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계용묵 작품집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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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용묵 작품집


<지식을만드는지식>에서는 전 세계 모든 학문 분야 고전이 3000종 이상 출간됩니다. <지식을만드는지식 고전선집>은 오리지널 고전에 대한 통찰의 책읽기입니다. 전문가가 원전에서 핵심 내용만 뽑아내는 발췌 방식입니다. <지식을만드는지식 클래식>은 고전의 완전한 번역입니다. 고전선집을 읽고 다음으로 클래식을 읽고 마지막으로 원전을 읽는 점진적 독서로 더욱 심오한 지식을 완성하게 될 것입니다.


지식을만드는지식 고전선집 0286

계용묵 작품집 계용묵 지음 강상희 엮음 이훈 해설

대한민국, 서울, 지식을만드는지식, 2009


편집자 일러두기 ∙<지식을만드는지식 고전선집>으로 출간하는 한국 근현대 문학은 작품이 처음 발표된 대로 현대에 살려내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초판본을 그대로 싣고자 했습니다. 초판본을 구 하지 못한 작품은 원전에 가장 근접한 것을 사용했습니다. ∙이번에 출간되는 한국 근현대문학 50종에 이어 앞으로 50종이 더 출간될 예정입니다. ∙이 책은 <최 서방(崔書房)>(조선문단, 1927. 3), <인두지주 (人頭蜘蛛)>(조선지광, 1928. 2), <백치(白痴) ‘아다다’> (조선문단, 1935. 6), <마부(馬夫)>(농업조선, 1939. 5), <바람은 그냥 불고>(백민, 1947. 7)를 저본으로 삼았습니 다. 각 작품은 발췌하지 않고 전문을 모두 수록했습니다. ∙이 책은 지식을만드는지식의 편집 방침에 의해 저본에 실린 어 휘를 그대로 살렸고, 오기가 분명한 경우만 바로잡았습니다. ∙띄어쓰기는 읽기 편하게 현대의 표기법에 맞춰 고쳤습니다. ∙이 책의 주석은 모두 엮은이가 달았습니다. 주석은 현대에는 쓰지 않는 생소한 단어, 현대의 독자들이 쉽게 뜻을 알기 어려 운 고사성어, 원전의 글씨가 잘 안 보여 엮은이가 추정한 글자, 기타 설명이 필요한 경우 등에 달았습니다. ∙저본에서 삭제된것으로 보이는단어나 구절은 ‘……’로 표시했 습니다. ∙뒤표지의 글은 엮은이가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핵심 문장을 직접 뽑아낸 것입니다. ∙표지에 사용한 색상은 <지식을만드는지식 고전선집>을 위 해 개발한 고유 색상입니다. ∙<지식을만드는지식 고전선집>은 환경인증서를 획득했습 니다. 표지와 본문은 모두 친환경 재질을 사용했습니다.



차례

해설 ······················11 지은이에 대해 ··················20 최 서방(崔書房) ·················23 인두지주(人頭蜘蛛) ···············47 백치(白痴) ‘아다다’ ················61 마부(馬夫) ····················87 바람은 그냥 불고 ················111

엮은이에 대해··················142


최 서방(崔書房)



一 새벽부터 분주히 다리기 시작한 최 서방네 벼마당질2)은 해가 젓것만 인제야 겨오 부추질3)이 낫다. 일군들은 어둡 기 전에 작석4)을 하여 치이려고 불이나케 섬몽이를 튼다. 그 러나 최 서방은 아츰부터 차저와 마당질이 나기만 기다리 고 우들부들 며 마당가에  둘너선 채인군(債引軍)5)들을 볼 에 섬몽이를 틀 힘조차 나지 안엇다. 그는 실상 마당질 나는 것이 귀치안타는이보다 죽기만치나 겁이 난 것이다. 그것은 하로에도 멧 번식 차저와 호미갑(胡米價)이라 약 갑(藥價)이라 하고 조르는 것을 벼를 다려서 준다고 오늘 내일하고 밀어오든 것인데 급기야 벼를 다리고 보니 그들 의 빗은 갑기커녕 송 지주에 롱차6)도 다 갑기의 벼 한 알이 남아서지 안을 것 갓해서 의례히 싸홈이 일어나리라 예상한 닭이다. “열 섬은 외상업시7) 나지.”

