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케이션의 새로운 은유들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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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케이션의 새로운 은유들 한국언론학회 엮음 김세은·김수미·김용찬·김희정·마정미·박태순·서명준·심영섭 이준웅·이영주·이희은·주재원·최영송·홍성일·황인성 지음

대한민국,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2014


2014 한국언론학회 기획연구 3 커뮤니케이션의 새로운 은유들

엮은이 한국언론학회 지은이 김세은 · 김수미 · 김용찬 · 김희정 · 마정미 · 박태순 · 서명준 · 심영섭 · 이준웅 이영주 · 이희은 · 주재원 · 최영송 · 홍성일 · 황인성 펴낸이 박영률 초판 1쇄 펴낸날 2014년 10월 17일 커뮤니케이션북스(주) 출판등록 2007년 8월 17일 제313-2007-000166호 121-869 서울시 마포구 연남동 571-17 청원빌딩 3층 전화 (02) 7474 001, 팩스 (02) 736 5047 commbooks@eeel.net www.commbooks.com CommunicationBooks, Inc. 3F Cheongwon Bldg., 571-17 Yeonnam-dong Mapo-gu, Seoul 121-869, Korea phone 82 2 7474 001, fax 82 2 736 5047 이 책은 커뮤니케이션북스(주)가 저작권자와 계약하여 발행했습니다. 본사의 서면 허락 없이는 어떠한 형태나 수단으로도 이 책의 내용을 이용할 수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한국언론학회, 2014 ISBN 979-11-304-0239-0 이 책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후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책값은 뒤표지에 표시되어 있습니다.


서문

우리 사회의 커뮤니케이션 현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미 디어의 눈부신 발전에 힘입은 바 큽니다. 1990년대 컴퓨터가 가정에 보 급되기 시작하고 인터넷이 새로운 소통의 기술적 지평을 여는가 싶더 니, 불과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거의 온 국민이 손에 ‘스마트폰’이라는 이름의 컴퓨터 미디어를 한 대씩 들고 다니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이제 웹 2.0과 SNS를 비롯한 ‘개인적 매스미디어(individual mass media)’가 활성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저널리즘과 문화, 정치와 경제의 패러다임 역시 혁신적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다른 한편에서는 ‘소통 의 문제’가 많은 사회적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사람들 사이의 소통은 어쩌면 너무 활발해진 나머지 불필요한 과잉 상태에 다다른 것도 같습 니다. 분노와 증오의 말들도 넘쳐납니다. ‘테크놀로지의 환등상 (phantasmagoria)’이 화려하게 흘러가고 있는 다른 한편에서는 끔찍한 ‘언어의 복마전(pandemonium)’이 펼쳐지고 있는 셈입니다. 그에 따라 커뮤니케이션 피로감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 가고 있습니다. 반면 세대적·지역적·계급적 격차가 커져만 가는 가운데 커뮤니케이 션을 통한 이해 갈등의 조정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아 집단적 불 신과 불화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소통을 거부하거나 조작하는 데만 골몰하는 지배세력이 ‘정치의 실종’, ‘소통의 실종’을 자초하고 있 는 지경입니다. 그러니 이 혼돈스런 사회에서 새삼 이렇게 묻지 않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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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없습니다. “도대체 커뮤니케이션이 무엇이길래?” 한데 커뮤니케이션이 무엇인지 말하기란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주고받는 소소한 대화에서부터 유튜브가 쏟아 내는 혼성적 이미지들의 초국가적 흐름에 이르기까지 커뮤니케이션이 포괄하는 현상 영역은 광대하고 모호합니다. 그 매개체 역시 기술적으 로 한층 정교해지고 또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어딘가 자리를 차지하며 ‘놓여 있던’ 미디어는 개개인이 ‘들고 다니는(portable)’ 것에서 아예 ‘몸 에 지니고 있는(wearable)’ 것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에 별반 구애받지 않는 정보와 메시지의 확산이 순식간에 이루어집니다. 그 발신의 중심 또한 급격히 다변화되었습니다. 언론인과 커뮤니케이 션 전문가들만이 아니라 개인이, 기계가 또는 인간화된 기계, 기계화된 인간인 ‘사이보그’가 메시지를 생산하고 유통시킵니다. 규정하기도, 분 석하기도 어려운 커뮤니케이션에 관해 우리는 어떻게 더 잘 생각하고 또 말할 수 있을까요? 은유란, 단순하게 말하자면 어려운 것을 좀 더 쉬운 것에, 또 잘 알 려져 있지 않은 것을 잘 알려진 것에 빗대어 알 수 있게 해주는 수사학 적 도구입니다. 은유의 예로 흔히 드는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배 저어 오오”같은 시구는 그 점을 잘 일러줍니다. ‘마음’이라는 무형의 추상적 인 대상은 ‘호수’라는 구체적인 기지(旣知)의 실체를 통해 생생한 인식 의 가능성을 확보합니다. 또한 ‘호수’의 이미지는 역으로 우리가 ‘마음’ 이라는 대상을 새롭고 다양하게 파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줍니다. 그러한 은유로부터 개념과 이론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은유는 지적 발 견의 수단인 것입니다. 이는 바꿔 말하면, 여러 과학철학자들의 주장처 럼, 과학적 개념과 모델이 기본적으로 어떤 은유 혹은 이미지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커뮤니케이션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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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지배해 왔던 ‘송신자-메시지-채널-수신자-(효과)’의 이른바 ‘S-M-C-R(-E)’ 모델이 ‘전신(telegraph)’의 은유에 기대어 있다는 지적은 시사적입니다. 