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제작 기획서 쓰는 법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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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케이션이해총서

영화 제작 기획서 쓰는 법 유세문

대한민국,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2014


영화 제작 기획서의 커뮤니케이션 특성

영화 기획과 영화 제작 기획서 영화라는 매체가 관객을 대상으로 한 커뮤니케이션 과정 에 놓여 있듯이, 영화 제작 기획서의 가장 중요한 목적도 커뮤니케이션이다. 일반적으로 볼 때 영화 제작 기획서는 영화 제작을 권하기 위해 제작자나 투자자 등에게 보여줄 목적으로 작성된 것이니 만큼, 기획서를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 사이에 효과적인 소통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야말 로 쓰레기에 불과하다. 실제로 영화 제작사 등에 가 보면 기획자나 프로듀서가 두고 간 기획서가 책상에 가득 쌓여 있다. 대부분 읽혀지 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들로, 그 위로 쌓여 가는 먼지를 보 면 기획서를 쓰는 사람으로서 남의 일같이 느껴지지가 않 는다. 아마 내가 쓴 기획서도 어느 회사의 책상 위에서 쓸 쓸히 먼지를 맞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서다. 아무리 잘 만든 기획서라도 결국 읽히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인가. 그래서 글머리에서부터 이렇게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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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13년도 봄 학기에 청운대학교 영화학과에서 강의했던 ‘영화 기획’ 수업의 강의록을 정리한 것이다. 수 업에서 학생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며 강의와 질문, 그리 고 답변을 통해 강의록은 더 풍성해졌다. 따라서 이 책 또 한 커뮤니케이션의 산물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이 책을 통해 커뮤니케이션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한 도구로 영 화 제작 기획서를 쓰려는 사람들과 또 다시 커뮤니케이션 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소통을 고려한다면 먼저 이 책을 지금과 같은 형 태로 엮게 된 과정과 이유부터 밝히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영화 기획이라고 하면 선명하게 경계가 지어진 직업 영 역 또는 업무 영역이 존재할 것이라고 많이들 생각하는데, 사실 영화 기획은 그 주체가 불분명하고, 일의 경계도 명 확하지 않다. 예를 들면, 영화 산업이 고도화하여 영화 제 작에 참여하는 역할명이 세분될 대로 세분된 미국도 엔딩 크레디트를 보면 영화 기획자, 즉 Film Planner란 역할명 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기획을 한 사람은 대부분 제작에 참여하게 되기 때문에 제작 책임자, ‘Executive Producer’로 표기되거나, 스토리 정도를 기획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크레디트는 ‘Story by-’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엔딩 크레디트에는 분명히 ‘기획’이란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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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명이 존재하고 있다. 그렇다면 영화 기획의 주체가 분 명하게 존재한다고 상정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그래서 생기는 오해가 바로 영화 기획이라는 고유하고 독립된 어 떤 업무가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답은 ‘그렇 지 않다’이다. 역할명은 영화 제작이 완료된 이후에 적절 하게 배분하는 것일 뿐이다. 처음에 영화 기획 수업을 맡고, 교재로 쓸 만한 책을 찾 기 위해 아무리 검색해 보아도 ‘영화 기획’이라는 제목을 가진 책을 찾기가 어려웠다. 당시에는 참으로 이상한 일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기 있는 분야라면 단 하나의 분 야에 대해서도 수십, 수백 종의 책이 나오는 대한민국의 문화적 분위기에서 독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많이 찾을만 한 ‘영화 기획’이라는 이름의 최신 책 한 권을 찾기가 힘들 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참여 했던 기획의 경험들을 돌이켜보면서 점차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영화 기획의 주체는 다양한 사람들이 될 수 있다. 제작 자가 기획을 할 수도 있고, 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가 기 획을 할 수도 있다. 기획 담당자나 프로듀서가 기획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 산업에서 ‘전문 기획자’라는 직책 이 독립된 직업으로 존재하기는 힘들다. 영화 기획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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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영화 제작에 참여하게 되면 제작자나 프로듀서가 된 다. 