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산나 동화선집_미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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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이 보낸 아이

선물



하느님이 하늘나라에 있는 천사들을 불러 보았습니다. 하 얀 옷을 입은 천사들이 하느님 앞에 모였습니다. “이번에 태어날 아이는 뇌성마비라는 장애를 가지고 태 어날 것이다. 이 아이를 어느 집에 보내면 좋겠느냐?” 나란히 선 천사들은 한 명씩 차례대로 앞에 나섰습니 다. 가장 먼저 ‘희망’ 천사가 말했습니다. “이 아이는 부잣집으로 보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래 서 치료도 받고, 장애가 있는 대신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도 록 해야 합니다.” 이번에는 ‘행복’ 천사가 앞으로 나왔습니다. “이 아이를 자식이 없는 집에 보내는 건 어떨까요? 그렇 다면 비록 장애가 있다고 하더라도 귀하게 클 수 있을 테 니까요.” 마지막으로 ‘믿음’ 천사가 나와서 고개를 숙이며 말했습 니다. “이 아이에게는 착한 마음과 신앙이 있는 부모가 필요 합니다. 그래야 이 아이를 아끼고 사랑하며 키울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모든 천사의 말에 고개를 저었습니다. 하느님은 산동네에서 힘들게 사는 김 씨네 집을 선택했습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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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은 하느님의 뜻에 깜짝 놀랐습니다. 김 씨는 술주정뱅이였고 그 아내는 날마다 힘들게 일하 며 신세타령만 했습니다. 그 집의 아이들은 서로 싸움만 하는 싸움꾼들이었습니다. 뇌성마비의 장애가 있는 아이가 김 씨 집에 보내지자 천사들은 모두 걱정했습니다. 천사들의 걱정대로 김 씨 집에 태어난 아이는 골칫덩어리가 되었습니다. “돈도 없는데 저런 바보가 태어나다니.” 김 씨는 술병을 입에 달고 살며 중얼거렸습니다. “아이고, 내 팔자야.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렇게 고생만 시키는 거야.” 김 씨의 아내도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좁은 방을 차지하고 시끄럽게 울 어 대는 동생이 반갑지 않았습니다. 구름을 걷고 그 모습을 본 천사들은 모두 손을 맞잡고 기도했습니다. “부디 저 아이에게 은총을 내리소서.”

3년이 지났습니다. 하느님이 김 씨 집에 보낸 아이는 별이라는 이름을 갖 게 되었습니다. 별이는 걸음도 걸을 수 없었고 양손도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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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려 있었습니다. 혼자서는 밥도 먹을 수 없었고 말도 못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김 씨의 아내는 그날도 술에 잔뜩 취한 채 널브러져 자 고 있는 김 씨에게 별이를 맡겨 놓고 파출부 일을 나갔습 니다. 혼자서 방을 기어 다니던 별이는 자고 있는 김 씨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김 씨의 얼굴에 자기의 볼을 문지 르며 더듬거렸습니다. “아−아−바. 아−바.” 김 씨는 잠을 깼습니다. “너 지금 나한테 아빠라고 했냐?” 김 씨는 술이 깨며 정신이 말짱해졌습니다. 무엇엔가 홀린 듯 별이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래, 내가 네 아빠야. 세상에, 말도 못 하는 바본 줄 알 았는데…” 김 씨는 별이를 안았습니다. “아−바. 아−바.” 별이는 침을 줄줄 흘리며 김 씨에게 볼을 비벼 댔습니 다. “애비 노릇도 못 하는데. 그래도 날 아빠라고 불러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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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김 씨는 가슴속에 무언가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습니 다. 그동안 다른 아이들한테 아빠라는 말을 수없이 들어 보았습니다. 하지만 별이가 부르는 아빠는 이상하게도 다 른 느낌을 주었습니다. “이 녀석. 배고파서 그러냐? 엄마가 먹을 것을 해 놓고 갔을 거야. 어디 찾아보자.” 저녁이 다 되어 집에 돌아온 김 씨 아내는 깜짝 놀랐습 니다. 김 씨가 별이에게 목욕을 시키고 있었기 때문입니 다. “옳지, 옳지. 우리 별이 잘한다. 팔을 펴야지.” 땀과 물로 흠뻑 젖은 채 목욕을 시키는 김 씨를 본 김 씨 아내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다음 날 김 씨는 새벽에 집을 나섰습니다. “여보, 이렇게 일찍 어디 가요?” “별이한테 휠체어라도 사 주려면 돈을 벌어야지.” 그날부터 김 씨는 공사판에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달라 진 건 김 씨뿐만 아니었습니다. 부모 대신 별이를 돌봐야 하는 별이의 오빠들도 점점 별이에게 정이 들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별이 바로 위의 오빠인 한이는 학교가 끝나 면 언덕 아래에서부터 별이를 부르며 뛰어왔습니다. 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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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급식 시간에 나오는 귤이며 요구르트를 먹지 않고 가져 와 별이를 주곤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김 씨 아내는 집 근처 성당에 다니기 시작 했습니다. “하느님, 진짜 당신이 계신 것 같아요. 정말로 당신이 계시다면 별이와 저희 식구를 보살펴 주세요. 정말 열심 히 살아 볼게요.” 이제 김 씨 아내의 입에서는 못 살겠다는 소리 대신 늘 기도가 나왔습니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별이였지만, 별이가 새로운 말을 하거나 재롱을 피울 때면 집 안에 웃음소리가 가득했 습니다. 별이네 집 웃음소리가 하늘나라까지 들리자, 천사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하느님, 김 씨 집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요. 행복의 소리 가 들려요.” ‘행복’ 천사가 소리치자 ‘믿음’ 천사가 환하게 웃으며 말 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별이를 위해 김 씨 집을 고르신 게 아니 라, 김 씨 집을 위해 별이를 선물하신 거군요.” 그러자 하느님이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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렸습니다. 그리고 별이네 집을 내려다보고 말씀하셨습니 다. “내가 김 씨 집에 보낸 저 아이는 바로 ‘사랑’ 천사란다.”

≪열린아동문학≫, 2002.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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