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死)
1 나는 지금도 여전히 수학과 어학을 가르치면서 생계를 유지 하고 있다. 몇 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지인을 통해 새로 생 긴 교토(京都)의 모 사립학교에서 일해 볼 생각이 없냐는 전 갈을 받았다. 나는 학교 쪽에서 제시하는 조건을 받아들여 조만간 교토로 가기로 마음을 굳혔고, 그 사실을 여러 친구 들에게 알렸다. 교토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친다는 사실보다 교토라는 지역 자체가 주는 호기심에 매료되었다. 그래서 교토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도 볼 겸 도미오카 다케 지로(富岡竹次郎)라는 친구를 찾아갔다. 도미오카는 교토 사람으로, 매우 가까운 친구였다. 그는 다섯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형 고타로(孝太郎), 어머니와 함께 교토로 가서 살았다. 청년이 되어 도쿄로 유학을 오게 되면서 마침내 어머니 슬하에서 독립했다. 지금은 햇수로 3 년째 모 관청에서 일하고 있는데, 나이는 스물일곱이다. 도미오카를 알게 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우리 는 꽤 깊은 우정을 나누고 있다. 도미오카가 어떤 사람인가 에 대해서는 아직 미심쩍은 구석이 있다. 그러나 한마디로 말하자면, 불같이 타오르는 유동체를 마치 철과 같이 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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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고형체가 에워싸고 있는 듯한 친구라 하겠다. 겉이 고형 체다 보니, 내부에서 타오르는 불의 성질을 알 도리가 없다. 다만 그 불이 외피를 뚫고 나올 정도로 거센 힘을 가졌다는 사실만큼은 도미오카가 직접 보여 주었기에 잘 알고 있다. 당연한 결과일지 모르나, 도미오카에게는 친구가 별로 없었고, 얼마 안 되는 친구들조차도 도미오카를 ‘별종’이라 고 불렀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2 5월 초순, 어느 봄날이었다. 금요일 해 질 무렵에 나는 도미 오카가 사는 고지마치(麹町) 3번지를 찾아가려고 집을 나 섰다. 하루 종일 책만 읽었던 터라 머리가 어지러웠다. 하지 만 밖으로 나와 목덜미를 간질이는 서늘한 바람을 쐬니, 이 루 말할 수 없이 상쾌했다. 천천히 걷다가 해거름이 되어서 야 도미오카가 사는 집에 닿았다. 도미오카는 바지런한 할 머니 한 분을 식모로 들여 집안일을 맡겼는데, 할머니 외에 는 아무도 없었다. 그냥 혼자서, 쓸쓸하지만 속 편하게 지냈 다. 도미오카의 집은 대문을 들어서면 서재 옆을 지나 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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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들어가는 구조였다. 그런데 서재의 창문이 장지문인 데다가 밖에서 상반신을 실내로 들이밀 수 있을 정도로 높 이가 낮았다. 도미오카는 이따금씩 그 창문턱에 앉아 기둥 에 몸을 기댄 채 먼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다. 그래서 나는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서재 쪽으로 가서 동 정을 살폈다. 방 안에는 아직도 등불이 켜 있지 않았고, 조 용하기만 했다. 집에 없나 싶어, “도미오카 군!” 하고 가볍게 불러 보았다. 대답이 없었다. 그런데 장지문이 약간 열려 있었다. 창문 바로 밑에까지 갔더니, 벗어 던진 신발이 아무렇게나 흩어 져 있고, 장지문은 딱 한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빼꼼 히 열려 있었다. 도미오카라면 늘 이 창문으로 드나들겠거 니 하고, 나도 안심하고 방 안을 들여다보면서 한 번 더 도미 오카를 불렀다. 역시 대답이 없었다. 방 안은 어둑어둑해서, 구석에 있는 책상과 의자가 희미하게 보일 뿐이었다. 아무래도 집에 없 나 보다. 좌우지간 할머니에게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몸을 빼내려 하자, 얼핏 방구석에 쓰러져 있는 검은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형체가 사람 같아 보여서 자세히 들여다보 니 아니나 다를까 사람이 분명했다. “낮잠을 주무시고 계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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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제야 납득을 하고 좀 더 큰 소리로 불러 보았다. “도미오카 군!” 일어날 생각을 안 한다. “여보게, 도미오카 군! 이봐!”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는 조급해져서 큰 소리로 연달아 불러 댔다. “이봐! 도미오카 군, 벌써 자면 어떡하나. 도미오카 군! 어라? 아주 깊이 잠들었나 보군, 일어나 보라니까!” 