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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 이론


커뮤니케이션이해총서 급변하는 커뮤니케이션 환경 속에서 커뮤니케이션 지식에 대한 욕 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하나의 커뮤니케이션 주제를 10개 항목으 로 묶어서 달걀 꾸러미처럼 엮었습니다.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지식 을 쉽게 알고자 하는 대중이나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지식을 단시간 에 알고자 하는 연구자, 실무자, 학생에게 도움이 되는 책입니다.

편집자 일러두기 ∙ 이 책은 󰡔첫눈에 반한 커뮤니케이션 이론󰡕(김동윤ㆍ오소현 옮김, 2012)에서 10가지 주제를 발췌ㆍ요약해 부분적으로 구성과 의견 을 덧붙였습니다. ∙ 외래어 표기는 현행 한글어문규정의 외래어표기법을 따랐습니다. ∙ 이 책에 실린 삽화는 이근명 화백이 그렸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이해총서

인간관계 이론 김동윤 편역

대한민국,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2013


인간관계 이론

엮은이 김동윤 펴낸이 박영률 초판 1쇄 펴낸날 2013년 2월 25일 커뮤니케이션북스(주) 출판등록 2007년 8월 17일 제313-2007-000166호 121-869 서울시 마포구 연남동 571-17 청원빌딩 3층 전화 (02) 7474 001, 팩스 (02) 736 5047 commbooks@commbooks.com www.commbooks.com CommunicationBooks, Inc. 3F Cheongwon Bldg., 571-17 Yeonnam-dong Mapo-gu, Seoul 121-869, Korea phone 82 2 7474 001, fax 82 2 736 5047 이 책은 커뮤니케이션북스(주)가 저작권자와 계약해 발행했습니다. 본사의 서면 허락 없이는 어떠한 형태나 수단으로도 이 책의 내용을 이용할 수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김동윤, 2013 ISBN 978-89-6680-192-3 책값은 뒤표지에 있습니다.


커뮤니케이션, 인간관계의 외나무다리

영화 <블랙>이 시사하는 바는? 영화 <블랙>은 커뮤니케이션의 의미를 일깨운다. 영화 줄 거리는 이렇다. 소리는 침묵이 되고, 빛은 어둠이 되던 시 절,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한 소녀가 전하는 희망의 메 시지. 세상이 ‘블랙(black)’ 자체인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여덟 살 소녀 미셸에게 끊임없는 사랑과 노력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그녀가 꿈의 나래를 펼칠 수 있 게 해 준 사하이 선생님. 그러나 알츠하이머로 기억상실 증에 걸려 미셸조차 알아볼 수 없게 된 사하이 선생에게 이제는 미셸 자신이 기적을 보여 주는 감동적인 이야기다. 미셸에게 사하이 선생님이 외부 세계와 소통하는 유일한 외나무다리였던 것처럼, 이제 사하이 선생님에게 미셸은 세상으로 나서는 감동의 외나무다리인 것이다. 인도영화 학교(FTII) 출신인 산제이 릴라 반살리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작품은 청각장애인이자 말을 하지 못하는 부모와 그 딸의 관계, 그리고 그러한 관계의 이면에 작용하는 커 뮤니케이션의 절실함을 그린 감동적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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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말하는 것처럼 인간의 삶에서 커뮤니케이션 은 자신의 존재와 타자의 관계를 설정하는 핵심 기제다. 그것은 커뮤니케이션이 인간이 사회적 삶을 영위해 나가 는 과정에서 우연히 혹은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삶 의 본질을 관통하기 때문이다. 커뮤니케이션을 통하지 않 고서는 자신의 자아와 정체성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을 뿐 아니라 그것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타인과 만남이나 접촉 을 통한 관계 맺기와 사회성, 나아가 공동체 의식을 공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는 인간 이 인간으로서 갖는 보편타당한 감정이나 정서, 규범과 같 은 가치를 공유할 수 있게 한다는 의미에서, 영화 <블랙> 은 어쩌면 커뮤니케이션이 부재한, 혹은 단절된 인간의 삶 에 대한 엄중한 경고로 이해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인간에게 커뮤니케이션은 자기 존재의 목적임과 동시에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인 셈이다. 영화에서 미셸과 사하이 선생님이 서로를 향해 놓인 외나무다리였던 것처 럼, 인간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외나무다리를 통해서만 세상을 듣고 보고 느끼고 공감할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 없는 인간관계는 없다 인간의 삶의 본질인 커뮤니케이션은 인간관계의 결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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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화된다. 커뮤니케이션이 없는 인간관계란 존재하지 않을 뿐더러 한번 형성된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키 는 과정에서도 커뮤니케이션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이처 럼 커뮤니케이션은 인간 정체성과 타자와 관계 맺기, 나아 가 공동체와 문화를 규정하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다. 커 뮤니케이션이야말로 인간 존재의 집이며, 인간은 그러한 존재의 집에서 거주하는 의사소통의 존재인 것이다. 지나치게 본질적인 문제라서 그럴까? 우리 삶의 과정에 는 커뮤니케이션의 부재 때문에 야기되는 불합리한 일들 이 끊이질 않는다. 우리가 당면하는 많은 문제들이 실상 은 커뮤니케이션 문제에서 비롯되는 것일진대, 그것을 커 뮤니케이션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믿지 않거나 믿을지 언정 실천하지 않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그 때문에 오늘날 인간관계가 좋다는 주변 평판을 듣는 것보다 후한 칭찬은 없는 것 같다. 여기에는 양가적 의미 가 있다. 하나는 이해관계 당사자들의 정서적, 사회적 목 적을 달성시키는 데 인간관계만큼 중요한 자원이 따로 없 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관계가 좋다는 평판을 듣기 가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능력이 있는 사 람보다는 됨됨이가 바른 사람이 인간관계의 강자라는 사 실과 연결되며, 또한 인간관계의 문제는 결국 이성적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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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선택의 문제가 아닌 감성적 선호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 다. 그리고 이러한 감성적 선호는 어떤 상황에서라도 상 대방과 생각과 의견, 그리고 경험을 공유하는 커뮤니케이 션 능력과 의지의 문제와 직결된다.

커뮤니케이션 10개 이론으로 본 대인 관계 이 책은 대인 관계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의 문제를 다양한 관점에서 조망한다. 구체적으로 커뮤니 케이션의 본질(상징적 상호작용주의), 커뮤니케이션의 목 적(의미의 조정 관리), 대인 관계 침투(사회적 침투 이론), 연인 관계의 변증법(관계적 변증법), 가족 관계의 특수성 (상호작용 관점), 문화적 이방인과의 관계 (불확실성 감소 이론), 물리적 공간 일탈을 통한 관계(기대위반 이론), 대 인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기만적 행위(대인 기만 이론), 행 동과 실천에 기반한 관계 발전(인지 부조화 이론), 커뮤니 케이션의 강자가 되기 위한 조건 등을 아우르는 10개의 커 뮤니케이션 이론은 인간관계 맺기에서 커뮤니케이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통찰력 있게 제시해 주고 있다. 상징적 상호작용주의는 인간의 자아 형성에 미치는 언 어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언어를 창안한 것은 우리 인 간이지만, 이러한 언어는 다시 우리 인간의 사고와 자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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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정하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언 어(커뮤니케이션)라는 상징의 교환은 인간의 본성과 자아 를 결정하는 지극히 본질적인 문제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 고 있다. 의미의 조정 관리는 대화를 매개로 한 사회적 실재에 대한 의미의 공유가 커뮤니케이션이 추구해야 할 궁극적 인 목적이라고 주장한다. 상대방이나 이해당사자 사이에 생기는 분쟁이나 갈등의 대부분은 이러한 의미에 대한 공 감대가 부재한 데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으며, 따라서 관 계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나 혼자만이 아닌 상대방과 ‘더불어, 그리고 함께’를 실현하는 의미에 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 침투 이론은 대인 관계의 형성과 유지, 발전 과 정에서 상대방의 자아 노출 범위와 폭을 결정하는 작용을 하는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에 주목한다. 인간의 성격 구 조와 유사하다고 여겨지는 양파 속으로 침투를 허용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보상과 비용에 기반한 합리적 선택의 과 정에서 커뮤니케이션의 문제가 어떻게 개입하고 있는지 를 강조한다. 관계적 변증법은 연인 관계의 본질을 ‘밀고 당기기’라는 변증법적 모순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연인 관계의 질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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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에서 남녀가 취할 대안은 그러한 관계의 변증법적 속성 을 지나치게 거부하거나 부정하기보다는 어느 정도 수용 하려는 열린 자세가 바람직하며, 나아가 그에 기반한 다양 한 커뮤니케이션 전략이 필요함을 웅변한다. 상호작용 관점은 가족 관계를 규정짓는 핵심 요소가 대 화와 커뮤니케이션에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서로가 긴 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변화에 대해서는 매우 저항 적인 가족 구성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단순한 커뮤니케이션이 아닌 커뮤니케이션의 커뮤니케이션, 즉 메타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역설하고 있다. 불확실성 감소 이론은 문화적 이방인과 만남에서 상대 방과 교환하는 커뮤니케이션 행위야말로 서로에 대한 불 확실성을 감소하는 데 가장 효율적인 전략이라고 말하며, 이를 다양한 공리로 제시하고 있다. 언어적 표현, 비언어 적 온정, 정보 추구, 호혜성, 자기 노출, 유사성, 호감, 그리 고 공유된 네트워크 등의 커뮤니케이션 요소들은 서로에 대한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이방인과의 관계 형성과 발전 을 도모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고 말한다. 기대위반 이론은 물리적 공간 규범의 위반 혹은 일탈이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전략이 될 수도 있음을 말해 준다. 개인적으로 선호된 공간에 대한 일탈은 상대방에게 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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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심리적 각성을 유발할 수 있는데, 특히 일탈 행위를 수 락함으로써 주어지는 보상에 대한 기대는 이러한 일탈을 통한 관계 형성과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는 물리적 공간이 때로는 언어적 커뮤니케이션보다 더 중 요한 커뮤니케이션 행위가 될 수 있음을 말해 준다. 대인 기만 이론은 대인 관계에 만연된 기만이라는 커뮤 니케이션 행위에서 나타나는 특성을 다양하게 제시하고 있다. 기만은 고도의 정신적 노력과 전략적 사고를 요구 하기 때문에 기만 행위 속에서 다양한 누설의 징후들을 포 착할 수 있다. 그런데도 진실 편향성이 높은 사람은 실제 로 기만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조차 기만을 간과하려 는 경향성이 있음을 지적하면서, 진실과 신의에 바탕을 둔 인간관계의 절실함을 강조한다. 인지 부조화 이론은 관계 맺기가 단순한 말이 아닌 행 동이나 실천을 통한 상대방의 심리적 부조화와 연결될 수 있을 때, 보다 효율적인 관계 형성과 발전을 기대할 수 있 음을 시사해 주고 있다. 이는 관계 맺기와 발전이 언어적 수단이나 표현을 넘어서는 실천의 문제로 나아가야 하며, 이러한 행동에 기반을 둔 커뮤니케이션 전략이 언어적 커 뮤니케이션보다 더욱 강력한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음을 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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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주의는 역할 범주 설문을 통해 측정된 구성 분화의 정도와 인지적 복잡성이 커뮤니케이션 능력에 미치는 영 향을 다루고 있다. 즉, 인지 복잡성이 높은 사람은 타인과 상호작용에서 수사적 메시지를 사용할 수 있는 정교한 커 뮤니케이터이며, 이러한 커뮤니케이터는 다양한 커뮤니 케이션 상황에서 적합성이 높은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수 립하고, 그에 따라 더욱 유익한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 고 말한다. 인간관계의 강자로 거듭나는 커뮤니케이터의 조건으로서 커뮤니케이션 능력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 책은 인간이 사회적 삶 을 영위하는 가운데 경험하게 되는 삶의 필연적 과정과 결 과인 인간관계를 커뮤니케이션 이론의 관점에서 조망한 것이다. 그것은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하는 의사소통을 거 치지 않고서는 인간관계의 형성과 유지, 그리고 발전이 불 가능하며, 이는 커뮤니케이션이야말로 인간관계의 삶을 관통하는 외나무다리라는 견고한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 다. 이러한 점에서 여기서 소개하고 있는 10개의 이론적 관점을 통해서 독자들은 무엇을 소통하고, 왜 소통하며,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남다른 관심을 둘 필요 가 있다. 이 책을 통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되새겨 보길 기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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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나는 커뮤니케이션을 인간관계의 외나무다리로 인식 하고 있는가?, 나는 그러한 외나무다리에서 마주한 상대 방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나의 커뮤니케이션은 외나무 다리에 마주한 상대방이 자신의 길을 가는데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진정 그 외나무다리는 나와 상대방에게 행 복한 만남의 장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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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커뮤니케이션, 인간관계의 외나무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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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커뮤니케이션의 본질: 상징적 상호작용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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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케이션의 목적: 의미의 조정 관리

03

대인 관계 속으로 침투: 사회적 침투 이론

04

연인 관계의 변화무쌍: 관계적 변증법

05

가족 관계의 특수성: 상호작용 관점

06

문화적 이방인과의 관계: 불확실성 감소 이론

07

거짓말쟁이의 관계 맺기: 대인 기만 이론

08

공간 일탈의 예측치 못한 효과: 기대위반 이론

09

행동을 통한 관계 변화: 인지 부조화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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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의 강자: 구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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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커뮤니케이션의 본질: 상징적 상호작용주의

인간은 자신에게 할당된 의미의 기초 위에서 사람과 사물, 그리고 사건에 대한 실재를 규정한다. 상징적 상호작용주의는 인간의 자아 형성에 미치는 언어와 상징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함으로써 어떤 대상을 지각한다는 것이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 과정을 거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여기서는 인간 존재의 집이라고 할 수 있는 언어라는 상징의 교환에 따른 결과 혹은 효과를 다룸으로써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설명한다.


영화 <넬>과 상징적 상호작용 미개척지 애팔래치아(Appalachia) 산맥 어느 숲 속. 문명 세상과 단절된 채 인적 없는 외딴 통나무집에 영화 속 주 인공 넬이 살고 있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혼자가 된 그녀 는 문명사회의 현대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언어를 사용하 는 미스터리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넬을 처음 발견한 시 골 의사 러벨과 심리학자 올센은 넬의 행동을 주시하면서 그녀를 문명사회로 인도한다. 이 과정에서 러벨과 올센은 넬이 구사하고 있는 언어가 어머니가 죽기 전까지 20년이 넘도록 읽어주었던 킹 제임스(King James)의 성경에 기초 하고 있고, 뇌일혈 후유증인 안면마비로 생긴 넬의 언어 장애가 그녀의 언어를 누구도 알아들을 수 없는 것으로 만 들었음을 알게 된다. 그 후 그들은 넬의 정신세계에 도리 어 감화되어 버리고 만다. 이 영화는 언어라는 상징의 교환이 인간의 자아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통찰력 있게 다루었는데, 이는 조지 허버트 미드(George Herbert Mead)가 주장하는 상징적 상호작 용주의(Symbolic Interactionism)를 강력하게 뒷받침해 준다.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면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미드는 자신의 이론이나 지적 체계를 책이나 이론으로 발 전시키지는 않았다. 여기서 다루는 상징적 상호작용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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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행위는 ‘상징을 매개로 하는 상호작용’이라 주장한 조지 미드 (George H. Mead, 1863~1931) ⓒ 커뮤니케이션북스

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미드의 제자인 허버트 블루머 (Herbert Blumer)가 수업 시간에 나눈 스승과의 대화를 󰡔마음, 자아, 사회(Mind, Self, Society)󰡕라는 저서로 발간 하면서부터다. 이 책은 상징적 상호작용주의의 핵심 원칙 을 의미, 언어, 사고라는 세 가지로 제안했으며, 이를 통해 인간의 삶에서 소통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통찰력 있게 말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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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와 언어, 그리고 사고 상징적 상호작용주의는 인간이 사용하는 모든 기호에는 의미가 있고, 또 인간은 생활환경을 구성하는 모든 사물에 주관적으로 의미를 부여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인간은 모 든 대상에 대해 주관적으로 해석된 의미를 갖는다. 이는 인간의 모든 행위는 대상과 의미를 주고받는 과정으로 이 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행위 중에서 사회적 행위 가 가장 압도적이라고 가정할 때, 인간의 사회적 행위란 의미를 매개하는 상호작용과 마찬가지다. 이는 사물과 상 징에 대한 의미는 본래부터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지난한 삶의 과정 속에서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외부 세계와 지속 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구성된다는 것이다. 나아가 인간이 사회적 실재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것 도 이러한 상징적 상호작용의 지속적인 학습 결과로 이해 할 수 있다. 미드는 자아라는 것을 사회가 인간의 정신세계로 통합 되는 기제로 파악한다. 이러한 자아는 타인과 맺는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고, 그러한 과정에서 사회 관습과 그 내면 화의 과정을 통해 구축되는 세계다. 그리고 이러한 자아 의 세계는 그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이나 공동체의 어 울림 속으로 통합되며, 이 과정에서 자아는 ‘주체로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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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와 ‘객체로서 나(me)’로 구분된다. 전자는 외부 세계와 공동체의 변화에 자발적, 즉흥적으 로 반영하는 감정적 자아를 일컫는데, 이러한 주체 자아의 행동 욕망은 보다 이성적인 객체 자아와 갖게 되는 유기적 상호작용 속에서 발현된다. 즉, 주체 자아가 의도한 행동 이 외부로 표출되기 전에 객체 자아의 감시와 통제 과정을 거치게 된다는 것이다. 유아나 아동기에는 주체 자아의 행동 욕망이 발현되지만,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서서히 객 체 자아가 그 중심에 자리하게 된다. 결국, 자아란 주체 자 아와 객체 자아 사이의 연속적인 상호작용이며, 성숙된 행 동은 주체 자아의 발현 욕망과 객체 자아의 반응 양식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상징적 상호작용주의는 언어라는 상징의 상호교환이 가지는 의미와 그러한 교환에 따른 결과에 관한 이론이라 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사회적 실재에 대한 의미라는 것이 자연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라는 상징을 사용 함으로써 협상되고 조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으로 서 우리는 사물에 이름을 부여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언어로 사물을 명시할 수도 있고, 추상적인 생각을 구체화시킬 수도 있다. 예컨대, 새끼 고양이를 뜻하는 ‘mitten’이라는 단어가 본래부터 ‘작은, 부드러운, 사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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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운’이란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의미는 언어 라는 상징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얻어진 상징 교환의 산물 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의미의 원천으로서 언어는 주체 자아의 동기와 객체 자아의 정당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 문에 그릇된 언어는 결국 주체 자아의 발현 욕망과 객체 자아의 반응과 평가를 부정적으로 이끌 수 있음을 의미한 다. 하나의 공동체 내에서 사람들은 자기 내부의 주체, 객 체 자아와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하는 것과 동시에 타인과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지속적인 대 화와 소통의 노력을 게을리 할 수 없는 것도 이러한 이유 에서다. 한편, 상징적 상호작용은 우리가 세상을 해석하는 방법 을 배우는 길이기도 하다. 다음의 예는 상징의 교환을 통 해서 우리가 세상에 대한 의미를 어떠한 방식으로 부여하 는지를 잘 말해 준다.

