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인 빌라도의 죽음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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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



나오는 사람들

전령 하나님 죽음 만인(萬人) 우정 사촌 친척 재물 선행 지식 참회 힘 분별 오감(五感) 아름다움 천사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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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높으신 아버지께서 죽음을 보내사 모든 피조물들을 소환하고 그들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의 삶을 결산하도록 하신 이야기가 교훈극의 형식으로 여기 펼쳐진다.

프롤로그 전령 만장하신 여러분께 간청하옵기는 이제 시작될 이야기를 경청해 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만인의 소환>이라는 제목을 가진 이 이야기를 우리는 교훈극의 형식을 빌려 여러분께 들려드릴 것입니다. 이 교훈극은 우리네 인간들의 삶과 그 종말을 보여줄 것이며 인생이란 결국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를 말해줄 것입니다. 이것은 그 자체로 매우 소중한 이야기일 뿐 아니라 속뜻을 헤아려보면 더욱 은혜롭고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귀중한 교훈이 될 것입니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태초에 인간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매우 좋았더라.” 이 이야기를 끝까지 잘 들어보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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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기쁨이 여러분의 것이 될 것입니다! 죄악은 처음에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달콤하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우리의 육신이 진흙 속에 묻히게 될 때 우리의 영혼은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슬피 울며 통곡하게 됩니다. 이제 펼쳐지는 장면들에서 여러분은 우정과 즐거움, 그리고 힘과 쾌락과 아름다움이 5월의 꽃잎처럼 덧없이 져버리는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늘의 임금께서는 만인을 소환하사 한 사람도 빠짐없이 최후의 심판으로 나아오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자, 다들 주목해 주십시오. 그리고 그분께서 하시는 말씀에 귀 기울여 주십시오.

(‘하나님’1) 등장)

하나님

1) 이 ‘하나님의 ’ 무대적 재현이 어떠했는지에 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현 대 공연에서는 ‘아버지’ 하나님의 전형적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고난 받은 ‘아들’ 예수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물론 무대 위 배우의 현존 없이 ‘음 성으로만 ’ 나타나거나 천사의 존재를 통해 전언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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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기 내 높은 보좌에서 땅 위를 두루 살펴보니 어찌 모든 피조물이 내게 불충하고 세상의 번영 속에서 두려움 없이 살아가고 있는고. 죄악에 빠져 영혼의 안목을 모두 잃어버린 채 나를 저희의 하나님으로 알지 못하도다. 저들은 그 마음을 오직 세상의 부귀영화에 두어 준엄한 지팡이, 곧 내 의로움을 두려워함이 없도다.2) 저들을 위해 죽음으로써 보인 내 사랑도 내 붉은 피를 쏟았음도 저들은 까맣게 잊었구나. 내 분명히 두 도적 사이에 매달려 인간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내 목숨을 내어주었고 가시관에 찔려 흘린 피로 그들의 발을 씻어주었다. 그렇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건만 이제 사람들은 나를 무심하게도 저버렸구나. 저들은 저주받을 일곱 대죄(大罪)3)를 사랑해 마지않고

