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술이 유명한 서화담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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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술이 유명한 서화담



지은이의 머리말이 시작되다 북풍이 매우 사납게 몰아치더니 찬 구름이 엉켜들며 눈발이 날려서 떨어지는 배꽃 같고 나부끼는 버들강아지와도 같다. 그 눈발이 점점 세게 몰아쳐서 사면이 자욱하고 눈앞이 희 미하게 짙어지더니 하룻밤 동안에 온 세계가 은 바다를 이 뤘다. 이러한 눈구덩이 가운데 집집마다 날마다 쓰는 나무 와 쌀이 모두 돈이란 물건만 따라다니고 돈이 없는 가난한 집에는 한 묶음의 나무와 한 되의 쌀도 계수나무와 옥토끼 같이 매우 귀하여 얻어 볼 수가 없다. 경성(京城) 부동촌 밑에 있는 몇 칸의 초가집에서는 방 에 불을 지피지 못하였으니, 밥을 지어 먹지 못한 줄을 짐작 할 만하다. 추운 방에 꿇어앉은 주인은 혼잣말로 ‘어떤 사람 은 매우 크고 좋은 집에서 푸짐하게 잘 차린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일생을 지내는데, 어떤 사람은 석 자밖에 안 되는 좁 고 차가운 온돌방에서 하루 한 끼조차 분명히 얻어먹지 못 하니, 하느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심이 어찌 이처럼 고르지 못하신가?’ 하며 탄식하고 있다. 이때, 마침 이웃에 사는 한 친구가 찾아와서 주인이 곤란함을 보고 조끼를 뒤적거리더 니 지폐 몇 장을 꺼내어 나무와 쌀을 변통하여 밥을 지으라 하고, 술 한 병을 사다가 깍두기로 안주 삼아 먹으면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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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의논하더니 그 친구는 지금 일을 좋아하지 않았던지 다시 옛말로 시작하여 서화담(徐花潭)의 사건과 자취를 이 야기한다.

태몽과 출생, 그리고 성장 이야기가 제시되다 (이하 두 쪽이 빠져서 없어짐. 빠져서 사라진 부분을 실기나 설화 등을 통해 재구성해 본다. 이 부분은 서화담의 출생 이 야기로 추정되는데, ‘그는 어머니가 공자(孔子)의 묘에 들 어가는 꿈을 꾸고 태어났고, 어려서부터 영리하고 뛰어나 며, 결단성 있고 정직했으며, 특히 어른들의 말을 공손히 받 들어 모셨다’는 내용으로 예상된다.)

학업을 닦는 데 스승이 따라가지 못하다 남편에게 간곡하게 청하여 동네 글방에 보내어서 배우게 하 였다. 동네 선생은 아동이 매우 일찍이 입학하는 것을 대수롭 지 않게 생각하여 다른 아이들을 가르치듯이 글자만 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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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고 뜻은 가르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아동이 글 배우는 법 은 글자마다 뜻을 묻고 구절마다 뜻을 물어서 의논하고 연 구하는 것이 그 선생도 생각하지 못하는 바에 미쳐서 그 선 생의 글을 아는 수준으로는 정확하고 명백하게 가르칠 수가 없었다. 그 선생은 아는 대로만 대답하고 모르는 것은 도리 어 아동에게 배우는 까닭에 그 글방에서는 ‘제자가 선생이 요, 선생이 제자다’라는 동요가 있었다.

하늘이 멀리 가까이 보이는 이치와 종달새가 위아래로 나는 원리를 터득하다 하루는 아동이 글을 읽다가 집으로 올라오는 길에 멀리 바 라보니, 높은 산 위에 하늘이 닿은 듯하였다. 하늘을 한 번 만져 보려는 생각으로 약한 다리에 힘을 주어 산봉우리 위 에 올라가서 다시 바라보니, 하늘은 평지에서 보던 바와 같 이 여전히 높았다. 이로 인하여 하늘의 모양이 멀리 보면 가 까워 보이고, 가까이 보면 멀어 보이는 이치를 깨달았다. 하루는 또 글방에 가는데, 봄날이어서 들판에서 종달새 가 땅 위에 댓 길쯤 떠서 팔팔 날며 더 올라가지도 않고 더 내려가지도 않았다. 무엇 때문에 그 정한 범주를 넘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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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의심하여 종일토록 서서 보다가 돌아와 자고, 그 이튿날 아침부터 또 그곳에 가서 보니, 종달새가 여전히 떠서 날다 가 어제보다 조금 낮게 내려오고, 그 이튿날 또 가서 본즉 종달새가 어제처럼 날다가 또 조금 내려왔다. 그제야 그 새 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기운을 따라 점점 낮게 내려오는 이 치를 알았다. 글을 읽을 적에는 소리를 내지 않고 마음으로 생각하고, 천지 사이에 무슨 물건이든지 보는 대로 어찌하여 생겨났 고, 어찌하여 소멸되는가 하는 이치를 알고자 하여 기어이 그 원리를 알아내고야 말았다. 그러므로 그의 눈에는 예사 로운 물건이 없고 그의 마음에는 터득하지 못하는 일이 없 었다.

