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선의 성우 만들기 김희선
대한민국,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2014
김희선의 성우 만들기
지은이 김희선 펴낸이 박영률 초판 1쇄 펴낸날 2014년 3월 27일 커뮤니케이션북스(주) 출판등록 2007년 8월 17일 제313-2007-000166호 121-869 서울시 마포구 연남동 571-17 청원빌딩 3층 전화 (02) 7474 001, 팩스 (02) 736 5047 commbooks@eeel.net www.commbooks.com CommunicationBooks, Inc. 3F Cheongwon Bldg., 571-17 Yeonnam-dong Mapo-gu, Seoul 121-869, Korea phone 82 2 7474 001, fax 82 2 736 5047 이 책은 커뮤니케이션북스(주)가 저작권자와 계약하여 발행했습니다. 본사의 서면 허락 없이는 어떠한 형태나 수단으로도 이 책의 내용을 이용할 수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김희선, 2014 ISBN 979-11-304-0056-3 책값은 뒤표지에 표시되어 있습니다.
머리말 ‘자신을 믿고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열다섯 살에 MBC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로 방송을 시작한 이후, 1990년 PBC 평화방송 1기 성우가 되었다 다시 공채 시험을 치러 1992 년 KBS 23기 성우로 새 출발하게 되었다. 처음 학생들을 가르친 것이 1999년, 그 후 2005년 겨울부터 본격적으로 성우 수업을 하게 되었다. 성우는 내게 선물 같은 천직이고, 가르치는 일은 내게 가장 잘 맞는 옷 이다. 배우는 것이 즐겁고 가르치는 것이 기쁘다. 인터넷에서 누군가 나에 대해 이런 평을 내린 것을 보았다. 부드럽 고 자애로운 느낌의 성우, 어른스러우면서도 모성애가 느껴지는 분위 기에 제격, 뒤에서 잔잔히 받쳐주는 캐릭터하면 생각나는 사람, 전면에 드러나는 화려함은 없지만 빈자리를 충실히 메워 주는 분, 이것이 나다. 어느 순간 나는 내 스스로가 빛나는 별이 되기보다 다른 사람을 옆에서 더 빛나게 도와 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빈자 리를 충실히 메워 줄 수 있음에 감사하게 되었다. 나는 스트라이커로 공을 넣기보다 어시스트로 공을 패스해 주는 일에 보람을 느낀다. 성우 공채 시험 합격! 이것은 좋은 성우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 쳐야만 하는 단계다. 그간 학원이나 학교에서 가르치면서 나만의 콘텐 츠와 체계가 생겼고, 그에 따른 노하우도 터득하게 되었다. 그것을 많 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그것이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다. 이 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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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호흡부터 발성, 발음을 거쳐 단문 분석과 캐릭터 성격 구축, 2인 대 사, 내레이션과 다매체 연기 등을 담았다. 각 방송사의 공채 시험 유형 과 문제를 실었고 마지막으로 좋은 성우로서의 역량 관리까지를 다루 었다. 공채 성우 24년의 경력을 다 담아낸 것이다. 제임스 폴 마이어는 이렇게 말했다. “생생하게 상상하고, 간절히 바라고, 깊이 믿고, 열정적 으로 생각하면, 그것이 무슨 일이든 반드시 이루어진다.” 거기에 ‘성실’ 이라는 씨앗을 보태기 바란다. 과정은 힘들어도 열매는 달다. 전작인 성우라는 책을 출간할 때 <수요 북콘>이라는 프로그램 에 출연한 적이 있다. 저자와의 만남이라는 형식이었는데 프로그램의 마지막 부분에 어느 성우 지망생이 조언을 구했다. 지망생이 된 지 몇 년이 지났는데 너무 힘들다고 했다. 과연 이 길이 내 길이 맞는가 하는 회의가 든다는 거였다. 그 지망생에게 도리어 물었다. “꼭 성우여야만 하느냐?”고. 2012년 KBS 공채를 합격한 성우들에게 설문을 해보니 평 균 3년 이상 수험 기간을 거친 것으로 조사됐다. 이것은 그나마 나은 것 이다. 어쨌든 그들은 결국 성우가 됐으니까. 앞이 보이지 않는 두려움 속에서 성우를 꿈꾸는 지망생들에게 다시 묻는다. “꼭 이거야만 하는 가? 열정이 있는가?” 대답이 “그렇다!”라면 반드시 해야만 한다. 적절한 지망생 시기를 놓쳐 버리면 언젠가 한참 늦은 나이에라도 다시 성우 공 부를 시작하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최근에 가르쳤던 학생 중에는 52 살, 47살 늦깎이 학생도 있었다. 하고 싶은 건 언제든 다시 하게 되어 있 다. 마이크 앞에 선다는 설렘만으로도 말이다. 기왕이면 공채 성우로 뽑히기에 너무 늦은 나이가 아니었으면 한다. 그렇게 성우가 되고 나면, 성우가 되기 위해 지났던 과정들은 다 리허설이다. 본 무대는 지금부터 펼쳐진다. 비슷비슷했던 실력의 지망생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프로들 과 경쟁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특기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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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성 있는 연기를 하라! 성실한 성우가 돼라! 나이 마흔에 난 성우의 기로에 서 있었다. 더 나은 성우가 되고 싶었 고, 좋은 교육자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고, 자신도 없었다. 우리 직업은 항상 쓰임을 받는 직업이기에 내가 내 스스 로를 캐스팅할 수도 없었다. 그때 우연히 본 <지킬 앤 하이드> 브로드웨 이판 비디오에서 답을 보았다. 지킬 앤 하이드 역의 데이빗 핫셀호프는 1952년생으로 7080세대에게는 <전격 Z 작전>의 마이클로 더 유명했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50대에 <지킬 앤 하이드>로 재기에 성공한 것이다. 라이브로 16곡을 불러야 하는 광기와 이중성의 연기 속에 무대에서 잠깐 씩 기절하기도 했다는 그는 무대 뒤 이야기로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직업은 거절을 많이 당하는 직업입니다. 99.9%가 거절을 당하죠. 하지만 그 거절을 당하는 99.9%가 ‘당신 자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 다. 우린 어떤 역할을 하려고 하는 비전을 간직하고 있으면 됩니다. 항상 기회가 올 때를 기다려 최고의 모습과 준비된 모습으로 계십시오. 최고 의 집중으로 피땀과 눈물과 희생이 동반될 때, 운은 바로 그 순간 찾아옵 니다. ‘자신을 믿고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자신을 믿고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 나는 서울예술대학 심화과정 학부부터 다시 시작했고 대학원 석사까지 마칠 수 있었다. 나이 마흔은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고, 반전의 시작이었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진심으로 그것을 원한다면 끝까지 자신을 믿고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 다. 당신은 할. 수. 있. 다!