감독이 자신의 창작물에 기획료를 받고 영화의 연출 을 맡지 않는다면 감독은 그 영화에서만큼은 감독이 아닌 기획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연출을 맡는다면 그는 감 독인가 기획자인가? 이렇게 주체가 불분명한 만큼 기획이 라는 업무 영역의 경계도 희미한 것이다. 처음에는 강의록을 정리하여 ‘영화 기획’이라는 제목으 로 책을 내려고 했던 것을 ‘영화 제작 기획서 쓰는 법’이라 는 조금 더 프레임을 좁힌 형태의 책으로 바꾼 이유가 바 로 그것이다. 영화 기획이라는 영역에서 겨냥하는 목표가 다른 영역에 비해 구체적이지 않고, 실제로 생각보다 다양 한 직책의 사람들이 기획에 참여하기 때문에 자칫 영화 기 획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내 영화 기획이라는 고유하고 독 립된 업무 영역이 있다는 오해를 일으키는 데에 가담하게 될 것을 우려했다. 적어도 영화 제작 기획서를 쓰는 주체는 명확하다. 컴 퓨터 앞에 앉아 기획서 작성을 위해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사람이 주체다. 이러한 물리적 주체에 대한 이견은 있을 수 없다. 감독이 그 영화를 기획했건, 제작자가 기획을 했 건, 프로듀서가 기획을 했건 간에 기획서의 주체는 누가 뭐래도 기획서를 쓰는 사람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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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영화 제작 기획서는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쓰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 영화 제작 시스템의 특성상 기획서가 영 화 제작 여부를 결정하는 데 크게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 특히 대기업이 소유하고 있는 투자·배급사들은 자체로 영화 제작 당위성을 검증할 수 있는 체계가 확고하게 갖추 어져 있어 제작 기획서의 기능은 더욱 축소되며, 주로 시 나리오가 검증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러나 그러 한 회사들의 투자 심의에까지 하나의 아이템이 도달하기 위해서는 참으로 많은 과정을 겪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누군가 좋은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 그것을 영화로 만들 려고 한다면, 그 영화를 제작해 줄 제작사부터 찾아야 한 다. 이미 준비되어 있는 자본이 있어, 시나리오 작가를 고 용한 후 자신의 아이디어를 시나리오로 발전시키고 그것 을 가지고 제작사를 찾아갈 것이 아니라면, 시나리오 대신 이라도 아이디어를 체계화해 보여 줄 수 있는 최소한의 무 언가가 필요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영화 제작 기획서다.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영화 제작 기획서가 결정적인 역 할을 하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단계를 거칠 때마다 담당 자와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도구 다. 커뮤니케이션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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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 형식에 대한 약속이 필요하고, 커뮤니케이션 당사자 들이 그 약속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전제가 된 다. 따라서 영화 제작 기획서가 커뮤니케이션의 한 도구 라는 전제에서 당사자들 사이에 이해 가능한 최소한의 형 식을 따라야만 한다. 그러한 형식에 가이드를 제공하기 위해 이 책을 구성했 고, 이후로 소개할 10개의 아이템도 그런 목적에 따라 선 택했다. 아이템에 대한 지식의 근거로는 기존에 나와 있 는 관련 서적이나 논문들을 참고하기보다는 영화 제작 현 장에서 얻어진 경험에 더 비중을 두려고 노력했다. 영화 제작 기획서 작성과 관련하여 기존에 나와 있는 책이 전무 할 뿐만 아니라 영화 제작 트렌드는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 문에 제대로 된 가이드 역할을 하려고 한다면 지금 이 순 간 기획서를 쓰려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이들의 입장에 서 생각하고 그에 맞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해서다. 나의 경험이 부족한 부분은 제작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제작자, 프로듀서, 감독 등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따라서 이 책은 작성 지침서가 아니다. 지침서라고 한 다면 일종의 규범이 되어 버릴 수 있다. 반드시 따라야 하 는 형식이 존재하며, 그것에 대해 체계화한 규칙들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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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것이 지침서다. 그러나 영화 제작 기획서의 특성상 일련의 형식에 대한 관습은 존재할지 모르나 규범은 존재 하지 않는다. 이 책은 지침서라기보다는 본인만의 노하우 를 찾도록 도와주는 ‘가이드’라고 하는 것이 더 올바른 표 현이 될 것 같다. 그런 이유로, 이 책에서 영화 제작 기획서의 실제 예는 제시하지 않는다. 영화 기획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영화 제작 기획서 작성을 기말 과제로 내주며 참고용으로 기존 영화의 기획서들을 제공했는데 그 결과, 학생들의 기획서 가 참신함을 지니기보다는 기존 기획서들의 형식 안에 갇 혀 버리는 것을 경험하였다. 그러한 시행착오를 떠올리며 이 책에서는 직접적인 예를 제시하기보다는 자기만의 형 식을 머릿속에서 구상해 볼 수 있도록 가이드를 제공하는 데에 그쳤다.

