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화 · 이장희 시선
<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은 인류의 유산으로 남을 만한 작품만을 선정합니다. 오랜 시간 그 작품을 연구한 전문가가 정확한 번역, 전문적인 해설, 풍부한 작가 소개, 친절한 주석을 제공하는 고급 시 선집입니다.
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
이상화 · 이장희 시선 이상화 · 이장희 지음 장현숙 엮음
대한민국, 서울, 지식을만드는지식, 2014
편집자 일러두기 ∙ ‘초판본 한국시문학선집’은 점점 사라져 가는 원본을 재출간하 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을 엮은 이로 추천했습니다. ∙ 엮은이는 직접 작품을 선정하고 원전을 찾아냈으며 해설과 주 석을 덧붙였습니다. ∙ 이 책은 ≪상화와 고월≫(청구출판사, 1951), ≪이상화 시전집≫ (정림사, 2001), 한국 현대 시인 연구 7 ≪이장희≫(김재홍 엮음, 문학세계사, 1993)와 그 외 작품이 발표된 각종 신문 잡지를 저본 으로 삼았습니다. ∙ 각 작품들은 초판본을 수정 없이 그대로 타이핑해서 실었습니 다. 초판본을 구하지 못한 작품은 원전에 가장 근접한 것을 사용 했습니다. ∙ 저본에 실린 표기를 그대로 살렸고, 오기가 분명한 경우만 바로 잡았습니다. 단, 띄어쓰기는 읽기 편하게 현대의 표기법에 맞춰 고쳤습니다. ∙ 주석은 현대에는 쓰지 않는 생소한 단어, 현대의 독자들이 쉽게 뜻을 알기 어려운 한자어, 원전의 글씨가 잘 안 보여 엮은이가 추 정한 글자, 사투리, 토속어, 북한어 등 설명이 필요한 경우에 달았 습니다.
차례
≪이상화 시선≫ 末世의 欷嘆 ···················3 單調 ·······················4
가을의 風景 ···················7 To
··················9
나의 寢室로 ···················11 二重의 死亡 ···················15
마음의 ····················19 獨白 ······················21 虛無敎徒의 讚頌歌 ················23 訪問拒絶 ····················25 池畔靜景 ····················27 斷章 五 篇 ····················29 離別을 하느니 ··················34 暴風雨를 기다리는 마음··············38
바다의 노래 ···················40 舊稿 二 章 ····················41
街相 ······················45 金剛頌歌 ····················47 淸凉 世界 ····················51
오늘의 노래 ···················55 夢幻病 ·····················58
새 世界(번역시) ·················64 詩 三 篇 ·····················66
‘도−교−’에서 ··················68 本能의 놀애 ···················70 原始的 悒鬱 ···················72
이해를 보내는 노래
···············74
詩人에게 ····················76 慟哭 ······················78
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79 비 갠 아츰 ····················82 달밤−都會 ···················84 童女心草 ····················86 病的 季節 ····················89 地球 黑點의 노래 ················90
저므는 놀 안에서 ·················92 비를 다고! ····················94
哭子詞 ·····················96 大邱 行進曲 ···················99 叡智 ······················101
반딧불 ·····················102 농촌의 집····················103 逆天 ······················104
나는 해를 먹다 ·················106 己未年 ·····················109
서러운 諧調···················110
≪이장희 시선≫ 실바람 지나간 뒤 ················115 새 한 머리 ···················116 불노리 ·····················117 舞臺 ······················118
봄은 고양이로다·················119 憧憬 ······················120 夕陽 丘 ····················123
고양이의 ···················126 겨울밤 ·····················127 靑天의 乳房 ··················128
비 오는 날 ···················129 沙上 ······················130
비인 집·····················131 달밤 모래 우에서 ················132 연 ·······················133 겨울의 暮景···················134 봄 하눌에 눈물이 돌다 ··············136 夏日 小景 ···················138
들에서 ·····················140 눈 ·······················141 가을ᄉ밤 ····················142 눈은 나리네···················143 봄철의 바다···················144 저녁 ······················146 어느 밤·····················147 저녁 ······················148 녀름ᄉ밤 公園에서 ···············149 버레 우는 소리 ·················150 귓드람이 ····················151 적은 노래····················152 봉선화 ·····················153
눈 나리는 날 ··················154 여름밤 ·····················155 쓸쓸한 시절···················156
해설 ······················157 지은이에 대해··················189 엮은이에 대해··················201
≪이상화 시선≫
末世의 欷嘆
저녁의 피 무든 洞窟 속으로 아− 밋 업는, 그 洞窟 속으로 도 모르고 도 모르고 나는 걱구러지련다 나는 파뭇치이련다.
