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조명희 단편집_맛보기

Page 1

조명희 단편집



낙동강(洛東江)



낙동강 칠백 니, 길이길이 흘으는 물은, 이곳에 이르러 겻가 지 강물을 한 몸에 뭉처서 바다로 향하야 나간다. 강을 러 바둑판 갓흔 들이 바다를 한하야 아마득하게 열녀 잇고, 그 넓은 들 품 안에는 무덤무덤의 마을이 여긔저긔 안겨 잇다. 이 강과 이 들과 거긔에 사는 인간 ― 강은 길이길이 흘 넛스며, 인간도 길이길이 살어왓섯다. 이 강과 이 인간! 지금 그는 서로 영원히 떨어지지1) 안으 면 안이 될 것가?

봄마다 봄마다 불어내리는 낙동강 물 구폿(龜浦)벌에 이르러 넘처 넘처 흘으네 ― 흘으네 ― 에−헤−야.

칠넝칠넝 넘친 물 로 벌로 퍼지면

1) 굵은 글씨 부분은 북한에서 발행한 ≪락동강≫(평양: 문예출판사, 1991)을 참고해 복원한 것이다. ≪락동강≫은 조명희가 망명해 있던 당시 손수 복원한 것을 반영했다는 ≪포석 조명희 선집≫(소련과학 원, 1959)을 바탕으로 출간되었다(이하 동일).

3


만 목숨 만만 목숨의 젓이 된다네 ― 젓이 된다네 ― 에−헤−야.

이 벌이 열니고 ― 이 강물이 흘을 제 그 시절부터 이 젓 먹고 자라왓네 ― 자라왓네 ― 에−헤−야.

천 련을 산 만 련을 산 낙동강! 낙동강! 한울가에 가−ᆫ들 에나 이칠소냐 ― 이칠소냐 ― 아−하−야.

어너 해 일흔 봄에 이 을 하직하고 멀니 서북간도로 몰 녀가는 한 의 무리가, 마지막 이 강을 건늘 제, 그네들 틈 에 갓치 여가는 한 청년이 잇서, 배ᄉ전을 두다리며 구슲 우게 이 노래를 불너서, 갓득이나 슲어하는 이사ᄉ군들로 하야금 눈물을 자아내게 하얏다 한다.

4


과연, 그네는 뭇 강아지 갓치 이  어머니의 젓지에 매여 달녀 오래오래ᄉ동안 살어왓섯다. 그러나 그 젓지 는 발서 자긔네 것이 아니기 시작한 지도 오래엿다. 그리던 터에 엎친 데 덮친다고 난데없는 이리 떼 같은 무리가 닥쳐 와서 물어 박지르며 빼앗아 먹게 되었다. 인자는 한 목움의 젓이라도 입으로 들어가기가 어렵게 되얏다. 하는 수 업시 이 에서 표박하야 나가게 되얏다. 이러케 된 것을 우리는 잠ᄉ간 생각하야 보자. 이네의 조상이 처음으로 이 강의 고기를 낙고, 이 벌의 곡식과 열매를  제부터 세이지도 못할 긴 세월을 오래오 래 두고 그네는 참으로 자유로웟섯다. 서로서로 노래 부르 며, 서로서로 일하엿슬 것이다. 남 벌도 자긔네 것이오. 북 벌도 자긔네 것이엇섯다. 동도 자긔네 것이오, 서 도 자긔네 것이엇다. 그러나, 역사는 한 박휘 굴넛섯다. 놀며먹는 계급이 생기 고, 일하야 먹여주는 계급이 생겻다. 다스리는 계급이 생기 고, 다스려지는 계급이 생겻다. 그럼으로부터 임자 없던 벌 판이 임자가 생기고, 주림을 모르던 백성이 굼주려 가기 시 작하얏다. 한울에 해ᄉ빗도 고흔 줄을 몰나가게 되고, 낙동 강의 맑은 물도 맑은 줄을 몰나가게 되얏다. 천 련이다. 오 천 련이다. 이 기나긴 세월을 불평의 평화 속에서 아모ᄉ소

5


리 업시 내려왓섯다. 그네는 이 불평을 불평으로 생각지 안 이키지 되얏다. 흐린 날ᄉ세를 참으로 맑은 날ᄉ인 줄 알 듯이. 그러나, 역사는 또 한 바퀴 구르려고 한다. 소낙비 앞잡 이 바람이다. 깃발이 날리엿다. 갑오동학이다. 을미운동이 다. 그 뒤에 이 에는 아니, 이 반도에는 한 괴물이 배회한 다. 마치 나래 치고 다니는 독수리갓치. 그 괴물은 곳 사회 주의다. 그것이 지나치는 곳마다 기어가는 암나뷔 궁뎅이 에 수업는 알이 쏘다지는 셈으로  한 알을 쏘다노코 간다. 청년운동, 농민운동, 형평운동, 로동운동, 녀성운동… 오천 련을 두고 흐려가는 날세가 인제는 먹장구름에 싸여간다. 폭풍우가 반드시 오고야 만다. 그 비 뒤에는 엇더한 날ᄉ세 가 올 것은 히 알 노릇이다.