2014년 3월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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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머리말 ‘자신을 믿고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01 성우가 얘기하는 성우 이야기
라디오는 성우의 고향이다 TV는 성우의 현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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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테이너는 성우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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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성우의 호흡은 복식이다
올바른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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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식호흡 훈련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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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과 울음 훈련하기 호흡량 늘리기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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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발성의 목표는 공명이다
힘 있는 발성을 위한 호흡법 목소리 성형하기 공명 발성 훈련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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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침의 ‘ㄴ, ㅁ, ㅇ’ 울려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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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명료한 발음은 프로젝션이다
자음과 모음 발음 훈련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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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음을 명료하게 하는 ㅋㅌㅍㅎㅊ 사투리 교정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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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단문 훈련: 분석의 순서를 기억하라
띄어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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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료하게 읽기 -ㅋㅌㅍㅎㅊ, 공명 -ㄴㅁㅇ 강조하여 찍어 읽기 장단음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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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캐릭터의 성격 구축은 상상력과 창의력이다
경험을 쌓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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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을 훈련하라 상황을 설정하라
59 63
희로애락 연기하기 창의력 훈련하기
71 82
연기는 새로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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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2인 대사 훈련하기
상대의 대사를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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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처음 듣는 것처럼 들어라 상대의 대사에 반응하라 대화로 교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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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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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내레이션 훈련하기