아버지와 아들은 자동차를 타고 경기장으로 향했다. 그런 데 도중에 자동차가 기찻길 위에서 멈춰서버렸다. 멀리서 달려오는 기차가 경적을 울리고, 당황한 아버지는 미친 듯 이 시동을 걸어댔다. 그러나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진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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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는 결국 시동을 걸지 못했고, 급기야 기차에 치이고 말 았다. 구급차가 급히 아버지와 아들을 후송했으나, 아버지 는 이송 도중에 숨지고 말았다. 아들은 생명은 붙어 있었 으나, 매우 위급한 상태여서 응급 수술을 해야 했다. 병원 에 도착하자마자 아들은 응급 수술실로 옮겨졌고, 한 외과 의사가 들어왔다. 그 소년의 얼굴을 본 의사는 아연실색하 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난 수술 못해. 이 아이는 내 아들 이야.”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잠시 동안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가져보자. 이 이야기에는 의사의 성별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지만, 대부분의 미국 의사가 남 성임을 전제로 한 사회적 상호작용은 이야기 속의 외과의 사가 당연히 남성일 것이라고 하는 그릇된 가정이 개입하 고 있다. 이 이야기는 어느 정도 사실에 기초를 둔 것일 수 도 있지만, 이와 같은 미묘한 상징의 횡포가 개입함으로써 우리가 구성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그림을 잘못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의사라는 언어 혹은 상징은 한 사회 혹은 공 동체 내 상호작용 과정 속에서 남성의 전유물로 기정사실 화되어 버린 결과다. 한편, 상징적 상호작용주의는 사고를 다른 사람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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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대해 말하는 과정으로 이해했다. 어떤 상징에 대한 개 인의 해석이 사고의 과정, 즉 내적 대화에 의해 조절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드는 주체 자아와 객체 자아는 내적인 대화의 과정을 통해서 상호작용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내 적 대화의 과정은 객체 자아를 일반화된 타자로 전화시키 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만든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어떤 언어적 자극이 주어졌을 때 사람들은 그러한 자극의 사회적 의미를 단순화시켜 받아들이는 대신, 이를 다른 사 람의 역할과 다른 상황이나 맥락 속에서 파악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 존재가 ‘다른 사람의 역할을 수행하는’ 탁월 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본 미드의 생각과도 일치한다. 아이들은 어린 시절 부모 역할 놀이나 자신이 좋아하는 가 수의 노래나 배우의 연기 따라 하기를 통해서 대리 만족을 얻는다. 자신의 자아를 다른 사람의 자아 역할로 변환시 킬 수 있는 인간의 탁월한 능력은 어떤 방식으로든 다시 주체 자아와 객체 자아의 변화를 수반하며, 이는 다시 그 자신이 지금까지 견지하고 있던 사회적 의미의 변화를 이 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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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적 상호작용주의 용례와 함의 이러한 ‘거울 반사 자아(looking glass self)’는 ‘자기 자신 의 행위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나타나는가’, ‘자신의 행 위에 대해서 다른 사람이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가’에 대한 지각과 다른 사람의 판단 결과로 갖는 갖가지 감정을 간접 경험할 수 있도록 해 준다는 것이다. 이 개념에 따르면, 일 반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좋게 생각해 주고, 자신의 행위를 긍정적으로 인정해 준다고 느끼면, 그 결과로 자기 스스로 를 긍정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행위를 정당하게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거울 반사 자아는 한 사회 혹은 공동체 속에서 중층적으로 발생하는 사회적 상호작 용과 소통의 과정을 통해서 사회화에 대한 기초를 제공하 기도 한다. 공동체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다른 구성원들은 어떤 일을 하는지, 그러한 행동의 의미란 무엇인지, 그리고 그들이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고민하도록 함 으로써 자신만의 자아는 다시 ‘일반화된 타자(generalized other)’로 전환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다음에 제시한 삽화 는 이러한 상징적 상호작용이 자아 형성에 미치는 과정과 효과 그리고 결과를 가장 잘 집약하고 있다. 상징적 상호작용주의는 결국 우리 인간에게 언어는 존 재의 집이며, 동시에 인간은 언어를 먹고 사는 의사소통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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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상징적 상호작용의 결과: ‘개 조심’

출처: 󰡔첫눈에 반한 커뮤니케이션 이론󰡕(김동윤ㆍ오소현 옮김,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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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라는 사실을 말해 준다. 특히, 앞에서 제시한 삽화 ‘개 조심’은 인간이 언어라는 상징을 통해서 어떤 영향을 받을 수 있으며, 반대로 어떠한 상징이나 언어의 상호작용이 인 간의 자아를 어떤 방식으로 변화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인지 도 말해 준다. 언어의 인간 자아에 대한 개입이 장기간에 걸쳐 특정한 공동체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한 인간이 어떠한 자아를 구축할 것인지의 문제는 결 국 그 공동체 내 상호작용 행위자가 서로에게 어떠한 상징 과 언어를 사용하고, 이러한 과정에서 어떠한 경험이 주어 지며, 동시에 그러한 공동체에서 언어와 상징, 나아가 그 러한 경험을 어떻게 평가 내리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 다. 상징적 상호작용주의는 인간은 언어를 만들고, 언어 는 다시 인간의 자아를 규정한다는 커뮤니케이션 본질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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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Development of Mead’s ideas(1969). Herbert Blumer, Symbolic

Interactionism, Prentice-Hall, Englewood Cliffs, NJ, 1∼89. Em Griffin(2003). A first look at communication theory. 김동윤ㆍ오소현 옮김(2012). 󰡔첫눈에 반한 커뮤니케이션 이론󰡕. 커뮤니케이션북스. Erving Goffman, The Presentation of Self in Everyday Life, Doubleday Anchor, Garden City, NY, 1959. George Herbert Mead(1934). Mind, Self, and Society, University of Chicago, Chicago. Herbert Blumer(1972). “Symbolic Interaction: An Approach to Human Communication”, in Approaches to Human

Communication, Richard W. Budd and Brent Ruben (eds.), Spartan Books, New York, 401∼419. John D. Baldwin(1986). George Herbert Mead, Sage, Newbury Park, CA. Peter Kollock & Jodi O’Brien(eds.)(1994). The Production of

Reality, Pine Forge, Thousand Oaks, 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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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커뮤니케이션의 목적: 의미의 조정 관리

인간은 언제나 대화적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러한 삶의 핵심 장치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인간은 세상을 말하고, 스스로를 가다듬어 간다. 의미의 조정 관리는 대화를 매개로 한 사회적 실재에 대한 의미의 공유가 커뮤니케이션이 추구해야 할 최상의 목적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는 인간관계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 나 혼자만이 아닌 상대방과 더불어 공유할 수 있는 의미의 조정과 관리 능력에 달려있다는 사실에 실용적으로 접근한다.


‘함께, 더불어’와 의미의 조정 관리 우리는 일상에서 ‘함께, 더불어’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한 다. 이 표현은 왠지 모르게 시대정신이 가미되고, 다른 사 람에 대한 관용과 배려의 정신이 각별한 용어로 보이기도 한다. 타인과 함께하거나 더불어 사는 것은 따뜻한 공동 체를 구현하기 위한 최소한의 공동선이라는 점에서도 이 개념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각광을 받고 있다. 문제는 어 떻게 함께하고, 어떤 방식으로 더불어 살 것인가 하는 문 제다. 여기서부터는 전혀 다른 인식과 이해의 문제가 발 생한다. 음식에 비유하자면, ‘함께, 더불어’는 남이 차려 놓은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데에는 더할 수 없이 좋은 표 현이지만, 우리들 스스로가 이 음식을 어떻게 만들고 차려 낼 것인가 하는 문제를 풀어내는 데에는 여간 까다로운 것 이 아니다. 사회문화적 환경과 계층, 그리고 생각의 차이와 분화는 우리로 하여금 갈등의 종결자로 나서기보다는 갈등의 당 사자로 만드는 주요한 원인이다. 따라서 이러한 차이를 극복하거나 혁명적인 변화가 수반되지 않고서는 갈등의 국면을 합의와 조정의 국면으로 전환시키는 것은 거의 불 가능하다. 바넷 피어스(W. Barnett Pearce)와 버넌 크로 넨(Vernon Cronen) 교수는 우리의 일상과 사회 세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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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적 수준이 커뮤니케이션의 문제와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다고 보았다. 즉, 이들은 사람들 사이의 대화를 우주 전 체를 조화롭게 작동시키는 기제로 보고, 대화 과정에 참여 하는 사람들이야말로 그들이 속한 공동체 삶에서 요구되 는 사회적 실재를 ‘함께, 그리고 더불어’ 구축할 수 있다는 ‘의미의 조정 관리(Coordinated Management of Meaning)’ 를 제안했다. 피어스와 크로넨 교수의 ‘의미의 조정 관리’는 대화적 삶을 통해 사람들이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하도록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실용적인 이론이다. 이를 위해 이들은 사람들이 처한 모든 상황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규칙이 있다고는 가정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지엽적인 지식이나 사건, 그리고 이를 둘러싸고 전개되는 복잡한 이야기에 보다 높은 가치를 두었다. 다시 말해, 의 미의 조정 관리는 객관적 지식보다는 주변적 사건을 두고 사람들이 ‘더불어, 그리고 함께’ 대화와 소통의 과정을 거 치게 될 때, 자신과 타인이 공유할 수 있는 의미가 생기고, 그러한 의미는 다시 대화와 소통의 과정 속에서 조정되고 관리될 수 있다는 혜안을 제공한다. 이처럼 의미의 조정 관리는 사람들 간 대화와 소통의 본질을 관통하는 원리를 관찰하고 발견하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는, 그러한 일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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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대화를 하면서 공동체 삶에서 요구되는 사회적 실재를 구축 한다는 ‘의미의 조정 관리(Coordinated Management of Meaning)’ 를 주장한 바넷 피어스(W. Barnett Pearce) ⓒ 커뮤니케이션북스

대화가 사람들의 삶에 어떤 방식으로 개입하고 그로 인해 삶의 질이 어떻게 향상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둔다.

대화 상황에 놓인 인간 의미의 조정 관리는 대화가 의미를 확정짓기 위한 조건이 라고 규정하지 않는다. 대신, 대화는 특정한 대상이나 사 물에 대한 자신의 의미를 타인의 그것들에 적용시킬 것을 강권한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그 무엇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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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객관적 실체를 발견하거나 발명하는 것이 중요한 것 이 아니라 그러한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그 의미를 구성 해 나간다고 믿기 때문이다. 즉, 태어나는 순간 대화적 상 황에서 벗어날 수 없는(person-in-conversation) 존재로 서 인간은 삶의 전 과정에 걸쳐 다른 사람과 대화적 게임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의미의 조정 관리는 일상에서 대화와 소통의 중요성을 다음의 세 가지 차원으로 구분해서 설명한다. 첫째, ‘대화 상황에 놓인 사람’의 경험은 인간 삶의 중요한 사회적 과 정의 일부다. 다시 말해, 인간은 살면서 매 순간 대화적 상 황에 놓일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대화적 경험을 통해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형성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 관계 를 형성시켜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의미 의 조정 관리는 사람이 만약 대화적 상황에 놓일 수 있는 기회와 계기를 만들지 못한다면, 스스로의 정체성에 불안 감을 느낄 수 있고, 이러한 불안정한 정체성으로는 타인과 원만한 대인 관계를 형성하고 발전시켜 나갈 수 없다는 것 을 의미한다. 둘째, 때로는 사람들 사이의 대화에서 내용보다는 방식 이 더욱 중요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대화와 소통 과정 의 참여와 그러한 사회적 구성의 과정에서 대화 상황에 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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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사람이 채택하는 대화의 매너와 분위기의 중요성을 일 컫는다. 우리는 종종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나 콘 텐츠의 의미나 깊이에 매료되는 것으로 보이지만, 일상의 사회적 상호작용에서는 이러한 대화의 내용보다는 그것 을 어떠한 방식으로 전달하느냐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사랑의 고백에서 중요한 것은 사 랑한다는 고백 자체보다는 그것을 어떤 장소와 어떤 분위 기에서 어떤 말투로 하느냐가 그 사람의 진정성을 전달하 는 데 더 효율적인 수단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셋째, 대화와 소통의 상황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를 지속적으로 반복하는, 이른바 재귀성(reflexivity)을 지닌 다. 이는 우리가 대화와 소통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단순 히 나의 세계관만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사 회적 우주의 창조에 공동으로 참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상호작용의 지속은 대화와 소통 당사자들 모두에 게 일정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이는 대화 상황에 놓 인 사람들은 공히 우리가 함께 만들고 구성해 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질문하고 답하게 만든다는 것이 다. 이러한 전제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변화해 나가는 삶 의 조건 속에서 어느 개인의 행동에 대해 섣불리 단정 짓 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는 다원주의 세계관과도 연결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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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렇게 볼 때, 의미의 조정 관리에서 대화와 소통의 참 여자들은 단순한 관찰자라기보다는 참여자이며, 단일한 진실을 추구하기보다는 다양한 진실을 발견한다고 말한다.

의미의 조정 관리: 용례와 함의 1955년 모리츠 코르넬리스 에셔(Maurits Cornelis Escher) 의 석판 작품 <결합의 결속(Bonds of Union)>은 ‘대화 상 황에 놓인 사람’이 다른 공동체 구성원들과 사회적 실재를 공동으로 구성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그림에서 두 사람을 연결시키고 있는 띠는 바로 사회적 행위자로서 인간이 지속적인 상호작용 의 굴레, 즉 대화 상황에 놓여 있음을 뜻한다. 그리고 두 사람 주변에는 공 모양의 구성체들이 떠돌고 있는데, 이는 두 사람 사이의 재귀적 상호작용을 통해 공동으로 구성하 고 있는 실재에 대한 의미라고 볼 수 있다. 즉, 이러한 실 재에 대한 공동의 의미 구성체가 많을수록 이 두 사람은 서로 유사한 사회적 실재에 대한 유사한 상을 구성할 가능 성이 많다고 볼 수 있다. 의미의 조정 관리는 이해관계의 갈등과 분쟁 당사자들 의 중재 프로그램에 널리 활용되고 있다. 이는 대화 과정 의 참여가 갈등과 분쟁 문제를 둘러싼 입장과 이해 차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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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의미의 조정관리: <결합의 결속>

출처: 󰡔첫눈에 반한 커뮤니케이션 이론󰡕(김동윤·오소현 옮김, 2012)

확인할 수 있도록 해 주기 때문이다. 이는 상대방의 세계 관에 대한 이해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대화와 소통 과정 참여와 그 결과로서 두 사람 사이에 사회적 의미를 공유하는 데 큰 장애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갈등 이나 분쟁 관계 속에서 사람들은 상대방을 서로 인종주의 자나 거짓말쟁이로 부르는가 하면, 상대방의 행위를 잔인 하고 비윤리적인 범죄행위로 폄하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의미의 조정 관리는 그 이유를 두 이해당사자 사이에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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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소통의 과정이 결여되어 있으며, 따라서 두 사람 사이 에 조정되고 관리되어야 할 의미가 상실된 결과로 이해한 다. 바넷 피어스가 언어를 “인간이 사회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발명한 가장 강력한 도구 중 하나”로 간주하면서 분 쟁과 갈등 상황에 놓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만의 언어 게임에 사로잡혀 있다고 지적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의미의 조정 관리는 우리 모두는 지각과 사고뿐 아니라 인물이나 역할, 사연, 그리고 이야기의 연속성을 공유하 면서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우리가 공동으로 구성한 이야 기가 사회 세계를 구축한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우리는 사회 세계 내 다른 구성원들과 공동으로 구성하는 사회적 실재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한 사회적 실재는 다시 우리 주변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이야기 속에 퍼지면서 사회 세 계에 대한 의미는 다시 변화의 과정을 되풀이한다. 포르 노 영화를 반대하는 보수주의자와 급진적 페미니스트를 예를 들어 보자. 이들은 사회적 정의에 대해 상반된 관점 을 견지하고 그것을 반대하는 다른 이유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대화를 통한 의미의 조정 관리를 통해 두 당사자 가 충분한 상호 이해가 없이도 필요 조건에 따라 효율적으 로 협력해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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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볼 때, 의미의 조정 관리에서 갈등과 분쟁의 해 결은 서로의 입장과 주장에 대한 완전한 이해와 합의가 아 니라 자기 입장과 주장의 일방향성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는 기회의 성숙으로 봐야 할 것이다. “여전히 납득이 안 가는 부분은 있지만, 이 정도로 나와 당신 사이의 입장 의 차이를 확인했고, 더 이상 이 간극을 좁히는 일은 투입 되는 시간과 노력에 비해 효율성이 낮기 때문이 이쯤해서 화해하고자 한다”는 정도로 절충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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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m Griffin(2003). A first look at communication theory. 김동윤ㆍ오소현 옮김(2012). 󰡔첫눈에 반한 커뮤니케이션 이론󰡕. 커뮤니케이션북스. Vernon E. Cronen(1995). “Coordinated Management of Meaning: The Consequentiality of Communication and the Recapturing of Experience”, in The Consequentiality of

Communication, Stuart Sigman(ed.), Lawrence Erlbaum Associates, Hillsdale, NJ, 17∼65. W. Barnett Pearce & Kimberly A. Pearce(2000). Extending the Theory of the Coordinated Management of Meaning (CMM) Through a Community Dialogue Process.

Communication Theory, 10, 405∼423. W. Barnett Pearce & Vernon E. Cronen(1980). Communication,

Action, and Meaning: The Creation of Social Realities. Praeger, New York. W. Barnett Pearce(1994). Interpersonal Communication: Making

Social Worlds, HarperCollins, New York, 30∼40. W. Barnett Pearce(1995). “A Sailing Guide for Social Constructionists”, in Social Approaches to Communication, Wendy Leeds-Hurwitz(ed.), Guilford, New York, 88∼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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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대인 관계 속으로 침투: 사회적 침투 이론

인간관계는 상대방에게 자신을 얼마나 드러내느냐의 문제다. 인간의 성격 구조를 양파에 비유하고 있는 사회적 침투 이론은 대인 관계의 형성과 유지, 발전 과정을 양파의 표피에서 중심부로 쐐기가 들어가는 과정으로 설명한다. 여기서는 상대방의 성격 구조 속으로 작용하는 침투, 즉 자아노출의 폭과 범위에 개입하는 커뮤니케이션의 문제와 더불어 보상과 비용에 기반한 합리적 선택의 문제를 다룬다.


