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미디어와 문화 경계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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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케이션이해총서

글로벌 미디어와 문화 경계 최은경

대한민국,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2014


문화, 경계 짓기와 경계 넘기

문화와 인간 그리고 사회 영국의 문화연구자 레이먼드 윌리엄스(Raymond Williams) 는 ‘문화(culture)’가 영어에서 가장 난해한 몇 개 단어들 중 하나라고 했다(1987). 문화라는 단어는 본래 유럽의 일 부 언어와 역사적 배경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culture’의 전형(前形)은 라틴어 ‘cultura’이고 어원은 ‘거 주하다, 논밭을 갈다, 지키다, 존경하며 숭배하다’라는 뜻 의 라틴어 ‘colere’이다. 라틴어에서 시작한 ‘문화’는 그 의 미가 확대되기도 하고 파생되기도 하여 14세기 이후 영국 과 프랑스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16세기에는 자연 생물 의 양육, 인간의 발달 과정이라는 의미로 확대되었고, 18세 기 말에서 19세기 초에는 일반적인 사회 과정이라는 의미 에서 경작, 교화, 성장이라는 은유적 의미로 발전했다. 흥 미롭게도 18세기 계몽주의 역사가들은 당시 보편적 세계관 중 ‘civilization(문명)’의 의미로 문화를 논의했다고 한다. 1840년 대 구스타프 프리드리히 클렘(Gustav Friedrich Klemm)의 독일어 저술 󰡔인류 문화사 개설보편󰡕(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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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2)에 따르면, 인류의 발달은 야만에서 교화를 거쳐 자 유에 이르렀고 이러한 과정이 ‘Kultur’라고 주장하고 있다. 즉, 19세기 문화는 지적·정신적·미학적 발달의 전체적 인 과정을 의미하는 독립 추상명사로, 국민·시대·집단 또는 인간의 전체 특정한 생활양식을 가리키는 자립명사 로, 그리고 예술 활동의 실천이나 그로 인해 만들어진 작 품을 가리키는 자립 추상명사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하지 만 기계에 의한 새로운 문명이 빠르게 도래하면서 빌헬름 폰 훔볼트(Wilhelm von Humboldt) 같은 학자들은 문화 를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으로 나누기도 했다. 예컨대 ‘문화’가 영어 외 언어에서도 다양하게 사용되 고, 국가와 사회에 따라 복잡하고 다양하게 해석되자, 크 로버와 클룩혼(Kroeber and Kluckhohn)은 󰡔문화: 개념 과 정의에 대한 비평적 논고(Culture: a Critical Review of Concepts and Definitions)󰡕라는 책을 통해 문화의 다의 적 해석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런데 윌리엄스는 이러한 복잡하고 다양한 문화의 해석은 문화라는 단어 자체에 있 는 것이 아니라 문화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방법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문화에 적대감이 연결되어 ‘사이비 문화인(culture-vulture)’, ‘하 위문화(sub-culture)’같은 단어를 파생시켰다(Willi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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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문화’라는 단어가 여러 학 문 분야에서 서로 다른 사상 체계와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 기 때문에 명확하고 간결하게 정의하기는 더욱 어렵다. 2002년 국제연합 교육과학문화기구(United Nations Educational, Scientific and Cultural Organization), 유네 스코(UNESCO)는 “문화는 한 사회 또는 사회적 집단에서 나타나는 예술, 문학, 생활양식, 더부살이, 가치관, 전통, 신념 등의 독특한 정신적, 물질적, 지적 특징”으로 정의하 고 있다. 즉, 문화는 보통 인간이 주어진 자연환경을 변화 시키고 본능을 적절히 조절하면서 만들어 낸 일종의 생활 양식과 그에 따른 산물들을 의미한다. 때문에 ‘문화’라는 단어는 인간과 인간의 삶을 표현하는 데 아주 유용하다. 또한 문화는 그 사회의 주요한 행동 양식이나 사회사상, 가치관, 종교 같은 상징체계 등의 차이와 다양한 관점의 이론, 그리고 시대에 따라 정의가 달라지기도 한다. 예컨 대 18세기에는 문명의 혁명적 발전으로 서구 문화가 빠르 게 전파되면서, 서구의 문명을 문화의 전부로 인식하는 서 구우월주의가 있었고, 모든 인류의 문화적 내재성을 존중 하려는 문화상대주의도 있었다. 그리고 이슬람 문화, 기 독교 문화, 불교 문화, 힌두교 문화와 같이 그 사회가 믿는 종교에 따라 문화가 구분되기도 하며, 영어 문화권, 프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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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어 문화권, 스페인어 문화권, 포르투갈어 문화권, 아랍 어 문화권같이 그 사회에서 통용되는 언어에 따라 구별되 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역사적·정치적 차원에서 동아 시아 문화, 중동 문화, 유럽 문화로 구분하기도 한다. 그 밖에도 문화는 ‘하위문화’, ‘고급문화’, ‘민족문화’, ‘서울 문 화’, ‘지방 문화’, ‘가부장 문화’, ‘소비문화’, ‘디지털 문화’같 이 다른 사회적 현상이나 특정 용어와 결합된다.