내레이션의 기초와 초견력 키우기 내레이션 화술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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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가 있는 내레이션 실습 드라마 내레이션 실습
129
132
다큐멘터리 내레이션 실습
145
09 다매체 및 다양한 분야 연기하기 CM 광고
156
스폿과 예고
161
홈쇼핑 내레이션 라디오 DJ 시 낭송
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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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공채 시험에 합격하자
연령대와 성격을 파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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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으로 그림이 그려지게 하라 관통하는 감정을 찾아라 강조점을 찾아라 변화가 답이다
183
185
187 188
첫 시작을 잘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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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걸 하지 말고 잘하는 것을 하라 특기를 보여 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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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성우의 매니지먼트
성우의 핵심 역량 관리 성우의 이미지 관리
200 202
192
성우의 정보 관리
204
성우의 시간 관리
204
성우의 환경 관리
205
성대 강화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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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1 방송사별 성우 공채 시험 문제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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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니버스
219
대원방송
225
EBS
231
대교방송
243
부록 2 성우 공채 시험 합격 수기 KBS 35기 성우 김경희(2010년 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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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23기 성우 이민규(2013년 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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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니버스 7기 성우 박리나(2009년 입사) 대원방송 3기 성우 문유정(2012년 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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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성우가 얘기하는 성우 이야기*
성우(聲優)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자. 네이버 어학사전은 성우를 “목 소리로만 연기하는 배우. 영화의 음성 녹음이나 라디오 드라마 따위에 출연한다”고 얘기하고, 다음 어학사전은 “라디오 방송극이나 영화의 재 녹음 등을 할 때, 모습은 나타내지 않고 목소리만으로 연기하는 배우” 라고 정의한다. 2013년 기준으로 한국성우협회에 등록된 정식 성우는 750명 정도인데 방송사에 전속되어 있는 성우들을 제외한 숫자이니 매 년 꾸준히 10∼20명 정도가 늘고 있다고 보면 된다. 한 해 사법고시 합 격자가 1000명 정도라는데 1948년 특기인 구민, 이혜경 선생을 필두로 해서 65년 성우 역사에 고작 800명이 안 되는 수치라니 과연 성우고시 (聲優考試)가 더 어렵다는 말이 나올 법하다. 성우는 목소리 연기만으로 청취자와 교감하고 감정을 끌어내는 라 디오 드라마로 1950∼1970년대 사이 황금기를 지냈고, 1970년대 이후 TV 외화의 전성기로 사랑을 받았으며, 외화 더빙이 현저히 줄어든 1990 년대 이후는 다시 애니메이션 시대의 재도약으로 시청자의 곁을 지켰 다. 대한민국에서 각종 정보기술이나 매스미디어에 노출된 사람들은
* 1장에는 본인의 저서 성우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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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수십 차례 성우의 소리를 듣고 산다. 라디오, TV는 물론이고 엘리베이터, 주차장, 휴대전화, 가전제품, 각종 게임이나 장난감에도 성우의 목소리는 들어가 있다. 성우는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의 친구요, 어른들의 동료이며, 노년의 벗이다. 그런데 오늘날 성우란 직업을 논할 때 ‘목소리로만 연기하는’이라고 한정하는 게 맞는 표현일까. 성우는 물 론 소리를 매개로 하여 연기를 하는 배우(俳優)지만 이제 성우는 더 넓 은 영역에서 빛을 발하고 있고 나아가 새로운 영역으로 도전하고 있다. 뉴미디어 시대를 맞아 많은 분야가 혼합되고 소멸하고 생성되는 와중 에 성우도 진화해 대중(大衆)의 곁에 남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이제 성 우는 목소리만으로 연기하는 배우(聲優)에서 나아가, 정성을 다하는 배우(誠優)로 매우 활발하게 활동하며(盛優) 대중을 살피어 돌보아(省 優) 우리 나름의 일가를 이루어야 한다(成優). 그때 성우는 만인의 별
(星優)이 되리라 확신한다.