2) 벼마당질: 가을에 거두어들인 벼에서 이삭을 터는 일. 3) 부채질. 4) 작석(作石): 곡식을 담아서 한 섬씩 만듦. 또는 그렇게 만든 섬. 5) 꾸어준 빚을 돌려받으러 온 사람. 6) 농채(農債).

25 최 서방


사랑 퇴ㅅ마루 우에서 수판을 압해 놋코 분주히 게산을 치고 안젓든 송 지주는 이러케 물엇다. “열 섬이야 아마 더 나겟지요.” 최 서방은 열 섬이 못 날 줄은 의례히 짐작하지만 일부러 이러케 대답을 햇다. “글세… 그러고 벼는 충실하지.” 지주는 노앗든 산알을 여버리고 마당으로 나려와 들여 노은 벼를 염을기나 잘하엿나 하고 시험 삼아 한 알을 골나 입안에 넛코 보앗다. “암, 충실하고 말고요. 이거야 소문난 변데요.” 이것은 일군 중에 한 사람의 이약이엿다. 섬몽이 틀기는 이 나고 이제는 작셕이 시작되엿다. 차 인군들은 제각기 적개책을 내여 든다. “십오 원이니 섬 반은 주어야겟소.” 호미갑 차인군이 한 섬을 갓 되여 놋는 벼를 가로 고 안 즈며 이러케 말을 건넨다. “글세 준다는데 웨, 이리들 급하게 구오.” 최 서방은  한 섬을 묵노앗다. “오 원이니 나는 반 섬이면 탕감이 되오.”

7) 외상없다: 조금도 틀림이 없거나 어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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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포목갑(布木價) 차인군이 들채는 소리엿다. “섬 반이고 반 섬이고 글세 벼를 팔아서야 돈을 갑하도 갑지 잇는 벼가 어듸로 도망을 치겟기에 이리들 보채오.” 최 서방은 위선 이러케밧게 대답할 수 업섯다. “벼자 돈이고 벼ㅅ갑도 이 금이 낫스니 어서들 갈너 주 소. 괜이 이 치운데 어둡기나 전에 가게.” 약갑 차인군은 이러케 말을 부치고  한 섬을 고 안 는다. “여보 그것이 무슨 버릇들이요. 남의 벼를 그럿케 함부로 고 안즈니.” “그러기 날네들 갈나 주어요.” “글세, 팔아서야 준다는데 무얼 갈나 달나고 그래요.” “그러면 그럼 오늘도 안 주겟다는 말이요 말이.” “안 주겟다는 게 아니라 벼를 팔아서 주마 하는데 되여 놋는 족족 한 섬식 덥처 고 안즈니 어듸 톄면이 되엿단 말 이요 그럼.” “글애 오늘내일하고 속여온 당신의 톄면은 글애서 잘됏 단 말이요글애.” “오늘이야 글세 벼를 팔아서야지요.” “그럼 오늘도 정말 안 줄 테요.” “아니 못 주지요.” 27 최 서방


“정말.” “정말 아니고.” “정말.” “정말이야 글세.” “정말이야 글세가 무어야 이 자식.” 호미갑 차인군은 분이 치밀녀 프들프들 니는 주먹을 부르쥐고 최 서방의 턱 압흐로 밧싹 닥어섯다. 그리고 주먹 을 훌근 내밀엇다. 최 서방은 “희” 하고 뒷거름을 첫다. 그러나 아모 반항도 안 햇다. 작석은 한 이 낫다. 열 섬을 밋엇든 벼는 겨오 여덜 섬에 긋치고 말엇다. 송 지주는 그것 가지고는 청장8)이  하다는 듯이 머리를 흔들며 “이번에도 회게가 채 안 되는군. 모두 오십이 원인데.” 하고 다시 게산을 틀어본다. “엇더케 그럿케 되오.” 최 서방은 자긔의 예산과는 엄청나게 틀닌다는 듯이   놀나며 이럿케 반문을 햇다.