도미오카는 도통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작은 숨소 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이때 방 하나 건너에 있는 부엌 쪽에 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옆방 문이 드르륵 열렸다. 할머니 가 분명했다. 곧바로 할머니는 서재의 장지문을 열어 방 안 을 들여다보았다. “여기서 무슨 소리가 난 것 같았는데….” 할머니는 이렇게 중얼거리더니, 도로 가 버리려 했다. “할머니, 도미오카 군을 좀 깨워 보세요. 초저녁부터 저 렇게 곯아떨어지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느닷없이 창문 밖에서 말소리가 나자 할머니는 적잖이 놀란 모양이었다. “어머나, 총각이었구먼. 주인 총각은 지금 집에 없어요. 오늘은 관청 일이 평소보다 빨리 끝나서 들어오셨다가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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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셨지요. 헛걸음 하셨네요.” “이상하네요. 저쪽에서 자고 있는 사람이 도미오카 아닌 가요? 저쪽 좀 보시라고요. 저기.” 나는 어두컴컴한 구석을 가리켰다. “어머, 언제 돌아오셨지?” 할머니는 도미오카 옆으로 다가가서 어깨에 손을 얹었 다. “여보쇼, 주인 총각, 주인 총각.” 도미오카는 웬일인지 일어나지 않았다. “깊이 잠드셨나 보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오마사(お政) 할머니는 ‘어머나’, 하고 소리를 질렀다. “왜 그러세요?” “주인 총각! 주인 총각! 이거 큰일 났구먼.”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에구머니나, 카… 칼이!” 할머니는 뒤로 두세 걸음 물러섰다. 나는 방으로 뛰어들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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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도미오카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나는 울고 싶어도 울 수가 없었다. 너무나 충격적인 일이 라 놀란 나머지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슬픈 건지 불쌍한 건 지 감정을 곱씹을 만한 여유조차 없었다. 탄력이 있는, 어떤 끈끈한 힘이 감정 샘을 막아 버린 듯, 가슴이 묵직하게 메어 와 숨이 가빠지면서 온몸의 피가 죄다 한곳으로 모여드는 것 같았다. 끔찍한 전율이 발끝에서 머리털 끝까지 훑고 지 나갔다. 온몸이 무게중심을 잃어 가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그런 감각이 오히려 나를 냉정하고 침착하게 만들어 주었다. “얼른 불 좀 켜 봐요.” 나는 간신히 말을 뱉었다. 속삭이듯 소리쳤다. 할머니는 허둥대며 테이블 위를 더듬었으나, 성냥을 찾을 수 없자, 곧 장 부엌으로 달려갔다. 나는 그 모습을 눈으로 좇았다. “불은 내가 붙일 테니, 어서 근처에 있는 의사 선생님을 모셔 오세요.” 할머니로부터 성냥을 넘겨받은 나는 서재로 돌아갔다. 할머니는 뒷문으로 뛰어나갔다. 테이블 위에 있던 등불에 불을 붙이자, 여태껏 캄캄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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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이 갑자기 환하게 밝아 왔고, 책상 다리까지 흘러온 피가 순간적으로 엄청나게 반짝거렸다. 끔찍하게도 도미오카의 얼굴은 이쪽을 향하고 있다. 눈 꺼풀이 반쯤 내려와 있고, 선홍빛 피가 얼굴의 절반을 뒤덮 고 있다. 이를 악문 채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는데, 주먹 역 시 피범벅이었다. 도미오카는 관청에서 돌아와 옷도 갈아입 지 않은 듯 양복 차림이었다. 피에 물들지 않은 얼굴의 반쪽 은 등불의 빛을 받아 그렇지 않아도 창백했던 얼굴이 더욱 새파랗게 보였다. 나도 모르게 이 참혹한 광경에서 눈을 떼 려고 하는데, 뭔가가 번쩍하고 눈을 자극한다. 구석에 떨어 져 있던 단도였다. 다가가서 몸을 만졌더니 온기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 다. 너무 늦었다. 죽은 게 분명하다. 저렇게 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을 텐데, 어쨌든 숨이 끊어져 있었다. 친구의 자살, 그것을 바로 눈앞에서 지켜본다. 선혈이 낭 자한 주검이 눈앞에 누워 있다. 이게 도대체 뭐람. 나는 의 자에 몸을 던진 채 도미오카의 주검을 가만히 응시한다. 바 로 그때 확실히 느꼈다. 그제야 비로소 꿈을 꾸는 듯했고, 정말로 꿈은 아닐까 싶었다. 그러나 절대 꿈은 아니었다. 