문화와 정체성 영어의 ‘identity’라는 말을 우리는 흔히 정체성(正體性)이 라고 한다. identity는 라틴어 idem(the same)에서 나온 말로 ‘∼과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느 것이 다른 어느 것과 같다는 것은 그 두 개가 다른 경우도 있기 때문에, 동 일함과 유사성을 논하기 위해서는 그것의 본질적 특성과 차이를 반드시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를 인 간에게 적용한다면, 사회 속에서 개인은 개별자를 넘어 유 기적이고 복잡한 의미망(semantic network)에서 살고 있 다. 예컨대 나와 타자(other)의 관계 속에서 나를 어떻게 위치시킬 것이며, 그런 관계망 속에서 나와 타자는 어떻게 구별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의식이 바로 정체성의 시작점 이 된다.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Jacques La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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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인간이 태어나 사회생활을 하는 모든 과정을 상상계 (the imaginary)와 상징계(the symbolic), 실재계(the real) 로 나누어 언어학적으로 설명했다. 그중 상상계를 의미하 는 ‘거울 단계(mirror stage)’는 생후 6∼18개월 된 아기가 거울에 비친 자기의 영상을 보고 매우 즐거워하는 모습을 관찰하면서 유래되었다. 즉, 거울 단계는 아이가 거울 속 자신의 상을 보고 실제 자신과 혼동을 하지만, 그 상이 허 구의 이미지임을 깨닫고 자신과 타자의 이미지도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지각한 후 거울 속의 상을 움직이는 놀이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은 나의 존재와 이미지의 차이를 지각하지만, 나의 이미지를 나의 실체로 간주하면서 상상을 하게 된다 는 것이다. 이렇게 어느 대상의 실체를 어느 대상의 이미지 와 동일하게 간주하는 그 상상의 작용을 우리는 동일시 (identification)라고 부른다. 그리고 우리는 사회생활을 통 해 유사성을 판별해 나가는 상상계에서 우리 정체성의 본 질을 찾을 수 있다. 나아가 언어와 문화로 이루어진 보편적 질서의 세계를 의미하는 상징계에서는 자아가 형성되기 시작하면서, 인간의 지각이 무의식적으로 동일시했던 것 에서 분리되고, 상실하며, 그리워하고, 욕망하게 된다. 마 지막 실재계는 상징계와 상상계가 교집합을 이루면서 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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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하는 영역으로, 어린이가 의사소통이 가능해지면서 비 로소 사회 진입을 하는 단계를 말하기도 한다(김석, 2010).

문화 경계 짓기 경계인의 정체성을 연구한 권희영(2012)에 따르면, 정체 성은 기본적으로 경계 짓기의 문제이고, 그 경계를 설정하 는 것은 상상의 산물이지만 동시에 법과 도덕이 개입하게 된다. 때문에 무엇인가에 막혀 상상을 자유롭게 할 수 없 게 되는 것이 바로 정체성의 경계이고, 경계인에게 나타나 는 환상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디아스포라(diaspora)는 모국을 벗어나 살기 를 선택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디아스포라는 모국과 유형 지의 정체성 경계를 의식하고 살게 된다. 다시 말해 어떤 이유로 디아스포라를 선택했더라도, 이들은 모국에 속해 있다는 상상의 공동체 의식을 가지며 동시에 유형지의 공 동체에 속한다는 의식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복합적인 문제 때문에 때로 이 정체성은 갈등을 유발하기 도 하고, 분리되거나 통합되기도 한다. 다문화인도 유사한 방식으로 그들의 정체성을 설명할 수 있다. 여러 나라의 생활양식을 뜻하는 다문화주의(多 文化主義, multiculturalism)는 관용과 갈등이 존재의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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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적 조건이 되고 있어, 보통 다문화주의를 강조하는 측에 서는 주도 문화의 타문화 수용성을 강조하면서 문화들의 병치를 주장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다문화론은 디아스포라론을 모국과 현지의 관례에서 보 는 것이 아니라, 현 국가의 소수민족 관계로 설정한다. 따 라서 본질적으로는 소수민족론이라고 봐야 하다. 결국 소 수민족론에는 2개의 정체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 친밀 한 관계를 맺는다. 국민국가의 정체성, 그리고 소수민족 의 정체성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국민과 민족 을 어떻게 경계 지을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권희영(2012)은 근대국가에서는 국가의 주권이 인정되 기 때문에 이 문제를 개념적으로 분류해 4개의 유형을 소 개하고 있다.

∙ 유형 A: 국민국가와 민족의 경계가 일치한다. ∙ 유형 B: 국민국가 내에 민족의 경계가 존재한다. ∙ 유형 C: 민족 내에 국민국가의 경계가 존재한다. ∙ 유형 D: 국민국가와 민족의 경계를 뫼비우스의 띠로 연결하고 있다.

