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계급의식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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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schichte und Klassenbewusstsein 역사와 계급의식


제1장 정통 마르크스주의란 무엇인가

철학자들은 지금까지 세계를 다양하게 해석만 해 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 −마르크스,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


정통 마르크스주의란 무엇인가? 본래는 무척이나 단순한 이 문제는, 부르주아 진영 내에서도 프롤레타리아 진영 내에서 도 다양한 논의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러나 점차 정통 마르 크스주의에 대한 신앙고백을 비웃음으로 맞이하는 것이 학 문적인 품위에 어울리는 일이 되기 시작했다. 어떠한 주장들 이 마르크스주의의 정수를 이루는가, 따라서 ‘정통’ 마르크스 주의자로 간주될 권리를 상실하지 않고서도 어떠한 주장들 을 비판하거나 심지어는 거부해도 ‘좋은가(dürfen)’라는 문 제에 관해서, ‘사회주의’ 진영 내에서조차도 커다란 의견의 불일치가 지배하는 듯이 보였다. 이로 말미암아, ‘편견 없이’ ‘사실’을 탐구하는 데 몰두하지 않고, 현대의 연구에 의해 부 분적으로는 ‘극복된’ 낡은 저작들의 글귀들을 마치 성경 구 절처럼 꼬치꼬치 따져서 해석하고 그 저작들 속에서 그리고 그것들 속에서만 진리의 샘을 찾으려 하는 것은 더욱더 ‘비 과학적인’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문제가 이런 식으로 제 기된다면, 동정 어린 웃음이 이것에 대한 가장 적절한 답이 되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문제가 그렇게 단순하게 제 기되지는 않는다(또 결코 그렇게 제기되어 오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최근의 연구에 의해 마르크스의 개별 진술들 전부 가 사실적으로 부정확하다는 것이 이론의 여지 없이 증명되 었다고−비록 인정할 수는 없지만−가정하더라도, 진지한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라면 누구나 이 모든 새로운 성과들을 거리낌 없이 인정하고 마르크스의 개별 주장들 전부를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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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을 것이며,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마르크스주의적 정통성(Orthodoxie)을 한순간이라도 포기할 필요는 없을 것 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통 마르크스주의는 마르크스의 연 구 결과를 무비판적으로 인정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이 런저런 주장에 대한 ‘믿음’이나 어떤 ‘신성한’ 책의 해석을 의 미하지도 않는다. 마르크스주의의 문제에서 정통성이란 오 로지 방법에만 관련된다. 정통성은 변증법적 마르크스주의 속에서 올바른 연구 방법이 발견되었으며 이 방법은 오직 그 창시자들[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정신(Sinn)에 따라서만 확 장되고 확대되고 심화될 수 있다는 과학적 확신이다. 또한 그것은 그 방법을 극복하거나 ‘개선’하려는 모든 시도는 결 국 천박화, 진부함, 절충주의로 귀착(歸着)되어 왔고 또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과학적 확신이다.

1. 이론과 실천: 변증법적 방법의 의미 유물[유물론적] 변증법이란 혁명적 변증법이다. 이 정의(定 義)는 무척이나 중요하고 유물변증법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아주 결정적이기 때문에, 문제에 대한 올바른 입장을 획득하 기 위해서는 변증법적 방법 자체를 다루기 전에 이 정의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론과 실천의 문 제이다. 더욱이 이는 단순히 마르크스가 자신의 최초의 헤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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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에서 표현하듯이, “이론이 대중을 장악하는 순간, 그것 은 물질적 힘으로 된다”49)는 의미에서만은 아니다. 오히려, 이론 및 변증법적 방법을 혁명의 차량[전달 수단, Vehikel]으 로 만드는 그런 계기들과 규정[規定, Bestimmungen]들이 이 론에서도, 또 [이론의] 대중 장악 방식에서도 모두 발견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론의 실천적 본질이 이론으로부터, 그리 고 이론과 그 대상과의 관계로부터 전개되지 않으면 안 된 다. 왜냐하면,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 ‘대중 장악(Ergreifen der Massen)’이란 공허한 환영(幻影)일 수 있을 것이기 때문 이다. 즉, 대중은 완전히 다른 추진력에 의해 운동하고 완전 히 다른 목표를 향해 행동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 론은 대중의 운동에 대해서 순전히 우연적인 내용만을 의미 하거나 대중이 사회적으로 필연적이거나 우연적인 자기들 의 행위(Handeln)를 의식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이 의식 화의 활동(dieser Akt des Bewußtwerdens)이 그 행위 자체와 본질적이고 현실적으로 결합되지 않은 채로−형식만을 의 미하게 될 것이다. 마르크스는 같은 논문에서 이론과 실천의 그러한 관계가 가능하기 위한 조건들을 분명히 말했다. “사상(思想)이 현실 을 향해 다가가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고, 현실 스스로가 사 상을 향해 다가가지 않으면 안 된다.”50) 또는 보다 초기의 편