도미오카는 죽었다고 생각 을 고쳐먹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감이 나지는 않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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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다만 도미오카가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 을 확인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마치 돌멩이를 가리키며 이 건 돌멩이라고 확인하듯이 말이다. 그래! 꿈과 현실과 이 순간의 나, 과연 무엇이 다른가. 간 혹 꿈을 꾸면서 이건 진짜라고 믿을 때가 있는데, 내가 지금 현실에서 눈앞에 펼쳐진 죽음의 순간을 사실이라고 받아들 이는 것이 훨씬 더 무의미하고 무덤덤하게 느껴졌다. 죽음의 그림자는 이 참담한 방을 뒤덮고 있었다. 나와 도 미오카의 죽음 사이에는 하늘과 땅 만큼의 거리가 존재하지 만, 오히려 내 의식의 어둡고 깊은 곳에는 아직도 도미오카 가 살아서 웃고 있다. 행동과 용모, 성격 등이 살아서 움직 이는 도미오카의 평상시 모습 그대로다. 눈을 뜨면 피로 물 든 도미오카의 시체가 누워 있다. 눈을 감으면 도미오카는 살아서 모습을 드러낸다. 즉 이 순간에는 눈앞에 있는 ‘죽음’ 의 흔적보다 내 머릿속에 깊이 새겨진 ‘시체’의 환영이 내 감 정에 훨씬 더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바로 그때 앞뜰에서 바람이 한바탕 휘몰아쳤나 싶더니 방 안으로도 스며들었다. 방 안에 있던 등불이 훅 꺼졌다. 방은 어둠에 잠겼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새빨간 피로 물든 도미오카의 시체 가 떠올랐다. 이 찰나적 순간에 ‘시체’의 환영은 내 머릿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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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곳에 새겨졌다. 내가 다시 등불에 불을 밝혔을 때, 고토(後藤)라는 서른 대여섯 가량의 의사가 옷을 질질 끌며 서두르는 기색도 없 이 들어왔다. 할머니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선생님, 좀 보세요. 세상에 이런 일이….” “어쩌다 이렇게….” “아무래도 가망이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한 번 봐 주세 요.” 나는 주검 옆에 앉았고, 의사는 상처 난 곳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동맥을 끊었나 봅니다. 그래서 출혈이….” “선생님, 어떻게 좀 해 보세요.” 할머니는 울먹이며 소리쳤다. “이 상태로는 수술도 할 수 없습니다.” 의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냉담한 말투로 말을 이어 갔 다. “동맥을 끊었다면, 의사가 현장에서 바로 수술하지 않는 이상 살리기 어렵습니다.” 의사는 물을 가져다 달라며 할머니를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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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자살이 분명했으므로 그날 밤 경찰에서 사람이 나와 이런저 런 절차를 밟았다. 나는 우선 근처에 사는 친구 둘을 불러내 어 경찰과 함께 정신없이 움직였다. 사실 도미오카가 죽었 기 때문에 이토록 부산을 떨었던 셈인데, 정작 도미오카가 죽었다는 사실은 어느새 마음속에서 잊혀 버렸다. 지금도 버젓이 살아 있는 도미오카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느낌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도미오카는 친구가 별로 없었으나 다들 더없이 가까운 사이였으므로 도미오카가 죽었다는 전보를 치자 대여섯 명 이 급히 달려와 주었다. 너도나도 그저 아연실색할 뿐이었 다. 다들 도미오카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의문을 품 었지만, 누구 하나 그 대답을 아는 이가 없었다. 자리에 앉 은 채 고개를 갸웃거리거나 그저 눈물만 삼켰다. 결국 ‘왜 죽 었을까’에 대한 의문은 커져만 갔다. “오노(大野) 군, 자네는 뭔가 짚이는 데가 있나?” 앞에 앉아 있던 친구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친구들 중 에서는 아무래도 내가 도미오카와 가장 친했기 때문이리라. “아니, 나도 줄곧 그 이유를 생각하고 있는데,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 이렇게 가슴만 치고 있다네. 할머니, 혹시 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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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가 오늘 관청에서 퇴근했을 때 이상한 점 없었나요?” “평소와 비슷했어요. 원체 쓸데없는 이야기는 안 하시는 분이라…. 안색은 다소 안 좋아 보였죠. 잠깐 나갔다 오겠다 며 바로 외출하시길래 저는 그런가 보다 했지요. 창문으로 언제 들어오셨는지 까맣게 모르고 있었어요.” 할머니는 눈물을 글썽였다. 자신은 도미오카가 죽은 사 실을 전혀 몰랐다는 이야기만 연신 되풀이했다. 