***

일흔 겨울의 어두운 밤, 멀니 바다로 통한 낙동강 어구에는 고기잡이불이 근심스러히 조을고 잇고, 강기슭에는 찬 물결 의 울니는 소리가 놉하질 다. 방금 차에서 내린 일행은 배 를 기다리느라고 강 언덕 우에 웅긔중긔 등불에 얼빗처 모 혀섯다. 그 가운데에는 청년회원, 형평사2)원, 녀성동맹원,

6


×××××사람, ××××단체 사람들이 대부분을 차지하 얏다. 동저고리ᄉ바람에 헌 모자 비스듬이 쓰고 보ᄉ다리 든 촌사람, 검정 두루막이, 흰 두루막이, 구지레한 양복, 혹 ˙ ˙ ˙ ˙ 입은 사람, ᄉ겟 ˙ ˙ ˙ 깃 우에 은 머리털이 다 은 루바시카 팔다팔하는 단발낭, 혹은 그대로 틀어언진 신녀성, 인력거 우에 안진 병인, 그들은 ○○ 감옥의 미결수로 잇다가 병이 위중한 닭으로 보석 출옥하는 박성운이란 사람을 고대 차 에서 바더서 인력거에 실어가지고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다. “과연, 들니는 말과 갓치 지독했구만. 그갓치 억대호3) 갓던 사람이 저렇게 될 때야 여간 지독한 형벌을 하잇나. 에 라, 몹쓸 놈들.” 이 정거장에 마중을 나와서야 비로소 병인을 본 듯한 사 람의 말이다. “그래가주고도 죽으면 병이 나서 죽었닥 하겟지.” 누가 밧는 말이다.

2) 형평사(衡平社) : 일제강점기에 천민 계급의 사회적 지위 향상을 목적 으로 조직된 정치적 결사. 일본의 수평사 운동에 영향을 받아 1923년 에 경남 진주에서 결성되어 형평 운동을 주도하였으며, 일본 관헌의 탄압으로 1936년에 ‘대동사(大同社)’로 명칭을 변경하고 피혁 회사를 차려 복리를 도모하였다. 3) 억대호: ‘덩치가 크고 몹시 힘이 센 사나운 호랑이’를 뜻하는 북한어.

7


“그러면, 와 바로 병원을 갈 일이지, 곳장 이리 온단 말 고?” “내사 모를다. 병인 당자가 한사락고 이리 온닥 하니…” “이거 와이리 배가 더듸노?” “아, 인자 저긔 배머리 돌녓다. 곳 올락 한다.” 한 사람이 저 강기슭을 바라다보며 짓거린다. 인력거 우의 병인을 처다보며 “늬, 춥지 안나?” “괜찬타. 내 안 춥다.” “아니, 늬 춥거던, 외투 하나 더 주?” “언제. 아니다. 괜찬다.” 병인의 병든 목소리의 대답이다. “보소. 배 좀 니 저 오소.” 강 저편에서 배ᄉ머리를 인자 겨우 돌녀서 저어오는 배 ᄉ사공을 보고 소리를 친다. “예−” 새이 게 울녀오는 소리다. 배를 저어오다가 다시 멈추 고 섯다. “저 뭘 하고 잇노?” “각중에 담배를 피여 무는 모양이라구나. 에라, 이− 문 둥아.”

8


여러 사람의 우숨은 와그르− 쏘다젓다. 배는 왓다. 인력거 탄 사람이 몬저다. “보소. 늬 인력거. 사람 탄 채 그대로 배에 올을 수 잇는 가?” 한 사람이 인력거ᄉ군 보고 뭇는 말이다. “엇지 그럴 수 잇능게요.” “아니다. 내사 내리겟다.” 병인은 인력거에 내리며 부축되야 배에 올낫다. 일행이 올느기를 맛춤애, 배는  하는 노젓 맛치는 소리와 수라수라 하는 물 젓는 소리를 내며 저 기슭을 바라보고 나아간다. 배ᄉ전에 안진 병인은 등불 빗에 보아도 얼골이 참혹하게도 야위여젓슴을 알 수 잇다. “보소. 배 부리는 양반. 배ᄉ소리나 한마듸 하소, 의4).” “각중에 이 사람, 소리는 왜 하락고?” 엽헤 안진 친구의 말이다. “내 듯고 십다… 내 살어서 마지막으로 이 강을 근느게 될는지도 몰을 일이라…” “에라 이− 백죄5)  업는 소리만 탕탕…”

4) 의: 말끝을 올리는 경상도 지역 사투리의 말투를 표현한 것. 5) 백죄: 당최.