사회적 상호작용과 관계 맺기 사람들은 일상의 대화와 소통을 통해서 대인 관계를 형성 한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는 다양한 방식의 사회적 상호 작용을 통해 더욱 돈독한 관계로 발전해 나간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를 맺거나 유지시키고, 발 전시켜 나가는 데 상당한 고충을 겪는다. 정작 본인은 상 대방에게 마음을 열었다고 생각했지만, 상대방이 그 마음 을 제대로 읽어주지 못할 때에는 이미 형성된 관계에 이상 기류가 포착되기도 한다. 또한 설령 지금은 좋은 관계라 고 자부할 수 있을지라도 현재의 관계를 유지하는 과정에 서 투입되는 시간과 노력은 결코 적지 않다.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일컬을 때, ‘사회적’이라 함 은 다른 사람과 만나고 접촉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다시 말해, 만남과 접촉에 능수능란하지 못한 사람은 사회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처럼 사회성의 결여는 사회적으로 환영받지 못하는 성격 요인으로 간주된다. 그 것은 사회성 자체가 사회적 삶을 영위해 나가는 데 매우 중요한 덕목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대인 관계의 형성과 유지 그리고 발전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 이다. 사회적 접촉이나 만남과 같은 사회적 상호작용이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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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침투 이론’을 주장한 어윈 올트먼(Irwin Altman, 1930~ ) ⓒ 커뮤니케이션북스

적 삶의 질을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라고 해서 우리는 모든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은 아니다. 이런 점에서 사회적 상 호작용은 사회적 삶을 영위하기 위한 필요 조건이지, 그 자체로 충분 조건은 아니다. 이는 사회적 상호작용이 삶 의 질을 높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 람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서 더욱 그렇다. 무수한 만남과 접촉 속에서 우리는 누구와 관계를 맺을 것인가? 그리고 일단 맺은 관계가 항구적일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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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무엇일까? 어윈 올트먼(Irwin Altman)과 달마스 테일 러(Dalmas Taylor)는 사회적 침투 이론에서 사회적 만남 과 접촉을 통해서 형성되는 대인 관계의 본질을 제대로 파 악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람들 성격(personality)의 복잡성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양파 속으로 침투하기: 자아 노출과 관계 발전 사회적 침투 이론은 사람의 성격을 양파에 비유했다. 그 만큼 사람의 성격이 다층적인 구조로 되어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양파의 겉 표피를 벗기면 그 속에 또 다른 표피가 있듯이, 사람들의 성격도 여러 겹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이다. 바깥 표피는 상대방에게 작은 관심만 가진다면 누구라 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적 자아(public self)다. 이는 그 사람의 고유한 속성이 아닌 공동체 구성원이라면 그 정도 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는 일반적인 사실이다. 이에 비해 양파의 중심부 쪽에 속하는 내면적 자아 혹은 사적 자아(private self)는 그 사람의 가치관, 자아상, 상충된 모 순, 그리고 정서와 감정의 구조를 포함한다. 이는 눈으로 는 잘 보이지 않는 세계이며, 그 사람의 본질적인 성격의 속성을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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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보통의 경우 사람들은 자신과 친밀한 관계를 유 지하고 있는 사람들과는 사적 자아를 공유하고, 그렇지 못 한 사람들과는 공적인 자아를 공유한다. 공적인 자아에서 사적인 자아로 넘어가는 것은 관계의 발전을 의미하며, 이 는 상대방의 양파 중심부에 해당하는 정보를 알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대방의 마음의 경계를 허무는 방법은 다양하다. 책장 이나 옷장 속에 숨겨 둔 비밀스런 물건을 다른 사람과 공 유하거나 여자 친구가 보낸 편지를 소리 내어 읽는 행위를 통해서 사적 영역을 포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즉 흥적인 조치만으로는 진정한 의미의 관계 발전을 기대하 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며, 능동적인 사회적 침투와 자기 노출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다시 말해, 양파 중심부에 있 는 비밀스런 사적인 영역에 상대방이 침투할 수 있도록 자 신을 노출할 수 있을 때, 상대방과 관계 발전을 기대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아무에게나 자신의 사적인 영역을 드 러내지 않는다. 그 이유는 사적 영역의 공유는 어느 정도 사생활의 포기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어 느 정도로 자신을 노출시킬 것인가에 대한 판단이 사회적 침투 수준을 결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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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성격 구조와 사회적 침투 옷, 음식과 음악에 대한 선호

생물학적 자료

목표와 포부

종교적 신념 가슴 속 깊이 내재되어 있는 두려움과 욕망

자아 개념

출처: 󰡔첫눈에 반한 커뮤니케이션 이론󰡕(김동윤ㆍ오소현 옮김, 2012)

사회적 침투는 자기 노출의 폭과 깊이와 매우 밀접하 다. 자아 노출의 범위가 넓고 깊이가 깊을수록 관계의 친 밀도가 높아진다. 그것은 상대방과 공유할 수 있는 자기 노출의 범위가 광범위하고, 동시에 깊이 있는 사적인 영역 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공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간단 히 말해, 사람들은 자신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과 더 광범위하게 자아상을 공유할 뿐 아니라 보다 깊 이 있는 자아에 대한 이해도를 공유한다는 것이다.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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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침투란 양파 구조로 된 성격의 외연과 내면 속으로 들어가는 과정인데, 이러한 과정에는 보통 다음과 같은 몇 가지의 정보 흐름이 발생한다. 첫째, 주변 아이템은 사적 정보보다 더욱 빈번하고 빠 르게 교환된다. 쐐기의 날카로운 끝부분이 친밀의 영역에 가까스로 도달했을 때, 두꺼운 부분은 바깥부터 잘려나간 다. 그러나 관계는 여전히 그리 친밀한 단계에 이르지는 못한다. 둘째, 자기 노출은 특히 관계 발전의 초기 단계에서 상 호 호혜적으로 일어난다. 관계 형성 초기에 이와 같은 개 방적인 자세는 상대방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지만, 어느 일방의 자기 노출이 상대방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불편함을 야기할 수도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지간에, 사회적 침투는 상호 호혜성의 법칙에서 이루어진다. 셋째, 초기에는 쐐기의 침투가 급속도로 진행되지만 견 고한 내부층에 도달할수록 급속도로 느려진다. 대부분의 경우 즉각적인 친밀감을 형성하는 일은 거의 없다. 오히 려 지나치게 즉시적인 친밀감은 상대방의 마음속 저항력 을 재빠르게 작동시키는 기제가 될 수도 있다. 그러한 저 항은 빠르게 침투해 오는 것에 대한 반대급부로서 마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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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내부 저항을 야기할 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빠른 관계 형성에 따른 사회적 규범 차원의 저항까지도 포함한다. 대부분의 관계는 안정적이면서 동시에 친밀한 교환을 이 루는 단계로 가기 전에 소멸해 버리고 만다. 서로 긍정적 반응과 부정적 반응을 교환하는 것에 대해 편안함을 느끼 는 관계는 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빠 른 속도로 발전한 관계는 약간의 내분이나 오해만 있어도 쉽게 소멸하거나 사라진다. 이러한 교환의 조건만 극복할 수 있다면 그러한 관계야말로 당사자 모두에게 중요하고 의미 있는 관계로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역침투(depenetration)는 양파에 박힌 쐐기를 다 시 빼내는 과정이다. 만약 쌍방이 친근한 관계에서 보이 던 서로를 향한 열린 자세를 봉쇄해 버린다면 그들의 관계 는 다시 악화될 것이다. 상대방에 대한 회피는 그동안 쌓 아놓았던 관계에 대한 계약 파기와도 같은 것이다. 친밀 한 관계를 형성한 후에 다시 표면적인 이야기로 겉도는 관 계를 지속한다면 서로에 대한 열린 자세는 좀처럼 기대하 기 어렵다.

보상과 비용에 기반한 관계 맺기 친밀한 관계를 양파와 같은 다양한 성격 층위의 중심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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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사회적 침투와 역침투

“우리는 둘 다 정직하니까, 나한테 벼룩이 있다는 얘길 당신에게 해야겠어요.” 출처: 󰡔첫눈에 반한 커뮤니케이션 이론󰡕(김동윤ㆍ오소현 옮김, 2012)

이동하는 것에 비유한 사회 침투 과정은 이른바 관계 형성 에 따른 보상과 비용이라는 경제적 손익 계산에 달려 있 다. 합리적 경제 동물로서 인간은 어떤 행위를 수행할 때 그러한 행위를 수행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과 그로 인한 효 용을 따지게 된다. 사회 침투 이론은 효용이 비용을 초과 할 때 사회적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사회 적 교환의 원칙에 따르고 있는 사람들은 자아 노출의 위기 상황에서 관계의 결과, 관계의 만족, 그리고 관계의 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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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 같은 개념 요소들의 고차원 방정식에 따라 사회적 침 투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상호작용의 경제적 분석이 윤리적으로 온당한 것인가 하는 문제와 관계없이 사람들은 누구나 처 음 만났을 때, 일정 부분 이 사람과 만남이나 접촉이 자신 에게 가져다 줄 잠재적인 보상과 비용을 평가하게 된다. 사람들은 오랜 기간의 관계 경험을 통해서 상대방이 눈치 를 채지 못하는 방식으로 이런 평가를 내릴 수 있는 능력 을 갖추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평가와 경제적 분석은 개인 행위자에 따 라 매우 복잡한 변수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함께 시간 을 보내거나 취미활동 공유를 필요로 하는 관계와 자신의 사회적 네트워크를 다른 사람에게 과시하고자 하는 관계, 나아가 어떤 공동의 목적이나 뜻을 함께 이루고자 하는 관 계에 동원하는 경제적, 합리적 잣대나 기준은 매 순간 달 라진다. 동시에 그러한 목적과 동기를 가지고 엄밀한 경제적 분 석을 한 이후에 관계를 형성했을 경우에라도 그런 관계의 형성과 발전 과정에서 스스로가 감당해야 할 책임도 분명 하다는 점에서 사회적 침투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 은 분명하다. 특히, 이런 위험은 공적 자아의 노출 단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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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보상과 비용에 기반한 관계

“충분히 계산을 해봤어요. 당신과 결혼할게요.” 출처: 󰡔첫눈에 반한 커뮤니케이션 이론󰡕(김동윤·오소현 옮김, 2012)

다는 사적 자아의 노출 단계에서 더욱 크게 마련인데, 이 는 관계가 깊어질수록 스스로가 떠 안아야하는 책임감의 무게가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어찌됐건 사회 침투 이론은 관계의 맺음과 진전에서 얻 을 수 있는 긍정적인 이익이 큰 경우 자아 노출이 이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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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고, 이 과정에서 비용이 이익을 초과하지 않는 한에서만 그러한 관계의 유지와 진전을 기대해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사회적 침투 이론: 용례와 함의 대인 관계 초기 사람들은 육체적 외모, 유사한 사회문화적 배경, 그리고 사적 바람직함과 관련된 다양한 지표를 통해 자아 노출의 폭과 깊이를 결정하려는 경향성을 보인다. 그런데 관계의 본질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일탈적인 잣대 를 통해 평가된 관계는 관계의 형성과 발전에 치명적인 영 향을 미치게 되고, 이는 결국 관계의 철회나 단절로 이어 질 수 있음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사랑한다고 믿고 결혼 에 골인한 한 연인이 결혼 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보다는 차이와 불일치를 경험하 게 되는 대부분의 경우는 관계 초기에 서로에게 부여된 관 계의 본질과 의미에 대한 평가 오류에서 비롯된 것이라 해 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또한 어떤 행위에 대한 결과를 예측하는 일과 함께 그 결과를 평가하는 것 역시도 무척이나 까다로운 일이다. 마음속으로는 어떤 행동이 가져다 줄 무형의 이익과 비용 분석으로 심리적 최적선을 유지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러 한 분석이 현실에서 구현될 수 있을지는 매우 불투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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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이다. 이때 사람들은 어떤 사회적 관계에 대한 결과 를 여타의 사회 관계와 그에 기반한 상상된 결과를 비교하 는 과정을 거치게 마련이다. 우정과 연애, 혹은 가족 성원 간 유대감은 개인의 삶의 궤적 혹은 그 개인의 역사성과 무관하지 않다. 친구와 우 정이나 연애의 경험 유무 혹은 그러한 경험의 밀도에 따라 비교 수준도 달라지기 때문에, 특정한 관계에서 기대할 수 있는 만족감도 상대적인 것이 되고 만다. 대인 관계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 이를테면, 관계를 형성하는 단계에서 열 개 경험 가운데 하나의 불쾌한 경험은 별 문제가 아닐 수 도 있지만, 그러한 불쾌함이 둘 중에서 하나였다면 전혀 다른 얘기가 될 수 있다. 이후에 있을 여덟 번의 경험이 유 쾌할 것이라고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관계의 경향성도 중요한 문제다. 관계 초기에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이렇다 할 매력을 느끼지 못하다가 관계가 진전되면 서 매력을 느끼는 경우는 정반대의 경우보다 관계의 발전 가능성이 훨씬 높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인 관계에 대한 평가는 관계의 안정성도 중요한 잣대 가 된다. ‘다른 사람과 만나는 것이 더 나은 것인가?’, 아니 면 ‘이 관계를 유지했을 때 야기될 수 있는 최악의 결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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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인가?’ 사이의 고민이다. 이른바 지금의 관계가 아닌 다른 대안적 관계와 비교하는 데에 관계의 발전이 달려 있 다는 것이다. 외부로부터 더욱 매력적인 대안의 활용이 가능했을 때나 현재의 결과가 대안에 비해 비교 수준을 밑 도는 경우에는 관계의 불안정성이 발생한다. 다시 말해, 현재의 관계에 대한 상대적 만족도가 선택 가능한 대안에 비해 낮은 경우 이른바 경제적 분석이 작동된다는 것이다. 폭력을 행사하는 상대방과 관계를 지속하는 납득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비정상적인 관계가 유지될 수 있는 것은 현재의 관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상대적 만 족도가 대안적 관계에 비해 높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예 컨대, 가정 폭력을 경험한 여성의 입장에서 세상에 홀로 내버려지게 되었을 때보다는 현재의 남성과 관계를 유지 하는 편이 더 낫다고 판단하면, 이 남성과 관계 단절은 상 상하기 어려운 문제로 남는다. 결국, 이 여성이 폭력을 행 사하는 남성과 관계를 단절할 수 있기 위해서는 현재 관계 보다 더 나은 남성 대안을 찾을 수 있을 때라야 가능한 일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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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Dalmas Taylor and Irwin Altman(1975). Self-Disclosure as a Function of Reward-Cost Outcomes. Sociometry, 38, 18∼31. Dalmas Taylor and Irwin Altman(1987). “Communication in Interpersonal Relationships: Social Penetration Processes”, 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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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velopment of Interpersonal Relationships, Holt, New York. Irwin Altman, Anne Vinsel, & Barbara Brown(1981). “Dialectic Conceptions in Social Psychology: An Application to Social Penetration and Privacy Regulation”, in Advances in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 14, Leonard Berkowitz (ed.), Academic Press, New York, 107∼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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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연인 관계의 변화무쌍: 관계적 변증법

인간관계는 언제나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에 놓이게 되며, 그 속에서 개인들은 갈팡질팡한다. 관계적 변증법은 남녀 연인 관계의 본질을 ‘밀고 당기기’라는 변증법적 모순으로 파악하고, 그렇게 때문에 연인은 언제나 대화적 긴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한다. 여기서는 이러한 연인 관계의 질곡을 극복하는 방안으로 관계의 변증법적 모순을 부정하기보다는 그것을 인정하는 성숙한 자세가 필요하며, 나아가 그에 기반한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전략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연인 관계의 본질: 밀고 당기기 수많은 대인 관계 가운데 남녀 관계는 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다. 이성이나 머리보다는 감성이나 가슴 의 영향을 많이 받는 남녀 관계에서 인간의 경험과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과학적 법칙을 발견하기가 더욱 까다롭다. 모순과 우연성, 그리고 불합리성은 연인 관계의 핵심이며, 그만큼 이러한 관계를 관통하는 논리가 있다면, 그것은 ‘밀고 당기기(pushmi-pullyou)’인 것이다. 레슬리 박스터(Lesile Baxter)와 바버라 몽고메리(Barbara Montgomery) 교수는 오랫동안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대인 매력을 연구해 왔으나, 대인 매력을 예측할 수 있는 어 떤 법칙도 찾지 못했을 뿐 아니라 인간의 갈등을 설명해 줄 수 있는 그 어떠한 상호작용의 법칙도 찾지 못했다. 그렇긴 해도 박스터와 몽고메리 교수는 모든 연인 관계에는 ‘서로 상반되는 역동적 상호작용의 경향성이 존재한다’는 긴장성 과 갈등성, 즉 변증법적 원칙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리고 이러한 긴장과 갈등은 가까운 친구나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보고, 대인 관계를 ‘지속적으로 표류하는 불확실한 과정’으로 간주했다. 모든 인간관계에 는 관계적 변증법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인간사 모든 일이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라면 관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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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관계에는 관계적 변증법이 존재한다고 주장한 레슬리 박스 터(Lesile Baxter) ⓒ 커뮤니케이션북스

변증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합리와 논리로 문 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렇지가 않다는 점에 있다. 대인 관계, 특히 이성 관계에 작용하는 서로 에 대한 긴장과 갈등은 합리와 이성보다는 논리적 모순 과 감성적 판단이 언제나 뒤따르게 마련이다. 이러한 모 순(contradiction)은 관계적 변증법의 핵심 개념인데, 이 는 ‘상반된 의견들 사이의 역동적 상호작용’을 일컫는다. 다시 말해, 모순은 ‘두 가지의 경향이나 힘이 서로 합해지 는 정(正, unity)이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부정하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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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 관계적 변증법: 정(正)

“저 둘은 너무 잘 어울려요.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환상적인 궁합이니까요.” 출처: 󰡔첫눈에 반한 커뮤니케이션이론󰡕(김동윤ㆍ오소현 옮김, 2012)

반(反, negation)’이기도 하다. 모든 대인 관계에서 당사자는 친밀함(정)과 독립성(반) 을 동시에 추구하게 되며, 이는 그 자체로 서로 모순된 것 이다. 그것은 자신이 원하는 친밀함과 독립성이라고 하는 것이 관계라는 구조 속에서는 동시에 실현될 수 없는 성질 의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합(合, bonding)은 서로가 서 로를 돕거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독립적일 수 있을 때라야 가능한 것이며, 그 어느 것 하나만으로는 관계를 오히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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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7> 관계적 변증법: 반(反)

“우리 관계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어. 혼자 자도 되겠니?” 출처: 󰡔첫눈에 반한 커뮤니케이션 이론󰡕(김동윤ㆍ오소현 옮김, 2012)

악화시킨다. 이렇듯 관계적 변증법은 관계라는 것이 항상 흐름 안에 있다고 가정한다. 그렇다고 해서 관계에서 나타나는 이러 한 역동적인 변화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관계 속에 배어 있는 긴장감은 당사자에게 서로 가까워지 려하거나 독립적이고자 하는 욕망을 동시에 포용할 수 있 도록 하는 자극제가 될 수 있으며, 이러한 자극은 결국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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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당사자들에게 대화의 기회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결국, 관계적 변증법은 대인 관계, 특히 연인 관계에서 자 주 관찰되는 ‘밀고 당기기(pushmi-pullyou)’와 같은 대립 양상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이러한 대립에서 오는 갈등과 긴장은 대화와 토론을 통해서 슬기롭게 풀어나가야 한다 고 강조한다.