영화 제작 기획서와 10개 아이템 첫째 아이템에서는 영화 제작 기획서라는 것이 무엇인지 에 대한 논의를 펼쳐 나간다. 영화 제작 기획서를 정의하려 고 노력한 시도가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작 자와 프로듀서 등 실제로 기획서가 필요해 작성하는 직업 군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것을 기반으로 최대한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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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의 트렌드에 부합하는 개념을 구성하려고 노력하였다. 기획서가 무엇인가 하는 것은 결국 존재론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것을 창조하는 작성자가 반드시 한 번은 고민해 보아야 작성 중 회의에 빠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영화 제작 기획서를 쓰다 보면 과연 이 기획서가 영화 제작에 어떤 역할을 하게 될 것인가에 대해 회의적이 되곤 하는 경우가 많은 이유도, 기획서의 존재 의미를 바로 알지 못 했기 때문이다. 둘째 아이템에서는 누가 영화 제작 기획서를 쓰는가라 는 문제에 천착한다. 앞서 논의한 것처럼 영화를 기획하 는 주체는 그 경계가 매우 불분명할 수 있지만 기획서를 쓰는 주체는 명확하다. 따라서 기획서를 쓰는 주체들에 대한 지식을 올바르게 접하고 이해하는 것은 기획서를 작 성하기 위해 이 책을 읽는 이들이 영화 제작 과정에서 어 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특히 기획서를 도구로 한 커뮤니케이션의 중심에 서 있 는 제작자나 프로듀서의 시대에 따른 위상과 역할 변화를 추적해 봄으로써, 기획서의 용도와 그에 따른 형식마저도 시대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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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아이템에서는 기획서를 쓰기 위한 기본 역량을 점 검해 보는데, 이것은 기획서를 쓰려는 이들에게 부족한 부 분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좋은 기획서를 쓰 기 위해서 지향해야 하는 목표점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기획서를 쓰는 것이 니, 영화에 대한 관심은 기본 역량이 아닌 기획서를 쓰게 되는 동기의 근저를 이루는 것이다. 따라서 이곳에서 제 시하는 기본 역량들이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패배감을 안 기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제시된 역량들은 모두 영 화에 대한 관심이라는 것에서 비롯되고 있고, 따라서 그러 한 관심이 앞으로 자연스럽게 기획서의 작성자에게 안겨 줄 역량이기 때문이다. 넷째 아이템에서는 아이디어를 어떻게 구상하고, 그것 을 어떻게 아이템화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기획서를 쓰려는 사람이라면 누구 나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갖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의 본래 목적은 커뮤니케이션의 다양한 분야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기획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기획서를 직접 써 보려 는 독자 외에도 기획서 작성법을 이해함으로써 영화 산업 에 대한 전체 그림을 파악하려는 독자들을 위해 어떻게 하 나의 아이디어가 영화화가 되는가 그 과정을 보여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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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 다섯째 아이템부터는 본격적으로 기획서 작성에 관한 이슈를 다룬다. 이 아이템은 전체 개요 부분 작성에 관한 것이다. 대부분의 기획서는 두괄식 형식을 따르기 때문에 기획서의 모든 내용을 요약해 이 부분에서 다루게 된다. 기획서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표지에 대한 논의와 캐치프레이즈가 담기는 프롤로그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 지며, 기획서 전체의 내용을 어떤 항목에 따라 개요화하여 정리해 넣을 것인지에 대한 팁도 제공한다. 이 부분에서 독자는 기획서에 대한 전체 그림을 그리는 것이 중요한데, 다음과 같은 목차에 따른다면 조금 더 구조적으로 이해하 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이러한 목차는 절대적인 것이 아닌, 수많은 형식 중 하나에 불과하며 시대에 따라, 목적에 따라, 작성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여섯째 아이템은 기획의 요소 중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예술 영역에 대한 내용을 다룬다. 영화의 가장 중 요한 특성 한 가지만 말해 보라면, 그것은 영화가 스토리 텔링의 한 형식이라는 것이다. 다큐멘터리와 같은 논픽션 영화에도 분명히 스토리가 존재한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기획한다는 말을 스토리를 구상한다는 말과 같은 의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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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1> 영화 제작 기획서의 일반적인 목차 구분