라디오는 성우의 고향이다 대학원 수업 중 연극치료 과목을 들을 때다. 매 수업 시간마다 하나의 과제를 주고 이야기 나누는 것으로 시작되었는데, 그날의 주제는 “나의 인생에서 성공담을 가지고 뉴스 헤드라인 만들기”였다. 10분 안에 내 인생의 성공담을 짧은 헤드라인으로 표현하라니 참으로 막막했다. 순 간 떠오른 것이 나의 직업이었다. 열 살이 되던 해부터 서울시립소년소 녀 합창단으로 뽑혀 활동하던 나는 노래보다도 목소리가 예쁘다는 말 을 많이 듣고 자랐다. 생각보다 노래 실력이 별로라 목소리라도 예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작용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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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로 활동할 수 있는 직업인 방송인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 방송인이 명확히 성우라는 직업으로 안착할 수 있었던 것은 열다섯 살부터 하기 시작한 라디오 방송 때문이었다. 중학교 방송 부원이었던 시절, 어느 날 즐겨듣던 라디오 프로그램 <별이 빛나는 밤에>에서 매일 5분가량 방송되던 모노드라마의 내레이터를 새로 뽑는다는 것이었다. 고등학 교 1학년 여학생 나래라는 인물의 하루를 이야기하는 ‘나래의 일기’는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던 한 언니가 연기했었는데 그 언니가 외국 유학 을 가게 되었던 것이다. 꼭 하고 싶다는 염원과 지원자들 중 가장 어려 서 떨어져도 안 창피할거라는 무모한 느긋함이 나를 ‘나래의 일기’ 내레 이터로 만들었다. <별이 빛나는 밤에>와의 인연은 대학교 2학년 때까 지 계속 되었는데 ‘나래의 일기’를 거쳐 ‘이건 절대 비밀이걸랑요’, ‘우리 들의 이야기’까지 청취자들의 사연을 모노드라마로 각색해 읽어주면서 라디오와 친구가 되었다. 그때 만난 게 <라디오 심야극장>이었다. <별 이 빛나는 밤에>가 끝나는 자정부터 20분 동안 매일 방송되던 <심야극 장>은 주로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많아서 꿈 많던 10대 여학생이 듣 기에 황홀 그 자체였다. 가만히 눈을 감고 라디오 드라마를 듣노라면 이야기 속의 인물들이 모두 내 곁에서 속삭거렸고 그 안에 기쁨과 슬픔, 사랑과 이별이 있었다. 방송이 끝날 무렵 “출연-”하고 불러주는 그 이름 들이 당시 나의 선망의 대상들이었다. 운이 좋은 날은 내가 녹음이 끝 나는 시간에 다른 스튜디오에서 녹음하던 성우분들과 마주칠 때도 있 었는데 그때 그분들을 보면서 ‘나도 꼭 성우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정확히 7년 후 스물두 살 봄에 나는 성우가 되었 다. 그것이 내 인생의 성공담이자 내 꿈을 이룬 이야기였다. 이것을 가 지고 헤드라인을 만들었다. “15살의 동경, 마침내 22살의 동료로 나란 히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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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시립소년소녀합창단이 아니었더라면, 목소리가 예쁘다는 말을 못 들었더라면, <별이 빛나는 밤에> 내레이터가 아니었더라면, 라 디오 드라마 <심야극장>을 안 들었더라면, 그 드라마에 빠져들지 않았 더라면, 성우를 동경하지 않았더라면… 난 성우를 꿈꾸지 않았을 것이 고 결국 성우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인생은 알 수 없다. 2013년 봄에 출 간된 성우라는 책에서, 나는 ‘라디오 드라마는 성우 연기의 고향이다’ 라고 표현했다. 형태가 없는 라디오 드라마에서는 성우의 목소리와 연 기가 오로지 상상의 재료다. 그와 그녀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곳이 얼마나 깊고 깊은 산속인지, 사람들 사이의 감정이 얼마나 섬세하게 표 현되는지 그 미묘한 하나하나를 다 소리로 상상하게 한다. 이렇게 목소 리만으로 연기를 전달하기 때문에 목소리로 표현할 수 있는 언어의 느 낌만을 가지고도 인간 상상력의 영역을 모두 자극한다. 이 상상력에는 감각적 시-공간적, 정서적 상상력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외화 더빙처럼 버터 느낌의 이국적인 억양도 아니고, 만화영화 더 빙처럼 제 3의 존재로 소리를 왜곡시키지도 않으면서 라디오 드라마는 본인의 소리를 찾아내게 만든다. ‘나 자신’에서 출발할 수 있는 인간의 감정을 연구하게 한다. “라디오 드라마야말로 온전히 나 자신의 창조품 이다”라는 말로 라디오 드라마에 애정을 드러내신 대선배님의 말씀처 럼 진솔한 라디오연기를 할 줄 알아야 나중에 슬럼프에 빠졌을 때도 그 힘으로 일어날 수 있다. 실제로 1997년 IMF를 겪으면서 일이 없어져 많 은 성우들이 힘들어했다. 그런 상황은 2000년대 초까지도 이어졌는데 그때 나를 일으켜 세운 것도 라디오 드라마였다. 자신의 소리를 기본으 로 인간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표현하는 라디오 드라마를 통해 많은 인간군상을 연기해 보았기에 내가 힘들면 남들도 힘들다는 것을, 인간 사는 서로 다른 듯 닮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 힘이 되었다.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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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라디오 드라마를 하면서 호흡, 발성, 발음, 연기의 기초가 바로 서 있 다고 믿었기에 다시 올 기회를 기다리며 버틸 수 있었다. 라디오 드라마의 황금기 시절 KBS, MBC 외에도 DBS, TBC 같은 방송사에서 라디오 연속극의 맞대결을 펼치며 저녁시간대에는 매시간 연속극이 편성되던 때도 있었다. 1967년 한 해만 하더라도 DBS, TBC 두 방송사에는 모두 14개의 라디오 드라마가 있었다 하니 방송사를 통 틀어 지금 그 절반도 되지 않는 라디오 드라마를 보면서 격세지감을 느 낀다. 그러나 다매체와 디지털 시대의 변화 속에서도 옛것에 대한 향수 와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요구되는 것처럼 성우들의 라디오 드라마는 여전히 존재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새로운 것, 첨단의 것을 추구하는 독자가 있는가 하면 라디오의 정서를 느끼며 위로를 받는 독자도 있다. 인터넷이나 e-Book이 활성화된다고 해서 책이 없어지진 않았다. 그러 니 텔레비전이나 영화의 위세 속에서도 라디오 드라마는 그 명맥을 이 어갈 것이다. 단지 시대가 바뀌고, 청취자도 바뀌었으니 라디오 드라마 도 진화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 청취자들과의 공감 확대를 위한 다양한 시도와 노력이 절실하다 하겠다.
