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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생태이론


커뮤니케이션이해총서 급변하는 커뮤니케이션 환경 속에서 커뮤니케이션 지식에 대한 욕구 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하나의 커뮤니케이션 주제를 10개 항목으로 묶어서 달걀 꾸러미처럼 엮었습니다.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지식을 쉽게 알고자 하는 대중이나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지식을 단시간에 알고자 하는 연구자, 실무자, 학생에게 도움이 되는 책입니다.

편집자 일러두기 ∙ 외래어 표기는 현행 한글어문규정의 외래어표기법을 따랐습니다. ∙ 이 책에 실린 삽화는 이근명 화백이 그렸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이해총서

미디어 생태이론 이동후

대한민국,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2013


미디어 생태이론

지은이 이동후 펴낸이 박영률

초판 1쇄 펴낸날 2013년 2월 25일 커뮤니케이션북스(주) 출판등록 2007년 8월 17일 제313-2007-000166호 121-869 서울시 마포구 연남동 571-17 청원빌딩 3층 전화 (02) 7474 001, 팩스 (02) 736 5047 commbooks@commbooks.com www.commbooks.com CommunicationBooks, Inc. 3F Cheongwon Bldg., 571-17 Yeonnam-dong Mapo-gu, Seoul 121-869, Korea phone 82 2 7474 001, fax 82 2 736 5047 이 책은 커뮤니케이션북스(주)가 저작권자와 계약해 발행했습니다. 본사의 서면 허락 없이는 어떠한 형태나 수단으로도 이 책의 내용을 이용할 수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이동후, 2013 ISBN 978-89-6680-171-8 책값은 뒤표지에 있습니다.


삶의 환경이 된 미디어

미디어와 생태학의 결합 ‘미디어’ 그리고 ‘생태학’, 둘 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관심 을 갖는 단어다. 그런데 이렇게 낯익은 두 단어를 합친 ‘미 디어 생태학’은 왠지 낯설면서 그 의미가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생태’라는 생물학적 용어와 인공적인 ‘미디어’란 용어가 나란히 붙어 있어, 도대체 무엇을 공부한다는 것인 지 아리송할 수 있다. 미디어 생태학이 아직 제도적으로 자 리 잡은 학과목도 아니고, 정교한 이론 체계를 가진 학문 분야도 아니어서 더욱 감 잡기 어려울 수 있다. 마셜 매클루 언(Marshall McLuhan)이나 닐 포스트먼(Neil Postman)을 미디어학자로 부르는 것은 어색하지 않으나, 이들을 미디 어 생태학자로 부르는 것은 왠지 부연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이 책은 미디어 생태학의 이론적 틀이나 개념들을 체계 적으로 정리하여 제시하기보다는 미디어 생태학의 지적 전통에 기여한 학자들의 사상을 소개하고자 한다. 다양한 학문적 배경을 가진 미디어 생태학자들을 한곳에 모아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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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함으로써 ‘미디어 생태학적 시각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이러한 시각으로 무엇을 질문할 수 있는가’를 탐색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사실 다양한 학문적 배경과 방법론을 가진 학자들을 특 정 개념이나 이론적 틀에 아귀를 맞춰 짜임새 있게 정리한 다는 것은 큰 모험이자 저자의 능력을 넘어서는 일이다. 하지만 다양한 연구로부터 미디어 생태학적 시각을 발견 하고 기존 미디어 생태학자의 지적 작업과 연결해 논의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연구 과제라고 생각한다. ‘미디어 생태학’이란 단어는 ‘생태학’이란 단어 앞에 ‘미 디어’라는 단어를 붙임으로써 미디어 연구에 생태학적 시 각을 접목한 학문이라는 점을 명시한다. 그냥 미디어 연 구가 아니라 환경의 구조와 특징 혹은 환경과 인간의 유기 적인 관계에 집중하는 생태학적 시각을 미디어 연구에 가 져오겠다는 것이다. ‘생태학’이란 표현은 일종의 은유인 셈이다. 따라서 미디어 생태학은 미디어를 환경으로 보면 서 미디어가 구성하는 환경과 인간(혹은 사회)의 유기적 관계를 살펴보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미디어 생태학이란 용어는 1968년 미국 영어교사협의 회의 연례회의에서 닐 포스트먼이 처음 공식적으로 사용 했다. 이전에도 몇몇 학자들이 환경으로서 미디어를 언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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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적이 있었으나 공식적인 용어 사용은 이때가 처음이다. 닐 포스트먼은 미디어 생태학을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 지와 테크닉이 정보의 형태, 양, 속도, 분배, 방향을 어떻 게 제어하는지, 그리고 이러한 정보 구성 혹은 편향성이 사람들의 지각, 가치, 태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Postman, 1979, p.186). 그 는 미디어를 복합적인 메시지 체계라고 보면서, 미디어 생 태학이 인간의 지각, 이해, 감정에 미치는 미디어의 영향 력을 밝히는 노력이라고 말한다. 1998년 창립된 미디어 생태학회의 초대 회장을 지낸 랜 스 스트레이트(Lance Strate) 는 미디어 생태학이란 “미디 어 환경에 관한 연구이자 기술과 기법, 정보양식, 커뮤니 케이션 코드 등이 인간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상” 이라고 말한다(Strate, 1999). 그러면서도 미디어 생태학 은 다양한 학파, 접근, 이론, 주제 등이 뒤섞여 있어 정체 성이 분명하지 않는 학문임을 재치 있게 시인한다.

미디어 생태학은 토론토 학파이고, 뉴욕학파이다. 그것은 강성과 연성 기술결정론이고, 기술 진화론이다. 그것은 미디어 논리이고, 미디엄 이론이고, 미디올로지다. 그것은 매클루언 연구이고, 구술성-문자성 연구이고,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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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연구이다. 그것은 문법과 수사학이고, 기호학과 체계이론이고, 기술 사와 기술철학이다. 그것은 후기산업 및 포스트모던 연구이자, 문자 이전 및 선 사시대 연구이다(Strate, 1999).

하지만 미디어 생태학이 제도적 학과목의 일관된 체계 를 갖추지 못했다고 해서, 그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 렵다. 미디어 생태학은 나름대로 지적 전통을 축적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케이시 럼(Casey Man Kong Lum)은 󰡔미 디어 생태학 사상󰡕(2008)란 편집서를 내면서 미디어 생태 학이 단순히 매클루언 연구, 엘룰 연구, 이니스 연구, 멈퍼 드 연구, 옹 연구, 포스트먼 연구, 또는 이와 비슷한 연구 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의 편집서는 미디어 생태 학을 추구하는 이론집단이 존재하고 이들의 학문적 네트 워크를 통해 지적 전통이 만들어지고 있음을 가시화한다. 미디어 생태학은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를 일종의 생태 적 환경으로 주목했던 일련의 학자들의 지적 전통 혹은 시 각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미디어 생태학은 학문적 경 계가 뚜렷하고 특정 학문적 체계를 갖춘 연구 분야나 학설 혹은 주의(-ism)라기보다는, 우리의 경험 및 인지 양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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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화하는 미디어 환경에 주목하며, 인간과 미디어 혹은 미디어와 미디어 간 “연관과 관계를 극대화하는” 지적 전 통, 시각 혹은 공유된 감수성이라고 할 수 있다(Casey, 2006; Lance, 2006; Ong, 2002).

미디어 생태학의 지적 전통 환경으로서 미디어에 관한 관심은 특정 학문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기보다는 20세기 다양한 학문적 배경을 가진 학자들이 공유한 지적 문제의식이었다. 고전학, 교육학, 기술 사회학, 도시연구, 문화인류학, 사이버네틱스, 언어 학, 역사학, 영문학, 인지심리학, 정치경제학, 철학, 행동 과학 등을 연구한 학자들이 문화를 구성하는 미디어 환경 의 힘에 주목하며, 미디어와 문화의 상호작용 방식을 검토 하기 시작한다. 미디어 생태학적 시각은 이렇게 다양한 학문적 배경을 가진 학자들이 기존에 간과하거나 주변적 으로 다루었던 미디어(기술, 테크닉, 정보양식, 언어)-인 간-문화의 관계를 전면에 부각시키면서 생겨난다. 미디어 생태학회의 홈페이지(http://media-ecology.org/) 에 가보면 맨 상단에 열 개의 인물 사진으로 구성된 배너 를 볼 수 있다. 이것은 일종의 온라인판 ‘명예의 전당’으로 서, 미디어 생태학의 지적 전통에 기여한 에릭 헤블록(Er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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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velock), 수잔 랭어(Susanne Langer), 자크 엘룰 (Jacques Ellul), 해롤드 이니스(Harold Innis), 닐 포스트 먼, 마셜 매클루언, 월터 옹(Walter Ong), 루이스 멈퍼드 (Lewis Mumford), 엘리자베스 에이젠시타인(Elizabeth Eisenstein), 에드먼드 카펜터(Edmund Capenter) 등의 사진을 싣고 있다. 이들은 미디어 생태학적 시각의 형성 에 기여한 1세대 미디어 생태학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들 외에 벤저민 리 워프(Benjamin Lee Whorf), 노버트 위 너(Nobert Wiener), 제임스 캐리(James Carey) 등을 추가 할 수 있다. 이들은 인간의 경험을 새롭게 재구성하고 특정한 문화 양식을 선호하는 미디어 환경(혹은 언어 환경이나 정보 환경)에 관심을 가졌다. 이들은 미디어가 단순히 중립적 인 도구가 아니라 미디어의 물질적 형태와 상징적 구조에 따라 특유의 구조적 특성 혹은 ‘편향성’을 갖는다고 보았 다. 그리고 이들은 이러한 미디어의 ‘편향성’을 살피는 데 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인간의 감각, 사고, 느낌, 인식, 사회 문화적 경험 등을 어떻게 조건 짓고, 어떠한 사 회 문화적 변화 과정을 돕는지를 살피고 있다. 크리스틴 나이스트롬(Christine Nystrom)은 1세대들이 관심을 가졌던 미디어의 편향성을 다음과 같은 명제로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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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했다(럼, 이동후 역 2008, pp.84∼85). 첫째, 미디어의 상징적 형태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지적·정서적 편향성 이 다를 수 있다. 둘째, 정보를 부호화하고, 저장하고, 전 송하는 물리적 형태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시간적·공간 적·감각적 편향성이 다를 수 있다. 셋째, 미디어의 상징 적 형태에 대한 접근성이 다르기 때문에 정치적 편향성이 다를 수 있다. 넷째, 미디어마다 참여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사회적 편향성이 다를 수 있다. 다섯째, 미디어의 시공간적 편향성으로 인해 형이상학적인 편향성이 달라 질 수 있고 여섯째, 미디어의 물리적·상징적 형태에 따라 서로 다른 내용적 편향성을 가질 수 있다. 일곱째, 앞에서 언급한 특유의 편향성 결과로, 서로 다른 인식론적 편향성 을 가질 수 있다. 이러한 명제들은 다소 도식적으로 정리했지만, 1세대 들이 미디어 환경을 이해하기 위해 주목한 지점과 문제의 식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참고자료라고 할 수 있다. 예 를 들어 해롤드 이니스는 미디어 형식의 시간적·공간적 편향성에 주목하며 이러한 편향성이 사회조직과 문화의 성격에 반영된다고 보았고, 매클루언은 미디어의 감각적 편향성을 중심으로 인간의 삶에 미치는 미디어 효과를 분 석했다. 수잔 랭어는 경험을 표현하는 미디어의 상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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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에 따라 지적·정서적 편향성을 갖는다고 보았다. 이들이 주목했던 미디어의 ‘편향성’은 자신의 학문적 배 경과 관심사에 따라 다르지만, 이러한 편향성에 대한 이해 를 중심으로 인간과 문화를 탐구해 갔다는 점은 공통적이 라고 볼 수 있다. 미디어 생태학적 시각은 미디어가 담아 내는 내용보다는 그것 자체의 구조적 특성 혹은 편향성에 관심을 가지며, 이것이 사회 문화적 진화 과정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주목한다. 또한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따라 문화 시스템을 분류하고 대조한다. 새로운 미디어 환경이 문화에 유통되는 커뮤니케이션 양식의 구조를 바 꿈으로써 특정한 지성, 의식, 감성, 정치, 내용, 믿음을 격 려하고 따라서 기존 미디어 문화와 차이를 갖는 문화를 만 든다고 본다.

책의 구성 이 책은 미디어 생태학적 시각을 소개하기 위해 미디어 생 태학의 지적 전통에 토대를 마련한 1세대 미디어 생태학 자들의 문제의식을 설명해 보고자 한다. 이미 케이시 럼 (2008)이 편집한 책에서 이들의 주요 연구 업적과 역사 적·지성적 배경을 다룬 바 있다. 이들 사상의 역사적 맥 락이나 보다 포괄적인 정보를 얻고 싶으면 케이시 럼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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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참고하는 것이 좋다. 케이시 럼의 책이 1세대 미디어 생태학자의 사상 전반을 상세히 다루었다면, 이 책은 미디 어 생태학적 시각이나 문제의식의 형성에 기여를 했던 핵 심 주제나 개념들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여기서 다루고 있는 학자들은 앞서 언급했던 미디어 생 태학회 홈페이지의 초기화면을 장식하고 있는 이들이다. 이들 중 에릭 해블록이 빠지고 대신 노버트 위너가 들어갔 다. 이유는 노버트 위너가 에릭 해블록보다 미디어 생태 학 분야에 기여도가 높아서가 아니라 학문적 배경이나 접 근 방식의 다양성을 고려한 탓이다. 해블록의 ‘구술문화’ 연구는 주제면에서 월터 옹의 ‘구술성’ 연구와 겹치는 부 분이 있는 반면, 노버트 위너의 사이버네틱스 이론은 미디 어 환경에 대한 또 다른 시각과 문제의식을 보여 준다. 1970∼80년대 포스트먼이 이끄는 뉴욕대의 미디어 생태 학 프로그램에서 노버트 위너의 책은 여기서 다루는 다른 학자들의 저서와 함께 꼭 읽어야 할 필독서 중의 하나였 다. 따라서 이 책에서 다루는 학자들은 노버트 위너를 포 함하여, 마셜 매클루언, 해롤드 이니스, 월터 옹, 닐 포스 트먼, 루이스 멈퍼드, 자크 엘룰, 수잔 랭어, 엘리자베스 에이젠시타인, 에드먼드 카펜터 등 총 10명이다. 이들 모 두 미디어 생태학의 지적 전통 형성에 직·간접적으로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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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했고, 특히 매클루언과 포스트먼을 중심으로 지적 연결 고리가 만들어진다. 각 장은 해당 학자에 관한 기본적인 정보를 기술한 ‘인 물’, 그리고 그의 미디어 생태학적 시각과 문제의식을 살 필 수 있는 세 가지 내외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한 학자의 사상을 불과 몇 장에 담아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일 뿐만 아니라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작업이다. 충분한 설 명과 추론 과정을 생략한 채 기본적인 스케치만 해야 하기 때문에, 이들의 시각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할 수 있다. 따 라서 이들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배경에 대해 많은 정보를 제공하기보다는, 주요 개념 몇 개를 선택해 이를 중심으로 이들의 사상을 소개하고자 했다. 또한 이러한 개념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어떤 점이 미디어 생태학적 시 각을 담아내고 있는지, 어떻게 미디어 생태학의 지적 전통 에 기여하고 있는지 등을 설명해 보고자 했다. 지면의 제 약상 이들 간 지적 연관성이나 후속 연구에 미친 영향력은 자세히 다루지 못했지만, 이 부분을 어느 정도 의식하면서 개념을 정리하고자 했다. 다음은 각 장의 내용을 간단하 게 개관한 것이다. 1장 ‘마셜 매클루언: 미디어론’은 미디어 생태학 발전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허버트 마셜 매클루언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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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미디어론은 환경으로서 미디어가 갖는 효과를 이해 하는 시각을 제공한다. 그가 제시한 ‘미디어는 메시지’, ‘미 디어는 인간 감각의 확장’, ‘모자이크’, ‘미디어의 법칙’ 등 은 미디어 생태학의 주요 사상이자 실천적 방법론이 되고 있다. 2장 ‘해롤드 이니스: 커뮤니케이션 편향성 이론’은 기술 이나 언어 대신 미디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미디어 생태 학의 이론적 시각 형성에 중요한 기여를 한 해롤드 이니스 를 다룬다. 그는 인류의 문명사와 미디어의 물질적·형식 적 조건의 관계를 살펴보면서, 미디어가 특정 사회 조직이 나 지식 통제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 그는 커뮤 니케이션의 편향성, 시간 편향적 문화와 공간 편향적 문 화, 지식의 독점, 미디어 문화의 균형 등의 개념을 통해 미 디어와 문화의 관계에 접근하는 미디어 생태학적 시각을 제시한다. 3장 ‘월터 옹: 구술성-문자성 연구’는 미디어를 ‘말’을 다 루는 기술로 보면서 미디어의 형식이 인간의 의식과 문화 에 미친 영향력에 주목한 월터 옹의 구술성-문자성 이론을 다룬다. 그는 구술성과 문자성의 대비를 통해 문화사를 읽으면서, 미디어의 발달에 따라 사고 과정이나 지식의 특 성 혹은 인간의 의식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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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러한 변화가 혁명적이라기보다는 신구 미디어 문 화의 상호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관계주의 시각을 제 시한다. 4장 ‘닐 포스트먼: 미디어 인식론’은 미디어 생태학이란 단어를 처음 공식적으로 사용한 닐 포스트먼을 다룬다. 그는 뉴욕대학교에 미디어 생태학이라는 박사과정을 만 들어 미디어 생태학이라는 학문의 기반을 구체화한 인물 로서, 미디어 생태학의 지적 네트워크를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는 매클루언의 영향을 받아 미디어 환경이 갖는 영향력에 주목하면서 새로운 미디어의 이용이 단순 히 기능적 도구를 하나 더 갖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생태학적(ecological)’ 변화를 불러일으킨다고 보 았다. 우리의 생각, 느낌, 이해, 행위 등에 영향을 미치는 미디어의 인식론에 주목했고, 이러한 미디어 생태학적 시 각을 통해 텔레비전을 비롯한 전자 미디어 문화, 더 나아 가 현대사회의 기술 지배 문화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5장 ‘루이스 멈퍼드: 기술 유기체론’은 󰡔기술과 문명󰡕 (1934)의 저자 루이스 멈퍼드를 다룬다. 󰡔기술과 문명󰡕은 미디어 생태학에 기초가 되는 연구로서, 기술(미디어)과 이것의 사회적·이데올로기적 효과를 주목했다. 독학으 로 기술, 문명사, 예술, 건축, 도시 등 다양한 주제를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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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멈퍼드는 기술을 중심으로 문명사를 기술한 󰡔기술과 문명󰡕을 통해 미디어 생태학적 연구의 전형을 보여 준다. 근대 기계로서 시계가 갖는 기계 이데올로기에 대한 분석 이나 기술 유기체론은 미디어 생태학에 중요한 이론적 기 여를 한다. 6장 ‘자크 엘룰: 기술 사회론’은 현대 기술 사회의 문제 를 비판적으로 논의한 프랑스의 사회학자 자크 엘룰을 다 룬다. 엘룰은 현대 기술 사회가 효율적인 기술 이용을 우 선시하는 ‘테크닉(la technique)’의 사회라고 하면서, 이러 한 테크닉의 문제를 사회학적 그리고 신학적 차원에서 논 의해보고자 했다. 여기서 ‘테크닉’은 영어의 기법이나 기 술과는 달리 “최고의 효율성을 주는 기술을 위한 결정만 을”하는 체계, 세계관 혹은 삶의 방식을 가리킨다. 그는 기 술맹종적인 체계의 문제뿐만 아니라 이러한 기술 담론에 순응하게 만드는 대중 미디어 환경에 주목한 대표적인 미 디어 생태학자로서, 현대 기술 사회에 대한 비판적이면서 도 신학적인 진단을 내놓는다. 7장 ‘엘리자베스 에이젠시타인: 인쇄문화 연구”는 역사 학에서 주변적으로만 다루어졌던 인쇄 미디어를 중심 주 제로 부각시킨 엘리자베스 에이젠시타인을 다룬다. 그의 저서는 인쇄술의 확산이 유럽의 정치적·문화적·인식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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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변화와 어떻게 상호 연관되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 볼 수 있게 해준다. 그는 활판 인쇄술이 어떻게 초기 근대 유럽 문화에 새로운 전환점을 가져왔는지 상세히 기술하 면서 인쇄술이 가졌던 미디어 생태학적 효과를 구체적으 로 살펴볼 수 있게 한다. 근대성을 형성하는 다양한 요소 들의 “관계들”에 주목하며, 획일적이지 않고 복잡한 인쇄 문화의 전개과정을 구체적으로 보여 줌으로써, 미디어 생 태학적 시각을 역사 연구에 접목시킨 대표적 연구 모델을 제공한다. 8장 ‘수잔 랭어: 상징 이론’은 일상의 감각 경험을 상징 적 형태로 바꾸는 인간의 정신 구조를 철학적으로 다룬 수 잔 랭어를 다룬다. 그는 인간이 자신의 경험을 상징으로 재현할 수 있는 “상징적 변형(symbolic transformation)”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다른 생물들과 구별된다고 말한다. 이러한 상징형식은 언어와 같은 “추론적 상징”과 “표상적 상징”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이렇게 서로 다른 상징 형식 은 서로 다른 재현의 구조와 기능을 갖는다. 랭어의 상징 형식에 관한 이론은 미디어로 매개되는 표현형식과 그것 의 환경으로서 특성을 이해하려는 미디어 생태학에 이론 적 토대를 제공한다. 9장 ‘노버트 위너: 사이버네틱스’는 ‘사이버네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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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bernetics)’를 제창한 미국의 수학자 노버트 위너를 다 룬다. 그의 사이버네틱스 이론은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를 통해 인간과 사회를 하나의 시스템으로서 이해하려는 미 디어 생태학적 시각에 큰 영감을 주었다. 제어로서 정보 개념, 인간과 인간, 인간과 기계, 기계와 기계 간 커뮤니케 이션을 포괄하는 커뮤니케이션 개념, ‘인간의 인간적 활용’ 에 대한 고민 등은 미디어 생태학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 는 주제들이다. 특히 사회 체제를 제어하려는 정보 기술 로서 미디어의 역할을 살펴보는 것은 여러 미디어 생태학 자가 공유하는 미디어 생태학적 관심사 중의 하나다. 10장 ‘에드먼드 카펜터: 미디어 인류학’은 부족문화와 민속지학적 영상 제작에 관심을 가졌던 인류학자 에드먼 드 카펜터를 다룬다. 카펜터는 1950년대 매클루언과 함께 ‘문화와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세미나를 진행하면서 라디 오, 영화, 텔레비전과 같은 미디어가 사회를 재구성하는 방식에 관심을 갖게 된다. 카펜터의 방송 경험과 이뉴이 트인들에 대한 민속지학적 연구는 이러한 미디어의 문화 적 동학을 이해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 그는 부족사회 에 대한 민속지학적 연구와 영상 제작 경험을 토대로, 미 디어와 커뮤니케이션 형식, 인간 사고와 경험, 그리고 문 화적 형식 간 관계 등 미디어 생태학적 주제를 탐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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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다양한 학문적 배경을 가진 학자들의 미디어 생태학적 시각을 살펴봄으로써 미디어 생태학에 대한 이 해를 돕고자 한다. 이들이 미디어 환경을 이해하는 방식 이나 다루는 주제는 서로 다르지만, 환경으로서 미디어 (기술, 테크닉, 정보양식, 언어)가 문화와 인간 커뮤니케 이션에 미치는 생태학적 영항력을 주목하고 있다. 이 책 은 이들의 미디어 생태학적 시각을 몇 개의 주요 이론 혹 은 개념을 중심으로 검토하는 ‘일종의 밑줄 긋기’ 작업을 통해, 미디어 생태학적 시각에 관한 첫 이해를 돕는 출발 점을 제공하고자 한다. 이 책이 미디어 생태학에 대한 관 심을 넓히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길 바란다.