관계 안팎에서 발생하는 변증법 유형들 대인 관계의 변증법은 크게 관계 내부에 존재하는 변증법 과 관계 외부에 존재하는 변증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우 선, 관계 내 변증법은 대인 관계에 포함된 이해당사자 간 에 존재하는 변증법이다. 이는 우리들 대부분이 관계 속 에서 한편으로는 친밀성과 확실성 그리고 개방성을 추구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분리성과 불확실성, 폐쇄성을 추구하고자 하는 양가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이 는 우리가 특정한 관계에서 이상적인 모듈을 추구하고자 하지만, 동시에 그러한 관계에 예속되거나 통제 당하지 않 으려 하는 자율성과 고유성, 그리고 프라이버시와 같은 가 치를 포기하지 않는 데 따른 것으로 평가한다. 관계 내 상 대방이 어떤 딜레마에 당면하게 되었을 때, 이 가운데 어 느 하나는 선택하고 다른 하나를 포기하는 경우는 거의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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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하지 않으며, 그때마다 이 두 가지 가치를 모두 작동시 킨다는 것이다. 결국, 관계적 변증법은 우리가 맺고 있는 대인 관계의 본질은 매우 복잡하고, 혼란스러우며, 불안할 수밖에 없 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예컨대, 상대방에게 친밀한 관계 를 원하면서도 자율성을 침해받지 않기를 원하고, 관계의 형식과 내용을 확실히 해 두길 원하면서도 자신만의 형식 과 내용을 추구하고자 하며, 나아가 서로에 대해서 모든 것을 개방해야 한다고 믿으면서도 프라이버시를 훼손당 하지 않으려 하는 양가적 감정의 패러독스가 언제나 관계 내에 상존한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관계적 변증법은 연인과 공동체, 그러니까 관 계 외부에서도 발생한다. 대부분의 관계 당사자는 서로에 대한 내적인 긴장감을 가지고 있음과 동시에 그가 맺고 있 는 사회적 네트워크나 공동체에 속한 구성원들과 변증법 적 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러한 관계 외부 의 변증법은 특정한 연인이 공동체와 어떠한 가치를 추구 하느냐의 문제다. 즉, 연인은 둘 사이의 특수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공 동체에 포함될 것인가, 아니면 격리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봉착한다. 어떤 연인이 자신이 속한 공동체로부터 더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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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자율권을 주장할수록 그 연인은 자신들만의 독특한 문 화를 향유하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될 경우 대부분의 연 인은 둘만의 문화가 어느새 지루한 습관이 되며, 제3의 집 단으로부터 연인이나 우정관계를 정당화할 수 있는 감정 적, 사회적 지지를 잃게 된다. 다음으로 연인이 추구하는 규범성은 공동체의 논리를 배제할 수 없다는 단점에 도달하고, 독특성의 추구는 공동 체 내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한 감정을 자아내게 만든다. 규범성을 따르는 것은 연인만의 독자성 훼손을 의미하며, 독자성의 추구는 공동체 구성원들과는 달라야 한다는 것 을 고려하면 사회적 압력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는 딜레마 에 빠지게 된다. 마지막으로 공표와 은닉의 딜레마에 당면하게 된다. 개 방성과 폐쇄성이 관계 내 변증법적 긴장인 것과 마찬가지 로, 공동체 내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말하고, 또 무엇을 숨 길 것인지는 연인이 풀어야 하는 또 다른 과제다. 공동체 구성원들과 무엇인가를 공개함으로써 얻어지는 반대급부 는 연인 중 어느 일방에게는 긍정적일 수도 있지만, 다른 일방에게는 부정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연 인 내에서도 어느 한 사람은 친구나 주변으로부터 축하와 지지를 받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지만, 상대방은 도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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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8> 변증법적 관계의 혼란

출처: 󰡔첫눈에 반한 커뮤니케이션 이론󰡕(김동윤ㆍ오소현 옮김, 2012)

타인의 얘깃거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연인 의 관계를 공동체에 공개하는 것은 관계 당사자의 친밀감 을 높일 수 있는 의례일 수도 있지만, 공개 이후부터 누릴 수 있는 사생활은 큰 폭으로 감소한다. 공표와 은닉 사이 그 어느 지점에서 연인이 내리게 될 선택의 문제가 그리 간단하게 풀리지 않는 이유인 것이다.

관계적 변증법: 용례와 함의 연인 관계, 나아가 대인 관계 자체가 고정 불변한 몇 가지 상 수로 설명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 다면 모든 관계에는 변증법적 모순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모든 관계는 이러한 변증법적 밀고 당기기가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현실적으로 중요한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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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는 이러한 갈등을 야기하지 않거나 이러한 갈등을 해소하 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관리하고 통제해 나가는 전술, 즉 다 음에서 제시한 변증법적 긴장을 다루는 실용적인 방안이다.

변덕부리기

변덕부리기(alteration)는 시간의 경과에 따라 한편으로는 지금 당기고 다른 한 편으로는 나중에 당기는 변증법적 전 술이다. 양극단에서 밀물과 썰물에서 작용하는 힘처럼, 관계 당사자에게서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변덕부리기 전 술은 분리성와 연결성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이다. 상대 방과 연결성을 강력하게 추구하면서도 때로는 이와는 정 반대의 분리성을 추구하는 듯한 변덕스러운 행보를 통해 서 상대방을 교란시키는 방안이다.

분열

분열(segmentation)은 관계 내 어느 일방이 취하는 행동 이나 태도가 다른 일방과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음을 분명 하게 표현하는 방식이다.

균형

균형(balance)은 관계 당사자가 대화 과정에 접근하는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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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양쪽의 변증법적 극단이 서로 동등한 정당성을 가지며, 따라서 지속적인 대화를 촉진하는 전략을 말한다.

통합

통합(integration)은 상대방의 입장에 현혹되지 않으면서 도 능동적으로 반응하는 방법이다. 이는 확실성과 불확실 성에 대해 갈등하고 있는 연인에게 유용하며, 상대방의 태 도와 입장에 대한 누적된 경험과 이해의 기반 위에서 이루 어진다.

재조정

재조정(recalibration)은 관계 당사자가 더 이상 반대 방향 에 있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 것처럼 일시적으로 상황을 재구성하는 방식이다. 상대방과 일정한 거리 두기가 그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재조정은 실제 딜레마를 단 시간에 해결해 주지 않기 때문에 고도의 정신 훈련을 필요 로 한다.

재확인

재확인(reaffirmation)은 변증법적 긴장이 절대 사라지지 않을 관계 당사자의 능동적인 인식을 포함한다. 이와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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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관계 당사자는 관계적 삶 속에서 겪는 고통을 기피하지 않고, 상대방과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일을 인정하 고 찬미한다. ‘만일 우리가 이처럼 가깝지 않았다면, 이 문 제를 풀지 못했을 거야’라고 말하는 전술이다.

참고문헌 Barbara Montgomery(1992). Communication as the Interface between Couples and Culture. Human Communication

Yearbook 15, Stanley Deetz(ed.), Sage, Newbury Park, CA, 475∼507. Em Griffin(2003). A first look at communication theory. 김동윤ㆍ오소현 옮김(2012). 󰡔첫눈에 반한 커뮤니케이션 이론󰡕. 커뮤니케이션북스. Leslie A. Baxter & Barbara M. Montgomery(1996). Relating:

Dialogues and Dialectics. Guilford, New York. Leslie A. Baxter and Barbara M. Montgomer( 1997). “Rethinking Communication in Personal Relationships from a Dialectical Perspective”, in A Handbook of Personal Relationships, 2d ed., Steve Duck(ed.), John Wiley & Sons, New York, 325∼349. Leslie Baxter and E. P. Simon(1993). “Relationship Maintenance Strategies and Dialectical Contradiction”, in Personal Relationships. Journal of Social and Personal Relationships,

10, 225∼242.


05 가족 관계의 특수성: 상호작용 관점

가족 체계는 천장에 매달린 모빌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독립되면서도 종속된 기구한 운명 공동체다. 상호작용 관점은 서로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변화에 대해서는 매우 저항적인 가족 구성원의 문제의 원인과 결과 모두를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로 접근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가족 구성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은 메타 커뮤니케이션이며, 이를 위해서는 외부 도움이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한다고 강변한다.


모빌과 가족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가장 친밀한 대인 관계가 상존하는 시공간은 바로 가족이다. 그렇지만 가족 구성원 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부여되는 역할과 규범만을 강조할 뿐 구성원 상호 간의 관계를 도모하고 관리하는 일에는 거 의 신경을 기울이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사실 부부, 부 모와 자녀, 자녀와 자녀 사이의 관계가 그리 만족스럽지 않은 현실은 이러한 사실을 잘 방증해 준다. 어느 가정에 나 문제를 일으키는 구성원이 하나쯤은 존재하며, 바로 이 문제만 해결된다면 가족 구성원 모두가 행복해질 것으로 믿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문제의 핵심은 가족 구성원이 불행한 것은 여러 가지 원인이 겹쳐서 나타나게 된 결과이므로 그런 결과를 바꾸기 위해서는 결과에 대한 원인 진단이 우선되어야 한 다는 사실에 있다. 다시 말해, 우리 가족 혹은 특정 가족 구성원이 왜 그러한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근 본적인 고민을 하지 않으면 현재 가족 구성원이 겪고 있는 불행은 극복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가족이 긴밀하 게 묶여져 있는 하나의 체계, 즉 모빌의 형식과 내용을 포 함하기 때문이다. 폴 바츨라빅(Paul Watzlawick)은 체계로서 가족의 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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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을 설명하기 위해 가족을 천장에 매달린 모빌에 비유 한다. 그는 모빌을 가족에, 각 구조물을 가족 구성원에, 그 리고 그 구조물들을 이어주는 실을 커뮤니케이션 규칙에 빗대어 설명했다. 모빌을 구성하고 있는 작은 구조물들은 각기 적당한 공간에서 다른 구조물들과 실로 잘 연결되어 균형을 유지할 수 있을 때 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그리 고 그 구조물들 가운데 어느 일부에 압력이나 힘을 가하면 금방이라도 모빌의 균형은 깨지고 만다. 나아가 모빌의 구조물을 잇고 있는 어느 하나의 실이라도 잘릴 것 같으 면, 모빌의 형세가 일그러져 균형을 잃고, 정상 기능을 수 행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가족이라는 체계 내에 서 작용하는 미세한 움직임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모든 가 족 구성원이 구사하는 커뮤니케이션 양식을 면밀하게 관 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특히, 바츨라빅 은 가족 구성원 각자가 자신이 다른 구성원과 맺고 있는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커뮤니케이션 행위를 강조한다. 가족 관계를 이러한 체계로 접근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특정한 행동을 취하는 방식을 단순하게 설명해 내기 어려 울 뿐 아니라 실제로 사람들의 행동 방식은 복잡한 과정을 거쳐 나타난다고 믿기 때문이다. 예컨대, 아버지가 아들 에게 어떤 말을 건넬 때, 아들이 뒷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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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구성원과 맺고 있는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커뮤니케이션 행위를 강조한 폴 바츨라빅(Paul Watzlawick, 1921~2007) ⓒ 커뮤니케이 션북스

듣는 행위는 아버지의 말이 그다지 달갑지 않거나 불만이 있을 때 나타나는 행동이다. 이때 아버지는 자신의 메시 지를 아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했던 나머지 아들이 이 메시지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는 고려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버지의 의사가 제대로 전달될 리 만무하다. 만약 이런 경우라면,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대해 좀 더 근본적인 대 화와 소통의 기회를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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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대인 관계라는 것이 일차 방정식처럼 쉽게 풀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라 는 식의 단순한 진술문만으로 표현될 수 있는 문제도 아니 라는 사실을 말해 준다. 그래서 가족 간 커뮤니케이션 문 제는 매우 복잡한 고차 방정식이며, 커뮤니케이터들의 태 도와 감정, 그리고 상황과 맥락을 충분히 감안할 수 있어 야 한다는 것이다.

가족 간 커뮤니케이션 공리 가족 구성원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변화하기 힘든 성질을 가진다. 그것은 가족이라는 집단이 도덕과 윤리에 기반한 것이기보다는 삶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모는 당연히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 은 부모를 당연히 공경하며, 자녀들끼리는 의당 우애를 가 져야 하는 고착화된 관계 경향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그 래서 가족 구성원이 종종 혹은 자주 드러내는 불만과 불평 의 목소리는 좀처럼 대화의 기회를 찾지 못하고 사랑과 공 경, 그리고 우애라는 추상적이고 모호한 가치에 휘둘리게 되고 만다. 이렇게 되면,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던 가 족이 어느 작은 계기로 심각한 내홍을 겪거나 돌이킬 수 없는 갈등의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경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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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구성원들 사이에 오가는 대화와 소통의 공리를 잘 파악할 수 있을 때라야 우리가 바람직하게 여기는 가족의 본모습을 영위해 나갈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 은 몇 가지 원칙을 새겨 가족 구성원 간에 교환되는 커뮤 니케이션 행위를 주의 깊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 첫째, 가족 구성원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소통과 커뮤니 케이션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이는 가족 구성원이 어떤 국면에서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알아 차릴 수 있는 단서는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는 것 을 의미한다. 예컨대, 여자 친구와 데이트를 하고 집에 들 어 왔을 때 엄마가 ‘오늘 어땠니?’ 하며 말을 건네는 상황이 나 공부를 해야 하는데 형제나 자매가 대화를 원하는 상황 은 일상적으로 겪는 일들이다. 이때 만약 아들이 데이트 와 상관이 없는 말을 쏟아 내거나 단순히 ‘좋았어요’라고 말하거나 피곤하다거나 목이 아프다는 식으로 말한다면, 그 데이트가 좋지 않았다는 것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그런데 계속해서 아들에게서 뭔가를 더 알아내려 한다면, 그리고 이러한 현상이 오랜 시간 반복적으로 일어난다면, 아마도 아들은 여자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더 이상 엄마와 긴밀한 대화를 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이 경우에는 징후 전략(symptom strategy)에 익숙해져야 하는데, 아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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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엄마와 오늘 데이트에 대해 말을 할 수도 있지만, 다른 어떤 이유로 지금 그 문제를 얘기하기는 좀 어려울 것 같 아요!’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모든 커뮤니케이션이 내용과 관계를 포함하는데, 여기서 커뮤니케이션 내용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가족 구 성원 사이의 관계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이는 가족 구성원 끼리 나누는 대화 속에는 단순한 메시지만 있는 것이 아니 라 가족 구성원들이 어떠한 관계를 유지해 나가고 있는지 를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딸이 아빠에게 남자 친구에 관한 이야기를 상의한다고 했을 때, 이 가족 은 아버지와 딸, 나아가서는 가족 구성원 모두가 각자의 경험을 솔직하게 대화하는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는 사실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더불어, 대화에서 사용되는 목소리의 높낮이, 특정한 단어의 강조, 얼굴 표 정 등의 비언어적 단서는 대화의 내용과 관계의 본질을 파 악하는 데 상당한 도움을 준다. 이러한 대화를 통해서 우 리는 ‘내가 나를 보는 방식, 내가 당신을 보는 방식, 그리고 당신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를 다시 내가 보는 방식’을 읽 어낼 수 있다. 셋째, 가족 구성원 관계의 본질은 커뮤니케이션의 연속 성을 얼마나 잘 준수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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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9> 커뮤니케이션의 연속성

출처: 󰡔첫눈에 반한 커뮤니케이션 이론󰡕(김동윤ㆍ오소현 옮김, 2012)

한다. 가족 구성원의 낙담과 불행은 다른 구성원의 좌절 과 포기를 초래한다. 또 어느 구성원이 겪는 부정적인 감 정을 문제 삼는 것은 갈등을 부추길 뿐 가족 구성원이 안 정과 행복을 되찾는 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 제가 있는 아들에게 엄마와 아빠가 불연속적인 대화로 일 관한다고 가정해 보라. 이를테면, 음주를 하는 중학생 아 들을 걱정스럽게 여겨 부정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엄마와 이를 사춘기의 정상적인 성장통으로 간주하는 아빠가 있 다면, 그 사이에서 대화하는 아들은 갈팡질팡하게 될 것 이다. 넷째, 모든 커뮤니케이션은 대칭적이거나 보완적 상호 교환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도 중요하다. 여기서 대칭 적 상호교환은 동등한 권력 관계를 의미하고, 보완적 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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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0> 상호작용 관점을 활용한 대화

“‘별로(sucks)’라는 “‘별로(sucks)’라는 좋지 좋지 않은 않은 말 말 대신에 대신에 ‘나한테는 ‘나한테는 맞지 맞지 않아요’라고 않아요’라고 말해야 말해야 한단다.” 한단다.” 출처: 󰡔첫눈에 반한 커뮤니케이션 이론󰡕(김동윤ㆍ오소현 옮김, 2012)

교환은 차등적 권력 관계를 의미한다. 우리는 좋은 가족 이라고 해서 모든 구성원의 권력 관계가 대칭적이어야 한 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아들의 비행을 늘 감 싸기만 하는 엄마는 주로 아들과 보완적 상호교환을 하게 된다. 음주 운전으로 사고를 낸 경우에도 변호사를 고용 해서 보석으로 풀려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도 하는데, 이것이 보완적 상호교환의 극단적인 사례다. 가족 구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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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애착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보완적 상호교 환이 절실하게 필요하지만, 이것이 언제나 긍정적인 효과 로 나타나는 것이 아님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최악의 경 우에는 이런 아들의 비행을 아빠에게는 비밀로 하는 경우 다. 건전한 관계에는 이 두 가지의 교환을 두루 포함하고 있어야 하기에, 이 두 가지 상호작용 중 어느 것은 좋고, 다른 것은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상호작용 관점: 용례와 함의 고질적인 문제에 봉착한 가족이 새로이 태어날 수 있는 방 법은 없을까? 가족이 어떻게 하면 반복되는 악순환의 고 리를 끊고, 건전한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까? 바츨라빅은 불화를 겪고 있는 대부분의 가족이 불행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가족 구성원 모두가 자멸의 위 기에 도달했음을 인지해야 한다고 한다. 이 단계에 이르 러서야 비로소 치유의 과정인 이른바 재구성(reframing) 을 시도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재구성이란 단순히 가족 구성원의 규범과 역할 행동의 변화만을 도모하는 것 이 아니다. 재구성은 가족 구성원이 당연하다고 생각해 온 경험과 환경, 그리고 감정이나 관점의 총체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바츨라빅은 이러한 전면적인 변화를 악몽, 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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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서 어떤 행위자가 마구 달리고, 숨고, 싸우고, 비명을 지르며,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 갖 몸부림을 쳐도 실제로 변화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실제 상황에 비유했다. 이렇듯 재구성은 기존과 다른 새 로운 사고방식으로 어떤 사물을 바라보았을 때, 갑자기 ‘아하!’ 하고 외치는 과정과도 같다. 재구성의 과정은 말처럼 쉽지 않다. 무엇보다도 가족 구성원 가운데 어느 일부만 변화한다고 해서 변화가 촉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가족 구성원 가운 데 어느 한 사람이 문제가 있었다고 해서 그 사람의 문제 만을 치유하고자 한다면 그러한 시도는 대부분 실패로 돌 아갈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 구성원이 그러 한 문제에 봉착하게 되는 과정에 이미 다른 가족 구성원들 사이의 그릇된 혹은 정상적이지 못한 사회적 상호작용이 있었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족이 재구성의 과정에서 반드시 유념해야 하는 것은 그릇된 행동을 하는 특정 구성원을 원망하거나 비난하기보다는 그러한 문제 가 촉발된 원인을 가족 구성원 모두가 공동으로 참여하고 공동으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이전의 것을 부정 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가족 구성원 중에서 문제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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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하는 구성원이 있다면, 그 가족 내에서 그 문제를 치유 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도 가족이 그러한 문제를 외부 세계와 소통하려 하지 않거나 비극적 인 결말이 두려워 계속해서 숨기려 할 경우,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방법은 점점 더 멀어지게 된다. 우리가 텔레비 전에서 경험하는 가족 문제를 다루는 솔루션 프로그램에 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집단이 해당 가족의 문제를 진단 하고,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며, 그에 따라 적절한 처방을 강구하는 것도 가족이 봉착하고 있는 문제가 구성원끼리 해결하기에는 상당히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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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B. Aubrey Fisher(1982). “The Pragmatic Perspective of Human Communication: A View from System Theory”, in Human

Communication Theory, Frank E. X. Dance(ed.), Harper & Row, New York, 192∼219. Edna Rogers and Richard Farace(1975). Analysis of Relational Communication in Dyads: New Measurement Proced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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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 Human Communication, W. W. Norton, New 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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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문화적 이방인과의 관계: 불확실성 감소 이론

문화와 삶의 궤적을 달리하는 이방인과 갖는 만남은 언제나 상대방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넘쳐난다. 불확실성 감소 이론은 이러한 이방인과의 만남이나 접촉에서 야기되는 불확실성의 문제는 결국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줄여나갈 수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는 불확실성을 감소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동원되는 커뮤니케이션 변수들, 즉 언어적 표현, 비언어적 온정, 정보 추구, 호혜성, 자기 노출, 유사성, 호감, 그리고 공유된 네트워크 등이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인간관계 발전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알려 준다.


