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맥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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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맥(天脈)


연이(蓮伊)는 아츰저녁으로 무릎을 꿀고 손을 마주 잡고 머 리를 숙이고 눈을 감고 한참씩 앉어 있는다. 그는 이렇게 앉 어 있는 때가 가장 신(神)에 가까운 마음을 가지게 된다고 알었다. 자기의 신이 무엇인지 모르나 하느님인지 부처님인 지… 어떻게 되였든 연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에게는 비 는 마음이 이처럼 생긴 것이다. 이렇게 비는 마음이란 누구에게나 있는 게 아니고 또 어 떻게 본다면 아직 연이로선 부자연한 일일지도 모르나 그가 아이 하나만을 대리고 아무것도 생각지 않고 이 옥수정 보 육원(玉水町保育院)에 온 유래(由來)를 안다면 그의 이 비 는 자세(姿勢) 앞에 누구나 그와 똑같은 자세를 지을 것이리 라 ― 그가 그의 신이 무엇인지 모르듯이 그들도 그들의 신 이 무엇인지 모르면서라도…

연이는 별이 불꽃같은 밤에 두 번째 시집을 갔다. 그 상대 되 25


는 남자 ― 즉 연이의 두 번째 남편의 이름은 허진영이라 하 고 직업은 의사(醫師), 전처는 죽었다 하였다. 웃입술에 제비 같은 뫼추락이 수염이 그의 원 성격을 드 려내 뵈게 하는 것은 그 이외에 다른 데는 전연, 털이라고 없 고 얼굴 전체가 불구자에 가깝도록 매끌하게 생긴 것이 연 이는 마음에 덜 들었다. 그래서 집주인 노파의 주선으로 그 노파 방에서 허진영을 만난 뒤로 주인 노파가 여러 번 그의 사람 됨됨이며 재산이며 이러한 데 대해서 이얘기할 뿐 아 니라, 젊은 한때를 아무 째미없이 보내고 늙으막에 괜스레 후회를 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어느 번이고 좋은 것은 영감 밖에 없느니라는 말을 빼여놓지 않었으나 연이는 한 번도 움죽이지 않었다. 노파는 스물일곱에 과부가 뒤였다 한다. 열일곱 살부터 자식 낳기를 시작해서 스믈일곱까지 오 남매를 두었는데, 남편이 숨이 턱 지고 본즉 제일 우에 열 살멕이로부터 젖멕 이까지 올망졸망한 것들을 혼자 어찌 길러낼까 하는 생각에 기가 꽉 찔리워 울 수조차 없었으나 그것들이 자라는 대로 보통학교, 중학교, 아들은 전문학교까지 보내고 ― 이러는 사이에 세월이 가서 노파는 늙고 아들과 딸들은 장가를 가 고 시집을 가서 인천, 수원, 만주, 경주, 혹은 대판1), 이러한 땅에서들 각각 사는데 아들 딸 낳고 잘 사는 것, 자식을 못 26


나서 속이 쥐똥같이 마르는 것, 돈두 있고 자식은 있으나 남 편이 밤낮 딴 여편네질을 해서 실성하다싶이 된 것, 남편이 살틀이 생각해 준다든 막내딸은 시집가서 일 년 반 만에 해 산을 하다가 아이와 함께 죽고, 카페 여자와 좋와서 학생 때 부터 당구장이니 빠−니 하고 벌려놓기만 하던 단 하나의 크게 믿든 아들은 약간 남어 있던 돈과 또 집까지 저당을 재 펴가지고 어디로 종적을 감춘 지 사 년째 되는데 어느 때 함 께 빠−를 하던 여자의 이얘기를 들은즉 지나땅 중에도 아 주 먼 데를 갔다는 것이다. 노파는 오래간만에 듣는 아들 이 얘기가 끔찍이 반가웠으나 그 여자에게 자기 아들 소식을 모르고 지난다는 것을 알리기 싫어 아들한태서 늘 소식이 있는 것처럼 말끝을 어둘러 버리고2) 말었다는 것을 노파는 어느 일요일 연이가 병원을 쉬는 날이어서 연이 방에 나와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하던 끝에 하고 나선 흐르는 눈물 을 웃소매로, 주먹으로, 자꾸만 딱거냄으로 연이는 그날 이 노파가 꼭 십 년 전에 돌아가신 자기 어머니같이 여겨지며 측은스러웠다. 그렇지 않어도 남편이 세상 떠난 후 곧 아현정 집에서 명