TV는 성우의 현재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무슨 요일이었는지 정확히 몇 시였는지는 모르 겠지만 매주 특정한 요일에 부모님과 신경전을 벌였던 기억이 난다. 그 것도 아주 늦은 밤, 잠을 자지 않겠다는 나와 ‘어린이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부모님의 원칙 사이에서 늘 실랑이가 벌어졌다. 바로 외화(外畵) <6백만불의 사나이> 때문이었다. 한쪽 눈과 한쪽 팔, 양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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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를 우주 비행 실험 중에 사고로 잃어버린 스티븐 오스틴 대령은 600만 불을 들여 기계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고 온갖 불의에 맞서 정의의 초능 력자로 활약한다. 그 시절 우리들의 영웅은 <6백만불의 사나이>와 <소 머즈>와 <원더우먼>이었다. 그가 ‘뚜두두두’하며 초능력으로 멀리 있는 것을 볼 때 아이들은 신기해했고, 그가 ‘드드드드득’하고 한쪽 팔로 쇠뭉 치를 부수고 구부릴 때 아이들은 열광했다. 중학교 시절엔 <맥가이버> 를 통해 만능의 천재를 인증했고, 고등학교 시절엔 <V>를 통해 외계 생 명체의 오싹함을 실감하며 꿈자리 뒤숭숭해 했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 들의 학창 시절엔 항상 이슈가 되는 TV 영화가 있었다. 1990년대엔 멀 더와 스컬리의 <X 파일>이 있었고, 2000년대 시작된 <CSI시리즈>는 마 이애미 시즌을 거쳐 뉴욕 시즌 등 아직까지 10여 년째 계속되고 있다. TV는 현재의 성우를 만나게 하는 가장 대표적 도구다. 더빙(dubbing)이란 이미 녹음과 편집이 끝난 필름에 대사나 음악, 효과음 등을 합쳐서 녹음을 완성하는 일이다. 영상에 맞게 소리가 가장 그럴듯하게 입혀졌을 때 그것을 보는 사람은 극의 전개에 편하게 빠져 들고 그만큼 감동의 폭도 커지게 된다. 그러니 외화 더빙은 적절한 번 역, 알맞은 배역, 자연스러운 연기의 삼박자가 어울려야만 성공할 수 있다.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면 원작의 생생한 감동을 전해 줄 수 없고 내용 전달조차 실패한다. 잘된 더빙은 원작을 능가해 시청자의 이해를 돕고 인기와 사랑을 한 몸에 받는다. <형사 콜롬보>, <닥터 후>, <아마 데우스>, <판관 포청천> 등 많은 사랑을 받은 외화들이 그렇다. 단 한 편의 드라마로 스타가 될 수 있는 탤런트와 달리 성우는 10년 이상 내공 이 쌓여야만 자유자재의 테크닉과 연기가 가능하다. 최소 2년 이상의 방송사 전속 기간을 거쳐 한두 마디의 더빙부터 시작해 점차 큰 배역을 맡게 된다. 재능과 운이 따라주어 인기 있는 작품을 만나게 되면 더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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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담 배우가 생기기도 하고, 이로 인해 스타 성우가 되기도 한다. 오드 리 헵번·엘리자베스 테일러·메릴 스트립 등을 더빙했던 장유진 선생 님, 클라크 게이블·그레고리 펙·숀 코너리 등을 더빙했던 유강진 선 생님, 맥 라이언·데미 무어·소피 마르소·쥘리에트 비노슈 등을 더 빙했던 송도영 선배님, 리처드 기어·브루스 윌리스·아널드 슈워제네 거 등을 더빙했던 이정구 선배님 등이 바로 이들이다. 이름을 알리고 연기를 인정받는 데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성우들은 그래서 그 생명력 이 길다. 맬컴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의 1만 시간의 법칙은 성 우와 어울리는 이론이며, 그래서 성우들에겐 ‘소리의 달인’이라는 수식 어가 어색하지 않다. 