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스토리텔링의 일반 원리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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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스토리텔링의 일반 원리


커뮤니케이션이해총서 급변하는 커뮤니케이션 환경에서 새로운 지식에 대한 욕구가 높아지 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추어 하나의 커뮤니케이션 주제를 10개 항목으로 묶어서 달걀 꾸러미처럼 엮었습니다. 사회의 변화를 빠르게 알기 원하는 대중과 시대에 앞선 지식을 단시간에 알고자 하 는 연구자, 실무자, 학생에게 도움이 되는 책입니다.

편집자 일러두기 ∙ 인명, 작품명, 저서명, 개념어 등은 한글과 함께 괄호 안에 해당 국 가의 원어를 병기했습니다. ∙ 외래어 표기는 현행 한글어문규정의 외래어표기법을 따랐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이해총서

영상 스토리텔링의 일반 원리 권승태

대한민국,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2015


영상 스토리텔링의 일반 원리

지은이 권승태 펴낸이 박영률 초판 1쇄 펴낸날 2015년 3월 15일 커뮤니케이션북스(주) 출판 등록 2007년 8월 17일 제313-2007-000166호 121-869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 46 3층 전화(02) 7474 001, 팩스(02) 736 5047 commbooks@eeel.net www.commbooks.com CommunicationBooks Inc. 121-869 3rd F, 46 Worldcup north road Mapo-gu, Seoul, Korea phone 82 2 7474 001, fax 82 2 736 5047 이 책은 커뮤니케이션북스(주)가 저작권자와 계약해 발행했습니다. 본사의 서면 허락 없이는 어떠한 형태나 수단으로도 이 책의 내용을 이용할 수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권승태, 2015 ISBN 979-11-304-3610-4 04680 책값은 뒤표지에 있습니다.