9


“아니다, 내 참 듯고 십다. 보소, 배 부리는 양반. 한마듸 안 하겟소?” “언제, 내사 소리할 줄 아능게요.” “아, 누가 소리해 줄 사람이 업능가?… 아, 로사! 참 소리 하소, 의… 내가 지은 노래하소.” 엽헤 안진 단발낭(斷髮娘)을 조른다. “노래하락고?” “응, ‘봄마다 봄마다’ 해라 의.”

‘봄마다 봄마다 불어내리는 낙동강 물 구폿벌에 이르러 넘처 넘처 흘으네− 흘으네− 에−헤−야…’

경상도의 독특한 지방색(地方色)을 인 민요(民謠) ‘늴 리리ᄉ조’에다가 약간 창가 조자를 석근 그 노래는 강개하 고도 굿센 맛이 어 잇다. 녀성의 음색(音色)으로서는 피 ᄉ긔가 과하고 운율(韻律)로서는 선(線)이 좀 굵다고 할 만 한, 그러나 맑은 로사의 육성(肉聲)은, 바람에 흔들니는 강 물결의 소리를 누르고 밤한울에 구슲우게 돌엇다. 한울

10


의 별들도 무엇을 늣긴 듯이 눈을 벅벅하는 것 갓핫다. 지금 이 배에 올은 사람들이 서북간도 이사ᄉ군들은 비록 아니엇마는, 새삼스러히 가슴이 울니지 안이할 수는 업섯 다. 그 노래 제삼 절을 맛출 에 박성운은 몹시 히쓰테리캘 하여진 모양으로 피ᄉ대를 올녀가지고 합창을 한다.

‘천 련을 산 만 련을 산 낙동강! 낙동강! 한울가에 가 ―ᆫ 들 에나 이칠소냐− 이칠소냐− 아−하−야.’

노래는 낫다. 성운은 거진 미친 사람 모양으로 날며, 바른팔 소매를 거더들고 강물에다 정구며, 팔로 물을 저어 보기도 하며, 손으로 물을 만지기도 하고 언저 보기도 한 다. 엽 사람이 보기에 하던지 “이 사람, 큰일 낫구만. 이 병인이 지금 이 모양에, 팔을 찬물에다 정구고 하니, 엇자잔 말고.” “내사 이래다 죽어도 좃타. 늬 너머 걱정 마라.” “늬 미첫구나, 구마6)… 백죄…”

11


그럴 수록에 명인은 더 날며, 엽헤 안진 녀자에게 고개 를 돌녀 “로사! 늬 팔 거더라. 내 팔하고 갓치 이 물에 정궈보자, 의.” 녀자의 손을 잡어다가 잡은 채 그대로 물에다 정구며 물 을 저어본다. “내가 해외에 가서 다섯 해ᄉ동안을 도라다니는 동안 에도, 강이라는 것이 생각날 마다 낙동강을 이저본 은 업섯다… 낙동강이 생각날 마다, 내가 이 낙동강 어부의 손자요 농부의 아들임을 이저본 도 업섯다… 라서, 조 선이란 것도…” 두 사람의 손이 힘업시 그대로 배ᄉ전 너머 물 우에 축 처저 잇슬 이다. 그는 다시 눈압헤 수면(水面)을 바라다 보며 혼자말로 “그 언제인가 가을에, 내가 송화강(松花江)을 근늘 적에, 이 낙동강을 생각하고 울은 적도 잇섯다… 조흔 마음으로 나간 사람 갓고 보면, 비록 만 리 밧글 나가 산다 하더라도 그갓치 상심이 될 니 업스련마는…” 이 말이 러지자, 좌중은 호흡조차 은근히 어지는 듯

6) 구마: 영남 사투리에서 말끝에 덧붙이는 말.

