의 열매는 사람 머리만 하고 열매의 씨앗은 매우 맛이 좋아! 물론 그것들을 빨아서 마실 수가 있다면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들은 맛이 없 다. 저 깊고 깊은 곳에 있는 가장 오래된 클렐들에서는 오그 네츠들이 자란다. 아주 맛이 좋은 것들이다. 오그네츠는 달 콤하고 둥글며 질기다. 잘 익은 오그네츠는 사람 눈만 할 것 이다. 밤에는 오그네츠들이 은색으로 빛나는데 그것은 마 치 달과 같으며, 잎사귀에는 달빛이 비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낮에는 눈에 띄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이 어둡기 전 에 숲으로 나갔다가 어두워지면 손에 손을 잡고 사슬을 만 들어 서로 잃어버리지 않도록 조심한다. 오그네츠가 사람 이라는 걸 알아채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오그네츠가 당황해서 큰 소리로 울지 않도록 그것들을 빨리 찾아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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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그네츠는 다른 오그네츠에게 경고 하게 되고 일시에 불빛을 감출 것이다. 물론 손으로 더듬어 서 오그네츠를 잡아 뽑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렇 게 하지 않는다. 혹시라도 가짜 오그네츠를 따게 되면 어떡 해? 가짜 오그네츠들은 빛날 때, 마치 붉은 불이 빠져나가는 듯하다. 엄마는 옛날에 그런 가짜 오그네츠들에 중독되었 다. 그렇지만 않았다면 그녀는 계속 살아 있었을 텐데. 엄마는 233년을 살았지만 하나도 늙지 않았다. 그녀는 홍조 띤 얼굴과 검은 머리카락을 한 채로 눈을 감았다. 이렇 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폭발’이 일어났을 때 괴상한 소 리를 내지 않은 사람들은 그 이후로 늙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그런 ‘결과’17)가 나타난다. 마치 그들에게 쐐기 가 박혀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런 자들은 아주 소수 다. 모두들 죽어서 축축한 땅속에 있다. 키시가 해를 입힌 사람들, 토끼에 중독된 사람들, 엄마처럼 오그네츠에 중독 된 사람들…. ‘폭발’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에게는 다른 ‘결과’가 나타난 다. 온갖 ‘결과’가. 곡물 속에 손을 넣고 뒤적인 것처럼 손이 초록색 밀가루로 온통 뒤범벅된 듯한 사람, 아가미가 달린