참고문헌 Lum, C.(Ed.)(2006). Perspectives on culture, technology and

communication: The media ecology tradition. Cresskill, NJ: Hampton Press. 이동후 옮김(2008). 󰡔미디어 생태학 사상󰡕. 서울: 한나래. Ong, W.(2002). Ecology and some of its future. Explorations in

Media Ecology, 1(1), 5∼11. Postman, N.(1979). Teaching as a conserving activity. New York: Deli. Strate, L.(1999). Understanding MEA. Medias Res, 1(1). Strate, L.(2006). Echoes and reflections: On media ecology as a

field of study. Cresskill, NJ: Hampton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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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삶의 환경이 된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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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마셜 매클루언: 미디어론

02

해롤드 이니스: 커뮤니케이션 편향성 이론

03

월터 옹: 구술성-문자성 연구

04

닐 포스트먼: 미디어 인식론

05

루이스 멈퍼드: 기술 유기체론

06

자크 엘룰: 기술사회론

07

엘리자베스 에이젠시타인: 인쇄문화 연구

08

수잔 랭어: 상징 이론

09

노버트 위너: 사이버네틱스

10

에드먼드 카펜터: 미디어 인류학

1 11

21 31 43

53

75 85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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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마셜 매클루언: 미디어론

허버트 마셜 매클루언은 미디어 생태학 발전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학자다. 그의 미디어론은 환경으로서 미디어가 갖는 효과를 이해하는 시각을 제공한다. 그가 제시한 ‘미디어는 메시지’, ‘미디어는 인간 감각의 확장’, ‘모자이크’, ‘미디어의 법칙’ 등은 미디어 생태학의 주요 사상이자 실천적 방법론이다.


인물 미디어 생태학의 발전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허버트 마 셜 매클루언(Herbert Marshal McLuhan, 1911∼1980)은 1911년 캐나다 앨버타주 에드먼튼시에서 태어나 매니토 바대학교에서 영문학 학사와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1943 년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영국 르네상스 작가인 토머스 내시(Thomas Nashe)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광고, 만화, 신문 기사 등의 대중문화가 기술 사회의 태 도, 믿음, 가치 등을 어떻게 반영하는지를 분석한 󰡔기계 신부: 산업사회 인간의 신화(Mechanical bride: Folklore of industrial man)󰡕(1951)를 시작으로, 서구 문화의 기초 가 된 알파벳과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동력으로서 인 쇄술을 다룬 󰡔구텐베르크 은하계(The Gutenberg galaxy: The making of typographic man)󰡕(1962), 현대 미디어 환경, 특히 텔레비전의 영향력을 다룬 󰡔미디어의 이해 (Understanding media: The extensions of man)󰡕(1964), 미디어와 지각, 커뮤니케이션의 관계를 탐구한 󰡔미디어 는 마사지(The medium is the massage)󰡕(1968)와 󰡔지구 촌의 전쟁과 평화(War and peace in the global village)󰡕 (1968), 기계 신부의 후속작인 󰡔문화는 우리 일(Culture is our business)󰡕(1970) 등 여러 저서를 남겼다. 사후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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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생태학 발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마셜 매클루언(Marshall McLuhan, 1911∼1980) ⓒ 커뮤니케이션북스

그의 아들인 에릭 매클루언(Eric McLuhan)과 함께 쓴 󰡔미 디어의 법칙(Laws of media: The new science)󰡕(1988)과 󰡔미디어와 형상인(Media and Formal Cause)󰡕(2011), 브루 스 파워스(Bruce R. Powers)와 쓴 󰡔지구촌(The global village: Transformations in world life and media in the twenty-first century)󰡕(1989) 등이 출간된다. 매클루언은 텔레비전이 전후 세대 대중문화의 중심축 을 형성하게 된 1960년대 초에 텔레비전이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이해’하는 책들을 출판하면서 많은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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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주목을 받는 유명인이 되었다. 1990년대 중반 인터넷 과 월드와이드웹이 상용화하기 시작하면서 전자 ‘지구촌’ 을 이야기했던 매클루언의 사상은 다시 주목을 받는다. 환경으로서 미디어를 본격적으로 논의한 그의 미디어론 은 미디어 생태학의 사상적 기초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빠 르게 변화하는 현대 미디어 환경을 ‘탐구’하는 중요한 시 각을 제공한다.

미디어는 메시지 매클루언은 미디어가 특정한 목적이나 필요를 만족시키 는 중립적 도구가 아니라 환경이라고 본다. 이러한 환경 은 “보이지 않는 배경 원칙”을 가지고 이러한 환경에 적응 하며 사는 인간의 지각과 의식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매 클루언은 ‘미디어는 메시지(The medium is the message)’ 라는 표현을 통해 미디어가 전달하는 내용보다 미디어의 배경 원칙에 주목하라고 한다. 미디어의 내용은 마치 강 도가 집을 지키는 개의 주의를 딴 데로 돌리기 위해 던지 는 고깃덩어리처럼 인간 경험에 무의식적으로 스며드는 미디어의 편향성을 잘 의식하지 못하게 만든다고 한다 (McLuhan, 1964, p.18). 물고기가 물 밖으로 나오기 전까 지는 물의 존재를 모르듯이 인간이 너무나 자연스런 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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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환경을 의식하기란 어렵다. 매클루언은 미디어를 인간 경험의 규모와 형태를 형성 하고 제어하는 배경으로 바라보면서, 이러한 배경을 인식 하기 위해서는 역이미지, 다시 말해 개인의 삶의 습관이나 일과 패턴을 바꾸는 미디어 환경의 보이지 않는 성격을 볼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배경 혹은 환경으로서 미디어에 대한 이해는 미디어 생태학적 시각의 기초가 된다.

미디어는 인간 감각의 확장 매클루언은 미디어가 인간의 눈, 귀, 근육, 신경조직 등 인 간 감각을 확장하는 것으로 본다. 인간 감각이 ‘밖으로 나 온 것(outerings)’ 혹은 ‘발화된 것(uttering)’으로서, 자동 차의 바퀴는 발의 확장, 서적은 눈의 확장, 의복은 피부의 확장, 전자회로는 중추신경체계의 확장이라고 말한다 (McLuhan, 1967, pp.26∼41). 그는 미디어 환경의 인지 적, 사회적, 문화적 효과를 미디어의 사용 용도나 내용이 아닌 ‘미디어가 인간 감각의 확장’이라는 점에서 찾는다. 감각을 확장하는 미디어는 감각 간 불균형을 일으키게 된다. 예를 들어, 알파벳과 인쇄술은 사람의 말을 시각적 인 부호로 전달하면서 귀 대신 눈이 지배하는 새로운 감각 비율을 만든다. 구어 문화에서는 듣는 것이 믿는 것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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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데, 문자 문화에서는 보는 것이 믿는 것이 된다. 인간의 감각 기관은 미디어가 형성하는 감각 간 불균형을 완화하 며 평형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특정 감각의 마비 상태를 일으키는데, 인간은 이렇게 미디어가 만든 지각 환경을 현 실이라고 받아들인다. 이러한 마비 혹은 차단의 상태는 인간이 미디어 환경에 적응하면서 생기는 자연스런 과정 으로서 인간의 삶에 미치는 미디어의 효과를 이해하는 핵 심이 된다.

모자이크 매클루언은 미디어를 설명하거나 예측하려고 하기보다는 ‘탐구(explore)’하려고 한다. 이러한 탐구를 위해 선택한 글쓰기 양식이 바로 ‘모자이크’다(McLuhan, 1962). 모자 이크는 체계적인 방법론에 따라 일관성 있게 생각의 흐름 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비선형적인 방식으로 전체 맥락 의 일면을 반영하는 현실의 조각들을 질문하고 읽어가는 방식이다. 경구, 명문구, 은유, 슬로건식의 표현을 사용하 고 문학의 통찰과 인류학, 철학, 과학 등의 발견을 버무려 서 미디어 환경의 영향력 이모저모를 다양한 맥락에서 질 문하고 구체화하려고 한다. 이러한 탐구 형식은 시각 편향적 인쇄문화에 기반을 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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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형적인 학술적 접근이 아니라 “거칠고 불연속적인 특성 을 갖도록 의도적으로 선택”된 것으로 “의도적으로 독자 를 자극하고 감성에 충격을 주어”(McLuhan, 1988, p.viii) 독자들이 자신의 인식 환경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 도록 하는 방식인 셈이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독자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일종의 “구술-청각-시각적인 쓰기 형식” (Lamberti, 2012)으로서, 미디어의 내용(대상)이 아닌 환 경으로서 미디어(배경)를 드러내고 인지하게 만드는 방식 이다.

미디어의 법칙: 테트라드 매클루언은 아들 에릭 매클루언과 함께 쓴 󰡔미디어의 법 칙(Laws of Media: The New Science)󰡕(1988)에서 미디 어 환경 변화를 살펴보는데 유용한 ‘테트라드(tetrad)’라는 탐구 도구를 제공한다. 테트라드는 마치 입체파 그림이 사물의 다양한 면을 한꺼번에 표현하듯이 문화와 미디어 의 관계를 다면적으로 살펴보며 변화의 과정을 인식하게 한다. 미디어는 무엇을 강화 혹은 촉진하는가, 무엇을 쓸모없 는 것으로 퇴화시키며 구시대의 유물로 만드는가, 과거에 버렸던 어떤 것을 부활시키는가, 그것의 영향력이 한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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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달했을 때 어떤 것에 의해 역전되는가 등의 질문을 통해 새로운 미디어 환경이 갖는 효과를 여러 각도로 동시에 고 찰할 수 있는 인식의 틀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인쇄 매체 는 목적이 뚜렷한 개인주의를 강화하고 사투리와 집단적 정체성을 쇠퇴하게 하고 부족적 엘리트주의를 부활시키 는가 하면 동시적인 성격을 띤 커뮤니케이션 유형에 의해 역전된다고 한다. 그런데 강화, 퇴화, 부활, 역전이란 네 개의 현상은 인과 관계를 가지며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배경 과 대상이 되어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어떤 것이 부활한다는 것은 다른 것이 퇴화한다는 것이고, 어떤 것이 강화된다는 것은 다른 것이 역전되고 있다는 것 이다. 여기서 역전은 옛것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테크놀로지의 새로운 물질적 조건 아래 옛것에 의해 강화 되었던 것이 쇠퇴하거나 과거에 쇠퇴했던 것이 부활하는 것이다. 매클루언의 테트라드는 미디어 환경의 효과를 다각도 로 동시에 고찰할 수 있는 인식의 틀을 제공할 뿐만 아니 라 빠르게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 관한 패턴 인식을 통해 현재의 상황을 평가해 보고 감각 간 불균형이나 마비 상태 가 갖는 폐해를 줄이는 실천적 고민을 할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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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Lamberti, E.(2012). Marshall McLuhan’s mosaic: Probing the

literary origins of media studies. Toronto: University of Toronto Press. McLuhan, H, M.(1951). The mechanical bride: Folklore of

industrial man. New York: Vanguard Press. McLuhan, M., & Fiore, Q.(1967). The medium is the massage: An

inventory of effects(J.Agel, Prod.). New York: Bantam. 김진홍 옮김(2001). 󰡔미디어는 마사지다󰡕.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McLuhan, M., & Fiore, Q.(1968). War and peace on the global

village. San Francisco: Hardwired. McLuhan, M., & McLuhan, E.(1988). Laws of media: The new

science. Toronto, Canada: University of Toronto Press. McLuhan, M., & McLuhan, E.(2011). Media and formal cause. Houston, TX: NeoPoiesis Press. McLuhan, M., & Powers, B.(1989). The global village:

Transformations in world life and media in the twenty-first century.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박기순 옮김(2005). 󰡔지구촌󰡕.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McLuhan, M.(1962). The Gutenberg galaxy: The making of

typographic man. Toronto, Canada: University of Toronto Press. 임상원 옮김(2001). 󰡔구텐베르크 은하계󰡕.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McLuhan, M.(1964). Understanding media: The extensions of

man. New York: McGraw Hill. 김상호 옮김(2011). 󰡔미디어의 이해󰡕.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McLuhan, M.(1970). Culture is our business. New York: McGraw-H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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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해롤드 이니스: 커뮤니케이션 편향성 이론

해롤드 이니스는 기술이나 언어 대신 미디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미디어 생태학의 이론적 시각 형성에 중요한 기여를 한다. 그는 인류의 문명사와 미디어의 물질적·형식적 조건의 관계를 살펴보면서, 미디어가 특정 사회 조직이나 지식 통제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 그는 커뮤니케이션의 편향성, 시간 편향적 문화와 공간 편향적 문화, 지식의 독점, 미디어 문화의 균형 등의 개념을 통해 미디어와 문화의 관계에 접근하는 미디어 생태학적 시각을 제시한다.


인물 해롤드 이니스(Harold Innis, 1894∼1952)는 기술이나 언 어 대신 ‘미디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그 효과를 고찰했 던 최초의 미디어 생태학자라고 할 수 있다. 잘 알려진 미 디어 생태학자인 마셜 매클루언은 이니스의 󰡔커뮤니케이 션의 편향성(The bias of communication)󰡕 2판(1964)에 서문을 쓰면서 자신의 󰡔구텐베르크 은하계󰡕가 쓰기와 인 쇄술의 영향력에 관한 이니스의 관찰에 ‘각주’를 붙인 것 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이니스는 미디어 생태학의 이론적 시각 형성에 중요한 기여를 한다. 이니스는 원래 정치경제학을 전공한 학자였다. 온타리 오주 오터빌 출신의 이니스는 맥매스터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시카고대학교 경제학과에서 󰡔캐나다 태평양 철도의 역사(A history of the Canadian Pacific Railway)󰡕 란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는다. 캐나다 태평양 철도와 같은 수송 체계의 사회경제적 영 향력을 다룬 그의 박사학위 논문은 1923년 책으로 출간되 었고, 1930년에는 캐나다 모피 무역과 수송 수단을 연구 한 󰡔캐나다의 모피 무역(The fur trade in Canada)󰡕, 1940 년에는 대구 어업과 무역 노선 및 수송 수단 그리고 국제 관계를 연구한 󰡔대구 어업: 국제 경제의 역사(The c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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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케이션 경제사에 관해 저술한 미디어 연구의 선구자 해롤드 이니스(Harold Innis, 1894∼1952) ⓒ 커뮤니케이션북스

fisheries: The history of an International economy)󰡕가 각각 출판된다. 캐나다의 주요 산물에 대한 정치경제학 연구를 하던 그 는 신문, 언론, 책, 광고와 같은 미디어의 정치경제학을 검 토한 󰡔신문: 20세기 경제사에서 간과된 요소(The press: A neglected factor in the economic history of the twentieth century)󰡕(1949)를 쓰게 되면서 미디어로 관심 을 돌리게 된다. 이후 세계 문명사 속의 미디어 역할을 다룬 󰡔제국과 커뮤니케이션(Empire and communic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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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과 󰡔커뮤니케이션의 편향성󰡕(1951), 그리고 󰡔시간 개념의 변화(Changing concepts of time)󰡕(1952)를 세상 에 선보이게 된다. 1952년에 때 이른 죽음으로 그의 미디어 연구는 중단되 었지만, 그는 역사적 맥락 속에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문 화, 지식, 수송 수단, 정치경제, 군사 활동 등 다양한 요소 들의 상호작용을 살펴보면서 문명사에 접근하는 미디어 생태학적 시각의 기반을 마련한다.

