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가 명령한다 레프 마노비치 지음 이재현 옮김
대한민국,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2014
서론
미디어의 이해 필자는 컴퓨터화에 의해 가능해진 새로운 문화적 형식들을 설명하는 한 권의 책을 집필해 뉴미디어의 언어 The Language of New Media(1999년 탈고, 2001년 출간)로 이름 붙인 바 있다. 그 시점에 이르러 전문적인 미 디어 제작의 전 영역에서 소프트웨어 기반 도구들의 채택이 거의 완료 되었고, ‘뉴미디어 예술’은 용감무쌍하고 활기찬 모습으로, 그때까지 상 업적 소프트웨어나 소비자용 전자제품이 다루지 못하고 있었던 많은 가 능성을 보여 주었다. 10년 후 대부분의 미디어는 ‘뉴미디어’가 되었다. 1990년대 발전된 기술은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블로그를 작성하고 미디어 공유 사이트에 사진이나 비디오를 업로드하고 10년 전만하더라도 수만 달러가 들어갈 미디어 저작 및 편집 소프트웨어 도구를 활용할 정도로 확산되었다. 구글이 선도한 관습들 덕분에 이제 세계는 웹 응용 프로그램과 서 비스를 운용하는 데 익숙해졌지만, 이런 프로그램이나 서비스는 공식적 으로 개발이 완료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영원한 베타 단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웹 응용 프로그램과 서비스는 원격 서버에서 운용되기 때문 에 소비자가 특별히 어떤 일을 하지 않아도 언제든지 업데이트될 수 있으며, 실제로 구글은 하루에도 몇 차례 검색 알고리즘 코드를 업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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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페이스북도 매일 코드를 업데이트하고 있으며, 그래서 때로 서비스가 중단되기도 한다. (사무실에 붙어 있는 포스터에 표현된 페이스북의 구호는 “빠르게 움직여 세상을 깨뜨려라 Move Fast and Break Things”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 즉 간헐적으로만 변화하
는 중공업 기계와 달리 항상 유동적인 소프트웨어에 의해 규정되는 세 계에 들어온 것을 환영한다. 인문학자, 사회과학자, 미디어 학자, 그리고 문화 비평가는 왜 소프 트웨어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그 이유는 공예나 예술과 같은 특정한 문화 영역을 제외할 때 21세기 이전에는 문화적 인공물을 만들고 저장 하고 유통시키고 접근하기 위해 이용했던 물리적, 기계적, 전자적 테크 놀로지를 이제 소프트웨어가 대체했기 때문이다. 워드(또는 대안적인 오픈소스 프로그램)로 글자를 쓸 경우 소프트웨어를 이용한다. 블로거 나 워드프레스로 블로그 포스트를 작성할 때도 소프트웨어를 이용한다. 트윗을 보내거나 페이스북에서 메시지를 올리거나 유튜브에 올라와 있 는 수십억 편의 비디오를 검색하거나 스크라이브드에 있는 텍스트를 읽 을 때에도 소프트웨어(특히, 웹 서버에 위치하고 있어 웹 브라우저를 통해 접근하는 ‘웹 응용 프로그램’이나 ‘웹웨어’라 불리는 범주의 소프 트웨어)를 이용한다. 그리고 비디오 게임을 하거나 미술관에 있는 상호작용 설치작품을 둘러보거나 건축물을 설계하거나 극영화용 특수효과를 만들거나 웹사 이트를 설계하거나 휴대전화를 통해 영화평이나 실제 영화를 보는 등 수많은 문화적 활동을 수행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소프트웨어를 이용 한다. 이제 소프트웨어는 세계, 타자, 기억 그리고 상상력을 접하는 인 터페이스, 즉 세계가 말하는 공용 언어 그리고 세계를 달리게 하는 보편 적인 엔진이 되었다. 20세기 초에 전기와 엔진이 있었다면 21세기 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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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 한국 서울의 디지털 스튜디오. 이 작은 스튜디오에서 전 세계에 유포되는 모든 삼성 휴대전화 광고의 사진이 만들어진다. 스튜디오 직원이 포토샵으로 휴대전화 사진을 보정하고 있다. 제품의 세세한 부분까지도 뚜렷이 볼 수 있게 해 주는 보정된 고 해상도 이미지는 이후 삼성 TV 광고에 삽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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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소프트웨어가 있다. 이 책은 ‘미디어 소프트웨어’를 다룬다. 즉 워드, 파워포인트, 포토 샵, 일러스트레이터, 애프터 이펙츠, 파이널컷, 파이어폭스, 블로거, 워 드프레스, 구글 어스, 마야, 3D 맥스와 같은 프로그램이다. 이런 프로그 램들을 통해 정지 이미지, 동영상 시퀀스, 3D 설계물, 텍스트, 지도, 상 호작용 구현물은 물론이고 웹사이트, 상호작용 응용 프로그램, 모션 그 래픽, 가상 지구와 같은 위 요소들의 다양한 조합물을 제작하고 출시하 고 공유하고 리믹스할 수 있다. 그리고 미디어 소프트웨어에는 파이어 폭스나 크롬과 같은 웹 브라우저, 이메일 및 채트 프로그램, 뉴스 리더,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저작 및 편집 기능도 제공하지만) 미디어 콘텐 트 접근이 일차적 기능인 기타 유형의 소프트웨어 응용 프로그램 등이 포함된다. 미디어의 제작, 상호작용 및 공유를 가능케 해 주는 이런 소프트웨 어 도구들은 (웹 응용 프로그램과 더불어) 응용 소프트웨어의 특수한 하 위 범주다. 이런 점에서 이 모든 도구들은 현대적인 모든 소프트웨어들 이 공유하는 특정한 ‘속성들’ 또한 가지고 있다. 이는 공간을 설계하든 극영화용 특수효과를 만들든 웹사이트를 디자인하든 정보 그래픽을 만 들든 그것과 상관없이 설계 과정은 유사한 논리를 따른다는 것을 의미 하는가? 모션 그래픽, 그래픽 디자인, 웹사이트, 제품 디자인, 건축물, 비디오 게임 등이 모두 소프트웨어로 디자인된다는 점에서 이런 것들이 구조적 특성을 공유한다고 할 수 있는가? 보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각기 다른 미디어 형식들에서 볼 수 있는 현대적인 미학과 시각 언어를 인터 페이스와 미디어 저작 소프트웨어 도구는 어떻게 만들어 가고 있는가? 이 책에서 탐구할 이런 질문들의 이면에는 이론적인 또 다른 질문 이 있다. 이 질문은 책에서 논의를 이끌어 가는, 그리고 세부 토픽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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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하게 된 동인이기도 하다. 과거의 미디어-귀속적 media-specific 도구 들이 소프트웨어로 시뮬레이션되고 확장된 이후 ‘미디엄 medium’이라는 개념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가? 각기 다른 미디엄에 관해 이야기 하는 것이 아직도 의미가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이제 단일한 모노미디 엄 또는 (이 책의 주인공인 앨런 케이 Allan Kay의 용어로 표현하면) 메타 미디엄이라는 위대한 신세계에 와 있는 것인가? 요컨대, 소프트웨어 이후의 ‘미디어’‘media’ after software란 무엇인가?