여기에서 유형 A는 하나의 민족이 중심이 되어, 국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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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를 건설하는 경우를 뜻한다. 반드시 한 민족이 주도하 지 않더라도, 국가가 건설되면서 민족들은 국민국가적인 통합을 이루게 된다. 유형 B는 국민국가적 인구성을 이루 고는 있지만 그 영역 내 소수민족의 영역이 상대적인 자율 을 가질 정도로 규모가 큰 경우다. 이 경우 대개 국민국가 적 통합은 민족자치를 통하여 보완된다. 유형 C는 남북으 로 분단된 우리나라와 같은 분단국가를 말한다. 하나의 민족이 여러 사정으로 여러 국가로 분리되는 것이다. 한 반도는 분단이 된 상태로 하나의 민족을 기반으로 하는 두 개의 국가가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남북한의 사 람들을 하나의 민족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 민족끼 리’라는 강력한 구호로 남북한이 하나 되는 것을 상상하게 된다. 남과 북의 많은 사람들은 남과 북의 경계인으로서 환상을 가지고 살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유형 D는 대표적인 국가가 중국이다. 중국은 서로 충돌되는 논리를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하는 대표적인 나라로, 국민국가 내에 민족의 경계를 설정하는 방식을 통하여 소수민족을 국가의 관할 아래 둔다. 그리고 중국은 중국 내 모든 민족 들이 중국의 깃발 아래 단결해야 한다는 논리를 주장하게 된다. 하지만 국가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중화민족’ (中華民族)이라는 가공의 민족을 만들게 된다. 실제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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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량지차오(梁啓超)는 한족 중심의 민족주의를 소민족 주의로, 소수민족을 포함한 중국 전체 민족의 민족주의를 대민족주의로 규정하고 대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하여 하 나의 대국가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1922∼ 1923년 ‘중화민족의 연구’라는 강의에서 중화민족은 “다 수의 종족을 포함하는 개념”이라고 정의하고, 중화민족론 을 주창하였다(유용태, 2005). 위의 네 가지 유형을 보면, 경계선이 분명하지 않은 곳 에서 경계선을 넘으려는 강한 상상력은 어디에서나 작동 되었고, 그 강한 상상력은 환상을 동반해 왔다. 라캉이 논 의한 상상계에서 시작하는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고뇌는 상징계에서 실재계로 이동하거나 상징계와 실재계에서 동시에 발생하는 경계의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고 있는 것 이다. 때문에 우리는 모두 사회·정치적으로 경계인이며, 정체성의 경계 안에 있을 때는 반복의 강박에 사로잡혀 있 지만, 그 경계를 넘어서면 유토피아의 환상에 사로잡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주체로서 성립하기 위해서는 대타자(the big other) 앞에서 그 환상을 극복하고 넘어서 야 한다. 하지만 주체로서 홀로 서는 용기 대신에 집단에 귀속하거나 반복 충동에 굴복하는 경우도 있다. 반면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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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urdieu)가 1960년대와 1970년대를 통해 진행해 온 문 화연구의 결정판으로 잘 알려진 󰡔구별 짓기󰡕에 따르면, 인간이 양육과 교육으로 얻은 ‘취향’을 서로 이해한다는 것은 문화적 실천을 이해한다는 뜻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즉, 예술 작품의 경우 그것을 해독하고 이해하지 못하면, 누군가에게는 무의미한 물체의 하나일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그 물체(작품)의 속성을 감지할 수 있고 그 개념을 소유할 수 있는 사람만이 작품으로서 대상을 즐길 수 있는 데, 여기에서 인간의 불평등도 발생한다. 예컨대 개인의 취향이 구분되고, 분류되면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의식과 욕구도 차이가 나게 되며, 이러한 차이는 문화·학력·사 회관계 자본과 권력 그리고 관습적 행동의 영향을 받으며 심화된다. 남들로부터 자신을 구별하고 차별화하는 것이 계급 분화와 계급 구조를 유지하려는 기본 원리가 되기 때 문이다(부르디외, 2006).