49) 마르크스, <헤겔 법철학 비판 서론>, 전집 1, 3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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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렇게 되면, 세계는 오래전 부터 어떤 한 사상(事象, eine Sache)에 관한 꿈을 가져 왔는데 세계가 그것을 현실적으로 가지려면 그것에 대한 의식[자각] 을 갖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 분명해질 것이다.”51) 의식이 현 실에 대해 이러한 관계를 맺을 때 비로소 이론과 실천의 통일 이 가능하다. 즉, 이론의 혁명적 기능의 전제인 이론과 실천의 통일이 비로소 가능하게 되는 때는, 의식화(Bewußtwerden) 라는 것이 역사 과정이 자기의 고유한 목표−인간의 의지들 로 구성되지만 인간의 자의(恣意)에 의존하지 않으며 인간 정신에 의해 고안된 것이 아닌 목표−를 향해 내딛어야 할 결정적 걸음을 의미할 때, 이론의 역사적 기능이 이 걸음을 실천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것일 때, 사회에 대한 올바른 인 식이 어떤 계급에게는 투쟁에서의 자기 확보를 위한 직접적 조건으로 되는 역사적 상황이 주어져 있을 때, 이 계급에게 는 자기인식이 동시에 전 사회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의미할 때, 따라서 그러한 인식에서는 이 계급이 인식의 주체이자 동시에 객체로 되고 이리하여 이론이 사회의 변혁 과정에 직 접적이고 적절하게 관여해 들어갈 때다. 바로 이러한[이론과 실천의 통일이 가능하게 되는] 상황

50) 같은 책, 386쪽. 51) 마르크스, <≪독불 연보≫에서 뽑은 편지들>[<마르크스가 루게 에게 보낸 편지>, 1843년 9월], 전집 1, 3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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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프롤레타리아트가 역사 속에 출현함으로써 발생했다. 마 르크스에 따르면, “프롤레타리아트가 지금까지의 세계 질서 의 해체를 선언할 때, 그는 자기 자신의 현존재(Dasein)의 비 밀을 언명하는 데 불과하다. 왜냐하면 프롤레타리아트가 바 로 이 세계 질서의 사실적인 해체이기 때문이다.”52) 이것을 언명하는 이론은 다소간 우연적으로, 또는 여러 갈래로 얽히 고 오해된 관계들을 통해 혁명과 결합되는 것이 아니다. 오 히려 그 이론은 본질상 혁명적 과정 자체의 사상적 표현 외 의 다른 것이 아니다. 혁명적 과정의 각 단계는 일반화되고 전달되며 이용되고 계승될 수 있도록 이론 속에서 고정된다. 이론이란 바로 하나의 필연적 단계를 고정하고 의식화한 것 이기 때문에, 그것은 동시에 뒤따라올 다음 단계를 위한 필 연적 전제가 되기도 한다. 이론의 위와 같은 기능을 분명히 하는 것이 또한 이론의 이론적 본질을, 즉 변증법의 방법을 인식하기 위한 길이기도 하다. 이런 절대적으로 결정적인 점을 간과함으로써 변증법 적 방법에 관한 논의에 많은 혼란이 초래되어 왔다. 왜냐하 면, 우리가 ≪반뒤링론(Antidühring)≫에서의 엥겔스의 논 의들−[마르크스] 이론의 보급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논 의들−을 비판하고 그것들을 불완전하다고, 아니 심지어는