커뮤니케이션의 편향성 해롤드 이니스는 정치경제학자로서 모피, 대구, 목재 등 의 원자재를 연구했던 시각의 연장선에서 미디어를 접근 한다. 그의 미디어 개념은 돌, 진흙, 양피지, 종이 등과 같 이 커뮤니케이션에 사용된 물질적 자재뿐만 아니라 상형 문자, 쐐기문자, 알파벳 등의 커뮤니케이션 형식을 포괄 하는 것이다. 그는 서로 다른 미디어의 물질적·형식적 조건이 지식을 보존하거나 전파하는 방식, 더 나아가 특정 사회의 지식을 조직하고 통제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고 보았다. 그는 󰡔커뮤니케이션의 편향성󰡕(1951)이란 저서에서 옮기기 어렵지만 내구력을 가진 무거운 미디어와 휴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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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지만 오래가지 못하는 가벼운 미디어를 구분하면서 이들이 각각 시간 편향적 문화와 공간 편향적 문화의 토대 가 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해당 사회에 지배적인 미디 어 형식은 특정한 시간적 혹은 공간적 편향성을 띠고 있 고, 따라서 사회 조직과 문화의 성격은 이러한 미디어 유 형의 특성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돌, 진흙과 같은 ‘무거운’ 미디어를 사용했던 고대 바빌로니아나 이집트 같은 나라는 파종기와 수확기 와 같이 한 해의 중요한 일정을 알려주는 달력 체계나 시 간의 범주를 통제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 시간 편향적 문화였다. 마찬가지로 신의 말씀을 영구적으로 기록하기 위해 양피지를 사용했던 중세 서구 유럽 또한 이러한 시간 편향적 문화였다고 본다. 반면, 파피루스나 종이 같이 가 벼운 휴대용 미디어를 이용해 원거리 통치를 구현했던 로 마 제국은 공간 편향적 문화를 가졌다고 본다. 물론 이집 트도 로마와 같이 파피루스를 사용하긴 했지만, 상형문자 라는 커뮤니케이션 언어의 특성으로 인해 로마와는 다른 문화를 갖는다. 한편 서구 근대의 기술들, 예를 들어 인쇄 술, 나침반, 망원경, 수학, 원근법 등은 서구 유럽의 공간 편향적 문화를 더욱 확장하고, 라디오와 같은 전자 미디어 는 인쇄 미디어가 보였던 공간적 편향성을 더욱 강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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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보았다. 이니스는 ‘커뮤니케이션 편향성’이란 개념을 통해 미디 어와 문화의 관계를 설명한다. 이러한 개념은 특정한 역 사적 맥락에서 이용되는 미디어의 물질적 요소와 커뮤니 케이션 형식을 고찰함으로써 문화의 성격을 이해하는 미 디어 생태학적 접근을 제시한다.

지식의 독점 이니스는 언어 상징체계의 복잡성, 정보나 지식에 대한 접 근성, 미디어의 희소성 등에 따라 지식의 독점이 심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이집트와 바빌로니아에 비해 문자 배우기가 상대적으로 쉬웠던 초기 그리스에서 는 구어와 문자 전통이 균형을 이루며 지식의 독점이 이루 어지지 않았다가 문자 중심의 성문법이 등장하면서 이러 한 독점적 통제가 힘을 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로마제국 에서는 주로 제국의 통치를 위해 읽기와 쓰기가 이루어지 고, 중세에는 교회의 필경사가 지식의 보전과 전수, 그리 고 검열의 역할을 맡으며 지식을 독점한다. 인쇄 미디어는 하나의 언어권에 있는 사람들이 자국의 언어로 인쇄된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되면서 얼굴을 직접 보지 않고도 하나의 민족 공동체라는 소속감을 가질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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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해준다. 하지만 지식의 생산 및 유포자가 국가나 소수 의 미디어 사업자 혹은 엘리트 지식인층에 제한되어 있어 이들에 의한 지식의 독점이 쉽게 일어날 수 있다. 이니스는 공간 편향적 인쇄 미디어의 제국주의적이고 독점적인 문화 효과가 전자 미디어에 이르러 더욱 심화되 고 있다고 보았다. 캐나다에서는 1952년 12월, 이니스가 세상을 떠난 지 한 달 뒤에 텔레비전이 도입된다. 따라서 그는 미처 텔레비전을 경험해 보진 못했지만 라디오의 효 과에 대한 관찰을 통해 전자 미디어가 공간 편향적인 지배 양식을 강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독점에 대해 명확한 정의를 제시하고 있지는 않지 만 교양이나 과학과 같은 지식뿐만 아니라 경제 기록이나 인구조사 자료와 같은 정보 혹은 수송 수단이나 시장 조직 같은 경제적 조건을 지식의 독점에 포함시키고 있다 (Heyer, 2008).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은 지식의 독점 방식 에 영향을 미치며, 기존의 지식 독점자들에게 도전한다. 예를 들어 종이는 양피지에 지식 전수를 의존했던 교회의 지식 독점에 도전했고, 인쇄술의 발달은 수도원의 필경사 나 일반 필경사의 독점적 지위를 약화시켰다. 미디어가 시공간의 제약을 뛰어 넘어 광범위한 정보 교 류를 확대해 오면서 지식을 독점하는 방식이나 주체가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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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되고 있다. 지식의 독점 개념은 미디어, 정보 통제, 통치 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비판적 통찰력을 제공한다.

균형 이니스는 문화가 특정 편향성으로 과도하게 기우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로마제국에서 보듯이 공간 편향적 사 회는 공간 편향적인 미디어를 토대로 제국을 건설하고 제 국의 통치를 위해 지식을 독점한다. 이니스는 기원전 5세 기말 이전의 그리스에서 시간과 공간의 편향성이 어느 정 도 균형을 이루었던 사례를 찾는다. 그는 당시에 말하기 와 쓰기가 균형 있게 사용되면서 문자 문화가 구어 문화의 가치를 손상하지 않았다고 보았다. 그는 구어 문화는 본 질적으로 민주적이진 않더라도 대화를 선호하며 지식의 독점에 저항할 수 있기에 가치 있다고 보았다. 그는 현대 서구 문명이 공간 편향적 미디어 혹은 ‘현재’ 에 사로잡힌 상업주의 미디어의 발달로 위험에 빠졌다고 본다. 구어 전통의 가치가 약화되고, 기계화된 커뮤니케 이션이 지식의 독점을 강화했으며, 문화의 생존에 필요한 영구적 요소가 체계적으로 파괴되고 있기 때문이다(Innis, 1952, p.15). 그는 이러한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간 편향성과 공간 편향성의 균형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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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본다. 대화의 구어 전통을 되살리고 정치적 혹은 상업 적 압력에서 자유로운 문화와 교육을 지켜냄으로써 문명 을 파괴하는 지식 독점의 폐해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보 았다. 이러한 균형에 대한 관심은 공간 편향적 미디어에 대한 무조건적 반대가 아니라 약화되고 있는 시간 편향적 문화 의 가치를 회복하면서 보다 민주적이고 인간적인 미디어 이용에 대한 의식을 촉구한다. 균형은 미디어 생태학이 갖는 실천적 관심사 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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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Heyer, P.(2006). Harold A. Innis’ Legacy in the Media Ecology

Tradition. In Lum, C. (Ed.). Perspectives on culture, technology and communication: The media ecology tradition, 143∼162. Cresskill, NJ: Hampton Press. 이동후 옮김(2008). 󰡔미디어 생태학사상󰡕. 서울: 한나래. Innis, H. A.(1923). A history of the Canadian Pacific Railway. Toronto, Canada: University of Toronto Press. Innis, H. A.(1930). The fur trade in Canada: An introduction to

Canadian economic history. Toronto: University of Toronto Press. Innis, H. A.(1940). The cod fisheries: The history of an

international economy. Toronto, Canada: University of Toronto Press. Innis, H. A.(1949). The press: A neglected factor in the economic

history of the twentieth century. London: Oxford University Press. Innis, H. A.(1950). Empire and communications. Toronto, Canada: University of Toronto Press. 김문정 옮김(2008). 󰡔제국과 커뮤니케이션󰡕.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Innis, H. A.(1951). The bias of communication. Toronto, Canada: University of Toronto Press. Innis, H. A.(1952). Changing concepts of time. Toronto, Canada: University of Toronto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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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월터 옹: 구술성-문자성 연구

매클루언의 영향을 받은 월터 옹은 피터 라무스의 수사학을 연구하면서 미디어 생태학 연구를 시작하게 된다. 미디어를 ‘말’을 다루는 기술로 보면서, 미디어의 형식이 인간의 의식과 문화에 미친 영향력에 주목한다. 그는 구술성과 문자성의 대비를 통해 문화사를 읽으면서, 미디어의 발달에 따라 사고 과정이나 지식의 특성 혹은 인간의 의식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주목한다. 그는 이러한 변화가 혁명적이라기보다는 신구 미디어 문화의 상호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관계주의적 시각을 제시한다.


인물 예수회 신부이자 영문학자인 월터 옹(Water J. Ong, 1912∼ 2003)은 미국 캔자스시티에서 태어나 록허스트대학교에 서 라틴학을 전공했고, 세인트루이스대학교와 하버드대 학교에서 각각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석사 과정 때 매클루언을 만나 그의 지도로 예수회 시인인 제라드 맨리 홉킨스(Gerard Manley Hopkins)에 관한 학위 논문을 썼 고, 박사학위 논문은 페리 밀러(Perry Miller)의 지도로 프 랑스 교육개혁자인 피터 라무스(Peter Ramus)의 수사학 을 연구했다. 박사학위 논문은 󰡔라무스, 방법, 대화의 퇴락(Ramus, method, and the decay of dialogue)󰡕(1958)이란 책으로 출간되는데, 이 책은 라무스 시대의 지식과 교육 방식에 미친 인쇄술의 영향력을 다룬 미디어 생태학적 연구라고 할 수 있다. 옹은 라무스 시대에 정치적 토론, 법적 판결, 교육 등 공적 영역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수사학의 역할이 축소되고 논리학과 글로 쓰는 논증이 중요해졌음 을 주목했다. 이후 옹은 󰡔말의 현존(The presence of the word)󰡕 (1967), 󰡔수사학, 로맨스, 그리고 기술(Rhetoric, romance, and technology)󰡕(1971), 󰡔말의 인터페이스(Interfa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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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 형식, 인간 지식과 사고 패턴, 인간 경험과 문화적 형식의 관계를 연구한 월터 옹(Water J. Ong, 1912∼2003) ⓒ 커뮤니케이션북스

of the word)󰡕(1977), 󰡔구술성과 문자성(Orality and literacy)󰡕(1982) 등 다수의 저서를 통해 미디어와 커뮤니 케이션 형식, 인간 지식과 사고 패턴, 인간 경험과 문화적 형식의 관계를 연구했다. 그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우리의 자기 정체성과 관계 의 실천에 중심이 되는 말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다른 어떤 기술보다 인간 문화에 큰 영향력을 갖는다고 보고 (Ong, 1977, p.22), 미디어가 말의 보전과 확장, 그리고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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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에 이용되는 방식, 이러한 이용방식과 인간의 의식 및 사고 패턴의 상관관계를 주목했다.

말의 기술로서 미디어 옹은 쓰기와 인쇄술 및 전자 장치 등 ‘말(the word)’을 다 루는 기술을 미디어라 본다. 그는 미디어를 단순한 인조 품(artifact)으로 보지 않는 매클루언처럼 미디어가 새로운 방식으로 지식을 형성하고 저장하고 상기하고 이야기하 면서 인간의 의식과 문화에 자리했다고 본다. 커뮤니케이션 양식에 깊이 내재된 미디어 형식, 특히 “우리에게 너무 깊게 내재화되어 하나의 기술로 보기가 어려운”(Ong, 1982, p.82) 문자 텍스트와 가장 본질적인 인간 커뮤니케이션 수단인 구어의 상관관계를 살피면서 미디어의 사회 문화적 영향력을 연구했다. 그는 문자가 사용되기 이전의 구술성과 문자성을 기준으로 인류 역사 의 흐름을 읽어 나간다.

구술성 옹은 문자 이전 인류 역사의 오랜 시기를 지배했던 구술 커뮤니케이션이 발화되는 순간 존재했다가 사라지는 소 리로 매개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한다. 구어는 인간을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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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 한가운데 그리고 동시성 속에 놓이게” 하는 소리로 매 개되기 때문에 지금-여기의 경험을 전달하고 삶의 상황을 담아낸다고 본다(Ong, 1967, p.43; p.128). 따라서 기록할 수단이 없고 서로의 물리적 현존을 전제 로 한 구어 문화는 기록할 문자를 가진 문자 문화와 다른 문화적 특성을 갖게 된다. 구어 문화는 언어 표현이나 지 식의 전수가 인간의 물리적 기억 능력에 의존해야 하기 때 문에 인간이 기억할 수 있는 것만을 아는 문화이고, 기억 을 잘하기 위해 공식화된 패턴을 통해 지식을 전달하고 전 달 방식도 참여와 동일시라는 언어 행위를 통해 전수된다. 옹은 구어 문화의 표현 방식과 정신 역학이 “종속적이 기보다는 부가적”이고, “분석적이기보다는 집합적”이고, “반복적이거나 풍부”하고, “보수적이거나 전통적이고”, “생활 세계에 밀접”하고, “논쟁적인 어조”를 갖고, “객관적 인 거리를 두기보다는 참여적이고”, “항상성은 갖고”, “추 상적이기보다는 상황적”(Ong, 1982, pp.36∼57)이라고 본다. 다시 말해 구어 담론은 “그래서”, “…하기 때문에” 식의 분석적이고 추론적인 표현을 쓰는 대신 “그리고”라는 표 현을 쓰며 순간적인 이해를 돕는다. 또한 기억을 용이하 게 하기 위해 집합적인 성격의 관용구를 자주 사용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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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복적이고 장황한 표현을 많이 쓰고, 인간 기억을 통해 지식을 전수하기에 보수적인 성향을 띤다. 생활경험을 추 상적으로 분석할 범주가 결여되어 있어 지식을 인간 삶의 세계에 가깝게 관련시켜 개념화하고, 지식의 검토과정이 대인 상황 속에서 이루어지기에 논쟁적인 어조를 띠기 쉽 다. 배움이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참여적으로 이루어지기 에 지식이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기가 어렵고, 기억의 과 부하를 줄이기 위해 현재 유용한 지식만을 추리는 항상성 을 유지하고, 현실 세계의 경험을 통해 사고를 해나가기에 사고의 형태가 상황 의존적이고 실생활과 밀접하다. 구어 문화는 “소리 세계의 사건”인 구어의 성격에 영향 을 받는 문화적 표현과 의식의 세계를 갖게 되는데, 문자 의 이용은 구어를 시각적 공간에 배치함으로써 다른 문화 를 전개하게 된다.

문자성 옹은 문자와 쓰기가 등장하면서 말이 시각적인 문자로 고 정되고 발화가 이루어지는 맥락에서 분리된 객체로 독립 적으로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글을 쓴 저자가 자 신이 쓴 말과 청자 사이에 ‘거리’를 갖게 되면서 커뮤니케 이션의 조건이 바뀌게 된다. 문자와 쓰기로 소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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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 독자, 아는 자와 아는 것, 메시지와 메시지를 전달 하는 행위, 낱말과 소리, 말과 실존적 맥락, 소리와 시각, 글과 해석 등이 분리되기 시작했다(Ong, 1982). 이와 같은 ‘분리’를 통해 문자 문화는 인간 기억의 한계 에서 해방된 표현과 사고를 정확하고 안정적으로 전달할 수 있게 된다. 쓰기가 물리적으로 함께하지 않는 상상의 ‘허구적’ 독자를 대상으로 이루어지고 읽기도 소리를 내지 않고 글자를 해독하는 개별 활동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문자 커뮤니케이션은 개인적이고 탈집단적이다. 옹은 쓰 기가 개인이 공동체와 거리를 가지며 내적 의식을 고양시 키는 “사고를 재구조화하는 기술”이라고 보았다. 옹은 문자와 쓰기의 시각주의(visualism)가 인쇄술의 발명과 함께 더욱 강화되면서 구술성의 청각적 문화 양식 과 대비되는 시각적 양식이 형성된다고 말한다. 그에 따 르면, 구어 문화의 사람들이 경험하는 세계는 “사건으로 서 세계”이고, 문자 문화의 사람들이 경험하는 세계는 “시 각의 세계(world as view)”이다(Ong, 1969). 전자가 듣기 와 말하기 중심의 청각과 연관된 사고 과정과 표현 방식을 가졌다면 후자는 시각 중심이다. 예를 들어, 문자 문화에 서 사용하게 된 ‘통찰력(insight)’, ‘증거(evidence)’, ‘고찰 (speculation)’, ‘해명하다(explicate)’, ‘분석하다(analy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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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별하다(discern)’, ‘구별하다(distinct)’, ‘개요(outline)’ 등은 시각과 연관된 사고 과정의 특성을 잘 보여 준다 (Ong, 1977, pp.133∼134). 옹은 인쇄술의 발달로 말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과정이 청각이 아닌 시각적 지각과 연관되고, 따라서 사고 과정이 나 지식의 특성 혹은 인간의 의식 또한 이와 함께 재구성 되기 시작했다고 본다.