8) 청장(淸帳): 장부(帳簿)를 청산한다는 뜻으로, 빚 따위를 깨끗이 갚음을 이 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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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元金)이 사십 원에 변(利子)을 십이 원 더 노으니.” “무어 그 돈에다 변지 노아요.” “변을 안 노으면 엇재나. 나도 남의 돈을 빗낸 것인데.” “그럿타기로 변은 제해주세요.” “그 돈으로 자네 부처가 일 년이란 열두 달을 먹고 산 것 인데 변을 안 물닷게. 안 돼 안 돼 건.” 그는 엉터리업는 수작이라는 듯이 “안 돼” 하는 ‘돼자에 ’ 힘을 주엇다. 최 서방은 보통의 롱채(農價)와도 다른 이 물 픈 싹(引水 세)에 고ㅅ가의 변을 지우는 데는 젓 먹든 밸지 일어낫스 나 송 지주의 성질을 잘 아는 그는 암만 빌어야 안 될 줄 알고 아야 아모 말도 안 햇다. 실상 그는 말하기도 실엇든 것이다. “그러니 태반이 넉 섬식이지 한 섬에 십 원식 치고도 모자라는 십이 원을 엇제나? 오라. 가마잇자.  집(藁)이 잇것다. 집이 마흔 단이니 스무 단식이지. 그러면 한 단에 십 전식 치고 이 원, 응응 겨오 우수9) 논. 그래 십 원을 엇 잴 테야.” 그는 최 서방이 그리 해주겟다는 숭락도 엇지 안코 자긔 혼자 이럿케 결산을 치고 닷자곳자로 일군들을 식여 한 섬

9) 일정한 수나 수량에 차고 남는 수나 수량.

29 최 서방


도 남기지 안코 모다 자긔네 고ㅅ간으로 어드렷다. 행여나 벼로나 바들가 하고 왼종일 치움에 면서 고 안젓든 벼섬을 노아준 차인군들은 맛치 닭 조차가든 개가 집웅을 치여다보는 격으로 눈들만 멀둥멀둥하야 엇절 줄을 모르고 멀건이 서서 송 지주의 분주히 왓다 갓다 하는 만 처다보고 잇섯다. 그들은 한긋 분하면서도 우수웟다. 그래 서 하하 하고 우섯다. 그러나 다시 “돈 내라 이놈아.” “오늘 저녁에 안 내면 죽인다.” “저럿케 속이기만 하는 놈은 주먹맛을 좀 단단이 보아야 아마 정신이 들.” 하고 제각기 이럿케 부르지즈며 달녀들엇다. 그것은 맛 치 이제는 돈도 밧기 글넛는데 그 사이에 품 놋코 단니든 분 프리로나 여버리려는 듯하엿다. 그들은 골이 통통이 부어서 가진 욕설을 거드리며 뎜비 엿다. 호미갑 차인군은 최 서방의 멱살을 붓잡엇다. “노아. 이럿케 붓잡으면 누굴 칠 테야.” 최 서방은 이제는 파라서 준단 말도 할 수 업섯다. “못 치긴 하는데 이놈아.” 호미갑 차인군은 최 서방의 귀밋을 보기 조케 한 개 갈 30


겻다. 약갑 차인군과 포목 차인군도 각각 한 개식 갈겻다. “아이.” 최 서방은 뒤로 비칠비칠하며 전신을 엇다. 그리고 당 연이 마즐 것이라는 듯이 아모런 반항도 안 햇다. “돈 내라 이놈아.” 호미갑 차인군은 이번에는 불드덩을 발길노 저겻다. 여 러 차인군들도 한 갓치 저겻다. “아이고.” 최 서방은 긔절하야 번듯이 뒤로 나가 넘어젓다. 넘어진 그의 코에서는 피가 흘넛다. 치움에 든 차인군들은 이 흠벅이 낫다. 최 서방은 죽은 듯이 넘어진 그대로 여전히 누어 잇섯다. 한참 만에 그는 알이 압흠을 강잉10)이 참는 듯이 얼골을 그리고 잇발을 둑둑 갈며 손을 허우적거렷다. 그리고 불두덩을 한 손으로 움켜쥐고 간신히 일어섯다. 그의 일어 선 자리에는 코피가 군데군데 갓케 물드러 잇섯다. 그가 완전이 거러 막사리를 차저 들어갈 에는 날은 벌 서 새앗케 어두어 잇섯다.