12


이 정숙하엿다. 로사는 들엇던 고개가 알로 러지며, 저편 의 손이 얼골로 올나갓다. 성운의 눈에서도 한 방울의 굵은 눈물이  러젓다. 한동안 물소리만 놉핫다. 로사는 배ᄉ전에 느러저 잇던 바른손으로 사나이의 언 손을  잡어서 다니며 “인자 구만둡시대, 의.” ˙ ˙ ˙ 의 감칠맛이란 것은 경상도 녀자의 쓰는 이 말 액센트 말 가운대에도 가장 귀염ᄉ성이 듯는 말투엿다. 그는 그의 손에 무든 물을 손수건으로 씨서주며, 거덧던 소매를 내려 준다. 배는 저 언덕에 가 다앗다. 일행은 배에 내리자, 몬저 병인을 인력거 우에다 실고는, 건넌마을을 향하야 어둠을 코 움지기여 나갓다.

***

그의 말과 갓치, 박성운은 과연 낙동강 어부의 손자요 농부 의 아들이엇다. 그의 할아버지는 고기잡이로 일생을 보내엿 섯고, 그의 아버지는 농토한으로 일생을 보내엿섯다. 자긔 네 무식이 한이 되야 그 아들이나 발천을 시켜볼 양으로 그 리하얏던지, 남 하는 시세에 좃차 그대로 해보느라고 그리

13


하얏던지, 남의 논밧을 빌어 농사를 지어 구차한 살님을 하 여나가면서도, 엇잿던 그 아들을 가리켜 노앗다. 서당으로, 보통학교로, 도립 간이 농업학교로… 그가 농업학교를 마치고 나서, 군청 농업 조수로도 한두 해를 잇섯다. 그럴 에 자긔 집에서는 자긔 아들이 무슨 큰 벼슬이나 한 것갓치 녀기며, 맛나는 사람마다 자긔 아들 자 랑하기가 일이엇섯다. 그럴 것 갓흐면 동내 사람들은 한 못내 부러워하며, 자긔네 아들들도 하로밧비 어서 가리켜 내놀 마음을 먹게 된다. 그리다가, 마침 독립운동이 폭발하얏다. 그는 단연히 결 심하고 다니던 것을 헌신갓치 집어던지고는, 독립운동에 참가하얏다. 일 마당에 나서고 보니 그는 열렬한 투사엿다. 그은 누구나 예사이지마는 그도 한 일 년 반 동안이 나 철창생활을 하게 되얏섯다. 그것을 치르고 집이라고 나와 보니, 그동안에 자긔 모친 은 도라가고, 늙은 아버지는 집도 업게 되야, 자긔 (성운 의 자씨)에게 가서 언처 잇게 되얏다. 마침 그해에도 이곳에 서 살 수가 업게 되야 서북간도로 나가는 이사ᄉ군이 붓 적 늘 판이다. 그들의 부자도 그 이사ᄉ군들 틈에 여 멀니 고향을 등지고 나가게 되얏섯다. (악가 부르던 그 낙동강 노래란 것도 그 성운이가 지여서 읊우던 것이엇다.)

14


서간도로 가보니, 거긔도 한 편안이 살 수가 업는 곳이 엿다. 그 나라 관헌의 압박, 호인의 횡포, 마적의 등쌀은 여 간이 안이엿다. 그의 부자도 남과 한가지 이리저리 돌엇 섯다. 돌다가, 그야말로 이역 타향에서 늙은 아버지좃차 영원히 일허바리게 되얏섯다. 그 뒤에 그는 남북 만주, 로령, 북경, 상해 등지로 도라다 니며, 시종이 일관되게 독립운동에 노력하얏섯다. 그리는 동안에 다섯 해의 세월은 갓섯다. 모든 운동이 다 침체하고 쇠퇴하여 갈 판이다. 그는 다시 발길을 돌녀 고국으로 향하 게 되얏다. 그가 조션으로 들어올 무럽에, 그의 사상상에는 큰 전환이 생겻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이ᄉ것 열렬 하던 민족주의가 변하야 사회주의로 되얏다는 말이다.