그러나 컬러 TV가 보급되고 케이블과 위성 TV가 개국하면서 다른 영상 매체들이 발전하고 제작비 등의 문제로 자막방 송이 시도되면서 TV 외화 또한 사양길을 걷게 되었다. 그리고 성우들 의 전문 더빙 영역도 외화 더빙에서 애니메이션 더빙 분야로 자연스럽 게 교체되었다. 2013년 7월 27일, 모 케이블 텔레비전에서 각 분야별 대한민국 최 고 몸값을 알아보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중 ‘캐릭터’ 분야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어린이들의 대통령이라는 뽀로로의 가치가 무려 8500억 원이고 2011년 뽀로로 관련 상품의 매출이 6000억 원이었다는 것이다. 웬만한 기업의 매출을 뛰어넘는 뽀로로는 원소스멀티유스(One source multi use, 하나의 콘텐츠로 여러 상품 유형을 만들어 내는 것)의 훌륭 한 본보기다. 그리고 이 뽀로로의 출발이 만화, 곧 애니메이션이었다. 한글을 아는 나이부터는 자막으로 갈 수도 있고, 외국어가 능숙한 정도 의 사람들은 더빙판 영화보다 원어판 영화를 선호할 수 있지만, 그것이 절대 안 되는 것이 바로 유아를 위한 애니메이션이다. 애니메이션에 친 숙해진 세대는 마니아를 양산해 낸다. 24시간 애니메이션만을 방송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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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투니버스나 대원방송, 대교방송 등은 이러한 사회의 현상을 보여 주 는 단적인 예다. 애니메이션 더빙의 증가는 성우 수요의 확대를 가져왔 고 성우들의 활동 무대 역시 외화 더빙보다 애니메이션 더빙 쪽으로 옮 겨가게 되었다. <뽀로로>를 비롯해서 <이누야샤>, <건담 시드>, <나 루토>, <스폰지 밥> 등은 유아를 넘어 청소년이나 성인들에게까지 사 랑받는 캐릭터가 되었다. 여기서 라디오 드라마 연기와 외화 더빙 연기, 그리고 애니메이션 더빙 연기의 핵심을 살펴보자. 라디오 드라마 연기는 성우 본인의 창작 에 의한 연기로 대사의 고저장단과 호흡의 완급(緩急)을 조절해 가는 포 즈(pause, 사이)의 연기다. 외화 더빙 연기는 문화 배경과 언어 감각, 감 정 이입과 호흡이 다른 외국 배우의 대사를 옵티컬로 들으며 화면의 상 황과 배우의 액션과 표현까지 우리말로 표현해 내는 순발력(瞬發力)과 멀티(multi)의 연기다. 애니메이션 더빙 연기는 여기에 실제보다 더 과 장되고 강조되며, 빠른 템포감을 지닌 상상력(想像力)의 연기가 첨가된 다. MBC-TV의 외화를 주로 연출했던 황선길 PD는 그의 저서 TV 외화그 이론과 실제에서 ‘TV 외화 더빙 작업에서 번역자, 연출자, 연기자가 갖춰야 할 기본적인 rule’ 40가지를 언급하고 있는데, 그중 연기를 위한 역할 창조에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10가지를 추리면 다음과 같다.
① 입에 맞추지 말고 표정에 맞춰라. ② 화면에서 자기의 연기를 창조해 내야 한다. ③ 소리의 거리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④ 신(scene)이 바뀌면 대사에 변화를 주어야 한다. ⑤ 스타의 보이스(voice) 즉 옵티컬 보이스를 좇지 말고, 그 스타가 풍겨주는 성격에 맞는 음색(音色)을 창조해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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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움직이는 대사와 움직이지 않는 대사가 구별돼야 한다. ⑦ 즉흥적인 대사 첨가는 허용하면 안 된다. ⑧ 대사 분석은 반드시 화면을 보고 해야 한다. ⑨ 대사에 멋을 내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⑩ 모든 대사는 성격이 부여된 대사이어야 한다.