문화 경계 넘기 오늘날 지구는 다양한 경계들이 중첩되고 변형되면서 세 계화와 지역화를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 즉 이런 현상을 의미하는 지구 지역 시대에서는 특정 지역, 특정 국가가 자문화의 고유성을 간직한다는 것이 쉽지 않게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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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정보·상품 등의 자유로운 경계 이동으로 인해 문 화가 자연스럽게 경계를 넘나들면서 잡종화·혼종화하거 나 새로운 것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지리적 경계와 문 화적 경계가 더 이상 일치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근대 사회 이후 급속한 지구화(globalization)로 인해, 중심(global)은 강화되었지만, 지역(local)은 주변화되거 나 무력화되는 경우도 생겨났다. 시장경제를 예를 들면, 인간의 자유로운 이동은 인간의 삶에 풍부한 경험을 주었 지만, 국가와 지역 간 경제적 불평등을 악화시켜 인간의 삶이 더욱 피폐해지기도 했다. 이러한 지구화의 두 얼굴 은 동전의 양면처럼 대치되지만 공존하고 있다. 예컨대 지역은 중심에 흡수되지 않기 위해 국가와 민족을 강조하 기도 하고, 문화와 종교적 정체성을 배제와 통합의 기제로 적극 활용하며, 지역공동체의 해체에 대응하기 시작한 것 이다. 즉, 오늘날 사회 곳곳에 존재하고 발현하는 다양한 경계들이 다시 중첩되고 변형되는 것을 ‘글로컬리티 (glocality)’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글로컬리 티에서 경계와 경계인이 늘면서 전례 없는 긴장과 불안이 생겨나 우리 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기도 한다. 결국 지구 지역 시대 각종 탈경계의 문화 현상은 각 문 화와 문화, 인간과 인간 사이에 소통을 더욱 절실히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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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하게 된다. 때문에 우리는 기존의 인위적이면서도 자 연스럽게 발생한 문화 경계들에서 나타나는 현상과 문제 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다양한 이론과 경험으로 이를 해석하며 관찰하려는 시도를 함으로써, 다양한 경계 에서 소외되는 존재들과 그들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데 중요한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는 디 지털 기술의 발전과 함께 매체가 점점 다양해지고, 매체 간 융합이 빠르게 확산되는 오늘날 문화 환경에서, 매체와 경계 짓기 그리고 경계 넘기가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가 를 탐구하는 것에 목적과 의의를 두어야 한다.

참고문헌 권희영 외(2012). 󰡔정체성의 경계를 넘어서󰡕. 경인문화사 김 석(2010). 󰡔프로이드와 라캉 무의식에로의 초대󰡕. 김영사 삐에르 부르디외 지음. 최종철 옮김(2006). 󰡔구별짓기: 문화와 취향의 사회학󰡕. 上. 새물결. 이화인문과학원(2009). 󰡔인터-미디어와 탈경계 문화󰡕.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이화인문과학원(2009). 󰡔지구지역 시대의 문화 경계󰡕.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Raymon Willioams(1983). Keywords: A Vocabulary of Culture

and Society. HarperCollins Publisher Lt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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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문화 경계에 대한 이론적 탐구

학문으로서 문화연구는 1950년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에서 리처드 호가트, E. P. 톰슨, 레이먼드 윌리엄스를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전 세계로 문화연구가 확산되면서, 많은 학자들이 다양한 언어와 문화권을 배경으로 문화연구의 정의와 정체성을 연구했다. 그리고 우리는 문화연구를 비판적 문화 담론으로 부르며, 하나의 운동으로 또는 네트워크로 발전시키고 있다.


문화와 문화연구 학문으로서 문화연구는 1950년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 국에서 리처드 호가트(Richard Hoggart), E. P. 톰슨(E. P. Thompson), 레이먼드 윌리엄스(Raymond Williams)를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전 세계로 문화연구(cultural studies)가 확산되면서 많은 학자들이 다양한 언어와 문화 권을 배경으로 문화연구의 정의와 정체성을 연구했다. 그 리고 우리는 문화연구를 비판적 문화 담론(contemporary critical discourse)으로 부르며, 하나의 운동으로 또는 네 트워크로 발전시키고 있다. 문화연구는 인종·성·계급· 정체성 같은 역사 속의 이슈들을 비판적 관점에서 논의하 기 위해 마르크스주의, 구조주의, 후기구조주의, 정신분석 학, 민속지학 등 지적인 자원과 문화 비평, 사회학, 역사학, 미디어 연구 등으로부터 연구 방법과 이론, 사상을 다양하 게 응용해 보거나 재해석하고 있다(정재철, 2013). 때문에 시대와 국가·사회에 따라 문화를 바라보고 이 해하는 학자들의 연구는 학문적으로 공통점을 가지고 있 는 듯하면서도, 현실과 경험에 따라 그것을 이해하고 해석 하는 방식에서 차이를 보이는 경우도 많다. “미국 문화연구의 문제(The problem of American cultural Studies)”를 연구한 앨런 오코너(Alan O’Conn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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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는 문화연구가 대중문화(popular culture)에 지속적 인 관심을 갖고, 커뮤니케이션 연구는 정치적·경제적·문 화적 맥락에서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 후 비판적 입장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로렌스 그 로스버그(Lawrence Grossberg)는 문화연구는 이념적 투 쟁의 현장이며, 합병과 저항이 일어나는 지역이며, 헤게모 니가 획득되거나 상실되는 현장 중 하나라고 지적한다. 예 컨대 문화연구는 문화 자체가 권력을 둘러싼 생산과 투쟁 의 지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권력은 반드시 지배의 형태로 나타난다는 인식을 뛰어 넘어, 문화 구성원 들 사이에서도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그로스버그, 1995). 결국 문화가 권력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불평등이 필 연적으로 발생되며, 사회는 갈등과 논쟁을 통해 투쟁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문화의 장을 통해 다시 사회관계를 생산하고 재생산하면서 문화가 갖는 맥락적 의미와 실천 방안을 찾게 된다.

