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선거 포스터, 1828~2008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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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 선거 포스터, 1828∼2008



미국 대통령 선거 포스터, 1828∼2008 미국의회도서관 지음 이상훈 옮김

대한민국,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2013


미국 대통령 선거 포스터, 1828∼2008

지은이 미국의회도서관 옮긴이 이상훈 펴낸이 박영률 초판 1쇄 펴낸날 2013년 5월 6일 커뮤니케이션북스(주) 출판등록 2007년 8월 17일 제313-2007-000166호 121-869 서울시 마포구 연남동 571-17 청원빌딩 3층 전화 (02) 7474 001, 팩스 (02) 736 5047 commbooks@eeel.net www.commbooks.com CommunicationBooks, Inc. 3F Cheongwon Bldg., 571-17 Yeonnam-dong Mapo-gu, Seoul 121-869, Korea phone 82 2 7474 001, fax 82 2 736 5047 Presidential Campaign Posters Copyright ⓒ 2012 by the Library of Congress Preface copyright ⓒ 2012 by Brooke Gladstone All rights reseved. First published in English by Quirk Books, Philadelphia, Pennsylvania Korean translation edition ⓒ 2013 by CommunicationBooks, Inc. Published by arrangement with Quirk Books, Philadelphia, Pennsylvania, USA Through Bestun Korea Agency, Seoul, Korea All rights reserved. 이 책의 한국어 판권은 베스툰 코리아 에이전시를 통하여 저작권자인 Quirk Books와 독점 계약한 커뮤니케이션북스(주)에 있습니다.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어떠한 형태로든 무단 전재와 무단 복제를 금합니다. ⓒ 이상훈, 2013 ISBN 978-89-6680-158-9 책값은 뒤표지에 표시되어 있습니다.


역자 서문

2012년은 대통령제를 실시하는 나라들 가운데 프랑스와 미국 그리

부들의 당초 시행 취지에 따라 고안되었다. 그러나 민도가 높아지

고 대한민국에서 동시에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해였다. 나라마다

고 국민들의 정치의식이 높아짐에 따라 이에 대한 찬반양론이 끊이

특징적으로 치러진 선거에서 프랑스는 4월 22일과 5월 6일에 치러

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선거인단 제도 비판자들은 이 제도가

진 1, 2차 투표를 통하여 제1야당인 사회당의 프랑수아 올랑드가 현

본질적으로 민주주의에 반한다고 말한다. 선거인단 제도는 경합 주

직인 대중운동연합의 니콜라 사르코지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11월

swing state가

6일에 있었던 미국 대통령 선거는 58.6%의 투표율을 기록한 가운데

은 선거 때마다 끊이지 않고 있다. 반면 이 제도의 지지자들은 규모

현직인 민주당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공화당 미트 롬니 후보에게

가 작은 주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미국 연방제의 단점을 보완해 주는

26개 주와 워싱턴 D.C.에서 승리하고, 선거인단 332표, 전체 득표

게 선거인단 제도의 아주 중요한 장점이라고 주장한다. 대통령 선

율 51%를 획득하여 승리하였다. 75.8%의 높은 투표율을 기록한 12월

거 제도를 선거인단 제도에서 주민 직선제로 바꾸는 내용의 헌법 개

19일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와 민주

정안이 하원에서 수차례 논의되기도 하였다.

대선에 지나치게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게 만든다는 지적

통합당의 문재인 후보가 그야말로 박빙의 승부를 펼친 가운데 박근

또 하나의 미국 대통령제 특징은 부통령 제도다. 부통령은 대

혜 후보가 유효투표의 51.6%를 득표하여, 직선제로 전환되어 치러

통령과 함께 1787년 제정된 미국 연방 헌법에 그 역할과 기능이 명

진 13대 이후 최초로 과반수 득표를 얻으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여

시되어 있다. 미국 역사에는 1789년에 처음 실시된 대통령 선거 이

성대통령, 세계 최초의 부녀 대통령이 탄생하게 되었다.

래 초대 조지 워싱턴부터 44대 버락 오바마에 이르기까지 43명의

이들 세 나라 가운데 프랑스와 대한민국은 그들의 정치 역사에

대통령과 47명의 부통령이 배출되었다. 47명의 부통령 가운데 2대

서 이원집정제와 의원내각제가 시행되는 등 변화가 있지만 미국은

대통령인 존 애덤스를 시작으로 41대 조지 부시까지 14명이 대통령

건국 초기부터 대통령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그 나름의 독특한 통

이 되었다. 초기의 부통령은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인단에 의해

치 형태를 1789년의 조지 위싱턴 초대 대통령 이래 유지하고 있다.

임명되었다. 그러나 1824년 전체 유권자 투표가 도입되면서 대통령

미국이 유지하고 있는 대통령 제도의 가장 큰 특징으로는 선거인단

후보가 부통령 후보를 지명하는 소위 러닝메이트 제도가 시행되기

제도와 부통령 제도를 들 수 있다.