더빙에서는 기본적으로 ‘화면에 소리를 맞추는 것’이지만, 여기에 도 상상력과 창의력은 존재한다. 황선길 PD는 ‘성우에게 요구되는 가 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창조적 연기’라고 말하고 있다. 목소리는 인물 의 성격을 결정한다. 그는 말런 브랜도를 예로 들며, 그가 출연했던 <줄 리어스 시이저>, <워터 프론트>, <젊은 사자들>에서 그가 제각기 다른 음성을 구사해 새로운 인물을 창조해 냈다고 했다. 나 또한 대학시절 존경하는 은사님께 ‘연기화술’을 배울 때, 셰익스피어를 가장 잘 표현해 내어 ‘경(卿)’이란 칭호까지 받은 영국 배우 로런스 올리비에가 <햄릿> 에서, <리처드 3세>에서, <오델로>에서, <리어왕>에서 어떤 음성으로 어떻게 다른 인물의 성격을 창조해 내었는지 비디오를 보며 분석했던 터라 그 말에 100% 동감한다. 애니메이션 연기에서는 ‘변성(變聲)’의 재능을 더욱 부각시킨다. 1 인 1역이 원칙인 라디오 드라마와는 달리 외화나 애니메이션 더빙은 1 인 다역(多役)이 기본이기 때문이다. 영화 <스위치(Switch)>를 더빙할 때 난 프리 1년 차 막내였는데 1인 16역을 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또 애니메이션에서는 매회 다른 에피소드가 나오면서 인물이 추가될 때가 있는데 그러다 보면 ‘내’가 ‘나’와 대화를 주고받는 상황이 연출될 때도 있다. 그런 경우에도 대사가 겹치지만 않으면 내용의 흐름에 따라서 한 번에 녹음한다. 그렇게 성우들은 본의 아니게 ‘소리의 마술사’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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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다. TV 외화에서 TV 애니메이션으로 자리를 이어가면서 성우는 시 청자와의 끈을 놓지 않았다. 막대한 물량으로 시청자를 공략하던 황금 기가 아닐지라도 TV에 외화와 애니메이션이 방영되는 한 성우는 언제 나 시청자의 친구다.
엔터테이너는 성우의 미래다 스물두 살 봄에 시험을 거쳐 PBC 평화방송의 1기 성우가 되었다. 그리 고 2년간 돈을 주고도 살수 없는 좌충우돌 모험과 경험을 했다. ‘1기 성 우’라는 타이틀의 매력 때문에 신생 케이블 방송국에 지원했던 나는 방 송국이 방송국으로서 모습을 갖춰가는 중에 여러 모습으로 방송에 투 입되었다. 목소리로만 연기하는 것이 성우의 영역이라 생각했던 내게 성우는 ‘라디오 드라마, 외화, 만화영화, 다큐멘터리 내레이션, 라디오 와 텔레비전의 광고 CM, 캠페인, 안내 방송, 각종 교재’ 등에서 활약하 는 사람이었다. 성우 연기의 정수는 라디오 드라마라고 여겨 왔기에 1 주일에 두 번 녹음하는 <한국 외교 비사 50년> 드라마에 온갖 정성을 쏟았다. 문제는 그해 6월 11일, 서울 교통방송 TBS가 개국하면서 시작되었 다. 아침 출근길 7시부터 9시까지 라디오는 대부분 교통의 흐름을 전하 는 리포터들의 멘트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데 평화방송엔 교통 전 문 리포터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정확하고 맑은 발음으로 교통 상황 을 전해야 하는 교통리포터에 가장 적격인 것이 시간적으로 구애를 받 지 않는 성우들의 몫이 되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격주로 시경교통관 제센터로 출근을 하거나 패트롤카를 타고 나가 시내 교통 상황을 생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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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연결하는 일이 1년 6개월가량 지속되었다. 당시엔 서울시내 교통 흐름을 관측하던 CCTV가 16대였는데 그것을 토대로 원고를 작성해서 2시간 동안 4∼6번 정도 방송을 연결했다. 패트롤카를 타고 나갈 때는 더 좋은 방송을 위해 서울 곳곳을 누벼야 해서 시간과 정성이 더 많이 들고 그만큼 위험할 때도 많았다. 인명사고가 막 발생했던 장소에서 사 고의 잔해를 보며 방송을 연결해야 할 때는 어린 맘에 상처도 받았는데 그때 깨달은 것이 ‘프로는 나이를 상관하지 않는다’였다. 나이의 많고 적음을 막론하고 프로는 프로다워야 하기 때문이다. 항상 냉정하고 정 확하며 침착하게 판단하고 방송해야 한다는 걸 그때 배웠다. 교통 리포팅을 끝내고 9시에 방송국으로 출발하면 오전 녹음이 기 다리고 있다. 그리고 점심시간을 이용해서는 마이크와 녹음기를 들고 거리 인터뷰를 땄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역시 리포터로 출연해야 했기 때문이다. 보도국 기자들이나 기존의 프로 리포터들과 마찬가지 로 프로그램에 맞는 콘셉트를 미리 정하고 인터뷰하고 편집하고 원고 를 쓰고 방송하는 게 다 우리의 몫이었다. 당시는 릴 테이프로 편집하 고 방송하던 때라 더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오후에 캠페인이나 방송 프로그램 사이사이에 들어가는 5분 내외의 프로그램들을 녹음한 뒤엔 또다시 각자 개인에게 주어진 방송을 더 하게 된다. 