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씨남정기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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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씨남정기


숙녀는 관음찬이란 글을 짓고 중매쟁이는 인연을 맺어주다

명나라 가정(嘉靖)1) 연호를 쓰던 시절, 북경 순천부(順天 府)2)에 한 재상이 있었다. 성은 유, 이름은 희, 성의백 유기

의 후손이었다. 그 사대조가 북경에서 벼슬살이를 했기 때 문에 순천부 사람이 되었다. 유희는 세종 황제를 섬겼는데, 당시에 문장과 재망(才 望)으로 유명해 마침내 예부상서(禮部尙書)에 올랐다. 태

학사 엄숭(嚴崇)3)과 뜻이 맞지 않자 늙고 병들었다는 구실 로 벼슬에서 물러나게 해달라고 청했다. 천자는 유희의 치 사(致仕)4)를 허락하면서 특별히 태자소사(太子少師)5)란 직함을 주어 유희를 존중했다. 그 후로 소사(少師)6)는 조정 의 일에 참여하지 않았다. 당시 사대부들은 그 높은 절의를 1) 가정: 명나라 제12대 황제 세종(재위 1521∼1566)의 연호. 2) 순천부: 명나라 영락(永樂) 연간에 북경 일대의 지역을 일컫던 이름. 3) 엄숭: 명나라 세종 연간의 권신(權臣)으로 아들 세번(世蕃)과 함께 국정(國 政)을 전횡(專橫)하다가 후에 관직을 삭탈당했음.

4) 치사: 나이가 많아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남. 5) 태자소사: 태자를 가르치던 스승의 일원. 6) 소사: 태자소사의 준말. 유희를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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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러러보았다. 소사 가문은 대대로 재상을 지낸 집안으로 그 저택은 왕 공(王公)이 사는 집과 같았다. 하지만 소사는 검소하게 지 내며 예법을 지켜 법도 있게 집안을 다스렸다. 소사에게는 누이가 하나 있는데, 홍로소경(鴻臚少卿)7) 두강의 아내가 되었다가 일찍이 지아비를 잃고 과부로 지내 고 있었다. 누이에 대한 소사의 우애는 매우 돈독했다. 소사는 아들을 하나 두었는데 사랑하면서도 엄하게 가르 쳤다. 아들 이름은 연수(延壽), 자는 산경(山卿)이었다. 소 사 부부는 나이 사십이 지나 처음으로 아들을 낳았다. 그런 데 미처 강보를 떠나기도 전에 모부인 최씨가 세상을 뜨고 말았다. 아들이 성장하자 용모가 관옥 같았다. 열다섯 살 때는 벌 써 문장에 능숙해 붓을 들면 그대로 긴 글을 써 내려갔다. 소 사는 아들을 기특하게 여기면서도 부인이 보지 못하는 것을 한탄했다. 유생은 열네 살 때 향시(鄕試)8)에 일등으로 합격 하고 열다섯 살 때에는 문과에 급제했다. 시관은 처음에는 연수의 글로 장원을 삼으려 했으나, 유생의 글이라는 것을 7) 홍로소경: 외국 사신을 영접하는 등의 일을 맡아보던 관료의 일원. 8) 향시: 각 도에서 그 지방 유생을 대상으로 실시하던 과거. 이에 합격해야 대 과(大科)에 응시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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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는 나이가 어리다 해서 3등으로 내려놓았다. 마침내 연 수를 한림편수(翰林編修)9)로 삼았다. 이윽고 유생의 명성 은 일시를 풍미했다. 동류들은 감히 연수를 바라볼 수조차 없었다. 유생은 스스로 소(疏)를 올려 간청했다. “아직 나이가 어리고 학문도 부족합니다. 청컨대 관직을 떠나 10년 동안 독서에 전념하고자 합니다.” 천자는 그 뜻을 가상히 여기 조서를 내려 포장(襃獎)했다. “특별히 본직을 지닌 채로 5년 동안의 말미를 주노라. 더 욱 성현의 글을 읽으며 치군(致君)10)의 도를 강구하다가 나 이 이십이 되면 다시 조정에 서도록 하라.” 유생의 온 집안은 성은에 감격했다. 소사는 유생에게 단 단히 일렀다. “충의를 힘써 닦아 성은에 보답하라!”