에 이르렀다. 부통령 제도를 도입한 취지는 대통령 유고 시 그 권한

미국의 선거인단 Electoral College은 4년마다 미국의 대통령과 부

을 대행시킬 목적이었다. 이러한 취지는 역사상 여덟 번이나 대통

통령을 뽑는 공식적인 기구다. 미국의 주와 워싱턴 D.C.는 인구 비

령의 암살, 병사, 탄핵 등으로 인한 유고를 대행하여 실효를 거두었

례로 선거인단을 선출한다. 현재 미국 대통령 선거 선거인단의 수

다. 부통령 제도의 유용함은 대통령의 유고 시뿐만 아니라 업무와

는 538명인데, 이는 미국 하원(435명)과 미국 상원(100명)의 숫자를

역할의 적절한 분장에서도 그 효력을 발휘하였다. 1960년대 이후

합친 535명에 워싱턴 D.C.의 선거인단 3명을 합친 것이다. 미국의

존슨-험프리, 클린턴-고어, 부시-체니의 조합이 좋은 예다.

각 주와 워싱턴 D.C.의 선거권자는 직접 대통령 후보에 투표하는

2012년 미국의 대통령 선거 직전 ≪뉴스위크Newsweek≫는 특집

것이 아니라 이미 특정 정·부통령 후보를 지지하기로 서약한 선거

판을 발행하였는데, 전문가 패널과 여론 조사로 현대의 10대 대통

인단에 투표하는 것이다. 메인주와 네브래스카주를 제외한 대부분

령을 선정하여 전문가들의 선정 이유를 순위와 함께 다음과 같이 발

의 주에서는 승자독식제winner-takes-it-all를 채택하고 있다. 승자독식제

표하였다. ① 프랭클린 루스벨트(1933∼1945): 대공황 극복과 제2

는 해당 주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후보에게 선거인단 전체가 표

차 세계대전의 승전, 미국의 산업 구조와 자본주의의 수호 ② 테디

를 몰아주는 방식을 뜻한다. 비록 선거인단이 미국 연방법에 따라

루스벨트(1901∼1909): 국립공원 조성 ③ 린든 존슨(1963∼1969):

특정 정·부통령 후보에 대한 지지 서약을 할 필요는 없지만, 대부

시민권리법 제정 ④ 드와이트 아이젠하워(1953∼1961): 중산층의

분의 경우 선거인단은 애초 약속한 대로 정·부통령 후보에게 투표

확대와 삶의 질 확보 ⑤ 우드로 윌슨(1913∼1921): 국제연맹 결성

한다. 이 제도는 초대 대통령을 선출할 때부터 시행되었는데, 대통

주도 ⑥ 해리 트루먼(1945∼1953):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수습 ⑦ 빌

령과 부통령을 엘리트 그룹 가운데 엄선하고자 하는 미국 건국 국

클린턴(1993∼2001): 경제 번영 ⑧ 존 케네디(1961∼1963): 우주 개발

v


⑨ 로널드 레이건(1981∼1989): 냉전 종식 ⑩ 버락 오바마(2009∼현 재): 최초의 흑인 대통령. (여론조사에 의한 10대 대통령은 이들 가 운데 우드로 윌슨과 린든 존슨이 제외되고 지미 카터와 조지 H. W. 부시가 포함되었다.) 역사는 언제나 요동쳐 왔고, 격랑 가운데 선장의 능력에 따라 배의 운명은 좌우되어 왔다. 전임자의 전쟁 수행으로 인한 막대한 국가부채를 넘겨받은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자신의 임 기 동안 전임자의 부채에 육박하는 부채를 지고도 연임에 성공하였 다. 2기 임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재정 위기를 겪으며 줄타기를 하고 있는 미국 경제를 어떻게 이끌고 갈 것인지는 세계가 숨죽이며 지 켜볼 일이다. 이 책은 7대 대통령 앤드류 잭슨(1828)에서부터 44대 버락 오바 마(2008)까지 180년간 47번의 대통령 선거전에 관한 기록이다. 당 시의 정치·사회·경제적 상황과 후보자들의 인간적 고뇌와 정의, 권모와 술수가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기나긴 미국의 선거 역사 가 우리의 정의롭고 바람직한 선거 문화 정착에 일조할 수 있다면 지루했던 번역의 수고가 위로를 받겠다. 이 책의 번역에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것 이 당연한 도리겠다. 역자의 미국 연구년 연장을 흔쾌히 허락하신 영산대학교 부구욱 총장님께 감사의 마음을 올린다. 역자는 연장된 연구년 덕분에 이 책을 번역하게 되었고, 연구년을 보내고 있는 호 프스트라대학교Hofstra University에서의 후보 토론을 비롯해 미국 대통 령 선거 현장에서 그 과정을 생생하게 경험하며 연구할 수 있었다. 맨해튼의 인터내셔널센터에서 만난 미국의 지식인들에게도 감 사한다. 외국인들에게 영어와 미국 문화를 자원봉사로 전하는 이들 가운데 미국 정치와 역사에 정통한 노신사 리처드 힐Richard Hill, 역 자에게 난해한 문장을 쉽고 평이하게 설명해 준 숀 멀린Shawn Mullin, 미국의 문화적 전통을 열강하면서 이해를 도운 루이스 팰리스Luise Palace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아울러 단조롭고 불편하며 외롭기