‘미디어’가 아직도 존재하는가? 이 책은 미디어 소프트웨어와 그것이 실무에 미친 효과, 그리고 미디어 개념 자체에 관한 이론적 설명을 제공하고자 한다. 지난 20년 동안 소프 트웨어는 19세기와 20세기에 등장한 대부분의 다른 미디어 테크놀로지 들을 대체해 왔다. 오늘날 소프트웨어는 모든 곳에 침투해 있고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지만, 놀랍게도 그것의 역사, 그리고 그 발전의 기저 에 있는 이론적 아이디어에 관해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서구 미술에서 선형 원근법을 폭넓게 활용토록 기여한 르네상스 미술가들의 이름(브 루넬리스키 Brunelleschi, 알베르티 Alberti)이나 20세기 초 현대 영화 언 어를 만든 사람들의 이름(D. W. 그리피스 D. W. Griffith, 아이젠슈타인 Eisenstein 등)은 알 수도 있다.
그러나 매일 이용하는 포토샵, 워드 등 미
디어 도구의 기원이 어떠한지는 잘 모를 것이다. 더 중요한 점은 이런 도 구들이 처음에 왜 개발되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미디어 소프트웨어의 지성사란 무엇인가? 핵심 인물과 그들이 이 끈 연구집단의 기본적인 생각과 동기는 무엇이었는가? J. C. R. 리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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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더 J. C. R. Licklider, 이반 서덜랜드 Ivan Sutherland, 테드 넬슨 Ted Nelson, 더글러스 엥겔바트 Douglas Engelbart, 앨런 케이 Allan Kay, 니컬러스 네 그로폰테 Nicholas Negroponte 등은 1960년부터 1970년대 말 사이에 오 늘날 미디어 응용 프로그램의 기반이 되는 개념과 실제 기술 대부분을 만들어 냈다. 필자가 발견한 바로는 (그리고 독자들도 이런 인물들이 쓴 오리지널 텍스트에 대한 나의 분석을 읽으면 내가 처음 그랬던 것처럼 놀라겠지만), 이들은 컴퓨터 공학자 못지않게 미디어 이론가였다. 필자 는 이들의 미디어 이론을 논의하되, 그 이후에 이룩된 디지털 미디어의 발전을 보며 이들 이론을 평가할 것이다. 곧 알게 되겠지만, 이런 인물 들과 그 동료들의 이론적 사고는 현재에도 잘 들어맞아, 우리가 만들고 읽고 보고 리믹스하고 공유하는 오늘날의 소프트웨어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이제 우리 소프트웨어 문화의 ‘비밀스러운 역사’에 온 것을 환영 한다. 비밀이라고 한 것은 철저하게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 아니라 최근 까지 문화의 컴퓨터화가 야기한 급속한 모든 변화들에 놀라 그 기원을 검토할 생각조차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런 검토가 매우 가치 있는 일이라는 점을 확신시켜 줄 것이다. 책의 제목은 건축사가이자 비평가인 지그프리트 기디온 Sigfried Giedion 이 쓴, 20세기의 명저 기계화가 명령한다: 익명의 역사 Mechanization Takes Command: a Contribution to Anonymous History(1947)에
대한 존경의 표
현이다. 이 책에서 기디온은 산업 사회에서 일어난 기계화의 발전 과정 을 수많은 영역에 걸쳐 추적한 바 있는데, 그 영역에는 보건 및 쓰레기 관리 체계, 패션, 농업, 식품 등이 포함되며, 책의 별도 섹션을 빵, 고기, 냉장 등에 할애하기도 했다. 필자의 책은 범위를 좁혀 1960년과 2010년 사이에 일어난 문화의 ‘소프트웨어화 softwarization’(필자의 용어)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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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일부 에피소드를 뽑아 제시하되, 특히 미디어 소프트웨어에 주목 하여, 원초적인 아이디어에서 시작해 발전 과정을 거쳐 오늘날 보편화 에 이른 과정을 다루고자 한다. 필자의 탐색은 ‘소프트웨어 연구 Software Studies’라는 보다 넓은 지 적 패러다임 안에 위치한다. 이 관점에서 볼 때, 이 책은 미디어 소프트 웨어로까지 발전하게 된 원초적인 아이디어들, 그리고 이런 소프트웨어 유형의 채택이 오늘날 미디어 디자인과 시각 문화에 끼친 영향을 분석 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미디어 소프트웨어 media software라는 범주가 응용 소프트웨어 application software의 범주에 속한다는 것,
그리고 이 범주는 다시 소프트웨어의 범
주에 속한다는 것에 유의하라.1) 필자 생각에 소프트웨어에는 응용 소프 트웨어, 시스템 소프트웨어, 컴퓨터 프로그래밍 도구뿐만 아니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와 소셜 미디어 테크놀로지도 포함된다.2) 소프트웨어를 이렇게 넓은 의미로 이해할 경우, 우리는 다음과 같 은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소프트웨어 사회 software society’에 산다는 것 은 어떤 의미인가? 그리고 ‘소프트웨어 문화 software culture’의 한 부분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다음 절에서는 이런 질문들을 다룬다.
1) http://en.wikipedia.org/wiki/List_of_software_categories (July 7, 2011). 2) 안드레 카플란(Andreas Kaplan)과 마이클 핸린(Michael Haenlein)은 소셜 미디어를 “이용자 생산 콘텐트의 제작과 교환을 가능케 해 주는 웹2.0이라는 이념적, 기술적 토대
위에 구축되어 있는 인터넷 기반의 응용 프로그램 군”으로 정의한다. Andreas Kaplan and Michael Haenlein, “Users of the world, unite! The challenges and opportunities of Social Media,” Business Horizons 53, no. 1 (January–February 2010), pp. 59∼68, http://dx.doi. org/10.1016/j.bushor.2009.09.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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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 현대 사회의 엔진 1990년대 초 가장 유명한 글로벌 브랜드는 재화를 생산하거나 물질을 처리하는 일을 하는 기업이었다. 그렇지만 오늘날 가장 유명한 글로벌 브랜드의 목록에는 구글,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이름이 상 위에 위치한다(실제로 2007년 구글은 브랜드 인지도에서 세계 1위에 올 랐다). 그리고 미국만을 보면, ≪뉴욕타임스≫, ≪USA 투데이≫, ≪비즈 니스 위크≫ 등 가장 많이 보는 신문이나 잡지에는 매일 페이스북, 트위 터, 애플, 구글 등 IT 기업에 관한 뉴스와 기사가 실린다. 다른 미디어는 어떠한가? 필자가 2008년 이 책의 초고 작업을 할 때, CNN 웹사이트의 비즈니스 섹션을 본 적이 있다. 첫 페이지는 단지 10대 기업의 시장 자료와 지수를 보여 주고 있다.3) 이 목록은 매일 바뀌 지만, IT 브랜드의 일부는 항상 포함된다. 2008년 1월 21일을 예로 보자. 그날 CNN 목록에는 다음의 기업과 지수가 포함된다. 즉 구글, 애플, S&P 500 지수, 나스닥 지수, 다우존스 산업 평균 지수, 시스코 시스템즈, 제너럴 일렉트릭, 제너럴 모터스, 포드, 인텔 등이다.4) 이런 목록은 많은 것을 말해 준다. 제너럴 일렉트릭, 제너럴 모터스, 포드 등 물질적 재화나 에너지를 다루는 기업은 목록의 두 번째 부분에 등장한다. 이 세 기업 바로 앞과 뒤에 하드웨어를 공급하는 2개의 IT 기 업이 있다. 인텔은 컴퓨터 칩을, 시스코는 네트워크 장비를 만든다. 맨 위에 있는 2개 기업, 즉 구글과 애플은 어떠한가? 구글은 정보를 다루는 반면(“구글의 미션은 세계의 정보를 조직해 보편적으로 접근하고 이용