단순 모방에서 통합 예술로

19세기 프랑스 교육철학자 조제프 자코토(Joseph Jacotot) 는 “사실을 배워라, 그것을 따라 하라, 네 자신을 알라, 이 것이 자연의 진행 방식이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누가 가 르치지 않았지만 말을 스스로 배웠다. 그것은 자연의 방식 이었다. 그것은 모방이다. 모방은 교육의 본질이자 창조의 전제다. 무엇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영상 작품을 기획할 때 소 재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가 작품의 질을 결정한다. 영상 스토리텔링은 질 높은 작 품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라는 표현 방식의 문제다. 좋은 작품의 표현 방식은 모두 다르다. 그러나 수많은 표현 방 식 안에 공통분모가 될 수 있는 원리가 있기 마련이다. 그 런데 그것을 알기는 쉽지 않다. 그 방식을 배우기 위해 먼 저 좋은 작품을 모방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최고의 작품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인간 이 만든 작품이 아닐 것이다. 신의 손길이 스친 듯한 작품 이다. 그렇다면 신이 만든 작품이 아마도 최고의 작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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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지 않을까? 대자연을 창조한 신의 솜씨를 모방하면 된 다. 대자연이 만들어진 방식이 최고 작품의 원리다. 대자 연은 하나의 덩어리로 된 세계가 아니다. 그 속에 수많은 작은 세계가 존재하고 그 작은 세계 안에 또 다른 작은 세 계가 들어 있는 다층 구조를 가진다. 그 모든 세계들은 독 립된 세계이지만 동시에 다른 세계들과 촘촘히 연결되어 움직인다. 우리 인간의 몸은 나름대로 독립된 유기체로서 작은 세계다. 그리고 우리의 몸 역시 하나의 덩어리로 작 동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독립된 기관들이 종적이고 횡 적으로 연결되는 다층 구조를 가진다. 그렇다면 우리의 영상 작품 역시 하나의 덩어리가 아니라 작은 세계들이 모 여 전체로 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완전성 스토리는 작은 스토리들의 단순한 합 이상이다. 스토리는 하나의 완전한 이미지다. 인간은 부분들에서 전체를 유추 하려는 경향을 가진다. 전체로서 완전한 이미지는 이상적 인 세계다. 인간은 불완전한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 없이 완전한 이상계를 꿈꾼다. 혼동 속에서 질서를 찾으 려하고 비정상을 정상으로 바꾸려 하고 결핍을 채우려 하 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인간의 욕구는 불완전한 일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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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스토리로 향한다. 일상과 달리 스토리가 원인과 결과가 확실하고 감정의 색깔이 선명하며 모든 것이 깨끗이 해결되는 결말을 지니 는 이유는 완전성을 향한 인간의 욕구에서 기인한다. 전체 스토리의 부분으로서 작은 스토리 역시 하나의 완결된 세 상처럼 자신만의 주제와 극적 구조를 가진다. 또한 그 작은 스토리는 더 작은 스토리를 가진 부분들로 구성되는 다층 구조를 가진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순차적으로 상영되는 영화의 스토리는 작은 스토리의 시퀀스(sequence)로 구성 된다. 그리고 그 시퀀스 안에는 더 작은 스토리의 단위인 파트(part)가 있고, 파트는 신(scene)으로 구성되며, 그 신 은 숏(shot)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숏은 비트(beat)로 또 나눠진다. 각각의 단위가 나름대로 독립된 세계로서 기능을 한다 면 영화의 스토리 역시 수많은 소우주들이 수직과 수평적 으로 연결되는 대우주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스토리를 소우주의 다층적 구조로 구성할 때 장점은 각 소우주를 완 결된 극적 세상으로 세밀하게 구성하여 영화의 디테일을 완성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디테일을 유기적으로 연결하 여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영상 제작에서 연출자는 우선 스토리를 시퀀스로 구성하여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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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 후, 각 시퀀스로 돌아가 그 시퀀스만의 스토리에 집 중을 할 필요가 있다. 이는 마치 그 시퀀스만 분리하여도 하나의 독립된 영화로 손색이 없어야 한다는 의미다. 물 론 연출자는 시퀀스 작업을 할 때도 항상 전체와 부분이라 는 관계를 염두에 두고 그 시퀀스가 전체 속에 자기 역할 을 하며 앞뒤의 시퀀스와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해야 한 다. 이렇게 작업한 시퀀스들을 단지 시간 순서대로 병렬 적으로 모아 놓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완결된 극적인 세상 을 구성하는 부분으로서 전체 세상의 극적 원리에 맞춰 배 열해야 한다. 그렇다면 다층적인 영상 스토리 구조를 움직이는 극적 원리는 무엇인가?