유생은 급제한 후에 아내를 얻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구혼하는 사람이 많이 나타났으나 그때까지는 혼인을 허락 하지 않고 있었다. 유생이 급제하자 소사는 훌륭한 며느리 9) 한림편수: 한림원 편수관으로 조서를 초안 잡는 등 문서와 관련된 일을 담당 했음. 10) 치군: 임금에게 몸을 바쳐 충성을 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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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얻으려는 생각에 마음이 급했다. 두 부인과 함께 성중의 여러 매파를 불러놓고 처녀가 있는 곳을 물어보았다. 매파 들은 손뼉을 치며 허풍을 떨었다. 칭찬할 때에는 하늘 높이 들어 올리고, 헐뜯을 때에는 황천으로 떨어뜨렸다. 아침부 터 이야기를 시작해 한낮에 이르러서도 결론을 얻을 수 없 었다. 그 가운데 주파(朱婆)11)라는 중매쟁이가 있었다. 나이 가 가장 많았다. 유독 입을 열지 않더니 마침내 소사에게 고 했다. “여러 사람이 각기 소견에 따라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만 그 말이 매우 공정치 못합니다. 소인이 사실대로 말씀을 올 리겠습니다. 노야께서 만일 부귀한 집안을 원하신다면, 엄 승상12) 댁의 손녀만 한 규수는 없습니다. 어진 며느리를 고 르려 하신다면, 신성현(新城縣)13)의 사(謝) 급사(給事)14) 댁 처녀만 한 규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이 두 사람 가운데서 택하시기 바랍니다.” “부귀는 본래 원하는 바가 아니야. 오직 어진 사람을 택

11) 주파: 성이 주씨인 매파라는 뜻. 12) 엄 승상: 엄숭을 말함. 13) 신성현: 하북성에 있던 고을. 북경 바로 남쪽에 인접해 있었음. 14) 급사: 급사중(給事中)과같은말로 황제를 좌우에서보좌하던관료의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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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것이야. 그런데 자네가 말한 신성의 사 급사라면, 직간하 다가 귀양 가서 죽은 사담(謝潭)일 테지. 그 사람은 청렴하 고 정직한 선비였지. 사 급사 댁이라면 혼인을 맺을 만하겠 구나. 다만 처녀가 과연 어떤 사람인지 그것을 알 수가 없 군.” “소인의 종매(從妹)가 일찍이 사 급사 댁 시비로 들어가 그 처녀에게 젖을 먹여 길렀습니다. 또 몇 해 전에는 소인이 마침 일이 있어 그 댁에 갔다가 처녀를 직접 본 적이 있습니 다. 그 당시 처녀는 열세 살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덕성은 이 미 무르익은 상태였습니다. 그 자색을 논할 것 같으면 진실 로 천인(天人)이 적강한 것 같았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견 줄 만한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이미 여공(女工)에서도 능 치 못한 것이 없었습니다. 경사(經史)도 섭렵했답니다. 그 문장 솜씨는 남자라도 쉽게 대적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 은 소인만 아는 게 아닙니다. 사람들이 하는 말도 모두 그렇 답니다.” 두 부인이 그 이야기를 듣고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입 을 열었다. “우화암 여승 묘희는 계행이 매우 높고 안목도 갖추고 있 습니다. 4∼5년 전에 제게 말하기를, ‘신성현 사 급사 댁의 소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라고 ’ 했지요. 당시 조카의 혼 29


사를 염두에 두고 있어 자못 귀를 기울였지요. 그런데 그 후 로 잊어버려 미처 오라버님께 말씀을 올리지 못하고 말았답 니다.” 소사가 두 부인에게 물었다. “현매(賢妹)15)가 들은 말씀과 주파가 한 이야기를 참고 해 보니, 사 급사 댁의 처녀는 필시 현숙할 것이야. 그렇지 만 인륜대사를 허술하게 할 수는 없는 법이지. 어떻게 하면 자세하게 알 수가 있을까?” “좋은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저희 집에 당나라 때 사람 이 그린 남해관음(南海觀音)16) 화상(畵像)이 한 축 있습니 다. 제가 본래 우화암으로 보내려던 것이지요. 지금 묘희에 게 그 그림을 주어 사 급사 댁으로 가게 하겠습니다. 처녀의 글을 구하고 아울러 글씨도 손수 쓰게 한다면 그 재주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묘희가 그 용모를 볼 수만 있다면 설마 저를 속일 리가 있겠습니까?” “그 방법이 좋기는 하겠네. 다만 문제가 몹시 어려운 것 일세. 아녀자가 쉽게 지을 수 있는 글이 아니라는 말씀이 야.”