3) http://money.cnn.com (January 21, 2008). 4) Ib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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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5)), 애플은 소비자용 전자제품인 전화, 태블 릿, 랩탑, 모니터, 음악 플레이어 등을 만든다. 그러나 실제로 두 기업 모 두 다른 그 무엇을 만든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다른 그 무엇이 미국 경 제의 움직임, 따라서 세계 경제의 움직임에 매우 중요하기에 이 기업들 이 매일 비즈니스 뉴스에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아마존, 이베이, 야후 등 뉴스에 매일 등장하는 메이저 인터넷 기업들은 모두 같은 일을 하고 있다. ‘다른 그 무엇’은 바로 소프트웨어다. 검색 엔진, 추천 시스템, 지도 응용 프로그램, 블로그 도구, 경매 도구, 인스턴트 메시지 클라이언트, 그리고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작성하게 해 주는 iOS, 안드로이드, 페이스 북, 윈도즈, 리눅스와 같은 플랫폼 등은 글로벌 경제, 문화, 사회적 삶, 그 리고 정치의 중앙에 있다. 그리고 이런 ‘문화 소프트웨어 cultural software’ 는 더 큰 소프트웨어 세계의 가시적인 한 부분일 뿐이다. 여기서 문화적 이라 함은 문화 소프트웨어를 수억 명의 사람들이 이용할 뿐만 아니라 이것이 문화의 ‘원자’를 운반한다는 의미다. 필자와 벤저민 브래튼 Benjamin Bratton이 함께 쓴, 아직 출간되지 않 은 단행본 원고인 소프트웨어 사회 Software Society(2003)에서 우리는 소프트웨어의 중요성, 그리고 그것이 인문학 및 사회과학 연구에서 갖 는 상대적 비가시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소프트웨어는 전시에 목표물을 향해 날아가는 스마트 미사일의 비행을 조종하여 비행 과정 내내 그 경로를 수정해 준다. 소프트웨어는 아마존, 갭, 델 등 수많은 기업의 창고와 생산 라인을 운용하여 전 세계에 걸쳐
5) http://www.google.com/about/company/ (September 23,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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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노타임으로 제품을 조립하고 배급할 수 있게 해 준다. 소프트웨어 는 상점과 슈퍼마켓이 자동으로 선반의 재고를 관리하게 해 줄 뿐만 아 니라 상점에서 제품을 얼마나 그리고 언제, 어느 곳에서 팔 것인지를 자 동으로 정해 준다. 주지하다시피, 소프트웨어는 인터넷을 조직화해 주 는바, 이메일 메시지를 라우팅하고 IP 주소를 할당하고 브라우저에 웹 페이지를 구현해 준다. 학교와 병원, 군부대와 과학 실험실, 공항과 도시, 현대 사회의 이 모든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체계가 소프트웨어의 기 반 위에서 움직인다. 소프트웨어는 이 모든 것을 묶어 주는 보이지 않 는 접착제다. 현대 사회의 많은 체계가 각기 다른 언어를 말하고 각기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모두 소프트웨어라는 신택스를 공유한다. 즉 통제 명령어 ‘if then’과 ‘while do’, (문자나 부동소수점수와 같은) 연 산자 및 데이터 유형, 리스트와 같은 데이터 구조, 그리고 메뉴나 대화 상자와 같은 인터페이스 관습들이 그것이다. 전기와 엔진이 산업 사회를 가능케 해 주었다면, 소프트웨어는 글로벌 정보 사회를 가능케 해 주고 있다. ‘지식 노동자’, ‘상징 분석가’, ‘창의 산 업’, 그리고 ‘서비스 산업’ 등 정보 사회의 이런 핵심 경제 주체 중 어느 것도 소프트웨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과학자가 이용하는 데이터 시각화 소프트웨어, 재무 분석가가 이용하 는 스프레드시트 소프트웨어, 초국가 광고대행사의 의뢰를 받은 디자 이너가 이용하는 웹 디자인 소프트웨어, 항공사가 이용하는 예약 소프 트웨어 등이 이런 예에 해당한다. 또한 소프트웨어는 지구화 과정을 촉 진하는바, 기업들은 이를 활용해 관리 노드, 생산 시설, 저장 및 소비 결 과물을 전 세계에 걸쳐 분배할 수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사회 이론이 현대적인 존재 양식 중 어떤 차원에 새롭게 주목해 왔든 상관없이 정보 사회, 지식 사회, 네트워크 사회 등 새로운 모든 차원들은 소프트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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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만들어 낸 것이다. 역설적으로 사회과학자, 철학자, 문화 비평가, 미디어 및 뉴미디어 이 론가가 지금까지 IT 혁명의 제 측면들을 다루면서 사이버문화 연구, 인 터넷 연구, 게임 연구, 뉴미디어 이론, 디지털 문화, 디지털 인문학 등 수많은 새로운 연구 영역을 창출해 오기는 했지만, 이런 주제 영역의 대 부분을 추동하는 기저의 엔진, 즉 소프트웨어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심지어 10년이 지난 오늘날 사람들이 끊임없이 휴대전화나 다른 컴 퓨터 기기에서 수십 종의 앱과 상호작용하고 업데이트하는 상황에서도, IT와 그것의 사회문화적 효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학자, 예 술가, 문화 전문가에게서 이론적 범주로서의 소프트웨어는 여전히 찾아 볼 수 없다. 그러나 몇 가지 중요한 예외가 있다. 하나는 오픈소스 운동, 그리고 저작권 및 IP를 둘러싼 관련 이슈들로, 많은 학문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논의되어 왔다. 또한 우리는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이베이, 오라클 등 웹 거인들에 관해 쓰여진 수많은 상업 서적들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음 을 목도하고 있다. 이런 책들 중 일부는 이런 기업들이 개발한 소프트 웨어와 그것의 사회적, 정치적, 인지적, 인식론적 효과에 관해 통찰력 있는 논의를 제공하고 있다. (하나의 좋은 사례는 존 바텔 John Battelle의 검색: 구글과 그 경쟁자들은 어떻게 비즈니스의 규칙을 다시 쓰고 우리 문화를 바꾸어 놓았는가다.6))
6) John Battelle, The Search: How Google and Its Rivals Rewrote the Rules of Business and
Transformed Our Culture (Portfolio Trade,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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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2003년 소프트웨어 사회를 같이 준비할 때보다 지금 더 나은 상황에 있지만, 필자는 다음의 인용문이 여전히 유의미하다고 생 각한다(단지 추가한 것은 ‘소셜 미디어’와 ‘크라우드소싱’에 대한 언급 정도다).
우리가 디지털 문화에 대한 논의를 ‘오픈 액서스’, ‘동료협업 생산’, ‘사 이버’, ‘디지털’, ‘인터넷’, ‘네트워크’, ‘뉴미디어’, ‘소셜 미디어’ 등의 개념 으로 한정한다면, 새로운 표상 및 커뮤니케이션 미디어의 기저에 무엇 이 있는지 알 수도 없고, 그것이 실제로 무엇이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도 없을 것이다. 소프트웨어 자체를 다루지 않는다면, 항상 원인보다는 효과만을 다루는 위험에 빠지게 된다. 이것은 이런 결과물 을 만들어 내는 프로그램과 사회문화보다는 컴퓨터 스크린에 보이는 결 과물만을 보는 셈이다. ‘정보 사회’, ‘지식 사회’, ‘네트워크 사회’, ‘소셜 미디어’, ‘온라인 협업’, ‘크라우드소싱’ 등 특정한 분석이 현대적인 존재 양식 중 어떤 새로운 특질에 주목해 왔든 상관없이 이 모든 새로운 특질 은 소프트웨어가 만들어 낸 것이다. 소프트웨어 자체에 주목할 때다.