드라마 극적 원리 역시 대자연의 원리를 모방할 필요가 있다. 대자 연의 일부인 우리 인간이 알고 있는 가장 확실한 진실,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하나의 진실은 우리가 죽는다는 사실 이다. 죽음은 태어남을 전제한다. 그리고 태어남과 죽음 사이에 중간이 존재한다. 이렇게 대자연의 확고한 원리는 처음과 중간, 끝이라는 시간성에서 찾을 수 있다.아리스토 텔레스(Aristotle)는 󰡔시학(Poetics)󰡕에서 전체라 함은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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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중간, 끝을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상 스토리 역시 처음과 중간, 끝이라는 선조적(線條的) 인 구조를 갖는다. 처음으로서 설정인 1막, 중간으로서 전개 인 2막, 끝으로서 해결인 3막이 된다. 영화는 대부분 선형적 인 구성이지만 비선형적인 구성도 존재한다. 그러나 플롯의 순서와 관계없이 관객은 머릿속에서 스토리를 시간의 순서 로 재구성한다. 3막 구조(three-act structure)는 단지 전체 스토리를 구 성하는 원리일 뿐만 아니라 부분으로서 시퀀스, 파트, 신, 숏을 구성하는 원리가 된다. 3막은 단지 시간성만을 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극(劇)의 세상은 우리의 일상과 다르기 때문이다. 3막에는 드라마가 필수적이다. 여기서 드라마 는 TV 드라마나 드라마 장르 또는 연극이라는 의미가 아 니라 광의의 의미로 인물의 행동을 통해 표현되는 허구의 스토리를 뜻한다. 드라마는 행동이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δρᾶμα, drama)에서 유래했다. 행동은 뚜렷한 방향을 갖 고 다른 행동과 대립하면서 더 큰 행동으로 변하는 ‘상승 하는 행동(rising action)’을 뜻한다. 드라마의 세상은 일상 속 우리의 행동을 반영하지만 극 중 인물의 행동은 일상 속 우리의 행동과 똑같지는 않다. 극 중 인물의 행동은 우리의 행동보다 감정과 논리, 가치가 더 선명하고 명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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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감정은 아주 다양하지만 결국 ‘좋다’와 ‘싫다’라 는 두 가지 욕구에서 출발한다. 물론 좋지도 싫지도 않은 상태도 존재한다. 일상에서는 좋지도 싫지도 않은 애매모 호한 상태가 많지만 극 중 인물은 좋고 싫음이 명확하다. 일상에서 우리의 욕구는 우리 자신도 모를 때가 있지만 극 중 인물의 욕구는 최소한 관객이 알 정도로 명확해야 한 다. 특히, 주인공의 욕구와 적의 욕구가 충돌하는 갈등 상 황이 스토리를 전개시키는 동력이 된다. 이때 관객은 주 인공의 욕구에 감정이입되어 걱정과 기대를 하게 되고 거 기에서 극적 긴장(dramatic tension)이 유발된다. 결국 긴 장의 원인은 좋지 않는 상황이 다가올 수 있다는 불확실한 미래에 있다. 그 미정의 미래가 어떻게 결정되느냐에 따 라 우리의 감정은 좋을 수도 있고 나빠질 수도 있다. 극 중 논리 역시 ‘있음’과 ‘없음’의 두 가지로 단순화할 수 있다. 일상에서는 이유가 명확하지 않은 일들이 많이 발생하고 잘 모르는 상태로 진행되고 결국 해결되지 않은 채 끝날 때도 많다. 그러나 극의 세계에서 결과에 대한 원 인은 명확해야 하고 원인이 없는 결과는 또한 없어야 한 다. 애매모호함이 있더라도 마지막에 명확함으로 해결된 다. 