관계주의: 제2의 구술성과 잔존 월터 옹은 라디오와 텔레비전과 같은 전자 미디어의 등장 으로 기존의 구술성과 유사한 특징을 보이는 ‘제2의 구술 성’이 나타났다고 본다. 그는 전자 미디어의 커뮤니케이션 이 인쇄의 선형성에서 벗어나 물리적으로 부재했던 상대 방의 소리를 복원한다는 점에서 제1의 구술성과 유사하다 고 보았다. 전자 미디어가 소리를 전달할 수 있게 됨으로써 시각적 공간에 갇혀 있던 말의 청각적 감각을 회복하고, 유기체 집단을 통합하는 소리의 즉시성, 즉흥성, 상황성 그리고 현존성 등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러 한 구술성은 쓰기와 인쇄 문화에 기반을 둔 것이기 때문에 즉시성, 즉흥성, 지금-여기의 행위 중심의 현존성과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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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집단적 경험, 정형화된 표현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계획된 것이라고 말한다. 제2의 구술성은 “보다 의도적이고 자기 의식적”일 뿐만 아니라 소수의 집단이 아닌 대중이 집단 감각을 가질 수 있게 한다. 그는 전자 미디어가 집단적인 참여 의식이나 현재의 순 간을 중요하게 여기는 기존 구어 문화의 특징을 갖고 있지 만, 이러한 구어 문화의 부활은 분석적 인쇄 문화와 전혀 별개의 문화가 아니라 여전히 그것에 영향을 받는다고 주 장한다. 그는 새로운 지배 미디어가 기존의 문화 내용을 뿌리째 바꾸어 놓기보다는 그 바탕 위에서 형성되어 간다 는 점, 그리고 기존의 미디어 문화 또한 쉽게 없어지지 않 고 잔존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런 시각 아래 옹은 신구 미디어 환경의 상호관계 속에 미디어 문화가 진화한다는 ‘관계주의적’ 시각을 제시한다. 이러한 옹의 관계주의는 미디어 발달에 따른 사회 문화적 변화과정을 복합적으로 이해해 볼 수 있는 미디어 생태학적 시각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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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Ong, W. J.(1958). Ramus, method, and the decay of dialogue:

From the art of discourse to the art of reason. Cambridge, MA: Harvad University Press. Ong, W. J.(1967). The presence of the word. New Haven, CT: Yale University Press. Ong, W. J.(1969). World as view and world as event. American

Anthropologist, 71(4), 634∼647. Ong, W. J.(1971). Rhetoric, romance, and technology: Studies in

the interaction of expression and culture. Ithaca, NY: Cornell University Press. Ong, W. J.(1977). Interface of the word. Ithaca, NY: Cornell University Press. Ong, W. J.(1982). Orality and literacy: The technologizing of the

word. Methuen, London. 이기우ㆍ임명진 옮김(1996). 󰡔구술문화와 문자문화󰡕. 서울: 문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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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닐 포스트먼: 미디어 인식론

닐 포스트먼은 1968년 미디어 생태학이란 단어를 처음 공식적으로 사용한 인물이다. 그는 미디어 환경이 갖는 영향력을 주목하면서 새로운 미디어의 이용이 단순히 기능적 도구를 하나 더 갖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생태학적’ 변화를 불러일으킨다고 보았다. 그는 우리의 생각, 느낌, 이해, 행위 등에 영향을 미치는 미디어의 인식론을 주목했고, 텔레비전을 비롯한 전자 미디어 문화, 더 나아가 현대사회의 기술 지배 문화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인물 닐 포스트먼(Neil Postman, 1931∼2003)은 1968년 미디 어 생태학이란 단어를 처음 공식적으로 사용한 인물이자 뉴욕대학교에 미디어 생태학이라는 박사과정을 만들어 미디어 생태학이라는 학문의 기반을 구체화시킨 인물이다. 1950년대 컬럼비아대학교 교육대학 박사과정을 다니 며 루이스 포스데일(Louis Forsdale) 교수 밑에서 커뮤니 케이션과 언어를 공부했고, 종종 특강을 하러 학교를 방문 한 매클루언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는다. 포스트먼은 자신 의 첫 번째 책이라고 할 수 있는 󰡔텔레비전과 영어 교육 (Television and the teaching of English)󰡕(1961)에서 매 클루언의 시각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할 만큼 매클루언에 게 강한 영감을 받았고, 이후 언어와 미디어의 문제에 천 착하게 된다. 그는 1960년대와 1970년대 초 전자 미디어가 새로운 언 어를 만들어낸다고 보고 이러한 시대에 맞는 교육 개혁을 주장한 󰡔언어학: 교육의 혁명(Linguistics: A revolution in teaching)󰡕(1966), 󰡔전복적 활동으로서의 교육(Teaching as a subversive activity)󰡕(1969), 󰡔부드러운 혁명: 학교를 바꾸기 위한 교육 안내서(The soft revolution: The student handbook for turning schools around)󰡕(1971),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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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미디어 생태학이란 단어를 공식적으로 처음 사용한 닐 포스트 먼(Neil Postman, 1931∼2003) ⓒ 커뮤니케이션북스

무엇을 불평하는지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The school book: For people who want to know what all the hollering is about)󰡕(1973) 등을 찰스 와인가트너(Charles Weingartner)와 함께 썼다. 이후 미디어 생태학적 관심을 본격적으로 다루며 전자 미디어 시대에 문자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보존 활동 으로서의 교육(Teaching as a conserving activity)󰡕(1979), 대중매체 시대에 아동기의 성격과 개념을 다룬 󰡔아동기의 소멸(The disappearance of childhood)󰡕(1982), 텔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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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의 영향력을 다룬 󰡔죽도록 즐기기(Amusing ourselves to death)󰡕(1985)를 발표한다. 이어 현대사회의 기술 숭 배 문화를 비판한 󰡔테크노폴리: 기술에 정복당한 문화 (Technopoly: The surrender of culture to technology)󰡕 (1992), 가치, 사상, 서사를 잃어버린 공교육 시스템의 문 제를 다룬 󰡔교육의 종말(The end of education)󰡕(1996), 인쇄 문화와 계몽 시대의 지적 업적과 가치를 되돌아본 󰡔18세기에 다리 놓기(Building a bridge to the eighteenth century)󰡕(1999) 등을 내놓는다. 포스트먼은 교육자이자 사회평론가, 그리고 무엇보다 미디어 생태학자로서 우리의 인식 및 가치 체계에 영향을 미치는 미디어 환경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미디어 인식론: 메타포로서 미디어 포스트먼은 매클루언처럼 커뮤니케이션 기술뿐만 아니라 도구, 기계, 조직, 방법, 기법, 체계 등을 미디어에 포함한 다. 보이는 기술(텔레비전, 컴퓨터 등)과 안 보이는 기술 (여론조사 기술, IQ 테스트, 통계학) 모두가 우리가 느끼 고 경험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 이라고 보면서,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도 이러한 기술적 환 경의 일부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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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먼도 미디어의 기능이나 효과가 미디어의 구조 에 의해 대부분 결정된다고 보고 미디어의 내용보다는 사 용한다는 사실 자체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미 디어의 사용에 따른 상징적 환경 변화는 무엇을 더하거나 감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변화를 일으키는 “생태 학적인(ecological)” 것(Postman, 1992, p.18)이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미디어의 형태적 특성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 하다고 보았다. 포스트먼은 매클루언의 ‘미디어는 메시지다’와 유사한 ‘미디어는 메타포’라는 명제를 제시한다(Postman, 1985). 그는 외부세계에 대한 지각의 형태를 구성하는 미디어의 성격에 따라 우리의 인식론, 즉 진실(truth)을 알아내고 정 의하는 것이 달라지고, 따라서 미디어가 그 사회의 메타포 로서 기능하면서 특유의 문화를 만들어 간다고 주장했다. 포스트먼은 문화에 영향을 미치는 미디어의 형태적 특 성을 편향성이란 개념으로 정리한다. 그에 따르면 각 미 디어는 정보를 코드화하는 상징적 형태와 정보를 전송하 고 저장하고 수신하는 물질적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각기 다른 정서적, 지적, 시간적, 공간적, 감각적, 정치적, 사회 적, 형이상학적, 인식론적 혹은 이데올로기적 편향성을 갖는다고 본다(1979, p.193; 1989; 1993,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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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먼은 이러한 편향성 가운데 무엇보다 미디어의 인식론적 혹은 이데올로기적 편향성을 주목한다. 미디어 가 무엇이 현실인지에 대한 개념을 구성하면서 특정한 것 에 가치를 부여하고, 특정한 태도를 확대하며, 세상을 분 류하고 추론하는 틀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연 필을 가진 사람은 모든 것이 리스트로 보이고, 카메라를 가진 사람은 모든 것이 이미지처럼 보이며, 컴퓨터를 가진 사람은 모든 것이 데이터로 보이는 것처럼(Postman, 1993, p.14), 우리가 사용하는 미디어가 우리의 세계관을 결정짓고 지식의 특성을 바꾸어 놓는다는 것이다. 포스트 먼은 각 미디어의 형태적 특성으로 인해 정보가 특정한 방 식으로 전달되고 그럼으로써 우리의 의식, 사고, 표현 방 식을 구조화한다고 보았다.

쇼 비즈니스의 시대 포스트먼이 영어 교육을 연구하다가 미디어 생태학에 관 심을 갖게 된 것은 텔레비전을 비롯한 전자 미디어 환경이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 면 17세기에서 19세기의 미국은 커뮤니케이션 형태와 공 적 담론이 모두 활자 중심으로 진행된 ‘설명의 시대(age of exposition)’였다고 한다. 당시에는 지식이 분석적으로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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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여져 이성적으로 추론했으며 모순을 싫어했고 한 걸 음 떨어져 생각하는 객관적 능력을 중요시했다. 하지만 통신과 사진이 등장하면서 정보가 탈맥락화, 일용품화, 분절화되었고 논리적 추론이 더 이상 요구되지 않게 된다. 탈맥락적인 전자 통신과 이미지에 기반한 텔 레비전이 문화에 대해 소통하고 이해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포스트먼이 󰡔아동기의 소멸(The Disappearance of Childhood)󰡕에서 텔레비전의 편재성 과 손쉬운 접근성 때문에 아이들이 성인의 비밀에 노출되 고, 이와 함께 어른의 세계와 어린 시절 세계의 구분이 붕 괴되었다고 한다. 또한 텔레비전의 영향력을 다룬 󰡔죽도 록 즐기기(Amusing Ourselves to Death)󰡕(1985)에서는 텔레비전의 이미지 중심의 파편적 서사, 그리고 오락을 제 공하며 끊임없이 즐겁게 해주는 힘이 모든 공적 담론을 쇼 비즈니스화하고 있다고 말한다. 텔레비전의 시대는 “쇼 비즈니스의 시대”로서 “오락이 모든 텔레비전 담론의 최고 이데올로기”가 되었다고 본 다. 그는 텔레비전이 우리에게 오락적인 콘텐츠를 제공하 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내용이 오락적으로 제공되고 있기 때문에 문제라고 한다. 그래서 현대사회는 우리가 싫어하 는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너무 좋아하고 편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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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는 것에 의해 피폐되어 간다고 하고 오웰(George Orwell)보다는 헉슬리(Thomas Huxley)의 예견에 공감을 표한다. 텔레비전이 우리 사회의 인식론을 이끄는 중요 요소가 되면서, “모든 공적 담론은 점점 더 오락적 형태를 띠게” 되고 현대인은 시민보다는 소비자, 앎을 추구하기보다는 즐기고, 활동하기보다는 미디어 단말기 앞에 잠자코 앉아 있게 된다. 그는 텔레비전 환경이 갖는 인식론적 효과를 강력하게 비판하면서 공적 담론, 합리적 추론 방식, 전통 적 가치와 서사, 인간의 이성적인 사고 등에 대한 각성을 촉구한다.

테크노폴리와 기술 문화 비판 포스트먼은 텔레비전 환경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확장시 켜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뿐만 아니라 보다 포괄적인 기술 과 기법, 그리고 이것과 결부된 사상을 주목했다. 그는 󰡔테크노폴리: 기술에 정복당한 문화󰡕에서 기술 문화를 도 구 사용 문화, 기술주의의 테크노크라시(technocracy), 기 술 지배의 테크노폴리(technopoly)로 구분하면서 기술과 문화의 관계에 대한 좀 더 포괄적인 인식의 틀을 제공하고 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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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먼에 의하면 도구 사용 문화에서는 도구의 목적 이 주변 물질 환경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예술, 신화, 제의, 종교 등의 상징적 세계에 봉헌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테크 노크라시는 기계식 시계, 활자 인쇄술, 망원경 등 근대적 기술을 중심으로 ‘도구가 문화에 통합되지 않고 도구 자체 가 문화를 만드는’ 기술주의 문화다. 테크노폴리는 “인간 적 삶의 의미를 기계와 기술에서 찾아야” 하고 따라서 “모 든 문화적 삶의 형태가 기법과 기술의 지배 권력에 굴복” 하게 된 “전체주의적 기술주의”(Postman, 1993, p.48, p.52)라고 설명한다. 포스트먼은 기술이 지배하는 삶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살펴보면서, 이러한 암울한 현실에 대해 우리가 어떠한 의 식적 개입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게 한다. 그는 모든 기 술적 변화는 그것이 주는 편리함만큼이나 보이지 않는 손 실이 있는 “파우스트적 거래”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러 한 미디어 환경의 파우스트적 거래를 이해하는 의식적 노 력이 필요하고, 이러한 노력을 통해 미디어 환경의 균형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포스트먼은 문자 문화가 인류에게 가져온 지적 전통의 가치를 되살림으로써 전자 미디어 시대 혹은 기술 지배 문 화의 폐해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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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유산을 되돌아보면서 현대 기술이 제공하는 즐거 움과 편안함 그리고 효율성의 이면을 추론해보고, 우리가 지켜야할 서사와 가치를 재고해볼 수 있다고 보았다. 현 재의 미디어 환경에 대한 포스트먼의 비판적이고 비관적 진단은 이론뿐 아니라 실천적 차원에서 미디어 생태학적 시각이 가질 수 있는 통찰력을 보여 준다.

참고문헌 Postman, N., & Weingartner, C.(1966). Linguistics: A revolution

in teaching. New York: Delta. Postman, N., & Weingartner, C.(1969). Teaching as subversive

activity. New York: Delacorte Press. Postman, N., & Weingartner, C.(1971). The soft revolution: A

student handbook for turning schools around. New York: Delacorte Press. Postman, N., & Weingartner, C.(1973). The school book: For

people who want to know what all the hollering is about. New York: Delacorte Press. Postman, N.(1961). Television and the teaching of English. New York: Appleton- Century- Crofts. Postman, N.(1979). Teaching as a conserving activity. New York: Delta. Postman, N.(1982). The disappearance of childhood. New York: Delacorte Press. Postman, N.(1985). Amusing ourselves to death: Public discourse

in the age of show business. New York: Viking. 홍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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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김(2009). 󰡔죽도록 즐기기󰡕. 서울: 굿인포메이션. Postman, N.(1992). Technopoly: The surrender of culture to

technology. New York: Vintage books. 김균 옮김(2001). 󰡔테크노폴리󰡕. 서울: 궁리. Postman, N.(1996). The end of education: Redefining the value of

school. New York: Alfred A. Knopf. 차동춘 옮김(1999). 󰡔교육의 종말󰡕. 서울: 문예출판사. Postman, N.(1999). Building a bridge to the 18century: How the

past can improve our future. New York: Alfred A. Knop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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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루이스 멈퍼드: 기술 유기체론

루이스 멈퍼드의 󰡔기술과 문명󰡕(1934)은 미디어 생태학에 기초가 되는 연구라고 할 수 있다. 독학으로 기술, 문명사, 예술, 건축, 도시 등 다양한 주제를 연구한 멈퍼드는 기술을 중심으로 문명사를 기술한 󰡔기술과 문명󰡕을 통해 미디어 생태학적 연구의 전형을 보여 준다. 근대 기계로서 시계가 갖는 기계 이데올로기에 대한 분석이나 기술 유기체론은 미디어 생태학에 중요한 이론적 기여를 한다.


인물 미디어 생태학의 이론적 체계에 관한 최초의 논문을 쓴 크 리스틴 나이스트롬(Christine Nystrom, 1973)은 루이스 멈퍼드(Lewis Mumford, 1985∼1990)의 󰡔기술과 문명 (Technics and civilization)󰡕(1934)이 미디어 생태학에 기 초가 되는 연구라고 말했다. 멈퍼드는 미디어 혹은 커뮤 니케이션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기술, 문명 사, 예술, 건축, 도시 등과 같이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면서 모든 인공물이 구성하는 환경의 문제에 천착한 생태학적 시각의 선지자라고 할 수 있다. 1895년 뉴욕에서 태어난 루이스 멈퍼드는 어린 시절부 터 각종 신기술의 발명과 빠르게 변화하는 고층 도시의 모 습을 보면서 도시, 건축, 기술 등에 관심을 갖게 된다. 고 등학교를 졸업한 후 정규 교육을 받진 않았지만, 생물학자 로서 사회학, 인구학, 경제학, 인류학, 종교학, 도시학 등 다양한 연구를 했던 패트릭 게데스(Patrick Geddes)와 시 카고 대학교의 경제학자로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 각을 가졌던 토르스테인 베블린(Thorstein Veblen)의 영 향을 받으며 자신만의 학문적 세계를 만들어갔다. 1920년대 멈퍼드는 󰡔유토피아 이야기(The story of utopias)󰡕(1922)로 미국 지성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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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생태학 연구의 전형을 보여 준 󰡔기술과 문명󰡕(1934)의 저자 루이스 멈퍼드(Lewis Mumford, 1895∼1990) ⓒ 커뮤니케이션북스

고, 이후 기술의 문명사를 다룬 󰡔기술과 문명󰡕(1934), ‘테 크네’라는 같은 어원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전혀 다르게 인식되는 예술과 기술의 문제를 다룬 󰡔예술과 기술(Art and technics)󰡕(1952), 예술과 기술의 결합체로서 건축을 논의한 󰡔막대기와 돌멩이(Sticks and stones)󰡕(1924), 󰡔브 라운 데케이즈(The brown decades)󰡕(1931), 󰡔건축에서 의 남부(The south in architecture)󰡕(1941), 󰡔처음부터 다시(From the ground up)󰡕(1956), 도시를 연구한 󰡔도 시의 문화(The culture of cities)󰡕(1938), 󰡔도시 개발(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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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velopment)󰡕(1945), 󰡔역사 속의 도시(The city in history)󰡕(1961), 󰡔도시 전망(The urban prospect)󰡕(1968), 기술의 신화를 비판한 󰡔기계의 신화 I: 기술과 인간 발전(The myth of machine I: Technics and human development)󰡕 (1967)와 󰡔기계의 신화 II: 펜타곤의 권력(The myth of machine II: The pentagon of power)󰡕(1970)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는 기술, 예술, 도시, 건축 등을 연구한 미디어 생태학 자이자 막무가내식 도시 계획이나 고속도로 건설에 반대 하고 핵무기와 전쟁에 반대한 사회평론가였다.

