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케이션이해총서
불통에 대한 이해 소통을 방해하는 10가지 편향 안민호
대한민국,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2014
왜 불통인가
소통할 수 있는가 서로 다른 두 사람 사이에 ‘완전한 소통’이 가능할까?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아도 불가능해 보인다. 가장 가까운 부부 간에 그리고 부모 자식 간에도 소통은 쉽지 않다. 노르베 르트 볼츠(Norbert Bolz, 2000)는 대화를 통해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일치에 도달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 다고 주장한다. 소통한다고 믿더라도 결국은 자기 방식대 로 상대방을 이해할 뿐이라는 것이다. 두 사람 간에도 그 런데, 하물며 수많은 사람들이 관여된 소통이라면 말할 필 요도 없다. 소통한다는 생각은 환상이다. 불통이 도리어 자연스럽다. ‘소통’을 어떤 최종적이고 궁극적 지점, 상태, 결과로 인식한다면 도달할 수 없는 지점, 이룰 수 없는 상 태, 획득될 수 없는 결과다. 니클라스 루만(Niklas Luhmann) 이라는 학자에 따르면 우리는 소통할 수 없는 존재(We can not communicate)들이다(Norbert Bolz, 2000). 그런데 우리는 왜 소통을 말하는가? 왜 소통하려 하는 가? 우리가 소통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소통이 바로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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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삶이기 때문이다. 이때 소통은 달성해야 할 목표가 아 니라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소통을 “궁극의 무엇을 지향 하지 않는 자연스런 되어가기”나 실패와 성공으로 구분되 지 않는, 작위적이지 않은, ‘과정’의 소통으로 인식한다면 우리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혹은 그 이전부터 사라지는 순간까지, 어쩌면 그 이후까지 어느 한순간도 멈출 수 없 는 것이 소통이라고 할 수 있다. 과정으로서의 소통은 소 통이 비연속적 일회적 사건이나 행위 현상이 아니라 연속 적으로 지속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이라는 의미다. 소통은 정체되지 않고 끊임없이 변한다. 상대방의 반응에 따라 계속 메시지를 수정하고, 소통의 결과도 시간이 지남에 따 라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소통은 한순간의 정보 교환으 로 끝나 버리는 듯하지만 사실은 사람들의 과거 경험, 지 식, 태도, 배경 등이 총체적으로 누적되어 진행되는 것이 다. 즉, 수많은 선행 조건이 소통의 내용과 흐름을 좌우하 고 현재의 소통은 앞으로의 소통을 위한 토양이 된다. 시 간적으로는 짧은 한 시점에 위치하는 개별적 소통 사건도 사실은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의 연속선을 떠나서는 의미 가 없다. 그래서 조지프 월풀(J. Woelfel)이라는 위대한 커뮤니케이션 학자는 “우리는 소통을 아니 할 수 없다(We cannot NOT communicate)”고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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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적 소통 소통이 궁극적이고 추상적 개념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 이 중요하다. 그래서 궁극적이고 추상적 목표인 완벽한 소통을 달성한다고 달려드는 것만큼 허망하고 위험한 것 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위험한 풍차를 향해 달려드 는 돈키호테와 다를 바 없다. 소통했다고 외치는 돈키호 테를 상상해 보라. 소통에 대한 확신이 곧 불통의 증거다. 히틀러를 비롯한 많은 독재자들과 전체주의 사회도 그런 착각에 빠진다. 인간들에게 궁극적 진리는 그렇게 쉽사리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소통에 다가서기 위한 모든 노력이 의미 없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비판적 합리주의의 대표 칼 포퍼(Karl Popper, 2001)는 선(善)이나 행복과 같은 추상적 가치를 실현하려는 집단 적 노력이 전체주의로 귀결될 수 있음을 경고하면서, 우리 가 해야 할 것은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에서 시급히 제거 해야 할 것으로 보이는 악을 선정하고 그 악을 제거할 수 있다는 확신을 사람들에게 심어주도록 힘쓰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 사회에서 소통은 이미 하나의 종교고 이데올로기 가 되어 버렸다. 올바른, 완전한 소통을 달성하기 위한 구 체적이고 명확한 길라잡이를 자처하는 주장들도 시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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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넘쳐난다. 그런데 신뢰하기 어렵다. 칼 포퍼의 주장을 빌리면 대개 그런 주장은 사기나 독단 아니면 무지에서 비 롯된 것들이기 십상이다. 나는 포퍼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그의 관점은 우리 사회의 소통 문제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고 믿는다. 추상적이고 이룰 수 없는 ‘소통’ 을 추구하기보다 소통을 방해하는 구체적 장애물을 제거 하는 것이 보다 타당한 접근이다. 불통을 완화하려는 끊 임없는 노력을 통해 우리 사회는 자연스레 소통을 지향하 게 되는 것이다.