1) 대판(大阪): 오사카. 2) 에둘러 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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륜정 이 노파의 집 문간방을 동무의 알선으로 이사하게 된 후 노파는 이태 동안을 늘 한결같이 자기의 지난날을 생각 함에선지 다른 뜰아래방이나 건너방에 있는 사람들보다 연 이를 생각해 주었다. 방이 뵈좁다고 연이의 남편이 그린 그 림들이며 또 그 외의 별로 필요치는 않은 자리를 차지한 물 건들을 노파는 자기 방과 다락에 갔다 두기도 하고, 또 연이 가 끝내 ×××병원에 간호부로 나가게 되면서는 연이의 여섯 살 난 아이를 꼭 자기의 손자처럼 보아주군 하는 것이 였다. 연이가 집에 없은 뒤의 아이가 밖에 나가면 하로 종일, 들어 안 오고 혹시 들어왔다간 서먹한 얼굴을 지으며 도로 나가버리고 하는 것을 노파는 어머니처럼 가엾어 하고 걱정 을 하며 딸자식보다 사내자식 키우기가 힘이 드느니라고 버 릇같이 말하며 진실로 염려스러워 했다. 어느 날 밤 노파는 이런 말을 연이에게 했다. 그것은 달 이 유난스레 밝었든 것을 연이는 기억하고 있다. “웬만침 마음에 없드래두 그런 자린 쉽사리 없을 게니 생 각을 돌려보래두 그래.” “…” “여자 돈버리란 몇 해간뿐이지 늘 못하는 거 아니오. 아 이 소학교 공분 에미손으루 시킨다 치드래두 중학교부텀야 저거 하나래두 어렵대두 그래.” 28


“…” “늘 하는 말이지만 저놈이 다른 애들보다 영특스러워서 에미가 집에 없는 뒤루 아주 웃읍게 되드라니까 그래.” “…” “내가 내 조카래서 그러거니 생각을랑 말우. 암, 그야 조 카댁이 얌전했으면 하는 마음이 없겠으마는 진호 에미두 조 카만 못하짢게 생각는대두 그래.” “…” “여자 나이 스물여듧이면 한 시절은 지났는데, 게다가 아 이가 달렸지 이제 어디 총각혼인이야 좀체 해낼 수 있겠오. 지금 내 조카가 상쳐라군 하지만 사십이 멀겠다. 자식 없겠 다. 쉽사리 있을 자리가 아니래두 그래.” 연이는 노파가 말할 때는 아무 대답 없이 있었으나 노파 가 들어간 뒤에 오오래 생각해 보았다. 그리다가 이불을 얼 굴까지 마구 뒤집어쓰고 울었다. 그것은 불을 껏는데 달이 너무 밝어서 남편의 초상(肖像)이 그의 독특한 쓴웃음 웃는 것이 그 저녁에는 무수히 자기를 비웃는 듯했기 때문이다. 연이는 이불 속에서 남편의 웃음이 그처럼 이상해 보이는 것은 자기의 마음이 전보다 많이 달러진 탓이라 해석하며 참 사람의 마음이란 알 수 없는 것이라고 스스로 자기를 의 심해 보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다시 자기가 재혼하잔 마음 29


을 먹는 것은 남편에게 향하던 마음이 갑자기 없어저서 그 런 것이 아니고, 순전히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 하는 짓이라 고 스스로 변명도 해보았다. 변명이 아니라 그 허진영이란 사람을 몇 번 만나야 여전히 제비 같은 웃입술 수염이 얄밉 고 가증하고 윤깨가 반들거리는 얼굴 전체에 정이 못 붓는 것을 보드래도 그 까닭이 아니냐고 이렇게 자위를 받었다. 그러고 본즉 자기가 재혼한다는 것은 죽은 남편을 위하는 일인 것 같기도 했다. 연이와 연이의 아이에겐 이러한 과거가 있었다. 연이와 죽은 남편 상수와 결혼할 때 그들은 법율과 도덕이 허락하 는 결혼이 아니었다. 상수가 ×××병원에 병으로 입원했 을 때, 연이는 그 병원의 간호부로 상수의 간호를 맡아 하는 중 정이 들어 결혼을 했는데 결혼을 하자 곳 상수는 강화도 (江華島)에 있는 자기 집에 가서 열다섯 살에 같은 섬에서 자기보다 네 살이나 더 먹은 말보다 더 큰 색씨를 말을 타고 가서 대려왔다는 그 색씨와 상수는 아들 둘까지 그 색씨와 함께 친정에 보내버리고 그리고 연이를 세상이 인증하는 안 해를 만들고 또 일 년 만에 난 그들의 아들 진호도 떠떳이 상 수의 아들로 되어 있었으나, 친정에 가 있는 줄 알었던 처음 색씨는 남편 몰래 시부모를 모시고 그 시부모 집에서 얌전 한 며느리 어진 아이들 어머니로서 지내다가 남편이 세상 30