이런 생각은 노아 워드립-프륀 Noah Wardrip-Fruin의 표현적 처리 과정(2009)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그는 디지털 문학에 관한 책들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이런 책 거의 대부분이 디지털 미디어라는 기계가 겉으로 어떻게 보이는가, 즉 그것의 결과물에 초점 을 맞추고 있다. … 관점과 상관없이, 디지털 미디어에 관해 쓰여진 거 의 모든 문헌이 핵심적인 그 무엇, 즉 디지털 미디어를 작동시키는 실제 과정, 디지털 미디어를 가능케 해 준 연산 기계를 간과하고 있다.”7) 필 자의 책은 오늘날 이런 ‘기계들’의 핵심이라고 생각되는 것, 즉 응용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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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트웨어를 논의하고자 한다(왜냐하면 이것이 대부분의 이용자가 직접 보고 이용하는 유일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연구란 무엇인가? 이 책은 ‘소프트웨어 연구’라는 새로운 지적 패러다임에 기여하고자 한다. 소프트웨어 연구란 무엇인가? 이에 대한 몇 가지 정의가 있다. 첫째는 필자의 책 뉴미디어의 언어의 것인데, 필자가 아는 한, ‘소프트웨어 연 구’와 ‘소프트웨어 이론’이라는 용어는 이 책에 처음 등장했다. 필자는 다 음과 같이 기술했다. “뉴미디어는 미디어 이론이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것을 요구한다. 미디어 이론의 기원은 1950년대의 해럴드 이니스 Harold Innis와 마셜 매클루언 Marshall McLuhan의 혁명적인 저작으로 거슬러 올
라간다. 뉴미디어의 논리를 이해하려면, 컴퓨터 과학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그곳에서 미디어를 프로그래밍 가능한 것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새로운 용어, 범주, 조작 방식을 발견할 수 있다. 미디어 연구로부터 우 리는 이른바 소프트웨어 연구로 나아간다. 즉, 미디어 이론으로부터 소 프트웨어 이론으로.” 지금 위 글을 읽으며 필자는 몇 가지 수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컴퓨터 과학을 일종의 절대 진리로, 즉 소프트웨어 사회에서 문 화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설명해 주기 위해 주어진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컴퓨터 과학은 그 자체가 문화의 한 부분이다. 이런 점에서 필자
7) Noah Wardrip-Fruin, Expressive Processing (Cambridge, MA: The MIT Press,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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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소프트웨어 연구가 현대 문화에서 소프트웨어가 수행하는 역할, 그 리고 소프트웨어의 발전 양상을 틀지어주는 문화적, 사회적 힘을 탐구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접근의 필요성을 처음 포괄적으로 제기한 책은 노아 워드 립-프륀과 닉 몬포트 Nick Montfort가 편집한 뉴미디어 강독 New Media Reader(The
MIT Press, 2003)이다. 이 기념비적인 선집이 출간되면
서 소프트웨어 역사 연구를 문화사와 관련지을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 었다. 뉴미디어 강독은 ‘소프트웨어 연구’라는 용어를 명시적으로 쓰 지 않았지만, 소프트웨어를 생각하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뉴미디 어 강독은 동일한 시기에 활동한 문화적 컴퓨팅의 선구자와 예술가 및 작가의 주요 문헌들을 체계적으로 병치시킴으로써, 양 진영이 더 큰 맥락 에서 같은 인식체계에 속해 있었다는 점을 보여 주었다. 즉, 동일한 아이 디어가 문화적 컴퓨팅을 발명한 과학자와 예술가에 의해 독립적으로 동 시에 발현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이 선집은 호르헤 보르헤스 Jorge Borges의 글(1941)과
버니바 부시 Vannevar Bush의 논문(1945)으로
시작하는데, 둘 다 데이터를 조직화하고 인간 경험을 포착하는 보다 나 은 방안으로 대규모 분기 구조라는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있다. 소프트웨어를 문화로 보는 선구적인 저서(블립의 이면: 소프트웨 어의 문화 Behind the Blip: Essays on the culture of software, 2003)를 출간한 바 있는 매튜 풀러 Matthew Fuller는 2006년 2월 최초로 로테르담의 피에 트츠바트연구소에서 ‘소프트웨어 연구 워크숍’을 조직하였다. 풀러는 워크숍을 소개하며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소프트웨어는 컴퓨터연산 및 네트워크 디지털 미디어에 대한 이론화와 연구에서 사각지대에 있는 경 우가 많다. 소프트웨어는 미디어 디자인의 토대이자 ‘재료’다. 어떤 의 미에서 이제 모든 지적 작업은 ‘소프트웨어 연구’라 할 수 있는데, 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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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가 연구의 미디어와 맥락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프트웨어의 속성인 물질성에 대해서는, 공학의 문제로 다루어지는 것 을 제외할 때, 연구하는 곳이 거의 없다.”8) 필자는 “이제 모든 지적 작업이 ‘소프트웨어 연구’”라는 풀러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지식인들이 이 점을 인식하기까지는 시간 이 걸릴 것이다. 이런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 2008년 매튜 풀러, 노아 워드립-푸륀, 그리고 필자는 MIT 출판사에서 소프트웨어 연구 시리즈 를 기획하였다. 시리즈 중에 이미 출간된 책은 풀러가 편집한 소프트 웨어 연구: 용어사전 Software Studies: A Lexicon(2008), 워드립-푸륀의 표 현적 처리과정: 디지털 소설, 컴퓨터 게임, 그리고 소프트웨어 Expressive Processing: Digital Fictions, Computer Games, and Software Studies(2009),
웬디
전 Wendy Hui Kyong Chun의 프로그래밍된 시각: 소프트웨어와 메모리 Programmed Visions: Software and Memory(2011),
롭 키친 Rob Kitchin과 마
틴 닷지 Martin Dodge의 코드/공간: 소프트웨어와 일상생활 Code/Space: Software and Everyday Life(2011),
그리고 제프 콕스 Geoff Cox와 알렉스
맥린 Alex Mclean의 코드 말하기: 미학적, 정치적 표현으로서의 코딩 Speaking Code: Coding as Aesthetic and Political Expression(2012)이다.