10) 강잉(强仍): 억지로 참음. 또는 마지못하여 그대로 함.

31 최 서방


二 최 서방에게 잇서서 여름내 피을 흘니며 고생고생 버러노 흔 결정이라고는 오직 죽도록 엇어마즌 매가 잇슬 이엇 다. 그 밧게는 아모러한 것도 업섯다. 그는 밤이 깁도록 오력을 잘 못 썻다. 더구나 불두덩이 압파서 잘 일지도 못햇다. 그는 이럿케 남 못 보는 고초를 맛 보지만 어느 뉘다려 호소할 곳도 업섯다. 잇다면 오직 사랑 하는 안해가 잇슬 밧게 다만 자긔 혼자서 압하할 름이 엿다. 그는 참으로 불상한 사람이엿다. 이갓치 불상한 처지에 잇는 소작인(小作人)이 이 나라에 가득 찬 것이 그것이지만 그중에도 최 서방처럼 불상한 처지에 안젓는 사람은 별노 업슬 것이다. 이러케 그가 불행한 처지에 안젓게 된 원인은 오직 단순한 두 가지가 잇슬 이다. 한아는 악독한 독사(毒 蛇) 갓흔 지주를 가젓다는 것이요 한아는 그가 본래부터 성

질이 착하다는 것이니 모든 사람들은 정의와 인도를 벗서나 남의 눈을 감언리설노 속이여가며 교활한 수단으로 목숨을 년명하여 가지만 이러한 비인도뎍이요 비룬리뎍인 행동에 는 조곰도 눈보지 안는 그에게는 밥이 생기지 안엇다. 잇 다금 밥을 몃 기식 굴믈 에는 도적질이란 것도 생각해 본 32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엿지만 이런 것을 생각할 마다 비인 도뎍이라는 것이 번개처럼 머리에 번적 오르곤 하야 그는 참아 그를 실행하지 못하엿든 것이엿다. 그가 이갓치 착하니만치 그 반면에는 악독한 지주가 잇 서 이러케 불상한 그의 피를 한 라내는 것이엿다. 례년은 말고 금년 일 년만 하드라도 이 동리 압벌에 지독 한 감을이 들어 모다들 볏모를 말녀 죽이다십히 하엿지만 송 지주의 작인치고도 오직 최 서방 한아만이 인력(人力)으 ˙ 로는 도저치 인수(引水)할 수 업는 물을 빗을 엇어가며 펌 ˙ 를 세내여 물을 한 방울 두 방울 라올니게 하야 볏모를 프 준이 구하야 온 것이엿다. 이러케 그는 오직 살겟다는 생 존욕에서 남 안이 하는 고생을 하여가며 남 못하는 수확을 하엿지만 ‘수확이라는 ’ 것을 걸금11) 주엇든 송 지주의 빗이 라는 것이 고ㅅ가의 리자지 쓰고 나와 그로 하여금 도로 여 가해를 지게 하야 그들의 피의 결정은 결국 송 지주네 고방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엿다. 그리고 보니 그는 당장에 먹을 것이 업는 것이라 농사를 지여 줄 셈치고 안 쓸 수 업서 사소한 용처를 외상으로 맛허 썻든 것이 일이 이러케 되고 보니 차인군들한테 매를 엇어맛는 경우에지 이른 것이