그것이 커뮤니케이션 현상을 지나치게 ‘미시적인’ 수준 에서 ‘일방향적인’ 과정으로 개념화하면서 ‘전달’과 ‘효과’의 시각에서만 파악하는 편향성을 낳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간 커뮤니케이션학 내부에서는 그러한 ‘전신’의 은유를 넘어서 커뮤 니케이션 현상을 파악하려는 개념적·이론적 시도들이 있어 왔던 것 또한 사실입니다. 한국언론학회 40대 집행부가 엮어 펴내는 이 책은 커 뮤니케이션의 본질을 창의적으로 사유하고자 한 다양한 연구 전통을 여러 ‘은유’를 중심으로 재정리하고 평가해 보고자 합니다. 그럼으로써 이를 새로운 학문적 관점과 분석틀의 계발을 위한 지적 자원으로 삼고 자 합니다. 한국언론학회는 우리 시대의 커뮤니케이션 현상을 ‘다르게’ 바라 볼 수 있게 해 주는 은유를 학회원들에게 공모하였습니다. 그 결과로 선정된 열네 개의 참신한 은유들과 그 상세한 해설의 내용이 이 책에 담 겼습니다. 책에서는 그 은유들을 크게 다섯 유형으로 구분해 제시하고 있습니다. ‘문화적 은유들’(의례, 신화, 놀이), ‘경제적 은유들’(노동, 화 폐교환, 물신), ‘정치적 은유들’(권력, 전장), ‘생태적 은유들’(체계, 생태 계, 인프라), 그리고 ‘또 다른 은유들’(전염, 번역, 프랑켄슈타인)이 그것 입니다. 정치학이나 경제학, 인류학뿐만 아니라 문학, 병리학 등의 널 리 쓰이는 개념 혹은 용어들이 커뮤니케이션을 은유하기 위해 모인 셈 입니다. 사전에 정해 놓은 항목들이 아니라 연구자들의 창의력이 발휘 된 은유들을 사후에 정리한 결과인 만큼, 유형 분류가 아주 엄밀하거나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구성상의 편의를 위한 구분의 성격이 강합니다. 우리는 독자들이 이 범주들을 넘나드는 상상력을 발휘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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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은유가 커뮤니케이션의 이해에 어떤 새로운 빛을 던지는지 음미해 주시길 기대합니다. 이 은유들에 대한 진지한 탐색과 성찰은 변화하는 커뮤니케이션의 현실적 문제들을 깊이 있게 접근할 수 있는 이론적 출 발점이 되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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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로서의 커뮤니케이션 이희은 조선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부교수

의례는 일상이며 특별하다 딱히 그 이유를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많은 사람들이 일정한 때가 되면 기어이 하고야 마는 비슷한 일들이 있다. 종교적 거룩함과 세속적 욕망이 뒤섞인 채 진행되는 결혼식, 또는 굳이 친구들끼리 밀가루를 뿌 려 가며 우정과 축하의 의미를 되새기는 졸업식 같은 일들이다. 해마다 11월 11일이 되면 난데없이 초코과자 ‘빼빼로’가 불티나게 팔린다거나 나라 사랑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보이는 프로야구 경기 전에 애국가 연주 등의 식순을 갖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행위들은 결혼과 졸업 과 사랑과 스포츠의 본질적 의미와는 무관하게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 는 누구나 알고 있거나 따라 하는 크고 작은 의례적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고개 숙여 인사나 절을 하고 특정한 색의 옷을 입고 특정한 말이 나 물품들을 교환하는 것. 사실 우리의 삶은 이렇게 일정한 방식에 의 해 이야기를 하고 뜻을 전하고 감정을 나누고 기록을 남긴다. 한마디로 의례 혹은 의례적 행위를 통해 커뮤니케이션한다. 의례로서의 커뮤니케이션. 그것은 우리가 삶에서 수행하는 커뮤니 케이션이 공간적 차원뿐 아니라 시간적 차원에서도 이루어짐을 말해 주는 것이다. 만일 전통적인 커뮤니케이션 모형들이 제시하듯 커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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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션이 어떤 지점 A에서 다른 지점 B로의 메시지 이동만을 의미한다 면, 우리는 굳이 복잡한 절차를 거치며 각종 의례를 치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로 연인들의 언약이나 결혼은 완성될 것 이고, 졸업식이 없더라도 예정된 교육과정을 마치는 것으로 학교생활 은 자연스레 마무리될 것이다. 굳이 명절 때 세배를 하지 않더라도 부 모님과 가족의 행복을 비는 것이야 당연한 일일 테고, 프로야구 경기 전 에는 차라리 힘찬 응원가를 틀어 주는 편이 경기 결과에는 더 이로울 것 이다. 그것이 더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일 테니까. 그러나 길고 짧은 세월을 거치며 한 사회에서 자리 잡은 여러 형태의 ‘의례’ 속에는 단순 한 메시지 전달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의미는 때로는 충 분히 납득 가능할 만큼 진지하고 절대적이며 모든 사회 구성원들을 아 우르지만, 때로는 도저히 이해가 어려울 만큼 우스꽝스럽고 상대적이 며 나와 다른 타인을 배제하기도 한다. 국어사전은 ‘의례’를 ‘어떤 행사를 치르는 법칙 혹은 정해진 방식에 따라 치르는 행사’로 정의한다. 결혼식, 졸업식 등 일정한 식순에 의해 매번 비슷하게 진행되는 행사들, 설날에는 세배를 하고 추석에는 조상 을 찾는 등 비슷한 일들을 해마다 반복하는 명절이 의례의 대표적인 사 례들이다. 커뮤니케이션의 관점에서 보자면, 의례란 자신이 속한 사회 의 기준에 의거하여 규범이라고 생각되는 상징적 행위를 공유하는 것 을 의미한다. 규범이라고 생각되는 상징적 행위. 이 간결한 정의 속에는 우리가 왜 의례를 거부하기 어려운가에 대한 이유가 담겨 있다. ‘규범’이라 생 각되기에 이를 따르지 않으면 대가가 뒤따르고, ‘상징’을 이용한 행위이 기에 무언가 실제 행위 이상의 더 큰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 것이라 믿게 되는 것이다. 예컨대 한국 사회에서 결혼이란 아직도 ‘결혼식’을 의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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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경우가 많으며, 그 결혼식은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는 암묵적인 규약 또한 많은 편이다. 물론 이를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법적 처벌을 받는 것은 아니다. 