52) 마르크스, <헤겔 법철학 비판 서론>, 전집 1, 391쪽. 이 문제에 관 해서는 이 책의 제3장 <계급의식>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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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충분하다고 여기든지 아니면 고전적이라고 여기든지 간 에, 어쨌든 인정해야만 할 것은 그것들 속에는 바로 이 계기 가 없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엥겔스는 ‘형이상 학적’ 방법과 대립시켜 변증법적 방법의 개념 형성을 기술하 면서 다음과 같은 것을 아주 선명하게 강조한다. 즉, 변증법 에서는 개념들의(그리고 이것들에 대응하는 대상들의) 경직 성이 용해된다는 것, 변증법은 하나의 규정에서 다른 규정으 로 유동하며 이행하는 끊임없는 과정이고 대립물들의 중단 없는 지양이며 상호 침투라는 것, 따라서 일면적이고 경직된 인과관계는 상호작용으로 교체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다. 그러나 엥겔스는 역사 과정에서의 주체와 객체의 변증법 적 관계라는 가장 본질적인 상호작용을 방법론적 고찰의 중 심−그것에 합당한 지점−에 끌어넣기는커녕 언급조차 하 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이 규정이 없이는 변증법적 방법은 아 무리 ‘유동하는(fließend)’ 개념들 따위를 유지한다 하더라도 −물론 궁극적으로는 겉보기의 유지에 불과하겠지만−더 이상 혁명적 방법이 아니게 된다. 그렇게 되면 ‘형이상학’과 의 다음과 같은 차이점이 없어지게 된다. 즉, 모든 ‘형이상학 적’ 고찰에서는 고찰의 객체(Objekt)나 대상(Gegenstand)이 건드려지지 않고 변화되지 않은 채로 있어야만 하고 따라서 고찰 자체가 단순한 관조에 머무르며 실천적으로 되지 못하 는 반면, 변증법적 방법에게는 현실의 변혁이 중심 문제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의 중심 기능이 고려되지 않는다면,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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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하는’ 개념 형성이라는 장점은 전적으로 문제가 있게 되고 순전히 ‘학문상의’ 일로 되어 버린다. 방법은 현실에 대한 중 심적 태도에 대해, 즉 현실을 변혁 가능한 것으로 파악할 것 인지 아닌지에 대해 아무런 관계도 없이, 학문상의 입장 여 하에 따라서 받아들여지거나 거부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의 추종자들 중에서 이른바 마흐주의자들이 보여 주었던 것처럼, 현실의 불가침투성과 숙명론적인 변혁 불가 능성, 즉 부르주아적인 관조적 유물론 및 이와 내적으로 연 관된 고전경제학적 의미에서의 현실의 ‘법칙성’은 더욱더 강 화되기까지 할 것이다. 마흐주의53)가 똑같이 부르주아적인 주의주의(主意主義, Voluntarismus)를 낳을 수도 있다는 것 은 이런 사실에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 숙명론과 주의주의는 비변증법적이고 비역사적인 방식으로 고찰할 때에만 서로 배타적인 대립물로 보인다. 변증법적 역사관으로 보면, 양자 는 상호 필연적으로 연관된 양극단임이 증명되며, 자본주의

53) (옮긴이 주) 에른스트 마흐(Ernst Mach, 1838∼1916)와 리하르트 아 베나리우스(Richard Avenarius, 1843∼1896) 등을 대표자로 하여 19 세기 말에 주로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생겨난 실증주의적 철학사 상. ‘경험비판론’이라고도 일컫는다. 마흐는 프라하와 비엔나에서 물리학과 과학철학을 담당한 교수였다. 그는 정교한 신칸트주의적 입장에서 당시의 조야한 실증주의를 비판했다. 즉, 기계론적 이론 및 유물론적 이론의 밑바탕에 있는 가정인 물질 및 ‘실체’의 존재를 부 인함으로써 그 이론들을 공격했다. 마흐의 사상은 오스트리아 사회 민주주의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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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사회 질서가 적대 관계(敵對關係, Antagonismus)를 내포 하고 있고 자본주의적 사회 질서의 문제들이 그 사회 질서 자신의 지반 위에서는 해결 불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히 표현 해 주는 사상적 반영물임이 증명된다. 그렇기 때문에, 변증법적 방법을 ‘비판적으로’ 심화하려 는 모든 시도는 불가피하게 천박화로 귀착된다. 왜냐하면 모 든 ‘비판적’ 입장의 방법적 출발점은 바로 이 방법과 현실, 사 유와 존재의 분리이기 때문이다. 그런 입장은 바로 이 분리 를 진보로, 즉 마르크스적 방법의 조야하고 무비판적인 유물 론에 대해서 진정한 과학성을 도입한다는 의미에서 공적(功 績)으로 평가되어야 하는 진보로 생각한다. 물론 이렇게 생

각하는 것은 자유다. 그러나 확실히 해 두어야 할 것은, 그런 입장은 변증법적 방법의 가장 내면적인 본질을 이루는 그런 방향 속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에 관해서 마르크스와 엥 겔스는 오해의 여지 없이 의견을 밝혔다. 엥겔스에 따르면 “이리하여 변증법은 외부 세계의 운동과 인간 사유의 운동 의 일반 원칙들(Sätze)−사실상은 동일한 두 계열의 법칙들 −에 관한 학문으로 환원된다.”54) 또는 마르크스가 훨씬 엄 밀하게 표현하는 바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모든 역사적 · 사 회적 과학에서와 마찬가지로 경제적 범주들의 진행에서도 항