11) ‘거름의 ’ 방언(강원, 경상, 평안, 함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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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다. 실상 그들의 빗은 송 지주의 그것과는 다른 관게로 감 사이 절하고 갑파야 될 것이엿만 더구나 호미갑이란 이즐 수 업는 것이엿다. 이 지방 풍속에 의례히 소작인이 먹을 것이 업스면 추수 를 할 지 식냥을 지주가 당해주는 법이엿만 유독 송 지 주만은 몬저 당해준 식량에 고가의 리자를 기워 게산을 틀 어가다가 추수에 넘치는 한이 잇게 되면 례사로 그에는 잡아고 작인은 굴머 죽든지 마든지 그것을 상관하지 안코 다시는 주지 안는 것이엿다. 그래서 금년에 최 서방은 사흘 이라는 기나긴 여름날을 굼다 못 하야 이전부터 친분이 잇 든 그 고을에서 호미장사 하는 사람을 차저가서 그런 사정 을 말하엿다. 그도 간난을 격거본 사람이라 지극히 불상이 여겨 호미를 두 포대나 맛허준 것이엿다. 그래서 최 서방네 내외는 주린 창자를 회복식혀 오늘지 목숨을 이여온 그러 한 호미갑이엿다. 그런데 그는 오늘 마지막으로 드린 벼를 지주의 권력 에 못 익여 이 안인 치운 겨울에 겨날가 두려워 호미갑슬 미리 어주지 못하고 그의 빗에 그만 탕감을 치워버린 것 이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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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 최 서방은 지금 불ㅅ김이 긔별도 하지 안는 차듸찬 냉돌에 누어서 발길에 채인 불드덩과 주먹에 마즌 귀밋이 쑤시고 저림도 이저버리고 불덩이갓치 거운 해볏이 나려이는 들판에서 등을 구어가며 김매는 생각과 오늘 하로의 지난 력사를 머리속에 그리여본다. ‘나는 웨 여름내 피을 흘니 며 김을 매엿노. 그리고 호미갑을 웨 미리 못 어주엇슬고. 송 지주는 웨 그럿케 몹시도 악할고. 나는 웨 그리 약한고. 나는 못난니다. 사람의 자식이 웨, 이리 못낫슬가? 그런데 차인군들은 나를 웨 렷노. 그들은 넘어도 과하다. 안이 안 이. 그런 것이 아니다. 그들도 밥을 엇기 위하야 나와 그러 케 피를 보게 싸왓든 것이다. 그들은 내가 피을 흘니며 여 름내 농사를 짓는 것과 조곰도 다름이 업시 그래야만 입에 밥이 들어오기 문일 것이다. 아니 그들은 농작이 업서 농 사도 짓지 못하고 막버리로 품파리로 저러케 남의 돈을 거 두어주고 목숨을 부처가는 그들이 나보다 도로여 불상하다. 나는 조곰도 그들을 욕할 수 업다. 야속달 수 업다. 그러나 그러나 지주네들은 외 아모러한 뇌력도 업시 평안이 팔장 고 한 자리에 안젓다가 우리네의 피을 옴송이채로 들어먹을가. 암만해도 고약한 일이다. 금년만 하드래도 우 35 최 서방


리 부쳐가 어름이 갓 녹아 차듸찬 종아리를 저내는 듯한 봄물에 들어서서 논을 갈고 씨를 리엿으며 불볏이 푹푹 내려이는 볏에 살을 데여가며 물 푸고 김매고 가을내 단 잠 못 자고 벼부이기와 싯거리질이며 겨울내 치움을 무릅쓰 고 굶어가며 마당질을 하엿는데 우리는 한 알도 맛보지 못 하고 송 지주네 고ㅅ간에 모조리 들여다 싸앗것다. 괫심한 일이다. 그러고 우리 부쳐가 이럿케 뇌력을 할  송 주사는 (그는 늘 송 지주를 송 주사라 부른다) 긴 담배ㅅ대 물고 뒤 ㅅ짐 지고 할 일 업시 술 먹고 장긔 두고 더우면 그늘을 찻고 치우면 한 아릿목에서 낫잠질이나 하엿것다’ 이지 머 리속에 그리여 생각해 온 그는 실노 분함을 참지 못하엿다. “에이.” 그는 자긔도 모르게 이럿케 부르짓으며 두 주먹을 불 쥐엿다. 그리고 부르르 엇다. “외− 그리우?” 산후에 중통을 하고 난 그의 안해는 발췻목에서 어린애 젓을 니우고 잇다가 무엇을 생각하고 잇는 듯하든 남편이 그갓치 아지 못할 소리를 지르고 는 주먹을 보고 의아하게 도 이럿케 물엇다. 남편은 아모런 대답도 업시 여전이 부르 쥔 주먹을 펴지 못하고 엇다. 한참 만에 그는 입을 열엇다. “여보 마누라. 우리는 여름내 무엇을 하엿소.” 36