15) 현매: 누이를 일컫는 말. 16) 남해관음: 보살의 하나로서 자비의 화신으로 일컬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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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히 어려운 글을 지을 수 없다면 재녀(才女)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소사는 마침내 매파들을 모두 돌려보냈다.

두 부인은 우화암으로 사람을 보내 묘희를 불러오게 했 다. 그리고 묘희에게 사씨 댁에 가서 해야 할 말을 가르쳐주 었다. 곧이어 묘희를 신성으로 보내며 관음화상을 내주었다. 묘희는 즉시 신성으로 가 사 급사 부인에게 뵙기를 청했 다. 사 급사 부인은 평소 불법을 공경하고 있었다. 묘희도 전부터 그 집안에 출입하던 터였다. 부인은 즉시 안으로 묘 희를 불러들였다. 인사를 나눈 후 사 급사 부인이 묘희에게 물었다. “여러 해 동안 스님을 뵙지 못했소. 오늘은 무슨 좋은 바 람이 불었기에 이곳까지 오셨을까?” “소승이 근년에 암자가 퇴락해 정재(淨財)를 모아 중수 했습니다. 일이 바빠 한동안 여가가 없었답니다. 이제야 중 수하던 역사를 마쳐 감히 부인께 보시를 청하려고 찾아왔습 니다.” “불사(佛事)에 필요한 것이라면 무엇인들 아까워할 것이 있겠소? 다만 가난한 집이라 재물이 없어 뜻대로 할 수 있을 지 모르겠구려. 스님께서 구하려는 물건이 어떤 것인지도 31


알 수가 없고요.” “소승이 암자의 중수를 마치자 평소 보시하던 어느 댁에 서 관음화상을 보내왔습니다. 바로 당나라 때의 명화지요. 그런데 그림 위에 명인의 제영(題詠)이 없어 그것이 한 가지 부족한 점이었습니다. 만일 소저의 시 한 수를 얻되 더욱이 친필로 써주신다면 장차 길이 산문(山門)의 보배가 될 것입 니다. 그 공덕은 칠보로 항사(恒沙)17)를 만드는 것보다도 나을 것입니다.” “여아(女兒)가 비록 고서를 두루 읽었다고는 하지만 과 연 제술(製述)에 능한지는 모르겠구려. 물어보기는 하겠소 만.” 부인은 즉시 시비에게 소저를 부르게 했다. 소저가 나와 묘희와 인사를 나누었다. 묘희는 깜짝 놀라며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진정 관세음보살이로다. 세상에 어떻게 저 같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묘희가 소저에게 물었다. “소승이 4년 전에 소저를 뵌 적이 있습니다. 소저께서는

17) 항사: 항하사(恒河沙)의 준말로, 항하는 갠지스 강을 말함. 그 강의 모래알 처럼 물건의 수효가 많음을 비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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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시겠습니까?” “어찌 잊을 리가 있겠습니까?” 부인이 소저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 스님께서 멀리까지 오셔서 네 글과 글씨를 얻고자 하 시는구나. 네가 능히 지을 수 있겠느냐?” “한가한 산인(山人)18)들이 남에게 시문을 구하는 것으 로 일을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하는 사람이나 응하는 사 람에게 모두 무익할 따름입니다. 하물며 시를 짓는 행위는 여자가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죄송하오나 스님의 청을 따 를 수 없습니다.” 그러자 묘희가 나섰다. “소승이 구하려는 바는 무익한 시문과는 다른 것입니다. 관음화상 한 축을 얻었기에 훌륭한 문장으로 그 공덕을 칭 송하려는 것입니다. 소승이 가만히 생각하니 관세음보살은 바로 여인의 몸이십니다. 모름지기 재주가 뛰어난 여인의 글과 글씨를 얻어야만 서로 어울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데 여자 가운데서 소저가 아니라면 어느 누가 그 글을 지을 수 있겠습니까? 청컨대 소저께서는 물리치지 마시기 바랍 니다.”