떠나자 법율적으로야 어떻게 했든. 시부모는 그 며느리와 그 손자만이 며느리요 손자일 뿐으로 연이와 연이가 낳은 아이는 쓰레기 버리듯 버리는데 그 버리는 방법이 참 묘했 다. 장레식날이며 그 안날3) 연이는 머리를 못 풀게 하고 상 복도 입히지 않었다. 혹시 친척 중에 연이에게 그럴 수 있느 냐고, 말하는 이가 있었으나 퍼러딩딩한 시어머니가 떡 버 티고 앉아서 딴소리 말라고 벼락같은 소리를 치면 쑤군쑤군 하던 몇몇 사람들도 쥐구녕을 찾는 형편이었다. 그들 부모 는 큰며느리를 위해서 아들 죽은 것을 되려 다행해하는 것 도 같었다. 이래서 연이는 남편의 시체를 따라 내려갈 때보 다 슬픈 여자, 보잘것없는 여자가 되여 남편의 향리(鄕里) 인 섬을 장예식이 지난 이튼날 떠나오고 말었다. 떠나올 때 도 시부모가 말이 없었지만 서울 와서 이태를 지내는 사이 에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연이는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 분하고 괫심해서 어떤 때는 법율적으로 무슨 방법을 취해볼까도 했으나 아무도 보 아줄 사람이 없음으로 생각만 하면서 그럭저럭 지내오던 중 이었다. 극력하려면 변호사에게 의탁해서라도 못할 것은 아 니겠지만 연이는 자기의 일이면서도 그런 일은 자기가 할

3) ‘전날을 ’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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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같지 않게 늘 생각이 되군 했다. 그보다 위선 취직을 해서 당면 생활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더 쉬웠다. 그래서 죽은 남 편과 알게 되던 ××병원, 원장을 찾어서 가 자기의 사정을 말하고 다시 다니게 된 것이나, 모든 것이 도모지 전과 같지 않었다. 전에 함께 있던 동무들과 의사들도 몇 사람 남지 않 었고 동무들은 그동안 시집을 간 사람도 여렀이 있지만 ×××병원이니만큼, 북지전선(北支戰線)에 나간 동무들 ˙ ˙ ˙ 4)란 도 있고 ― 어쨌떤 남어 있는 간호부로는 전에 딱짱떼 ˙ ˙ ˙ 5)라 부르던 뚱뚱 별명을 듣든 조선인 간호부 하나와 다루마 보의 일인 간호부 외엔 다아들 연이와 낯서른 간호부들이었 다. 간호부들뿐 아니라, 의사들도 그러했다. 전에 있던 의사 가 몇 사람 되기는 하나, 연이가 맡은 외래(外來)에는 한 사 람 빼놓군 전부 새로 들어온 의사들이었다. 의사는 별반 모 르겠으나 간호부들 사이에 있어서는 아무럐도 새 사람들과 는 얼리지 않었다. 나이로 본다면 칠팔 세밖에 차이가 없으 나 무엇 때문에 그런지 늘, 그 사람들과 자기 사이에는 무엇 이 가로맥힌 것 같은데 연이에게는 이런 것이 몹시 쓸쓸했 ˙ ˙ ˙ 나 다루마 ˙ ˙ ˙ 라 부르던 옛날 동료를 틈 다. 처음 몇 번은 딱짱떼

4) 딱정벌레를 뜻하는 방언인 ‘딱장구에서 ’ 온 말로 보임. 5) だるま: ‘오뚝이처럼 생긴 모양을 ’ 뜻하는 일본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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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대로 찾어보기도 했으나 그 사람들 역시 옛날 같지 않 고 또 딴 과에 각각 근무하고 있는 까닭에 자조 찾을 수도 없 었다. 그 우에 아이가 집에서 혼자 뭘 하고 있는지 우는지 노 는지 이런 생각에 정신이 없었다. 일이 귓찮고 힘이 들었다. 날마다 하는 일이 수월하지 못하고 힘든다는 것은 분명히 우울하고 성가시었다. 연이는 힘든 일을 하면서 자기가 그쳐럼 우울한 것은 새 간호부들이나 새 의사들이나 혹은 딱짱떼, 다루마에게나 자 기에게 원한이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밟고 지나온 팔 년 이란 세월이 그렇게 만드러놓은 것이라 생각하고 연이는 차 라리 다른 병원에 취직을 구해볼까도 해보았으나 연이로서 는 그것, 역시 수월치 않었다. 그렇지 않었드면 연이는 주인 노파가 아무리 서둔다 치 드래도 마음에 들지 않는 허진영이와 결혼할 의지가 없었을 것이다. 똑 따져서 말하면 연이는 허진영이가 마음에 들지 는 안치마는 남편 상수가 늘 좋와하든 긴치마에 행주치마를 들러 입고 안윽하니 들앉어 살림을 할 것이 좋았고 그러느 라면 아이도 잘 길를 수 있을 뿐 아니라 위선 경제적으로 아 이의 장래 교육문제가 염려 없을 것이고 그러느라면 아이는 남편의 본마느라가 낳은 아이들보다 훌융할 것 같으니까 별 이 불꽃같은 밤에 결혼했든 것이다.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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