문화와 갈등의 이데올로기: 문화제국주의 대중문화를 학문으로 개념을 정의하며 연구한 많은 이론 가들의 업적은 우리가 현대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데 아주 중요한 토대를 마련해 주고 있다. 특히 문화적 현상의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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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을 찾기 위한 학문적 탐구 과정은 이미 철학, 사회학, 정 치학, 인류학, 여성학, 윤리학, 언론학 등 다양한 학문 분 야에서 유용하게 활용하고 응용되고 있다. 하지만 문화는 문화제국주의, 문화상대주의, 자문화중심주의라는 이데 올로기에 갇혀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 사회 갈등을 피할 수 없게 만들었고 이는 현재도 진행형이다. 문화제국주의(Cultural Imperialism) 이론은 문화 확산 (Culture Diffusion) 이론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된다. 1950년대와 1960년대 미국은 서구의 문화와 가치 체계가 제3세계의 발전과 근대화를 이루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고 판단했고, 서구 국가들이 여기에 동참해 제3세계의 근 대화와 발전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3세계 국가 들은 서구 중심의 발전 전략이 자국의 근대화와 탈식민지 를 위해 중요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러한 문화 확산 이 론은 전통과 근대라는 이분법과 백인 중심의 인종주의에 근거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고, 특히 자본주의사회 발전 과 함께 발전한 종속 이론(dependency theory)은 서구 선 진국 같은 자본주의의 중심부가 제3세계 같은 자본주의 주변부를 경제적으로 지배하게 되는 것을 비판하고 있다. 즉, 종속 이론은 남미 국가와 제3세계에 남겨진 것은 ‘저발 전의 발전’밖에 없다고 믿으며, 중남미 일대 국가들의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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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에 대한 비판과 성찰에서 출발하고 있다(임동욱, 2009, 154∼155쪽). 한편 문화제국주의는 ‘획일화 명제’와 ‘지배적 헤게모니’ 개념 때문에 학자들로부터 1980년대 초부터 비판을 받게 되었다. 다시 말해 세계는 중심과 주변, 지배와 피지배라 는 이분법적 개념으로 나눌 수 없으며 문화와 커뮤니케이 션 영역에서도 일방적 종속적 흐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고 주장한 것이다. 사실 ‘중심·주변’ 모델은 미국 중심의 지배적 문화가 주변 국가의 문화를 침해하고 문화적 다양 성과 문화적 동질성을 해친다는 문화제국주의의 핵심 명 제이기 때문에, 문화제국주의는 많은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문화제국주의는 미디어의 강효 과 이론(제3자 효과), 피하주사이론(hyperdemic needle theory), 탄환 이론(bullet theory) 등에 의해 수용자를 수 동적이고 피동적인 존재로 보고 있는데 이는 국제 문화 교 류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제3세계의 수용자들이 능동적이 고 적극적인 수용을 하고 있다는 주장과 대치된다. 1990년대와 2000년대 들어서면서도 미국에 의한 세계 적 문화 지배가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한 문화제국주의 비 판은 비록 그 용어를 직접 사용하지 않았지만, 지속적으로 연구됐다. 예를 들면 허버트 실러(Herbert Shiller), 에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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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 허만(Edward S. Herman)과 로버트 맥체스니(Robert W. McChesney)는 미디어와 문화의 지배, 즉 미디어제국 주의(media imperialism)는 신자유주의 확장에 따라 초국 적 글로벌 미디어 기업의 사적, 세계 지배를 주목했고, 그 레이엄 머독(Graham Murdock)은 세계화에 따른 자본주 의의 팽창과 세계화 시장에서 초국적 기업들의 역할을 연 구했다. 즉, 초국적 글로벌 미디어 기업들은 세계화를 위 한 ‘현지화 전략’을 구사하며, 여전히 세계적인 지배력을 행사하면서 과거 제국주의의 ‘정복자’ 같은 모습으로 초국 적 미디어 기업을 키워 가고 있다는 것이다(임동욱, 2009, 160∼162쪽). 20세기 문화제국주의 변동에 대해 연구한 김승수 (2008)에 따르면, 지배 국가가 예속 국가에 대한 지배력을 확립하고, 이를 영구화하기 위해 문화제국주의(케이시, 2008)가 자국의 문화를 강요하며, 지배적 문화의 우월성 을 반영하고 재생산하는 기독교, 영어, 소비문화 같은 문 화적 가치, 이념, 습관의 확산은 구(old)문화제국주의의 개념이라 정의하고 있다. 신(new)문화제국주의는 문화적 지배와 불평등에도 주목하지만 글로벌 미디어 산업자본 의 경제적 동기 즉 초과 이윤 획득이나 광고주를 위한 마 케팅 기능에 주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김승수, 2008,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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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 세계화(지구화)와 신자유주의에 따라 문화제국주의 는 이론적, 구조적으로 변화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밖에 존 톰린슨(John Tomlinson)은 문화와 세계화 는 상호작용하는 측면이 있어 문화적 경험의 교섭이 정치, 환경, 경제 등의 영역에 개입하기 위한 전략에 이용되기 때문에 문화에서 세계화가 문제될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 한계를 주장한다. 그리고 다양한 문화적 상호 침투와 문 화 변용이 정체성의 다양한 양태들을 낳을 것이라고 전망 하고 있다(이유선, 2001, 143∼144쪽).