다만 법적 처벌만큼이나 무서운 사회로 부터의 ‘이질감’이라는 벽이 생겨나는 것도 사실이다. 그나마 관혼상제 혹은 인생의 주요한 통과의례에 관련된 사항들처 럼 한국 사회에서 어느 정도 광범위한 동의를 얻은 의례들도 있지만, 너 무나 사소하면서도 우스울 정도로 엄격히 지켜지는 의례 아닌 의례들 도 있다. 예를 들어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다짜고짜 나이를 물어보는 것은 대부분의 문화에서 낯설거나 심지어 금기시되는 행위이지만, 한 국에서는 매우 ‘의례적’으로 일어난다. 몇 년 생인지, 몇 학번인지, 혹은 학교를 일찍 들어가거나 늦게 들어간 일은 없는지 등을 꼼꼼히 따져 서 로 나이를 확인하는 것으로 인간관계는 시작된다. 일단 나이의 위아래 가 정해지면, 그다음엔 일정한 상징적 행위를 통해 그들의 관계가 암묵 적으로 공유됨을 선포한다. “이제부터 말 놓을게”라는 언어적 표현, 머 리 숙여 인사하는 행위적 표현, 그리고 서로의 호칭을 정리하는 관계적 표현 등이 이어지는 것이다. 만일 이 의례를 따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뭐 큰일이야 있겠냐마는 적어도 사회생활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 는 뒷얘기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금까지 살펴본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의례’라는 말에는 두 가지 전제조건이 내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의례란 어디로 흘러가는 지 모르는 지루한 일상의 삶을 잠시 멈추고 무엇인가 사회적으로 의미 있고 진지한 행위를 하는 과정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또한 그 행위는 특정한 방식으로 형식화되어 있으며 자발적으로 수행한다는 전제하에 서 상징적인 의미를 드러낸다는 점이다. 그래서 의례는 ‘진지한 삶에 참 여하거나 상징적인 효과를 주기 위해 적절한 방식으로 패턴화된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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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자발적으로 수행하는 것’이라 정의할 수 있다. 이러한 면에서 보자면 가장 대표적인 의례는 종교다. 설사 평일에는 지극히 세속적인 삶을 살 지라도 때가 되면 각자의 종교기관에 가서 경건한 마음으로 회개하며 기도하는 절차로 일상과 잠시 거리를 둔다. 비록 기도를 마치자마자 다 시 세속의 세계로 곧장 복귀한다 할지라도, 잠시 성스러운 세계에 ‘자발 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며 사회 집단에 해가 되지 않는 사람이라는 위안을 준다. 이처럼 의례는 특별한 사회적 경험을 상징적이면서도 극적으로 구 성한 일련의 과정을 의미하며, 그 성격으로 인해 독특한 이중성을 지닌 다. 의례가 가장 필요하고도 소중한 것으로 여겨지는 순간은 조용히 흘 러갈 줄만 알았던 일상에 갑작스런 균열이 생길 때다. 진행되던 계획이 뜻하지 않게 틀어졌을 때, 인간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외부적 요소로 인 해 사회에 갑작스런 변화가 생겼을 때, 혹은 누군가의 삶이 끝났다는 것 을 알았을 때 등이다. 이런 순간엔 누구나 당황하게 된다. 그러나 이내 이런 일이 개인에게는 특별하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무수히 벌어지는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동시대의 삶을 사는 누구라도 이런 일은 겪 을 테고 심지어 그 때를 위한 적절한 대응방식도 마련되어 있다. 바로 ‘남들 하는 대로’ 하는 것이다. 이럴 때 별 고민 없이 따라할 수 있는 정 해진 절차가 있다는 것은 일말의 안도감을 준다. 세속적 욕망으로 살아 가던 일상 속에서 갑자기 닥친 경건한 순간에, 우리는 실제 마음이 얼마 나 경건한지와는 무관하게 경건하게 보이는 법을 대충 따르고 산다. 그 리고 그런 방식들에는 ‘의례’나 ‘의식’라는 이름들이 붙어 있다. 혼례, 장 례, 제례 등 역사적으로 오래전부터 전승되어 오던 것들도 있지만, 입 학식, 국민의례, 직장 회식, 각종 국가 기념일 등 근대화 이후 생겨난 것 들도 있다. 이러한 의례들은 때로는 편리하지만 때로는 거추장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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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사회의 의례는 나름의 역사성을 지니고 있어서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이러한 이중성을 설명하기 위해 조금 오래된 시트콤을 사례로 들 어 보자. 2010년 방송되었던 <지붕 뚫고 하이킥>의 어느 에피소드에서 노년의 연애를 즐기는 이순재는 연인 김자옥을 위해 마음에도 없는 ‘이 벤트’를 기획한다. 여기서 ‘이벤트’란 일상적인 연애의 중간에 갑자기 마련된 경건한 순간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순재는 ‘남들 하는 대로’ 카페를 통째로 빌리고 낭만적인 음악을 마련하고 자옥을 위해 만 세를 부른다. 이 이벤트는 매우 경건하게 치러지고, 결국 순재의 예상 대로 자옥은 크게 감동한다. 과연 순재의 이벤트는 성공한 것일까? 결 과적으로는 그렇다. 자옥은 행복했고 순재는 자신의 마음을 효과적으 로 전달했다. 그러나 이 장면에서 순재가 하는 모든 일들은 진심이면서 도 진심이 아니라는 것이 곧 드러난다. 자옥을 사랑하는 것만큼은 진심 이지만, 그 마음을 굳이 ‘이벤트’로 치러내야 하는 것이 못마땅하기 때 문이다. 그래서 순재는 감격하는 자옥 앞에서 차마 겉으로 말하지 못한 채 낮게 읊조린다. “으, 이 지겨운 이벤트!” 이 에피소드는 한 사회의 의례가 지니는 역설을 잘 보여 준다. 의례 는 특별한 순간을 위해 특별한 방식으로 마련된다. 그런데도 의례는 가 장 관성적일 때 더 큰 효과를 발휘한다. 순재가 준비한 의례는 자옥에 게 몹시 특별한 사랑의 상징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전지적 관찰자 시점 에 서 있는 시청자들은 그 의례가 형식적으로 전혀 특별하지 않고 진부 할 뿐 아니라, 심지어 내용상으로도 진실한 사랑의 마음만을 담고 있지 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붕 뚫고 하이킥>의 이 에피소드가 웃음 을 자아내는 까닭도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경험했을 법한 의례의 모순을 잘 드러내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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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가 지닌 이러한 이중적인 의미를 가장 먼저 주목한 것은 사회 학자와 인류학자들이다. 