2) 이상의 7행은 구약성경에 빈번히 나타나는 ‘언약(covenant)을 배신한 하나 님의 백성에 ’ 해당하는 주제로서, 특히 예언서들로부터의 인용이다. 대구(對 句)적으로 이어지는 7행은 신약 복음서에의 언급이다. 3) ‘일곱 대죄란 ’ 중세 가톨릭교회에서 규정한 색욕, 식욕, 탐욕, 나태, 분노, 시 기, 오만을 가리킨다. 신약의 목회 서신, 특히 갈라디아서에 언급된 악덕 및 악 행의 항목들에 연원을 두지만 초기 기독교와 중세 교회를 거치면서 다소 다른 항목들이 첨가 또는 탈락되었다. 현재의 일곱 항목은 단테의 < 신곡> 연옥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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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교만과 탐욕과 분노와 음란만이 이 악하디악한 세상의 숭앙을 받고 있구나. 그렇게 저들은 천사들의 거룩한 동행을 뿌리쳤구나. 모든 사람이 자신의 쾌락만을 쫓고 살되 정작 자신의 삶에 대한 무지로 가득 차 있구나. 내가 참으면 참을수록, 해를 거듭하면 할수록 저들은 돌이킬 수 없이 더 나빠져만 가고 있지 않은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급속히 부패해 가고 있으니 나 또한 서둘러 만인을 소환해 저의 삶의 시종을 결산하도록 하리라. 사악한 태풍이 휘몰아치는 이 세상의 삶 속에 인간을 그냥 버려둔다면 저는 필시 짐승만도 못한 존재로 타락하고 말리라. 저들은 질투와 시기심으로 서로를 잡아먹고 말리라. 그리고 이 세상에 자비란 손톱만큼도 남아 있지 않으리라. 모든 인간이 내 영광 안에서 영원의 집을 짓고 살아가길 바랐건만 그리하여 저들 모두를 나의 택한 백성으로 삼았건만 에서도 언급되고 있다. 일곱 대죄를 의인화된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는 14∼ 15 세기의 많은 미술 작품들은 이것이 이 시기의 종교적 상상력의 중요한 한 모티 프였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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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보는 것은 무도한 반역의 무리요, 내가 저들을 위해 예비한 복락과 허락한 생명에 감사할 줄 모르는 패역의 무리로다. 나는 인간에게 한없는 긍휼을 베풀고자 했지만 내 긍휼을 진정으로 구하는 자가 어디에도 없구나. 저들은 이 세상의 부귀영화에 취해 있으니 내 저들에게 정의를 행해야 하리라. 두려움 없이 살아가고 있는 만인에게 그리할 것이라. 대적할 자 없는 나의 전령 죽음아, 어디 있느냐?

(‘죽음’4) 등장)

죽음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여, 부르심을 받아 여기 왔사오니 명하심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하나님 만인에게 가라.

4) 1530년 최초 인쇄본의 표지는 해골 가면을 쓰고 긴 낫을 든 모습의 ‘죽음을 ’ 보여준다. 중세의 이러한 우화적 이미지는 후드 달린 검은 망토와 함께 이제 진부한 스테레오타입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죽음의 ’ 모습을 어떻게 새롭게 재현해 내느냐의 문제가 현대 연출가들의 고민거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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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 내 이름으로 저가 걸어야 할 마지막 순례의 길, 무엇으로도 피하지 못할 그 길을 보여라. 오는 길에 저는 제 인생의 결산서를 지참해야 하리니 한순간의 지체함도 없이 출발하게 하여라.

(하나님 퇴장)

죽음 주님이시여, 이 세상을 샅샅이 뒤져서라도 위대하건 미미하건 모든 인간을 찾아내겠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고 짐승처럼 살아가면서도 자신의우매함을알지못하는만인을반드시잡아오겠습니다. 세상의 부귀영화에 영혼을 팔아치운 자를 내 쇠스랑으로 내리찍고 그 눈을 멀게 하며 부유하면서도 자선에 인색한 자는 천국 문 앞에서 가려내어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지옥의 불에 영원토록 가두겠습니다.

(‘만인’5) 등장) 5) 최초 인쇄본의 표지는 꽃길(타락한 세상의 길)을 걷고 있는 부유한 평민 계 급 또는 하급 귀족의 복식을 갖춘 갓 중년에 이른 남성을 보여준다. 본서의 해 설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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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라, 저기 만인이 활보하고 있구나. 내가 다가서는 줄은 꿈에도 생각 못하고 말이지. 저의 마음은 육신의 정욕과 세상 재물에만 쏠려 있어. 그러니 하늘의 왕이신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 저가 겪을 고통은 얼마나 큰 것일까. 만인이여, 잠깐 멈추시라! 그렇게 즐거운 모습으로 어딜 가시는 건가? 그대는 그대를 지으신 분을 잊었더란 말인가? 만인 그건 왜 묻는 거요? 당신이 알아서 어쩌게? 죽음 오호, 그래요? 그럼 어쩔 건지 보여드리지. 천국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서 나를 당신에게 급파하셨소. 만인 뭐라고? 나에게 ‘급파하셨다고 ’ ? 죽음 분명 그렇소. 이 지상에서 당신은 그분을 잊었겠지만 34


