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영 동화선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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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님의 첫사랑

장미꽃



세계지도를 펴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북극과 남극을 잇는 넓고 넓은 푸른 바다가 보이고, 그 푸른 바다 한 가장자리 에 ‘공주님의 첫사랑’이라는 다소 이상한 나라의 이름이 보입니다. 무슨 영화 제목 같기도 하고 전래 동화의 제목 같기도 한 이상한 이름 때문인지, 그 나라에는 세계 각국에서 많 은 관광객이 몰려옵니다. 얼마나 많이 오는지, 그곳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려면 1년 전에 예약을 하고 기다려야만 합니다. 나도 꼬박 1년 3개월을 기다린 후에야 그곳으로 가는 비행기를 탈 수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이름이 다소 이상하다고 해서 이 나라가 세상 의 다른 나라들과 그렇게 많이 다른 것은 아닙니다. 이 나 라도 세상의 모든 나라처럼 하늘에는 흰 구름이 떠 있고, 들에서는 곡식들이 자라고,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공부하 고 있답니다. 또 공원에는 두 줄기로 갈라지며 떨어져 내리는 분수가 있고, 수천 마리 비둘기들이 노인과 아이들이 던져 주는 콩을 주워 먹으며 아장거립니다. 화려한 극장에서는 예술 가들이 공연을 하고, 박물관에는 조상들이 남긴 유물이 유 리관 속에 잘 보관되어 있습니다. 굳이 특별한 점을 찾아본다면, 이 나라 사람들이 유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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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꽃을 좋아한다는 것이지요. 다른 나라에서는 큰 집을 가지고 있거나 큰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존경을 받지 만, 이 나라에서는 아름다운 꽃밭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존경을 받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어린이들에게 장래 소 원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다른 나라의 아이들처럼 대통 령, 장군, 사장이라고 말하거나 혹은 탤런트, 운동선수라 고 말하지 않고, 아름답고 큰 꽃밭의 주인이라고 대답합니 다.

이 나라를 처음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신문이나 방송들 이 누구네 꽃밭에 무슨 꽃이 피었으며, 그 꽃의 향기가 얼 마나 달콤한가 하는 것들을 톱기사로 다루고 있는데 놀라 곤 하지요. 그러나 놀라는 것도 잠시뿐, 관광객들은 나라 안에 가득한 꽃향기에 취해서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 를 끄덕입니다. 예부터 꽃을 좋아하는 사람은 싸우는 법이 없다더니, 이 나라에는 싸우는 사람이 통 없어서 감옥들이 텅텅 비어 있습니다. 물론 경찰관들은 할 일이 없어서 빈둥빈둥 놀 고요. 그래서 나라에서는 오래전에 감옥을 양계장으로 개 조하고, 경찰관들에게는 관광객들에게 윙크를 보내는 새 로운 임무를 맡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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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세상의 모든 일이 다 그러하듯이, 이 나라의 평 화가 그냥 온 것은 아닙니다. 전설에 의하면 100년 전까지 만 해도 이 나라는 세상에서 아주 시끄러운 나라 중 하나 였다고 합니다. 1년 열두 달 싸움이 그칠 날이 없는 나라, 매일같이 청년들과 경찰이 무슨 원수나 만난 듯이 싸우는 나라였다고 합니다. 젊은이들이 돌멩이를 던지면 경찰은 몽둥이를 휘둘렀 습니다. 젊은이들이 불덩이를 던지면 경찰은 독가스를 터 뜨렸습니다. 그리고 상황이 더 악화되면 경찰은 젊은이들 에게 화살을 쏘았습니다. 그래서 이 나라의 많은 젊은이 들이 가슴에 화살을 맞고 쓰러져 갔다고 합니다. 이렇게 싸움이 수백 년을 계속되는 동안 나라의 모든 가정에서는 남편과 아내가 싸우고, 부모와 자식이 싸웠습 니다. 학교에서는 스승과 제자가 싸우고, 직장에서는 사 장과 사원이 싸웠습니다. 온 나라가 한 덩어리의 큰 싸움 터였습니다.