신분을 갈고닦으며 품성을 기르다 하늘이 그의 신분을 갖게 하실 적에 총명과 지혜는 넉넉히 주시고 부귀영화는 도무지 주시지 않았던지, 가난한 집에 태어나서 어려움을 한없이 겪으니 비유컨대 옥을 다듬고 금 을 단련시키는 것과 같았다. 그가 칠팔 세가 되었을 적에 아우가 태어났는데, 아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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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칠 세가 되던 해에 부모가 모두 돌아가셨다. 그가 십여 세 의 아이로서 부모의 상을 당하여 슬퍼하고 후회하는 태도와 근심하는 예절이 노련하고 성숙한 군자라도 미치지 못할 만 하였다. 또한 어린 아우와 집안 식구를 사랑하는 인정 어린 마음은 집안 살림을 꾸려 나갈 법도에 밝은 선비라고 일컬 을 만하였다. 다만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못하여 의식 비용 을 풍족하게 준비하기에는 수단이 부족하므로 배고픔과 추 위를 면하기가 어려웠다. 비록 그렇지만 태연하여 걱정이 없고 나름대로 즐거움이 있으니, 그의 도량은 실로 헤아리 기가 어려웠다. 마을에 사는 친척들이 그의 심성을 곱게 여 겨 힘이 미치는 대로 도와주어 아침에는 밥으로 저녁에는 죽으로 간신히 이어 가면서 글에서 무엇이 생기는지 밤과 낮을 헤아리지 않고 글 읽기에 열중하였다.

신선을 만나 천서를 얻어 수학하다 하루는 집안사람들을 향하여 잘들 있으라고 당부하고서 표 주박 하나를 차고 정처 없이 나갔다. 조선 팔도의 이름난 산 과 큰 절을 샅샅이 유람하다가 지리산에 들어가 가장 높은 봉우리에 올라갔다. 그때 난데없는 옥피리 소리가 멀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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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터 시작하여 가까이 들리며, 비옷을 입고 옥으로 만든 패물을 찬 사람이 두엇 동자를 데리고 앞에 이르러 절하고 서로 알고 지내자고 한 후에 하는 말이, “나는 그대와 전생 친구일세. 그대는 아무런 까닭 없는 남이 허물하는 말에 걸리어 들어 인간 세상의 불우한 환경 으로 쫓겨났지. 나는 날마다 하느님께 문안드리고 정사를 아뢰고 남은 시간에 아침에는 북해에서 놀고 저녁이면 남해 에 이르더니 오늘 그대가 이곳에 왔음을 알고 만나기 위해 왔네.” 하면서 소매 속에서 책 한 권을 꺼내어 펴 놓고 읽어 보 라 하는데, 그 책에 쓴 글자는 인간 세상에서 읽는 글자와 달라서 화담의 지혜로도 알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 신선이 잠깐 웃으며 읽는 법을 낱낱이 가르쳐 주었으니, 화담의 재 주로 전생에 읽어 보았던 글을 어찌 깨치지 못하겠는가. 대 쪽 가르듯이 물결이 노닐 듯이 물을 것 없이 통하니 신선은 다시 한 번 웃고, “이다음에 다시 만나는 날이 있으리라.” 말한 후 작별하고 동자들과 함께 구름을 타고 어디론가 그윽하게 사라졌다. 화담은 그 이야기를 뚜렷하고 명백히 듣고 그 거동을 의젓하게 보다가,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책을 가지고 돌아와 밤낮으로 연습하였으니, 그 책은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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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내린 책이었다. 이에 그는 용과 호랑이를 마음대로 부 리고, 바람과 비를 부르며, 천지의 이치를 모두 꿰뚫어 알 고, 귀신의 조화를 사용하는 등의 술법을 모두 터득하였다. 거기다가 성인이 만들어 전하는 인간 세상의 글까지 전과 같이 읽으니, 인간 세상의 글에 무슨 특별한 조화가 있는지 그 뜻을 헤아리기 어렵지 않았다.