유서 같은 것도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일기를 살펴봤더니, 마지막 문 장이 “오늘 하루도 허무하게 저무는구나”였다. 그다지 큰 의 미는 없어 보였다. 도미오카는 틈만 나면 공부하는 노력파 였기 때문에 인생무상을 한탄하는 것은 그에게 흔히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여기 모인 모두가 동감하는 바였 다. 도미오카는 세상이 싫어 자살했을까. 도미오카에게 염 세적 경향이 있었다는 사실은 다들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 으나, 확실히 의식한 적은 없었다. 나 역시 도미오카가 직접 염세 사상을 운운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렇다고 낙천 적이었다고는 할 수 없다. 도미오카는 언제나 의젓하고 대 범했으며, 성격이 다소 침울하기는 했으나 상당한 독서가여 서 주로 과학에 관한 영국과 독일의 책을 탐독했다. 나와는 수학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웠으며, 내가 내는 어려운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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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를 좋아라 하며 끝까지 풀곤 했다. 그것도 아니면, 정신이 이상해졌단 말인가. 하지만 전혀 징조가 없었다. 그렇다면 갑자기 발광이라도 했단 말인가. 도미오카가 자살한 원인을 알 길이 없었으므로 죽은 이유에 만 사로잡혀 도저히 풀리지 않는 끔찍한 수수께끼를 떠안은 듯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다. 도미오카의 자살 때문에 모였 는데도, 자살의 원인에 정신이 팔려 정작 도미오카의 죽음 은 잊힌 지 오래였다. “혹시 여자 문제는 아닐까?” “말도 안 돼.” “도미오카도 사내자식이니까 그럴 수 있지.” “도미오카가 실연 때문에 죽을 놈이냐? 말도 안 되는 소 리지.” “왜 말이 안 돼?” “뭐 짚이는 데라도 있어?”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뭐.” “도미오카는 우리가 죽었다 깨어나도 알기 힘든 인간이 야. 그런 사람 가끔 있잖아.” 나는 이런 입씨름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불현듯 도미 오카가 머릿속에서 살아나 자신의 평소 행동이나 성격을 드 러내는 실례를 연이어 보여 주었다. 나는 그중에서 실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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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있는 일을 찾으려 애썼다. 물론 그런 일은 전혀 없었다. 아마도 다른 친구들은 마음속으로 도미오카를 그리며 그의 평소 모습을 떠올리고 있겠지. 도미오카는 죽어서 옆방에 누워 있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그에 대해 떠들고 있다. 친구들 모두 도미오카의 죽음을 가슴 아파 한다. 그러니까 당연히 왜 죽었는지가 궁금하다. 죽은 이유를 이리저리 추 측하는 가운데 어느새 이야기는 도미오카에게로 옮겨 간다. 갑자기 발광해서 목숨을 끊었다는 것 말고 다른 이유를 찾아낸 사람은 없었다. “갑자기 미쳐 버리는 증상은 도미오카 같은 사람한테 많 은가 봐.” “꼭 그런 건 아니지만, 도미오카처럼 살면 누구나 미쳐 버릴 거야.” “갑자기 발광해서 그런 짓을 저질렀다면 왠지 어처구니 가 없지만, 도미오카는 마음을 짓누르는 중압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거야.” “유전은 아닐까?” “그러고 보니 자기 아버지도 스스로 일찍 죽는 길을 택했 다고 도미오카가 말한 적이 있어!” “자살일지도 모르겠네.” “그렇다면 역시 유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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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수도 있지.” 나도 동의했다. 다들 그제야 만족한 듯 보였다. 그와 동시에 덜컥 도미오 카의 죽음이 애달프게 느껴졌다. 도미오카는 신망이 두터운 친구였기 때문에 이런 무참한 최후를 맞이했다는 사실이 서 럽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했다. “근데, 도미오카의 어머님이 보시면 얼마나 기가 막히실 까. 차마 눈 뜨고 못 보겠어.” “저도 그 생각을 하면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아요. 하염없 이 우실 거구먼요. 더군다나 저렇게 되실 때까지 전혀 몰랐 으니, 죄송해서 어쩐대요.” 할머니는 여전히 울고 있었다. 이때 교토에서 전보가 왔 다. “엄·마·바·로·출·발” “어머님이 오시나 봐요!” 할머니가 엎드려 흐느꼈다. 우리는 서로 얼굴을 마주하 며 어찌할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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