까지 한 객지 생활에서 서로 격려하며 동반자의 길을 가는 아내에 게 이전보다 한층 깊어진 사랑과 고마움을 전한다. 바쁜 학업 중에 도 뉴욕과 서울의 물리적 거리를 극복하고 초역과 원고 정리를 도 운 아들 환희가 없었다면 이 책의 출간은 더욱 늦어졌을 것이다. 끝 으로 기꺼이 출판을 결정하시고 이끌어 주신 커뮤니케이션북스 조 세현 팀장과 곽성우 씨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2013년 4월 이상훈

vi


서문

우리 미디어 소비자들은 선거운동 포스터에 국내 정치가 영향받는

는 사람, 국가가 거울을 본다고 했을 때 비치는 얼굴에 투표한다. 몇

것에는 이미 질리도록 익숙해져 있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모두

가지만 예를 들어 보자. ‘모든’ 승리 후보들이 그렇다. 해리 트루먼

포스터가 노골적인 조작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정보 제공이 아

Harry Truman,

닌 선전에 목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포스터는 얼굴과 캐치프

고 조지 W. 부시George W. Bush 모두 경험이나 자격이 아니라 그들의

레이즈를 강조한다. 복잡한 이슈를 ‘삐죽한 작은 알약’(작은 알약

이미지 덕분에 당선된 사람들이다.

jagged little pill은

캐나다 출신 여성 싱어송라이터인 앨라니스 모리셋

Alanis Morisette의

존 케네디John F. Kennedy,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그리

“본때를 보여줘!” 트루먼이나 언어 파괴자 부시는 거칠고 평범

앨범 타이틀로, 세계적으로 3000만 장이 넘게 팔렸

한 이미지였으며, 이는 유약하고 거만한 이미지의 상대 후보인 존

고 가사가 직설적이기로 유명한 노래들이 많이 실려 있다-역자

듀이 John Dewey와 앨 고어Al Gore(재선 시에는 존 케리John Kerry)의 이

주)에 응축해 버린다. 부작용이 심한 힘의 과잉 행사인 것이다.

미지와 정반대였다. “60년대를 위한 리더십”이라는 슬로건을 내세

동시에 각 시대의 가장 훌륭했던 선거운동 포스터는 유권자의

웠던 케네디는 정력과 활기가 넘치는 선거전을 펼친 영웅적이고 잘

상상력을 자극한다. 마치 일본 만화와도 같이 이미지가 덜 구체적

생긴 미국의 선구자 이미지로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의 정적이고

일수록 후보를 알아보기 더 좋으며, 유권자들의 꿈을 투영시킬 여

식은땀을 흘리는 듯한 모습과 대비되었다. 레이건의 포스터는 연륜

지가 더 많아진다. 이미지가 구체적일수록 ‘다름’을 느낄 위험성이

에서 우러나오는 지혜를 낙천적으로 잘 표현하였다. 레이건의 선거

커지며, 여기서 ‘다름’은 투표에서의 사망 선고로 이어질 수 있다.

운동은 재탄생을 강조하였던 반면(“미국을 돌려 드립니다!”), 그의

최근의 가장 유명한 포스터를 예로 들어 보자. 셰퍼드 페어리 Shephard Fairey가 작업한 앤디 워홀 Andy Warhol 풍의 2008년 버락 오바마 Barack Obama의

상대였던 지미 카터Jimmy Carter는 스스로 진단한 사회문제에 빠져 있 는 것처럼 보였다. 누가 그런 미국에서 살고 싶겠는가?

대선 포스터다. 작은 점이나 짧은 털조차 없이 깔끔하

미국의회도서관(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문화 기관이자 미국의

게 그려낸 포스터는 19세기 후보들이 자주 사용한 동판화 그림 같으

기억을 담당하고 있다)에서 보관하고 있는 포스터들이 매력적인 이

며, 심지어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의 이름조차 적혀 있지 않다. 포스

유는 아마도 미국 정치 공작의 변하지 않는 섭리를 보여 준다는 점

터는 가장 순수한 메시지를 단 한 단어로 담았다. ‘희망 hope’

이 가장 클 것이다. 공화당의 러더포드 헤이스Rutherford B. Hayes와 민

이 포스터는 젊음, 힘, 진지함에 초점을 맞춘 것보다 한 단계 더

주당의 새뮤얼 틸든Samuel Tilden이 맞붙은 1876년 선거전에서 틸든에

나아간 느낌의 그림을 담고 있다(게다가 그러한 것들까지 커뮤니케

게는 “약삭빠른 새미Slippery Sammy”라는 별명이 붙었으며, 이는 닉슨

이션에 성공하였다). 미국에서 흑인으로 살아갈 때 받는 차별을 비

의 “사기꾼 닉슨Tricky Dick”이라는 별명과 거의 비슷했다. 오늘날에

주얼로 기막히게 극복해 냄으로써 흑인 대통령 후보의 모습을 멋지

도 끊임없이 연구되고 있는 선호 색채에 따른 심리, 서체에 따른 기

게 담아내었다. 페어리는 영감 어리고 진화된 표현으로 인종차별을

호, 슬로건 키워드의 구문 등을 언급할 필요도 없이 초기의 캠페인

극복해 낸 미국의 모습을 전면에 부각시킨 것이다. 미국은 이 신화

포스터에서 현대의 광고, 마케팅, 브랜딩 기법들이 선행되었던 사

적인 이미지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환호했다. 다른 위대한 정치 예

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술과 마찬가지로 ‘희망’ 포스터는 단지 후보만을 브랜드화시키지 않 았다. 미국을 브랜드화하고, 미국인들을 브랜드화하였다. 실제로 선거운동 포스터가 팔려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근본적 으로 정치인을 위한 포석이 아니고 미국의 이미지를 팔고자 한 것이 다. 우리가 동경하는 미국의 모습이거나, 메시지가 부정적일 때는 우리가 두려워하는 미국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이 포스터들에서 우리는 수 세기 동안 규칙을 넘나들어 온 가식 과 (부패, 부도덕성에 대한) 비방, (미심쩍은 신앙, 비밀 가입에 대 한) 암시를 볼 수 있다. 사실 현대 미국인들이 병적인 정치 시스템의 징조라고 비난하는 무례함이 흑백과 컬러 포스터에 늘 있어 왔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가장 오래된 선거운동을 보자. 1828년 앤 드류 잭슨 Andrew Jackson이 현직 대통령이던 존 애덤스 John Quincy Adams