목차 표지 프롤로그

전체 개요 부분 목차 개요 기획의도(하이 콘셉트) 예술 기획 부분

작품 소개(장르와 톤 앤 매너) 시놉시스 원작 소개(원작을 각색할 경우) 감독 소개

패키지 기획 부분 캐릭터별 배우 캐스팅 안 제작사 소개 기본 예산안 비즈니스 기획 부분

펀딩 및 배급 전략 제작 일정 및 마케팅 전략 OSMU 전략

콘텐츠 기획 부분 프랜차이즈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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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스토 리 개발이 영화 기획에서 가장 핵심으로 다루어야 할 영역 임에는 틀림없기 때문이다. 기획서의 이 부분에서는 스토리가 시놉시스 형태로 소 개가 되며, 그 스토리를 영화화했을 때 결과물에 대한 예 측을 제공하기 위해서 장르와 톤에 대한 정보가 더해진다. 장르는 그 스토리가 구성되는 관습을 바탕으로 결과물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영화에 대한 감을 잡는 데 도움이 되며, 톤은 영화가 전달하게 될 감성이나 느낌 을 무거움이나 가벼움, 어두움이나 밝음 등의 이항 대립적 개념을 통해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일곱째 아이템에서는 패키지 전략에 대한 논의가 이루 어지는데, 패키지라는 단어 때문에 이 아이템에서 다루는 내용이 막연하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영화 자체가 이미 다양한 요소들이 결합되어 있는 하나의 패키지라고 생각 해 본다면 단어에 대한 의미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이다. 패키지를 고려할 때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것 은 바로 어떻게 다양한 요소가 유기적으로 작동하여 시너 지를 발생시킬 것인가다. 이러한 시너지는 영화의 완성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 치게 된다. 제작비가 영화의 완성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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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소이기는 하지만, 아무리 제작비가 많아도 패키징을 잘 못하면 제작 참여 인력들 간에 시너지가 발생되는 것은 고 사하고 제작 단계마다 계속해서 잡음을 내 완성도 높은 작 품은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패키지를 하나의 아이템으 로 선정하여 다루게 된 것이다. 여덟째 아이템은 비즈니스에 대한 것이다. 영화는 다른 예술 형식에 비하여 그것을 구현하는 데에 자본이 많이 드 는 예술이다. 따라서 어떻게 제작비를 조달할 것인가 하 는 것은 탄생 단계에서부터 한 영화의 운명을 가르는 문제 가 아닐 수 없다.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투자자들 에게 그 영화로 어떻게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가 하는 비 전을 제시해야만 하고, 이것은 바로 비즈니스 영역이다. 실제로 제작 현장에서 보면, 유능한 영화 프로듀서는 영 화 전공자가 아닌, 비즈니스 전공자일 때가 많다. 그만큼 영화 산업이 발전하면서 예술 요소보다 비즈니스 요소에 더욱 비중이 실리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영화 제작 기획서를 쓸 때 비즈니스 영역에 대한 고민의 흔적을 포함 시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비즈니스 영역의 이슈를 독립 아이템으로 선정하여 다루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아홉째 아이템을 콘텐츠 기획 부분으로 선정한 이유는 대안적인 기획서를 작성해 볼 수 있는 재료를 제공하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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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다. 디지털 컨버전스 시대를 맞아 영화도 새로운 수 익 모델이 필요해졌고, 콘텐츠와 플랫폼의 개념은 그러한 요구에 답이 될 수 있다. 미디어의 내용이 형식에 종속되 던 기존과 달리 다양한 종류의 콘텐츠들을 하나의 플랫폼 에 탑재할 수 있다. 영화도 이런 변화에서 예외가 아니기 때문에, 대안적인 기획서를 써 보려고 한다면 반드시 이 아이템에서 논의되는 내용을 고려하여 기획서의 내용에 포함시키는 것이 좋다. 열째 아이템은 조금 더 능숙하게 기획서 작성을 할 수 있도록 다수의 기획서를 작성해 본 사람들의 노하우를 팁 으로 제공하기 위해 선정했다.