기술 중심적 역사 기술 루이스 멈퍼드는 기술을 중심으로 문명사를 원시기술 (eotechnic) 시기(대략 A.D. 1000년에서 1750년 사이), 구기술 시기(1750년 이후), 그리고 신기술 시기(20세기 초) 등 세 시기로 구분한다. 각 시기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자연환경을 변화시키는 에너지원, 생산 양식, 노동 유형 을 갖는다고 봤다. 원시기술 시기는 물, 바람, 나무 등의 천연자원을 주로 사용했고, 따라서 생산 활동은 수로나 운하가 건설될 수 있는 곳에 집중되고, 천연 재료를 정교하게 다루는 장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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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활동의 중심을 이룬다. 반면 구기술의 시기는 석탄 과 철을 주로 사용함으로써 광산이나 운하와 같은 기반 시 설이 만들어지고 산업의 중심이 기능공과 장인의 작업장 에서 중공업 공장으로 바뀐다. 이에 따라 공장의 임금노 동자는 돈을 살 수 있는 기계의 부품으로 전락하고 자본가 계급이 생겨나는 등 기계화와 산업화가 일어난다. 마지막으로 신기술 시기는 전기를 에너지원으로 삼는 시기로서, 멈퍼드는 이러한 신기술 시기가 전기의 유기적 인 성격으로 인해 자연 파괴적, 기계적, 비유기적, 비인간 적 특징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있는 시기로 보았다. 물론 신기술 시기에 대한 낙관론은 세계대전의 폐해를 경험하 면서 비판론으로 바뀌게 된다. 그의 기술 문명사는 기술의 역할을 중심으로 인류의 역 사를 기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디어 생태학적 탐구의 초 기 사례를 제공한다. 당대 지배적인 기술 형태의 효과로 서 문화의 특성에 접근함으로써 자크 엘룰(Jacques Ellul) 의 󰡔기술 사회(Technological society)󰡕(1964), 닐 포스트 먼(Niel Postman)의 󰡔테크노폴리(Technopoly)󰡕(1992) 등 기술에 관한 다양한 연구의 초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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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 이데올로기 멈퍼드는 시계가 인간 활동을 제어하고 조정하는 기계장 치로서 기계적 이데올로기를 확산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 다고 말한다. 해롤드 이니스(Harold Innis)와 마셜 매클루 언(Marshal McLuhan)은 인쇄술이 근대적 서구사회로 이 행하는 과정의 기반이 되었다고 보는 반면, 멈퍼드는 기계 식 시계가 서구 자본주의의 생활양식을 구성하는데 기여 했다고 주장한다. 멈퍼드는 수도사들이 기도의 의무를 충실히 이해하기 위해 발명된 기계가 인간의 활동을 통제하고 동시화시키 는 기준이 되어 “기계의 규칙적인 집단 리듬과 박자”에 따 라 일과를 진행시키고 있다고 보았다. 처음에는 시간을 지키기 위해 발명되었으나 이후에는 시간을 지키는 것 외 에 “시간에 따라 일하기, 시간 계산하기, 시간 할당하기” 등에 활용되고, 시간이 흐르면서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 행 위를 동시화 및 표준화하고 제어하는 기능을 갖게 된 것 이다. 기계식 시계를 근대 산업자본주의 도시의 생활양식이 나 노동의 리듬을 구축하는 기술로서, 시간을 유기적인 삶 의 순환주기에서 벗어나 측정 가능한 “수열의 독립 세계” 로 만들었다고 봤다. 서구 근대사회에서 자연의 유기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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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에 맞추어 이루어졌던 노동의 흐름은 기계적 시간에 의해 표준화되고 조직화되었으며, 노동의 대가는 시간 단 위로 계산되게 된다. 자연의 순환적인 리듬에서 벗어나 양적으로 잴 수 있고 목적에 따라 구분을 하고 평가될 수 있는 시간 개념이 생겨난다. 또한 전신의 발명은 멀리 떨 어져 있는 구역(region)끼리 교류를 가능하게 하고, 따라 서 이들 간 시간을 조율하고 동시화시킬 시간 개념 또한 필요해졌다. 이렇게 구축된 기계적 시계 체계는 오늘날까지도 우리 의 모든 활동과 과정을 조정하고 제어하는 기준으로서 우 리의 삶을 조직하고 경험하는 일상 과정에 깊이 개입하고 있다. 멈퍼드는 선두적인 근대 기술로서 시계가 미친 영 향력을 살펴보면서, 발명가의 의도와 다르게 전개되는 기 계 이데올로기의 효과에 주목하게 된다. 이렇게 의도치 않은 기계 이데올로기의 효과는 미디어 생태학의 주된 관 심사라고 할 수 있다.

기술 유기체론 멈퍼드가 기술 유기체란 용어를 구체적으로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사상에는 그러한 개념이 많이 나타나고 있 다. 멈퍼드에게 기술적인 것과 생물학적인 것의 분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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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위적인 것이라고 본다. 그는 “인간의 기술적 발명품이 생명체가 보여 주는 생물 활동과 유사”(Mumford, 1952) 하고, 더 나아가 기술이 유기체의 일부라고 주장한다 (Mumford, 1967). 멈퍼드는 이미 곤충, 새, 포유동물들이 잘 얽은 둥우리, 기하학적인 벌집, 도시와 같은 개미집이나 굴 등을 만들어 왔기에 인간만이 유일한 도구 제작자로 보는 것은 문제라 고 생각했다. 또한 고대 그리스어 ‘테크네(techne)’는 생산 활동과 ‘순수’예술 혹은 상징 예술을 분리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과거에는 유기적인 것, 미적인 것, 기술적인 것 사이에 균형이 존재했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균형은 기계화,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깨졌다고 생각한다. 그는 인위적이고 기계적인 것에서 유기적인 것으로 돌 아갈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Mumford, 1934, p.371). 기술 이 생물학적인 것의 확장이라고 보는 기술 유기체론이나 기계적인 것에서 유기적인 것을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은 매우 선지적인 미디어 생태학적 시각이다. 이러한 시각은 이후 매클루언의 ‘미디어는 감각기관의 확장’이라는 생각 이나 미디어 편향성에 대한 균형을 회복해야 한다는 여러 미디어 생태학자의 주장을 앞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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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llul, J.(1964). The technological society. New York: Vintage. 박광덕 옮김(1996). 󰡔기술의 역사󰡕. 서울: 한울. Mumford, L.(1922). The story of Utopia. New York: Boni & Liveright. 박홍규 옮김(2010). 󰡔유토피아 이야기󰡕. 서울: 텍스트. Mumford, L.(1924). Sticks and stones: A study of American

architecture and civilization. New York: Boni & Liveright. Mumford, L.(1931). The brown decades: A study of the arts in

America, 1865∼1895. New York: Harcourt Brace. Mumford, L.(1934). Technics and civilization. New York: Harcourt Brace. Mumford, L.(1938). The culture of cities. New York: Harcourt Brace. Mumford, L.(1941). The south in architecture. New York: Harcourt Brace. Mumford, L.(1945). City development. New York: Harcourt Brace. Mumford, L.(1952). Art and technics.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김문환 옮김(1999). 󰡔예술과 기술󰡕. 서울: 민음사. Mumford, L.(1956a). From the ground up. New York: Harcourt Brace. Mumford, L.(1961). The city in history: Its origins, its

transformations, and its prospects. New York: Harcourt Brace & World. 김영기 옮김(2001). 󰡔역사 속의 도시󰡕. 서울: 명보문화사. Mumford, L.(1967). The myth of the machine: Ⅰ. Technics 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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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 development. New York: Harcourt Brace & World. Mumford, L.(1968). The urban prospect. New York: Harcourt Brace & World. Mumford, L.(1970). The myth of the machine: Ⅱ. The pentagon

of power. New York: Harcourt Brace & World. 김종달 옮김(2012). 󰡔기계의 신화2(권력의 펜타곤)󰡕. 경북대학교출판부. Nystrom, C.(1973). Towards a science of media ecology: The formulation of integrated conceptual paradigms for the study of human communication systems. Unpublished doctoral dissertation, New York University, New York. Postman, N.(1992). Technopoly: The surrender of culture to

technology. New York: Vintage books. 김균 옮김(2001). 󰡔테크노폴리󰡕. 서울: 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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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자크 엘룰: 기술사회론

자크 엘룰은 현대 기술 사회가 효율적인 기술 이용을 우선시하는 ‘테크닉(la technique)’의 사회라고 본다. 여기서 ‘테크닉’은 영어의 기법이나 기술과는 달리 “최고의 효율성을 주는 기술을 위한 결정만을”하는 체계, 세계관 혹은 삶의 방식을 가리킨다. 그는 기술맹종적인 체계와 이와 관련된 기술 담론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현대 기술 사회에 대한 미디어 생태학적이며 신학적인 진단을 내놓는다.


인물 자크 엘룰(Jacques Ellul, 1912∼1994)은 프랑스 보르도 에서 태어나 보르도대학과 파리대학에서 교육을 받았다. 19세에 마르크스주의자가 된 그는 마르크스를 공부하며 정치적·경제적·사회적 문제를 해석하는 방법을 배웠고 22세에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유한한 역사를 초월하는 시 각’을 경험하게 된다. 마르크스 사상과 성서의 계시 모두 에서 영향을 받으면서, 그의 시각은 사회학적 차원과 신학 적 차원 모두를 갖게 된다(Christians, 2006). 엘룰은 1936년 법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보르도대학 의 법학 및 정치학 교수가 되면서, 인간의 자유와 기독교 신앙을 위협하고 있는 현대 기술 사회의 문제에 집중하게 된다. 그는 이러한 현대 기술 사회의 문제를 효율적인 기 술 이용을 우선시하는 ‘테크닉(la technique)’의 문제라고 본다. 그는 사회학적 차원에서 테크닉의 문제를 󰡔기술 사회(The technological society)󰡕(1964)라는 책을 통해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 책의 논의는 이후 󰡔선전: 인간 태도 의 형성(Propaganda: The formation of men’s attitudes)󰡕 (1965)와 󰡔기술 체계(The technological system)󰡕(1980), 그리고 󰡔기술의 허세 (The technological bluff)󰡕(1990)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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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진다. 󰡔선전󰡕은 인간 행위를 제어하며 기술 체계에 동화되도록 만드는 테크닉의 한 유형으로 선전을 검토했 고, 󰡔기술 체계󰡕는 기술을 사회 구조를 변화시키는 체계 이자 삶의 모든 영역에 존재하는 환경으로 바라보면서 이러한 기술체계의 특성과 과정을 논의한다. 󰡔기술의 허 세 (The technological bluff)󰡕는 기술에 관한 담론이 컴 퓨터와 기술 네트워크와 같은 기술의 발달이 우리의 문 제를 해결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실제로는 더 많은 문제 를 만들고 있다는 점을 주목한다. 이와 함께 󰡔말의 굴욕 (The humiliation of the word)󰡕(1985)는 그의 사회학적 분석과 신학적 관심을 결합시켜 이미지가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서 신의 진리를 전달하는 말이 어떻게 평가절하되 고 있는지를 논의했다. 엘룰은 50여 권의 책과 수많은 논문을 썼고, 이 가운데 는 신학적 연구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엘룰의 사회학적 연구와 신학적 연구는 별개로 전개되기보다는 서로의 주 장을 뒷받침하며 현대사회의 ‘테크닉’ 문제를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그는 기술맹종적인 체계의 문제뿐만 아니라 이 러한 기술 담론에 순응하게 만드는 대중 미디어 환경에 주 목한 미디어 생태학자로서, 현대 기술 사회에 대한 비판적 이면서도 신학적인 진단을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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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닉 엘룰은 현대사회가 효율적인 기술의 이용을 무엇보다 중 요시하는 기술 사회라고 말한다. 그는 일반적인 의미의 기법(technique)이나 기술(technology)과는 다른 의미를 가진 ‘테크닉(la technique)’이란 용어를 사용하는데, 이러 한 테크닉은 “최고의 효율성을 주는 기술을 위한 결정만 을”(1964, p.80)하는 체계, 세계관 혹은 삶의 방식을 가리 킨다. 테크닉의 문제는 ‘기술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가 장 효율적인 기술은 무엇인가’와 같은 기술 담론이 ‘무엇 을 위해 기술을 사용할 것인가’, ‘기술을 사용해야만 할까’ 와 같은 도덕적 판단을 대신하면서 생겨난다. 그에 따르면 현대사회는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기술을 발전시켰고, 이러한 효율성을 지향하는 기술 담론은 기술 발전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연적인 것으로 받 아들이게 한다(1964, 1990). 지진, 화산 폭발, 태풍 등 자 연 재해가 일어났을 때 인간은 이에 대응하는 수단을 갖기 때문에 더 이상 무기력하지 않은 것처럼 느낄 수 있다. 하 지만 이렇게 기술에 의존함으로써, 기술 발전은 필연적이 고 자연과 사회는 더 이상 기본적인 환경이 아닌 부차적이 고 위협이 도사리는 곳으로 전락하게 된다(Ellul, 1989, 134∼135: Christians, 2008 재인용). 엘룰은 ‘효율성’을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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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모든 것을 기술에 의존하고 도덕적 판단보다 기술 발전 의 ‘필연성’이 의사결정의 기준이 되면서 사회가 비인간화 된다고 주장한다. 엘룰(Ellul, 1980)에 따르면 테크닉은 개인이나 집단에 의해 조작될 수 있는 일종의 도구가 아니라 특정한 방향성 을 가진 기술 체계다. 그것은 스스로의 양식과 필요에 따 라 자가 확대하는 ‘자율성’을 가진다. 엘룰은 테크닉이 “본 질적으로 인간으로부터 독립되어 있고, 인간은 그것 앞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무장해제 된” 상태이기에, 인간 이 기술 생산의 주인이라고 믿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라 고 본다(Ellul, 1964, p.306). 그가 만약 오늘날의 커뮤니 케이션 상황을 본다면, 우리가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를 통 해 더 많은 사람과 더 효과적인 소통을 하고 더 나은 인간 관계를 만들어 간다고 믿고 있지만, 실상은 미디어에 대한 의존도만 높아질 뿐 얼굴을 맞대고 나누는 친교의 가치가 평가절하되고 스스로 소통의 과정으로부터 소외되고 있 다고 진단할 것이다.

선전 엘룰에 따르면 과거의 선전이 “개인의 사상이나 의견을 바꿔 어떤 정책을 따르게” 하는 수사학적 기법이라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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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 선전은 단순히 사상이나 의견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행동을 선동하는 것”, “개인이 행위 과정에 비이성적으로 매달리도록 만드는 것”, “반사작용을 풀어놓는 것”, “적극 적이고 신화적인 믿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1965, pp.25∼27). 엘룰은 현대사회의 선전이 어떤 정책을 이해 시키고 동의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특정한 조건반사와 맹 종을 유도해 내는 일련의 방법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러 한 선전에는 개인이 현재의 상태에 계속해서 만족하도록 하는 ‘통합의 선전’, 개인을 행동하게 만드는 목적을 가진 ‘동요의 선전’, 오락, 광고, 학교, 예술, 종교 등을 통해 작 동하는 미묘한 형식의 ‘사회학적 선전’ 등 다양한 범주가 있다고 말한다(1965). 엘룰은 기술 사회의 맥락에서 선전 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선전은 테크닉을 믿고 따르는 기술 담론 혹은 󰡔기술의 허세󰡕(1990)를 유지하는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엘룰은 선전이 맹종과 믿음을 유도하기 위해 인간의 심 리와 행동에 대한 사회과학적 조사기법이나 연구결과를 활용하고 무엇보다 모든 대중매체를 전방위적으로 활용 하고 있다고 본다. 엘룰의 관심사는 미디어 자체보다는 테크닉의 문제 또는 기술맹종의 체계다. 하지만 그는 미 디어가 이러한 신화에 대한 집단적 믿음을 심어주고, 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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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동화된 상태로 만드는 주요 수단이라고 본다. 엘룰은 대중매체가 개인들의 지속적, 영구적, 전체적 환경을 구 성하며 선전이 미치는 영향을 알아채지 못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개인과 기술 사회의 요구를 본질적으로 연결”하 고 있다고 보았다(1964, p.22). 엘룰은 영상 미디어에 대해 비판적이다. 그는 “정치적 원칙이 프로그램으로, 프로그램이 슬로건으로, 슬로건이 영상”으로 환원되는 과정 속에 정치적 메시지가 사소한 것이 되어버린다고 말한다(1964, p.365). 엘룰(Ellul, 1985)은 영상 기술과 이미지 문화가 면대면 상호작용과 말의 역할을 약화시킴으로써 인간 커뮤니케이션 전반을 악화하고 인간의 정치적, 종교적, 철학적 메시지가 제대 로 다뤄지지 못한다고 본다. 엘룰은 영상 이미지가 즉각 적이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실제를 전달하는 반면, 말은 진 리를 전하고 추론할 수 있게 한다고 주장한다. 이미지가 지배하는 사회가 되면서, 추상적인 진리를 논하고 성찰할 수 있게 해주는 말의 가치가 평가절하되고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말이 무기력해진 상태를 엘룰은 “말의 굴욕(The humiliation of the word)”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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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결정론? 엘룰 이전에도 멈퍼드(Mumford, 1934)와 같이 기술을 체 제와 환경으로서 주목한 학자들이 있다. 멈퍼드는 지배적 인 기술의 유형과 그것이 가진 이데올로기 차원에 주목하 면서 시대사를 구분하고 당대의 문화적 특징을 이해했다. 엘룰도 기술 체제를 중심으로 시대를 이해한다. 하지만 기술 자체보다는 기술에 모든 것을 의존하는 의식 세계와 그것을 유지하는 체계에 관심을 가진다. 현대사회는 기술 의 효율성과 필연성을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풍토와 담 론이 팽배해 있다고 보면서, 이러한 테크닉의 세계가 갖는 폐해를 살펴본다. 포스트먼도 기술에 정복당한 “테크노폴리”(1992)를 기 술하면서 엘룰과 비슷한 논의를 전개한다. 포스트먼은 현 대의 테크노폴리 사회에서는 “인간적 삶의 의미를 기계와 기술에서 찾아야” 하고 “모든 문화적 삶의 형태가 기법과 기술의 지배 권력에 굴복”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기술 담 론이 문화적·도덕적 가치를 앞질러 ‘자가발전’하고 있다 고 본 것이다. 엘룰과 포스트먼의 비판적 진단이 기술결 정론자나 네오러다이트(첨단기술 반대주의자)의 주장처 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포스트먼은 미디어 교육을 통해, 그리고 엘룰은 종교적 신앙을 통해 인간이 개입할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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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지를 남겨놓는다. 엘룰은 기술이 자율적이고 자기 충족 적인 발전을 하고 있지만, 종교를 통해 도덕적 가치를 회 복하면서 기술 발전의 필연성에 대한 환상을 깨고 테크닉 에 종속된 현재의 상황을 극복해 나갈 수 있다고 본다. 이 러한 논의는 신학적 영역의 문제일 수 있으나, 기술 환경 을 성찰적으로 분석하고 테크닉의 신화를 탈신화화하려 는 노력은 미디어 생태학 분야에 중요한 문제의식을 제공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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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Christians, C.(2006). Ellul as theologian in counterpoint. In Lum, C.(Ed.). Perspectives on culture, technology and

communication: The media ecology tradition, 117∼142. Cresskill, NJ: Hampton Press. 이동후 옮김(2008). 󰡔미디어 생태학 사상󰡕. 서울: 한나래. Ellul, J.(1964). The technological society. New York: Vintage. 박광덕 옮김(1996). 󰡔기술의 역사󰡕. 서울: 한울. Ellul, J.(1965). Propaganda: The formation of men’s attitudes. New York: Vintage. Ellul, J.(1980). The technological system. New York: Continuum. Ellul, J.(1985). The humiliation of the word. Grand Rapids, MI: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Ellul, J.(1990). The technological bluff. Grand Rapids, MI: Eerdmans. Mumford, L.(1934). Technics and civilization. New York: Harcourt Brace. Postman, N.(1992). Technopoly: The surrender of culture to

technology. New York: Vintage books. 김균 옮김(2001). 󰡔테크노폴리󰡕. 서울: 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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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엘리자베스 에이젠시타인: 인쇄문화 연구