종교적인 의미에서 의례란 무심히 흘러가던 일상생활을 잠시 접고 신성한 대상과 가치에 도달하려는 노력의 형식 이자 과정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례가 특수성을 벗어나 지속될 때 의례 는 그 자체로 하나의 반복이 된다. 예를 들어 종교적 믿음을 강화하기 위해 절차를 갖추어 규칙적으로 지속하던 기도가 어느 순간 남에게 나 의 신앙심을 과시하기 위한 도구가 되기도 한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을 표시하기 위해 경건함을 표현하던 ‘국민의례’는 이제 스포츠부터 학 교 행사에 이르기까지 그저 어떤 행사의 문을 여는 진부한 순서가 되었 다. 특별한 의례였던 것이 하나의 일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커뮤니케 이션을 의례로 본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일련의 상징과 언어와 행위와 과정들이 시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회와 문화의 여 러 요소들을 어떻게 연결하고 있는지를 살피는 일이다. 제사나 장례식 등은 닿을 길 없어 보이던 과거와 현재를 상징적으로 연결하고, 월드컵 과 같은 국제 행사는 일개 스포츠팬을 국민으로 만든다. 결혼식은 개인 사이의 결합을 가족이라는 사회적 기구로 만들고, 종교는 모든 것이 서 로 다른 수많은 개인들을 통합하는 엄청난 상징적 힘을 발휘한다. 에밀 뒤르켐(David Émile Durkheim)은 집단적 감정 상태와 분위기를 창출 하는 것이야말로 의례의 핵심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의례의 의미와 힘은 그 내용보다도 형식을 통해 더 잘 드러 난다. 예를 들어 한국 사회에서 인사할 때 숙이는 고개의 각도는 인사 의 진심 정도와 비례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90도 인사’ 혹은 허 리를 휴대전화의 폴더처럼 꺾어 인사한다는 의미로 부르는 ‘폴더 인사’ 는 상대에게 나의 큰 존경심을 표현하기 위한 가장 명확하며 편리한 형 식이다. 텔레비전 뉴스에서 기술적으로 연결 상태가 고르지 않은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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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을 무릅쓰고서라도 현장을 직접 연결하는 것 또한 그 뉴스가 바로 ‘지 금 이 순간’을 전달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데 있어 최적의 형식이기 때 문이다. 눈보라나 비바람을 맞으며 현장 보도를 하는 기자들을 보면, 시청자들은 뉴스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그 기자가 최선을 다해 사실을 보도하고 있다고 믿게 된다. 이처럼 개인의 일상이나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방식의 의례들은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나와 타자 혹은 나와 사회와의 관계는 어떠한 규 범에 따라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정체성을 구성한다. 특별하면서도 일 상적인 것, 그것이 의례로서의 커뮤니케이션이 지니는 힘이자 의미다.

인류학에서 커뮤니케이션학까지 의례 연구들 지금까지 ‘의례’의 의미에 대해 살펴보았는데 이쯤에서 의문이 하나 생 길 법하다. 태어나고 먹고 사랑하고 놀고 죽는 과정들은 인간이라면 누 구나 겪는 자연적인 일들인데, 이 모든 것들을 커뮤니케이션으로 보는 것은 지나치지 않은가 하는 문제다. 별 것 아닌 손짓이나 몸짓부터 미 디어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커뮤니케이션으로 본다는 것이 과연 이 론적으로 타당한가 하는 문제도 더불어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죽음의 의례를 문화적으로 탐색했던 강준만은 “한국에서 장례식은 많 은 사람들이 모여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주요 마당”이라고 단언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강준만이 죽음 그 자체의 생물학적이고 자연적인 의미를 살핀 것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근대’ 전후의 죽음을 커뮤니케이션하는 ‘과정’을 보았다는 데 있다. 에릭 로텐뷸러 (Eric Rothenbuhler) 역시 모든 커뮤니케이션을 의례로 단정하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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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일 수 있지만, 그렇다 해도 모든 커뮤니케이션 형식이 어느 정도의 의례적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한다. 일상에서의 인사나 노래와 춤은 물론이고 직장과 미디어와 학교 등 우리의 삶 대부 분에서 최소한의 의례적 요소는 쉽게 발견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의례로서의 커뮤니케이션이 지니는 의미가 부각되 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 이론에서 미디어를 의례의 사례로 언급한 것은 1970년대 이후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 변화의 중심에 제임스 캐 리(James Carey)가 있다. 캐리는 의례를 커뮤니케이션의 일종으로 보 던 이전의 논의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커뮤니케이션을 의례로 볼 수 있음 을 주장했다. 의례로서의 커뮤니케이션을 이해한다는 것은 의례 그 자 체를 당연시 여기지 않고 의미를 파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의례 는 무엇이며 어디에서 유래하는가? 의례는 어떤 형태를 띠며 그 효과는 무엇인가? 의례는 우리의 경험을 어떤 식으로 규정하는가? 그리고 그 경험은 어떻게 다시 의례로 구성되는가? 종교와 정치와 문화와 예술과 일상을 관통하는 의례의 여러 상징들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의 례는 통제하거나 조정할 수 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의례 연구가 오 늘날의 사회문화적인 과정을 이해하는 데 기여하는 점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커뮤니케이션 이론의 전개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인류학과 사회학에서 진행되어 왔던 논의들을 간략히 살펴보는 것이 순서겠다. 