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이익상 작품집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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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상 작품집


지식을만드는지식 고전선집 0533

이익상 작품집 이익상 지음 박연옥 엮음

대한민국, 서울, 지식을만드는지식, 2010


<번뇌(煩惱)의 밤>, 학지광, 1921. 6


흙의 세례(洗禮)


一 明浩의 안해 蕙貞은 압마루에서 아침을 먹은 뒤에 설거질

을 하다가 손을 멈추고 방 안을 행하야 “저 좀 보서요.” 하고 자긔 남편을 불럿다. 明浩는 담배를 픠어물고 압해다 신문을 노코 그리고

안저서 듸려다보다가 蕙貞의 부르는 소리에 자미스린 게 보 던 흥미를 일허바린 것가티 얼골에 조금 불쾌한 비치 나타나 보이엇다. 그리하야 그는 허리를 굽혀 압미다지를 소리가 나 게 열고는 조곰 툭명스러운 소리로 “웨 그리우?” 하엿다. 이와가티 不快한 이 석기어 들니는 “웨 그리우?” 하는 대답에 蕙貞은 어느듯 그 다음에 하랴든 말의 흥미를 절반 이상이나 일허바리고 말앗다. 그리하야 “저보서요.” 라 부 르기만 하여두고 한참 동안이나 남편의 얼골을 바라다 보앗 다. 그러고 蕙貞은 남편이  무슨 생각에 열중한 것을 짐작 하엿다. 明浩는 엇더한 생각에 熱中할 때에는 아모리 불너 도 대답을 할 줄도 모르고 는 대답을 한다 하여도 툭명스 러운 소리가 나오든 것이엇다. 이와 가튼 툭명스러운 대답 이 이 마을로 이사 온 뒤로는 더욱 만하여진 것은 明浩가 무 슨 생각에 熱中하는 期會가 만타는 것을 意味한 것이엇다. 그리고 한 이러한 생각하는 期會가 부러젓다는 것이 蕙貞 47 흙의 세례


에게 對하야는 不快한 생각을 늣기는 가 더부럿다는 것 이엇다. 그들의 이전 생활도 그대지 긴장한 생활이라 할 수 업섯스나 이러한 시골로 내려오게 된 것은 조곰 長悠한 時 日을 보내어 보자는 것이 動機가 되엇섯다. 그러나 悠長과

흐리무텅한 것은 이 明浩에게서 거의 區別할 수 업는 形容 詞가 되고 말엇다.

“이걸 어더케 하면 조화요? 오늘은 밧을 좀 갈어야 할 것 이 아니에요. 압집 칠봉아범을 하루 동안만 삭군으로 어더 볼가요?” 蕙貞은 얼골에 수심스러운 비츨 워가지고 이리케 말

하엿다. 그런데 이 칠봉 아범이란 것은 明浩부부가 이 洞里 로 이사 오든 그날부터 서로 친하게 상종하는 다맛 하나의 이웃사람이엇다. 집안에 조곰 하기 어려운 일이 생길 이 면 흔히 칠봉아범에게 부탁하게 되엿다. 그는 젊은 明浩夫 婦를 爲하야는 自己집 볼일이 잇서도 그것을 제처노코 明 浩의 일을 보살필 만큼 忠實한 이웃사람이엇다. 그럼으로

오날에도 밧가를 일이 급한 것을 걱정하는 蕙貞이 칠봉아범 을 삭군으로 엇자고 한 것은 自然한 일이엇다. “글세… 엇더케든지 해보아야 하지….” 明浩는 겨우 이만한 대답을 하고는 미다지 밧갓흐로 담

배연기를 내엇다. 48


蕙貞은 이러한 흐리무텅한 대답에 조곰 역정이 낫다. 그

리하야 그의 말소리는 자연히 조금 놉핫다. “글세 글세라 말만 하면 됨닛가? 엇더케딘지 일을 시작 하도록 하시야지오. 그러면 제가 가서 칠봉아범을 불너올가 요?” 明浩도 아침에 일어날 부터 밧을 가러야 하겟다는 생

각이 물론 업섯든 것은 아니로되 매양 무슨 일에던지 생각 만 하고 바로 착수하지 못하는 것이 거의 病的으로 버릇이 되고 마른 그가 안해에게 재촉을 다시 당하면서도 속이 시 원하도록 대답 한마듸조차 오히려 하지 못한 것은 엇던 특 별한 理由가 잇슴즉도 하엿다. 그러나 勿論 안해에게 對한 感情으로 나온 것은 아니엇다. 그 밧갓헤도 별다른 理由가

잇는 것은 아니엇다. 큰 疑問으로 잇는 것은 이러케 생활을 하여야만 할 必要가 어데 잇슬가라 생각하는 것이엇다. 明浩는 한참 잇다가 압마루로 나오며 겨우 입을 어 말