기획서 작성법에서 통찰 얻기 영화 제작 기획서의 내용과 형식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영화 산업의 발전에 따른 제작 양상의 변화다. 따 라서 그 시대에 맞는 영화 제작 기획서의 작성법을 이해하 는 것은 곧 영화 제작의 최신 경향을 이해한다는 것과 같 은 의미다. 이 책을 기획하며 그에 따라 선택한 10개 아이 템은 영화 제작 기획서를 쓰기 위해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기도 하지만 영화 산업의 변화를 통찰할 수 있는 10개의 키워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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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커뮤니케이션의 가장 중요한 형식 중 하나인 영 화와 그것을 생산하는 영화 산업에 대한 통찰은 결국 커뮤 니케이션이라는 더 큰 영역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 는지, 또는 앞으로 어떠한 변화가 일어날 것인지를 예측할 수 있는 통찰로 이어질 수 있다. 이 책에서 제공하는 영화 제작 기획서 작성법에 대한 논의들이 그러한 통찰로 이어 지는 윈도우 역할을 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참고문헌 김정현(2010). 󰡔설득 커뮤니케이션의 이해와 활용󰡕. 커뮤니케이션북스. 박대희 · 어지현 · 유은정(2013). 󰡔영화 프로듀서 매뉴얼󰡕. 영화진흥위원회. 후지무라 마사히로 저(2009), 하우석 역. 󰡔100억짜리 기획서󰡕. 새로운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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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영화 제작 기획서란 무엇인가

영화 제작은 매우 복잡한 과정으로 기획, 투자, 캐스팅, 프리 프로덕션, 촬영, 후반작업, 배급, 상영 등 여러 단계를 거친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요소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러나 이 모든 요소들의 시작에 기획서가 있다. 영화 제작 기획서는 무엇이며, 일반 기획서와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그러한 기획서가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지 이 장에서 알아본다.