이 소리는 매우 친절하고 측은하고 어성이 고앗다. “무엇을 하다니요. 농사하지 안엇서요.” “그러면 지은 농사는 외− 업소.” 안해는 이 소리에 실노 긔가 맥혓다. 정신이 앗질하여지 고 대답이 나오지 안엇다. 저녁 남편이 매를 맛든 과 송 지주의 벼를 여 들여가든 현장이 눈압헤 갑자기 환하게 나타낫다. “에이.” 그는 다시 주먹을 부르르 엇다. 안해는 엇절 줄을 모르고 남편의 겻흐로 닥아안즈며 눈 물을 흘녓다. “울기는 외, 우오. 우리 의논 좀 하자는데.” 하고 그는 다시 무엇을 생각하드니 안해를 노려보며 말 을 이엿다. “마누라 우리는 외 빗을 젓는지 아시오?” “호미와 강냉이(옥수수) 사다 먹지 안엇서요?” “그런데 우리는 그 호미갑을 외 못 무오?” 안해는 긔가 맥혀  말문이 맥혓다. 지난 여름에 사흘식 굶어 든 그의 현상이 다시 눈압헤 낫타낫다. 남편도 이럿케 뭇고 보니 생각은 새로워 아지 못할 눈물이 눈초리 에 매첫다. 37 최 서방


“우리가 이리로 이사 온 지가 멧 핸지?” “십 년채 안이요” “올아 십 년채. 우리는 십 년채를 이 독사의 구덩에서.” 하고 그는 혼잣말 비슷이 이러케 부르짓고 한숨을 괴롭 게도 한 번 길게 고 다시 말을 이엿다. “여보게 마누라 남 보기에는 우리가 송 주사네의 덕택으 로 먹고 입고 사는 줄 아지만 실생 우리는 우리의 두 주먹으 로 우리의 몸을 살닌 것일세. 우리는 송 주사의 은헤라고는 반 푼에치도 업고 도로혀 그들한테 피를 니운 것일세. 내 나 자네나 이럿케 피ㅅ긔 업시 독독 마른 것이 모다 송 주사한테 피를 니운 탓일세. 우리가 그럿케 피와 을 흘 니며 죽을 고생을 다하야 벌어노으면 그들은 그것을 가지고 잘 먹고 잘 입고 그리고도 남으면 그 돈으로  우리의 피를 는 것일세. 그러면 금년의 우리의 버른 그것으로  내년 에 우리의 피를 줄 것이 안인가. 엇케 생각하면 그런 줄을 연이 알면서 피를 니우는 우리가 도로혀 우수운 것일 세. 그러기에 우리는 이제부터 피를 니우지 안케 방책을 연구하여야 되겟네. 그래서 자유롭게 살어야 되겟네. 만일 우리의 두 주먹이 업다 하면 그들은 당장에 굶어 죽을 것일 세. 죽고 말고 암 죽지 죽어.” 하고 그는 매우 흥분된 어조로 이러케 장황이 부르지젓 38


다. 그는 상당이 무엇을 다른 듯하엿다. 안해는 이런 소리 를 남편에게서 듯기는 실상 이번이 처음이엿다. 그리고 가 슴이 시원하다는 듯이 빙그레 우섯다. “글세 참 그럿킨 하지만 엇지하우?” 안해는 무엇을 생각하는 듯하드니 한참 만에 엇지할 바 를 모르겟다는 듯이 이럿케 무럿다. “엇지해. 싸워야 되지. 싸울 수밧게 업네. 그들의 압헤는 정의도 업고 인도도 업는 것을 엇지하나. 안이 이 세상이란 한 역시 그런 것이니 남의 눈을 엇케 패측한 수단으 로라도 가리우지 안코는 밥을 먹을 수 업는 것을 나는 이제 야 비로소 달앗네. 우리는 이제부터 이 모든 더러운 독사 갓흔 무리와 필사의 힘을 다하야 싸워야 되겟네. 싸와야 돼. 그래서 우리는…” 하고 그는 무엇을 더 말하랴다가 참기 어려운 듯이 주먹 을 다시 부르르 럿다. “글세요. 아이 참 낼 아츰 밥 질게 업스니 이 일을  엇지 하우.” 안해는 새삼스럽게 잇치지 못하든 아츰거리가 머리에  올낫다. “그러기에 싸호잔 말이야.” 해여진 창틈으로 바람은 씽씽 들어오지만 치운 줄도 모 39 최 서방


르고 이러케 그들 내외는 생활고에 조들녀 닥처오는 고통을 서로 하소연하며 장차 엇지 살고 하는 압잡이 길에 왼정신 을 일코 깁흔 명상 속에서 밤이 새도록 헤매엿다.