2011년
풀러는 영국의 여러 연구자들과 함께 ≪컴퓨터연산 문화 Computational Culture≫라는 학술지를 만들었는데,
이것은 보다 많은 논문 발표와 논
의의 토대가 될 개방형 동료 심사 체제의 학술지다. 이 시리즈와는 별도로 플랫폼 연구, 디지털 인문학, 사이버문화, 인 터넷 연구, 게임 연구 등의 관점에서 쓰여진 책이 계속 출간되고 있어 기 쁘기 그지없다. 이런 책 대부분이 소프트웨어의 역할을 보다 잘 이해할
8) http://pzwart.wdka.hro.nl/mdr/Seminars2/softstudworkshop (January 21,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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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있게 해 주는 주요한 통찰과 논의를 담고 있다. 모든 목록을 제시하기 보다는 위 관점들 중 첫 두 관점에서 쓰여진 대표적인 작업을 소개하고자 한다(이 책을 읽을 때쯤이면 더 많은 책이 출간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플랫폼 연구: 닉 몬포트 Nick Montfort와 이언 보고스트 Ian Bogost의 광선 을 쏘다: 아타리 비디오 컴퓨터 시스템(2009), 지미 메이허 Jimmy Maher 의 미래가 여기 있었다: 코모도 아미가(2012). 디지털 인문학: 메커 니즘: 뉴미디어와 포렌직 상상력(매튜 G. 커쉔봄 Matthew G. Kirschenbaum, 2008), 소프트웨어 철학: 디지털 시대의 코드와 매개(데이비드 베리 David Berry,
2011), 기계 읽기: 알고리즘 비판을 향하여(스티븐 램시
Stephen Ramsay,
2011), 어떻게 생각하는가: 디지털 미디어와 현대 기술
발생론(캐서린 헤일즈 Katherine Hayles, 2012).9) 그리고 “포맷 연구”라는 새로운 영역의 첫 번째 책도 관련성이 많다. MP3: 포맷의 의미(조너 선 스턴 Jonathan Sterne, 2012).10) 소프트웨어 시스템의 역할과 기능을 이해하는데 관련이 많은 또 다 른 일련의 작업이, 컴퓨터 과학 분야에서 훈련을 받았지만 문화 이론, 철 학, 디지털 예술 등 인문학 분야에도 익숙한 연구자들에 의해 이루어 지고 있다. 푀브 센저스 Foebe Sengers, 워렌 색 Warren Sack, 폭스 해럴 Fox Harrell,
마이클 매티스 Michael Mateas, 폴 도리시 Paul Dourish, 그리고
9) Nick Montfort and Ian Bogost, Racing the Beam: The Atari Video Computer System (The MIT Press, 2009); Jimmy Maher, The Future Was Here: The Commodore Amiga (The MIT Press, 2012); David Berry, The Philosophy of Software: Code and Mediation in the Digital Age (Palgrave Macmillan, 2011); Stephen Ramsay, Reading Machines: Toward an Algorithmic
Criticism (University of Illinois Press, 2011), Katherine Hayles, How We Think: Digital Media and Contemporary Technogenesis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12). 10) Jonathan Sterne, MP3: The Meaning of a Format (Duke University Press,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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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 아그레 Phil Agre 등이다. 관련이 많은 또 다른 서적 범주는 현대적인 소프트웨어의 개발, 인 터넷과 같은 정보 테크놀로지의 다른 핵심 부문, 그리고 이용자 테스트 와 같은 소프트웨어 공학 전문가의 실무 등에서 핵심 역할을 한 주요 실 험실과 연구집단에 대한 역사적 접근이다. 이런 문헌의 주요 사례로는 연도순으로 캐티 해프너 Katie Hafner와 매튜 라이언 Matthew lyon의 마 법사가 늦게 나타나는 곳: 인터넷의 기원(1998), 마이클 힐칙 Michael Hiltzik의
번개의 딜러: 제록스 PARC와 컴퓨터 시대의 여명(2000),
마틴 캠벨-켈리 Martin Campbell-Kelly의 항공권 예매부터 고슴도치 소닉 까지: 소프트웨어 산업의 역사(2004), 그리고 나단 엔즈멘저 Nathan Ensmenger의 컴퓨터 소년의 시대:
컴퓨터, 프로그래머, 그리고 기술전
문성의 정치(2010) 등이다.11) 그렇지만 필자가 항상 아끼는 책은 하워드 라인골드 Howard Rheingold 가 1985년 출간한 사고의 도구 Tools for Thought인데, 당시는 현재 보 편화된 컴퓨터와 소프트웨어의 가내화가 시작된 시기다. 이 책은 컴퓨 터와 소프트웨어가 단순히 ‘테크놀로지’가 아니라 우리가 각기 다르게 사고하고 상상하게 하는 새로운 미디엄이라는 핵심적인 통찰을 중심으 로 쓰여 있다. 이런 생각은 이 책에 등장하는, 컴퓨터연산 ‘사고 도구’를 발명한 모든 영웅들과 그 동료들도 공유하는 것이었다. J. C. R. 리클라
11) Katie Hafner and Matthew Lyon, Where Wizards Stay Up Late: The Origins Of The
Internet (Simon & Schuster, 1998); Michael A. Hiltzik, Dealers of Lightning: Xerox PARC and the Dawn of the Computer Age (HarperBusiness, 2000); Martin Campbell-Kelly, From Airline Reservations to Sonic the Hedgehog: A History of the Software Industry (The MIT Press, 2004); Nathan L. Ensmenger, The Computer Boys Take Over: Computers, Programmers, and
the Politics of Technical Expertise (The MIT Press,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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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더, 테드 넬슨, 더글러스 엥겔바트, 밥 테일러, 앨런 케이, 니컬러스 네 그로폰테. (오늘날에도 여전히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많은 학자들이 간 단하지만 근본적인 이런 아이디어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들은 소프트웨어가 대학 전산소의 영역이라고, 즉 인간의 지적 창의성이 현 재 자리 잡고 있는 미디엄으로 보지 않고 단지 자신의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해 주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소프트웨어에 대한 문화적 접근을 개척한 예술가들의 역할을 언급 하지 않는다면, 소프트웨어 연구를 둘러싼 지적 지형에 관해 이같이 간 략히 스케치하는 것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2000년경부터 수많은 예 술가와 작가가 전시, 축제, 서적 출간, 관련 작품의 온라인 저장소 구축 등 소프트웨어 예술 실무를 발전시켜 왔다. 이런 발전을 주도한 핵심 인 물은 애미 알렉산더 Amy Alexander, 잉케 안스 Inke Arns, 애드리언 워드 Adrian Ward,
제프 콕스 Geoff Cox, 플로리안 크래머 Florian Cramer, 매튜
풀러 Matthew Fuller, 올가 고리우노바 Olga Goriunova, 알렉스 맥린 Alex McLean,
알렉산드로 루도비코 Alessandro Ludovico, 핏 슐츠 Pit Schultz, 알
렉세이 슐진 Alexei Shulgin 등이다. 2002년 크리스티안 폴 Christiane Paul은 예술적 코드의 전시인 CODeDOC를 휘트니미술관에서 조직했다.12) 2003년에는 디지털 예술의 대표적 축제인 아스 일렉트로니카가 ‘코드 Code’를 주제로 선정했다.