영화 제작 기획서가 주는 ‘첫인상’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 산업에서는 기획서가 영화의 제 작 여부를 결정하는 요소는 아니다. 일반적으로 다른 산업에서 기획서는 새로운 사업에 대 한 기획자의 분석과 시각을 제공해, 어떤 사업에 투자할지 를 결정하는 주체들이 사업의 타당성을 평가하고 신규 사 업 진입 여부를 판단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영화 산업의 특성상 한 편의 영화에 투입되는 비용이 대부분 방대하고, 성공 또는 실패 요인에 대한 인 과관계가 약하다. 따라서 리스크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 는 영화 제작과 관련된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해야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기획서에 담기는 내용만으로는 영화 제 작 여부를 결정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산업에서 제작 기획서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영화 제작 기획서는 그 영화에 대한 ‘첫인상’이기 때문이다. 영화 기획자가 제작자를 만날 때에도, 제작자가 투자사 나 배급사에 의사 타진을 시작할 때에도, 프로듀서가 캐스 팅을 위해 배우의 소속사와 접촉할 때에도, 각종 제작 지 원을 위해 지자체에 협조를 요청할 때에도, 그 밖의 영화 에 대한 첫 소개를 필요로 하는 모든 과정과 관계에서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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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처음으로 내밀게 되는 것이 바로 이 기획서다. 기획서를 통해 “그래, 이 영화를 만듭시다”, “이 영화 출 연을 결정하겠습니다”, “이 영화에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 하겠습니다”와 같은 확답을 바로 들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러한 확답으로 가는 과정에서 가장 첫 번째 단계가 되는 것이 기획서라는 것이다. 영화라는 매체가 관객과 맺는 관계도 커뮤니케이션이 라는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지지만 영화 제작의 과정 또한 끝없는 커뮤니케이션의 연속이다. 영화는 산업, 예술, 기 술 등 이질적인 분야가 모여 소통을 하고 협업하며 이루어 지는 결과물이기 때문에, 영화 제작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설득하기 위해 엄청난 에너지와 노력을 투자해야만 한다. 이러한 소통 과정에서 첫인상은 매우 중요하다. 여기에 서 인상이란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 우리의 마음속에 생긴 심상을 말하는 것인데, 한 번 인지된 정보를 바꾸려 고 하지 않는 마음의 경향인 ‘인지일관성’으로 인상은 쉽 게 바뀌지 않는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초두효과 (primacy effect)’라고 하는데, 초기의 정보가 전체를 평가 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으로, 첫인상에 대 한 중요성은 이곳에서도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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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영화 제작 기획서가 다른 산업의 기획서에 비해 의사 결정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는 못하지 만, 성공한 영화의 제작 과정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면 그 시작점에는 반드시 좋은 기획서가 있었다는 점을 간과해 서는 안 된다.

영화 제작 기획서 정의 영화 제작 기획서를 조금 더 기술적으로 다루어 보자. <인 형사>(2004),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2010), <더 웹 툰: 예고살인>(2013) 등의 영화를 제작한 (주)필마픽쳐스 의 한만택 대표는 영화 제작 기획서를 이렇게 정의한다.

“영화 제작 기획서란 어떤 영화의 장점을 빠른 시간 내에 직 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핵심 정보를 효율적으로 제공하 는 파일이나 문서다.”