18) 산인: 산에 사는 사람이라는 말로 중을 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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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도 말했다. “네가 만일 재주가 부족하다면 어쩔 수 없을 것이야. 그 러나 지을 수만 있다면 이는 무익한 시문과는 정녕 다를 것 이니라.” 그제야 소저가 응낙했다. “그럼 글 제목이나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묘희는 종자(從者)를 시켜 큰 족자 한 축을 펼쳐놓게 했 다. 바다에 파도는 끝이 없는데 외로운 섬이 그 가운데 있었 다. 그리고 관음대사가 흰옷을 입고 머리도 빗지 않은 채 영 락(瓔珞)19)도 없이 단지 선재동자(善才童子)20)와 둘이서 대나무 숲을 헤치고 앉아 있는 그림이었다. 필법이 정묘해 참으로 살아 있는 사람의 얼굴과 같았다. 소저가 묘희에게 말했다. “내가 배운 것은 유가의 책뿐이라 불가(佛家)의 말씀은 잘 모릅니다. 억지로 지어본다 하더라도 아마 스님의 눈에 는 차지 않을 것입니다.” “소승이 들으니, ‘푸른 연잎과 흰 연꽃은 그 뿌리가 같고, 공자와 석씨는 모두 성인이라고 ’ 합니다. 소저께서 유가의 19) 영락: 구슬로 만든 목걸이. 20) 선재동자: 선재는 흔히 선재(善財)로 씀. 부처님 제자의 하나로 필요한 재 물을 수시로 나오게 한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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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으로 보살을 칭송하신다면 이것도 하나의 기이한 일이 될 것입니다.” 소저는 손을 씻고 향불을 피웠다. 이윽고 붓을 들어 관음 대사찬 128자를 지어 작은 해서체로 족자 위에 써넣었다. 또 그 아래에 쓰기를 ‘사씨정옥재배제(謝氏貞玉再拜題)’21) 라 했다. 묘희도 문자를 아는 사람이었다. 기쁜 마음을 누를 수 없 어 사 급사 부인과 소저를 향해 무수히 사례하고 성중(城中) 으로 돌아갔다.

그때 유 소사는 두 부인과 함께 묘희가 돌아오기만을 고 대하고 있었다. 묘희가 족자를 들고 웃음을 머금은 채 인사 를 올렸다. 소사는 두 부인과 동시에 묘희에게 물었다. “과연 소저를 보셨는가?” “어찌 볼 수 없었겠습니까?” “그 용모는 어떠하던가?” “마치 족자 속의 사람과 같았습니다.” 묘희는 이어 자신이 사씨 댁에 가서 문답했던 말을 빠짐 없이 모두 전했다.

21) 사씨정옥재배제: 사씨 정옥이 두 번 절하고 쓴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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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사는 크게 기뻐했다. “그렇다면 사 급사 댁 딸은 단지 재모가 뛰어난 것만이 아니로군. 덕성과 견식도 진실로 남보다 훌륭할 것이야. 지 은 글은 과연 어떠한지 모르겠구려.” 소사는 족자를 받아 대청에 걸었다. 소사가 가까이 다가 가 바라보니 필법이 정공해 털끝만큼도 구차한 구석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찬탄해 마지않다가 문장을 살펴보았다.

듣건대 대사는 옛날의 성녀시니, 그 덕은 상상컨대 주나라 임사(任姒)22)로다. <관저(關雎)>23)와 <갈담(葛覃)>24)이 부녀자의 할 일이니, 공산에 홀로 있음이 어찌 그 본심이리오. 직설(稷契)25) 세상을 돕고 이제(夷齊)26) 주려 죽었으나,

22) 임사: 문왕의 어머니인 태임(太任)과 문왕의 비인 태사(太姒). 모두 어진 아내로 유명함. 23) 관저: ≪시경(詩經)≫에 실린 시. 부덕(婦德)을 갖춘 문왕 비의 교화(敎 化)를 읊은 시.

24) 갈담: ≪시경≫에 실린 시. 여공(女工)에 힘쓰자는 문왕 비의 덕행(德行) 을 읊은 시. 25) 직설: 요순시절의 두 신하. 직(稷)은 농업을 담당하고 설(契)은 교육을 담 당했음. 26) 이제: 은나라 말기의 두 충신 백이(伯夷)와 숙제(叔齊). 무왕이 은나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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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 달라서가 아니라 처지가 다른 까닭이로다. 내가 화상을 보건대 흰옷에 아이를 안았으니, 그림 보며 사람을 생각해 대강을 알겠도다. 옛날 절부(節婦)가 머리 깎고 몸을 버렸으니, 인간 세상을 떠나 그 의를 취한 것이로다. 서문이 잔결해 세속이 기이함을 좋아하니, 신기한 것을 부회(附會)해 윤기(倫紀)를 해치도다. 아아, 대사여! 어찌하여 여기 계시는가? 긴 대숲에 하늘 차갑고 파도도 끝이 없는데, 어떻게 위로할까 방명(芳名)을 길이 제사하리라! 찬문(讚文)을 짓노라니 흐르는 눈물 땅을 적시도다.