소통을 방해하는 구체적 장애들 사람들은 서로 너무 달라서 또 너무 같아서 소통이 어렵 다. 우리개인의 이질적 특성에도 불구하고 동질적인 것이 사회고 사회의 동질적 특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질적 인 것이 우리 개인이다. 사회적 소통을 방해하는 구체적 장애들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연구 결과물들이 있다. 이 소통 장애들을 그것이 발생하는 단위에 따라 분류하면 크 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개인 차이 이론이다. 개인 차이 이론은 우리 개 개인들의 이질성이 소통을 방해한다고 설명한다. 개인적 수준의 문제들, 예를 들어 경험과 조건, 배경의 차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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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태도, 행동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소통이 어렵다는 것 이다. “보는 것이 믿는 것(Seeing is believing)”이라는 말 이 있다. 개인 차이 이론은 반대로 “믿는 것이 보는 것 (Believing is seeing)”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같은 것을 보고서도 다르게 지각한다는 것이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소통을 방해하는 둘째 장애는 ‘집단’이다. 집단 이론에 따르면 다른 사람과 구별되지 않으려는 과도한 무리의식 이 원활한 소통을 방해한다. 집단 정체성, 집단 사고, 압력, 규범, 동조의 문제들이 소통을 가로막는다. 집단이 만드는 ‘우리’ 의식과 관련된 문제다. ‘우리’는 소통의 원인이면서 동시에 결과다. 어떠한 소통도 집단이 매개되지 않고 이루 어질 수 없다. 순전히 개인과 개인의 소통이란 존재하지 않 는다. 그런데 이 소통의 원인과 결과, 처음과 끝인 ‘우리’라 는 집단의식이 바로 불통을 만드는 주범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사회 소통을 방해하는 세 번째 장애는 사 회·제도적인 문제들이다. 올바른 소통의 전제가 되는 자 유롭고 균형된 정보의 유통을 방해하는 여러 다른 사회적 이고, 구조적 장애물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 사회 에건 존재한다. 이런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장애는, 소통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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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권력’ 그리고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 할 때 발생한다. 그래서 이 장애들은 정치적이고 법·제 도적인 것들이며 민주주의나 자본주의와 같은 사회 체제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소통과 집단 이 책에서 다루려는 내용은 소통을 방해 하는 세 가지 장 애 중, 두 번째, ‘집단이 매개된 장애’에 관한 것이다. 개인 차이에 의한 장애와 사회적, 문화적, 구조적 장애들에 대 해서는 별도로 논의하지 않는다. 물론 집단과 소통의 관 계에 대해 설명한다고 해서 개인을 말하지 않는 것은 아니 다. 개인 없이 집단을 설명할 수 없고 집단 없이 개인을 이 해할 수 없다. 개인과 집단의 문제는 정말 간단하지 않으면서도(삶과 사회를 이해하는 데)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소통의 문제 역시 결국 ‘나’와 ‘타자’라는 존재, 그 양자 간 관계의 문제고 ‘우리’와 ‘그들’의 정체와 경계에 관한 문제다. 사회적 소통 을 공부하고 이해한다는 것은 개인과 무리(집단) 사이의 긴장과 상호 관계, 그리고 그 관계의 변화에 대한 이해를 말한다. 소통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사용하는 중요한 개념 중 호모필리(homophily)와 헤트로필리(heterophily)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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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 있다. 동종애(同種愛)와 이종애(異種愛) 정도로 번 역할 수 있는데, 말 그대로 전자는 자신과 비슷한 것을 좋 아하는 것이고, 후자는 반대로 자신과 다른 것들에 대한 사 랑을 의미한다. 무엇이 소통을 만드는지, 그리고 그 소통이 무엇을 만드는지를 연구할 때 소통 양쪽에 위치하는 것이 바로 동종애 또는 이종애라는 개념이다. 동종애와 이종애 는 물론 다 중요하다. 동종애가 없다면 무리가 유지될 수 없고 이종애가 없다면 무리가 확산될 수 없다. 집단 소통 이론에서는 동종애와 이종애 개념을 ‘내집단(In-group)’과 ‘외집단(Out-group)’이라는 보다 구체적 개념과 연관 지어 설명한다. 여기서 내집단은 내가 소속감을 느끼는 집단, 외 집단은 소속 밖의 집단을 말한다. 이 책에서는 소통을 방해하는 10가지 지각 편향들을 소 개한다. 여기서 지각은 자아와 타자에 대한 지각을 말한 다. 더 구체적으로는 내가 속한 내집단 즉 ‘우리’와 내가 속 하지 않은 외집단 ‘그들’에 대한 지각, 그리고 그것에 영향 받는 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지각을 말한다. 이런 지각 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바로 소통이다. 허버트 미드 (Herbert Mead)는 우리의 ‘자아’라는 것은 ‘일반화한 타인 (Generalized Others)’ 즉 타인들이 ‘나’를 인지하는 방식에 대한 ‘나’의 인지가 내재화(Internalization)를 통해 통합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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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조직되는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이런 자아상을 일생을 통해 타인들과 상징적 상호작용을 통하여 알아가는 과정 으로 소통을 정의 한다(허버트 미드, 2010). 이런 상징적 상호작용론, 혹은 ‘과정으로서의 소통’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와 그들에 대한 ‘나’의 인지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가 바 로 소통을 방해하는 중대한 장애들이 된다. 그리고 그런 인 지적 문제, 장애, 오류, 편향이 이 책의 핵심 주제다.