미국인들이 투표할 때 정책이 아닌 사람을 본다는 말은 이제 너

와 맞붙은 선거전이다. 애덤스는 언론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려고

무 뻔한 말이 되었다. 우리는 앞으로 4년간 우리의 얼굴이었으면 하

하였는데, 이에 반해 잭슨의 캠프는 당시 주로 문맹이었던 보통 사

vii


람들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올드 히코리” 잭슨이라고 표시된 히코

이 있다. “미국을 다시 미국답게.” 이는 할렘 르네상스 시절 인기 시

리 빗자루와 지팡이를 나누어 주었다. 이에 대응하여 애덤스의 지

인이었던 랭스턴 휴즈Langston Hughes가 1938년에 지은 시의 제목이

지자들은 1812년 전쟁 당시 잭슨의 잔혹 행위를 폭로하며 강하게

다. 케리는 첫 연에 집중하였다.

반발하였지만 그들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보통 사람들이 잭슨 을 백악관으로 보내 준 것이다. 거의 모든 선거운동에서 후보자들은 승리를 위해 자신과 보통

미국을 다시 미국답게. 꿈을 다시 예전에 꾸었던 꿈으로.

사람들을 동일선상에 둔다. 이는 미국 정치에서 가장 어려운 책략 이기도 하며, 때때로 보통 사람으로의 후보를 강조하려는 시도가

그러나 휴즈의 이 구절은 비통한 반어적 표현이었다. 그는 아

현실을 반영하기도 한다. 1880년 선거전에서 자신을 “백악관까지

메리칸 드림이라는 것이 모두를 위한 자유와 정의라는 측면에서는

‘거짓과 악의, 사기에 맞서’ 낫질을 하는” 농부로 묘사한 제임스 가

단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아

필드 James Garfield는 실제로 자신을 가난에서 건져 내었다. 하지만 사

마도 그것이 꿈이었던 적이 없었다고 의심했을 것이다.

실은 그것과 달랐다(가필드는 선거에서 기업인들의 재정 지원을 받 았고 재임 중에는 기업 친화 정책을 펼쳤다-역자 주). 그로부터 몇 년 전, 율리시스 그랜트Ulysses S. Grant의 1872년 선거

(나에게 단 한 번도 평등이란 것이 없었다, 이 “자유의 고향”에서 자유마저도 없었다)

운동 포스터는 그를 “일하는 사람들의 깃발” 아래 있는 무두장이로 그려 놓았으며, 러닝메이트였던 헨리 윌슨은 제화공으로 그렸다.

하지만 휴즈가 얼마나 비참해했던 간에, 그는 정치적 수사법과

둘 다 그 무엇도 아니었다. 사실 그랜트의 선거운동은 코넬리우스

는 관계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수정헌법 제1조를 무기로 하여 자신

반더빌트Cornelius Vanderbilt, 제이 쿡 Jay Cooke, 존 애스터 John Astor와 같

의 이상을 관철시키려 하지 않았다. 이것이 미국인들이 민주주의를

은 미국의 성공한 사업가들의 후원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보통 사

위해 싸워 온 방법이었다. 어느 쪽도 이 땅을 영원히 소유할 수 없다

람이라는 간판 뒤에 승차하는 것이 그랜트가 백악관에 가는 가장 확

는 것은 상관이 없다.

실한 방법이었으며, 특히 동부의 전형적인 자유주의 엘리트이자 신 문사 편집장이었던 호레이스 그릴리Horace Greeley를 상대로는 더욱

미국은 나에게 한 번도 미국인 적이 없었고,

그랬다.

그리고 아직도 나는 이렇게 맹세한다.

그랜트가 마치 자신도 노동자인양 했던 전략은 상투적이었지

미국은 미국일 것이다!

만 효과적이었다. 조지 W. 부시가 카우보이 행세를 하면서 친밀감 을 높이고 존 케리를 윈드서핑하는 좌파 이미지로 굳혀 버린 것도

우리는 단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으며 앞으로도 존재할 수

같은 전략이었다. 후보는 파도를 잡아내고 잘 타야 펜실베이니아

없는 미국의 개념을 지니고 산다. 하지만 우리는 실제로 존재하는

애비뉴 1600(백악관 주소-역자 주)으로 갈 수 있다. 이 책에 수록

거리에 포스터를 붙인다.