그리고 2001년 트랜스미디어 축제에는 ‘예술
적 소프트웨어’가 하나의 주요 영역으로 포함되어 축제 기간의 학술대 회에서 유의미한 공간이 할애되었다. 이런 소프트웨어 예술 프로젝트 중에는 코드를 새로운 문화적, 사회적 인공물로 탐색할 수 있는 출발이 된 것들도 있었다. 상업적 소프트웨어의 관습에 비판적인 비평을 제시
12) http://artport.whitney.org/commissions/coded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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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프로젝트들도 있었다. 예를 들어, 애드리언 워드는 아이러니한 오토일러스트레이터를 만들었는데, 이것은 “기존의 전문가용 그래픽 디자 인 도구들과는 구별되는 실험적이고 반자동적인 생성형 소프트웨어 예 술작품이었다.” 많은 서적과 예술 프로젝트 중에 소프트웨어 연구로 간주될 수 있 는 것들이 있음을 인식한 풀러는 MIT출판사의 소프트웨어 연구 시리즈 서문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소프트웨어는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창의적으로, 정치적으로 현대 의 삶과 깊이 연관되어 있는바, 이 둘의 관련성은 분명하지만 겉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소프트웨어가 어떻게 이용되는지, 그리고 그것이 지 원하고 만들어 가는 활동들에 관해서는 많은 문헌들이 있지만, 소프트 웨어 자체에 대한 사고는 여전히 그 역사에 비하면 대체로 기술중심적 이다. 그렇지만 예술가, 과학자, 공학자, 해커, 디자이너, 인문학 및 사 회과학 분야의 학자는 그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 그리고 그들이 구 축하고자 하는 것들과 관련하여 소프트웨어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필 요하다는 점을 점차 인식해 가고 있다. 그런 이해를 위해 그들은 컴퓨 팅과 뉴미디어의 역사에 등장하는 텍스트를 참고할 수 있고, 소프트웨 어가 가지고 있는 풍부한 문화에 참여할 수도 있으며, 새롭게 등장하는, 기본적으로 간학제적인 컴퓨터연산 리터러시를 계발할 수도 있다. 이 런 것들이 소프트웨어 연구의 토대가 된다.13)
13) Matthew Fuller, Software Studies series introduction, http://mitpress.mit.edu/catalog/ browse/browse.asp?btype=6&serid=179 (July 14,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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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미디어 이론가들, 즉 프리드리히 키틀러 Friedrich A. Kittler,
피터 위벨 Peter Weibel, 캐서린 헤일즈 Katherine Hayles,
로렌스 레식 Lawrence Lessig, 마누엘 카스텔 Manuel Castells, 알렉스 갤러 웨이 Alex Galloway 등의 여러 초기 저작들 또한 소급하면 소프트웨어 연 구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14) 이런 점에서 필자는 이 패러다임이 몇 년 전에서야 명시적으로 이름을 갖게 되었지만 이미 오랫동안 존재해 온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풀러는 2006년 로테르담 워크숍을 소개하며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 있다. “소프트웨어는 예술 및 디자인 이론과 인문학, 문화 연구와 과학 기술 연구, 그리고 컴퓨터 과학 영역에서 새롭게 부상하는 분야 등의 연 구 대상이자 실천 영역으로 간주될 수 있다.” 새로운 학문 분과가 독특 한 연구 대상, 새로운 연구 방법, 또는 이 둘의 결합에 의해 성립될 수 있 는 것이라면 우리는 소프트웨어 연구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풀러의 주장은 ‘소프트웨어’가 기존 학문 분과의 어젠다에 의거하면서도 기존 의 방법론, 예를 들어, 행위자-네트워크 이론 actor-network theory, 사회 기호학 social semiotics, 미디어 고고학 media archaeology 등을 활용할 수 있 는 새로운 연구 대상이라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런 시각을 뒷받침해 주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필자는 소프트웨 어가 현대 사회의 모든 영역에 침투해 있는 하나의 층위라고 생각한다. 이 런 점에서 통제, 커뮤니케이션, 표상, 시뮬레이션, 분석, 의사결정, 기억, 시각, 글쓰기, 상호작용 등의 현대 기술을 이해하려면, 우리의 분석은 이
런 소프트웨어 층위를 고려할 때까지 결코 완전하다고 할 수 없다. 이는
14) Michael Truscello, Review of “Behind the Blip: Essays on the Culture of Software,”
Cultural Critique 63, Spring 2006, pp. 182∼7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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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디자인, 예술 비평, 사회학, 정치학, 예술사, 미디어 연구, 과학기 술 연구 등 현대 사회를 다루는 모든 학문 분과는 어떤 주제를 탐구하든 소프트웨어의 역할과 그 효과를 설명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소프트웨어 연구 분야에서 이미 수행된 작업을 보면, 소프트웨어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자 할 경우에는 새로운 방법론이 필요 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이것은 자신이 서술하고자 하는 것을 실제 로 구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사회와 문화에서 소프트웨어가 수행 하는 역할에 관해 체계적으로 서술한 지식인들은 모두 프로그래밍을 해 본 경험이 있거나 글쓰기, 교육 소프트웨어 등 문화 프로젝트와 실무 과 정에 관여한 경험이 있다. 예를 들어 이언 보고스트 Ian Bogost, 제이 볼터 Jay Bolter,
플로리언 크래머 Florian Cramer, 웬디 전 Wendy Chun, 매튜 풀
러 Matthew Fuller, 알렉산더 갤러웨이 Alexander Galloway, 캐서린 헤일즈 Katherine Hayles, Lovink,
매튜 커쉔봄 Matthew Kirschenbaum, 기어트 로빙크 Geert
피터 루넨펠드 Peter Lunenfeld, 애드리언 매킨지 Adrian Mackenzie, 폴
밀러 Paul Miller, 윌리엄 J. 미첼 William J. Mitchell, 닉 몬포트 Nick Montfort, 재닛 머레이 Janet Murray, 캐티 샐린 Katie Salen, 브루스 스털링 Bruce Sterling, 노아 워드립-푸륀 Noah Wardrip-Fruin, 에릭 짐머맨 Eric Zimmerman 등이 있다. 이와 반대로, 마누엘 카스텔 Manuel Castells, 브루노 라투르 Bruno Latour,
폴 비릴리오 Paul Virilio, 지그프리트 질린스키 Siegfried Zielinski와
같이 이런 기술적 경험이나 실무 경력이 없는 학자들은 현대 미디어와 테 크놀로지에 관해 이론적으로 정밀하고 매우 유력한 설명을 제공하고 있기 는 하지만 소프트웨어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고 있다. 2000년대 미디어 예술, 디자인, 건축, 인문학 분야에서 자신의 작 업에 프로그래밍을 활용하는 학생의 수는, 최소한 필자가 뉴미디어의 언어에서 ‘소프트웨어 연구’라는 용어를 처음 언급했을 때와 비교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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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의미하게 증가해 왔다. 오늘날 문화계와 학계 이외에도 더 많은 사 람들이 소프트웨어를 작성하고 있다. 이것이 액션스크립트, PHP, 펄, 파이선, 프로세싱과 같은 새로운 프로그래밍 및 스크립팅 언어의 덕분 이라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또 다른 중요한 요인은 2000년대 중반 메 이저 웹2.0 기업들이 모두 API를 제공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응용 프 로그래밍 인터페이스 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 즉 API는 한 응용 프로그램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다른 컴퓨터 프로그램이 접근할 수 있게 해 주는 코드다. 예를 들어, 구글의 지도 API를 활용하면 자신의 웹사이 트에 구글의 지도 전부를 구현할 수 있다.) 이런 프로그래밍 및 스크립 팅 언어, 그리고 API를 활용한다고 항상 프로그래밍 자체가 쉬워지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효율성이 훨씬 더 높아진다. 예를 들어, 젊은 디 자이너가 자신의 작업을 할 때 아주 길게 써야 하는 자바 프로그램을 이 용하는 것과 비교해 단지 몇 줄의 코드면 되는 프로세싱을 이용할 경우 그는 프로그래밍을 훨씬 더 많이 하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자바스크 립트 몇 줄만으로 구글 지도가 제공하는 모든 기능을 자신의 웹사이트 에 구현할 수 있다면 자바스크립트를 활용하는 작업에 큰 동기가 부여 될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소프트웨어를 작성하게 된 또 다른 이 유는 몇몇 대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데스크탑 시장과는 다른, 모바일 앱 시장이 크게 성장했기 때문이다. 2012년 초의 비공식 자료들에 따르면, iOS 플랫폼(아이패드와 아이폰) 하나에서만 100만 명의 프로그래머가 앱을 만들었고, 안드로이드 플랫폼에서도 그 숫자는 마찬가지였다. 마틴 라모니카 Martin LaMonica는 2006년 글에서 프로그래밍 경험이 거의 전무한 사람이 (닝 Ning과 같은) 새로운 주문형 소프트웨어 cumstom software를 만들 수 있는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소개하며, 미래에 ‘앱의 롱
테일 long tale for apps’이 나타날 가능성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15) 몇 년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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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그대로 나타났다. 2012년 9월 70만 개의 앱이 애플 앱 스토어 Apple App Store에,16)
그리고 60만 개 이상의 안드로이드 앱이 구글 플레이
Google Play에 등장했다.17)