소사는 다 읽고 나서 깜짝 놀랐다. “기특하구나! 기특해! 자고로 관음찬을 지은 자가 많이 있었지. 그러나 이처럼 정론을 말한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 어. 나이 어린 여자의 식견이 이와 같을 줄 누가 알았겠는 가?” 소사가 두 부인에게 말했다. “내 아이의 배필을 정했네.” 그리고 유생을 불러 그 글을 보여주었다. 치자 수양산으로 들어가 굶어 죽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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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능히 이처럼 지을 수 있겠느냐?” 유생도 심복(心服)해 마지않았다. 묘희가 두 부인에게 하직을 고했다. “소승이 의당 사 소저가 성례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문하 에 경하를 올려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소승의 스승이 남악 (南嶽)27)에 머무르고 계십니다. 근래 서신을 보내 이르시기 를, ‘어지러운 속세에 오래 머무르지 말고 속히 돌아와 경전 을 닦도록 하라고 ’ 하셨습니다. 날이 밝으면 장차 남악으로 떠나려 합니다. 감히 청컨대 보살상을 모셔다가 산문에 두 고자 합니다.” “스님의 출행(出行)은 도를 닦으려는 것이지요. 작별하 기는 비록 매우 안타까우나 어떻게 만류할 수 있겠소? 이 화 상은 본래부터 스님에게 보시하려던 것이었소. 어찌 아까워 할 리가 있겠는가!” 소사도 금은을 주어 노자를 보태게 했다. 마침내 묘희는 사례하고 길을 떠났다.

소사는 속으로 생각했다. ‘사 급사 댁에는 남자가 없지. 매파를 통해 혼사를 의논

27) 남악: 중국 오악(五嶽)의 하나인 남쪽 형산(衡山)의 별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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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록 해야겠어.’ 소사는 이윽고 주파를 보내 혼인할 뜻을 전하게 했다. 사 급사 부인이 주파를 불러 보았다. 주파는 먼저 유 소사 가문 이 대대로 부귀하며 한림의 문채와 풍류가 빼어남을 칭찬했 다. 주파는 이어서 다시 말했다. “어느 재상인들 소사에게 혼인을 청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렇지만 소사께서는 ‘소저의 천자(天姿)가 국색이요 재덕 이 출중하다는 ’ 소문을 들으셨답니다. 이에 소인으로 하여 금 중매를 서게 한 것입니다. 부인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부인은 매우 기뻐했다. 그렇지만 소저와 의논하고자 주 파를 기다리게 하고 소저의 침소로 갔다. 부인은 주파가 말 한 대로 전하고 소저의 뜻을 물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네 생각을 숨기지 마라.” 그러자 소저가 대답했다. “소녀가 들으니 유 소사는 당대의 어진 재상이라 합니다. 혼인을 맺음에 불가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다만 주파의 말에 의심스러운 점이 있습니다. 소녀가 듣건대 ‘군자는 덕 을 귀히 여기되 색을 천하게 여기며, 숙녀는 덕을 가지고 시 집을 가되 색으로 지아비를 섬기지는 않는다고 ’ 합니다. 그 런데 지금 주파가 먼저 소녀의 색을 칭찬했습니다. 소녀는 그것을 몹시 부끄러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씨 댁의 부 39


귀함은 크게 자랑하면서도 우리 선급사(先給事)의 성덕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혹시 주파가 미천한 사람 이라서 소사의 뜻을 제대로 전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요? 그 러한 것이 아니라면 소위 ‘유 소사가 어진 사람이라는 ’ 말은 헛소문에 불과할 것입니다. 소녀는 그 댁에 들어가기를 원 하지 않습니다.” 사 급사 부인은 평소 딸을 몹시 사랑했다. 어찌 그 뜻을 어길 리가 있겠는가? 부인은 밖으로 나가 주파에게 말했다. “소사께서는 소녀의 재색에 대해 잘못 들으셨던 것이오. 소녀는 가난한 집에서 생장했소. 손으로 직접 방적하면서 여공이나 조금 익혔을 따름이라오. 어찌 부귀한 집안의 부 인에 걸맞은 화용성식(花容盛飾)28)이 있을 리 있겠소. 혼 사를 맺은 후에는 필시 소문과 다르다 해 죄를 얻을 것이오. 그것은 참으로 두려운 일이지요. 그러니 그렇게 회보해 주 시기 바라오.” 주파는 그 말을 듣고 몹시 이상하게 여겼다. 이에 재삼 흔쾌한 승낙을 얻고자 노력했다. 그렇지만 부인의 말에는 변함이 없었다. 주파는 돌아가 소사에게 그대로 아뢰었다. 소사는 자못