이렇듯 극에서는 논리가 명확하지 않으면 감정도 선 명해질 수 없다. 인물에 대한 명확한 이해 없이 인물에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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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입될 수 없다. 극 중 가치를 단순화하면 선(善)과 악(惡)이다. 주인공 은 선이며 적은 악으로 명확히 구분된다. 선악의 대립으로 극은 전개되고 절정에서 선이 승리하는 것으로 결말이 난 다. 물론 고전주의 영화는 이러한 경향이 뚜렷하지만 현대 영화의 경우 이와 반대로 일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현대 영화 속 인물은 그 목표가 뚜렷하지 않을 수 있고 선과 악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으며 사건 역시 우연적이어서 원인이 명확치 않다. 마지막도 애매모호하 게 열린 결말로 끝나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대 영화 역시 3막 구조를 가지고 나름대로 느슨한 인과성 과 미묘한 극적 긴장을 유지한다. 또한 강렬한 캐릭터와 충 격적인 사건으로 관객의 정서를 자극하고 삶 전체를 일상 의 단면으로 단순화하여 주제를 명확히 한다. 영화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단조로운 수평선으로 전개 되는 것이 아니라 극적 긴장의 상승과 하강이 만드는 반전 된 V자의 선으로 전개된다. 극적 긴장의 유발이 극의 시작 이라면 반복되는 극적 긴장의 상승과 하강이 극의 중간이 며 극적 긴장의 이완이 극의 끝이다. 미스터리 구조인 경 우 수수께끼에서 시작하여 그것을 푸는 것으로 끝난다. 대부분의 영화는 문제와 해결 또는 결핍과 해소의 구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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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적 긴장이 상승하고 하강한다. 이러한 원리는 극에서 정보를 노출시키는 기본 방식이 기도 하다. 정보를 주는 적기는 관객이 알고 싶다는 욕구가 생길 때다. 정보 노출의 타이밍이 너무 빨라도, 반대로 너 무 느려도 관객은 지루함을 느낀다. 뉴스는 연역적으로 정 보를 전달한다면 드라마는 관객이 귀납적으로 정보를 탐색 할 수 있도록 만든다. 뉴스는 시청자에게 친절하게 해답을 제시한다면 드라마는 관객이 스스로 해답을 찾게 해야 한 다. 뉴스의 궁극적 목적이 정보의 전달이라면 드라마의 목 적은 감정의 정화(淨化, catharsis)다. 그러므로 영화는 관 객을 극 속에 적극적으로 참여시켜야 한다. 긴장 유발의 대 표적인 방식인 미스터리(mystery)와 서스펜스(suspense) 는 모두 정보를 점진적으로 노출시켜 관객에게 궁금증을 촉발시킨다. 문제와 해결의 구조는 편집과 촬영에도 적용된다. 편집 시 클로즈업 숏들로 궁금증을 자극하고 풀 숏(full shot)으 로 해소할 수 있다. 하나의 숏을 촬영할 때 긴장 유발에서 시작되어 이완으로 끝날 수 있다. 한 인물의 구두에서 천 천히 카메라가 틸트업(tilt up)을 하며 궁금증을 잠시 유발 시키고 점점 줌 아웃(zoom out)하여 인물의 얼굴과 화려 한 의상을 보여 줄 수 있다. 촬영은 단지 멋진 이미지를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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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는 작업이 아니라 스토리텔링이다.