결혼하는 날 밤 처녀 귀신의 한을 풀어 주다 ‘화담(花潭)’은 그의 집 앞에 있는 연못의 이름인데, 그가 어 른이 되어 성년식을 치른 후에 그 연못의 이름으로 또 다른 이름을 지어 부른 것이다. 이 책을 지은 이 사람은 그가 성 년식을 하기 전 머리를 길게 땋아 늘이던 어렸을 적부터 아 는 사이여서 선생이라 일컫기도 어렵고 번번이 성명을 일컫 기도 어려운 까닭에 지금부터 쉽게 화담이라 일컬어 쓴다. 화담은 그럭저럭 이십 세가 되었음에, 혼인을 주선할 어 른이 없었으나 인륜을 저버리는 법도나 양식은 없었으므로 가까운 고을인 장단(長湍) 땅에 사는 김씨 문중에 얌전하고 아름다운 처녀가 있다는 말을 듣고 중매를 보내어 혼인할 뜻을 전하였다. 이에 처녀 집에서는 그의 집안 살림살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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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워 꺼리기는 했지만, 그의 신분과 성품이 무게가 있고 점잖음을 좋게 생각하여 혼인하기로 약속하였다. 결혼을 하는 날 밤에 신랑이 신부와 함께 앉아 있었는데 별안간 창밖에서 여자의 울음소리가 났다. 그 울음소리는 귀신이 곡하는 소리는 아니지만 신랑은 그 까닭을 아는지라 태연한 얼굴빛으로 말이 없는데, 신부는 어찌할 줄 몰라 먼 저 말을 했다. “이 자리에서 제가 먼저 말씀을 드리기는 철이 없고 사리 에 어두운 일이나, 말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 소리가 무 슨 소리인지, 그전에는 없던 소리가 이틀 전부터 저 문밖에 서 나기에 문을 열고 보면 아무것도 없고 소리만 나니, 아마 도 틀림없이 사람의 소리는 아닌 듯하니 겁내지 마시고 주 무시지요.” 하면서 신랑 앞으로 다가앉는 신부야말로 남편에게는 겁내지 말라 하면서도 자기는 겁이 나는 모양이었다. 신랑 은 신부에게 염려 말라고 이르고, 통상적으로 입은 겉옷 예 복을 입고 풀로 만든 갓을 쓰고 울음소리가 나는 쪽의 문을 열고 나가서 신을 찾아 신고 마루에 섰다. 그러고 나서 우는 귀신에게 이리 오라 부르니 나이 십칠팔 세쯤 되어 보이는 여자 귀신이 온몸에 피를 흘리고 나왔다. 신랑은 태연한 안 색으로 조용히 알아듣도록 타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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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이곳에 와서 우는 것은 다른 까닭이 아니라, 내가 너의 원통하게 죽은 일을 알고 있으므로 나에게 그 원수를 갚게 해 달라는 뜻이다. 내가 거절하여 물리칠 수 없으니 너 는 나를 안내하여 너의 집으로 가자.” 이렇게 말하니 귀신이 다시 할 말이 없었다. 깊숙이 한 번 절하고 앞서서 가니, 신랑은 귀신의 뒤를 따라서 십여 리 쯤 향하여 가다가, 산촌의 어떤 한 집에 당도하였다. 신랑은 귀신을 문밖에 있게 한 후에, 문을 두드려 주인을 불렀다. 잠을 자던 주인은 밤중에 찾아오는 사람이 있으니 이상하게 생각하여 급히 일어나 들어오게 하였다. 마주 대하고 보니 평소 모르는 청년이 풀로 만든 갓을 쓰고 통상적인 겉옷 예 복을 입고 의젓하게 자리에 앉았다. 주인이 의아해하며, “당신이 누구신데 깊은 밤에 모르는 사람의 집을 찾아와 이리 앉으시오?” 하고 물었다. 신랑은 주인이 묻는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스스로 되짚어 묻는 말로, “당신은 지금 십팔 세 된 따님이 있지요?” 하는 말을 들은 주인은 별안간 눈물을 흘리며 목멘 소리 로, “그러하오만 어찌하여 묻소?” “물어볼 만한 일이 있기에 묻소. 당신 따님이 지금 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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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으니, 어디 갔는지요?” 주인은 그 말을 듣더니 눈물을 더욱 쏟으며 아우러지지 못하는 말로, “며칠 전에 나물을 뜯으러 산에 갔다가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는데, 남은 시신도 찾지 못하였습니다.” 신랑은 애처롭고 쓸쓸하게 한숨을 쉬면서,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 집에 머슴 살던 아무개가 당신 딸의 얼굴이 예뻐서 사모를 하다가 간통하려 하였지만 그 기회를 얻지 못하다가, 마침 나물을 캐러 가는 것을 보고 뒤 를 따라가서 간음하려 했소. 당신 딸이 죽음을 각오하고 저 항하니까 그놈이 탄로 날 것을 두려워하여 칼로 찔러 죽여 그곳 바위틈에 집어넣고 손으로 흙을 파서 대강 덮어 놓았 소. 그래서 당신 딸의 원통하게 죽은 혼이 그 사실을 부모에 게 호소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놀랄까 봐 염려 하여 슬피 울며 떠돌다가 나에게 와서 하소연하기에 내가 거절하지 못하여 지금 와서 알리는 것이니 내일 그놈을 잡 아 앞세워 관가에 가 고소하여 원수를 갚으시오.” 그 한바탕 이야기를 들은 주인이 새롭게 놀라며 더욱 슬 퍼서 신랑의 소매를 휘어잡고 울음 반 말 반으로 간절히 청 하는데, 지은이는 써 내려가는 것이 급하여 울음은 빼고 말 만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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