의례는 인류학에서는 일찍부터 핵심적 개념이었다. 뒤 르켐부터 그레고리 베이트슨, 메리 더글러스, 빅터 터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인류학의 고전들이 의례라는 개념을 탐색했다. 그러나 지난 30 여 년 동안 커뮤니케이션과 문화를 의례의 관점으로 보는 움직임은 인 류학과 종교학의 범주를 넘어서서, 사회학과 역사학은 물론 사회생물 학이나 철학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19세기 이후 종교와 사회의 관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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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하는 데 있어서 의례는 핵심 개념이었지만, 오늘날 의례는 단순히 사 회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개념의 수준을 넘어서 그 자체로 하나의 연구 대상이자 연구 방법이 되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사회와 문화연구에서 의례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인류학에서 ‘의례’라는 단어가 일종의 이국적이고 신비로운 행동 을 의미하기도 하는 반면에, 근대 사회에서의 의례는 성(聖)의 영역이 면서도 동시에 속(俗)의 영역을 모두 포함한다. 한마디로 일상이 된 것 이다. 올림픽에서부터 국가적 재앙에 이르기까지 집단적으로 경험하 는 삶이기도 하고, 매주 교회에서 열리는 예배에서부터 설날이나 추석 처럼 해마다 돌아오는 행사이기도 하다. 그리고 사람을 만났을 때 나누 는 인사나 의식에서부터 텔레비전이나 SNS를 즐기는 미디어 소비에 이 르기까지 일상다반사이기도 하다. 이처럼 의례는 공사 영역 전반에 광 범위하게 깃들어 있는 문화의 필수 요소다. 그러나 이러한 보편성에도 불구하고 의례는 본질적으로 인간의 삶과 경험의 다양성을 반영하기도 한다. 바로 이러한 점들이 의례로서의 커뮤니케이션 연구가 사회문화 분석에 풍부한 영감을 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의례로서의 커뮤니케이션 연구의 뿌리는 의례의 종교적 의미를 논 의했던 뒤르켐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뒤르켐은 의례를 “성스러운 대상 을 앞에 두고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규정해야 하는 행위의 규칙”이 라 정의한다. 종교는 어떤 사회의 집단적인 가치나 생각이 무엇인지를 결정하는 역할을 하는데, 그 공동체의 가치나 믿음을 견고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종교 의례라는 것이다. 따라서 뒤르켐의 관점에 서 종교적인 의례란 일상생활과 확연히 구분되는 상징이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어야 하고, 그 형식은 진지하면서도 성스러우며 반복적으 로 이루어지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자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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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그 의례에 참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뒤르켐의 영향을 받았으나 성과 속의 이분법을 약화시키고 의례 를 현대사회의 미시적인 일상에 적용한 사람이 바로 어빙 고프먼 (Erving Goffman)이다. 고프먼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하는 지극히 사사롭고 세속적인 행동들도 자신에게 소중한 대상에 대한 일일 경우 에는 행동의 상징적 의미를 생각하고 행동방식을 조절한다고 주장한 다. 그래서 의례를 “한 개인이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는 대상에 대한 자 신의 존경과 경의를 그 대표자에게 표현하는 형식적이고 관례화된 행 위”라고 정의한다. 특히 그는 개인들 사이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상호 작용의 의례’에 주목하는데, 이러한 의례야말로 한때 종교가 그 러했듯 사회의 도덕적 질서를 보장하는 행위규칙으로 작용한다고 보 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개인은 누구나 자기 연출을 통해 자아를 조심스럽게 대해야 할 성스러운 대상으로 표현한 다. 그래야만 타인이 나에게 온당한 의례를 거쳐 접근할 것이기 때문 이다. 그래서 고프먼에게 우리의 일상생활은 연극 무대이고 그 안에서 우리는 배우처럼 의례를 연기함으로써 자아의 인상을 표현하고 관리 한다. 그는 이를 일컬어 ‘인상 관리’라 부른다. 여기서 인상 관리는 이 중적 의미를 지닌다. 나의 인상관리는 상대 배우나 연극 관객에게 매 우 훌륭한 것으로 인식되어야 하는 동시에 그것이 전혀 연기가 아닌 것처럼 보여야 하는 것이다. 앞에서 예로 들었던 <지붕 뚫고 하이킥> 에서 순재가 ‘지겹다’고 속으로만 되뇔 뿐 끝끝내 사랑의 이벤트를 절 차에 따라 마친 것과 비슷하다. 인간의 기본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의례로 이해한 고프먼의 관점은 이후 이어지는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 연구에 큰 영향을 주었다. 고프 먼의 연구가 특히 의미가 있는 것은, 그가 1959년에 출간한 󰡔일상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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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의 자아 연출󰡕이 당시만 해도 미국 사회학계를 지배하고 있었던 계 량적 분석 위주의 실증 연구 흐름을 거스른 것이었다는 점이다. 그는 문화인류학자들의 지역사회 현장 연구 전통과 꾸준히 접촉하면서, 계 량적 방법만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문화와 사회의 작은 부분들에 대한 관심을 발전시키게 된다. 일상의 인사, 직업 현장, 정신병동, 거리, 엘리 베이터에 이르기까지 미시 수준의 일상을 촘촘하게 기술하고 분석한 그의 연구는 학술적이면서도 문학적이었다. 이러한 오랜 전통 위에서 비로소 캐리의 연구가 본격적으로 커뮤 니케이션의 의례적 관점을 주창할 수 있었다. 캐리는 커뮤니케이션을 두 가지 관점에서 설명하는데, 하나는 전달이고 다른 하나는 의례다. 캐리는 역사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은 전달의 과정으로 이해되었다고 말 하면서 우리가 흔히 커뮤니케이션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로 이 관점을 따른 것이라고 말한다. 