움직임 촬영은 프레임(frame) 속 공간을 아름답게 구성하는 미학 적 작업인 동시에 스토리를 만드는 서사적 작업이다. 카 메라는 촬영감독의 붓이고 프레임은 캔버스다. 조명은 물 감이다. 촬영감독은 화가처럼 선, 형태, 질감 등 다양한 영 상 요소들을 공간적으로 구성하고 밝기, 색상, 채도 등의 톤(tone)을 결정한다. 촬영감독은 한 장의 그림 속에 완전 한 세상을 담지 않는다. 촬영감독은 프레임 밖의 세상을 상 상할 수 있도록 프레임 속을 불완전하게 구성한다. 카메 라는 단지 프레임 속 세상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프레 임 속 이미지를 단서로 프레임 밖의 세상을 상상하게 한다. 프레임은 단지 시각적 한계가 아니라 스토리텔링의 도 구다. 영화는 프레임을 활용하여 일부러 관객에게 정보를 숨겨 궁금증과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영화는 실재를 재현하는 매체일 뿐만 아니라 상상을 제시 하는 매체라고 볼 수 있다. 촬영감독은 흘러가는 시간을 수많은 프레임 속에 담는다. 회화와 사진과 달리 영화는 움직임을 담는다. 프레임 속 인물의 움직임은 시간의 변 화를 보여 줄 뿐만 아니라 그 움직임의 결과인 사건을 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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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낸다. 드라마를 만드는 것은 인물과 사건의 변화다. 변화를 담을 수 있는 영화는 드라마를 표현하는 최적의 도구다. 영화는 있는 그대로 현실의 시간성을 기록하는 매체로 태 어났지만 곧 극적인 움직임을 담는 스토리 매체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실사 영화든 애니메이션이든 동영상은 움 직임을 보여 주는 최적의 매체다. 변화의 결과는 가치를 낳는다. 긍정적인 변화는 긍정적인 가치를 낳고, 부정적 인 변화는 부정적인 가치를 낳는다. 일반적으로 극 중 인 물의 변화가 사건을 바꾸고 환경을 바꾼다. 악인이 선인 이 되어 악이 지배하는 세상을 선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바 꾼다. 변화를 극적으로 보여 주는 영화는 대중이 즐기는 오락 의 도구로, 대중을 변화시키는 정치의 도구로 활용되었다. 초기 영화는 연극을 그대로 영상화한 것과 비슷했다. 초 기 영화 카메라는 무거워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러나 카메라가 가벼워지면서 움직이기 시작했고, 움직이 기 시작하면서 영화는 연극과 확연히 차별화된 영상언어 를 창조했다. 카메라가 움직이면서 영화는 프레임의 한계 를 벗어나 파노라마 이미지를 만들 수 있었고, 2차원 이미 지의 한계를 뛰어넘는 입체적 스펙터클을 제공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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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었다. 카메라 움직임은 인물의 행동 또는 대사로 표현 할 수 없는 미세한 감정을 만들어 내 스토리에 생기를 부 여했다.