불확실성 감소와 관계 맺기 우리는 하루에도 수차례 이방인들과 만나거나 접촉을 하 게 된다. 그리고 모든 관계는 이러한 이방인 만남에서 비 롯된다. 그리고 그런 이방인과 관계 맺기에서 우리가 처 음으로 마주하게 되는 경험은 불확실성이다. 공적 자아에 서 사적 자아로 침투하는 과정을 관계의 형성과 발전 과정 으로 설명하는 사회 침투 이론과 달리, 찰스 버거(Charles Berger)는 대인 관계의 시작을 서로에 대한 정보를 얻고, 이해를 창출해 나가는 인간 커뮤니케이션의 과정으로 설 명한다. 특히, 이방인과 만남이나 상호작용에서 둘 사이 의 행동에 대한 불확실성을 감소시키고, 행동에 대한 예측 력을 높이는 것이 곧 관계 형성과 발전이라는 것이다. 버거는 대인 관계의 형성과 유지, 발전과 그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인간 커뮤니케이션의 과정이 결코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서로에 대한 불확실성을 감소시키고자 하는 동기를 다음의 세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는 미래의 상호작용에 대한 기대다. 우리의 만남이나 접촉이 이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하 기 때문이다. 둘째는 불확실성 감소에 따라 주어지는 보 상이다. 즉 서로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불확실성을 줄여나 가다 보면 서로에게 필요한 자원을 파악할 수 있고, 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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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의 감소’는 상호 협력과 소통을 통해 획득되는 커뮤니케이션 의 산물이라 주장한 찰스 버거(Charles Berger) ⓒ 커뮤니케이션북스

가 자원의 교환을 통한 보상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는 상대방의 기묘한 행동에 대한 이해다. 우리는 서 로 다른 문화와 환경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상식이라고 생 각하는 개인의 행위는 상대방에게 매우 이색적으로 느껴 질 수 있다. 사회적 통념이나 상식과는 다른 행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자 하는 동기가 작동한다는 것이다. 불확실성을 감소시키고자 하는 동기는 상대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과 대화 테이 블에 앉아 자신의 과거와 경험 그리고 가치를 공유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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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은 실제로는 상당히 어색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적 삶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이상에서 제시한 몇 가지 원칙을 공유하게 되고, 이는 사회적 필요에 따라 일반화된다. 이쯤 되면 사회적 교환과 상호작용을 매개로 한 불확실 성의 감소는 사회적 존재로 살아가기 위한 필수 과정이며, 여기에 어려움을 겪거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소외와 고 립이라는 큰 굴레를 지고 살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런 점에 서 불확실성을 감소시키는 것은 어느 일방의 노력과 헌신 이 아니라 상호 협력과 소통을 통해 획득되는 커뮤니케이 션의 산물인 것이다.

불확실성 감소와 커뮤니케이션 공리 우리 인간은 사람들이 행동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끊임 없이 추론하고자 한다. 그것은 사람들이 그러한 방식으로 행동하는 이유를 추론함으로써 행동의 속성과 특성을 설 명하고, 나아가 향후의 행동을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일반적으로 첫 만남에서 사람들은 두 가지 차원의 불확 실성에 직면하게 된다. 하나는 행동적 차원의 불확실성이 다. 첫 만남에서 상대방에게 가벼운 포옹과 뽀뽀, 그리고 악수 중 어느 것을 우선적으로 건네야 할지, 식사 값은 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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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내는 것이 맞는지, 만남의 자리에 대동한 아기에게 적 당한 스킨십은 어느 정도인지 등은 사람이나 지역, 문화에 따라 상당히 이질적이다. 통상적으로 이러한 행동 차원의 불확실성에서 제기되는 심리적 부담감을 효율적으로 줄 이는 것은 좋은 매너로 일관하는 일이다. 이를테면, 상대 방의 얼굴 표정만으로도 기분과 만남에 대한 의미부여 방 식을 재빨리 알아 차려 합당하고 적절한 매너로 응대하는 방식이다. 행동 차원의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나면 인지 차원의 불 확실성에 당면하게 된다. ‘상대방이 얼마나 독특한 취향을 가졌는가’에 대한 탐색과도 같은 것인데, 특별한 취향이나 특기, 잠재적 특성과 개성에 대한 불확실성이다. 행동적, 인지적 차원의 이러한 불확실성이 전제되지 않 은 경우, 두 사람 사이의 사회적 상호작용은 겉돌게 된다. 첫 만남에서 사람들은 상대방에 대한 인지적, 행동적 차원 의 불확실성 속에서 배회하거나 두드리는 탐색의 시간을 가진 다음, 불확실성을 감소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화에 들 어가게 된다. 이렇듯 불확실성 감소의 궁극적인 목표는 대인 관계이 며, 그 수단은 바로 대화와 소통이 중심이 되는 커뮤니케 이션 행위다. 다시 말해, 커뮤니케이션 행위를 매개로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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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 감소 혹은 제거의 결과가 바로 대인 관계 형성 및 발전인 것이다. 버거는 불확실성 감소 이론의 핵심 개 념인 커뮤니케이션 행위, 불확실성, 그리고 관계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유형의 공리를 제안했으며,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언어적 커뮤니케이션: 불확실성이 높은 관계 초기, 이 방인 사이의 언어적 커뮤니케이션 양의 증가는 불확 실성의 감소를 가져온다. 그리고 불확실성이 감소했 을 때, 언어 커뮤니케이션의 양은 다시 증가한다. ∙ 비언어적 온정: 관계 초기에 비언어적 친밀감의 표현 이 증가하면 불확실성 수준은 감소한다. 또한 불확실 성 수준이 감소하면, 친밀감 표현도 증가한다. ∙ 정보 추구: 높은 수준의 불확실성은 상대방의 정보 추 구 행동을 증가시키고, 불확실성의 감소는 정보 추구 행동을 감소시킨다. ∙ 자기 노출: 높은 수준의 불확실성은 커뮤니케이션 내 용의 친밀성을 감소시키는 원인이 되며, 낮은 수준의 불확실성은 높은 수준의 친밀성을 양산한다. ∙ 호혜성: 불확실성과 상대방에 대한 호혜성의 관계는 정적이다. 즉, 높은 수준의 불확실성은 호혜성 수준 을 높이며, 그 반대의 경우도 성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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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1> 불확실성의 완전한 해소

“나는 항상 해리가 무슨 말을 할지를 알고, 그 또한 내가 무슨 말을 할 것인지를 잘 알아요.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괴롭게 하지 않아요.” 출처: 󰡔첫눈에 반한 커뮤니케이션 이론󰡕(김동윤ㆍ오소현 옮김, 2012)

∙ 유사성: 상호작용 당사자 간의 유사성은 불확실성을 감소시키지만, 비유사성은 불확실성을 증가시킨다. ∙ 호감: 불확실성 수준의 증가는 호감을 감소시키며, 불 확실성 수준의 감소는 호감을 증가시킨다. ∙ 공유된 네트워크: 공유된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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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을 감소키기는 반면, 공유된 네트워크의 결 핍은 불확실성을 증가시킨다.

버거는 이상의 여덟 가지 공리를 조합해 다양한 차원의 논리적 명제로 발전시켰는데, 여기에는 ‘A=B이고, B=C이 면, A=C’라는 논리적 기초에 기반했다. 예컨대, ‘유사성이 불확실성을 감소시키고(공리 6), 감소한 불확실성이 호감 을 증가시킨다면(공리 7), 결국 유사성과 호감 사이에 정 적인 관계를 추론해 볼 수 있다’는 식이다. 이처럼 불확실 성 감소를 둘러싼 공리는 다양한 차원에서 만들어질 수 있 고, 이 과정에는 사회심리학이나 커뮤니케이션 연구에서 발견된 다양한 변수들도 포함될 것이다.

불확실성 감소 이론: 용례와 함의 불확실성 감소 이론은 사회 침투 이론이 기본적으로 가정 하고 있는 경제적 분석과 그에 기반한 합리적 선택과는 사 뭇 다른 접근 방식을 통해서 만남이나 접촉과 같은 대인 관계의 형성과 발전 과정을 조망한다. 그러나 버거도 사 회적 상호작용의 대부분이 목적 지향적이라는 사실은 인 정했다. 그것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말하고자 할 때는 반 드시 그 이유가 있다는, 이른바 전략적 의사소통 행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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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버거는 이러한 전략적 행위를 위해서 자기 이해를 극대 화하기 위한 총체적 전략을 수립할 것을 제안하면서, 대인 관계의 전술로는 미소와 눈 맞춤과 같은 비언어 수단을 활 용한 ‘우호적으로 보이기’와 해당 분야에 식견을 갖춘 정 교한 수사적 능력을 겸비해 ‘전문적으로 보이기’라는 두 가지 전술을 추천한다. 관계 초기에 사람들이 자신의 메 시지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당혹 감과 분노, 거절과 같은 위험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전 술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방안을 제안했다. 첫째는 정보 추구다. 버거는 다른 사람의 반응을 알아 보기 위해 다음의 세 가지 정보 추구 방식을 추천한다. 하 나는 수동적인 전략으로, 다른 사람이나 사물을 주시함으 로써 관찰자의 개입을 최소화시키는 방식이다. 상대방의 눈에 띄지 않게 거리를 두는 전술이다. 다른 하나는 능동 적 전략으로서 상대방에 대한 인지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 는 왜곡된 정보를 여과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상대방에 대해서 무엇인가 알고자 하는 행위가 시험이나 캐묻는 것처럼 보이지 않게 하면서 도 자연스럽게 원하는 정보를 얻는 상호작용 전략이다. 이를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질문을 하기 이전에 자신이 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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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솔직해 져야 한다. 그럼으로써 편안한 분위기에서 부 가적인 정보를 얻어낼 수 있는 것이다. 둘째는 복잡한 계획 수립하기다. 여기서 말하는 계획의 복잡성이란 불확실성을 감소시키기 위한 어떤 전략적 선 택이 실패했을 경우에 대비해 빼어들 수 있는 전략의 수를 가급적 많이 준비해 두는 것을 말한다. 이는 불확실성을 감소시키기 위한 커뮤니케이션 전략이 얼마나 세밀하게 준비되어 있느냐의 문제와 본래 계획이 기대와 다른 방향 으로 나갔을 때 동원할 수 있는 부수적인 계획이 얼마나 치밀한가의 문제다. 이방인과 상호작용을 할 때 당면하는 불확실성을 감소시키기 위해서 복잡한 계획을 수립하는 일이란 말처럼 쉽지 않으며, 고도의 의식적인 노력을 필요 로 한다. 따라서 상호작용 초창기에 채택한 최선의 선택 이 불확실성 감소에 효과적으로 먹히지 않았을 경우, 이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차선을 마련해 둘 것인지의 여부 는 상호작용의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셋째는 둘러가기다. 이는 상대방과 불확실성을 감소하 기 위한 처음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 쌍방의 체면 을 살리기 위한 예비 방안으로서 매우 유용하다. 다시 말 해, 너무 성급하게 상대방과 불확실성을 단번에 해소하려 들거나 만남의 목적을 조급하게 누설하려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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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것을 말한다. 첫 만남의 어색함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유머를 활용해서 분위기를 전환한다든지 좋아하는 애견 이나 취미 생활과 관련된 질문을 한다거나, 또는 그러한 부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농담을 섞어 전달한 다면 적절성이 높은 선택이 될 것이다.

참고문헌 Charles R. Berger & J. J. Bradac(1982). “Language and Social

Knowledge: Uncertainty”, in Interpersonal Relations. Arnold, London. Charles R. Berger & William B. Gudykunst(1991). “Uncertainty and Communication”, in Progress in Communi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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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거짓말쟁이의 관계 맺기: 대인 기만 이론

대인 상호작용 속에서 서툰 거짓말 탐지기로서 인간은 다양한 상황에서 일어나는 기만적 상황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대인 기만 이론은 고도의 정신적 노력과 전략적 사고를 요구되는 기만적 행위가 어떤 유형의 다양한 단서를 누설시키는지를 제시한다. 여기서는 인지적 과부하를 수반하는 기만행위가 반응자의 진실편향성에 가로막혀 발각되지 못하는 경우를 경고하고 있는데, 이로써 진실과 신의에 바탕을 둔 인간관계의 절실함을 역설한다.


거짓말의 유형 대부분의 사람은 타인은 어느 누구로부터 속임과 기만을 당하고 있지만 자신은 아닐 것이라는 순진한 착각 속에 살 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현실은 최 소한 악의적이지는 않더라도 상대방에게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밝히도록 하지는 않는다. 데이비드 벌러(David Buller)와 주디 버군(Judee Burgoon) 은 사람들이 다양한 상황에서 어떤 발화 행위를 했을 때,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상처가 되거나 갈등을 조장할 수 있는 말보다는 상대방의 장점을 강조하려는 경향성이 있 으며, 상대방과 관계를 후퇴시키지 않거나 발전시키려는 목적으로 정직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발 견했다. 악의적인 ‘검은 거짓말’과 선의의 ‘하얀 거짓말’이 라는 패러독스가 유행어처럼 번지고, 그러한 필요성에 우 리 모두가 일정 부분 동의하는 것도 대인 상호작용이나 관 계 형성과 유지에 필요한 기만적 행위가 불가피하다는 사 실을 말해 준다. 이러한 기만의 상황은 다음의 예를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해 볼 수 있다.

당신은 패트와 3년간 연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질 투심이 강하고 소유욕도 강한 성격이다. 그런데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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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다른 지역으로 전학을 가게 되었고, 서로는 필요한 경 우 다른 사람과 만남을 인정해 주기로 했다. 전학을 간 이 후 만남의 횟수는 많지 않았지만, 주말에는 한 시간 이상 통화하면서 서로 안부를 묻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 구가 여러분을 토요일 밤 연인 파티에 초대했다. 그러나 이번 주말 패트는 당신과 함께 파티에 참석할 수 없는 상황 이다. 그래서 당신은 평소 호감을 가지고 있던 친구에게 애인이 되어줄 것을 부탁했다. 파티에서 즐거운 시간을 함 께 보낸 다음날 일요일 오후,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 려 문을 열었다. 다름 아닌 패트였다. 얼굴을 보자마자 그는 “몰래 내려와 놀라게 해 주려고 했지. 근데, 어젯밤 내내 전 화를 했는데 부재중이더라? 어떻게 된 일이니?”라고 묻는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상대방에게 거짓말을 하는 유 형은 다음의 세 가지다. 첫째는 진실을 말하지 않는 ‘허위 (falsification)’다. ‘어제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했어’라고 거짓말을 하는 경우다. 둘째는 모든 진실을 말하지 않는 ‘은폐(concealment)’로, ‘친구 아파트에서 파티를 했어’라 고 말하면서 중요한 사항을 빼는 경우다. 셋째는 고의적 으로 모호하게 에둘러대는 ‘얼버무림(equivocation)’인데, ‘잠깐 외출했어’라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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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2> 거짓말의 폐해

“죄송합니다, 이 호텔에서 ‘거짓말쟁이 클럽’이라는 회의가 없습니다. 누군가 잘못된 정보를 드린 것 같습니다.” 출처: 󰡔첫눈에 반한 커뮤니케이션 이론󰡕(김동윤ㆍ오소현 옮김,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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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인 기만 이론’의 대표적인 연구자 주디 버군(Judee Burgoon, 1948~ ) ⓒ 커뮤니케이션북스

여기서 허위는 새로운 사실, 즉 허구를 만들어 내는 것 이고, 은폐는 사실을 숨기는 것이며, 얼버무림은 핵심을 비켜가는 것이다. 이러한 세 가지 유형의 거짓말은 정도 의 차이는 있지만, 상대방의 의사와 기대에 반하는 기만 행위이며, 이러한 메시지는 상대방이 거짓된 믿음이나 결 론을 내리도록 만든다. 이러한 기만적 행위는 다양한 동 기를 가진 전략적 행위를 통해 표출된다. ‘대인 관계 형성과 유지 그리고 발전 과정에서 기만과 속임수는 필요악으로 인정되고 있지만, 이를 포착하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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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단서를 과학적으로 접근하기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 니다. 그래서 대인 기만이 일어나는 조건과 상황 그리고 유형을 발견하기 위해 실시되는 고도로 통제되고 기획된 연구 가치가 평가절하 되는 측면도 없지 않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상대방의 기만과 속임수를 포착할 수 있는 능력에 일정한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 험실 상황에서 이러한 문제를 규명하기란 더욱 어려운 일 이다. 실험실 상황에서 실험 참여자들은 커뮤니케이션이 가진 역동성을 무시한 채 의식적인 행동이나 상대방의 반 응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기제를 작동하기 때 문에 연구결과의 일반화 가능성에 심각한 문제가 제기된 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대인 기만 이론을 포기할 수 없는 이 유가 있다면, 그것은 기만이나 거짓의 속임수가 발생하는 순간 일어나는 다양한 단서들을 파악함으로써 상대방의 기만적 행위로 인한 피해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방어 기제가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기만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기만자의 전략적 사고와 고도의 정신적인 노력이 없으면 불가능하 다는 것이다. 기만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 그로 인한 신뢰 의 추락과 냉소의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 기만자의 부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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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쉽게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성공적인 기만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인지적, 심리적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고, 이 과 정에서 기만을 당하는 사람은 그가 누설하는 다양한 단서 를 포착할 수 있다.