에이젠시타인은 역사학에서 주변적으로만 다루어졌던 인쇄 미디어를 중심 주제로 삼음으로써 인쇄술의 확산이 유럽의 정치적·문화적·인식론적 변화와 어떻게 상호 연관되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해 준다. 그는 활판 인쇄술이 어떻게 초기 근대 유럽 문화에 새로운 전환점을 가져왔는지를 상세히 기술하면서 인쇄술이 가졌던 미디어 생태학적 효과를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인물 엘리자베스 에이젠시타인(Elizabeth Eisenstein, 1923∼) 은 활판인쇄술이 유럽 문화에 미친 영향력을 광범위하게 연구한 미국의 역사학자다. 그는 1953년 래드클리프대학 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1975년부터 미시간대학 교수로 있다가 1988년 은퇴해 이 대학의 명예교수가 된다. 1979 년에 출간한 󰡔변화의 동인으로서의 인쇄술: 초기 근대 유럽의 커뮤니케이션과 문화의 변화(The printing press as an agent of change: Communication and cultural transformations in early modern Europe)󰡕는 그의 대표 작이자 환경으로서 인쇄 미디어의 역할을 살펴보는 중요 한 미디어 생태학 저서다. 두 권으로 이루어진 750쪽짜리 이 책은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르네상스, 종교개혁, 근 대과학의 출현 등 초기 근대 유럽의 변화와 어떻게 관계 되는지를 역사적으로 세밀하게 살펴보고 있다. 이 책은 1983년 󰡔인쇄 미디어 혁명(Printing revolution in early modern Europe)󰡕이라는 한 권의 책으로 요약되어 출판 된다. 이후 계몽주의와 프랑스혁명 당시 정치적·문학적으 로 중요한 역할을 했던 해외 출판물과 출판사들을 조명한 󰡔해외의 그러브 스트리트: 루이 14세부터 프랑스혁명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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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프랑스의 범세계적 인쇄 양상(Grub Street abroad: Aspects of the French cosmopolitan press from the age of Louis XIV to the French Revolution)󰡕(1992)을 출판한 다. 가장 최근작은 󰡔신성한 기술, 지옥의 기계: 첫인상에 서 결말의 감지까지 서구의 인쇄술 수용 (Divine art, infernal machine: The reception of printing in the West from first impressions to the sense of an ending)󰡕(2011) 으로서, 흑주술과 신성한 예술이라는 극과 극의 이미지를 오갔던 첫인상에서 미래에 대한 예측에 이르기까지 지난 5세기 동안 서구 사회가 인쇄술에 대해 가졌던 태도를 기 술한다. 에이젠시타인은 역사학에서 주변적으로만 다루 었던 인쇄 미디어를 중심 주제로 삼음으로써 인쇄술의 확 산이 유럽의 정치적·문화적·인식론적 변화와 어떻게 상호 연관되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해준다. 그는 인쇄 미디어와 문화 변동의 관계를 역사적으로 분석 한 대표적인 미디어 생태학자라고 할 수 있다.

인정받지 못한 혁명 에이젠시타인은 󰡔변화의 동인으로서의 인쇄술: 초기 근대 유럽의 커뮤니케이션과 문화의 변화󰡕(1979)란 책을 펴내 면서, 인쇄술이 발명된 이후 나타난 초기 근대 유럽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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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인정받지 못한 혁명(unacknowledged revolution)’이 라고 부른다. 그는 그동안 역사학계가 인쇄술이 다양한 사회 변동에 미쳤던 광범위한 영향력을 간과하고 있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초기 유럽의 인쇄문화를 계몽주의 전 통이나 18세기 사상사에 연결시켜 살펴보지 못했고, 책은 사상의 유포 도구나 상품으로만 언급될 뿐 이 시기의 문화 변동에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총체적으로 바라 보지 못했다고 보았다. 에이젠시타인은 새로운 인쇄술의 도입이 서구 근대 역사의 중대한 전환점을 이루고 있다고 보면서, 이를 역사의 전면에 부각시킨다. 에이젠시타인이 역사학계에서 이렇게 주변화되었던 인쇄 미디어에 관심을 가진 것은 매클루언 때문이다. 그 는 매클루언에 대해 “내가 고려하지 않았던, 그리고 바사 르대학이나 하버드대학의 교수님들도 관심 갖게 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변화를 소개해준 데 대해 마음의 빚을 느 낀다”고 말한다(Ralon, 2010). 그는 인쇄술의 사회적·심 리적 영향력을 논의한 매클루언에게 큰 영감을 받는다. 하지만 “그가(매클루언이) 아무렇지도 않게 역사적 자료 를 다루는 것에 깜짝 놀랐다”고 말하며 매클루언의 주장 이 역사적으로 부정확하고 방법론적으로도 문제가 있다 고 보았다. 에이젠시타인은 기술결정론적 접근을 경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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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인쇄술이 서구 사회의 변화를 일으킨 유일한 요인이 아 닌 여러 요인 중의 하나라는 점을 강조한다. 변화의 요인 중 하나로서 인쇄술이 유럽 지식 사회의 데이터 수집, 보 관, 검색, 유포 방식을 어떻게 변화시켰고 기존에 존재했 던 다양한 사회적 요인들과 어떻게 상호작용했는지를 살 핀다. 그는 유럽 독서층의 언어, 종교, 사회, 경제의 다양 성을 고려할 때 매클루언이 말한 ‘활자 인간’을 구체적으 로 상상해 보기 어렵다고 비판한다. 비유적이고 추상적인 차원이 아닌 역사적 사실에 근거를 둔 구체적인 역사 기술 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에이젠시타인은 이러한 상세한 역사 기술을 위해 문자해독력을 가지고 있는 엘리트 집단 에 미친 인쇄술의 영향력을 주목했다. 󰡔변화의 동인으로서의 인쇄술󰡕이 출판되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이후, 에이젠시타인은 자신이 언급한 ‘인정 받지 못한’이란 단어가 더 이상 적절하지 않다고 말한다 (Ralon, 2010). 학계에서 인쇄술 등장에 관해 다양한 논쟁 이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혁명’이라는 단 어는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본다. 그는 ‘혁명’이 라는 용어를 쓰면서 단기적 의미뿐만 아니라 장기적 의미 를 염두에 두었다고 말한다. 단기적으로는 유럽에서 인쇄 물과 인쇄소가 빠르게 확산하면서 생겨난 혁명적 변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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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칭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술의 발달에 따라 인쇄물의 제작과 배포되는 방식 및 속도가 달라지면서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혁명’을 말한다. 에이젠시타인의 인쇄문화 연구는 뉴미디어로서 활판인쇄술이 어떻게 근대 유럽 문 화에 새로운 전환점을 가져왔는지를 상세히 기술하면서 커뮤니케이션의 ‘혁명’과 문화적 변동의 관계를 살펴본다. 초기 근대 유럽에서 활판인쇄술이 가졌던 미디어 생태학 적 효과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있는 것이다.

인쇄술의 고정성 에이젠시타인은 인쇄술이 도입되면서 초기 근대 유럽의 지적 세계가 변화하고 사회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 ‘인쇄술의 고정성(typographical fixity)’ 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한다(Eisenstein, 1979; 1983). 인쇄술은 기존의 필사보다 효과적으로 그리고 동일하게 텍스트를 재생산하면서 지식의 보존과 축적을 용이하게 해준다.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에 필경사들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문서를 복사했지만, 이렇게 손으로 쓰는 복사 본은 생산 자체가 쉽지 않았고 필경사들의 손을 거치면서 변질되기 쉬웠으며 배포와 보관 또한 쉽지 않았다. 인쇄 술은 발행부수가 몇 권이건 간에 복사본의 각 장이 정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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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내용을 갖게 해줌으로써, 텍스트나 이미지를 물리 적으로 안전하게 보존할 수 있게 한다. 뿐만 아니라 소수 의 필경사들에 의해 생산된다는 제약에서 벗어나 광범위 하게 생산되고 유포될 수 있게 해주었다. 인쇄술이 등장 하면서 학자들은 흩어져 있는 원고를 찾거나 복사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기보다는 인쇄된 텍스트들을 비교하고 수 정하며, 더 나아가 새로운 데이터를 수집하는 데 노력을 기울일 수 있게 되었다. 초기 인쇄업자들이 펴냈던 것은 새로운 문헌이 아니라 과거에 필경사들이 생산해 왔던 텍스트들이다. 기존 텍스 트들이 출판되면서 흩어졌던 텍스트를 모으고 비교하며 불일치하거나 모순된 것을 발견하고 수정하는 작업이 이 루어졌다. 또한 지도, 차트, 그림 등을 영구적으로 전달할 수 있게 되어 지도제작법, 천문학, 해부학, 식물학 등 분야 의 기존 이론을 새롭게 관찰된 것들과 대비하며 검토할 수 있게 된다.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의 학자, 장인, 번역가 등이 인쇄소에 모여 협력하면서, 필경사들이 보존했던 불 완전하고 파편화되었던 지식 체계가 안전하게 보존되고 축적될 수 있게 된다. 지식 생산과 전수의 조건이 바뀌게 된 것이고, 이에 따라 르네상스, 종교개혁, 과학혁명 등이 가능하게 된다. 인쇄술이 등장하기 이전에도 문예부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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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단적 종교운동이 있었으나 커뮤니케이션 미디어가 이를 뒷받침해 주지 못해 일시적인 것에 그치고 말았다. 하지만 인쇄술의 고정성을 통해 지식의 보전과 확대가 손 쉬워지면서 유럽 전체에 영향을 미친 르네상스와 종교개 혁이 가능해졌고 관찰에 근거한 근대과학이 출현할 수 있 었다.

변화의 복잡성 에이젠시타인은 인쇄술이 도입되면서 일어난 변화는 하 나의 이야기로 정리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인쇄술을 수용 하는 집단의 언어, 종교, 사회, 경제 등의 조건에 따라 달 라질 수 있고 수용하는 집단이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 오기도 한다(Eisenstein, 1979; 1983). 예를 들어, 구텐베 르크는 자신의 발명품이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는 ‘평화로 운 기술’이 될 것을 희망했지만, 로마교황 체제에 저항하 는 종교개혁 운동을 도우며 기독교의 평화를 파괴했다. 1517년 루터가 로마 교회의 권리 남용에 관한 95개조의 반박문을 내기 전에도 로마교회에 저항하는 이단 운동이 있었다. 하지만 인쇄술의 보존력과 유포력은 루터의 저항 에 힘을 실어주었다. 당시 판매를 위해 경쟁을 벌이던 인 쇄업자들에 의해 루터의 글은 라틴어에서 독일어로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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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었고 광범위하게 유포되었다. 신학자들의 논쟁이 국제 적인 논쟁거리가 된 것이다. 인쇄술이 자국어의 표준화를 강화하며 각종 문서를 지역의 언어로 번역할 수 있게 도와 줌으로써 교황청에 반대하는 담론이 널리 퍼질 수 있었다. 모든 이가 인쇄된 성경을 소유함으로써 스스로 하느님의 말씀을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한 루터 자신조차도 자신의 글이 그렇게 많은 장소에 퍼진 것이 ‘미스터리’라며 인쇄 술의 영향력에 놀라워했다. 에이젠시타인은 이러한 인쇄술의 파급효과가 천편일 률적으로 나타나기보다는 새로운 지식 유포 방식에 대한 해당지역의 반응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다고 본다. 개신교 가 지배적인 지역은 중앙집권적인 가톨릭 지역보다 인쇄 물 출판에 대한 검열이 덜했고, 따라서 상대적으로 검열에 자유로운 인쇄소가 많이 생겨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 한 인쇄소에서 나온 토착어로 번역된 성경과 책자들은 평 민들의 문자 해독률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에이젠시타인 은 “신교도가 구교도보다 특정 ‘근대화의’ 추세와 좀 더 밀 접한 관계가 있었다면, 그것은 주로 종교개혁자들이 이러 한 새로운 힘을 처음에 견제하기보다는 강화했기 때문”이 라고(Eisenstein, 1983, p.168) 말한다. 그는 인쇄술이 종 교개혁과 같은 초기 근대 유럽의 변화를 일으키지는 않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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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 인쇄술로 인해 확대된 문자해독력이 없이 성공하기 는 어려웠다고 본다. 에이젠시타인은 󰡔변화의 동인으로 서의 인쇄술󰡕의 결론 부분에서 “역사가들에게 분명히 규 정되지 않은 ‘근대성’의 형성에 관여한 요소들을 찾으라고 요구하는 것”보다 “각각의 움직임에 개입된 커뮤니케이션 변화의 효과를 고려하는 것이 좀 더 전망 있어 보인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접근은 근대성에 관한 논쟁들이 숨겨놓은 “관계들”을 밝힐 기회를 제공한다고 본다. 미디 어 환경과 사회 문화적 변동 과정 간의 “관계들”은 미디어 생태학적 관심사라고 볼 수 있다. 에이젠시타인은 지식 보존과 유포의 새로운 양식인 인쇄술이 수용되면서 이루 어지는 초기 근대 유럽의 문화적 지적 변화를 논의하며 이 러한 “관계들”을 역사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해준다. 그리 고 이러한 변화가 획일적이지 않고 복잡한 것임을 구체적 으로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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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isenstein, E.(1979). The printing press as an agent of change:

Communications and cultural transformations in early modern Europe. Cambridge, UK: Cambridge University Press. Eisenstein, E.(1983). The printing revolution in early modern

Europe. Cambridge, UK: Cambridge University Press. 전영표 옮김(2008). 󰡔인쇄미디어 혁명󰡕.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Eisenstein, E.(1992). Grub Street abroad: Aspects of the French

cosmopolitan press from the age of Louis XIV to the French Revolution. Oxford: Clarendon Press. Eisenstein, E.(2011). Divine art, infernal machine: The reception

of printing in the West. Philadelphia, PA: University of Pennsylvania Press. Ralon, L.(2010). Dr. Eisenstein was interviewed by Laureano Ralon. Online: http://figureground.ca/interviews/elizabeth-eisen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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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수잔 랭어: 상징 이론

수잔 랭어의 상징 형식에 관한 이론은 미디어로 매개되는 표현형식과 그것의 환경으로서의 특성을 이해하려는 미디어 생태학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다. 그는 인간이 자신의 경험을 상징으로 재현할 수 있는 “상징적 변형(symbolic transformation)”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다른 생물들과 구별된다고 말한다. 이러한 상징 형식은 언어와 같은 “추론적 상징”과 “표상적 상징”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이렇게 서로 다른 상징 형식은 서로 다른 재현 구조와 기능을 갖는다.


인물 수잔 랭어(Susan K. Langer, 1895∼1985)는 미국의 철학 자로서, 그의 상징 이론은 미디어 생태학이 기대는 이론적 토대 중 하나다. 1895년 뉴욕시에서 태어난 그는 1926년 래드클리프대학에서 앨프리드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의 지도로 “의미의 논리적 분석”이란 주제의 학위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는다. 랭어는 에른스트 카시러(Ernst Cassirer)의 영향을 받아 언어, 과학 지식, 의례, 신화, 예술 등의 상징 형식에 관해 연구했다. 초기에는 철학의 목적과 방법 그리고 상징 논리 를 소개하는 󰡔철학의 실천(The practice of philosophy)󰡕 (1930)과 󰡔상징 논리 개론(An introduction to symbolic logic)󰡕(1937)을 썼으나, 1942년 그는 형식 논리에서 벗어 나 상징을 만드는 인간의 능력에 주목한 󰡔새로운 경향의 철학(Philosophy in a new key)󰡕을 출판하게 된다. 그를 학문적으로, 그리고 대중적으로 인정받는 미국의 철학자로 만들어준 이 책은 일상의 감각 경험을 상징적 형 태로 바꾸는 인간의 정신 구조를 철학적으로 다루면서 상 징 형식과 그것의 기능을 본격적으로 논의한다. 1953년에 는 󰡔새로운 경향의 철학󰡕의 일부로 다루었던 예술에 관한 논의를 확장시켜 󰡔감정과 형식(Feeling and form)󰡕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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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출판한다. 이 책에서 랭어는 인간의 다양한 감정 과 경험이 음악, 회화, 건축, 무용, 문화 등의 예술을 통해 어떻게 상징적 형태로 표현되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이후 언어, 꿈, 의례, 신화, 예술 등 인간 고유의 활동을 가능하 게 한 인간 정신 구조의 기원과 진화를 탐구한 세 권의 책 󰡔정신: 인간 감정에 관한 소고(Mind: An essay on human feeling)󰡕(1967∼1982)를 쓴다. 그의 상징 형식에 관한 이론은 미디어로 매개되는 표현 형식과 그것의 환경으로서 특성을 이해하려는 미디어 생 태학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다. 나이스트롬(Nystrom, 2006)은 랭어가 논의한 언어 및 다른 상징 형식의 분석이 “적절한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에 미디어 생태학의 기 초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 랭어는 여러 가지 상징체계의 구조가 어떻게 그것의 표현과 반응을 형성하는지 질문하 면서 미디어 생태학적 이론에 큰 기여를 한다.