브리콜라주 촬영감독은 한 숏을 촬영하면서 프레임 속 선, 색, 밝기, 질감, 형태, 벡터(vector) 등의 영상 요소들로 조화와 콘트 라스트를 만들어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고 인물 간 조화와 대립을 강조할 수 있다. 그러나 촬영감독의 미장센은 항 상 다음에 연결되는 숏의 관계 속에서 이뤄진다. 숏과 숏 의 연결을 통해 스토리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촬영은 항상 편집을 위한 촬영이어야 한다. 영상제작은 사전제작, 제작, 후반작업으로 나눠져 있어 마치 기획, 구 성, 촬영, 편집이 분리되어 작업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 나 이 모든 작업은 통합되어 이뤄져야 한다. 즉, 시나리오 를 쓸 때 머릿속에 촬영, 편집이 이뤄져야 하고, 촬영은 구 성과 편집을 고려하여 이뤄져야 하며, 편집은 실제로 기 획, 구성, 촬영이 모두 통합되는 순간이다. 이러한 통합적 작업인 영화 제작은 영화를 명확히 다른 매체와 차별화한다. 이는 브리콜라주(bricolage)의 특성이 다. 브리콜라주는 서로 다른 분야의 이질적 요소들을 혼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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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새로운 것을 창조함을 의미한다. 영화는 문학, 음악, 무용, 연극, 뮤지컬, 애니메이션, 회화, 그래픽 아트, 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요소들이 편집의 단계에서 통합되어 새 로운 스토리를 창조하는 브리콜라주라고 할 수 있다. 조 라이트(Joe Wright) 감독은 제인 오스틴(Jane Austen) 의 소설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을 영화화 (2005)하여 원작과 다른 새로운 스토리를 창조했다. 󰡔오 만과 편견󰡕의 독자와 관객은 소설과 영화에서 각기 완전 히 다른 세계를 경험한다. 영화는 단순히 소설의 영상화 버전이 아니다. 표현은 곧 내용이다. 문학적 표현과 영화 적 표현은 서로 다른 내용을 낳는다. 다이시[매튜 맥퍼딘 (Matthew MacFadyen)]와 엘리자베스[키이라 나이틀리 (Keira Knightley)]가 무도회에서 춤을 추는 표현은 소설 과 문학에서 완전히 다르다. 헨리 퍼셀(Henry Purcell)의 압델레이저(Abdelazer) 중 제2번 론도(Rondeau)가 흘러 나오자 무도회 사람들이 춤을 춘다. 카메라는 다이시와 엘리자베스에게 다가가고 그들과 함께 움직인다. 가늘게 떨리며 공간을 지배하는 바이올린 음률과 우아한 춤 그리 고 매력적인 두 인물, 그들 간의 미묘한 갈등이 함께 춤을 추는 카메라 움직임 속에 통합된다. 그때 숏이 바뀌면서 무도회 공간에 군중은 사라지고 둘만이 남아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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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인 세상을 보여 주던 카메라가 갑자기 그들 내면으 로 들어가 서로에 대한 강렬하면서도 섬세한 감정을 드러 낸다. 음악이 끝나자 둘은 춤을 멈추고 인사를 나누는 순 간 숏이 바뀌면서 카메라는 다시 무도회 군중 속에 둘을 객관적으로 보여 준다. 소설을 읽으면서 이러한 순간을 상상할 수도 있겠지만 그 상상이 직접 눈과 귀로 전달되는 느낌의 생생함을 대신할 수는 없다. 연극은 춤과 음악, 연 기를 더욱 생생하게 보여 줄 수는 있어도 두 인물의 내면 으로 들어가는 경험을 줄 수 없다. 영화는 촬영과 편집을 통해 영화만의 리듬이 있는 스토 리를 만든다. 촬영은 교향악의 연주와 비슷하다. 촬영감 독은 다양한 영상 요소들을 프레임 속에 조화롭게 구성하 여 한 숏으로 멋진 이미지를 만든다. 이는 마치 교향악에 서 다양한 악기들이 조화롭게 연주되어 화음이 창출되는 것과 비슷하다. 편집은 화음을 이룬 영상 요소들을 시간 흐름 속에 영상 강도의 높낮이를 통해 배열하여 영화적 멜 로디를 만든다. 이 화음과 멜로디의 통합으로 스토리가 만들어진다. 편집은 다양한 분야에서 가져온 시각적 요소 들과 청각적 요소들을 극적 원리와 극적 구조에 맞게 통합 하는 브리콜라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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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예술 영화는 산업으로서 고도로 분업화한 시스템과 컨베이어 벨트같이 순차적인 공정 과정을 갖고 있지만 그 결과물은 한 개인의 작품처럼 예술성을 지닐 수 있다. 산업과 예술 의 특성을 모두 갖고 있는 영화는 그 제작 과정에서 분업 화와 통합화가 동시에 이뤄질 필요가 있다. 그것이 가능 하기 위해서는 제작 과정의 각 단계 전문가들 모두는 자기 분야의 한정된 자원으로 다양한 작업을 수행하는 브리콜 러(bricoleur)이자 다른 분야와 통합하여 전체 스토리를 창조하는 스토리텔러가 될 필요가 있다. 배우는 자신의 몸만으로도 다양한 움직임을 창조하고, 촬영감독은 카메 라 한 대만으로 수많은 이미지를 만들어 내며, 조명감독은 한 대의 조명기만으로도 다양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사운드 디자이너도 이미 녹음된 소리만으로 다양한 소리 를 창조하고, 편집자는 촬영된 영상만으로 다양한 감정을 만든다. 