17) 여기서 ‘결과’란 핵폭발로 일어나서 생긴 결과를 의미한다. 이 결과 역시 첫 글자가 대문자로 사용되어 고유명사처럼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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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수탉의 볏이 달린 사람 등. 그러나 늙어 가면서 눈에 부스럼이 생기거나 은밀한 곳의 털이 무릎까지 자라거나 무 릎에 콧구멍이 갑자기 생길 가능성을 제외하고, 그 어떤 ‘결 과’도 나타나지 않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베네딕트는 언젠가 엄마에게 심문하듯 자세하게 물었 다. 왜 ‘폭발’이 일어난 거야? 그녀는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아마도 사람들이 무지(무기)를 들고 노는 게 지나쳐서 나쁜 결과를 들여온 것 같아.’ 엄마는 ‘우리는 탄식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어’라고 말하면서 울었다. ‘전에는 살기가 좋았어.’ 그러나 아버지(그는 ‘폭발’ 이후에 태어났다)는 그녀에게 화 를 냈다. “지난 일을 추억하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라고 했잖아! 살아온 대로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거지! 지난 일이야 우리 가 알 게 뭐야!” “무지렁이! 석기시대야! 야만인!” 그는 그녀의 머리채를 잡아당겼고 그녀는 비명을 지르 며 이웃들을 불렀지만 이웃들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남 편이 아내를 가르치는 것은 올바른 일이라는 것이다. ‘우리 일이 아니야. 쭈그렁밤송이 3년 가는 거지.’ 그가 그녀에게 화를 내는 이유는 이랬다. 그녀는 늘 젊은 모습 그대로인데 그는 서서히 죽어 갈 뿐만 아니라 조금씩 다리를 절룩거리 기 시작했으며 그가 스스로 말했듯이, 눈은 마치 검은 물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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럼 빛을 잃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그에게 말한다. “나에게 손가락 하나도 댈 생각하지 마! 난 대핵교 교욕 (대학교 교육)을 받은 사람이야!” “그러면 내가 너의 껍질을 벗겨 주마. ‘교욕’이라고! 내가 널 늘씬하게 패 주지! 넌 아들에게 개의 이름을 지어 주고 온 마을에 퍼뜨렸어!” 그리고 이런 상소리와 말다툼이 오고 가겠지. 자신의 수 염이 침투성이가 될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는 거칠었다. 그는 욕설을 쏟아 내고 나면 지칠 것이다. 그는 밀주를 우물에 가득 따라서 실신할 정도로 마셔 대겠지. 그 러면 엄마는 머리를 가다듬고 스커트 자락으로 여기저기 닦 고 베네딕트의 손을 잡고서 그를 강 위의 높은 언덕으로 데 리고 갈 것이다. 그가 이미 알고 있던 그곳은 그녀가 예전 에, ‘폭발’ 전에 살았던 곳이었다. 거기에는 엄마의 오층 집 이 있었다. 엄마는 더 높은 대저택들이 여기저기 있었으며, 층을 세기에는 손가락이 모자랄 지경이었다고 말하곤 했다. 셈은 이렇게 하면 되는데. 장화를 벗어서 발로 세면 되잖아? 그때 베네딕트는 겨우 숫자를 세는 법을 배웠다. 그가 셈을 돌로 하기에는 아직 일렀다. 그러나 지금 표도르 쿠즈미치 님이 셈을 하는 막대기를 발명했다고 들었다. 나무에 구멍 을 뚫어, 막대기에 꿰어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옮겨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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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것 같은 원리라고 한다. 정신만 차리고 있으면 아주 빨 리 셈이 이루어진다고 하더란 말이지! 다만 네 자신이 셈을 하려고 해서는 안 돼. 필요한 것이 있는 사람은 장날에 가게 로 가서, 상대방이 얘기한 대로 얼마를 지불하는데(그들은 아마포나 쥐를 가지겠지) 그러면 얼마든지 셈을 하면 되는 거야. 그렇게 말들 하지만, 사실인지, 아닌지 누가 알겠는가. …바로 이렇게 엄마는 언덕의 돌 위에 앉아 울어서 뜨거 운 눈물로 범벅이 되곤 한다. 자신의 여자 친구들, 아름다운 아가씨들을 추억하기도 하고 이 가기(가게)들을 상상할 것 이다. 그녀는 모든 거리가 오스팔트(아스팔트)로 덮여 있었 다고 한다. 그것은 마치 딱딱하고 검은 기름 같은 것이었으 며 걸어가도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여름이면 엄마는 몹 시 슬퍼하는데, 베네딕트는 진흙에서 놀며, 진흙으로 파이 를 만든다. 그렇지 않으면 세멘시나를 꺾어서 울타리를 치 는 것처럼 땅에 박는다. 그러나 광활한 지역 주변에는 언덕, 강, 훈풍이 있어서 걸어 다니면 풀이 흔들리고 하늘의 태양 은 작고 둥근 빵처럼 들판 위, 숲 위에서 ‘골루보이 산맥’18) 을 향해 굴러간다. 그러나 우리 도시, 고향은 표도르 쿠즈미치스크라고 불

18) 골루보이 산맥: 러시아어로 ‘푸른 산맥’이란 의미다. 이 산은 호주에 있는 유명한 블루 마운틴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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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다. 엄마가 말해 주기로는, 그전에는 이반 포르피리치스 크라고 불렀으며 또 그전에는 세르게이ᐨ세르게이치스크였 으며, 또 그전에는 이름이 유즈니예 스클라디였으며 훨씬 전에는 모스크바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부키(Б) 어렸을 때부터 베네딕트는 모든 일을 아버지에게서 배웠다. 돌도끼를 준비하는 일이 장난이 아니잖아? 그러나 그는 할 수 있다. 그는 이즈바를 지을 수 있다. 원하는 만큼 빗각을 이루게 하고, 원하는 만큼 장부촉이음19) 등으로 짓는다. 난 로를 만들 수도 있다. 목욕탕을 재빠르게 만들 수 있다. 사 실 아버지는 씻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곰은 씻지 않 고 산다고 한다. 그러나 베네딕트는 씻는 것을 좋아했다. 목 욕탕의 따뜻한 내부에 기어 들어가서 냄새가 나도록 달걀로 만든 크바스를 돌에다가 부으며, 클렐 가지에 증기를 쐴 것 이다. 그것으로 양 옆구리를 때리는 거야! 베네딕트는 모피 제조를 할 수 있는데, 토끼로 만든 반제 피혁 끈을 잘라 모자를 꿰맬 수 있다. 그것은 모두 수공으로

19) 장부촉이음: 목재의 옆면에 다른 목재의 장부촉을 끼워 맞춘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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