그분은 천상 영토에서 늘 그대를 생각하고 계심을 그대는, 떠나기 전에 알게 될 것이오. 만인 하나님께서 내게 뭘 원하시는 거요? 죽음 뭘 원하시는지 알려드리지. 그분은 당신 인생의 결산서를 요구하고 계시오. 더 이상 어떤 유예 기간도 없이 말이오. 만인 그런 결산서를 준비하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해요. 너무 급작스러운 일이라 정신이 다 혼미하니 말이오. 죽음 당신은 이제 곧장 긴 여행을 떠나야 하오. 그러니 그 결산서는 지금 당장 가지고 가는 거요. 왜냐하면 결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이거든. 그리고 결산서는 지극히 정확해야 하오. 그걸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답변해야 하니까 말이오. 지금까지 저지른 수많은 악행들이며 몇 안 되는 선행들 모두를 드러내 보이게 되는 거요. 지난 인생을 어떻게 보냈으며 어떤 방식으로 살아왔는지 천국의 대주재(大主宰)께 숨김없이 고하는 거란 말이오. 35


자, 이제 길 떠날 준비를 합시다. 잘 알겠지만 변호사는 대동할 수 없소. 만인 그런 전적인 결산을 드리기에는 난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소. 그런데 난 당신을 모르오. 당신은 누구요? 죽음 나는 죽음이라 하오. 어떤 인간도 두려워하지 않고 모든 인간을 체포하며 어느 누구도 면제해 주지 않소.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내게 복종하도록 하나님께서 정하신 덕분이지. 만인 오, 죽음이여, 전혀 예상치 못하고 있을 때 내게 오셨군요. 하지만 나를 구해줄 힘도 당신께 있을 테니 당신이 내게 친절을 베푸신다면 내 재산을 당신께 드리리다. 그래요, 천 파운드를 드릴 테니 이 일을 딱 하루만 미뤄주시오! 죽음 만인이여, 그건 안 될 노릇이오. 금과 은, 어떤 보화를 내게 주어도 난 물러서지 않소. 교황, 황제, 왕, 공작, 36


이 세상 어떤 제후도 나를 비켜 가진 못하오. 내가 선물을 받으려고 한다면야 이 세상 전부를 가질 수도 있을 것이오. 하지만 내 습관은 그렇지가 못하오. 당신이라고 유예기간을 줄 수는 없소. 자,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말고 어서 갑시다! 만인 오호라, 정말 조금도 더 기다려줄 수 없단 말이오? 죽음이란 정말 아무런 예고 없이 닥쳐오는 것이군요. 당신을 생각만 해도 내 가슴이 이렇게 떨리는 것은 내 인생의 결산서가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 내가 만약 12년만 더 살 수 있다면 난 내 회계장부를 말끔히 정리해서 당신과의 결산을 이렇게 두려워하지는 않을 텐데. 그러니 죽음이여,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빌려 간청하니 내 결산서를 다시 준비할 수 있도록 조금만 시간을 더 주시오. 죽음 부르짖고, 울고, 기도해 봐도 아무 소용 없소. 그러니 떠나야 할 여행을 서둘러 떠날 수밖에 없소. 피할 수 있다면 그리해 보시오. 하지만 그대도 잘 알다시피 시간은 인간을 기다려주지 않소. 37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아담의 죄로 인해 반드시 죽어야 할 운명을 타고 태어났소. 만인 하지만 죽음이여, 내가 이 순례의 길을 떠난다면 그리고 결산을 확실히 마무리 짓는다면 자비로운 성인들의 도움으로 곧 이 세상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겠지요? 죽음 그렇지 않다오, 만인이여. 그곳에 일단 가게 되면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못한다오. 그 점에 대해서는 내 말을 믿어도 좋소. 만인 오, 천국 보좌에 앉으신 은혜로우신 하나님이시여, 곤경에 빠진 저에게 긍휼을 베푸소서. 그런데 죽음이여, 순례의 길을 떠날 때 이 지상의 친구와 동행할 수는 없는 것인가요? 죽음 그건 가능한 일이오. 만약 그대의 여정에 동행하겠다는 그런 용기를 가진 이가 있다면 말이오. 38


