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마인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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魔人 마인


지식을만드는지식 천줄읽기

魔人 마인

김내성 지음 김현주 엮음

대한민국, 서울, 지식을만드는지식, 2013


차례

해설 ·······················9 지은이에 대해 ··················19 가장무도회(假裝舞蹈會) ·············25 제1차(第一次)의 참극(慘劇) ············49 제2차(第二次)의 참극(慘劇) ············75 의혹(疑惑)····················97 유 탐정(劉 探偵)의 오뇌(懊惱) ··········120 의외(意外)의 선언(宣言) ·············145 해월(海月)의 정체(正體) ·············175 탐정폐업(探偵廢業) ···············196 엮은이에 대해··················215


≪마인≫, 조선일보, 1939. 2. 17


가장무도회(假裝舞蹈會)

一 세게범죄사(世界犯罪史)는 일천구백삼십× 년 사월 십오 일을 꿈에라도 이저서는 안 될 것이다. 실로 야수(野獸)와 가티 잔인하고도 한편 신기루(蜃氣樓)처럼 신비롭고 마도 (魔道)1)의 일루미네−슌2)처럼 호화로운 이 죄악의 실마리 는 그날 밤− 저 세게적 무용가 공작부인(孔雀夫人)의 생 일날 밤부터 시작되엿던 것이다. 공작부인이 세게적으로 진출하야 구미 각국에서 자기의 예술과 더부러 조선이라는 이름을 기운껏 선양하고 다시 서 울로 도라온 것은 바루 작년 느진 가을이엇다. 세상 사람들은 그의 이름이 주은몽(朱恩夢)이라는 사실 을 이저버린 듯이 그를 공작부인이라고 불럿고 그 역시 그 러케 불리우는 것을 그리 불명예라고 생각하지는 안는 듯시

1) 마도(魔道): 불교에서 악마의 세계를 의미함. 2) 일루미네−슌: 영어 illumination의 1930년대 한글식 표기. 여기서의 뜻은 네온사인, 조명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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펏다. 사람들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공작부인은 벌써 삼십의 고개를 넘엇다고도 하고 아직 이십이삼 세박개 안 되엿다고 도 하느니만큼 그의 나이는 가히 추측할 길이 업섯스나 그 의 파트론인 백영호(白英豪) 씨와 약혼한 채로 아직 결혼식 을 거행하지 안헛다는 사실로 미루어보매 그가 아직 미혼의 처녀라는 것만은 명확한 사실이다. 그리고 공작부인이라는 명칭은 그의 출세작 <공작부인(孔雀夫人)>으로부터 불 리워지는 일종의 애칭이라고도 할 수 잇다. 그처럼 주은몽을 세게적 인물로 만드러준 그의 출세작 <공작부인>이 상연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사 년 전 동경 ‘히비야’ 음악당의 호화로운 스테−지에서엿다. 퍼붓는 듯한 찬양의 소리 ― 앵콜에 앵콜을 거듭한 주은 몽의 인끼는 그야말로 하늘을 뚤흘 듯시펏다. 도하의 각 신 문지는 반도의 무히 주은몽을 세게적으로 선전하기를 아까 워하지 안헛다. 주은몽이란 이름은 어느듯 공작부인이란 애칭으로 변햇던 것이다. 그때 마침 미술 연구차로 파리에 가 있던 백만장자 백영 호 씨가 ‘요꼬하마’ 부두에 나리자마자 조선이 나은 세게적 무히 주은몽의 인끼에 놀라는 한편 그를 은연히 사모하는 정을 남달리 두텁게 품고 수차 주은몽과 만나는 사이에 두 26


사람 사이에는 어느듯 화려한 미레를 굿게굿게 맹서하는 속 삭임이 오고 가고 하엿다고, 그리고 그해 가을로 주은몽은 약혼자 백영호 씨의 후원을 어더 구미로 무용행각을 떠낫던 것이라고 ― 이것이 소위 미들 만한 소식통이 확보하는 뉴 −쓰로 되여 잇다. 그것은 하여튼 필자는 이만한 예비지식을 독자 제군에 게 던저주고 이제부터 세게범죄사상 이즐 수 업는 일천구백 삼십×년 사월 십오일, 명수대 주은몽의 저택에서 열린 가 장무도회(假裝舞蹈會)로 인도하고저 한다. 주은몽 ― 아니, 공작부인은 자기의 축복바든 탄생을 가 장 흥미 잇고 가장 호화롭게 기념하기 위하야 사월 보름날, 한강 건너편 명수대 자기 저택에서 조선서는 보기 드문 가 장무도회를 열기로 하엿던 것이다. 그날 밤 ― 남국으로부터 화신(花信)을 싯고 차저오는 바람세조차 훈훈한 그날 밤 손님들을 태운 자동차가 달비체 무르녹은 한강을 황홀히 나려다보며 일로 명수대를 향하야 마치 그림처럼 미끄러저 간다. 오늘 밤 공작부인의 초대를 바든 손님들은 가장무도회 라는데 벌써 적지 안흔 흥분과 엽기심을 느낄 뿐만 아니라 절세의 미인이요 세게적 무히인 공작부인과 손목을 마조 잡 고 춤출 수 잇다는 그 광경을 다시 씹어 상상할 때 그 황홀찬 27