임금님은 기분이 언짢았습니다. 임금님은 성품이 점잖은 분이었기 때문에 싸움 같은 것 은 딱 질색이었습니다. 그래서 시끄러운 나랏일은 총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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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게 맡기고 자신은 아름다운 음악이나 들으며 지냈습 니다. 그런데 임금님이 음악이나 들으며 지낸다고 걱정거 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임금님에게는 또 하나 의 걱정거리가 생겼습니다. 바로 무남독녀 공주님이었습 니다. 임금님은 슬하에 왕자님도 없이 공주님 한 분만 두셨는 데, 그 공주님이 임금님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 것이었습니 다. 공주님은 아름답고 상냥스럽긴 했지만, 이상한 버릇 이 하나 있었습니다. 툭하면 변장을 하고 아무도 몰래 궁 전을 빠져나가 백성들이 사는 마을로 내려가 밤새도록 놀 다가 새벽녘에나 궁궐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교육부 대 신이 조사해서 올린 이런 내용의 보고서를 볼 때마다 임금 님은 길고 흰 수염을 부르르 떨면서 화를 내셨습니다. “일국의 공주가 품위도 없이 호위병을 거느리지 않고 저잣거리를 쏘다니다니! 짐은 선조들을 뵐 면목이 없도 다!” 점잖은 임금님은 그런 모습의 공주를 상상만 해도 수치 스러워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습니다. 임금님은 또한 명예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었습니 다. 그래서 더 나쁜 소문으로 왕실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 기 전에 서둘러 공주를 결혼시키기로 작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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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님은 은밀하게 외국 여러 나라에 친선 사절단을 파 견해, 공주님의 아름다운 미모와 상냥한 성품을 선전케 했 습니다. 임금님이 파견한 친선 사절단이 열심히 활약한 결과 많은 나라에서 청혼이 들어왔습니다. 신랑 후보자들은 모두 훌륭해 보였습니다. 그중에는 외 모가 잘생긴 왕자도 있었고, 무술이 뛰어난 왕자도 있었으 며, 학식이 많은 왕자도 있었습니다. 또 황금이 많은 나라 의 왕자도 있었고, 넓은 땅덩어리를 가진 큰 나라의 왕자 도 있었습니다. 임금님은 흡족했습니다. 어떤 신랑감이라도 말썽꾸러 기 공주를 시집보내기엔 과분해 보였으니까요. 그런데 당 사자인 공주님은 이렇게 훌륭한 왕자들 앞에서 시큰둥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젊은이가 많은데, 왜 하필이면 다른 나 라 남자와 결혼을 해야 하나요? 나는 싫어요. 절대로 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임금님은 슬펐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임금님이 세상을 떠나셨습니 다. 갑작스러운 슬픔에 왕비님도 병이 나서 돌아가셨습니 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공주님이 왕위에 오르게 되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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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 여왕님이 된 공주님은 나랏일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습 니다. 왕위에 올라 뭐가 뭔지 몰라 어물어물하는 사이에 시위대가 궁궐 앞 광장까지 들이닥쳤습니다. 시위대 수천 명이 매일 궁궐 앞 광장으로 몰려와서 외쳐 대는 것이었습 니다. 여왕님이 총리대신을 불렀습니다. “총리대신! 저 사람들이 뭐라고 외치는 겁니까?”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빵을 달라고 합니다.” 총리대신이 머리를 조아리고 공손히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어서 빵을 주도록 하세요.”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빵을 주면 행복을 달라고 할 것 입니다.” “그러면 행복을 주면 되지요.”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행복을 주면 폐하의 목숨을 달 라고 할 것입니다.” 말을 해 놓고 총리대신은 곧 후회했습니다. 여왕이지만 아직 어린 처녀인데, ‘목숨을 달라’는 말에 얼마나 놀랐을 것입니까? 그래서 사려 깊은 총리대신은 다시 고쳐 말했 습니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백성들이란 끊임없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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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구하는 무리인 줄로 아뢰옵니다.” 그러나 여왕님은 고개를 갸웃하며 총리대신에게 물었 습니다. “왕의 목숨이 정말로 백성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나요?”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만약에, 왕의 목숨이 백성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면, 왕의 목숨을 그들에게 주는 것이 당연하지요.” 총리대신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이렇게 아무 것도 모르는 왕을 모시고 나랏일을 해 나갈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교수 출신이었으므로 나라의 법조문을 어린 여왕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쉽게 설 명할 수 있었습니다. “폐하의 목숨은 곧 나라의 목숨입니다. 폐하가 없으면 나라도 없는 것입니다. 백성은 폐하를 위해 죽고 사는 무 리인 줄로 아뢰옵니다.” “이상한 말이군요. 어떻게 한 사람을 위해 수십만 명이 죽을 수 있다는 건가요? 그런 바보 같은 짓이 세상에 어디 있어요?” 총리대신은 멍하니 여왕을 바라보았습니다. 이런 철부 지 왕을 모시고 나랏일을 해 나갈 생각을 하니 가슴이 터 질 지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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