가을의 병든 微風의 품에다 아− 는 微風의 품에다 낫도 모르고 밤도 모르고 나는 술 취한 집을 셰우련다 나는 속 압흔 우슴을 비즈련다.
<緋音> 가온데셔 ≪백조≫ 창간호, 1922. 1
3
單調
비 오는 밤 러안즌 하날이 듯 어두어라.
나무엽마다에셔 저즌 속살그림이 니지 안흘 너라.
마음의 막다른 날근 집1)에선 뉜지 모르나 닭도 업서라.
눈물 흘리는 笛 소래만 갓업는2) 마음으로 고요히 방울 지우다.
1) 집: 뒷집. 2) 갓업는: 가없는.
4
저−편에 느러섯는 白楊나무 숩의 살 거름애3)는
이저버린 記憶이 돔과 갓치 沈鬱− 朦朧한
‘칸스’4) 우헤셔 흐늑이다. 아! 야릇도 하여라 야밤의 고요함은 내 가슴에도 깃드리다.
벙어리 입설로 도는 沈默은 追憶의 녹 긴5) 窓을
죽일 숨 쉬며 엿보아라.
아! 자추6)도 업시 3) 거름애: ‘그림자’, ‘그늘’의 방언(경상도). 4) 칸스: 캔버스(canvas). 유화를 그릴 때 쓰는 천을 의미한다. 5) 긴: 낀. 6) 자추: ‘자취’의 방언(평북).
5
나를 안는 ˙ ˙ 이 설어워라. 이 밤의 홋짐
비 오는 밤 러안즌 靈魂이 죽은 듯 고요도 하여라.
내 생각의 거믜줄 마다에셔도 저근 속살거림은 줄곳 쉬지 안허라.
<벙어리 노래>에셔 ≪백조≫ 창간호, 1922. 1
6
가을의 風景
脉 풀린 해ᄉ살에, 번적이는, 나무는, 鮮明하기 東洋 畫일너라
흙은, 안악네를 감은, 天鵝絨7) 허리갓치도, 습어 라
묵어워 가는 나비 날애는, 듬을고도 衰하여라, 아, 멀리서 부는 피 소랜가− 하늘바다에서, 헤염질 하 다.
病드러 힘업시도 섯는 잔듸 풀− 나무가지로 微風의 한숨은, 가는[細] 목을 메고, 덕이여라.
참새 소리는, 제 소리의 몸짓과 함께 가볍게 놀고 溫室 갓흔 마루 에 누은 검은 괴8)의 등은, 부드럽게
도, 기름저라.
7) 천아융: 우단(羽緞). 벨벳. 8) 괴: ‘고양이’의 방언(경상도).
7
靑春을 일허바린 落葉은, 미친 듯, 나붓기여라,
설업게도, 길겁게9), 조으름 오는 寂滅이, 더부렁그리 다10). 사람은, 부질업시, 가슴에다, 닭도 모르는, 그려움을 안고, 마음과 눈으론, 지나간 푸름의 印象을 虛空에다, 그리 여라.
<벙어리 노래>에서 ≪백조≫ 2호, 1922. 5
9) 길겁게: ‘길겁다’는 ‘즐겁다’의 방언(경상도). 10) 더부렁그리다: 더부렁거리다. ‘일렁거리다’의 방언(경상도).
8
To
What use is poem, what use is it to say, Only, when I would embrace thee again, never more? Without affection, lonesomely−dangerously, spending this day.
Thou went too early in the cosmosic circulation. Thy bequest, that thou planted in my heart deep, Unavailingly yet croons chasing the days of glorification.
O Honey! why my rosy face paled like the moon− and my thoughtful soul whenever look for thee? But's was in vain, thy country was too dark and ruin.
Only night, I build thy heavenly figure adumbral; Upon my vision's sighful canvas, and then, my eyes was a stormed channel. 9
O void fogetfulness! may I rest in thy pond deep, and I would no more want, except one thing− Let me sleep− without wake− let me sleep…
From the “Bereft soul” ≪백조≫ 2호, 1922. 5
10
나의 寢室로 −‘가장 아름답고 오−랜 것은 오즉 속에만 잇서라’ −‘내 말’
‘마돈나’ 지금은 밤도, 모든 목거지11)에, 다니노라 疲困 하야 돌아가려는도다, 아, 너도, 먼동이 트기 전으로, 水蜜桃12)의 네 가슴에, 이슬이 맷도록 달려오느라.