四 그 잇흔날 아츰 일즉이 송 지주는 최 서방을 불러다 놋코 어 제저녁 벼에 탕감이 채 되지 못한 남아지 십 원을 들채기 시 작햇다. 어제밤 밤새도록 한잠도 자지 못한 최 서방의 눈은 쑨 죽 처럼 풀어지고 눈알엔 밝앗케 핏줄이 검의줄처럼 서리여 잇 섯다. “자네 농사는 참 금년에 장하게 되엿네. 농사는 그럿케 근농으로 하지 안으면 이즘 뎐답 엇기도 힘드는 세상일세. 참 자네 농사엔 귀신이야. 그럿키에 그래도 근 백 원 돈을 이 탁데탁 청당햇지 될 말인가.” 하고 송 지주는 점지안음을 고 최 서방을 추워 하늘노 올너 보내며 다시 “그런데 어제 오십이 원에서 사십이 원은 귀정이 된 모양 이나 이제 남아지 십 원은 엇잴 셈인가. 죠속이 그것도 해 물 40


고 세나 쇠야지?” 최 서방은 업는 돈을 갑겟다지도 한 안 갑겟다지도 엇 케 대답을 하여야 조흘지 몰나 한참이나 주저주저하다가 “금년엔 물 수 업슴니다. 그대로 지워주십시요.” 하고 그는 낫을 들지 못햇다. “물 수 업스면 엇잰단 말이야.” “그럼 업는 돈을 엇지함니.” “물지도 못할 걸 쓰기는 그럼 외 그럿케 썻서 응!” “그 돈 껏기에12) 주사님네 농사를 지어 밧치지 안엇슴니 .” “이놈 나를 거저 지어 밧친 것 갓고나. 바루 원 텬하에 말 버릇 갓흐니 에이 이놈.” 그는 기다란 댓새를 최 서방의 턱 압헤 훌근 내밀엇다. “안이 그럼 아시는 바 한 말도 업는 벼를 무엇으로 돈을 장만해 내랴심니.” “이놈 그럼 업다고 안 물 테냐 응! 이놈아 내가 너이들은 그래도 불상한 것이라고 특별이 먹여 살녓것만 에이 이 은 헤 모르는 놈. 이놈 썩 나가 뎐답도 모조리 다 내놋코 이 도 야지 갓흔 놈. 아직도 밥을 굶어보지 못하엿넌 거로구나.”

12) 꾸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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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그는 누구를 잡어 삼킬 듯이 벌건 눈을 훌근거리며 댓새로 최 서방의 턱을 밧쳣다. 최 서방은 이럿케 여지업는 욕설을 들을 에 아니 턱을 댓새로 밧치울  담박 달녀들어 댓새를 부러치고 대항도 하고 십허스나 그는 약하엿다. 그리고 머리지 치밀어 오 르는 분이 진정할 수 업시 가슴을 게 하엿지만 한 그는 말을 못 하엿다. 나오랴든 말은 입안에서 돌돌 굴다 사라지 고 말 이엿다. 최 서방이 집으로 나간 뒤헤 송 지주는 곳 멈돌을 불너가지고 막사리로 조차 나와서 약간한 가장13)으 로 십 원을 한 탕감치려 하엿다. 위선 그는 멈돌을 식여 짐 장을 하여 너흔 독(瓮)과 부억에 거른 솟(鼎)을 아 내왓다. 잇에 최 서방은 더 참을 수 업섯다. 여러 해를 두고 공 기고 공겨오든 분은 일시에 탁 터저 나왓다. 맛치 병엣 물을 넉넉 로 솟듯이. “이놈!” 최 서방은 주먹을 부르쥐엿다. 그리고 입술을 푸들푸들 며 송 지주와 마조 섯다. “이놈이라니. 야 이 이이 무지한 버릇업는 놈…아.” 송 지주는 엇절 줄을 모르고 몽둥이를 차저 사방을 살피