어쨌건 하나님 보좌 앞에서 그대의 삶을 결산하기 위해 지금 당장 서둘러 떠나야만 하오. 뭘 머뭇거리는 거요? 설마 당신의 생명과 재물이 당신에게 영원히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만인 내 진정 그렇게 생각했었소. 죽음 아니지, 아니야. 그것들은 당신에게 잠깐 맡겨졌던 것일 뿐이오. 이제 당신은 나와 함께 떠나야 하니 다른 누군가가 그것들을 취할 것이고 그 사람 또한 그대가 지내온 것과 같은 삶을 다시 살게 되겠지. 만인이여, 당신이 지금 제정신이 아니라는 걸 난 알고 있소. 사물을 헤아리는 오관(五官)을 가지고 살아왔지만 당신의 이 지상에서의 삶을 올바로 살아오지 못했고 이렇게 갑작스레 나를 맞이하게 되었으니 말이오. 만인 오, 남루하고 비겁한 인생아, 어디로 도망쳐야 이 한없는 슬픔을 면할 수 있단 말인가! 친절한 죽음이여, 제발 내일까지만이라도 연기해 주시오. 39


그때까지라도 선행을 더하여 내 인생의 결산을 고쳐보겠소. 죽음 안 되오, 그렇게 할 수는 없소. 누구에게도 유예기간이란 없소. 선행으로 삶의 마지막을 개선해 볼 틈을 주지 않고 나는 인간의 가슴을 덮치고 말지. 자, 잠시 그대의 눈을 벗어나 있으리다. 지체 없이 떠날 채비를 하시오. 살아 있는 누구도 도망칠 수 없는 바로 그날이 당신에게 왔음을 명심하시오.

(죽음 퇴장)

만인 오호라, 깊은 탄식으로 울 수밖에 없는 신세로구나. 이 여행길에 나와 함께할 사람도 나를 도와줄 사람도 아무도 없구나. 더구나 내 삶의 회계장부는 엉망진창! 어떻게 해야 이 곤경을 면한단 말인가? 차라리 아예 이 세상에 태어나지를 않았다면! 40


그편이 내 영혼에게는 더 큰 축복이었으련만 이제는 뜨겁고 엄청난 고통을 면할 길이 없구나. 시간이 가고 있어. 주여, 도와주소서! 울고 탄식해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아. 하루가 벌써 다 가고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구나. 누구에게 내 신세를 털어놓을 수 있을까? ‘우정에게라면 ’ 어떨까? 그 친구에게 내가 처한 이 돌연한 곤경을 말하고 보여준다면? 우정만큼 내가 신뢰하는 친구는 없지. 이 지상의 수많은 날들을 함께 놀면서 즐거움을 나눠 가진 최고의 친구였지. 오, 마침 저기 그 친구가 오는군. 틀림없어. 우정이라면 분명히 이 여행의 동반자가 되어줄 거야. 그러니 저 친구에게 내 슬픔을 털어놓고 위로를 구해야지.