물론 그의 정의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근 까지도 제작 현장에서 일했던 경험 많은 제작자로서, 영화 제작 기획서에 대한 그의 정의는 큰 의미가 있다. 영화 제 작 기획서의 쓰임새도 시대에 따라 변해 왔기 때문에 정의 도 사람마다, 또 그가 일했던 시대마다 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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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영화 산업이 CJ나 롯데와 같은 대기업을 중심 으로 재편되고 다양했던 자본의 흐름이 계열화하면서 투 자, 제작, 배급, 상영의 주요 단계마다 대기업의 개입 정도 가 영화의 운명을 판가름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투자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복잡한 의사 결정 시스템 을 만들어 놓은 대기업의 구조적 특성상, 영화 제작 기획 서의 역할은 의사 결정 과정에서 더욱더 일부분만을 차지 하게 되었다. 또한 대중문화의 트렌드는 디지털이라는 기술과 만나 면서 완전히 그 양상이 바뀌어, 수많은 종류의 콘텐츠들이 하나의 시간과 공간 속에 혼재하고 경쟁하며 빠르고 감각 적으로 소비되고 있기 때문에 콘텐츠를 선택하는 수용자 입장에서도 직관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영화 관 객의 최신 취향을 겨냥해야 하는 기획서 역시 달라져야 하 는 것이다. 영화 제작 기획서에 대한 한만택 대표의 정의는 이러한 시대상을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빠른 시간 내에 직 관적으로 파악’한다는 것은 소비할 영화를 고르는 관객들 의 최신 경향에서, ‘핵심 정보를 효율적으로 제공’한다는 부분은 복잡한 의사 결정 과정 때문에 업무 효율을 중요시 하는 투자사 또는 기업의 특성에 기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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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영화 제작 기획서의 요소가 있다. 바로 ‘영화의 장점’이라는 부분이다. 영화 제 작 기획서는 영화의 장점과 매력을 누구에겐가 부각하기 위한 도구다. 다시 말해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것이 전통적 개념의 투자자를 설득하는 도구였건, 현대 영화 산 업의 복잡한 의사 결정 시스템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몸부 림이었건, 영화의 단점을 보여 주기 위한 기획서는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점이다. 앞으로도 시대에 따라 사회, 문화, 경제가 변하면서 기 획서의 내용과 형태도 변해 갈 것이다. 최근에는 많은 사 람들이 인쇄한 기획서를 전달하기보다는 e-메일을 통해 파일을 보내거나, 태블릿 pc나 스마트폰과 같은 휴대용 기기에서도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변하지 않을 요소만을 남겨둔 영화 제작 기획서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영화 제작을 위해 그 영화의 장점을 부각시킬 수 있는 정보와 콘텐츠.’

영화 제작 기획서와 콘텍스트 영화 제작 기획서는 사회, 문화, 경제 등 시대 상황에 따라 서도 달라지지만 같은 기획서도 누구에게 보여 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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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따라 달라진다. 일단 기본 양식에 따라 기획서를 작성 하고 나면 그것을 바탕으로 기획서를 볼 사람에 맞추어 필 요 없는 정보는 빼고, 더 필요한 정보는 더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기획자가 제작자에게 보여 주는 기획서라면 영화의 줄거리, 즉 시놉시스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 시 대를 막론하고 제작자들이 영화를 고르는 가장 중요한 판 단 기준은 ‘어떤 이야기인가’이기 때문이다. 제작자가 투자자들에게 보여 주는 기획서에서는 시장 분석과 마케팅 전략 부분을 조금 더 강화해야 한다. 대부분 의 투자자들에게 투자의 유일한 이유는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시장과 트렌 드에 맞지 않아 돈을 벌 수 없다면 투자하지 않을 것이다. 배급사에 보여 줄 기획서라면 캐스팅 부분을 강조한다. 캐스팅은 극장 흥행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투자사가 배급사를 겸하는 경우가 많고, 캐스팅이 마케팅 전략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기획서 작성 때 다양 한 요소들을 고려해야 하나, 시대가 달라지면 언제든지 이 러한 요소들도 달라질 수 있다. 결론적으로, 지금까지 이 장에서 이야기한 것들을 종합 해 본다면 영화 제작 기획서를 통해 상대방에게 좋은 ‘첫 인상’을 주고, 앞으로 있을 영화 제작 진행 과정에서 원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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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기를 원한다면 영화 제작 기 획서를 작성할 때 반드시 그 기획서의 콘텍스트(context) 를 고려해야 한다. 콘텍스트란 문장에서는 앞뒤의 관계를 의미하지만 여기에서는 그 기획서가 놓이게 될 시간과 공 간을 의미한다. 어떤 시대에 누구의 탁자 위에 놓이게 될 기획서인가.

참고문헌 나은영(2013). 󰡔행복 소통의 심리󰡕. 커뮤니케이션북스. Jowett, G. & Linton, J.(1989). Movie as Mass Communication. 김훈순 역(1994). 󰡔영화 커뮤니케이션󰡕. 나남. Sturken, M. & Cartwright, L.(2001). Practices of Looking: An

Introduction to Visual Culture. 윤태진 외 역(2006). 󰡔영상문화의 이해󰡕. 커뮤니케이션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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