28) 화용성식: 꽃같이 아름다운 얼굴이나 화려한 꾸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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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쾌했다. 한동안 말을 하지 않더니 다시 주파에게 물었다. “애초 자네가 무엇이라 말을 하셨던가?” 주파는 자신이 했던 말을 빠짐없이 전했다. 그제야 소사는 깨닫고서 웃었다. “내가 일에 소활해 자네를 제대로 가르쳐 보내지 못한 탓 일세. 잠시 물러나 계시게.”

소사는 그 이튿날 친히 신성(新城)으로 가 지현(知縣)29) 을 만났다. 사 급사 댁과 청혼하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려 는 것이었다. “일찍이 매파를 보내 혼인할 뜻을 전하게 했지요. 그런데 저 댁의 대답이 그러했습니다. 필시 매파가 실언을 했을 것 입니다. 이제 수고롭겠지만 선생께서 한번 사 급사 댁을 방 문해 주셔야만 하겠습니다.” 지현이 대답했다. “노선생께서 명하시는데 감히 따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 까? 다만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할지 그것을 모르겠습니다.” “다른 말씀은 하실 것이 없습니다. 단지 ‘선급사의 청명 (淸名)을 흠모하고, 소저가 부덕(婦德)을 갖추었다고 들었

29) 지현: 현의 으뜸 벼슬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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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라는 ’ 말씀만 하십시오. 그러면 저 댁에서 반드시 허락하 실 것입니다.” “삼가 가르침을 따르겠습니다.” 지현은 마침내 아전을 사씨 댁으로 보냈다. ‘지현 상공께 서 장차 찾아오실 것이다라고 ’ 전하게 했다. 부인은 그 행차 가 혼사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객당을 청소 하고 지현을 기다렸다. 이튿날 아침 지현이 도착했다. 소저의 유모가 소공자 희 랑을 품에 안고 나아가 지현을 영접했다. 유모는 객당 마루 로 지현을 안내하고 물었다. “주인께서는 이미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어린 주인께서 도 나이가 어려 아직 손님을 접대할 줄 모르십니다. 노야(老 爺)30)께서 무슨 일로 이렇게 왕림하셨습니까?”

“다른 일이 아니라, 어제 유 소사께서 관아로 오셔서 내 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네. ‘아들 혼사 때문에 처자가 있 는 집을 찾은 바가 적지 않았으나 하나도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습니다. 듣건대 사 급사 댁 처자는 유한하고 요조해 여 사의 풍모가 있다 합니다. 이는 진정 내가 찾던 사람입니다. 하물며 선급사의 청명과 직절은 평소 흠앙하던 바였습니다.

30) 노야: 지체가 낮은 사람이 관료 또는 그 윗사람을 일컬을 때 쓰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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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일찍이 매파를 보내었으나 좋은 대답을 들을 수 없 었습니다. 아마도 매파가 실언해 그렇게 되었을 것입니다’ 라고 말이지. 이제 나를 중매로 삼아 진진지호(秦晉之好)31) 를 맺으려 하신다네. 이는 좋은 일이지. 바라건대 노부인에 게 아뢰어 한마디 승낙하신다는 말씀을 얻고자 하네.” 유모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가 곧 다시 나와 부인의 말씀 을 전했다. “노야께서 소녀의 혼사를 위해 누실로 왕림하시니 참으 로 황공합니다. 말씀하신 바 유 소사 댁과의 혼사는 다만 감 당치 못할까 두려울 따름입니다. 어찌 명을 어길 수 있겠습 니까?” 지현은 기뻐하며 돌아가 유 소사에게 편지로 통지했다. 소사도 크게 기뻐하며 길일(吉日)을 택했다. 유 한림이 육 례를 갖추어 친히 신부를 맞이했다. 사 소저 위의의 성대함 과 예도의 아름다움을 두고 당시 진신(縉紳)32)들 사이에서 는 부러워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31) 진진지호: 춘추시대에 진(秦)과 진(晉) 두 나라는 대대로 혼인을 맺는 관계 였음. 따라서 이 말은 두 집안이 혼인을 맺는다는 뜻으로 쓰임. 32) 진신: 홀을 큰 띠에 꽂는다는 뜻으로, 모든 벼슬아치를 통틀어 이르는 말. 지위가 높고 행동이 점잖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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