(‘우정’6) 등장)

6) 친구인 ‘우정(Fellowship)’을 만인과 마찬가지로 부유한 평민 계급 또는 하 급 귀족의 복식으로 재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추상적 개념의 의인화라는 도 덕극의 무대적 관습을 고려하면 ‘우정은 ’ −이어지는 대화에 나타나듯−세속 적 쾌락을 표상하는 인물로서 그에 부합하는 매우 상징적인 의상을 입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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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만났네, 내 좋은 친구 우정이여. 잘 지냈나? 우정 만인이여, 자네도 지금까지 잘 지냈나? 그런데 친구, 자네 왜 그렇게 슬퍼 보이나? 무슨 문제가 있다면, 어서 말해보게. 내 어떤 도움이라도 되어주지. 만인 그래 주게, 나의 좋은 친구 우정이여, 제발 그래 주게. 난 지금 큰 곤경에 처해 있다네. 우정 내 참된 벗 만인이여, 마음속에 있는 걸 털어놓게. 내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내 자네를 저버리지 않고 끝까지 함께하겠네. 만인 잘 말해주었네. 정말 감동적인 말이야. 우정 이보게, 자네 마음이 왜 그렇게 무거운지 알아야겠네. 그렇게 침울해 있는 모습을 보니 정말 불쌍한 마음이 드는군.

라는 것이 연극사가들의 일반적 추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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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누군가 자네에게 잘못을 했다면 내 반드시 복수를 해주지. 내가 자네를 위해 죽어 땅에 쓰러진다 해도 말일세. 죽어야 한다는 걸 알고서도 그렇게 하겠네. 만인 진심인가, 우정이여? 내 그 은혜를 어떻게 갚지? 우정 어허! 우리 사이에 감사 따윈 관두게. 자네 슬픔의 원인이 뭔지나 말하고 더 이상 아무 말 말게. 만인 내가 자네에게 내 마음을 털어놓았을 때 내 말을 듣고는 오히려 자네 마음이 돌아서 버려 내게 아무런 위안도 주지 않게 된다면 난 열 배나 더 슬퍼하게 될 걸세. 우정 이보게 친구, 난 한다면 하는 사람이야. 만인 그렇다면 곤경에 빠졌을 때 진정 참된 친구를 알아볼 수 있다는 말을 자네가 입증하는 거지. 자넨 정말 나의 진실한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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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 자네도 날 위해 그러지 않겠나. 맹세코 말하지만 자네가 지옥엘 가게 된다 하더라도 난 자네를 중도에 버리지 않을 걸세! 만인 오, 진실한 친구여, 자네를 믿네. 나 또한 자네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하겠네. 우정 난 ‘보답을 ’ 바라고 자네와 교분을 가져온 것이 아닐세. 말만 앞세우고 친구를 위해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이란 이 인생의 여정을 함께할 좋은 동반자가 못 되는 법이지. 그러니 진실하고 친절한 친구인 내게 자네 마음의 슬픔을 숨김없이 털어놓게나. 만인 내 모두 털어놓겠네. 사실인즉, 난 여행을 떠나라는 명령을 받았다네. 멀고 험하고 위험한 길을 가야만 하네. 그러고는 높으신 심판관인 주님 앞에서 내 인생의 결산서를 보고해야 한다네. 내가 자네에게 청하는 것은 자네도 약속했듯이 이 여정에 동행이 되어달라는 것일세. 44


우정 그건 정말 대단한 일이군! 약속을 했으니 물론 지켜야지. 하지만 그런 여행이라면 여간 힘든 게 아닐 거야. 겁이 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테고 말이야. 그러니 우리 한번 잘 생각해 보세. 제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자네 말엔 뒷걸음칠 테니 말이야. 만인 아니, 자넨 내가 어떤 곤경에 처했어도 나를 결코 저버리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나? 자신의 죽음을 무릅쓰고서라도 말이야. 지옥에라도 함께 가겠다고 하지 않았냔 말이야. 우정 물론 그렇게 말했지. 하지만 자네 말은 내 뜻으로부터 나를 밀쳐내고 있다네! 그리고 말인데, 우리가 그 여행을 떠난다면 언제쯤 다시 돌아오게 되는 건가? 만인 이 세상의 종말이 오기까지 돌아오지 못한다네. 우정 그렇다면 맹세코, 난 그곳에 갈 수 없네!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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