상징적 변형 랭어(Langer, 1942; 1953)는 인간이 자신의 경험을 추상 화하며 상징으로 재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다 른 생물들과 구별된다고 말한다. 경험을 상징으로 바꾸는 인간의 “상징적 변형(symbolic transformation)” 능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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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정신 구조의 독특한 특성으로서, 다른 생물들의 기호 (sign)를 다루는 능력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말한다. 기호는 어떤 상황을 신호로 알리며 특정한 행동이나 반 응을 유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침팬지가 외부에서 누군 가 침입하고 있다는 상황을 알리기 위해 소리를 지르며 신 호를 보내면, 이러한 신호를 받은 다른 침팬지들은 경계와 대피라는 반응을 보인다. 신호는 특정한 행동과 반응을 자극함으로써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랭어에 따르 면 인간은 기호를 신호로 받아들이며 이것이 유발하는 특 정한 행동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상징적으로 받 아들일 수도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차를 운전하다가 소 방차의 사이렌 소리를 들었을 때, 차를 천천히 몰며 한쪽 으로 비키는 행동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파괴적인 화 재의 이미지나 희생적인 소방관의 모습 등을 관념적으로 떠올리며 신호가 아닌 상징으로 반응할 수도 있다. 인간 에게 기호는 행동을 유발하는 신호일 뿐만 아니라 어떤 생 각을 떠올리는 상징이 될 수 있다. 랭어는 기호의 상징 기 능과 신호 기능을 구분하면서, 인간 언어가 생존과 실용적 목적으로 신호 체계를 정교화시킨 것이 아니라 경험을 상 징으로 바꾸는 인간의 정신 구조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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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론적 상징 랭어는 경험을 상징으로 바꾸려는 인간 고유의 능력에 의 해 두 가지 서로 다른 재현 형식이 등장했다고 말하는데, 그 하나가 언어와 같은 “추론적 상징(discursive symbols)” 이다(1942). 추론적 상징은 추상적인 단위로 특정한 의미 를 떠올리게 하는 재현 방식으로서, 문화적인 약속과 관습 에 의해 만들어진 글자나 숫자를 예로 들 수 있다. 글자나 숫자는 가리키는 대상과 물리적으로 유사하지는 않지만 대상을 떠올리게 하고 개념화하는 표기 방식이다. 추론적 상징은 사회적 동의에 기반하여 임의적으로 만 들어지고 특정한 경험과 개념을 상기하거나 의미한다. 그 런데 이러한 추론적 상징은 경험을 재현하기 위해 일련의 구문을 구성한다. 언어의 의미와 관계를 나타내는 명시적 규칙이나 문법에 따라 개별 단어들이 하나의 구문을 형성 하고 실재 세계의 경험을 표현하고 전달할 수 있게 된다. 추론적 상징이 조합을 이루어 구성된 구문은 상황을 구체 적으로 기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이가 명시적 규칙 에 따라 이것을 해독하고 생각해볼 수 있게 해준다. 그런데 이러한 구문은 명제적(propositional) 구조를 가지며 그 참과 거짓을 증명하거나 반박할 수 있는 진술이 될 수 있다. 랭어(1942)는 참인지 거짓인지를 말할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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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술을 “명제” 혹은 “명제적 발화(propositional utterance)” 라고 한다. 그것은 명시적인 의미를 가진 상징을 사용하 고, 구문론의 규칙을 따르며, ‘무엇은 무엇이다’식으로 기 술하고, 규범적이거나 명령조가 아니며, 반박과 증명을 하기 쉽다. 물론 명령문(∼해라)이나 자신의 주장을 담아 내는 진술(∼해야 한다), 의미가 모호하거나 명시적이지 않은 진술문, 문법이나 구문론의 관습적인 규칙을 따르지 않는 구문, 증명하거나 반박할 방법이 없는 글 등 참인지 거짓인지를 알 수 없는 구문도 존재하지만, 랭어는 명제적 발화가 추론적 상징의 중요한 기능이라고 본다. 이러한 명제적 발화를 통해 인간은 이성적 사고를 키우고 논리적 지식 세계를 축적할 수 있다고 보았다.

표상적 상징 랭어는 경험을 상징으로 바꾸려는 인간 고유의 능력에 의 해 두 가지 서로 다른 재현 형식이 등장했다고 말하는데, 그 하나가 언어와 같은 “추론적 상징(discursive symbols)” 이고, 다른 하나는 “표상적 상징(presentational symbols)” 이다. 표상적 상징은 회화, 사진, 음악, 무용, 조각, 건축, 문화, 드라마, 영화 등 예술을 표현하는 재현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랭어는 상징 경험의 대부분이 이러한 표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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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현 형식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이것은 추론적 상징과 다 른 방식으로 경험을 표현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표현은 우선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유추해 볼 수 있도록 재현한 다는 특징을 갖는다. 추론적 상징이 임의적이고 사회적 약속과 관습에 기반 을 둔 반면, 표상적 상징은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의 주요 특징을 그 형식 안에 반영한다. 예를 들어, 초상화는 해당 인물의 생김새와 특징을 잡아내어 그려내기 때문에, 개인 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의 인물이 그려진다. 유사성에 기 반을 둔 표상적 상징은 그것을 통해 떠올리는 대상과 어떤 특성이 반드시 상응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유사성과 상 응성의 정도에 따라 사진과 같이 대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 할 수 있고, 도로 표지판의 상징처럼 주요 특징만 간략하 게 잡아 표현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표상적 상징은 ‘부분의 관계 구조’를 통 해 의미를 담아낸다. 다시 말해 표상적 상징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서로 간의 구조적 관계에 상응하기 때문에 나타 내고자 하는 것을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스마 일이라는 상징은 눈, 코, 입 등의 위치와 모양에 상응하게 점과 곡선을 그림으로써 인간의 웃는 얼굴을 나타낸다. 눈, 코, 입이라는 부분의 구조적 관계가 고스란히 담기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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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표상적 상징을 표현하기 위해 쓰인 요소 들은 맥락에 상관없이 고정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재현된 상징에 따라 다른 의미를 구성할 수 있다. 예를 들 어 스마일 상징에 쓰인 점과 곡선은 다른 그림에서 다른 방식으로 배치되어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고, 음악 속에 표현된 코드나 악기 소리를 음악 작품에 따라 다른 관념과 느낌을 전달할 수 있다. 랭어는 표상 상징을 구성하는 단위는 고정적 의미를 갖 거나 명시적 규칙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느낌이나 경험을 떠올리게 할 수는 있지만, ‘무엇은 무엇이다’ 식의 진술이 나 주장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피카소의 <게 르니카>는 형태적으로 변형된 사람들과 황소의 이미지를 파편적이고 불균형적인 구도로 배치함으로써 파괴, 분노, 혼돈, 비참함 등을 느끼고 떠올릴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그림의 제목이나 이것에 관련된 역사적 상식이 없이 이 그 림이 나타내는 것이 무엇인지를 충분히 알기란 쉽지 않다. 그림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어떤 고정적인 의미나 명시적 의미를 전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회화, 사진, 음악, 무용, 건축, 조각 등으로 재현되는 표상적 상징은 어떤 것 을 단언하거나 진술하기 어렵고, 따라서 담론, 논증, 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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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형식과 기능을 갖고 있지 않다. 랭어는 표상적 상징 형식의 구조와 기능이 언어와 같은 추론적 상징 형식의 그것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 리고 이러한 표상적 상징 형식은 감정의 세계, 혹은 우리 가 감각적으로 느끼고 경험하는 세계를 표현해 준다고 말 한다(1952).

랭어의 상징 이론과 미디어 생태학 랭어의 상징 이론은 대중매체의 발달에 따른 새로운 재현 형식이나 복합적인 상징 양식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검토 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는 상징 형식에 따라 재현하 는 방식, 의미화의 구조, 전달할 수 있는 경험의 유형, 그 리고 추구할 수 있는 사고 및 반응의 습관이 다를 수 있다 고 말한다. 랭어의 이론에 따라 표상적 상징을 전달하는 텔레비전은 과연 이성적 토론이나 담론을 전달하는 데 적 절한 미디어인지, 이미지로 포장된 텔레비전 광고는 과연 명제적 발언을 담아내고 있는지, 혹은 표상적 상징 형식에 둘러싸인 현대 미디어 환경에서 이성적 사고와 추론은 어 떻게 가능할 것인지 등의 문제를 제기해 볼 수 있다. 랭어는 언어가 인간이 경험하는 실제를 재현하는 다양 한 상징 형식 가운데 하나라고 이야기하면서, 다양한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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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계의 구조와 기능을 보다 세밀하게 고찰할 필요가 있다 고 제안한다. 상징 형식에 관한 그의 이론은 미디어 생태 학이 기대는 하나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면서 미디어 생 태학적 이해를 위해 무엇을 질문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참고문헌 Langer, S.(1930). The practice of philosophy. New York: Holt. Langer, S.(1937). An Introduction to symbolic logic. Boston: Houghton Mifflin. Langer, S.(1942). Philosophy in a new key: A study in the

symbolism of reason, rite and art. Cambridge, Mass.: Harvard University Press. Langer, S.(1953). Feeling and form: A theory of art developed

from philosophy in a new key. New York: Scribners. Langer, S.(1967∼1982). Mind: An essay on human Feeling, 3 volumes. Baltimore & London: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Nystrom, C.(2006). Symbols, thought, and “reality”. In Lum, C. (Ed.). Perspectives on culture, technology and

communication: The media ecology tradition, 275∼301. Cresskill, NJ: Hampton Press. 이동후 옮김(2008). 󰡔미디어 생태학 사상󰡕. 서울: 한나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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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노버트 위너: 사이버네틱스

노버트 위너는 ‘사이버네틱스’를 제창한 미국의 수학자로서, 그의 사이버네틱스 이론은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를 통해 인간과 사회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이해하려는 미디어 생태학적 시각에 큰 영감을 주었다. 제어로서 정보 개념, 인간과 인간, 인간과 기계, 기계와 기계 간 커뮤니케이션을 포괄하는 커뮤니케이션 개념, ‘인간의 인간적 활용’에 대한 고민 등은 미디어 생태학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인물 노버트 위너(Norbert Wiener, 1894∼1964)는 ‘사이버네 틱스(cybernetics)’를 제창한 미국의 수학자다. 1894년 미 국 미주리주 컬럼비아에서 태어난 그는 1912년 불과 17세 의 나이로 하버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신동이다. 1914년 유럽으로 건너가 케임브리지대학의 버트란트 러 셀(Bertrand Russell)과 G. H. 하디(G. H. Hardy), 그리고 괴팅겐대학의 데이비드 힐버트(David Hilbert)와 에드문 드 란다우(Edmund Landau) 밑에서 공부했다. 1919년 이 후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수학과에서 가르치기 시작 해 그곳의 교수가 된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대공포의 자동 조준과 발사에 관한 연구를 하게 되면서 사이버네틱스라는 커뮤니케이 션과 제어에 관한 이론을 발전시킨다. 그는 자신의 사이 버네틱스 이론을 󰡔사이버네틱스: 동물과 기계의 제어와 커 뮤니케이션(Cybernetics: Or control and communication in the animal and the machine)󰡕(1948)과 󰡔인간의 인간 적 사용: 사이버네틱스와 사회(The human use of human beings: Cybernetics and society)󰡕(1950/1954)란 책에 담 아낸다. 그는 생명유기체와 기계 모두 외부 환경을 제어 하기 위해 메시지를 보내는 정보 체계라고 보면서 사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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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회에 속한 메시지와 커뮤니케이션 시설을 연구해야 만”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대공시스템 개발을 돕는 일을 했으나, 전후에는 정부 지원금이나 군 프로젝트를 거절하 며 과학자로서 윤리의식을 강조하는 비판적 태도를 취했 다. 또한 ‘인간 마음의 작용에 관한 일반 과학’을 다학제적 으로 논의하고자 했던 메이시 학술대회(1946∼1953)의 핵심 참여자가 된다. 1964년 그는 기계의 학습, 복제, 사회적 역할 등을 종교 적 맥락과 함께 논의한 󰡔신과 골렘 주식회사: 사이버네틱 스가 종교를 침해한 지점에 관한 논평(God & Golem, Inc.: A comment on certain points where cybernetics impinges on religion)󰡕을 출간했다. “인간과 기계 사이, 기계와 인간 사이, 기계와 기계 사이의 메시지”에 주목한 그의 사이버네틱스 이론(1950/1954)은 커뮤니케이션 미 디어를 통해 인간과 사회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이해하려 는 미디어 생태학적 시각에 큰 영감을 주었다.

사이버네틱스 노버트 위너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대공포의 자동 조준 및 발사 문제를 연구하면서 제어 체계가 단순히 일련의 기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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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과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보의 흐름이라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이를 기반으로 사이버네틱스라는 “동물과 기계의 제어와 커뮤니케이션”(Wiener, 1948) 전 반의 문제를 다루는 언어와 기술을 개발하고자 했다.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란 용어는 고대 그리스어로 조타술의 의미를 갖는 ‘kybernetes’에서 유래한다. 위너는 사이버네틱스를 통해 기계적, 생물학적 혹은 사회적 체계 를 제어하는 인간과 기계 사이, 기계와 인간 사이, 기계와 기계 사이의 메시지를 연구하고자 했다. 그는 우리가 환 경을 제어하기 위해 내리는 ‘명령’이 환경에 전달하는 하 나의 ‘정보’라고 본다. 그리고 이러한 정보는 모든 체계에 증가하고 있는 엔트로피를 줄이는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엔트로피가 무질서의 단위라면, 일련의 메시지가 전달 하는 정보는 질서의 단위로서 엔트로피와는 역관계를 갖 는 셈이다. 위너는 생명 유기체나 기계 모두 정보를 이용 하여 엔트로피의 증가를 억제한다는 점에서 서로 다르지 않다고 본다. 특히 ‘피드백’은 인간과 기계가 과거의 경험 이나 실행 결과를 근거로 행동 패턴이나 실행 방식을 바꿀 수 있게 해주며 역학적으로 무질서해지려는 엔트로피의 경향을 “일시적이고 국지적으로” 저항할 수 있게 해준다 고 보았다(Wiener, 1954, pp.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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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너의 사이버네틱스 이론은 미디어 생태학적 논의에 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몇 가지 주요 개념을 제공한다. 우선 생명유기체, 기계, 사회 등을 제어하는 수단으로서 정보 개념은 사회의 역사적 변동 과정에서 미디어가 수행 했던 커뮤니케이션과 제어의 역할에 주목하게 해준다. 또 한 인간과 인간, 인간과 기계, 기계와 기계 간 커뮤니케이 션을 포괄하여 다루는 그의 사이버네틱스 이론은 인간의 능력을 확장시키며 인간과 기계 간 경계를 허무는 정보 기 술의 발달과 그것의 문화적 함의를 살펴보는 데 영감을 준 다. 그리고 󰡔인간의 인간적 활용󰡕이라는 그의 책 제목에 서 나타나듯이, 그는 정보 기술의 이용으로부터 인간적 가 치를 방어하고 더 나아가 인간의 가치를 위해 기술을 성찰 해 보려고 한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사회의 정보 제어 시 스템에 미치는 미디어의 영향력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일련의 미디어 생태학적 문제의식과 맥을 같이한다.

제어로서의 정보 노버트 위너는 정보 개념에서 제어 기능이 가장 중요하다 고 보았다. 정보는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제어를 하려는 일종의 조직과 질서의 단위다. 이때 커뮤니케이션은 환경 에 정보를 전달하면서 특정한 방식으로 환경에 영향을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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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려는 제어 활동이라고 볼 수 있다. 엔트로피의 증가로 무질서해지는 외부 환경을 제어하면서 정보 체계를 구축 해가는 것이다. 위너는 정보를 환경을 이해하고 제어하기 위한 것으로, 특히 피드백은 제어력을 높이는 정보의 본질 적인 능력이라고 본다. 그는 단순한 콘텐츠 차원이 아닌 제어와 커뮤니케이션 기능을 하는 메타적 차원의 정보 개념을 제시한다. 이러 한 미디어 수준의 정보 개념은 미디어의 특성과 사회의 정 보 체계 간 관계를 총체적으로 살펴보려는 미디어 생태학 적 시각을 내포한다. 사회 체계를 제어하려는 정보 기술 로서 미디어의 역할을 살펴보는 것은 여러 미디어 생태학 자가 공유하는 미디어 생태학적 관심사 중의 하나다. 예를 들어, 이니스(Innis, 1951)는 공간 편향적 미디어 와 시간 편향적 미디어란 용어를 통해 특정 사회가 시공간 을 통제하기 위해 어떠한 미디어를 필요로 했는지를 논의 한다. 내구성이 뛰어난 무거운 미디어는 시간의 흐름에 상관없이 정보를 저장하고 전수할 수 있게 해줌으로써 시 간의 통제와 영속성을 중요시하는 시간 편향적 사회에 이 용되었고, 파피루스와 같은 가벼운 미디어는 공간에 대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제공하며 너른 영토를 제어하기 위 해 이용되었다. 이니스는 19세기와 20세기 통신 커뮤니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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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션 미디어도 공간에 대한 제어력을 강화한다고 보았다. 캐리(Carey, 1989)는 전신의 발달로 즉각적인 정보 전 송이 가능해짐으로써 서로 다른 지역의 시간을 동시에 설 정할 수 있는 시간대 개념이 가능해졌다고 말한다. 시간 을 동시적으로 제어할 수 있게 되면서 광역 및 지역의 기 차들이 충돌하지 않고 운행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편 베니거(Beniger, 1986)는 증기기관의 발명과 이어 진 산업혁명으로 인해 서구 사회가 사회 제어의 위기를 맞 이하게 되지만 다양한 제어 기술과 기법을 통해 이를 극복 하고자 했다고 한다. 이러한 기술과 기법에는 홀러리스의 천공카드 제표기, 각종 회계 기법, 테일러의 과학적 경영, 포드의 컨베이어 시스템, 광고와 마케팅 기법 등이 포함 된다. 현대사회는 복잡해진 사회조직을 제어하기 위해 새로 운 정보처리 기술 및 기법이 필요하게 되고, 우리는 새로 운 제어와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갖게 되면서 새로운 정보 환경에 둘러싸이게 된다. 컴퓨터 및 통신 기술의 발달은 커뮤니케이션과 제어를 위한 새로운 정보처리 형식을 제 공하면서 위너가 말한 사이버네틱스의 비전을 실현해나 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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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감각의 확장 위너는 커뮤니케이션에는 물질의 수송과 정보의 전송이 라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고 말한다. 전자는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물리적으로 이동하는 것이고, 후자는 탈물질 적 메시지가 이동하는 것이다. 위너는 메시지의 이동이 “인간의 감각기관을 확장하고 활동 능력을 지구 한쪽 끝 에서 다른 한쪽으로 확대할 수 있게” 해준다고 보았고, 더 나아가 물질의 수송과 정보 전송의 구분이 허물어질 수 있 다고 생각했다(Wiener, 1950/1954, pp.97∼98). 그는 메 시지를 주고받는 능력을 통해 “인간의 말이 가는 지점”과 “인간의 지각력이 미치는 지점”이 확장되면서 “인간의 제 어 능력과 신체적 존재가 확장”되고 개인이 “어디에나 있 을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고 보았다. 정보의 이동에 따 라 인간 감각기관이 확장되고 ‘어디에나 있을 수’ 있게 된 다는 위너의 이론은 이후 대표적인 미디어 생태학자인 매 클루언에 의해 본격적으로 논의된다. 매클루언은 모든 미디어가 인간의 정신적 혹은 신체적 능력의 확장이라고 보면서 “미디어는 환경을 바꾸면서 우 리가 특유한 감각 지각의 비율을 갖게” 해준다고 말한다. 그리고 감각의 확장은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 그리고 세계를 지각하는 방식을 바꾼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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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Luhan, 1967, p.26). 전자 미디어를 통해 ‘송신자가 전 송된다’는 매클루언의 생각은 정보의 이동을 통해 멀리 떨 어진 곳에서도 활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는 정보 환경에 관한 위너의 비전과 흡사하다. 하지만 매클루언은 사이버네틱스가 갖는 수학적이고 과학적인 커뮤니케이션 모델에 대해 비판적이다. 위너는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에서 일어나는 정보의 손실을 제어 하는 수준에서 의미론을 찾지만, 매클루언은 사람들이 정 보에 의미를 투사하는 과정을 주목한다. 매클루언에게 미 디어는 단순히 개인의 감각기관을 확장하는 ‘도구’가 아니 라 우리의 지각, 사고, 욕망, 실천 등을 확장함으로써 인간 다움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적 활용 위너는 “정보를 받고 사용하는 과정이 우리가 외부 환경 의 우발성에 적응해 가는 과정”이고 따라서 “효과적으로 사는 것은 적절한 정보를 가지고 사는 것”이라고 본다 (Wiener, 1954, pp.17∼18). 그리고 삶이 점점 복잡해지 기 때문에 적절한 정보를 갖고 살 수 있게 해주는 “언론, 박물관, 과학연구소, 대학, 도서관, 교과서” 등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이들이 일종의 반엔트로피적인 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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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체계로 기능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위너에 따르면 모 든 체계에서 증가하는 엔트로피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는 없지만, “일시적이고 국지적으로” 저항하고 제어할 수 있 고 적절한 피드백은 엔트로피에 대한 제어력을 갖게 해준 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엔트로피의 증가에 따른 변화는 새롭지 않지만, “변화의 정도”를 완급조절함으로써 질적 으로 다른 사회적 혹은 인간적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Postman & Weingartner, 1969, pp.10∼11). 위너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늘어나는 엔트로 피에 대한 제어력을 줄 수 있지만 우리가 이러한 기술적 ‘노하우’만 가질 경우 위험하다고 보았다. 인간의 특성과 목적이 무엇이고 왜 제어를 해야 하는지, 즉 ‘목적의식 (know-what)’ 을 모르고 기계가 정해주는 기술력만 받아 들일 경우 반인간적인 폐해를 낳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이 결정력을 갖는 것이 아니라 기계가 우리의 행동을 결정해 버리고, 우리의 목적이 무엇이 되어야 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결정해 나가기에 앞서 기술 개발과 노하우의 습 득에 급급해한다고 비판한다. 그는 우리의 책임 문제를 기계에 던져버리지 말고 기계의 행동 수행 원칙을 충분히 이해하면서 파괴적인 기계의 이용으로부터 인간적 가치 를 방어하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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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기술이 일으키는 변화에 민감함을 가지고 이러 한 기술 이용의 인간적 목적이 무엇인지를 질문하는 것은 미디어 생태학적 문제의식 중 하나다. 포스트먼은 위너의 󰡔인간의 인간적 활용󰡕이라는 책제목이 “기술의 신성을 믿지 말아야 한다는 기술불신론(technological atheism)” 을 보여 준다고 말한다(Postman, 2001). ‘적절한 정보’ 와 피드백 체계 갖기, 그리고 기술적 ‘노하우’보다는 ‘목 적의식’을 주목하기는 여전히 중요한 미디어 생태학적 관심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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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Beniger, J.(1986). The control revolution: Technological and