‘마돈나’ 오렴으나, 네 집에서 눈으로 遺傳하든 眞珠는, 다 두고 몸만 오느라, 리 가자, 우리는 밝음이 오면, 어댄지도 모르게 숨는 두 별이어라.
‘마돈나’ 구석지고도 어둔 마음의 거리에서, 나는 두려 워 며 기다리노라, 아, 어느듯 첫닭이 울고− 뭇 개가 짓도다, 나의 아씨
11) 목거지: ‘모꼬지’의 방언(경상도). 12) 수밀도: 물복숭아. 껍질이 얇고 살과 물이 많으며 맛이 달다.
11
여, 너도 듯느냐.
‘마돈나’ 지난밤이 새도록, 내 손수 닥가 둔 寢室로 가 자, 寢室로! 낡은 달은 지려는데, 내 귀가 듯는 발자욱− 오, 너의 것이냐?
‘마돈나’ 은 심지를 더우잡고13), 눈물도 업시 하소연 하는 내 맘의 燭불을 봐라, 羊털 가튼 바람결에도 窒息이 되어, 얄푸른 연긔로
지려는도다.
‘마돈나’ 오느라 가자, 압산 그름애14)가, 독갑이15)처럼, 발도 업시 이곳 갓가이 오도다, 아, 행여나, 누가 볼는지− 가슴이 누나, 나의 아씨 여, 너를 부른다.
13) 더우잡고: ‘더우잡다’는 ‘더위잡다’의 방언(경상도). 14) 그름애: 거름애. ‘그림자’, ‘그늘’의 방언(경상도). 15) 독갑이: ‘도깨비’의 방언(경상도).
12
‘마돈나’ 날이 새련다, 리 오렴으나, 寺院의 쇠북이, 우 리를 비웃기 전에 네 손이 내 목을 안어라, 우리도 이 밤과 가티, 오랜 나 라로 가고 말자.
‘마돈나’ 뉘우침과 두려움의 외나무다리 건너 잇는 내 寢室 열 이도 업느니!
아, 바람이 불도다, 그와 가티 가볍게 오렴으나, 나의 아씨여, 네가 오느냐?
‘마돈나’ 가엽서라, 나는 미치고 말앗는가, 업는 소리를 내 귀가 들음은−, 내 몸에 피란 피−가슴의 샘이, 말라 버린 듯, 마음과 목이 타려는도다.
‘마돈나’ 언젠들 안 갈 수 잇스랴, 갈 테면, 우리가 가자, 을려가지 말고! 너는 내 말을 밋는 ‘마리아’− 내 寢室이 復活의 洞窟 임을 네야 알년만….
‘마돈나’ 밤이 주는 , 우리가 얽는 , 사람이 안고 궁 13
그는16) 목숨의 이 다르지 안흐니, 아, 어린애 가슴처럼 歲月 모르는 나의 寢室로 가자, 아름답고 오랜 거긔로.
‘마돈나’ 별들의 웃음도 흐려지려 하고, 어둔 밤 물결도 자자지려는도다, 아, 안개가 살아지기 전으로, 네가 와야지, 나의 아씨 여, 너를 부른다.
<緋音> 가온대서 ≪백조≫ 3호, 1923. 9
16) 궁그는: ‘궁글다’는 ‘뒹굴다’의 방언(경상도).
14
二重의 死亡 −가서 못 오는 朴泰元의 애틋한 靈魂에게 바츰
죽음일다! 성낸 해가, 니ᄉ발을 갈고 입술은, 붉으락푸르락, 소리 업시 훌적이며, 蹂躪바든 계집가티 검은 무릅헤, 곤두치고, 죽음일다!
晩鍾의 소리에 마구를 그리워 우는 소− 避亂民의 마음으로 보금자리를 찻는 새−
다− 검은 濃霧의 속으로, 埋葬이 되고, 大地는 沈默한 뭉텅이 구름과, 가티 되다!
“아, 길 일흔, 어린羊아, 어대로, 가려느냐 아, 어미 일흔, 새 새야, 어대로, 가려느냐” ˙ ˙ ˙ ˙ 17) 하듯 悲劇의 序曲을 릐래인 虛空을 지나는, 숨결이 말하더라.
17) 릐래인: 리프레인(refrain). 후렴.