***

그가 가지록 서울로 와서, 일을 하여보랴 하얏스나, 그도  과 갓지 못하얏다. 그것은 이 에 잇는 사회운동 단체란 것 이 일에는 힘을 아니 쓰고, 아모 주의 주장에 틀님도 업시, 공연히 파벌을 맨드러가지고, 동지리 다투기만 일삼는 판 이다. 그는 자긔와 이 갓흔 사람리 얼니여, 양방의 타협 운동도 이르켯스나 아모 효과도 업섯고. 예른7)을 이르켜보

15


기도 하얏스나, 파쟁에 눈이 건 사람들의 귀에는 그도 크 게 울니지 못하얏다. 그는 분연히 치고 이러스며 “이 파벌이란 시긔가 오면 자연히 괴멸될 가 잇스리 라”고 예언갓치 말을 하여 던지고서는 자긔 출생지인 경상도 로 와서 남조선 일대을 망라하야 사회운동 단체를 만들어 서, 정당한 운동에만 힘을 쓰게 되얏다. 그리고, 자긔는 자긔 고향인 낙동강 하류 연안 지방의 한 부분을 떼어 맡허서 일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이 의 사정을 보아 “부·나로드!” 하고 부르지젓다. 그가 처음으로, 자긔 살던 옛 마을을 차저와 볼 에 그 의 심사는 서급흐기 가이업섯다. 다섯 해 전 날 엔 백여 호 대촌이던 마을이 그동안에 인가가 엄청나게 줄엇다. 그 대신에, 예전에는 보지도 못하던 크나큰 함석집웅 집이 쓰 러저 가는 초가ᄉ집들을 멸시하고 위압하는 듯이 둥두럿이 가로 길게 노여 잇다. 그것은 뭇지 안어도 동척 창고임을 알 수 잇다. 예전에 중농(中農)이던 사람은 소농(小農)으로 

7) 예른: 여론.

16


러지고, 소농이던 사람은 소작농(小作農)으로 러지고, 예전의 소작농이던 만흔 사람들은 거의 다 풍지박산하야 나 가게 되고 어렷슬 부터 정들던 동무들도 하나도 볼 수 업 섯다. 그들은 모다 도회로, 서북간도로, 일본으로, 삼지사방 허터저 갓섯다. 대대로 살어오던 자긔네 집터에는 옛날의 흔적이라고는 주추ᄉ돌 하나 볼 수 업섯고(그 터는 지금 창 고 압마당이 되얏슴으로), 다만 그 시절에 싸리문 압헤 잇던 해묵은 느트나무(槐木)만이 지금도 그저 그 넓은 마당 터에 홀로 웃둑 서 잇슬 이다. 그는 차가서, 어린아이 모양으 로 그 나무 밋둥을 안고 맴을 돌아보앗다 을 대여보앗 다 하며, 조와서 는 슲어서 엇지할 줄을 몰낫다. 그는 나 무를 안은 채 눈을 감엇다. 지나간 날의 생각이 실마리갓치 풀여 나간다. 어렷슬 에 지금 하듯이 안고 맴돌기, 여름 철에 다기지 기여올나가 매암이 잡다가 대머리 버서진 할아버지에게 지람당하던 일, 마을의 젊은이들이 그네를 매고  엔, 자긔도 그네를 겟다고 성화 밧치던 일, 압 집에 살던 순이란 계집아이와 갓치 나무 그늘 밋헤서 소 질하고 놀 제, 자긔는 신랑이 되고 순이는 색시가 되야 시집 가고 장가가는 흉내를 내던 일, 그리다가 과연 소년 에 이 르러 그 순이란 색시와 서로 사모하게 되던 일, 그 뒤에  그 순이가 팔녀서 평양인가 서울로 가게 될 제 어둔 밤 남 모

17


르게 이 나무 뒤에 숨어서 서로 붓들고 울던 일, 이 모든 일 이 다 생각에서 돌어 지나가자 그는 흐르륵 늣겨지는 숨 을 길게 한번 내여쉬고는 눈을  다. “내가 이지 것을 지금 다 생각할 가 아니다… 에 잇… …” 하고 혼자 중얼거리고는, 이ᄉ것 하던 생각을 어 업 새랴는 듯이 홱 발길을 돌녀 걸어나갓다. 그는 원래 정(情) 의 사람이엿다. 그러나 그는 근래에 그 감정을 의지로 누르 랴는 노력이 만흔 터이다. “혁명가는 생무쇠  갓흔 시퍼런 의지(意志)의 마음세 를 가저야 한다!” ˙ ˙ 이다. 그러나 그의 감정은 각금 이것이 그의 생활의 못트 의지의 굴네를 버서나서 날 가 만엇다. ˙ ˙ ˙ ˙ 을 세웟다. 선전, 조직, 투쟁 ― 그는 몬저 일할 프로그람 이 세 가지로. 그리하야 그는 몬저 농촌 야학을 설시하야 가 지고 농민 교양에 힘을 썻섯다. 그네와 감정을 갓치할 양으 로 버서부치고 들어덤비여 그네들 틈에 여 생일도 하고, 농사 일터나, 사랑 구석에 모힌 좌석에서나, 야학 시간에서 나, 긔회가 잇는 대로 교화에 전력을 썻섯다. 그 다음에는 소작조합을 만들어가지고 지주 더구나 대지주인 동척의 횡 포와 착취에 대하야 대항운동을 일으켰섯다.