하엿다. “글세 그러면 불너오구려!” 하고 그는 다시 두 활개를 벌 리고 기지개를 켯다. 소리를 놉히여 하폄을 크게 하엿다. 蕙貞은 기지개켜며 하폄하는 남편의 얼골을 유심히 흙

게보고는18) 숨을 한번 크게 내쉬엇다. 이 숨은 그 刹那의 그 의 感情을 가리움 업시 表示한 것이엇다. 그리고는 아모 말 49 흙의 세례


업시 압토방을 도라 부억으로 드러갓다. “한숨은 웨 쉬오?” 명호는 부억으로 드러가는 안해의 뒤를 바라보며 조곰 불쾌한 말로 이러케 무럿다. “생각해보서요. 한숨이 아니 나올가−엇저면 모든 것을 그러케 흐리뭉텅하게 하심닛가?” 蕙貞은 부억에서 자숫물통19)에 물을 부면서 이러케

대답하엿다. “무엇이 흐리뭉텅하다우? 속 모르는 말은 이담부터는 하 지도 마오.” 하고 명호는 마루에서 마당으로 내려왓다. 이 에 蕙貞은 자수ㅅ물그릇을 들고 다시 부억에서 압마루로 나왓다. “좀 생각해보서요. 지금이 언제인지 알으심닛가. 벌서 사월이 갓가워 왓담니다. 다른 사람들의 농사짓고 사는 것 을 좀 보시지오. 지금까지 아즉도 밧을 그대로 둔 집이 어대 잇는가…. 이왕에 이러한 생활을 하신다면은 이것이나마 좀 意義잇게 하여야 할 것이 아니에요?” 明浩는 가만히 듯고만 섯섯다. 그에게 대답할 말이 업섯

18) 흙게보고는: 흘겨보고는. 19) 자숫물통: 개수물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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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蕙貞은 남편의 대답을 기다리다가 失望한 드시 다시 입 을 열엇다. “그러메 어케 그리 모든 일에 等閒하서요. 밧 가러야 할 것을 말슴한지가 언제인지 알으심닛가. 벌서 일주일이나 되엇서요. 저는 農事가 엇더한 것인지 자서히 알 수도 업지 마는 를 일흐면 안 된다는 것은 알앗서요. 다른 사람들의 밧에는 벌서 싹이 나지 안햇서요? 그런데 우리 밧은 야즉 괭 이 맛도 보지 못하엿지요. 어케 되겟슴닛가. 밧이 잘 되고 못 되는 것은 그만두고라도 남이 붓그럽지 안해요.” 蕙貞은 이러케 숨도 쉬지 안코 한참 동안을 짓거리다가

숨이 차올나와 겨우 말을 그치엇다. 그러나 다시 明浩에게는 對答할 말이 업섯다. 대답할 만한 무엇이 잇다 하면 그것은 말할 것도 업시 엇더한 暴君 이 忠實한 臣下의 諫하는 말을 들을 에 取하는 粗暴20)한 態度나 言辭가튼 것이엇슬 것이다. 蕙貞은 다시 말을 내엇다. 이번에는 애원하드시 말하엿

다. “저보세요. 이러한 農村에서 무엇을 하랴고 고생할 必要 가 잇서요. 이런 생활−不徹底한 생활은 그만두고 우리에

20) 조폭: 성질이나 하는 짓이 무지막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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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適當한 都會로 가는 것이 엇대요? 손발이 희고 고흔 사 람에게는 이러한 生活을 하겟다는 것이 벌서 틀닌 수작이라 고 함니다. 암만해도 당신 성격에는 農村살님은 適當치 못 해요….” 이것은 明浩에게는 참을 수 업는 失望과 悲哀를 주는 말 이엇다. “여보! 그런 쓸데업는 말은 구만허구려! 지금에 와서 이 러한 말을 하면 무슨 소용이 잇소? 구만 두려거던 당신이나 그만 두고 이전처럼 가서 다시 지내구려!” 蕙貞은 이러한 最后의 말에는 무엇이라 對答할 수 업섯

다. 明浩 夫婦는 이러한 말다툼이 닐어날 에 두 편이 다 가티 흥분한 태도를 가지는 일은 이전부터 업섯다. 그리하 야 어대지든지 자긔들 主張함이 自己를 生活에 얼마만한 影響을 줄는지 그것을 그들은 알엇슴으로 한 편이 激昻 

에는 한편은 눅우러저바렷섯다. 이것이 가장 그들로 하여금 오날까지의 結婚生活을 破滅로 引導치 안흔 큰 原因의 하 나이엇다. 말하자면 이 夫婦의 새이를 러지지 안토록  붓게 한 거말못21)이엇다.

21) 거말못: 거멀못. 나무 그릇 따위의 터지거나 벌어진 곳이나 벌어질 염려가 있는 곳에 거멀장처럼 겹쳐서 박는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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