된 포스터와 캐치프레이즈는 미국 정치라는 격랑을 헤쳐 나가는 작 은 배와 같은 것이다. 이 책이 주는 궁극적인 교훈은 미국 정치의 파도가 얼마나 거센 가 하는 것이다. 정치 미술은 충돌과 교착의 묘사로 미국의 실험을 그려내기 위해 창조되었고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을 뿐이다. 각각의 포스터를 보고 선거운동에 대한 내용을 보면, 세금과 무역, 부와 권 력의 분배, 그리고 정부의 역할 자체에 관한 줄다리기가 결코 끝나 지 않을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모든 세대는 새로 싸움을 만들고, 또 그렇게 싸운다. 그리고 후 보들은 끝나지 않는 정쟁을 위해 과거 선거전에서 매번 교훈을 얻는 다. 슬로건과 연설을 통해 세금 감면이나 사회복지, 큰 정부와 작은 정부, 전쟁과 평화, 재선과 변화처럼 ‘시급한’ 필요에 대해 외친다. 이 책에 소개하지 못한 슬로건들 가운데 (모든 것을 담을 수는 없었기에) 2004년 조지 W. 부시에게 패한 민주당 존 케리 후보의 것

viii

브룩 글래드스톤Brooke Gladstone


차례

역자 서문

v

서문

vii

1828: 앤드류 잭슨(민주당) vs 존 애덤스(국민공화당)

2

1832: 앤드류 잭슨(민주당) vs 헨리 클레이(국민공화당)

6

1836: 마틴 뷰런(민주당) vs 윌리엄 해리슨(휘그당) vs 휴 화이트(휘그당) vs 대니얼 웹스터(휘그당) vs 윌리 맹검(휘그당)

8

1840: 윌리엄 해리슨(휘그당) vs 마틴 뷰런(민주당)

10

1844: 제임스 폴크(민주당) vs 헨리 클레이(휘그당)

14

1848: 재커리 테일러(휘그당) vs 루이스 카스(민주당) vs 마틴 뷰런(자유토지당)

18

1852: 프랭클린 피어스(민주당) vs 윈필드 스콧(휘그당)

26

1856: 제임스 뷰캐넌(민주당) vs 존 프리먼트(공화당) vs 밀러드 필모어(아메리카당)

28

1860: 에이브러햄 링컨(공화당) vs 스티븐 더글러스(민주당) vs 존 브레킨리지(남부민주당) vs 존 벨(입헌통일당)

32

1864: 에이브러햄 링컨(공화당) vs 조지 매클렐런(민주당)

38

1868: 율리시스 그랜트(공화당) vs 호레시오 세이무어(민주당)

42

1872: 율리시스 그랜트(공화당) vs 호레이스 그릴리(자유공화당)

46

1876: 러더포드 헤이스(공화당) vs 새뮤얼 틸든(민주당)

50

1880: 제임스 가필드(공화당) vs 윈필드 핸콕(민주당)

52

1884: 그로버 클리블랜드(민주당) vs 제임스 블레인(공화당)

56

1888: 벤저민 해리슨(공화당) vs 그로버 클리블랜드(민주당)

58

1892: 그로버 클리블랜드(민주당) vs 벤저민 해리슨(공화당) vs 제임스 위버(인민당)

62

1896: 윌리엄 매킨리(공화당) vs 윌리엄 브라이언(민주·인민당)

64

1900: 윌리엄 매킨리(공화당) vs 윌리엄 브라이언(민주·인민당)

70

1904: 시어도어 루스벨트(공화당) vs 앨튼 파커(민주당) vs 유진 뎁스(사회당)

74

1908: 윌리엄 태프트(공화당) vs 윌리엄 브라이언(민주당) vs 유진 뎁스(사회당)

78

1912: 우드로 윌슨(민주당) vs 시어도어 루스벨트(진보당) vs 윌리엄 태프트(공화당) vs 유진 뎁스(사회당)

82

1916: 우드로 윌슨(민주당) vs 찰스 휴즈(공화당)

86

1920: 워런 하딩(공화당) vs 제임스 콕스(민주당)

90

1924: 캘빈 쿨리지(공화당) vs 존 데이비스(민주당) vs 로버트 라폴레트(진보당)

92

1928: 허버트 후버(공화당) vs 앨 스미스(민주당)

96

1932: 프랭클린 루스벨트(민주당) vs 허버트 후버(공화당)

100

1936: 프랭클린 루스벨트(민주당) vs 앨프레드 랜던(공화당)

102

1940: 프랭클린 루스벨트(민주당) vs 웬델 윌키(공화당)

108

1944: 프랭클린 루스벨트(민주당) vs 토머스 듀이(공화당)

110

1948: 해리 트루먼(민주당) vs 토머스 듀이(공화당) vs J. 서먼드(주권민주당) vs 헨리 월레스(진보당)

114

1952: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공화당) vs 애들라이 스티븐슨(민주당)

118

1956: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공화당) vs 애들라이 스티븐슨(민주당)

122


1960: 존 케네디(민주당) vs 리처드 닉슨(공화당)

124

1964: 린든 존슨(민주당) vs 베리 골드워터(공화당)

126

1968: 리처드 닉슨(공화당) vs 허버트 험프리(민주) vs 조지 월레스(무소속)

130

1972: 리처드 닉슨(공화당) vs 조지 맥거번(민주당)

144

1976: 지미 카터(민주당) vs 제럴드 포드(공화당)

152

1980: 로널드 레이건(공화당) vs 지미 카터(민주당) vs 존 앤더슨(무소속)

160

1984: 로널드 레이건(공화당) vs 월터 먼데일(민주당)

166

1988: 조지 H. W. 부시(공화당) vs 마이클 듀카키스(민주당)

170

1992: 빌 클린턴(민주당) vs 조지 H. W. 부시(공화당) vs 로스 페로(무소속)

176

1996: 빌 클린턴(민주당) vs 밥 돌(공화당) vs 로스 페로(개혁당)