동화 녹음, DJ 프로 그램 녹음은 물론이었고, 내가 하는 방송에 내가 글을 쓴다는 게 알려져 라디오 방송 멘트를 쓰는 스크립터 작가까지 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정말로 값진 경험들이었지만 그 당시엔 1년 만에 전속에서 프리랜서로 풀려 버린 불안한 위치 때문에 평화방송 1기 성우인 우리 12명은 잠이 안 올만큼 고민하고 힘들었다. 라디오 드라마의 제작비가 라디오 전체 제작비의 1/10을 차지하다보니 방송사에서 라디오 드라마 제작을 포기 했고, 더 이상 제대로 된 라디오 드라마 연기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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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를 절망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다시 공채 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1991년 12월, 그렇게 나는 KBS 23기 성우가 되었다. 고 스티브 잡스가 2005년 7월, 스탠퍼드대학교 졸업식장 연설에서 애플에서 해고 됐을 때의 경험을 얘기하며 “당시에는 몰랐지만, 애플에 서 해고당한 사건은 돌아보면 제 인생 최고의 사건이었습니다.(중략)그 경험은 지독하게 입에 쓴 약이었지만, 필요한 약이었습니다. 때로 삶은 벽돌로 당신의 머리를 내리칩니다. 하지만 결코 신념을 버리지 마십시 오” 라고 말하던 부분을 들었을 때 가슴이 뭉클했다. 내게 ‘연기하고 싶 다’는 신념이 없었다면 다시 성우 시험을 치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 리고 평화방송에서의 경험은 힘들고 벅찼지만 내 성우 생활에 참으로 필요한 약이었다고 생각된다. 스물두 살에 맨땅에 헤딩하듯 그 일들을 해냈는데 그보다 성숙하고 많은 나이에 무슨 일인들 못 해내랴 싶어진 것이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노력하고자 하는 자세는 여기서 길러졌다. 성우 분야뿐 아니라 퍼포먼스가 더해진 숙명가야금연주단의 태교 콘서 트 ‘달콤한 하품’을 진행할 때 개그맨처럼 망가지면서도 그 역할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은 어느 분야든 내가 필요한 분야에서 맘껏 표현할 수 있다 는 행복감 때문이었다. 좋은 공연으로 평가받는 숙명가야금연주단의 ‘달콤한 하품’은, SBS-TV <스타킹>에도 출연하여 한국을 빛낸 공연으로 소개되었고, KBS-1TV <아침마당>에도 특집으로 소개되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에 겁먹지 말자. 뉴스 보도와 교양을 전문으 로 하던 아나운서도 다재다능한 ‘아나테이너(announcer+entertainer)’로 의 변신을 꾀한 후 중흥의 전환기를 맞을 수 있었다. 절박함은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게 만들고 간절함은 그 일을 꽃피우게 한다. 성우로 시작 해서 탤런트가 되거나 영화배우가 된 선후배들, 유명한 쇼호스트가 된 선후배들, 연극배우 혹은 CF 출연으로 폭을 넓힌 선후배들, 유명 MC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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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로 입지를 굳힌 선후배들, 그리고 늦깎이로 다시 공부를 시작하여 매 진하는 선후배들 모두가 성우의 새로운 개척자들이다. 과거 존재하던 라디오 드라마나 국내 영화 더빙, 외화 더빙의 전성기는 성우의 전설로 방송의 역사 한 페이지에서 다뤄질 것이다. 그러나 이제부터 성우의 입 지는 더욱 넓어질 것이며 다양해질 것이라 믿는다. 뉴미디어 시대에 성 우의 신화는 지금부터 다시 써야 한다. 바로 당신으로 인해서. 이제 본격적인 ‘성우 만들기’에 들어가면서 학생들에 당부하는 나 의 철학 세 가지를 전하려고 한다. 첫째, 진심을 다해서 진정성 있는 연 기를 하라. 진심은 사람의 마음뿐 아니라 신의 마음 또한 움직인다. 둘 째, 기본에 충실하라. 성우의 삶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자주 교차되는 삼각함수 사인의 물결 모양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기본을 잃지 않으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 마지막 셋째, 나만의 창의성을 발휘하라. 남들과 달라야 뽑힐 수 있고 기억되어질 수 있으며 장수할 수 있다. 창의력은 어느 분야에서도 최고가 될 수 있게 하는 마법의 지팡이다. 자, 지금부 터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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