누설의 단서들: 거짓말쟁이들의 언어와 표정 본질적으로 기만은 정보의 조작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기 만을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사용되는 언어와 단서는 사람마다 달라서 이를 범주화하거나 구체화하는 것은 거 의 불가능하다. 그래도 벌러와 버군은 기만적 행위가 일 어나는 전략적 메시지와 의도에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의 특성이 있다고 말한다. 첫째는 불확실하거나 모호한 표현이 잦다는 것이다. 앞 의 예에서 만약 패트가 토요일 밤에 일어난 진실을 모르기 를 원한다면, 당신은 가급적이면 대답을 간결하고 애매한 태도로 할 것이다. ‘늦은 시간까지 일했어’라고 짧게 답할 수록 패트가 토요일 밤에 일어난 일을 파악할 수 있는 구 체적인 단서와 근거는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만자가 활용하는 전형적인 수법은 ‘그날 (특별 한 상황이 발생해서) 일을 일찍 끝내기란 거의 불가능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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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었어’라는 식으로 기만한다. 둘째는 비즉시적이거나 과묵하며, 혹은 말을 번복하는 경향성이 있다. 패트가 토요일 밤에 전화를 받지 않은 이 유를 불현듯 캐묻는다면 기만 행위가 들통이 날 가능성은 그만큼 높다. 이 경우, 기만자들은 비언어적 행동이 보다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예컨대, 커피를 만들기 위해 몸을 돌리거나, 평소보다 거리를 두고 앉거나, 답변 시 몸을 앞 으로 당기기보다는 뒤로 젖히게 될 것이다. 더군다나 무 엇인가를 답변하는 과정에서 침묵을 하는 순간이 잦을 것 이고, 답변을 하는 동안에 말이 끊기는 경우가 잦을 것이 며, 내뱉은 말의 시점이 뒤엉키는 경향이 있을 것이다. 셋째는 분리 전략이 활용된다. 여기서 분리란 기만자 가 행한 일과 일정한 거리를 두려는 의식적 행동이다. 말 하자면 토요일 밤에 있었던 일을 말하면서, 그러한 일이 발생한 단초를 제공한 책임을 본인도 어떻게 해 볼 도리 가 없는 다른 사람에게로 전가시키는 것이다. 분리 전략 에서 가장 즐겨 쓰는 수법인 ‘무마(leveler)’ 전략은 당시 벌어진 일이 자신의 선택과 관계없는 일이었음을 항변하 면서 그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시키는 방법이다. ‘변 경(modifiers)’ 전략은 달갑지 않은 뉴스나 소식의 강도를 낮추는 전략이다. ‘토요일 밤에 집에 혼자 있으면, 때론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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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움 같은 것이 느껴져’라는 식이다. 넷째, 이미지와 관계를 사수하려는 행동은 증가한다. 기만자는 비언어적 단서의 누설이 자신의 기만행위를 드 러낼 수도 있다는 사실에 각별히 주의한다. 기만행위의 발각은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평판은 물론 관계 자체를 위 협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만행위를 감추고자 갖은 노 력을 기울여도, 기만의 과정에서 야기되는 모든 단서를 차 단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대화 상황에서 기만자는 상대방이 말을 하는 동안 고개를 끄덕이고, 끼어들기를 회 피하며, 자주 웃는 경향성이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행동 의 대부분은 속임수와 기만을 덮기 위한 단순한 목적 지향 적 행위다. 특히 이러한 기만적 전략의 누설은 대화의 상 호작용성이 활발하고, 서로를 잘 알고 있으며, 기만자가 발각에 대한 두려움이 크고, 기만하려는 동기가 이기적이 며, 기만자의 의사소통 능력이 뛰어난 경우에 증가한다.

누설: 진실은 드러날 거야 기만의 징후를 알아내기 위한 방법으로 비언어적인 암시 를 사용한 사례는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에 의해서도 연구되었다. 그는 환자가 느끼는 가장 암울한 생각과 감정에 대해서 진실을 말하려 하지 않는 환자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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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손가락을 뜯는다는 사실을 주의 깊게 관찰한 다음, 인간의 모든 신체 기관에서 진실과 반대되는 단서가 새어 나오게 마련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누설이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서는 사회심리학 자인 마이론 주커먼(Miron Zuckerman)의 4요인 모델을 통해서도 확인해 볼 수 있다. 주커만의 4요인 모델은 다음 과 같다. 첫째, 정보를 통제하고자 하는 기만자의 의도는 지나치 게 능숙하거나 판에 박힌 행동을 자아낸다. 둘째, 거짓말 은 심리적 각성을 일으킨다. 셋째, 기만은 죄의식과 걱정 이라는 감정을 동반한다. 넷째, 기만과 관련한 복잡한 인 지 요소는 뇌의 수용 능력을 넘어서기 때문에 기만자 스스 로를 혹사시키며, 이러한 인지적 과부하는 기만자 자신도 의도치 않은 행동으로 표출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누설의 징후들은 눈 깜박임 증가와 동공 확대, 잦은 말실수(문법 적 실수, 반복, 혀 꼬임), 주저하는 모습 증가(어색한 중단, ‘아, 어, 음’), 높아진 목소리 피치, 언어적·비언어적 채널 의 불일치 증가 등으로 나타난다. 한편, 벌러와 버군은 기만을 당하는 사람은 상대방의 말을 믿으려는 경향성이 있으며, 이는 자신이 거짓말을 당 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난다고 말한다.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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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그라이스(H. P. Grice)는 사람들이 이처럼 잘 속아 넘어가는 이유를 사회적 계약(social contract), 즉 상호 주 고받는 말은 신뢰와 정직을 담보로 한다는 공고한 동의가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어지간한 일이 아니고서는 그러한 계약을 무효로 만들고, 관계를 혼돈에 빠뜨릴 수도 있는 기만행위가 있을 것이라 고 상상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지적 휴리스틱(cognitive heuristic)은 처음부 터 어떤 행위가 기만이라는 사실을 확신하지 않는 한, 대 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의심하지 않고, 그로 인한 갈등이 유발될 가능성을 차단한다고 말한다. 특히, 이러한 현상 은 서로가 잘 알고 있는 사이거나 서로를 좋아하는 사람들 에게서 더욱 자주 발생한다. 가까운 친구나 온정적인 관 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친구나 연인 혹은 가족 구성 원이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이고자 하 는 강한 동기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진실 편향성은 기만적 행위를 포착하지 못하게 하는 동인이 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현 실에서 기만은 만연해 있고, 따라서 진실 편향성을 극복 할 수 있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의심 (suspicion)이다. 의심은 ‘의심하는 상태 혹은 충분한 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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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나 증거 없이 포착된 불신’ 정도로 정의되는 것으로, 이 는 진실과 거짓 그 중간 어디쯤에 존재한다. 상대방을 무 조건 의심하고 기만행위를 적출하기 위해 온갖 인지적 수 단을 동원하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신봉하고 있는 정의 와 진실을 향한 사회적 계약이 언제나 그리고 누구에게나 두루 적용되는 보편적인 현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전제해 야 한다는 것이다.

대인 기만 이론: 용례와 함의 기만행위가 일어나고 있음을 직감할 때, 민감한 반응자들 은 자신이 의심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직접적 인 대면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우에 기만행위를 당하는 사람 대부분은 ‘겉으로는 아무 일 없는 듯 즐거워 보이지만,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교묘하게 인터뷰 스 타일을 채택하게’ 된다. 기만자의 진술에 직접 도전하거나 반박하기보다는 태연하게 웃는 모습을 자주 보임으로써 보다 많은 정보를 획득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러한 응대와 반응이 기만행위를 포착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는 아직까지 경험적으로 입증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기만자의 행위를 더욱 떳떳하게 만들고 능 수능란하게 상황에 대처하게 만듦으로써 기만행위를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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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주는 결과로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기만행위 속에서 드러나는 예기치 못한 발언과 비언어 적 누설 단서들이 전략적 사고와 감정적 스트레스를 자아 내는 것처럼, 기만을 당하는 사람은 평소와 다른 행동을 통해서 의심을 포착하려 한다. 그리고 이러한 단서의 누 설은 기만자가 아무리 능수능란하게 보이도록 노력한다 고 해도 포착할 수 있다. 그러나 기만을 행하는 사람과 당하는 사람이 언제나 힘 의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기만자의 행위에 놀 아나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 과 달리, 기만을 일삼는 행위자들은 그러한 기만 게임의 본질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대개의 경우 그러한 게 임에서 지게 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은 사람들 이다. 이렇듯 기만자는 과도한 기만의 동기를 가지고 있 으며, 상대방이 의심을 하는지 그 여부를 찾아내고 직감하 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상대방이 의심을 하고 있다는 징후를 포착하자마자 상대방의 불신을 누그 러뜨리기 위한 몸에 밴 노력을 하게 되고, 그에 부합하는 적절한 행동을 수반할 수 있게 된다. 기만자는 상대방이 생동감 있는 말과 몸짓으로 자신의 말에 열중할 때, 그와 비슷한 수준으로 몰입하게 된다.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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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비난은 화가 수반되는 반박을 불러일으키며, 유쾌한 질 문은 따뜻한 미소로 돌아온다. 상대방이 의심한다는 느낌 을 감지했을 때, 기만자는 보다 다양한 차원의 커뮤니케이 션 활동을 하고자 한다. 기만행위를 두고 벌어지는 기만자와 반응자 사의의 역 동적인 과정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해 주기 위한 의도로 창 안된 대인 기만 이론이 이론적 완결성을 높이기에는 여전 히 역부족인 측면이 있다. 그것은 기만행위를 수행하는 기만자와 그러한 행위에 반응하는 상대방의 성격, 서로에 대한 믿음의 강도, 나아가 삶의 가치 등 다양한 요인에 따 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만자의 기만행위를 간파 하고자 하는 이 이론이 다소 엉성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 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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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David B. Buller & Judee K. Burgoon(1994). “Deception: Strategic and Nonstrategic Communication”, in Strategic

Interpersonal Communication, John Daly and John Woman (eds.), Lawrence Erlbaum Associates, Hillsdale, NJ, 191∼223. David B. Buller & Judee K. Burgoon(1996). Interpersonal Deception Theory. Communication Theory, 6, 203∼242. Em Griffin(2003). A first look at communication theory. 김동윤ㆍ오소현 옮김(2012). 󰡔첫눈에 반한 커뮤니케이션 이론󰡕. 커뮤니케이션북스. Judee K. Burgoon, David B. Buller, Amy S. Ebesu, Cindy H. White & Patricia A. Rockwell(1996). Testing Interpersonal Deception Theory: Effects of Suspicion on Communication Behaviors and Perceptions. Communication Theory, 6, 243∼267. Judee K. Burgoon, David B. Buller, Laura K. Guerrero, Walid Afifi & Clyde Feldman(1996). Interpersonal Deception: XII. Information Management Dimensions Underlying Deceptive and Truthful Messages. Communication Monographs, 63, 5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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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공간 일탈의 예측치 못한 효과: 기대위반 이론

다른 사람의 상식과 기대를 위반하는 것도 때로는 훌륭한 커뮤니케이션 전략이 될 수 있다. 기대위반 이론은 물리적 공간 규범의 위반 혹은 일탈과 같이 타인의 기대를 벗어나는 행위가 오히려 결과적으로는 커뮤니케이션 반전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말해 준다. 여기서는 개인적으로 선호된 공간에 대한 일탈로 말미암아 야기되는 일정한 심리적 각성이 어떻게 인간관계 형성과 발전을 가져올 수 있는지를 흥미롭게 말해 준다.


물리적 공간과 대인 관계 사람들은 어떤 경우에 다른 사람의 부탁이나 제안을 받아 들일까? 일상의 대인 만남이나 접촉에서 다른 사람의 제 안을 받아들이는 과정에 개입하는 변수는 매우 많다. 설 득 이론은 다른 사람의 신념이나 태도를 변화시킬 것을 주 문하는가 하면, 커뮤니케이션 효과 연구는 효율적인 메시 지와 공신력 있는 커뮤니케이터로 무장할 것을 강권한다. 대인 관계에서 다른 사람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경우에 개 입하는 변수는 말하는 사람의 외모나 어투, 부탁이나 제안 에 동원하는 미디어, 그러한 미디어의 특성을 살릴 수 있 는 메시지, 제안이나 부탁을 들어줄 사람의 취향과 개인적 선호 등 다양하다. 그러나 만약 두 사람 사이에 문화적으로 권장되는 개인 적 공간을 위반하는 일이 자신의 부탁이나 제안을 받아들 이도록 하는 데 탁월한 효과를 가진다면, 일상의 대인 관 계를 유지해 나가는 과정에 이보다 손쉽고 효율적인 방법 은 없을 것이다. 기대위반 이론은 개인의 공간 위반에 관 한 커뮤니케이션 효과 모델의 가능성을 제안하고 있다. 주디 버군(Judee Burgoon)은 대인 상호작용에서 대인 거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담은 ‘개인의 공간 위반에 관 한 커뮤니케이션 모델’의 가능성을 제안했다. 그는 개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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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interpersonal space)을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에서 어떤 개인이 선호하는 일정한 거리 혹은 비가시적 공간의 부피’로 정의했다. 버군은 이러한 개인적 공간의 크기나 모양은 문화적 규범이나 개인에 따라 다양하다고 말하면 서, 이것을 인간이 관계를 맺거나 사회적 삶을 영위하는 데 필수적인 접근과 회피를 적절하게 조절할 수 있는 기제 로 파악했다. 버군이 제안한 개인적 공간 개념은 본래 공간학 (proxemics)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개념은 1960년대 문 화인류학자인 에드워드 홀(Edward Hall)이 인간의 공간 활용에 관한 연구를 수행해 창안한 개념이다. 홀은 인간 의 공간에 대한 해석이 우리의 인식 바깥에서 이루어진다 고 믿고, 󰡔숨겨진 차원(The Hidden Dimension)󰡕을 저술 했다. 홀에 따르면 보통의 미국인들은 네 가지 공간 영역 을 구분해 처신한다. 이는 친밀한 거리(0∼8인치), 개인 적 거리(18인치∼4피트), 사회적 거리(4∼10피트), 공적 거리(10피트 이상)다. 첫째, 친밀한 거리는 다른 사람의 존재가 확연해지고 때로는 크게 증가된 감각 입력 때문에 압도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거리다. 이는 사랑을 나누고, 맞붙어 싸우고, 위로 해 주고, 보호해 주는 등의 행위가 일어나는 거리다. 둘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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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거리는 ‘접촉’을 꺼리는 사람들이 일정하게 유지하 는 거리를 지칭하는 것으로 한 유기체가 자신과 다른 존재 들 사이에 유지하는 작은 보호 영역 또는 보호 거품이다. 이 거리에서는 상대방을 만지거나 잡을 수 있으며, 상대방 의 모습에 대한 시각적 왜곡이 발생하지 않는다. 눈을 조 절하는 근육의 움직임과 피드백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거 리다. 셋째, 사회적 거리는 어떤 특별한 노력이 없는 한 상 대방과 닿지도 않고 그럴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 사람의 머리 크기는 정상으로 지각하지만, 사람의 전체 윤곽을 중 심으로 살필 수 있는 이 거리는 사교 모임에 참석한 사람 들에게 아주 일반적이며, 다른 사람이 있어도 무례하게 보 이지 않으면서도 하던 일을 계속할 수 있다. 넷째, 공적인 거리는 개인적 거리와 사회적 거리로부터 개입 반경을 훨 씬 벗어난 것으로서 중요한 감각적 전이가 생긴다. 이 거 리에서는 정상적인 목소리로 전달되는 미묘한 의미의 음 조차도 상실되며, 모든 언어적, 비언어적 단서들이 과장 되거나 증폭되지 않으면 안 된다. 한편, 이러한 공간에 대한 기대는 문화나 사람마다 다 르며, 따라서 공간의 위반이 상대방에게 가해지는 위협이 나 의미가 다를 수밖에 없다. 버군도 대인 상호작용에서 공간적으로 얼마나 가까이 다가가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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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공간 거리에 따라 상대방에 대한 기대가 달라진다. 1960년대 ‘개인적 공간’ 개념을 창안한 󰡔숨겨진 차원(The Hidden Dimension)󰡕 (1966)의 저자 에드워드 홀(Edward Hall, 1914~2009) ⓒ 커뮤니케 이션북스

한 기대는 없으며, 따라서 공간의 위반은 일반적인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 상황 정도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버군은 어떤 상황에서 사회적 규범과 개인의 기 대를 위반하는 것이 어떤 제안이나 부탁에 대한 순응을 획 득하는 데 더 탁월한 효과를 지닌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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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3> 물리적 공간에 대한 규범적 기대

“이 문구를 읽을 수 있을 정도로는 다가오지 마세요”

출처: 󰡔첫눈에 반한 커뮤니케이션 이론󰡕(김동윤ㆍ오소현 옮김,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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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위반가, 그리고 커뮤니케이터 보상가 버군이 제안한 기대위반에 따른 커뮤니케이션 효과는 절 대적이고 객관적인 보편적 법칙처럼 작동한다고 보기 어 렵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 이론을 통해서 우리가 기억해 야 할 점은 어떤 이론이라고 해서 그것이 절대적이고 보편 타당한 원칙과 원리의 발견만을 지향해야 하는 것은 아니 라는 것이다. 또한 홀의 이와 같은 문화인류학적 발상이 미래 어느 시점에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견고한 이론으 로 변모할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를 방증하기라도 하듯, 기대위반 이론은 버군 이 이 이론을 처음 제안했던 시기보다 최근 들어 더욱 정 교한 모델로 발전해 왔다. 기대위반에 따른 효과의 실효성은 논외로 하고서라도, 주목해야 할 점은 기대위반 효과가 어떠한 메커니즘을 통 해서 발현될 것인가에 대한 버군의 설명 방식이다. 버군 은 기대위반의 작동 기제를 파악하기 위한 핵심 개념으로 ‘기대(expectancy)’, ‘위반가(violation valence)’, ‘커뮤니 케이터 보상가(communicator reward valence)’를 제안 했다. 여기서, 기대란 ‘바람직한 것(what is desired)’이 아니라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 예측하는 것(what is predi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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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occur)’이다. 이러한 기대는 문화적 규범에서 비롯되는 맥락과 유사함, 친밀함, 좋아함 등과 같은 관계, 그리고 나 이, 성별, 출생지와 같은 커뮤니케이터의 특징에 따라 달 라진다. 다음으로 위반가는 기대를 위반한 행동에 내려지 는 긍정적 혹은 부정적 가치를 일컫는 것으로서, 동일한 위반 행동에 대해 어떤 행위자가 위반한 기대는 긍정적인 가치를 지니는데 반해, 다른 행위자는 부정적인 가치를 지 닐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커뮤니케이터 보상가는 위반에 따른 긍정 적 부정적 가치의 합에서 이러한 위반을 용인함으로써 그 커뮤니케이터로부터 미래에 받을 수 있는 보상을 더하거 나 뺀 값이다. 따라서 (위반 행동을 한) 커뮤니케이터 보 상가가 높을수록 이러한 위반은 긍정적인 가치를 가질 것 이고, 따라서 위반은 오히려 상대방의 긍정적인 반응을 초 래할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평소에 성실하 고 모범적인 학생이 교사와 제자 사이에서는 좀처럼 기대 될 수 없는 위반 행동을 했을 때, 이러한 위반가는 긍정적 인 가치로 전환된다. 따라서 이 학생의 위반으로부터 얻 게 될 교사의 커뮤니케이터 보상가는 높아지게 될 것이므 로, 이러한 위반 행동을 병행한 학생의 제안이나 부탁은 교사에게 받아들여지게 될 것으로 예측해 볼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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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 그렇다면 기대위반을 일상에서 어떻게 접목시켜야 하 는가? 이를 위해서는 위반 행위자와 그러한 위반을 받아 들이게 될 행위자 사이의 기대 형식과 내용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우선해야 한다. 그래야 행위자의 기대위반이 위반 에 따른 부정적인 가치를 줄이는 대신 위반에 대한 보상가 를 높이는, 한 마디로 즐겁고 유쾌한 기대위반이 될 수 있 다. 또한 그래야만 기대위반에 따른 커뮤니케이션 효과가 높아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상대방이 나 와의 관계를 어떤 식으로 파악하고 있고, 그러한 관계를 관통하는 이상적인 상황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 다손 치더라도, 기대위반이 일어났을 때 상대방 감정이나 상황과 같은 맥락에 대한 정보가 충분히 주어지지 않는다 면, 예기치 못한 불쾌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상대 방과 맺는 관계에 일정한 긴장감이 흐르고, 위반의 의미와 정당성을 확신하기 어려운 상태에서는 기대위반보다는 기대에 부합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 최선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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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위반 이론: 용례와 함의 기대위반 이론은 버군이 신임 교수로 재직할 당시 강의실 에서 겪은 약간 당혹스러운 개인적 경험을 이론화한 것이 다. 어느 날 버군이 강의실에서 네 명의 학생들로부터 서 로 다른 부탁을 받게 되었는데, 이 중에서 두 학생의 부탁 은 수용했으나, 나머지 두 학생의 부탁은 거절했다는 것이 다. 학생들은 휴식 시간에 부탁을 했고, 유사한 성격의 제 안에 대한 자신의 서로 다른 반응에 스스로도 의아해했다 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안드레라는 학생은 장학금 추천 서를 써달라고 부탁했고, 여학생인 던은 점심식사에 초대 하고 싶다는 부탁을 했다. 버군은 이들의 부탁은 수락했 다. 그러나 다른 수업의 기말보고서 작성에 도움을 청하 는 벨린다의 부탁과 친구들과 함께하는 수구게임에 참석 해 달라는 찰리의 부탁은 거절했다. 강의를 마친 후 연구 실로 돌아와 고민에 빠진 버군이 내린 결론은 학생들이 제 안한 대화상의 거리가 중요한 변수였다는 것이다. 당시의 상황을 돌이켜 보았을 때, 벨린다와 찰리는 버 군이 기대한 상호작용의 범위, 즉 개인의 공간 거리를 적 당하게 위반한 상태에서 부탁을 해온 데 비해, 안드레와 던은 자신의 기대를 확연하게 벗어난, 그래서 ‘위협의 경 계선(threat threshold)’을 넘어선 상태에서 부탁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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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4> 공간 기대와 기대위반