민주주의와 소통 민주주의를 잘하는 것이 소통을 가능케 하는 방법이지, 소 통에 대한 강조가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것은 아니라는 어느 원로 정치학자의 주장을 신문에서 읽은 적이 있다. 구체성을 결여한 세간의 막무가내식 대통령 불통론에 대한 비판의 맥락에서 나온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대통령 의 불통’이 언론의 단골 메뉴가 된 지는 오래됐다. 국민들 도 대통령의 가장 큰 문제로 자연스레 ‘불통’을 얘기한다. 불통이 아닌 대통령이 없다. 소통 문제가 특정 대통령의 개인적 능력이나 기술의 문제를 넘어 훨씬 더 구조적인 것 이라는 주장은 전적으로 옳은 견해다. 불통에 대해 언론 또는 자칭 전문가들의 문제 제기가 캠페인 수준이고, 실현 가능한 조건에 대한 언급이 없는 의미 없는 지적이라는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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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역시 전적으로 옳다. 이것에 대해서는 이미 전술한 바 있다. 그런데 여기 한 가지 동의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좀 더 나은 민주주의가 소통을 원활하게 한다는 것은 사실이 겠지만 그것이 민주주의만 하면 소통 문제는 해결될 것이 라는 의미라면, 잘못된 주장이다. 소통을 가로막는 장애로 제도적인 것만 있는 것이 아니 다. 민주주의가 실현되면, 제거되는 장애들이 있고, 민주 주의가 더 실현되더라도 남는 장애들이 있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장애들이 바로 후자의 장애들이다. 이 장애들 역시 매우 구체적인 것들이고, 그래서 완화되고 개선될 필 요가 있다. 여기서 논의하는 장애들은 민주주의처럼 제도 적 문제가 아니라 ‘지각의 편향’과 관계된 것이다. 당연히 우리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는 사 회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문제들이다. 제도로서 민주주의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런 문제들 은 무시해도 좋을까? 이 책을 읽는다면 전혀 그렇지 않다 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불합리한 제도·관행과 집 단적 지각 편향은 깊은 관련이 있다. 모두가 원하지 않고, 옳지도 않은, 그래서 없어져야 할 규범, 관행, 제도가 폐지 되지 않거나 반대로 추진해야 할 정책과 사업이 좌초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집단적 지각 편향과 그로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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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왜곡된 여론이다. 타자에 대한 보다 올바른 이해와 왜 곡되지 않은 여론은 모험적이고 비합리적 결정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 그래서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더 효율적인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지각 편향은 인식의 오류를 말한다. 인식의 오류는 앎 을 통해 수정될 수 있다. 그래서 다수의 사람들이 편향의 발생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편향의 존재를 자각하고 경계 한다면 비교적 쉽게 개선될 수 있는 것이 집단적 지각 편 향이라는 장애다. 나는 이런 편향이 완화된다면 우리 사 회의 민주주의가 더 잘될 것이라고 믿는다.
참고문헌 George Herbert Mead(2010). 정신, 자아, 사회(Mind, self and society). 나은영 역. 한길사. Joseph Woelfel(1997). 커뮤니케이션과 과학(Communication Science). 장하용 역. 나남. Norbert Bolz(2000). 구텐베르크-은하계의 끝에서(Am ende der gutenberg-galaxis). 윤종석 역.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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