즉 어떤 정보나 내용이 일정한 거리를 넘어서 전파되는 과정을 커뮤니케이션으로 보아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캐리 는 커뮤니케이션을 의례로 보아야 할 필요성을 주장하는데, 이는 메시 지의 전달보다는 교감과 공유와 참여 등을 상징한다. 즉 커뮤니케이션 이란 시간적인 차원에서 공동체의 가치를 공유함으로써 사회를 유지하 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캐리는 뉴턴식의 자연과학 모델에 기초하여 커뮤니케이션을 설명 하던 당시의 실증주의 경향과는 반대로, 커뮤니케이션에 담긴 사회적 갈등의 의미나 정치사회적 실천의 의미를 드러내고자 했다. 비록 그가 구체적인 미디어나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의 직접 사례를 든 것은 아니지만, 유럽의 문화연구가 대중매체를 연구 대상으로 삼지 않았던 점을 비판하며 커뮤니케이션을 예술적 창조와 자발적 참여의 측면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는 당시 미국의 커뮤니케이션 일반의 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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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에 비해서는 훨씬 문화적인 측면을 강조했지만 유럽의 문화연구에 비해서는 의례의 상징성이 지닌 복잡한 관계성을 더 강조했다. 이 때문 에 캐리의 의례적 관점은 미국식의 프래그머티즘에 바탕을 둔 문화연 구라 불리기도 한다. 캐리의 연구에서 촉발된 의례로서의 커뮤니케이션 관점은 이후 많 은 미디어와 문화연구자들이 미디어가 구성하는 삶의 일상성이나 미디 어가 시공간을 초월하여 전파하는 의례적 가치 등에 관심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 커뮤니케이션을 의례로 이해한다는 것은 커뮤니 케이션의 역사성과 맥락성을 반성적으로 살핀다는 의미이자, 주체와 타자와의 관계를 표현과 의미와 상징의 측면에서 바라본다는 의미가 되었다. 이러한 연구들의 흐름을 거칠게나마 분류해 보자면 대략 다음 세 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다. 첫째로 언어나 일상의 삶 속에서 반복되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상징적 행위에 대한 연구를 들 수 있다. 앞에서 언급했던 강준만의 장 례식 연구가 좋은 사례이며, 이상길이 술자리의 의미를 의례로 분석한 연구도 흥미롭다. 이상길은 한국 사회의 남성들 사이에서 술자리를 함 께 갖는다는 것은 자기 영역의 축소인 동시에 노출증적인 자기표현의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한다. 실제 우리는 평소의 가면을 벗고 민낯을 보 거나 진심을 보기 위해 술자리를 갖는다고 말하지만, 그러한 술자리의 과정 역시 철저한 의례의 과정이다. 빨리 친해지기 위한 폭탄주, 술잔 돌리기, 2차나 3차를 노래방으로 마무리하기 등의 과정은 마치 하나의 식순처럼 별다른 의심 없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이상길은 술자리가 개 인적인 ‘나’에서 벗어나 집단적인 ‘우리’로 들어가는 이행의 통로로서 의 미를 지닌다고 설명한다. 다른 의례들이 그렇듯 술자리에 참여하지 않 는다고 해서 처벌을 받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고지식하고 인간적이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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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며 ‘우리’의 의미를 거부하는 사람으로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둘째로, 미디어 재현으로 전달되는 삶의 일상성에 관한 연구다. 대 표적인 학자로는 닉 콜드리(Nick Couldry)가 있다. 콜드리는 미디어가 사회의 ‘중심’에서 일어나는 일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 상의) 신뢰 속에서 중요한 사회기구로 작동한다고 본다. 따라서 그에게 미디어 의례란 미디어의 생산 과정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들이나 행위뿐만 아니라 미디어가 재현하고 전달하는 내용 등을 포함한다. 뉴 스는 물론이고 토크쇼나 광고 그리고 셀러브리티 시스템에 이르기까 지, 미디어는 우리 일상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반복적으로 일어 나는지에 대한 기본적 아이디어를 제공해 준다. 그는 최근의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이 신자유주의를 암암리에 유지하게 하는 일종의 ‘비밀 극 장’ 역할을 함으로써 사회의 현상 유지에 기여한다고 본다. 비슷한 맥락 에서 오디션 프로그램이 보여 주는 경쟁이 자본주의 사회의 경쟁을 정 당화한다고 본 이종수의 연구도 언급할 만하다. 특히 어린 나이의 참가 자들을 대상으로 한 오디션 프로그램은 평범한 존재가 어려운 장애를 넘어 새로운 존재로 거듭난다는 전형적인 통과의례의 구조를 지니고 있다. 셋째로는 미디어가 시공간적인 경계를 넘어 전달하는 각종 행사나 의식 등에 대한 연구다. 이때 미디어는 기념이나 기억의 형태가 되는데, 다니엘 다얀과 엘리후 카츠(Dayan & Katz, 1994)가 개념화한 󰡔미디어 이벤트󰡕가 대표적인 연구 사례다. 이들은 현대사회에서 미디어가 사회 와 문화를 통합하는 문화적 힘을 발휘한다고 보며, 왕실의 대관식이나 국제 경쟁 스포츠 등을 생방송으로 중계하게 된 영상 테크놀로지의 발 달 이후 그 힘은 더욱 커지고 있는 것으로 본다. 이상의 세 가지 연구 흐름은 ‘의례’라는 단어가 흔히 연상케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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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러움이나 경건함에 머물지 않고 일상적인 행위와 미디어처럼 세속 적인 사례를 의례의 관점에서 다루었다는 의미가 있다. 이 미디어 의례 나 커뮤니케이션 의례들은 특정한 사회 속에서 특정한 방식으로 구조 화된 형식을 지닌다. 그럼에도 세속적인 즐거움과 자발적인 참여를 통 해 근대 이전의 종교 못지않게 커다란 사회문화적 통합의 힘을 발휘하 게 되는 것이다. 이 연구들에서 여전히 뒤르켐의 흔적을 살필 수 있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뒤르켐은 고도로 세분화된 사회일수록 공동체의 동질성을 강화하기 위한 특별한 기구나 전문적인 작업이 발생할 것이 라 예측했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내부적으로 발생하는 차별화에 대 한 반대급부로 이러한 기구들이 사회 통합의 역할을 전담할 것이라 보 았던 것이다. 뒤르켐에게는 종교가 그 대표적인 기구였고, 이후의 미디 어와 커뮤니케이션 연구자들에게는 미디어가 가장 대표적인 기구로 여 겨졌던 셈이다. 