180

2000: 조지 W. 부시(공화당) vs 앨 고어(민주당)

184

2004: 조지 W. 부시(공화당) vs 존 케리(민주당)

190

2008: 버락 오바마(민주당) vs 존 매케인(공화당)

196

사진 출처

202


포스터 차례

1828: 앤드류 잭슨

3

1900: 윌리엄 브라이언

71

1968: 딕 그레고리

139

1828: 앤드류 잭슨

5

1900: 윌리엄 매킨리

73

1968: 넬슨 록펠러

141

1832: 앤드류 잭슨

7

1904: 시어도어 루스벨트

75

1968: 조지 롬니

143

1836: 마틴 뷰런

9

1904: 유진 뎁스

77

1972: 조지 맥거번

145

1840: 윌리엄 해리슨

11

1908: 윌리엄 태프트

79

1972: 리처드 닉슨

147

1840: 윌리엄 해리슨

13

1908: 윌리엄 태프트

81

1972: 셜리 치점

149

1844: 헨리 클레이

15

1912: 우드로 윌슨

83

1972: 리처드 닉슨

151

1844: 제임스 폴크

17

1912: 시어도어 루스벨트

85

1976: 거스 홀

153

1848: 재커리 테일러

19

1916: 우드로 윌슨

87

1976: 지미 카터

155

1848: 루이스 카스

21

1916: 찰스 휴즈

89

1976: 제럴드 포드

157

1848: 대니얼 웹스터

23

1920: 워런 하딩

91

1976: 지미 카터

159

1848: 재커리 테일러

25

1924: 캘빈 쿨리지

93

1980: 로널드 레이건

161

1852: 프랭클린 피어스

27

1924: 로버트 라폴레트

95

1980: 존 앤더슨

163

1856: 제임스 뷰캐넌

29

1928: 허버트 후버

97

1980: 배리 커머너

165

1856: 밀러드 필모어

31

1928: 앨 스미스

99

1984: 로널드 레이건

167

1860: 에이브러햄 링컨

33

1932: 프랭클린 루스벨트

101

1984: 월터 먼데일

169

1860: 에이브러햄 링컨

35

1936: 노먼 토머스

103

1988: 조지 H. W. 부시

171

1860: 존 벨

37

1936: 프랭클린 루스벨트

105

1988: 제시 잭슨

173

1864: 조지 매클렐런

39

1936: 앨프레드 랜던

107

1988: 잭 캠프

175

1864: 에이브러햄 링컨·조지 매클렐런

41

1940: 웬델 윌키

109

1992: 조지 H. W. 부시

177

1868: 율리시스 그랜트

43

1944: 프랭클린 루스벨트

111

1992: 로스 페로

179

1868: 호레시오 세이무어

45

1944: 토머스 듀이

113

1996: 빌 클린턴

181

1872: 율리시스 그랜트

47

1948: 해리 트루먼

115

1996: 밥 돌

183

1872: 호레이스 그릴리

49

1948: 헨리 월레스

117

2000: 앨 고어

185

1876: 러더포드 헤이스

51

1952: 애들라이 스티븐슨

119

2000: 조지 W. 부시

187

1880: 제임스 가필드

53

1952: 애들라이 스티븐슨

121

2000: 랠프 네이더

189

1880: 제임스 가필드

55

1956: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123

2004: 조지 W. 부시

191

1884: 그로버 클리블랜드

57

1960: 존 케네디

125

2004: 존 케리

193

1888: 그로버 클리블랜드

59

1964: 린든 존슨

127

2004: 조지 W. 부시

195

1888: 앨슨 스트리터

61

1964: 베리 골드워터

129

2008: 버락 오바마

197

1892: 벤저민 해리슨

63

1968: 유진 매카시

131

2008: 존 매케인

199

1896: 윌리엄 매킨리

65

1968: 리처드 닉슨

133

2008: 버락 오바마

201

1896: 윌리엄 브라이언

67

1968: 로버트 케네디

135

1896: 윌리엄 매킨리

69

1968: 팻 풀센

137



미국 대통령 선거 포스터, 1828∼2008


1828 앤드류 잭슨(민주당) vs 존 애덤스(국민공화당) “투표장으로! 투표장으로! … 모두 집에 있지 말고 투표장으로 보내야 한다!” - 더프 그린, ≪US 텔레그래프≫, 1828년 10월 20일

선거인단 투표

잭슨 178 vs 애덤스 83

유권자 전체 투표

잭슨 606,567 vs 애덤스 500,342

앤드류 잭슨은 1828년 선거에서 현직 대통령이었던 존 애덤스를 이 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보통 사람들을 선거에 끌어들이는 것뿐임 을 알고 있었다. 부동산 소유주에게만 투표권을 주는 법을 많은 주 에서 폐지한 상태에서, 잭슨은 많은 대중들에게 정치에 참여해야 할 동기를 부여해야 했다. 이는 그의 가장 확실한 유권자가 노동자 임을 의미했다. 선거운동에 착수하기 위해, 선거가 시작되기 몇 해 전 잭슨과 그의 지지자들은 내슈빌 중앙위원회를 만들어 전국에 걸 친 자원봉사를 통해 ‘모든 주, 카운티, 마을’에 지부를 만들었다. 위 원회는 잭슨의 풀뿌리 기반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잭슨 민주공

<미국 대통령>, 석판화, 어커스트 헤르뷰(Auguste Hervieu), 1829. 잭슨은 화려한 행렬 없이 혼자 백악관에 도착한다. 그의 부인은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는데, 잭슨은 아내의 사인이 선거운 동 기간 중에 그녀에 대한 인신공격 때문이라고 믿었다.