란한 일순간을 전 생애의 금자탑처럼 고히고히 가슴속 기피 모시려는 것이엇다. 그들은 공작부인의 초대장을 바든 그날부터 동경이나 혹은 해외에서 배워가지고 온 서투른 스텝을 레코−드에 마추어가면서 연습하기를 게으르지 안헛다. 초대를 바든 손님들 가운데는 유명한 실업가라든가 명 성 노픈 변호사 가튼 인물도 석겨 잇섯스나 대체로 보아서 문사 미술가 음악가 연극인 가튼 예술가가 대부분이엇다.

二 도하의 각 신문지는 공작부인의 가장무도회를 대대적으로 보도하엿다. 그중에는 공작부인이 너무나 광적(狂的)인 이 국적(異國的) 취미를 비웃는 기사도 업지 안헛스나 하여튼 조선서는 처음 보는 기사인 만큼 쩌−널리스트들에게 잇서 서는 한 개의 조흔 미끼가 아닐 수 업섯다. 그것은 하여튼 공 작부인으로부터 영예스러운 초대를 바든 손님들은 지금 공 작부인의 화려한 자태를 눈아페 그려보면서 명수대를 향하 여 달리고 잇다. 더구나 그것이 힘만 잇스면 누구던지가 딸 수 잇는 야생 28


화(野生花)가 아니고 장래의 남편 백영호라는 울파주3) 안 에 천연히 피여 잇는 다리야인지라 사람들은 더한층 흥분과 호기심을 안 느낄 수 업섯다. 뿐만 아니라 제일미술전람회(第一美術展覽會) 조각부 (彫刻部) 심사원인 백영호 씨는 제아모리 백만장자랄지라 도 벌서 오십의 고개를 넘어선 중늙은이다. 하기는 비록 오십이 넘엇다 할지라도 그의 단정한 용모 와 교양 잇는 예술가적 타입은 그로하야금 적어도 십 년은 점게 하엿다. 더구나 미술 연구차로 다년간 세련된 파리생 활을 격거온 영향도 만흐리라. “그러나, 그러나…” 하고 중얼거리면서 공작부인과 백영호 씨의 약혼을 남 달리 달갑게 여기지 안는 사람이 한 사람 잇스니 그것은 지 금 한강철교를 호기 잇게 달리고 잇는 한 대의 세단 속의 인 물이엇다. 그 세단 속의 인물 ― 씰크햇트에 택시−드를 입고 힌 장갑을 낀 손에 흑칠의 단장을 들고 귀미테서부터 턱 아래 까지 시컴헌 수염을 곱게 기르고 게다가 검은 모노클(외알

3) 울파주: 울바자(바자로 만든 울타리)의 평안도 사투리. 바자는 ‘대, 갈 대, 수수깡, 싸리 따위로 발처럼 엮거나 결어서 만든 물건’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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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까지 낀 양은 마치 파리나 런던의 사교게에서 흔히 보 는 교양 잇는 풍류신사다. 아니, 독자 제군이 만일 탐정소설의 팬이랄 것 가트면 이 세단 속의 인물이 저 ‘모리스·르블랑’의 탐정소설의 주인 공 ― 파리 경시청을 마치 어린애처럼 농락하기를 즐겨하 는 무서운 도적 ‘아르세−느·루팽’으로 가장하엿다는 것을 곳 간파할 것이다. 그리고 제군이 만일 가장술(假裝術)에 대한 지식이 풍 부하다면 그의 수염이 결코 임시로 부친 가짜 수염가티 보 이지 안는 것만 보아도 그의 가장술이 얼마나 훌륭하다는 사실을 가이 짐작할 줄 안다. 그는 지금 자기의 변장을 자기 이외에는 한 사람도 간파 할 수 업스리라는 자부심을 한 아름 품고 눈아페 닥처오는 공작부인의 저택을 물끄럼이 바라보면서 중얼거린다. “공작부인이 진심으로 저 늙은 백영호 씨를 사랑할 수가 잇슬 것인가? …아니다! 공작부인이 과연 백영호 씨와 결혼 을 한다면 그는 자기의 청춘을 어떤 제물로 바치려는 정략 결혼일 것이다 ― 가난한 예술가와 돈 만흔 파트론 사이에 생기기 쉬운 의무 결혼! 공작부인은 현재 저 쾌활한 청년 화 가 김수일(金秀一)을 사랑하고 잇지 안는가?…” 그때 자동차는 벌써 공작부인의 정문 압까지 다달앗다.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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