이와 동시에 이들 모두는 자신의 표현을 다른 표 현과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전체 속 부분으로 역할을 하면 서 하나의 완전한 세상을 창조한다. 이 책은 영상미학의 원리와 스토리텔링의 원리를 통합 하여 영상 스토리텔링의 원리로 재구성했다. 그 이유는 현장에서 영상 제작과 스토리텔링이 동시에 이뤄지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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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고, 영상 제작 자체가 스토리텔링이기 때문이다. 영 상미학의 개념과 스토리텔링의 개념을 한 쌍으로 아이템 을 만들어 두 개념이 어떻게 통합되면서 영상 제작에 활용 될 수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시퀀스와 3막 구조는 영상 구성에 가장 널리 쓰이 는 두 가지 개념으로서 영상 작품의 보편적 구조와 원리 다. 둘째, 비트와 구성점을 연결한다. 비트는 아직 우리나 라에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지만 서구의 영화 제작에 일반 적으로 활용되는 연기 연출 개념이다. 극적 비트는 인물 의 행동을 정의하고 비트와 비트의 연결이 스토리를 형성 하며 극적 비트는 극의 전환점 역할을 한다. 비트는 연기 의 도구이자 스토리 구성의 최소 단위다. 셋째, 벡터와 욕 구를 같은 방향의 힘으로 본다. 프레임 속 방향의 힘으로 서 벡터는 화면을 구성하는 데 핵심적인 개념이다. 화면 구도는 단지 미학적 선택이 아니라 서사적 선택이다. 넷째, 콘트라스트(contrast)와 갈등을 극 속에 통합한다. 밝기, 색, 구도 등에서 대비로 잘 알려져 있는 콘트라스트가 어떻게 드라마의 동력으로 알려진 갈등을 시각화하는지 살 펴본다. 콘트라스트는 이미지를 선명하게 하고 갈등은 드 라마를 전진시킨다. 이 둘이 합해져야 스토리는 일상의 명 확한 은유가 된다. 다섯째, 미장센(mise-en-scène)과 캐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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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를 합친다. 공간의 구성으로서 미장센이 공간의 성격뿐 만 아니라 인물의 캐릭터를 창조함을 설명한다. 여섯째, 점진 노출과 서스펜스를 같은 것으로 본다. 촬 영과 편집에서 점진 노출은 서스펜스를 유발하고 서스펜 스는 드라마를 상승시킨다. 일곱째, 콘티뉴이티와 극적 긴장을 연결한다. 연속 편집과 불연속 편집이 어떻게 환 영을 창조하고 파괴하면서 극적 긴장을 조율하는지 살펴 본다. 여덟째, 리듬과 모티프를 함께 이해한다. 이미지의 반복은 영화의 고유한 리듬을 만드는 동시에 모티프를 형 성하여 일관된 주제를 드러낸다. 아홉째, 클로저(closure)와 닫힌 결말을 동일한 경향으 로 본다. 인간의 기본적인 시각적 경향인 클로저가 역시 기본적인 서사적 경향인 닫힌 결말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살펴본다. 열째, 스타일과 스토리를 하나로 본다. 영상 표 현들이 모여 역시 하나의 스타일을 만들고 스타일이 어떻 게 스토리가 되는지 살펴본다. 열 개의 아이템은 사전제작, 제작, 후반작업이라는 3단 계 영상 제작 과정의 핵심적인 개념이자 스토리텔링의 핵 심 도구로 각각을 분리하여 정확히 이해하고 다시 통합하 여 창조적으로 적용할 필요가 있다. 영화는 실재를 똑같이 모방하는 사진적 복제에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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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초창기 영화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숏 구분 없이 실 재를 있는 그대로 보여 주었다. 이후 영화는 다양한 숏들 로 촬영하고 다양한 순서로 편집하면서 실재와 다른 가상 의 스토리를 창조했다. 초창기 영화의 복제적 모방은 편 집을 통해 창조적 모방으로 진화했다. 현재 영화는 디지 털화되면서 기존의 창조적 모방의 기술적 한계를 뛰어넘 어 무한한 창조적 실험이 가능해졌다. 영화는 현실 재현 의 매체에서 머릿속에 그려진 상상을 눈앞에 생생하게 제 시하는 매체로 진화하고 있다. 그러나 재현적 매체로서 영화이건 상상적 매체로서 영화이건 완전한 세계의 창조 는 모방적, 전체론적, 편집적, 통합적 사고에서 출발한다.

참고문헌 Aristote(원저자), Roselyne Dupont-Roc & Jean Lallot(1980). La

Poéticque d'Aristote. Editions du Seuil. 김한식 옮김(2013). 󰡔시학󰡕. 펭귄클래식코리아. Jacques Rancière(1987). Le Maître Ignorant. Librairie Arthème Fayard(Paris). 양창렬 옮김(2008). 󰡔무지한 스승󰡕. 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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