화당 Jacksonian Democratic-Republican Party이라는 제2정당까지 결성하였 다. 처음에는 ‘야당’으로 불렸던 그들은 결국 약칭 민주당으로 불리 게 되었다. 민주당은 남부의 농부들과 북부의 공화당원들로 구성되 었으며, 제2정당이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국민의 자유를 수호할 것 이라고 믿었다. 민주당은 그들의 심벌을 잭슨의 터프가이 이미지에 맞춰 1812 년 전쟁 영웅으로 정하였다. 장군으로 복무하던 시절 그는 부하들 로부터 “히코리처럼 강하다”는 칭송을 들었으며, 그 이유로 선거운 동 기간에 ‘올드 히코리’라는 친숙한 별명을 만들었다. 잭슨 측에서 는 히코리로 만든 지팡이, 빗자루, 막대기를 나눠 주었으며 히코리 막대기와 기둥을 각 가정, 마차, 기선 등에 세웠다. 그동안 애덤스는 소극적으로 재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선 거운동 기간 동안 지지를 호소하기 위해 벌인 유일한 활동은 신문기 사뿐이었으며, 이는 잭슨의 풀뿌리 전략과는 대비되었다. 자신들에 비해 진일보한 잭슨의 선거운동 기관에 맞서기 위해

<잭슨 당선>, 목판화, 1828. 히코리 나무는 앤드류 잭슨의 전설적인 강함을 상징하며, 이는 그 의 별명 ‘올드 히코리’로 이어진다.

애덤스 측에서는 그의 가족과 행동, 결정에 대해 공격을 가하기 시 작했다. 잭슨이 무고한 사람을 죽였다는 비난에 신물이 난 신문 편

와 전리품의 고장 뉴올리언스를 침공하려던 1500명의 영국 군인을

집자 아이삭 힐Issac Hill은 다음과 같은 성명을 ≪뉴햄프셔 패트리엇

차가운 피로 죽였다!” 조롱으로 시작되었던 말이 잭슨의 선거운동

New Hampshire Patriot≫에

슬로건이 되었으며, 이것이 잭슨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2 /3

기고하였다. “1815년 1월 8일 잭슨은 미(美)

<앤드류 잭슨 장군: 미(美)와 전리품의 수호자이자 옹호자>, 판화, C. G. 차일즈, 1828



1828

지지 않고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였다.

앤드류 잭슨(민주당) vs 존 애덤스(국민공화당)

하였다. 하지만 애덤스의 공약은 불행하게도 많은 사람들에게 파급

한편 애덤스는 재선될 경우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드라마틱 하게 연설하는 대신 미국의 예술과 과학을 위한 조사를 실시하고 도로와 운하를 증설하는 등의 공약으로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고자

되지 않았으며, 이러한 프로젝트에 소요될 예산에 대한 부담 때문

“제 구실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자기가 옳다는 의견을 고집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에 국수주자들의 미움만 사게 되었다. 유권자들을 잭슨에게 충성하게 하고 결과적으로 그의 당선으

주저 없이 바로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 조금 더 나은

로 이어지게 한 것은 보호본능이었다. 선거운동 기간 동안 그는 무

사람이다.”

능력한 직원들을 해고하는 것을 골자로 한 정부 개혁안을 언급하였

- 앤드류 잭슨

다. 채무자들을 벌하겠다는 공약은 소규모 업계 사장들과 중산층 노동자들에게 어필하였다. 그는 또한 연방 예산으로 각 주의 지역

선거인단 투표

잭슨 178 vs 애덤스 83

교통을 건설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내슈빌위원회는 바비큐,

유권자 전체 투표

잭슨 606,567 vs 애덤스 500,342

소풍, 대규모 집회를 기획함으로써 유권자들은 자신들이 참여하고 있고 소중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의식을 갖게 하였다. 애덤스는 실 천하는 사람이었지만 결국 잭슨의 개혁 어젠다가 끝내 이겼다.

평범한 사람에서 잔인한 살인자로까지 비쳐져 불쌍한 캐릭터로 묘 사된 앤드류 잭슨의 새로운 미디어 이미지는 그에게 1828년 대선에 서 당선될 만큼의 표를 주었다. 현직이었던 존 애덤스를 지지하던 신문들은 그의 가장 큰 라이벌이었던 잭슨을 까막눈 술주정뱅이이 자 “잔인한 군사 지도자”로 묘사하였다. 그러나 그 모든 비난들도 ≪필라델피아 데모크라틱 프레스Philadelphia Democratic Press≫의 편집 장 존 빈스가 잭슨을 공격하고자 1828년에 만든 소위 코핀 핸드빌 Coffin Handbill(5쪽의