“인터넷 언어 학습 돌풍”(2012년 3월 27일 자)이라는 ≪뉴욕타임스≫ 의 기사는 “프로그래밍, 웹 구축 및 아이폰 앱 구성을 가르치는 야간반 및 온라인 교습 시장이 붐을 일으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는 코 드카데미 Codecademy(상호작용형 학습 방식을 활용해 프로그래밍을 가 르치는 웹 학원)의 설립자 중 하나인 자크 심스 Zach Sims를 인용해 프로 그래밍과 웹 디자인 학습에 관심이 늘어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 하고 있다. “사람들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계를 이해하고 싶은 진 정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단지 웹을 활용만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고 싶어한다.”18) 이런 인상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의 간극은 존재한다. 이는 전문가 프로그래머와 짧은 프로그래밍 수업 한두 개를 들은 사람 사이의 간극과도 같다. 확실 히 오늘날 미디어를 캡처하고 편집하는 소비자용 테크놀로지는 가장 친 숙한 프로그래밍 및 스크립팅 언어들보다도 이용하기 더 쉽다. 예를 들어, 1850년대 사진관을 차려 사진을 찍는 데 걸리는 시간과 2000년대
15) Martin LaMonica, “The do-it-yourself Web emerges,” CNET News, July 31, 2006, http://www.news.com/The-do-it-yourself-Web-emerges/2100-1032_3-6099965.html 16) http://www.mobilestatistics.com/mobile-statistics (July 30, 2012). 17) http://play.google.com/about/apps/ (July 30, 2012). 18) Jenna Wortham, “A Surge in Learning the Language of the Internet,” New York Times, March 27, 2012, http://www.nytimes.com/2012/03/28/technology/for-an-edgeon-the-internet-computer-code-gains-a-following.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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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첼 화이트로(Mitchell Whitelaw)가 2011년 프로세싱을 이용해 그린 <나무_재귀 (tree_recursion)>의 전체 코드, http://www.openprocessing.org/sketch/8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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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_재귀> 코드가 만들어 낸 나무 변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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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카메라나 휴대전화의 버튼을 한 번 누르는 데 걸리는 시간을 비 교해 보라. 분명한 점은 프로그래밍이 그렇게 간단치만은 않다는 것 이다. 그러나 프로그래밍이 어느 날 갑자기 버튼 누르는 것처럼 쉬워지 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오늘날 스크립팅과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지속적으로 늘 어나고 있다. 비록 소프트웨어의 ‘롱테일’과는 거리가 있다 하더라도, 소 프트웨어 개발은 점차 민주화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제 우리는 소프 트웨어가 우리 문화를 어떻게 만들어 가고, 다시 소프트웨어가 문화에 의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이론적으로 성찰해야 할 시점에 있다. 바로 ‘소프트웨어 연구’의 시간이 도래한 것이다.
문화 소프트웨어 독일의 미디어 및 문학 이론가인 프리드리히 키틀러는 학생들이라면 오 늘날 최소한 2개의 소프트웨어 언어는 알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 경우에만 ‘문화’가 무엇인지 조금 이야기할 수 있게 될 것이다.”19) 키틀러 자신은 어셈블러 언어로 프로그래밍을 해 본 적이 있는데, 이런 경험 때문에 그는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 GUI, Graphical User Interface 와 이런 인터페이스를 채택한 오늘날의 소프트웨어 응용 프로그램을 탐 탁치 않게 생각하게 된 것 같다. 키틀러는 고전적 모더니즘의 관점에서
19) Friedrich Kittler, ‘Technologies of Writing/Rewriting Technology,’ Auseinander 1, no. 3 (Berlin, 1995), quoted in Michael Truscello, “The Birth of Software Studies: Lev Manovich and Digital Materialism,” Film-Philosophy 7, no. 55 (December 2003), http://www.filmphilosophy.com/vol7-2003/n55truscello.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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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의 ‘본질’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키틀러에게 이것은 컴 퓨터의 수학적, 논리적 토대, 그리고 어셈블러 언어와 같은 도구를 특징 으로 하는 그것의 초기 역사를 의미한다. 이 책은 프로그래머, 컴퓨터 애니메이터 및 디자이너, 미디어 예술 가, 교육자 등이 컴퓨터와 맺는 관계의 역사를 필자 나름대로 서술하고 자 한다. 이런 관계 맺음은 어셈블리형 프로그래밍이 아닌 절차형 프로 그래밍(파스칼 Pascal)의 시대인 1980년대 초반 시작되었다. 또한 이 시 기는 PC가 출시되고 데스크탑 출판이 등장해 보편화되고 문학계 일부 학자들이 하이퍼텍스트를 활용하기 시작한 때다. 사실 필자가 모스크 바에서 뉴욕으로 이주한 1981년은 IBM이 최초의 PC를 선보인 해다. 필 자는 1983∼1984년 애플IIe를 통해 컴퓨터 그래픽을 처음 경험했다. 1984년 필자는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접했는데, 이것은 애플 매 킨토시에서 처음 상업적으로 구현된 것이었다. 바로 그해 필자는 세계 최초의 컴퓨터 애니메이션 기업 중 하나인 디지털 이펙츠에서 처음 직 장을 구했는데, 그곳에서 3D 컴퓨터 모델과 애니메이션을 프로그래밍 하는 법을 배웠다. 1986년 필자는 사진을 자동으로 처리해 그림처럼 보 이게 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작성했다. 1987년 1월 어도비 시스템즈는 일러스트레이터를, 그리고 1989년에는 포토샵을 출시했다. 같은 해에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심연 The Abyss>이 개봉되었다. 이 영화는 선구 적으로 CGI Computer-Generated Image를 활용해 최초로 복잡한 형상의 가 상 캐릭터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1990년 크리스마스 직전 팀 버너스-리 Tim Berners-Lee는 현재 우리가 보는 월드와이드웹의 모든 요소들,
즉웹
서버, 웹 페이지, 웹 브라우저 등을 완성했다. 요컨대 10년 동안 컴퓨터는 문화적으로 비가시적이었던 테크놀로 지에서 문화의 새로운 엔진으로 바뀐 것이다. 하드웨어의 진보와 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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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법칙이 이런 발전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지만, 훨씬 더 결정적인 요인 은 워드 프로세싱, 그리기·페인팅·3D 모델링·애니메이션·작곡 및 편집용 응용 프로그램, 하이퍼미디어 및 멀티미디어 저작 도구(하이퍼 카드, 디렉터), 정보관리, 글로벌 네트워크(월드와이드웹)와 더불어 기 술적 이해가 부족한 이용자를 대상으로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채 택한 소프트웨어가 출시되었다는 것이다. 이용하기 편리한 소프트웨어 가 자리를 잡은 후 그다음 단계인 1990년대로 넘어가는데, 이 시기에 그 래픽 디자인, 건축, 제품 디자인, 공간 디자인, 영화 제작, 애니메이션, 미디어 디자인, 음악, 고등 교육, 문화 사업 등 대부분의 문화 산업이 점 차 소프트웨어 도구를 채택해 나갔다. 모스크바에서 고등학교를 다니 던 1975년 처음 프로그래밍을 배웠지만, 필자가 소프트웨어 연구를 시 작하게 된 것은 1980년대 소프트웨어가 컴퓨터를 문화의 중심에 빠르 게 자리 잡게 만든 과정을 관찰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소프트웨어가 사회적 영향이란 측면에서 진정 엔진의 현대적 등가 물이라면, 모든 유형의 소프트웨어가 고려 대상이 되어야 한다. 소비자 들이 이용하는 ‘가시적 visible’ 소프트웨어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의 모든 체계와 과정을 가능케 하는 ‘비가시적 grey’ 소프트웨어도 고려해야 한다. 그렇지만 물류 소프트웨어, 산업 자동화 소프트웨어 등 다른 ‘비가시적’ 소프트웨어는 필자가 개인적 경험이 없기 때문에, 그런 주제에 관해서 는 서술하지 않기로 한다. 필자의 관심 대상은 필자의 전문 영역에서 이 용하고 가르치는 특정 유형의 소프트웨어다. 필자는 이를 ‘문화 소프트 웨어 cultural software’라 부르고자 한다. ‘문화 소프트웨어’라는 용어가 이전에 은유적으로 사용된 적은 있지 만(J. M. 밸킨 J. M. Balkin의 문화 소프트웨어: 이데올로기 이론 Cultural Software: A Theory of Ide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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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을 보라), 필자는 이를 문자 그대로
어도비 포토샵의 1990년 매킨토시 버전 1.0.7. 위는 설정 화면, 아래는 작업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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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일상적으로 ‘문화’와 교호하는 행위를 지원하는 특정 유형의 소 프트웨어를 지칭하는 것으로 사용하고자 한다. 소프트웨어가 가능케 해 주는 이런 문화적 행위 cultural actions는 여러 범주로 구분될 수 있다 (당연히 아래 구분은 이런 많은 범주들 중 가능한 하나의 특수한 분류일 뿐이다).