18


첫해 쟁의에는 다소간 희생자도 내었지마는 성공이다. 그다음 해에는 아조 실패다. 소작조합도 해산 명령을 바덧 다. 야학도 금지다. 동척과 관청의 횡포, 압박, 이로 말할 수 가 업섯다. 아모리 열성이 잇스나, 아모리 참을성이 잇스나, 이 땅에서는 엇지할 수 업섯다. 모든 것이 침체되고 말이 엿다. 그리하야 작년 가을에 그의 친구 하나는 분연히 치 고 이러스며 “내 구마 밧그로 갈난다. 여기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잇는 가? 하자면 테러지. 테러밧게는 더 업다. “아니다, 그래도 여긔 잇서야 한다. 우리가 우리 계급의 일을 하기 위하야는 중국에 가서 해도 좃코 인도에 가서 해 도 좃코 세계의 어너 나라에 가서 해도 맛찬가지다. 하지마 는, 우리 경우에는 여긔 잇서서 일하는 편이 가장 편리하다. 그리고 우리는 죽어도 이  사람들과 갓치 죽어야 할 책임 감과 애착을 가지고 잇다.” 이갓치 말뉴도 하엿스나, 필경에 그는 그의 가장 신뢰하 던 동무 하나를 나보내게 되고 만 일도 잇섯다. 조을고 있는 이 땅, 아니 움츠러들고 잇는 이 땅, 그는 피 칠할 일이 생기고 말았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이 마 을 압 낙동강 기슭에, 여러 만 평 되는 갈밧이 하나 잇섯다. 이 갈밧이란 것도 낙동강이 흘으고 이 마을이 생긴 뒤로부

19


터, 그 갈을 비여 자리를 치고, 그 갈을 틀어 삿갓을 맨들고, 그 갈을 팔어 옷울 구하고 밥을 구하얏섯다.

‘기럭이 다 낙동강 우에 가을바람 부누나 갈이 나비다.’

이 노래도 지금은 부를 경황이 업게 되얏다. 그 갈밧은 발 서 남의 물건이 되고 마럿다. 그것은 이 촌민의 무지로 말미 암아, 십 년 전에 국유지로 편입이 되얏다가 일본 사람 가등 이란 자에게 국유미간지 철일拂이라는 명의로 넘어가고 마 럿다. 이 가을부터는 갈도 비일 수가 업게 되얏다. 도 당국에 멧 번이나 사정을 하얏스나, 아모 효과가 업섯다. 촌민리 손가락을 끊어 맹서를 써서 혈서 동맹지 조직하야서 항거 하랴 하얏다. 필경에는 모도가 다 실패이다. 자긔네 목숨 이나 다름업시 알던 촌민들은, 분김에 눈이 뒤집혀 가지고 덥허노코 갈을 비여 잿첫다. 저편에 수직ᄉ군하고 시비가 생겻다. 사람까지 상하얏다. 그 헤 성운이가 선동자8)라는 혐의로 붓들녀 가서 가뜩이나 경찰당국에서 미워하던 끝에 지독한 고문을 당하고 나서 검사국으로 넘어가서 두어 달 장

8) 선동자.

20


간이나 잇다가 병이 급하게 되야 나온 터이다. ˙ ˙ ˙ ˙ 가 잇다. 그것은 이해 여름 그런대, 여긔에 한 에피소드 어너 장날이다. 장ᄉ거리에서 형평사원들과 장ᄉ군 ― 그 중에도 장ᄉ거리 사람들과 큰 싸홈이 이러낫다. 싸홈 시초 는 장ᄉ거리 사람 하나이 이곳 형평사 지부 압흘 지나면서 모욕하는 말을 한 닭으로 피차에 말이 오락가락하다가 싸 홈이 되고  싸홈이 되야서, 난폭한 장ᄉ거리 사람들이 몽동이를 들고 형평사원 촌락을 습격한다는 급보를 듯고, 성운이가 압장을 서서, 청년회원 소작인 조합원 심지여 녀 성 동맹원지 총출동을 하여가지고 형평사원 편을 응원하 러 달녀갓섯다. 싸홈이 진정된 뒤에 “늬도 이놈들, 새 백정 이로구나” 하는 저편 사람들의 조소와 만매(漫罵)9)를 무릅 쓰고도 그는 “백정이나 우리나 다 갓흔 사람이다… 다만 직업의 구별 만 잇슬 름이다… 무릇 무슨 직업이던지, 직업이 달다고 사람의 귀천이 잇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옛날 봉건시 대 사람들의 하는 말이다… 더구나 우리 무산계급은 형평 사원과 갓치 손을 맛붓잡고 일을 하여나가지 안으면 아니 된다…그럼으로 형평사원을 우리 무산계급은 한 형제요 동

9) 만매: 만만히 보고 함부로 꾸짖음.