문화상대주의와 자문화중심주의 집단의 문화 형성과 생성 배경을 상대적으로 바라보는 문 화상대주의(Cultural Relativism) 이론은 1930년대 미국의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Ruth Fulton Benedict)와 멜빌 장 허스코비츠(Melville Jean Herskovits), 그리고 프랑스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évi-Strauss)에 의해 정의되었다. 인종에 우열이 없듯이 문화 간에는 우 열이 없기 때문에, 여러 국가의 문화와 다양성을 그 문화 가 처한 다양한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맥락에서 이해 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는 세계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종종 민족주의에 사로잡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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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편견과 불평등을 야기하는 특정 국가의 사회문제 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이데올로기로 논의되기도 한다. 반면 자문화중심주의(ethnocentrism)는 자문화의 가치 와 전통, 관습, 습관의 기준에서 다른 문화를 바라보고 평 가한다. 때문에 자문화를 우월하게 생각하고 타문화를 무 시, 차별하거나 편견과 오해를 갖기 때문에 민족적, 국가 적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또는 자신의 문화만을 중시 하다 보니 자국 문화에 고립되어 국제적으로 소외를 당하 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며, 모든 것 은 중국을 중심으로 퍼져 나간다는 ‘중화사상(中華思想)’ 이 대표적인 예다. 한국도 19세기 흥선대원군 시절 서구 문화를 배척한 적이 있었는데, 일부에선 21세기 세계화 시대에는 문화의 지역성을 지키기 위해 자문화중심주의 가 다시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다문화주의 1960년대 이후 서구에서 등장한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 는 다양하고 많은 나라의 생활양식과 가치들이 반영된 이 념이며, 국가 내부의 다양성을 관리하는 국가 차원의 규칙 과 정치적 개입 양식이다. 이는 한 사회 내 다양한 인종이 나 민족 집단들의 문화를 단일한 문화로 동화시키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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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공존하게 하는 이념 체계와 그 것을 실천하고자 하는 정부 정책과 프로그램을 뜻한다(윤 인진, 2008, 73쪽). 철학자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는 다문화주의를 문화적 다수 집단이 소수집단을 동등한 가 치를 가진 집단으로 인정하는 ‘인정의 정치(the politics of recognition)’라고 정의했는데, 이때 인정의 정치는 단지 소수집단이나 다른 집단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도에 서 자유롭게 사는 것을 인정하는 수준에 그치는 것이 아니 라 다수 집단이 소수집단의 문화가 존속하도록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2000년 들어서 한국 사회에는 외국인 이주 노동자(외국인 근로자), 결혼 이민 자, 다문화 가족 자녀, 재외 동포, 북한 이주민 등이 증가 하면서 인종적, 문화적 다양성이 증가하고 다문화주의 또 는 다문화 사회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윤인진(2008, 99∼ 100쪽)은 한국적 다문화주의가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한국적 맥락을 고려해 때로는 국가와 사회가 주도하거나 협력하는 정책 즉 ‘인정의 정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반면 󰡔문화 혼종성󰡕의 저자 피터 버크(Peter Burke)는 다문화주의가 실재하는 개별적인 문화와 집단이 하나의 퍼즐판 안에서 하나의 그림을 완성해 가는 조화의 개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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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문화 혼종성(cultural hybridity)은 실재하는 문화와 집단이 한쪽으로 흡수, 통합, 모방, 적응하면서 계속해서 진행되는 보편적 문화의 개념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즉, 여러 민족이 한 국가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는 다문화주 의는 혈통, 인종뿐만 아니라 정치 이데올로기와 종교가 다 른 개인들이 함께 사는 그 자체를 의미한다.

상호문화주의 상호문화주의(interculturalism)는 문화와 문화 교류 양상 을 연구하는 여러 학문적 분석 틀 중 하나로, 수용자를 중 심에 놓고 문화 현상을 분석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즉 문화 교류의 전개 과정에 주안점을 두기보다 문화 교류를 촉발할 가장 큰 동인이 수용자와 사회문화적 상황이라는 전제에서 논의를 시작한다. 상호문화주의에 입각한 활발 한 문화 교류는 20세기 이후 세계화 현상에 영향을 받기도 했다(장원재, 2003, 273쪽). 김혜숙(2007)은 다문화주의 가 내포하고 있는 상대주의는 상호 소통과 상호적인 자기 변화의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과정 안에서 해소될 수 있다 고 주장하는데, 이는 열린 주체와 열린 유대에 기초할 때 다문화주의는 편협한 집단주의와 폐쇄적 국지주의에 빠 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상호문화주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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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변화의 가능성을 받아들이고, 그를 통해 자신의 문화를 재규정하면서 타인을 변화시키는 태도, 즉 열린 주체와 열 린 유대에 기초하여 삶을 구성하는 태도라는 것이다(김혜 숙, 2007, 217쪽).