15
아, 도적놈의 죽일 숨, 쉬듯 한, 微風에 부듸쳐도, 셜음의 실패리18)를, 풀기 쉬운, 나의 마음은, 하늘 과, 地平線이, 어둔 秘密室에서, 입 마추다,
죽은 듯한 그 벌판을, 지내려 할 , 누가 알랴, 어여 계집의, 씹는 말과 가티, 제 혼자, 지즐대며, 어둠에 는 여울은, 다시 고요히, 濃霧에 휩사여, 脉 풀린 내 눈에서, 덕이다.
바람결을, 안으려 나붓기는, 거믜줄가티, 헛웃음 웃는, 미친 계집의 머리털로 묵근− 아, 이 내 신령의, 낡은 거문고 줄은, 靑鐵19)의 녯 城門으로 다친20) 듯한, 얼즌 내 귀를
코, 울어들다− 울어들다− 울다는, 다시 웃다− 惡魔가, 野虎가티, 춤추는 깁흔 밤에,
물방아ᄉ간의 風車가, 미친 듯, 돌며,
18) 실패리: 실패꾸리. ‘얼레’의 방언(경상도). 19) 청철: 구리를 주성분으로 해서 만든 합금의 하나. 20) 다친: 닫힌.
16
곰팡스런21) 聲帶로 목메인 노래를 하듯….
저녁 바다의, 도 업시 朦朧한 머 길을, 運命의 악지바른22) 손에 을려, 나는 彷徨해 가는도
다. 嵐風23)에, 돗대 긴 木船과 가티, 나는 彷徨해 가는
도다.
아, 人生의 쓴 饗宴에, 불림바든 나는, 젊은 幻夢의 속 에서, 靑孀의 마음 우와 가티, 寂寞한 빗의 陰地에서, 柩車를 흐며 葬式의 哀曲을 듯는 護喪客처럼−
털 지고 힘 업는 개의 목을 나도 드리고, 나는, 넘어지다− 나는, 걱굴어지다!
죽음일다! 부들업게 노든, 나의 가슴이,
21) 곰팡스런: 생각이나 행동이 고리타분하고 괴상한 데가 있는. 22) 악지바른: 고집이 센. 23) 남풍: 산바람.
17
줄인 牝狼의 미친 발톱에, 저지고, 아우성치는 거친 어금니에, 물려 죽음일다!
<緋音> 가운대서 ≪백조≫ 3호, 1923. 9
18
마음의 −靑春에 傷惱되신 동무를 위하야
오늘을 넘어선 가리지 말라! 슯흠이든, 깃븜이든, 무엇이든, 오는 를 보려는 미리의 근심도−.
아, 沈默을 품은 사람아, 목을 열으라, 우리는, 아모래도 가고는 말 나그넬너라, 젊음의 어둔 溫泉에 입을 적셔라.
춤추어라, 오늘만의 젓가슴에서, 사람아, 압뒤로 헤매지 말고 짓태워 버려라! 슬려 버려라! 오늘의 生命은 오늘의 지만−
아, 밤이 어두어 오도다, 사람은 헛것일너라, 는 지나가다
19
울음의 먼 길 가는 모르는 사이로−
우리의 가슴 복판에 숨어 사는 열푸른 마음의 아 피어 버리라, 우리는 오늘을 지리며24), 먼 길 가는 나그넬너라. <緋音> 가운대서 ≪백조≫ 3호, 1923. 9
24) 지리며: ‘지리다’는 ‘기리다’의 방언(경상도).
20
獨白
나는 살련다 나는 살련다 바른 맘으로 살지 못하면 밋처서도 살고 말련다 남의 입에서 세상의 입에서 사람 靈魂의 목숨지 흐려는 비웃슴의 쌀25)이 내 송장의 불상스런 그 우흐로 소낙비가치 내려 쏘들지라도− 퍼불지라도26) 나는 살련다 내 대로 살련다 그래도 살 수 업다면− 나는 제 목숨이 앗가운 줄 모르는 벙어리의 붉은 울옴 속에서라도 살고는 말련다 怨恨이란 일홈도 얼골도 모러는
장마 진 내물의 여울 속에 저서 나는 살련다 게서 팔과 다리를 허둥거리고
25) 쌀: 살. 화살. 26) 퍼불지라도: 짓퍼부을지라도.
21
붓그럼 업시 몸살을 처 보다 죽으면− 죽으면− 죽어서라도 살고는 말련다
≪동아일보≫, 1923, 음력 9. 17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