21


무로 알고 나아가야 한다…” 하고 여러 사람 압헤서 열열히 부르지진 일이 잇섯다. 이 뒤에, 이곳 녀성 동맹에는 맹원 하나가 더 느럿다. 그 것이 곳 형평사원의 인 로사다. 로사가 맹원이 된 뒤에는 자연히 성운과도 상종이 자저젓다. 그럴 수록에 두 사람의 사이에는 졈졈 갓가워지며 필경에는 남다른 정이 가슴속에 깁히 들어 배게지 되얏섯다. 로사의 부모는 형평사원으로서, 그도 한 성운의 부모 와 맛찬가지로 일망정 발천을 시켜볼 양으로 그리하얏던 지 서울을 보내여 녀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식히고 사범과 지 맛춘 뒤에 녀훈도가 되야, 멀니 함경도 에 잇는 보통 학교에 가서 잇다가 하긔 방학에 고향에 왓던 터이다. 그의 부모는 그 이 판임관이라는 벼슬을 한 것이 천지개벽 후 에 처음 당하는 영광으로 알엇섯다. 그리하야 그는 “내 이 판임관 벼슬을 하얏는대, 나도 이 노릇을 더 할 수 잇는가.” 하고는, 하여오던 수육업이라는 직업도 그만두고, 인자 그 이 가 잇는 곳으로 살너가서 새 양반 노릇을 좀 하야볼 배ᄉ심이엿다. 이번에 이 집에 온 뒤에도 서로 의논하고 작정하야 논 노릇이다. 그러나, 천만 밧게 그 몹슬 큰 싸 홈이 난 뒤부터, 그 이 무슨 녀자청년회니 동맹이니 하는

22


데 풋덕풋덕 드나들며, 주의자니 무엇이니 하는 사나이 틈 바구니에 가서 여 놀고 하더니, 그만 가 잇던 곳도 아니 가겟다 다니던 벼슬도 내여놋켓다 하고 야단이다. 그리하 야 이네의 집안에는 제일 큰 걱정거리가 생으로 하나 생기 엿다. 달내다, 구스르다, 별별 소리로 다 타일너야 그 이 좀처름 듯지를 안는다. 필경에는 큰 소리지 나가게 되얏 다. “이년의 가시내야! 늬 백정 놈의 로 벼슬지 햇스면 무던하지. 그보다 무엇이 더 난 것이 잇더노?…” 하고 그의 아버지가 야단을 칠 에 “아배는 멧백 련이나 멧천 련이나 조상 부터 그 몹슬 놈들에게 왼갓 학대를 다 바더왓스며, 그래도 그 몹슬 놈들 의 썩어 잡버진 생각을 그저 그대로 가지고 잇구만. 내사 그 지 더러온 벼슬이고 무엇이고 실소, 구마… 인자 참사람 노릇을 좀 할난다.” 하고 이 대거리를 할 것 갓흐면 “앗다, 그년의 가시내, 건방지게… 늬 뭐락 햇노? 뭐락 해?…” 그의 어머니는 엽헤서 남편의 말을 거드느라고 “야, 늬 생각해 보아라. 우리가 그 노릇을 해가며 늬 공부 식히느락고 얼마나 애를 먹엇노. 늬 부모를 생각키로 그럴

23


수가 잇능가?… 자식이락고 자식 형제에서 늬만 공부를 식힌 것도 다 늬 덕을 보작고 한 노릇이 아니가?” “그러면, 어매 아배는 날 사람 노릇 식힐낙고 공부 식힌 것이 아니라, 돼지 키워서 이 보듯기, 날 무슨 덕 볼락고 키 워논 물건으로 알엇능게요?” “늬 다 그 무슨 쏘리고? 내사 한마듸 몬 아라듯겟닥하 니… 아나, 늬 와 그라노? 와?” “구마, 내 듯기 실소.… 내 맘대로 할나오.” 할 에, 그의 아버지는 화가 버럭 나서 “에라 이… 늬 이년의 가시내, 내 눈압헤 뵈지 마라. 내사  보기 실타, 구마.” 하고는 벌 이러나 나가바린다. 이리하고 난 뒤에, 로사는 그 자리에 푹 업푸러저서 흙흙 늣겨가며 울기도 하얏다. 그것은 그 부친에게 야단을 만나 고 나서 분한 생각을 참 못하야 그리하는 것만도 아니엿 다. 그의 부모가 아모리 무지해서 그러케 굴지마는, 그 무지 함이 밉다가도 도로혀 불상한 생각이 난 닭이엇다. 이럴 에, 로사는 의례히 성운에게로 달녀가서 하소연 한다. 그럴 것 갓흐면 성운은 “당신은 최하층에서 터저 나오는 폭발탄 갓허야 함니다. 가정에 대하야, 사회에 대하야, 갓흔 녀성에 대하야, 남성에