참고문헌 김승수(2008). 문화제국주의 변동에 대한 고찰. ≪한국방송학보≫, 22권 3호, 51∼85. 김혜숙(2007). 여성주의 관점에서 본 다문화주의: 열린 주체 형성의 문제. ≪철학연구≫. 이유선(2001). 자문화 중심주의와 문화적 정체성. ≪사회와 철학≫, 4. 139∼168. 윤인진(2008). 한국적 다문화주의의 전개와 특성: 국가와 시민사회의 관계를 중심으로. ≪한국사회학≫, 72∼103. 임동욱(2009). 문화제국주의의 비판적 고찰: 단선적 문호제국주의에서 역동적 국제적 문화 유동으로. ≪한국언론정보학보≫, 45, 151∼186. 정재철(2013). 󰡔문화연구자󰡕. 커뮤니케이션북스 장원재(2003). 󰡔상호문화주의와 한국적 특수성󰡕. 한국문학이론과 비평. 피터 버크 지음, 강상우 옮김(2012). 󰡔문화 혼종성󰡕. 이음. Ferguson, M.(1993). The mythology about globalization.

European Journal of Communication, 7(1), 69∼93. Murdock G.(2004). Past the Posts Rethinking Change, Retrieving, Retrieving Critique, European Journal of Communication. Tomlison J.(1991). Cultural Imperialism: A Critical Introduction.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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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문화 다양성과 문화 갈등

인간이 나와 타자를 구별하려는 본능은 언어, 의상, 전통 같은 인간의 생활양식이라고 할 수 있는 문화에 차이를 만들었다. 따라서 인간의 생활양식과 사회적 주장, 가치 체계, 행위규범, 사회적 관계, 특정 언어 내부의 언어 형태나 위상어, 인식 과정, 예술적 표현,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의 개념, 학습과 표현의 형태, 의사소통 양식, 심지어 사고 체계까지도 이제는 단일한 방식으로 환원하거나 고정된 관념으로 바라볼 수 없게 되었다.