의례로서의 커뮤니케이션이나 의례로서의 미디어로 연구 가능한 목록은 앞으로도 점점 길어질 것 같다. 캐리 이후의 의례 연구들이 주 로 사회 통합에 긍정적인 의미로 작용하는 미디어 의례들에 주로 초점 을 맞추었다면, 앞으로는 이에 포함되지 않는 것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9·11이나 세월호 참사 와 같은 재난이 지니는 의미는 무엇이며, 이와 관련된 미디어 의례에서 통합이 아니라 파국이 일어나는 지점과 같은 것들도 고려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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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로서의 커뮤니케이션이 지니는 현재적 의미 통합이 아닌 파국으로서의 의례. 이는 지금까지 살펴본 ‘의례’에 대한 정의나 의례적 관점의 커뮤니케이션 역사를 감안하면 생소하게 들릴지 도 모른다. 하지만 의례적 관점의 커뮤니케이션 연구가 강조했던 것이 연구 대상으로서의 의례뿐 아니라 연구자 스스로가 그 의례의 일부임 을 자각하자는 것이었음을 감안한다면 그리 낯설기만 한 일도 아니다. 고프먼이나 캐리가 의례로서의 커뮤니케이션에 주목하면서 강조했던 것은, 커뮤니케이션 연구란 상징의 역할에 대한 연구이자 의미의 지향 이나 가치에 대한 윤리적 태도를 요구하는 연구라는 점이다. 즉 실증주 의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관점, 전신과 교통 등으로 외연을 확장한 테크놀로지에 대한 정의, 국 가나 사회의 공동체성에 대한 권리와 의무 등에 대한 관심으로의 확장 을 포함하는 작업이다. 결국 의례로서의 커뮤니케이션 연구란 역사적 이면서도 자기반영적인 성찰을 요하는 연구가 될 수밖에 없다. 군국주 의 이래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국민의례가 남긴 역사적 상흔은 무엇일 까? 세월호 참사로 공동체가 경험한 참담함은 어떠한 사회적 기억으로 남을 것인가? 이러한 문제들은 오늘날 우리에게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 는 문제들이다. 2014년 현재 포털에 연재 중인 만화가 최규석의 웹툰 <송곳>은 한 때 군인을 꿈꾸었을 만큼 규칙과 원칙을 중요시 여기는 주인공이 대형 글로벌 유통업체의 노동자로 일하면서 겪게 되는 통과의례를 그리고 있다. 처신은 항상 단정하고 작은 원칙도 어기지 않으며 직장에서 아랫 사람에게 절대 말을 놓지 않는 주인공. 그의 태도는 한국적인 직장문화 에서 장점이라기보다는 답답하고 고지식함으로 비추어진다. 그러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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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동료 노동자들을 부당하게 대하는 회사와 세상에 저항하게 되는 계기는 바로 자신이 늘 지키던 그 원칙에 조금씩 균열을 내면서부터다. 별 말없이 따르곤 하던 회사 회식에 불참하고, 매니저이면서도 아래 직 급 점원들처럼 앞치마를 두른 채 매장을 정리한다. 만화는 이런 그의 작은 행동들이 어떻게 큰 상징적 의미를 지니는지, 그리고 그러한 행동 이 갑자기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라 그의 과거사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또한 그 행동이 더 큰 의미로 확장되는 일에 동료 노동자들과의 연대가 얼마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지를 보여 준다. 의례로서의 커뮤니케이션 연구 관점은 한 사회의 상징적 의미가 어떻게 형성되어 어떻게 구성원들을 통합하는지 뿐만 아니라, 그 균열 이나 전복이 어떻게 상징적인 의례의 수준에서도 가능한지 탐색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앞에서 예로 들었던 이상길의 술자리 연구는 연구자가 몇 십 년 동안 참여해 왔던 자신의 술자리 문화를 사후 관찰한 일지를 바탕으로 한다. 고프먼의 󰡔상호작용 의례󰡕의 카지노 연구의 경우에도, 고프먼 자신이 처음에는 고객으로 시작했다가 나중엔 딜러로 참여하게 되었던 카지노를 직접 참여 관찰한 결과다. 그는 사회란 개인으로부터 독립된 그 무엇이 아니라 사람들이 상호작용을 하는 과정에서 형성되 는 것이라 인식한다. 그런 그가 엘리베이터나 카지노와 같은 지극히 일 상적이면서도 시공간적으로 제한된 곳에서 일시에 마주친 개인의 상호 작용에 관심을 가진 것은 방법론적으로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의례 로서의 커뮤니케이션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을 뿐 아니라 그 안에 연구 자도 포함되어 있다는 자기반영성의 태도를 놓치지 않은 것이다. 의례로서의 커뮤니케이션 연구는 구체적인 은유적 개념을 적극적 으로 활용하고, 비체계적으로 일어나는 상황들을 관찰하고 기술하며, 이 관찰을 바탕으로 체계적인 상황을 설명하려 한다. 이러한 방법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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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은 사회에 대한 연구에 인문학적인 관찰과 예술적인 창조적 행위 가 바탕이 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특성들 때문에 의례로서의 커뮤니케이션에 제 기되는 비판적 시각도 적지 않다. 우선 가장 큰 비판은 근대사회의 ‘의 례’란 대개 진정성이 부족하고 비이성적인 집단행위에 기반하고 있어 서 이데올로기적으로 위험성이 크며 정치적으로 휘둘릴 가능성이 있다 는 지적이다. 대표적으로 발터 베냐민(Walter Benjamin)은 기술복제 를 이용한 미디어가 예술작품을 의례로부터 해방시켰다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베냐민이 설명하는 의례란 민주적인 가치를 갖고 있지 못한 어떤 것, 그래서 근대의 기술복제에 의해 의미가 약해지는 어떤 것으로 묘사된다. 즉 베냐민이 보기에 의례란 본질적으로 전통적이고 보수적 이며 비민주적인 가치를 상징하는 것이다. 의례로서의 커뮤니케이션 연구에 대한 또 다른 비판은 연구방법의 적정성에 관련된 것이다. 의례라는 개념을 광범위하게 해석하자면 우 리 삶에 의례가 아닌 것이 없고, 특수하게 해석하자면 아주 제한적인 커 뮤니케이션 방식만을 연구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콜드리의 미 디어 연구 등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미디어 의례는 기본적인 형식이나 패턴만 인식할 수 있다면 다양한 방식으로 변용하여 연구가 가능하다. ‘의례’가 형식적이고 조직화된 행동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제한적 연구 만이 가능할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으나 사실은 그 반대라는 뜻이다. 