출처: 󰡔첫눈에 반한 커뮤니케이션 이론󰡕(김동윤ㆍ오소현 옮김, 2012)

는 것이다. 그런데 버군의 이러한 설명 방식은 자신의 개 인적 경험에 대한 이색적인 설명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논 리성과 체계성,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개념이나 구체적 인 변수가 제시되지 않았기에 이론으로 인정받기는 어려 웠다. 그러나 버군은 자신의 선택이 평소 학생들에게 가 지고 있던 막연한 감정에서 비롯된 것은 아님을 확신할 수 있었기에 개인적 공간의 침해가 예기치 못한 결과를 가져 왔다는 사실에 더욱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버군은 스스로 설정해 놓은 위협의 경계 선을 넘어선 학생들의 부탁은 들어주었고, 그렇지 못한 학 생들의 부탁은 거절한 셈이다. 한편, 기대와 위반가, 그리고 커뮤니케이터 보상가는 이 상황에서 버군의 선택을 보다 복잡하게 만든다. 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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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는 개별 학생들과 상호작용에서 일정한 공간적 기대 가 있었을 것이다. 통상적인 경우, 교수와 학생의 상호작 용에서 허용되는 공간적 기대는 문화적 규범의 영향을 강 하게 받는다. 또한 기대위반에 따르는 부정적, 긍정적 가 치 역시도 그리 크지 않다. 더불어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서 공동체 규범이 작동하기 때문에 커뮤니케이터 보상가 역시도 여타의 공동체와 견주어 그리 크지 않은 것은 분명 하다. 요컨대, 문화적 규범의 일탈 가능성이 적고, 기대위 반에 따르는 긍정적, 부정적 가치가 크지 않으며, 커뮤니 케이터 보상가 역시 크지 않은 학교라는 공동체와 그 구성 원들의 상호작용에서는 이러한 기대위반에 따른 커뮤니 케이션의 효과가 그리 크지 않을 개연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구성원에 대한 기대가 커서 위반에 따라 부가되는 긍정적 혹은 부정적 가치의 폭이 넓으며, 커뮤니 케이터 보상가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조직 혹은 공동체에 서 기대위반의 효과는 버군이 경험한 것과는 사뭇 다른 방 식으로 전개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문제는 이러한 미시적이고 민감한 감정의 변화를 이론 화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하는 것이다. 대인 관계 의 미시적 역동성에 공간적 거리에 대한 위반이 어떠한 결 과를 가져올 것인지를 미리 간파하거나 그러한 위반이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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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올 효과를 예측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은 이미 그 스스로 가 대인 관계를 다루는 기술이 탁월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 다. 이는 기대위반을 통한 커뮤니케이션 전략 혹은 전술 이 먹힐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에 우선하는 소통 능 력을 견지하지 않으면 안 되므로, 그러한 고도의 대화와 소통 능력을 견지할 수 있을 때라야 유효한 기대위반 전략 을 구사할 수 있다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기대위반은 공간적 거리, 특히 문화적 규범에 서 용인하고 있는 물리적 거리를 위반하는 것이 그것을 알 지 못했다면 불가능할지도 모를 커뮤니케이션을 성사시 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또한 기대를 위반하는 단일한 전략과 전술로서 한계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일상적인 대화와 소통의 과정에 동원하는 전략과 전술 속에 화학적 반응을 일으키게 함으로써 대화와 소통의 효과를 배가시 킬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자신이 상대방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가정 하는 사람들은 위반을 안정적으로 활용함으로써 그로부 터 획득하는 반사이익 역시 더욱 크게 가져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위반을 수반하는 대화와 소통 의 효과는 항상성을 담보할 수 없고, 위반의 내용과 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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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커뮤니케이터의 특성, 상대방의 무드와 기분, 감 정과 같은 무수한 변수들의 최적 조합 속에서 채택될 수 있을 때 소기의 성과를 이룰 수 있다는 점에서 투입되는 수고로움에 비해 얻는 수익이 얼마나 되는가를 반문하게 한다.

참고문헌 Em Griffin(2003). A first look at communication theory. 김동윤ㆍ오소현 옮김(2012). 󰡔첫눈에 반한 커뮤니케이션 이론󰡕. 커뮤니케이션북스. Judee K. Burgoon & Beth A. LePoire(1993). Effects of Communication Expectancies, Actual Communication, and Expectancy Disconfirmation on Evaluations of Communicators and Their Communication Behavior.

Human Communication Research, 20, 67∼96. Judee K. Burgoon & Jerold Hale(1988). Nonverbal Expectancy Violations: Model Elaboration and Application to Immediacy Behaviors. Communication Monographs, 55, 58∼79. Judee K. Burgoon & Joseph Walther(1990). Nonverbal Expectancies and the Evaluative Consequences of Violations.

Human Communication Research, 17, 232∼265. Judee K. Burgoon(1978). A Communication Model of Personal Space Violations: Explication and an Initial Test. Human

Communication Research, 4, 129∼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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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행동을 통한 관계 변화: 인지 부조화 이론

상대방에 대한 태도와 행동의 변화는 무엇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인지 부조화 이론은 인간관계가 단순한 언어적 표현을 통해서보다는 행동이나 실천에 바탕을 둔 심리적, 인지적 부조화와 연결될 수 있을 때, 더욱 발전적일 수 있음을 말해 준다. 여기서는 설득 이론으로 분류되는 인지 부조화에 바탕을 둔 태도와 행동의 변화 기제가 어떻게 인간관계의 문제와 접목될 수 있으며, 그것이 왜 중요한지를 안내해 준다.


태도 변화의 원천: 인지 부조화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예상치 못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 리고 그러한 경험은 우리에게 심리적 불균형을 야기시키 고, 이렇게 되면 사람들은 그러한 불균형을 균형 상태로 되돌리고자 한다. 이러한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 이 견지했던 기존의 태도를 버리고, 그러한 경험에 기반한 새로운 태도를 가지게 된다. 요컨대, 인지 부조화를 극복 하기 위한 방법의 일환으로 자신의 기존 태도나 신념을 버 리게 되는 것이다. 인지 부조화에 기반한 태도 변화는 머리 위에 탐스럽게 매달린 포도를 따먹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여우가 자신의 손이 닿지 않게 된다는 것을 깨닫고는 ‘저 포도는 신 포도 일거야’하고 체념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이솝 우화에 나 오는 ‘신포도 이야기’와 그 맥을 같이 한다. 사실상 여우에 게 포도 따먹기는 포기한 것이 아니라 좌절된 것이다. 여 우의 태도는 좌절에서 오는 심리적 불편함을 덜 느끼기 위 해서 애써 신 포도 운운하면서 좌절에 대한 유별난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는 의식적인 노력의 결과인 것이다. 그러 나 어쨌거나 여우가 포도에 대해 가졌던 기존의 태도는 ‘탐스런 포도’에서 ‘신 포도’로 바뀐 것이다. 인지 부조화 이론이 세계적으로 각광받게 된 것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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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이 주는 교훈에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기존의 태도 이론은 사람의 행동을 바꾸는 것은 태도 변화를 통해 서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인지 부조화는 태도 변화 가 행동의 변화를 이끈다기보다는 행동의 변화가 태도 변 화를 초래하고, 이것이 다시 행동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 다는 것을 잘 말해 주고 있다. 이를테면, 여우가 만약 포도 를 따먹으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면, 여우에게 포도는 여 전히 탐스러운 포도로 남아 있을 것이며, 큰 이변이 없는 한 여우에게 포도는 달콤한 어떤 것으로 남아 있었을 것이 기 때문이다. 반대로, 여우가 포도를 신 포도로 급격한 태 도의 변화를 보일 수 있었던 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손에 닿지 않는 포도의 유혹으로부터 자신의 심리적 부조화를 완화 혹은 해소시키기 위한 불가피한 인지적 선택이며, 이 는 행동이 태도 변화를 이끄는 증거인 셈이다. 레온 페스팅거(Leon Festinger)는 이와 같은 심리적 부 조화를 기피하고자 하는 욕구는 배고픈 사람이 포만감을 원하는 것만큼이나 당연하다고 말한다. 심리적 균형을 유 지하도록 하는 일종의 기피 욕구가 우리의 행동이나 신념 마저도 변화시키게 하는 자극제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사안이 중요하거나 행동과 신념 사이의 불일치 간극 이 클수록 그에 따른 심리적 부조화는 더욱 크다고 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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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5> 인지부조화: 행동을 통한 태도변화

“이제부터는 예전의 설득 방법은 포기해. 사람들이 캠프파이어 불을 끄지 않으면 네가 물어버려.” 출처: 󰡔첫눈에 반한 커뮤니케이션 이론󰡕(김동윤ㆍ오소현 옮김, 2012)

다. 그리고 이러한 부조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더욱 큰 폭의 태도 변화를 요구받는다.

부조화 요인과 부조화 해소법 인지 부조화에서 말하는 부조화란 단순히 인지 요소들의 불일치 차원을 넘어 그것을 해소하려고 하는 동기까지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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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 부조화 이론’을 주창한 레온 페스팅거(Leon Festinger, 1919~ 1989) ⓒ 커뮤니케이션북스

결될 수 있을 때 태도의 변화를 기대해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태도와 행동 변화로 나아가기 위한 인지 부조화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조건을 필요로 한다. 첫째, 인지 부조화는 타인의 영향력이나 압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그러 한 부조화가 타인의 영향력과 압력에 따른 것일 때에는 그 러한 부조화의 원인을 그것에 돌려버려 태도나 행동 변화 의 동기화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어떤 결정이 내려지고 나면 그러한 결정을 번복할 수 없어야 한다.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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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할 수 있다면, 그 결정을 취소하고 나면 부조화가 자연 스럽게 해소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셋째, 부조화에 대한 정당화 혹은 합리화의 기제가 적어야 한다. 만약 부조화 에 대한 정당하고 합당한 논리가 있을 경우, 부조화의 원 인을 거기로 돌리기 때문이다. 한편, 페스팅거는 사람들에게 일상에서 겪게 되는 심리 적 부조화를 증폭시키는 정보를 기피하려는 경향성이 있 다고 주장한다. 즉,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과 일치하는 의 견은 환영하려 하며, 자신의 믿음에 부합하는 정보에 노출 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유유상종 의 모임을 통해 심리적 평안을 유지하려는 욕구가 강한 반 면, 심리적 불편함을 야기하는 모임은 꺼리게 된다는 것이 다. 사람들의 이러한 심리적 부조화 회피는 다양한 차원 에서 논의될 수 있겠으나, 다음의 세 가지는 가장 대표적 인 방법으로 손꼽힌다. 첫째는 (정보에 대한) 선별적 노출을 통해 불일치를 회 피하는 방법이다. 여기서 선별 노출이라 함은 다양한 정 보들 가운데, 자신이 원하는 혹은 자신의 기존 입장을 뒷 받침하는 정보를 취사선택함으로써 심리적 부조화를 회 피하는 경향성을 말한다. 둘째는 어떤 사안에 대한 결정이 내려지고 난 후에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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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되는 부조화를 줄이는 방식은 기존의 결정이 더 나은 결 정이었음을 재확신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그 결정이 중 요할수록, 결정에 투입한 시간이 길수록, 그리고 한 번 내 려진 결정을 번복하기 어려울수록 결정에 따르는 심리적 긴장감은 더욱 커진다. 이러한 요소들은 결국 결정에 따 른 부조화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방식의 정보 추구 활동을 하도록 하며, 결정이 옳은 것이었음을 지지받으려는 동기 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셋째는 어떤 결정에 대한 보상이 최소한으로 주어졌을 때, 그러한 결정에 따른 행동의 변화를 기대해 볼 수 있다 는 것이다. 이는 어떤 결정에 따른 보상이 충분하게 주어졌 을 경우, 그것만으로도 그러한 결정에 대한 정당화 요인이 되어 태도 변화의 동기가 주어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결정에 대한 보상과 정당화의 근거가 불충분하거나 최소한으로 주어졌을 경우, 기대했던 보상이나 정당화 수 준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태도 변화를 수반한다는 것이다. 페스팅거는 인지 부조화 이론을 검증하기 위해 이른바 ‘1달러, 20달러’ 실험을 고안했다. 이 실험은 스탠퍼드대 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행한 ‘실패 감기 실험’이다. 실 험참여자들은 실험실에서 실을 감는 실패를 오른 쪽 방향 으로 4분의 1 정도를 감아야 하는 지겨우면서도 반복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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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6> 인지부조화 모델

출처: 󰡔첫눈에 반한 커뮤니케이션 이론󰡕(김동윤ㆍ오소현 옮김, 2012)

작업을 수행해야 했다. 한 시간쯤 경과한 다음 한 연구진 이 피험자에게 다가가서 의외의 부탁을 한다. 부탁 내용 은 ‘오늘 조교가 학교에 나오지 않았으니 대신해서 실험실 바깥에 대기하고 있는 다른 실험 참여자들에게 이 실험은 매우 재미있는 실험’이라고 말해 달라는 것이었다. 실험의 내용을 감안해 볼 때, 이 부탁은 실험 참여자들의 태도와 는 상반되는 일종의 거짓말인 셈이다. 더불어 그 부탁을 흔쾌히 받아들여 거짓말에 열정적으로 참여한 사람에게 는 20달러는 준다고 약속하고, 미온적으로 참여한 사람에 게는 1달러를 준다고 약속했다. 부탁을 받은 실험 참여자 가운데, 여섯 명은 거짓말 부탁에 동참하지 않은 반면, 대 부분의 학생들은 실험이 재미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실험 의 결과는 매우 흥미로웠다. 20달러를 받기 위해 거짓말 을 한 실험 참여자는 실험이 정말 재미없다는 사실을 고백 한 반면, 1달러를 받고 거짓말을 하지 않은 실험 참여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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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 감기가 의외로 재미있다고 고백했다. 결국 20달러를 받은 사람은 자신이 거짓말을 한 대가를 충분하게 받았으므로 심리적 불일치를 느끼지 않은 사람 이며, 따라서 실패 감기에 대한 자신의 기존 태도를 바꿀 동기가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는 반대로, 1달러 를 받고 거짓말을 한 실험 참여자는 거짓말에 대한 대가치 고 1달러는 너무 적은 보상이었으므로 자신의 거짓말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주어지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거짓말 에 대한 정당화 근거가 충분하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실패 감기에 대한 자신의 기존 태도를 바꾸지 않을 경우 심리적 부조화가 고조되게 마련이다. 결국 1달러를 지급 받은 실험 참여자들은 이러한 심리 부조화를 해소하기 위 해 자신의 태도를 변화시킨 셈이다. 그 일이 정말 재미있 었다는 것이다.