24


게 대하야, 모든 것에게 대하야 반항하여야 함니다.” 하고 격녀하는 말도 하여준다. 그럴 것 갓흐면, 로사는 그만 감격에 는 듯이 성운의 무릅 우에 가서 쓰러저 얼골 을 파뭇고 운다. 그려면, 성운은  “당신은  당신 자신에 대하야서도 반항하여야 되오. 당신의 그 눈물 ― 약한 것을 일부러 자랑하는 녀성들의 그 흔한 눈물도 거더치워야 되오… 우리는 다갓치 굿센 사람 이 되여야 함니다.” 이갓치, 로사는 사랑의 힘 사상의 힘으로 급격히 변화하 여 가는 사람이 되엿다. 그의 본성명도 로사가 아니엿다. 어 ˙ ˙ ˙ ˙ ˙ ˙ ˙ ˙ 의 이약이가 나올 에 성운 너  우연히 로사·룩셈르크 이 웃는 말로 “당신 성도 로가고 하니, 아주 로사라고 지읍시다, 의. 그 리고 참말 로사가 되시오.” 하고 난 뒤에, 농이 참 된다고, 성명을 아조 로사로 곳처 바린 일도 잇섯다.

***

병든 성운을 둘너싼 일행이 낙동강을 건너 어둠을 코 건 넌마을로 향하야 가던 멧칠 뒤 낫결이엿다. 갈 보다도 더

25


멧 배 긴긴 행녈이 마을 어구에서부터 강 언덕을 향하고  처 나온다. 수만흔 기ᄉ발이 날닌다. 양 녈로 느러선 사람 사람의 손에는 긴 외올베 자락이 잡혀 잇다. 맨 압헤선 검정 테 둘은 긔폭에는 ‘고 박성운 동무의 령구’라고 써 잇다. 그다음에는 가지각색의 긔다. 무슨 ‘동맹’, 무슨 ‘회’, 무 슨 ‘조합’, 무슨 ‘사’. 각 단체 연합장임을 알 수 잇다.  그다 음에는 수만흔 만장이다. ‘용사는 갓다. 그러나, 그의 더운 피는 우리의 가슴에서 다’ ‘갓구나, 너는! 날 밝기 전에 너는 갓구나! 밝는 날 해마지 춤에는 네 손목을 잡아볼 수 업구나.’ ‘…’ ‘…’ 이로 다 세일 수도 업다. 그 가운대에는 긴 시ᄉ구(詩句) 갓치 이러케 벌녀서 쓴 것도 잇섯다. ‘그대는 평시에 날더러, 너는 최하층에서 터져 나오는 폭 발탄이 되라, 하얏나이다. 올소이다, 나는 폭발탄이 되겟나이다. 그대는 죽을 에도 날더러, 너는 참으로 폭발탄이 되라, 하얏나이다.

26


올소이다, 나는 폭발탄이 되겟나이다.’ 이것은 뭇지 안어도 로사의 만장임을 알 수 잇섯다.

***

이해의 첫눈이 풋득풋득 날니는 어너 날 느진 아츰, 구포역 (龜浦驛)에서 차가 나서 북으로 움지기여 나갈 이다. 그 차가 들녁을 다 지나갈 지, 객차 안 동창으로 하염업 시 밧겻흘 내여다보고 안진 녀성이 하나 잇섯다. 그는 로사 다. 아마 그는 도라간 애인의 밟던 길을 자긔도 한번 밟어보 랴는 인가 보다. 그러나 필경에는 그도 멀지 안어서 다시 잇지 못할 이 으로 도라올 날이 잇겟지.

一九二七·五·一四 夜

27


Turn static files into dynamic content formats.

Create a flipbook
Issuu converts static files into: digital portfolios, online yearbooks, online catalogs, digital photo albums and more. Sign up and create your flip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