economic origins of the information society.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윤원화 옮김(2009). 󰡔컨트롤 레볼루션󰡕. 서울: 현실문화. Carey, J.(1989) Communication as culture: Essays on media and

society. New York: Routledge. Innis, H. A.(1951). The bias of communication. Toronto, Canada: University of Toronto Press. McLuhan, M. & Fiore, Q.(1967). The medium is the massage: An

inventory of effects(J.Agel, Prod.). New York: Bantam. 김진홍 옮김(2001). 󰡔미디어는 마사지다󰡕.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Postman, N. & Weingartner, C.(1969). Teaching as a subversive

activity. New York: Delacorte Press. Postman, N.(2001). Deus machina deus machina. Technos

Quarterly 10(4), Online: http://www.technos.net/tq_01/4postman.htm Wiener, N.(1948). Cybernetics: Or control and communication in

the animal and the machine. Boston, MA: Technology Press. Wiener, N.(1950/1954). The human use of human beings:

Cybernetics and society. Houghton Mifflin. 이희은ㆍ김재영 옮김(2011). 󰡔인간의 인간적 활용: 사이버네틱스와 사회󰡕. 서울: 텍스트. Wiener, N.(1964). God & Golem, Inc.: A comment on certain

points where cybernetics impinges on religion. Cambridge, MA: MIT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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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에드먼드 카펜터: 미디어 인류학

에드먼드 카펜터는 부족문화와 민속지학적 영상 제작에 관심을 가졌던 인류학자로서, 1950년대 매클루언과 함께 ‘문화와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세미나를 진행하면서 라디오, 영화, 텔레비전과 같은 미디어가 사회를 재구성하는 방식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는 부족사회에 대한 민속지학적 연구와 영상 제작 경험을 토대로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 형식, 인간 사고와 경험, 그리고 문화적 형식 간 관계 등을 탐구했다.


인물 에드먼드 카펜터(Edmund Carpenter, 1922∼2011)는 미 디어 생태학적 시각을 가진 인류학자다. 1922년 미국 뉴 욕주 로체스터에서 태어난 그는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인류학을 공부했고, 동 대학에서 아메리카 동북지역의 선 사시대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1950년대 토 론토대학에서 인류학을 가르치면서, 북극지방의 이뉴이 트인들에 대한 민속지학적 연구를 수행해 갔고, 그 결과를 󰡔아이빌리크인들의 시공간 개념(Time/space concepts of the Aivilik)󰡕(1955)과 󰡔에스키모(Eskimo)󰡕(1959)란 책으 로 출간했다. 더불어 부업으로 캐나다방송사(CBC)의 라디오 프로그 램을 진행하다가 1952년 CBC-TV가 생기면서 󰡔탐구󰡕라 는 텔레비전쇼를 진행하게 된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라 디오와 텔레비전과 같은 전자 미디어의 영향력을 참여 관 찰하며 ‘새로운 언어’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카펜터는 토론토대학에 있으면서 매클루언과 이니스 를 만났고 매클루언과는 학문적·인간적 교류를 지속해 갔다. 1953년에는 매클루언과 함께 포드재단의 지원을 받 아 ‘문화와 커뮤니케이션’ 세미나(1953∼1959)를 열고 “커뮤니케이션 형식과 동학이 작동하는 방식의 발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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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으로 한 ≪탐구(Explorations)≫라는 학술지를 냈다. 학술지에 나왔던 글은 나중에 󰡔커뮤니케이션의 탐구 (Explorations in communications)󰡕(Carpenter & McLuhan, 1960)란 선집으로 묶여 출간된다. 1959년 카펜터는 산페르난도밸리주립대(현재 캘리포 니아주립대 노스리지 캠퍼스)에 인류학과 교수로 부임해 인류학, 예술, 영상 제작 등을 함께 가르치는 다학제적 프 로그램을 만들었다. 이러한 실험적인 프로그램은 당시 획 기적인 시도였고, 카펜터는 여기에 있으면서 이뉴이트인 들의 마스크,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전통 노래와 춤 등을 다룬 다양한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했다. 1969년에는 호 주정부의 초청으로 파푸아뉴기니에 가서 글이나 미디어 를 한 번도 접해보지 못했던 산간 지방의 부족민들을 연구 하게 된다. 당시 호주 정부는 부족들을 하나의 국가 아래 통합하기 위해 전자 미디어를 좀 더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알 고 싶어 했다. 카펜터는 미디어를 인간을 통제하는 수단 으로 바라보는 시각, 그리고 현대 미디어와 문화가 부족민 에게 미칠 파괴적인 영향력을 우려하게 되었다. 그래서 호주 정부가 원하는 보고서를 쓰는 대신, 미디어 환경의 영향력을 다룬 󰡔오오, 저 유령이 내게 먹인 한방 참 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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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네! (Oh, what a blow that phantom gave me!)󰡕(1972) 라는 책을 쓰게 된다. 이때부터 카펜터는 객관적 사회과학을 강조하면서 토 착문화를 보존하거나 재현하는 데 한계를 가진 제도권 인 류학의 학술 담론에 회의를 느꼈고 이로부터 멀어졌다. 이후 부족 미술에 대한 연구를 하기 시작한다. 에스키모 전통 예술에 관한 전시회를 기획하기도 하고, 부족 디자인 의 의미를 해독한 예술사가 칼 슈스터의 열두 권짜리 책을 편집하며 이를 한권으로 정리하여 󰡔연결의 패턴: 고대 및 부 족 예술의 사회적 상징주의(Patterns that connect: Social symbolism in ancient and tribal art)󰡕(1996)란 책을 낸다. 또 2005년에는 그가 11년 동안 이사로 있었던 아메리칸 인디언 박물관의 역사를 다룬 󰡔두 개의 에세이: 추장과 탐 욕(Two essays: Chief and greed)󰡕을 출간했다. 카펜터는 부족문화와 민속지학적 영상 제작에 관심을 가지며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 형식, 인간 사고와 경험, 그리고 문화적 형식 간 관계를 탐구했던 미디어 생태학자 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언어 1950년대 카펜터는 매클루언과 함께 토론토대학에서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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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와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세미나를 진행하면서 라디오, 영화, 텔레비전과 같은 미디어가 사회를 재구성하는 방식 이나 새로운 언어 형식을 만들어 내는 방식에 관심을 갖게 된다. 카펜터의 방송 경험과 이뉴이트인들에 대한 민속지 학적 연구는 이러한 미디어의 문화적 동학을 이해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 카펜터는 매스 미디어인 라디오, 영화, 텔레비전을 ‘새로운 언어’라고 부르며, 이들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실제를 부호화하며 특유의 형이상학을 내재하 고 있다고 보았다(Carpenter, 1960). 미디어가 메시지라고 주장하는 매클루언과 마찬가지 로, 카펜터는 미디어가 메시지 내용에 영향을 미치며 “단 순히 어떤 편지를 전하는 봉투가 아니라 메시지의 주요 부 분이 된다”고 보았다(Carpenter, 1960, p.176). 또한 미디 어에 따라 구어 문화, 문자 문화, 전자 미디어 문화를 구분 하며, 이들 문화의 차이를 주목했다. 매클루언과 함께 쓴 글에서 카펜터는 이누이트인과 같이 문자 이전 부족사회 가 구어에 의존하여 의사소통을 하기 때문에 오감이 조화 로운 균형을 이룬 “청각적 공간(acoustic space)”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Carpenter & McLuhan, 1960, pp.65∼ 70). 청각적 공간은 “공명을 하고 순간순간 고유의 차원을 만들며”, “눈이 듣고, 귀가 보며, 모든 오감이 상호조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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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는 리듬의 콘서트에 참여”하기에(Carpenter, 1972, p.31), 촉각성이 구어 문화의 중요한 지각 양식이 된다. 카펜터는 문자 문화의 사람들은 소리를 마치 보이는 것 처럼 경험하며 “음악을 듣지만(listen to)”, 문자 이전 문화 의 사람들은 소리에 둘러싸여 참여하고 “음악에 동화 (merge with)”된다고 말한다(Carpenter, 1972, p.41). 부 족 예술품을 감상하는 방식도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손 으로 만지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또한 구어 문화에 서는 지식의 전수를 위해 ‘마음으로’ 암기하고 모든 감각 이 관여하여 기억하는 것이다(Carpenter, 1972, p.53). 문 자와 인쇄물은 기억에서 자유롭게 해주고 숙고할 시간을 주지만, 문자를 통해 기억하는 것은 ‘마음으로’ 배우는 것 도 아니고 경험을 ‘다시 사는 것’도 아니라고 본다. 문자 문 화에서는 언어나 지각이 관찰될 수 있는 ‘보이는 것’으로 바뀌게 된다. 카펜터에 따르면 전자 미디어는 물리적인 실재로부터 분리된 탈맥락적인 경험을 일상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문 자 이전의 사회에서는 몸과 정신의 분리가 꿈, 예술, 의례, 신화 등과 같이 초현실적이고 특별한 경우에만 이루어졌 지만, 지금은 이러한 물리적인 실재 맥락에서 벗어난 정보 와 이미지의 세계에 늘상 접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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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펜터는 현대 미디어를 통한 탈육체적 경험이 자신과 세 계를 이해하는 방식을 바꿔놓고 있다고 본다.

환경으로서 미디어: ‘미디어가 문화를 삼키다’ 카펜터는 미디어는 우리의 경험을 정의하고 있어 미디어 로 매개되지 않는 경험을 찾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그는 미디어를 ‘환경’이라고 말하면서, “우리가 미디어 안에 살고” 있고, “우리는 미디어의 내용”이라고 말한다(Carpenter, 1972, p.27). 그리고 이러한 환경으로서 미디어가 가진 영 향력을 파푸아뉴기니에서 연구했던 여러 사례를 통해 구 체적으로 보여 준다. 하나의 사례는 파푸아뉴기니의 산간 지방에 고립되어 살아온 부족민들이 처음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보게 되면 서 보인 반응이다. 이들은 예외 없이 입을 막고 종종 발을 구르며 당황하여 고개를 돌려 외면하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자신의 물리적 신체 바깥의 자기 모습을 본다는 공 포는 일순간이었고, 몇 주가 지나자 곧 이러한 이미지에 익숙해져 어떤 이는 자기 사진을 이마에 붙이고 다니기까 지 했다. 자기발견과 자기인식의 충격이 사라지고 환경과 몸으로부터 자신의 이미지를 분리시켜 보는 것이 자연스 러워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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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자주 인용되는 사례 중의 하나는 자기 부족의 성인 식을 카메라로 찍도록 허락해 준 부족 이야기다. 이들은 고통스런 통과의례를 카메라가 ‘잘’ 담아낼 수 있도록 금 녀의 장소에 여성 전문 촬영인의 입회를 허용했고, 카메라 의 위치까지 잡아주며 새 필름을 넣을 때는 의례를 지연하 기까지 했다. 촬영이 끝난 후 이것이 마지막 통과의례라 며 의례에 쓰인 물드럼을 팔려고 내놓았다. 수천 년 동안 이어져온 의례를 영화 상영으로 대체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러한 부족의 계획은 완성된 영화를 보지 못해 무산되었 지만, 미디어가 일순간에 토착 문화를 ‘삼켜버리는’ 사례 를 보여준다. 카펜터는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이 실제와 관계를 맺는 방식을 바꿈으로써 되돌릴 수 없는 변화를 겪 게 만든다고 보았다.

미디어 균형과 미디어 숙달력 카펜터 각각의 미디어는 각각의 방식으로 실제를 보여 주 고 경험하게 하는 편향성을 갖는다고 말한다. 따라서 특 정 미디어의 편향성으로 인해 깨진 인간 감각의 균형은 미 디어의 균형을 통해 회복시킬 수 있다고 본다(Carpenter 1972, p.132). 예를 들어 호주 정부는 파푸아뉴기니에서 라디오를 이용해 다양한 부족민들을 하나의 국민으로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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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화하려고 했지만, 민주 국가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이 성주의 대신 “공간적, 촉각적, 물리적 정체성이 없는” 전자 미디어의 세계에 대한 숭배만을 키우고 있다고 말한다 (1972, 150∼51). 정부가 라디오를 하나의 통합된 국민을 만드는 도구로 활용하려 했지만, 폭력이 야기되고 오감 중 심의 경험이 평가절하되었다고 한다. 카펜터는 이러한 라디오의 부정적 효과를 완화시키며 감각의 균형을 되찾기 위해, 문자해독력을 갖게 하고 체 스, 사진, 거울, 낱말 맞추기 게임 등을 하라고 권한다. 흥 미로운 점은 카메라의 도입이 부족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 지만, 라디오가 불러일으킨 더 큰 충격을 상쇄하기 위해 장려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미디어는 시각적 공간 과 분절된 시간을 선호하는 미디어로서 상황에 거리를 두 고 자기 관찰을 하고 개인주의적 사고를 할 수 있게 해주 기 때문에, 생각할 겨를 없이 방송의 세계로 빠져들게 만 드는 라디오의 감각적·심리적 불균형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 것이다. 카펜터는 미디어가 중립적인 도구가 아니라고 생각한 다. 그는 “기술에 중립적인 것은 없다”고 보면서 “모든 기 술은 인간의 확장이고 이러한 확장은 다른 인간을 만든다” 고 주장한다(Carpenter, 1972, p.142). 미디어의 내용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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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는 미디어 자체가 인간과 문화를 변화시키고 있다고 보 는 것이다. 카펜터는 “많은 사람들에게 카메라를 쥐어주 었지만, 그 결과는 카메라를 든 사람의 문화적 배경보다는 카메라란 미디어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해 준다”고 말 한다(Carpenter, 1972, p.164). 다시 말해 미디어가 메시지 이고, 미디어 도입의 전후 문화는 크게 다르다는 것이다. 카펜터는 인간의 목적을 위해 미디어를 이용할 수 있다 는 생각이 너무 순진하다며 “미디어는 자신의 방식으로 문화를 변화시키는 것”이지 “우리가 그것을 이용하는 것 이 아니라고” 주장한다(Prins & Bishop, 2002, p.134). 그 렇다면 카펜터는 우리가 미디어의 ‘구속력에서 한 치도 벗 어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그는 1972년 저서에서 인쇄나 영화로 현재의 문화를 보존하고 재현하고 싶다면, 미디어 숙달력(media sophistication)이 필요하다고 주장 한다. 이러한 미디어 숙달력은 단순히 미디어를 자유자재 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환경으로서 미디어의 메시지를 충분히 이해하며 미디어의 구속력으로부터 어 느 정도 거리를 둘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미디어는 이렇 게 혹은 저렇게 실험해 볼 수 있는 도구가 아니라 도입되 는 순간 경험의 방식을 바꾸고 있기 때문에, 미디어의 편 향성 혹은 실재를 부호화하는 방식에 대해 숙고하여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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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요컨대, 미디어 생태 학적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참고문헌 Carpenter, E. & McLuhan, M. Eds.(1960). Explorations in

communications. Boston: Beacon Press. Carpenter, E.(1959). Eskimo. Toronto: University of Toronto Press. Eskimo realities(1970)로 재출간. Carpenter, E.(1970). They became what they beheld. New York: Ballantine Books, Carpenter, E.(1972). Oh, what a blow that phantom gave me! New York: Holt, Rinehart & Winston. Carpenter, E.(1996). Patterns that connect: Social symbolism in

ancient and tribal art. New York: Harry N. Abrams. Carpenter, E.(2005). Two essays: Chief and greed. Andover, MA: Persimmon. Prins, H. & Bishop, J.(2002). Edmund Carpenter: Explorations in media & anthropology. Visual Anthropology Review, 17(2), 11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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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후 인천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다. 뉴욕대학교의 미디어 생태학 프로그램에서 박사학위를 받았 다. 미디어생태학 이론에 관심을 가지며, 구체적으로 모바일 미디어 문화와 영상문화를 연구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휴대전화 모바일 인터넷 이용과 공간경험”, “사이버 대중으로서의 청년세대에 대한 고찰”, “도시이미지의 재구성”, “인터넷의 공간과 시간”, “카메라폰을 통한 여성의 문화적 의미 만들기” 등이 있다. 󰡔TV 이후의 텔레비전󰡕, 󰡔SNS 혁명의 신화와 실제󰡕, 󰡔컨버전스와 다중미디어 이용󰡕, 󰡔모바 일 소녀@디지털 아시아󰡕 등의 공저로 참여했다. 또한 New visualities, new technologies, Studying mobile media: Cultural technologies, mobile communication, and the iPhone, Mobile technologies: From telecommunication to media 등에 글을 실었

고, 󰡔미디어 생태학사상󰡕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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