1. 표상, 관념, 신념, 심미적 가치를 내포한 문화적 인공물과 상호작용 서비스를 만드는 것(예를 들어, 뮤직비디오의 편집, 상품 포장 디자 인, 웹사이트나 앱의 디자인) 2. 온라인에서 그런 인공물(또는 그 일부분)을 접근하고 첨부하고 공유 하고 리믹스하는 것 예를 들어, 웹에서 신문 읽기, 유튜브 동영상 보 기, 블로그 포스트에 댓글 달기) 3. 온라인에서 정보와 지식을 만들고 공유하는 것(예를 들어, 위키피디 아 항목 편집하기, 구글 어스에 위치 추가하기, 트윗에 링크 넣기) 4. 이메일, 인스턴트 메시지, IP 음성 통화, 온라인 텍스트 및 화상 채트, 그리고 담벼락에 글 올리기, 콕 찔러보기, 이벤트, 사진 태그, 노트, 장소 등 소셜 네트워크 기능 사용하기 등을 활용하여 다른 사람과 커 뮤니케이션하는 것 5. 상호작용적 문화 경험에 참여하는 것(예를 들어, 컴퓨터 게임 하기) 6. 자신의 선호를 표현하거나 메타데이터를 추가함으로써 온라인 정보 생태계에 참여하는 것(예를 들어, 구글 검색 서비스를 사용할 때마다 자동으로 새로운 정보를 만들어 내는 것, 구글+의 ‘+1’ 버튼이나 페이 스북의 ‘좋아요’ 버튼 누르기, 트위터에서 ‘리트윗’ 기능 사용하기) 7. 이상의 모든 활동을 지원하는 소프트웨어 도구나 서비스를 개발하 는 것(예를 들어, 인터넷을 통한 데이터 송수신을 가능케 해 주는 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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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세싱용 라이브러리 프로그래밍하기,20) 새로운 포토샵용 플러그인 작성하기, 새로운 워드프레스용 테마 만들기)
기술적으로 이런 소프트웨어는 다양한 방식으로 구현될 수 있다. (소프트웨어 산업에서 ‘소프트웨어 아키텍처’로 간주되는) 대중적인 구 현물로는 이용자의 컴퓨팅 기기에서 작동하는 독립형 응용 프로그램, (서버의 소프트웨어와 커뮤니케이션하는 사용자 장비에서 작동하는 클라이언트 프로그램인) 분산형 응용 프로그램, 그리고 (각 컴퓨터가 클라이언트이면서 서버가 되는) P2P 네트워크 등이 있다. 이 모두가 생 소하지만 우려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이해해야 할 것은, 필자의 용어 로 표현하면 ‘문화 소프트웨어’가 광범위한 제품 및 서비스를 포괄하 지만, 1990년대와 2000년대 미디어 저작을 지배한 일러스트레이터, 포 토샵, 애프터 이펙츠와 같은 단일한 데스크탑만을 위한 응용 프로그램 들과는 대조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와 같은 소 셜 네트워크 서비스에는 그 회사 서버에서 작동하는 많은 프로그램과 데이터베이스(예를 들어, 2007년 추정 자료에 따르면,21) 구글은 전 세 계적으로 100만 대의 서버를 운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메일을 보내고 채트를 하고 동영상을 올리고 댓글을 남기고 이런 서비스에서 다른 일 을 하기 위해 사람들이 이용하는 (“클라이언트”라 불리는) 프로그램들 이 포함되어 있다(후자의 예로, 트위터에 접근하기 위해 twitter.com, tweetdeck.com 또는 iOS용 트위터 앱을, 그리고 제3자 개발자가 만든
20) http://www.processing.org/reference/libraries/ (July 7, 2011). 21) Pandia Search & Social, “Google: one million servers and counting, ” http://www. pandia.com/sew/481-gartner.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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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웹사이트나 앱을 이용할 수 있다).
미디어 응용 프로그램들 위에 제시한 문화적 활동의 범주 중 위 네 가지 활동을 지원하는 소프트 웨어 범주를 보다 자세히 설명하고자 한다. 첫 번째 범주는 미디어 콘텐트를 만들고 편집하고 조직하는 소프트 웨어다. 그 예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워드, 파워포인트, 포토샵, 일러스
트레이터, 인디자인, 파이널컷, 애프터 이펙츠, 마야, 블렌더, 드림위버, 어퍼처 등이 있다. 이 범주는 이 책의 핵심 대상이다. 업계에는 ‘미디어 저작’, ‘미디어 편집’, ‘미디어 개발’ 등 이 범주를 지칭하는 수많은 용어들 이 있지만, 필자는 간명한 하나의 용어로 이 범주를 지칭하고자 한다. 즉, 필자는 이를 간단히 ‘미디어 소프트웨어 media software’라 부르고자 한다. 두 번째 범주는 웹에서 미디어 콘텐트를 배급하고 접근하고 결합할 수 있게 해 주는 (또는 ‘출시’, ‘공유’, ‘리믹스’할 수 있게 해 주는) 소프트 웨어다. 파이어폭스, 크롬, 블로거, 워드프레스, 텀블러, 핀터레스트, 지
메일, 구글 지도, 유튜브, 비메오 등 웹 응용 프로그램이나 서비스를 말 한다. 분명한 것은 첫 번째와 두 번째 범주가 겹친다는 것인데, 예를 들어, 데스크탑 미디어 응용 프로그램들을 활용해 자신이 만든 것을 바로 인 기 있는 미디어 공유 사이트에 올릴 수 있으며, 많은 웹 응용 프로그램이 나 서비스에도 저작 및 편집 기능이 포함되어 있다(예를 들어, 유튜브는 내장형 동영상 편집기를 제공한다). 그리고 블로깅 플랫폼과 이메일 클 라이언트가 이 중간에 위치하는데, 이를 이용해 새로운 콘텐트를 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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