문화 다양성 인간이 나와 타자를 구별하려는 본능은 언어, 의상, 전통 같은 인간의 생활양식이라고 할 수 있는 문화에 차이를 만 들었다. 즉 인간의 생활양식과 사회적 주장, 가치 체계, 행 위규범, 사회적 관계(세대 간, 남녀 간 등등), 특정 언어 내 부의 언어 형태나 위상어, 인식 과정, 예술적 표현, 공적 공 간과 사적 공간의 개념(특히 도시 계획과 주거 환경과 관련 해), 학습과 표현의 형태, 의사소통 양식, 심지어 사고체계 까지도 이제는 단일한 방식으로 환원하거나 고정된 관념 으로 바라볼 수 없게 되었다. 지역사회의 정치 무대에 토착 민과 빈곤 취약 계층, 그리고 민족·사회적 소속·연령· 성을 이유로 배제된 사람들이 등장하면서 여러 사회에서 새로운 형태의 다양성도 자연스럽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 다. 결국 기존 정치 질서와 문화 전통은 재해석되기 시작했 고, 문화 다양성(Cultural Diversity)은 세계 대부분의 나라 에서 중요한 정치, 사회, 문화 의제로 떠올랐다. 1975년 설립된 국제연합 교육과학문화기구인 유네스 코(UNESCO)도 이러한 문화 다양성으로 인해 직면한 긴 급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대처해야 하는가 하는 고민을 해 왔다. 즉, 유네스코는 자유와 인권 그리고 법과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교육, 과학, 문화 분야의 국제 교류를 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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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이로써 세계 평화와 안전을 지속적으로 유지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빈곤을 근절하고 지 속 가능한 개발과 교육을 통한 상호 대화를 마련하고, 과 학·문화·커뮤니케이션과 정보 흐름 및 정보 격차를 해 소하기 위한 사업을 하고 있다. 유네스코가 발간하는 세계 보고서의 서문에 보면, 문화 의 이질적 특성 그 자체가 실제로 시행된 혹은 시행되고 있는 정책과 어떤 차이가 나는가를 찾는 것이 유네스코가 해야 하는 주요 업무 중 하나라고 강조하고 있다. 문화가 갖는 축소된 현상을 벗어나 문화의 정의를 최대한 넓혀 문 화 다양성을 갖도록 하는 실천 방안을 계속해서 제시하겠 다는 것이다. 보통 문화 다양성을 정의하다 보면 ‘문화’, ‘문명’, ‘국민’ 이란 용어를 사용하게 되는데 이는 학문적, 정치적 맥락에 따라 서로 다른 함의를 갖는다(Descola, 2005). ‘문화’는 상호 관계 속에서 스스로 규정하는 경향이 있는 실체를 언 급하지만, ‘문명’이란 용어는 자체의 가치나 세계관을 보 편적인 것으로 단언하고 그런 견해를 공유하지 않는, 혹은 아직 공유하지 않은 이들에게 팽창주의적 태도로 대하는 문화를 의미하게 된다. 그래서 문명은 유네스코가 이해하 는 ‘문명의 충돌’을 예언하는 이데올로기적 의미와는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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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멀다. 문명은 ‘여전히 진행 중인 것’이다. 따라서 문명 이란 세계 여러 문화들을 진행 중인 전 세계적 프로젝트에 평등하게 담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전에는 문화를 본질적으로 고정된 실체로 보고 문화의 내용은 교육이나 다양한 종류의 입문 관습의 여러 통로를 거쳐 ‘전달’되는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문화는 사회가 고유의 경로를 따라 발전하 는 하나의 과정으로 더 많이 이해하고 있다. 인류학자 마 누엘라 카르네이루 다 쿠냐(Manuela Carneiro da Cunha, 2009)는 “한 사회에서 진정 독특한 것은 주민의 가치나 신 념, 정서, 습관, 언어, 지식, 생활양식 등이 아니라 이 모든 특성이 변화하는 방식이다”라고 말하며, 문화 다양성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유네스코도 그동안 위기에 처한 문화 유 적과 문화적 관습, 문화적 표현의 보존과 보호에 관심을 기울였지만, 최근 개인과 집단 차원의 다양성을 좀 더 효 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여러 지원 방안을 시도하 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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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다양성의 갈등 문화 다양성은 단순한 존재의 의미를 넘어 인류의 창의성 의 표현이자 노력의 결실이며 집단적 경험의 총체로서 미 적, 도덕적, 도구적 가치를 지고 있다. 그런데 문화가 다르 다거나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절대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관 점에서 바라보게 되면 문화 간 혹은 문화권 안에서도 갈등 이 발생하게 된다. 세계화가 가속화하고 있는 현대사회는 새로운 통신 및 운송 기술의 발달로 속도와 시공간이 압축 되고 있으며 점점 복잡한 사회적 상호작용, 개인과 집단의 정체성 혼란 등 다양한 현상이 포착되고 있다. 그렇다면 현대사회가 직면한 문화 다양성에 관한 갈등은 무엇이 있 을까. 첫째, 문화적 지역과 지리적 위치 사이의 연관성이 약 화하면서 문화적 경험과 사회적인 규범이 양립, 순응, 갈 등을 겪게 된다. 예를 들어 해외 이민과 국제 관광이 꾸준 히 증가하면서 이입 국가와 이주민들이 전통적 가치 체계 와 문화적 기준, 사회적 규범과 이민국의 다른 관습들을 양립시키는 어려움을 겪게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주민 들은 완전한 동화나 무조건적 거부라는 극단적 방법을 피 하는 대신, 가족 간 연고나 미디어를 통해 모국 문화와 연 결을 끊지 않으면서, 새로운 문화적 환경에 부분적으로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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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을 한다. 물론 이주민의 적응은 이입 국가의 관용과 암 묵적 협상으로 친교가 뿌리를 내릴 수도 있지만, 외국인 또는 이민족을 혐오하고 배척하며 증오하는 외국인 혐오 증인 제노포비아(xenophobia)로 발전하기도 한다. 둘째, 정보 통신 기술이 촉진한 비물질화 또는 탈영토 화 과정으로 문화적, 지리적, 심리적 거리의 현실감이 줄 어들고 있다. 이는 세계화가 가져온 가장 큰 효과로, 먼 곳 의 사건과 영향, 경험을 시청각 미디어를 통해 바로 개인 의 공간에서 경험할 수 있게 되면서 기존의 문화적, 지리 적 거리가 사라지거나 좁혀지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Tomlinson, 2007). 특히 디지털 문화는 청년들의 문화적, 국민적, 종교적 정체성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면서, 세계 시민주의, 코스모폴리터니즘(cosmopolitanism) 같은 인 류 전체를 하나의 평등한 시민으로 보는 의식과 태도가 세 계의 거대 도시에서는 이미 빠르게 확산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개인의 정체성 상실이나 주변화 같은 갈등 을 낳기도 하며, 일부에서는 물리적 충돌이나 분쟁, 내전 으로 심화되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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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UNESCO(2010). 유네스코 세계보고: 문화다양성과 문화간 대화. Manuela Carneiro da Cunha(2009). “Culture” and Culture:

Traditional Knowledge and Intellectual Rights. Prickly Paradigm Press. John Tomlinson(2007). The Culture of Speed: The Coming of Immediacy. Theory, Culture &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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