인지 부조화 이론: 용례와 함의 인지 부조화 이론은 상대방의 태도변화를 이끌어내기 위 한 효율적인 설득 전략을 다루는 설득 커뮤니케이션 이론 이다. 그런데 대인 관계 역시도 처음 만남부터 관계로 이 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장기간의 만남과 접촉 과정을 통해서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며, 이 과정에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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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들은 필수적으로 인지적 불일치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부조화 경험은 곧바로 관계의 단절이나 철 수로 이어지지 않고, 일정한 조정과 조율의 과정을 거치는 데, 이 과정에서 상대방에 대한 기존 태도를 버리고 새로 운 태도를 견지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렇게 볼 때, 부조화를 통한 설득의 과정은 곧 대인 관계 맺기의 과정과 유사하며, 관계의 단절은 곧 이러한 부조화 이후에 심리적 균형을 획득하지 못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인지 부조화와 부조화의 극복을 위한 심리적 메커니즘 으로서 태도 변화와 그 과정이 대인 관계 형성에 시사하는 바는 다양한 차원에서 검토할 수 있겠으나, 무엇보다 다음 의 두 가지 차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하나는 태도의 변 화가 행동의 변화를 촉발시키는 것이 아니라 행동의 변화 가 태도의 변화를 이끈다는 것이다. 기존의 설득 이론은 어떤 사람의 행동 변화는 그에 선행한다고 생각되는 태도 의 변화가 있어야 가능한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인지 부 조화는 어떤 사안에 대한 결정(행동)은 다양한 조건에서 결정 행위자의 심리적 부조화를 경험하도록 하고, 이러한 부조화의 경험이 결국 자신의 기존 태도를 변화시킨다는 것을 잘 말해 주고 있다. 앞서 제시한 여우가 처음에는 맛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포도를 신 포도일 것이라고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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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바꾼 것은 포도를 따먹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고 난 뒤에야 얻게 된 교훈인 것이다. 이처럼 행동이 태도 변화를 이끈다는 것은 대인관계에 서 상대방의 마음은 자신을 향한 상대방의 태도를 변화시 키려 하기보다는 마음을 담은 행동과 실천을 통해서 더욱 성공적으로 움직이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 방식은 대체로 편지로 자신의 사랑 을 고백하기보다는 행동으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는 경 우다. 다만, 이때 사랑의 표현이 상대방의 심리적 부조화 경험과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자극제로 적합한 것이 되도 록 설정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최소정당화 혹은 불충분한 정당화 가설이 다. 자신의 고백이 상대방의 심리적 부조화 경험에 성공 적이었다고 가정할 때, 상대방에 대한 사랑 고백이 가져다 줄 보상이 지나치게 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칫 상 대방에게 사랑의 승낙을 통해 얻게 될 보상이 지나치게 크 다고 인식하게 할 경우, 상대방은 이러한 부조화의 원인이 바로 자신에게 되돌아올 보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오인하 게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사랑의 고백으로 심리적 부 조화를 겪고 있는 상대방이 스스로 그 사랑에 의미를 부여 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작지만 남다른 사랑 정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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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Dolf Zillmann & Jennings Bryant(1985).(eds.), Selective Exposure

to Communication. Lawrence Erlbaum Associates, Hillsdale, NJ. Eddie Harmon-Jones & Judson Mills(1999). “An Introduction to Cognitive Dissonance Theory and an Overview of Current Perspectives on the Theory”, in Cognitive Dissonance:

Progress on a Pivotal Theory in Social Psychology,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Washington, DC, 3∼24. Eddie Harmon-Jones & Judson Mills(1999).(eds.), Cognitive

Dissonance: Progress on a Pivotal Theory in Social Psychology.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Washington, DC. Em Griffin(2003). A first look at communication theory. 김동윤ㆍ오소현 옮김(2012). 󰡔첫눈에 반한 커뮤니케이션 이론󰡕. 커뮤니케이션북스. Leon Festinger & James Carlsmith(1959). Cognitive Consequences of Forced Compliance. Journal of Abnormal

and Social Psychology, 58, 203∼210. Leon Festinger(1957). A Theory of Cognitive Dissonance. Stanford University, Stanford, 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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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인간관계의 강자: 구성주의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의 차이는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구성주의는 역할 범주 설문을 통해 측정된 구성 분화의 정도와 인지적 복잡성을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결정짓는 기제로 파악한다. 여기서는 구성 분화 정도가 높아 인지적으로 복잡한 사람이 사람 중심의 수사적 메시지를 고안해 낼 수 있는 논리적 근거가 무엇인지를 설명해 줌과 동시에 그들이 왜 인간관계의 절대 강자가 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인지적 구성과 분화 사람들은 저마다 머릿속에 가지고 있는 개념의 상이 다를 뿐더러 그러한 개념을 표현하는 방식도 다른데, 제시 딜리 아(Jesse Delia)는 이를 개념 구성의 차이로 설명한다. 여 기서 구성이란 실재를 우리의 지각에 짜 맞추는 모형을 일 컫는데, 사람마다 이러한 구성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람들의 머릿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어떤 생각 을 가지고 있는지 직접적으로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은 없 다. 오늘날에는 신경과학이나 뇌과학의 발달로 감각기관 이나 뇌의 특정 부위가 어떤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지에 대 해 좀 더 진화된 지식이 축적되어 있는데도, 그런 기능과 기능이 어떠한 구조와 논리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블랙박스로 남아 있다. 인간의 신체와 지적 능력을 관장하는 뇌에 대한 관심은 더욱 증가하고 있다. 설문조사나 기능적 자기공명영상 (MRI)은 뇌 속을 직접 들여다보고 그 속에서 어떤 일이 일 어나고 있는지 관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고안된 최선의 간접적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설문조사 역시 특정 한 문항에 대한 높은 점수를 부여하거나 특정한 반응에 대 해 뇌의 어떠한 부위가 활성화되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 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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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기능과 활성화의 차이가 인지적 반응을 달리하게 된다 는 것인데, 이러한 차이가 학습능력과 행동의 차이를 촉발 하는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인 커뮤니케 이션 영역에서 이러한 구성의 차이는 커뮤니케이션 능력 의 차이를 가져오고, 이는 나아가 커뮤니케이션 능력의 산 물이라고 할 수 있는 대인 관계의 형성 및 유지와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역할범주 설문(Role Category Questionaire)은 구성주 의자가 이와 같은 뇌의 인지적 반응을 알아보기 위해 개발 한 기법이다. 역할범주 설문은 이러한 대인 간 구성의 차 이를 식별할 수 있는 핵심 장치로 의미를 구성할 수 있는 일종의 도구상자다. 예컨대, 어떤 사물에 대해 ‘따뜻한-차 가운’, ‘좋은-나쁜’, ‘빠른-느린’ 과 같은 상반된 용어의 쌍으 로, 그 사물을 구분하는 데 사용하는 대조적 특성이 바로 역할범주라는 도구상자를 통해 추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인 간 구성의 차이를 알아보기 위한 도구로서 역할범 주 설문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진행될 수 있다. 먼저, 평 소에 잘 알고 지내는 또래들을 떠올려본다. 그런 다음, 이 들 가운데 좋아하는 한 사람과 싫어하는 한 사람을 선정한 다. 일단 두 사람을 마음에 두고 나면, 그들의 성격이나 습 관, 신념, 다른 사람을 대하는 방식 등을 서로 비교하고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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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 본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비롯 한 모든 범위의 특징을 집어낸다. 이러한 과정이 끝나면 종이를 꺼내 5분 동안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 그를 모르는 다른 사람이 읽어도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도록 묘사한 다. 단, 그가 가진 신체 특징을 언급해서는 안 되며, 그의 태도와 예의, 타인에 대한 반응을 파악할 수 있는 특징을 중점적으로 언급해야 한다.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묘사가 끝났다면, 이제는 싫어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동일한 절차 와 방식으로 묘사를 진행한다. 이러한 역할범주 설문을 통한 인지적 구성 측정 방식은 다소 비과학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지극히 과학적인 접근 방식이며, 정치학 연구에서도 즐겨 사용되고 있다. 이를 테면, 우리는 어떤 정치가를 판단할 경우 ‘자유주의-보수 주의’, ‘정직한-악덕한’, ‘유능한-무능한’ 과 같은 양 극단의 척도를 가지고 판단을 내린다. 정치적 통찰력이 뛰어난 관찰자는 이런 미묘한 차이를 기술하는 데 필요한 수십 개 의 해석적 정향을 동원하게 된다. 이를테면, 보수주의 중 에서도 절충적 사회보수주의자와 호전적 보수주의를 세 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정치적 으로 정교하지 못한 판단을 가졌다면, 어떤 대상이나 실재 에 대한 개념적 구성으로 흑백 논리에 근접한 인지적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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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동원할 것이다. 그래서 구성주의에 따르면, 인지적 구 성이 복잡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미묘한 차이를 식별할 수 있는 정교한 관찰자이며, 이러한 구성 분화의 차이를 통해 인지적 복잡성을 측정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역할범주 설문을 통한 인지적 복 잡성의 측정을 인성검사를 비롯한 다른 성격검사와 혼돈 해서는 안 된다. 조사에 따르면, 역할범주 설문을 통해 도 출된 점수는 지능, 감정이입, 쓰기 능력, 외향성에 영향을 미치는 독립변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측정이 단순한 수다나 개념화의 측정 도구일 뿐이라고 평 가절하하기도 하지만, 구성주의자들은 이러한 인지적 복 잡성이 단순한 개념화 능력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확신 한다.

인지 복잡성과 정교한 커뮤니케이션 구성주의 주장의 요체는 인지 복잡성이 발달한 사람은 그 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커뮤니케이션 능력에 강점이 있다 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인지적 구성이 보다 복잡한 사람 은 자신의 커뮤니케이션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 더욱 정 교한 메시지를 구성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다. 이는 곧 인지적 구성 능력의 차이가 대인 커뮤니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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션에 필요한 메시지 구성 능력의 차이를 초래한다는 의미 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교한 메시지의 구성 능력인데, 구성주의자들은 이를 ‘사람 중심 메시지(person-centered messages)’를 구성할 수 있는 능력과 다양한 목표 추구가 가능한 메시지 구성 능력으로 구분한다. 먼저, 정교한 커뮤니케이션의 전형인 ‘사람 중심 메시 지’는 ‘커뮤니케이션 맥락에 부합하는 주관적, 정서적, 관 계적 측면을 고려한 사려 깊은 메시지’를 일컫는다. 말하 자면, 화자가 메시지를 구성하는 데 상대방의 메시지에 반 응하는 방식을 평가하고, 그에 맞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인지적 복잡성이 높은 사람일 수록 이러한 평가와 조절이 능숙하다. 이는 특정한 커뮤 니케이션 상황과 맥락에 부합하는 전략적 적응과 일치하 는데, 통상적으로 어린아이에서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메 시지의 구성 능력이 높아진다는 사실과, 또래집단 가운데 인지적 복잡성이 높은 아이가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사람 중심 메시지’를 구성할 수 있는 능력이 더욱 앞선다 는 결과를 통해 구성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이론적 가정을 확신한다. 다음으로 인지 복잡성이 높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 에 비해 다양한 목표 추구가 가능한 메시지를 구성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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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능력에서도 우위를 보인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어떤 메시지를 구성할 때 한 번에 하나의 목적을 추구하기 도 어려운 마당에 복수 혹은 그 이상의 다양한 목표를 염 두에 두고 메시지를 고안해 낼 수 있는 능력은 인지적 복 잡성, 즉 인지적 구성이 정교하게 분화되지 않으면 기대하 기 어렵다. 예컨대, 미혼의 여성이 유부남 사장으로부터 제안 받은 점심식사 자리에서 성적 농담을 들어야 하는 상 황을 가정해 보자. 아무 잘못이 없는 이 여성이 위기로부 터 온전하게 벗어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유 념해야 한다. 하나는 당연히 성희롱의 위기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원만한 직장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 사장의 인격에 가급적이면 손상을 주지 않아야 한다. 구 성주의자는 이러한 상황에서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목표를 추구할 수 있는 사람 중심의 정교한 메시지 를 구성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인지적 복잡성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다만 인지적 조건은 그러한 위기를 벗어나기 위 한 필요조건은 맞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사실을 염두 에 둘 필요가 있다. 구성주의자들은 인지적 구성의 분화가 보다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이끌 수 있는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는 설명할 수 없었다. 즉 두 변인 사이의 관련성을 발견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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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7> 인지적 복잡성에 기반한 커뮤니케이션

출처: 󰡔첫눈에 반한 커뮤니케이션 이론󰡕(김동윤ㆍ오소현 옮김, 2012)

지만, 그 작동 원리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었다는 것이 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딜리아의 동료인 바버라 오키프 (Barbara O’Keefe)는 사람들의 커뮤니케이션 작동 원리 를 다음의 세 가지 메시지 ‘고안 논리(message design logic)’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첫째는 표현적(expressive) 고안 논리다. 표현적 고안 논리를 작동시키는 사람들은 언어를 ‘생각과 감정을 표현 하는 매개체’로 본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생각이나 감 정을 상대방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말을 건넨다. 그들이 발화하는 유일한 목적은 개방적이고 정직한 커뮤니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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션에 있으며, 다른 세부 목적을 달성하려는 계획은 애초에 잘 하지 않는다. 이들은 변호사, 정치가, 판매원, 목사와 같은 사람들의 말을 잘 믿지 않으려는 경향이 높다. 말 그 대로, 표현적 고안 논리는 말하는 사람의 생각과 입장, 감 정 그리고 정서의 전달에 충실하려 한다. 둘째는 규범적(conventional) 고안 논리다. 이 논리를 따르는 사람들은 커뮤니케이션을 ‘사회규범적 규칙과 절 차를 준수하는 협력적 게임’이라 생각한다. 이들은 적절성 을 가미해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수행하고자 하며, 자 신의 생각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단순히 전달하기보다는 사회적 규범과 원칙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 한다. 셋째는 수사적(rhetorical) 고안 논리다. 이 고안 논리에 익숙한 화자들은 자신의 주장이나 입장 이외에 커뮤니케 이션 맥락을 반영한다. 이들은 커뮤니케이션이 ‘사회적 자 아와 상황(맥락)의 창조물이자 협상물’이라 가정하는데, 이는 의미의 조정 관리 이론에서 제시한 ‘대화 상황에 놓 인 사람’과 거의 유사한 개념이다. 즉 어떠한 사회적 실재 가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자신과 타인의 대화 과정에서 공동으로 구성돼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수사적 고안 논리에 민감한 화자는 표현적 고안 논리에도 익숙할 뿐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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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적 구성의 분화는 보다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이끌 수 있다. 이 러한 커뮤니케이션 작동 원리를 세 가지 메시지 ‘고안 논리(message design logic)’라는 개념으로 설명한 바버라 오키프(Barbara O’Keefe) ⓒ 커뮤니케이션북스

니라 규범적 간섭을 채택하는 데에도 탁월한 능력을 가지 고 있다. 더불어 어떤 갈등이 야기되었을 때 그러한 갈등 상황을 재규정하는 데 유용하고 참신한 메시지를 고안해 낼 수 있는 걸출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요약하면, 수사적 고안 논리는 자신에게 일방적으로 가해지는 권력을 다른 방향으로 분산시키면서도 그 속에서 조화와 일치를 추구 하는 방식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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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주의: 용례와 함의 그렇다면 수사적 메시지 고안 논리에 기반한 정교한 커뮤 니케이션은 커뮤니케이션 결과에 어떤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게 하는가? 이 문제는 인지적 복잡성, 수사적 고안 논리, 정교한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유익한 결과라고 하 는 선순환적 사슬 구조를 확인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딜 리아는 다음 세 가지 관점에서 정교한 커뮤니케이션의 유 익한 결과를 말한다. 첫째, 위안 메시지(comforting message)다. 위안은 타 자에 의해 촉발된 감정적 고민을 완화하기 위한 것이다. 예컨대, 상처 입은 누군가의 생각과 감정을 위로하는 상황 에서 위로를 전하는 메시지로 ‘이별에 당황하거나 슬퍼할 필요가 없어. 바다에 많은 물고기가 있듯이 세상엔 남자 들이 넘쳐나’라는 식으로 구성할 수도 있다. 또는 ‘이런 일 이 생길 것은 예감했지만, 그래도 이별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야. 어쩌겠어? 헤어짐도 관계의 일부라고 생각해’와 같이 구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다 정교한 메시 지는 상처 입은 사람의 감정을 인정하면서도 그러한 상황 에 대한 부가적인 관점을 제공해 주는 방식을 채택한다. 이를테면, ‘이번 일이 심한 상처가 될 거란 걸 잘 알고 있 어. 넌 지금 많이 아프고 화가 나 있어. 왜냐면 그만큼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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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좋아했으니까. 너흰 오랜 시간 함께 있었고, 그리 고 이 일이 다른 식으로 해결될 수 있기를 기대했는데’라 는 식이다. 이렇듯 정교한 메시지는 조금 서툰 사회적 지 지보다 편안하게 다가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적재적소 에 적절한 단어를 활용해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 만으로도 큰 위안이 될 것이다. 둘째, 관계 유지(relationship maintenance)다. 관계 유 지는 관계 발전과는 다른 차원으로, 자발적인 관계는 상호 매력과 자기 노출 그리고 불확실성의 감소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일단 관계가 형성되고 나면, 이것을 온전하게 유지 시키기 위해 주기적으로 관계를 확인하는 과정이나 문제 가 생겼을 때 이를 해결해 주고 서로에게 격려와 위안을 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어떤 사람은 다른 사 람에 비해서 대인 관계 기술이 뛰어나기 마련인데, 정교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보다 가까운 우정 관계를 더욱 잘 유 지하도록 하는 데 높은 적응력을 보이게 된다. 셋째, 조직적 효율성(organizational effectiveness)이 다. 그러나 조직적 효율성은 일회적인 정교한 메시지만으 로 달성되는 것은 아니다. 즉 조직 효율성과 성과는 사람 중심적 커뮤니케이션의 지속적 실천을 통해서 달성될 수 있으며, 이는 실제 연구를 통해서도 입증되었다. 예를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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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8> 구성주의와 커뮤니케이션

출처: 󰡔첫눈에 반한 커뮤니케이션 이론󰡕(김동윤ㆍ오소현 옮김, 2012)

면, 미국 동부의 보험회사에 종사하는 직장인 90명을 대 상으로 한 연구에서 인지적 복잡성, 다른 사람의 의견을 수용하는 능력,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높은 사람들 이 회사 내에서 보다 높은 지위를 차지하며, 이들의 업무 수행 능력 또한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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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구성주의의 주장대로 정교한 화자가 되기 위해서 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제 기된다. 구성주의의 핵심 주장에 견주어 볼 때, 결국 이 질 문은 구성의 분화를 촉진시키고, 인지적 복잡성을 촉진시 키는 방법은 무엇인가로 귀결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구 성 분화와 인지적 복잡성은 결국 정교한 커뮤니케이터로 거듭나는데 필수적인 요소이므로, 이 질문은 어떻게 하면 정교한 커뮤니케이터가 될 수 있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종합해 보면,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정교한 커뮤니케이터 가 되기 위한 구성 분화와 인지 복잡성을 증진시킬 수 있 는 방안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예컨대, 어려서부터 다양한 분야의 독서를 많이 하는 경우 는 어떤 현상을 그리고 표현하는 과정에 동원할 수 있는 개념의 수가 많을 것이다. 그리고 삶의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과 만남이나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는 것 역시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외에도 구성 분화와 인지 복 잡성 수준이 높은 사람과의 만남이나 지속적인 상호작용, 그러한 상호작용이 일상화된 환경 속에서 자신의 구성과 인지를 정교하게 가다듬을 수 있는 충분한 기회의 획득, 그리고 생활이 상대적으로 단조로운 시골문화보다는 복 잡다단한 도시문화에서 겪게 되는 일상 경험도 정교한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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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니케이터로 진화하는 데 매우 유리한 전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추론은 일반적으로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사람은 복잡하게 얽힌 작업 환경, 역할 체계, 사회적 기대를 받는 환경에 살고 있으며, 이러한 환경이 그들에게 보다 더 복잡한 사회에서 복잡한 생각과 대화를 하게 해 주는 기회를 제공해 주며, 그 결과로 인지적 복잡성을 수 단으로 한 수사적 메시지와 그에 기반한 정교한 커뮤니케 이션, 그리고 유익한 결과 사이의 선순환 구조의 혜택을 누리게 된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그러 한 경험과 환경, 그리고 기회를 충분하게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정교한 커뮤니케이터가 될 기회가 적을 수밖에 없고, 이는 곧 상대적 박탈감으로 다가갈 수 있다. 커뮤니 케이션 구조와 생태의 불평등이 생산되고 재생산될 수 있 다는 점에서 우리의 고민은 더욱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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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Brant Burleson & Scott Caplan(1998). “Cognitive Complexity”, in

Communication and Personality: Trait Perspectives, James McCroskey, John Daly, and Matthew Martin (eds.), Hampton Press, Cresskill, NJ, 233∼286. Brant R. Burleson & Michael S. Waltman(1988). “Cognitive Complexity: Using the Role Category Questionnaire Measure”, in A Handbook for the Study of Hu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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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윤 대구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다. 커뮤니케이션 이론을 비롯해 영상학과 저널리즘 등을 가르친 다. 경남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에서 언 론학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 션연구소 전임 연구원, 한국언론학회 연구이사, 한국방송학회 이사 및 산학협력위원을 역임했다. KBS 뉴스 옴부즈맨 위원과 TBC 대구방송 시청자 위원을 맡고 있다. 저서로 󰡔무료신문 연구󰡕(공저)와 󰡔뉴스수용자의 진화󰡕(공저) 등이 있고, 역서로 󰡔첫눈에 반한 커뮤니케이션 이론󰡕(공역), 󰡔사 회자본󰡕(공역), 󰡔저널리즘학 핸드북󰡕(공역) 외 다수가 있다. 주 요 논문으로 “가상공간에서의 정치토론과 시민적 태도”, “가상 공간 내 정치토론, 의견의 질, 그리고 시민참여”, “미디어와 사회 자본의 관계” 등 다수가 있다.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를 생활 과학 혹은 일상 철학으로 정착시키는 데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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