이런 비판들을 감안하면 앞으로 의례로서의 커뮤니케이션 연구가 지향할 수 있는 방향을 몇 가지로 제시해 볼 수 있다. 우선 도덕적 공황 (moral panic)에 대한 연구다. 사회구성원들의 집단적 분노와 공황이 표출될 때, 이는 파국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가장 의례화된 방식으로 유 지되는 사회 질서의 또 다른 이름일 수도 있다. 󰡔위험사회󰡕의 저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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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리히 벡(Ulrich Beck)이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을 방문해서 가진 강 연에서 ‘조직화된 무책임’이나 ‘조작된 불안’에 의해 위험사회가 초래될 수 있다고 말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두 번째 연구 방향은 미디어 의 확장에 따른 일상생활의 의례화에 대한 연구다. 미디어 이벤트라는 개념으로 사회를 분석한 다얀과 카츠는 비록 텔레비전이 놓인 곳이 한 가정의 아주 사적인 공간이라 해도 오늘날과 같은 테크놀로지 환경에 서는 공적 영역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너무도 쉽게 ‘개 인 미디어’라 불리지만 사실 개인을 빅데이터 망 속에 고스란히 노출시 키는 SNS도 마찬가지다. 결국 의례로서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은유가 오늘날의 커뮤니케 이션 연구에 중요한 까닭은, 커뮤니케이션은 곧 ‘진심’의 ‘효과적’ 전달 이어야 한다는 결정론적 시각에 반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커뮤니 케이션이란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함께 더 진보할 것이라는 기술결정론 적 시각도 경계할 수 있게 해 준다. 의례로서의 커뮤니케이션 관점으로 보자면, ‘커뮤니케이션이 잘 된다’는 것은 메시지 손실 없이 효과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개인성과 공동체성이 맺는 관계를 의 미한다. 그 관계는 국면에 따라 매우 협력적일 수도 있지만 지독하게 폭력적일 수도 있다. 실제로 가장 일사분란하게 정보가 전달되는 사회 란 군대, 독재국가, 종교 등 가장 폐쇄적이고 억압적인 경우가 많다. 이 런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한 대부분의 일상생활에서 커뮤니케이션은 무 엇인가를 의미하려는 절차이고 과정이지만 그 과정은 오해와 갈등과 차이를 고스란히 드러내기 일쑤다. 한국 사회의 술자리처럼, 직장생활 처럼, 정치처럼, 종교처럼, 그리고 교육처럼. 오늘날 우리의 일상생활이나 미디어 등 커뮤니케이션 영역은 과거 의 종교에 비하면 훨씬 세속적이고 가벼워 보이지만 여러 가지 도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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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레마들을 담고 있다. 우리의 미디어와 문화는 끊임없이 우리를 절망 케 하는 세상을 어떻게 견뎌내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의 일상적 삶에 고 통을 주는 크고 작은 일들에 어떻게 맞서 나가야 하는지 그 방법을 알려 주는 역할을 한다. 한때 종교나 예술이 담당했던 대중교육의 역할을 오 늘날 대중문화나 미디어가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의 교육은 그 자 체로 훌륭하거나 수준이 낮지는 않다. 문제는 ‘무엇’을 커뮤니케이션하 는가보다는 ‘어떻게’ 커뮤니케이션하는가이기 때문이다. 캐리가 전달과 의례라는 두 가지 관점으로 커뮤니케이션을 설명할 때, 그것은 커뮤니케이션과 문화와 테크놀로지의 관계에 따른 구분이 었다. 그는 커뮤니케이션 전달 모형이 아마도 산업시대에는 가장 쉽고 편하며 효율적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단 정보 전달에서 그렇다는 뜻 이다. 그에 비하면 의례적 커뮤니케이션은 우리가 ‘정보’라고 부르는 것 을 거의 담고 있지 않으며 대신 공통의 신념이나 가치 체계를 재현한다. 즉 의례로서의 커뮤니케이션은 메시지가 공간적으로 전달되거나 확장 되는 것을 지향한다기보다는 사회가 시간적으로 지속되고 유지되는 것 을 지향한다는 의미다. 오늘날 정부의 무책임한 정책들, 진부하고 시시 한 미디어 프로그램들, 생명보다는 숫자로 본 성공을 지향하는 교육기 관들을 보자. 이들이 과연 ‘무엇’ 혹은 어떤 ‘정보’나 ‘메시지’를 전달하기 는 하는가? 사실상 이러한 유형의 커뮤니케이션은 그 어떤 유의미한 내 용도 담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커뮤니케이션 연구자와 문화연구자들 이 이런 현상들을 사소한 것으로 치부해 버려야 하는가? 그 어느 때보 다 교육은, 정치는, 대중문화는, 하나의 종교처럼 상징을 생산하고 사 람들을 따르게 만든다. 실제로 사람들은 민주주의 대신 민주주의처럼 보이는 상징을, 종교의 보편적 정신이 아닌 종교 활동을 통한 인맥 형성 을, 진정한 교육이 아닌 경쟁수단으로서의 성취를 더욱더 바라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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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않은가? 커뮤니케이션을 의례로 본다는 것은 커뮤니케이션의 역사성과 자 기반영성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의례는 기본적으로 반복된 훈련을 통 해 공동의 가치를 숭배하는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이는 신체에 습관적이 고 관습적인 사고로 주입된다. 수행과 숭배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사 사키 아타루는 모든 근대화의 과정에서 교회가 세속국가에 최후까지 넘겨주지 않으려 했던 것도 바로 교육, 즉 훈련된 의례였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에게 혁명이란 의례로 인한 신체단련을 거스르는 일이다. 그 에게 혁명은 책을 읽는 일이고, 웹툰 <송곳>의 주인공에게 혁명이란 사 회의 규칙을 거슬러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하는 우리가 할 일은 그러한 훈련된 의례가 유지되거나 붕괴되는 현장을 정 확히 관찰하고 해석하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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