기사형 광고-역자 주)에 비할 수 없었다. 빈스

가 제작한 이 선전물은 잭슨이 1812년 전쟁과 크릭전쟁에서 전쟁의 과정과 종전 후에 수많은 탈영병을 처형했다고 주장했다. 이 전단 지에는 여섯 개의 관이 그려져 있으며, ‘목격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이들은 잭슨 장군의 잘못된 명령 때문에 죽은 사람들이다. 잭슨은 피의자들이 “반란을 조장했으며 군수창고에 침입하여 군수물자를 훔치고 제빵소를 불태우고 탈영하였다”고 주장하였다. 법정에서 그 들은 각각 공정한 재판을 받았으며 “그들의 헌법적 자유는 철저히 지켜졌다.” 법원의 이러한 판결에도 불구하고 애덤스의 지지자들에 게 잭슨은 그저 살인자일 뿐이었다. ‘멍청한 당나귀’라는 낙인이 찍힌 잭슨은 오히려 역으로 이 모 욕을 장점으로 활용하였다. 그는 새로운 선거운동 심벌로 당나귀를 채택하고 그의 후보지명을 알리는 포스터에 삽입하였다(동물이 민 주당의 심벌이 된 것은 1837년이 유일하며, H. 로빈슨H. R. Robinson이 정치 만화에 그려 넣었을 때다). 당나귀로 상징된 인신공격은 당시 의 정치적 이슈를 흐려 놓았다. 지지자들은 국제적 산업 경쟁으로 부터 자신들을 지켜 줄 보호관세, 해외 정책 계획, 그리고 기술과 교육 발전 등에 소극적으로 관심을 나타내었다. 잭슨은 이러한 관

<무너지는 집에서 떠나는 쥐들>, 석판화, 1831. 개혁을 위한 노력이 실패하면서 혼돈이 잭슨을

심사들에 대해 연설을 하긴 했지만 잠재적 지지자들에게서도 멀어

감싸고 있다.

4 /5

<잭슨 장군이 벌인 잔혹한 행위에 대한 보고>, 목판화로 활판 인쇄됨, 존 빈스(John Binns), 1828



1832

다”고 주장하였다. 부자와 엘리트들은 좋았지만 농부, 노동자, 서

앤드류 잭슨(민주당) vs 헨리 클레이(국민공화당)

며, 그 결과로 연방은행의 정부 기금을 인출하여 주 은행으로 입금

민들의 이익에는 반하는 것이라고 대통령이 선언하였다. 클레이의 공약은 차단되었고 세상의 여론이 잭슨의 힘을 약화시키기는커녕 오히려 강화시키면서 끝났다. 잭슨은 큰 차이로 클레이를 이겼으

하였다.

“왕은 왕좌에, 국민은 진흙탕에!” - 잭슨을 반대하는 신문의 헤드라인, 1832

선거인단 투표

잭슨 219 vs 클레이 49

유권자 전체 투표

잭슨 701,780 vs 클레이 484,205

어느 날 렉싱턴 시장의 한 켄터키 농부가 아침에 일어나 보니 어젯 밤 손질해 놓은 그의 유일한 돼지 한 마리의 절반이 사라졌다. 지난 밤에 그는 돼지의 가운데를 잘라 이등분하고 커다란 갈고리 두 개에 각각 걸어 놓았다. 절반을 도난당했음을 알게 된 농부가 외쳤다. “이 일은 헨리 클레이Henry Clay 지지자들이 한 것이 분명해. 잭슨 쪽 이었으면 다 가져갔을 거라고!” 잭슨 대통령에 대해 모두가 아는 사 실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가 무엇이든지 절반만 한 적은 없다는 것이다. 이는 1832년 그의 상대였던 국민공화당의 헨리 클레이 후 보가 그에 맞서 대통령의 명성에 도전하고자 고집을 부린 이유이기 도 했다. 19세기 초반의 많은 미국인들은 여전히 왕정의 억압을 직접 경

<파상풍 징후-이곳에서 벌어지는 철저한 바느질>, 데이비드 클레이풀 존스턴(David Claypool Johnston), 1834. 클레이와 잭슨 간의 미합중국은행 논쟁은 우호관계의 악화를 초래하였다.

험한 기억을 가지고 있었으며, 클레이는 잭슨을 미국의 헌법을 뛰 어넘어 폭정을 저지를 가능성이 있는 독재자로 그려 내고자 하였 다. 그는 선거 기간 동안 하원이 한 법령을 서둘러 의결하도록 술책 을 부렸는데, 이는 잭슨이 이 애국적으로 보이는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 법안은 미합중국은행의 권한을 강화하는 법안이었다. 예상대로 거부권이 행사되자 클레이와 그의 조력자였던 대니얼 웹스터Daniel webster 상원의원은 잭슨이 독재 군주 가 될 수 있다고 묘사된 광고를 준비해 두었다가 신문 지면을 구매 하여 실었다. 왕관을 쓰고 권장을 두르고 있는 잭슨이 왕좌 앞에 서 있는 그림이 “대법원과 국가 기관”을 죽였다는 기사와 함께 실린다 면, “서민을 위한 사람”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잭슨에게 열광하던 유권자들에게 찬물을 끼얹을 수 있을 것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클레이가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다. 잭슨의 촌스러운 포퓰리즘 가운데에는 대통령이 되기 위하여 그가 누구로부터도 바 보가 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거부권 행사와 더불어 잭슨은 미 합중국은행이 미국 사람들의 숭고한 수호자라는 생각에 반박하는 내용의 강력한 해명서를 발표하였고, 은행이 “주로 외국인에게 이

<잭슨, 뉴올리언스에서, 1815년 1월 8일>, 석판화, 1832. 뉴올리언스 전투에서 잭슨의 영웅적

익이 되며, 독점적이고, 국가의 권리에 적대적이며, 헌법에 위배된

인 리더십을 기리는 선거운동 벽보.

6 /7

<왕 앤드류 1세>, 석판화,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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