13) 가장(家藏): 물건 따위를 집에 간직함. 또는 그 물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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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덤볏다. 실상 그는 나이 오십에 이놈이라는 소리를 듯기 는 이번이 처음이라 젓 먹든 밸지 일어나 섯을 것도 그리 무리는 안이엿다. “에이 이 독사 갓흔 사람의 피를 는…” 하고 최 서방은 허청 기동에 세엇든 독기를 들어 솟과 독 을 단번에 부섯다. “릉” 하고 여저 사방으로 다라나는 소리는 맛치 폭발이나 터지는 듯이 요란하엿다. “독을  치면 이이 십 원은.” “이놈아 이이 내 피는.” 그들의 형세는 매우 험악하엿다. 최 서방은 압헤 들어오 는 것이여든 무엇이든지 모조리 려 부실 이 주먹과 다 리는 경련뎍으로 와들와들 엇다. 이런 광경을 멀거니 보고 잇든 그 안해는 세간의 전부인 독과 솟이 여져 업서지는 앗움보다 승리가 깁다는 듯 이 빙그레 우섯다. 송 지주는 멈돌의 손에 니여 못 익이는 체하고 는 대 로 니여 들어갓다. 멈돌에게 독과 솟을 지여가지고 들여가랴 가지고 나왓 든 지게는 멈돌의 등에서 달낭궁달낭궁 부인 대로 조차 들 어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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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 겨울은 가고 봄이 왓다. 어느 일긔 조흔 한 날 석양에 무 순(無順) 차표를 손에다 각각 한 장식 쥐인 최 서방 내외의 그림자는 S뎡거장 삼등 대합실 한구석에 나타낫다. 그들의 영양부족을 말하는 수척한 얼굴은 몹시도 핼금한 것이 맛치 속에서 보는 요물을 년상케 하엿다. 더구나 그 안해의 등 에 업힌 겨오 두 살밧게 안 되는 어린애는 치움에 시달녀슴 인지 한 줌도 못 되리만치 배와 등이 거의 맛붓다십히 그 린 데다가 바지저고리도 걸치지 못하고 알몸대로 업히여서 악악 하고 울며 는 이란 참아 볼 수 업섯다. 그들은 송 지주와 싸혼 그 자리로 그 막사리를 나 니 를 굶어가며 혹은 방아간에서 그도 업스면 행길에서 밤새여 가며 뎡처 업시 일자리를 차저 돌아단니다가 어 작으마한 도회지에서 최 서방은 삭짐과 품파리로 안해는 삭바누질과 삭내로 간신간신이 차비를 작만하엿든 것이엿다. 그들이 그 막사리를 날 의 본내의 목뎍은 엇케 죽 물노라도 두 내외의 배를 채울 수만 잇으면 내 고국은 나 지 안으리라 생각하여섯것만 그것조차 여의치 못하야 최후 의 수단으로 맛츰내 서간도 길을 단행한 것이엿다. 그의 내외는 차 시간이 차차 갓가워와 멧 푼 격하지 안은 44


압페 잔가 굵은 이  갓흔 피가 넘처 는 동포가 엉킨 이 을 나 산 설고 물 서른 이역의 타국에 고생할 것을 생각 할 에 실노 사모처 흐르는 눈물을 금할 수 업섯다. 긔차가 도착되자 플래트홈으로 압서거니 뒤서거니 엉기 엉기 걸어 나가는 사람들 틈에는 그들 내외도 섯겨 잇섯다. 시각이 잇는 차 시간이다. 그들은 할 수 업시 차에 몸을 담엇 다. 호각 소리가 나자 차는 박휘를 음직엿다. “아! 차는 그만 가누나! 우리는 외 이갓치 눈물을 리며 조국을 나지 안으면 안 되노?” 하고 그는 입속말노 중얼거리며 바람이 씽씽 듸리쏘는 차창으로 머리를 내밀고 참아 고국은 못 니저 하는 듯이 눈 물에 서린 눈으로 사방을 힘업시 살펴보앗다. 그리고 좀 더 긔차가 멈을너 주엇스면 하는 듯하엿다. 그러나 내닷기 시작 한 사정업는 긔차는 흰 연긔 검은 연긔 번갈너 토하며 세 생 명의 쓸아리게 리는 피눈물을 싯고 줄다름 치기 시작했다.

1927. 1. 7, 宣川賢洞의 바람 부는 날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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