54) 엥겔스,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언≫, 전집 21, 293쪽(강조는 루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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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확실히 해 두어야 할 것은, 범주들은 [특정 사회의] 현존재 의 형식들, 실존의 규정들을 표현한다는 것이다.”55) 만약 변증법적 방법의 이런 의미가 모호해진다면, 변증 법적 방법 자체는 불가피하게 마치 마르크스주의적 ‘사회학’ 이나 ‘경제학’의 불필요한 부속품이나 단순한 장식물인 것처 럼 보일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냉철하고’ ‘편견 없는’ ‘사실’ 탐구에 대한 방해물이나 공허한 구성물인 것처 럼 보이며 마르크스주의는 이 공허한 구성물을 위해 사실 에 대해 폭력을 가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베른슈타인 (Bernstein)은 부분적으로는 철학적 지식들에 의해 전혀 방 해받지 않은 그의 ‘무편견’ 때문에, 변증법적 방법에 대한 이 런 반론을 가장 분명하게 언명했고 가장 선명하게 정식화(定 式化)했다. 그렇지만 그가 헤겔주의의 ‘변증법적 함정’으로

55) 마르크스, ≪정치경제학 비판≫, 전집 13, 637쪽(강조는 루카치). [루 카치는 ‘실존의 조건들(Existenzbedingungen)’이라고 인용했으나 전집 원전에는 ‘실존의 규정들(Existenzbestimmungen)’로 되어 있 다−옮긴이] 이와 같이 방법을 사회 · 역사적 현실에 한정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변증법에 관한 엥겔스의 서술에서 생겨나는 오해는 본질적으로 엥겔스가 헤겔의 잘못된 예에 따라 변증법적 방법을 자 연 인식에까지도 확장한다는 데 기인한다. 변증법의 결정적인 규정 들, 즉 주체와 객체의 상호작용, 이론과 실천의 통일, 사고에서 범주 들의 변화의 기반인, 범주들의 기체(基體)의 역사적 변화 등의 규정 들은 자연 인식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유감스럽게도 여기서는 이 문제를 상세히 논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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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터 방법의 해방이라는 이러한 자기 입장에서 이끌어 내 는 실질적인, 즉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결론들은 이 길이 어 디로 가는지를 분명하게 보여 준다. 즉, 기회주의의 이론, 사회주의로의 혁명 없는 ‘발전’ 및 투쟁 없는 ‘자연 성장 (Hineinwachsen)’ 등의 이론을 앞뒤가 맞게 뒷받침하려면, 다름 아닌 변증법을 사적 유물론의 방법으로부터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2. 사실과 총체성: 자연과학과 변증법 그런데 여기에서 즉시 다음과 같은 의문이 제기된다. 수정주 의의 모든 문헌에서 우상처럼 숭배되는 이른바 사실이란, 방 법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행 동에 방향을 부여해 주는 요인들을 그러한 사실 속에서 얼마 만큼 찾아낼 수 있는가? 말할 것도 없이 모든 현실 인식은 사 실에서 출발한다. 문제 되는 것은 오로지, 어떠한 생활의 소 여(所與, Gegebenheit)가 어떠한 방법적 맥락에서, 인식에 대해 중요한 사실로서 고찰될 가치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물론 편협한 경험주의는, 사실이란 그러한−인식 목적에 따 라 다른−방법적 가공(加工) 속에서만 비로소 사실로 된다 는 것에 이의를 제기한다. 편협한 경험주의는 모든 소여, 모 든 통계학적 숫자, 경제생활의 모든 원사실(原事實, fact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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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tum) 속에서 자신에게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여기에서 간과되고 있는 점은, ‘사실들’을 아무리 단 순하게 열거하고 아무리 주석 없이 나열할지라도 그것은 이 미 하나의 ‘해석’이라는 점, 즉 여기에서도 이미 사실들은 어 떤 이론이나 방법에 의하여 파악되었으며 그것들이 원래 있 어 왔던 생활의 맥락에서 떨어져 나와 이론의 맥락에 끼워 맞춰졌다는 점이다. 보다 세련된 기회주의자들은, 모든 이론 에 대한 그들의 본능적이고 뿌리 깊은 혐오에도 불구하고, 이 점에 대해 결코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자연과학의 방법에, 즉 자연과학이 관찰과 추상과 실험 등을 통해 ‘순수한’ 사실들을 발견하고 그것들 사이의 연관을 구 명하는 방식에 호소한다. 그리고 그들은 이러한 인식의 이상 (理想)을 변증법적 방법의 [그들이 보기에] 폭력적인 구성 (Konstruktion)에 대비시킨다. 그러한 [자연과학의] 방법이 얼핏 보기에 매혹적인 것은, 자본주의의 발전 자체가 그러한 고찰 방식을 받아들일 소지 가 아주 많은 사회 구조를 산출하는 경향을 지녔기 때문이 다. 그러나 우리는 바로 여기에서 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 그 런 식으로 생산된 사회적 가상(假象, Schein)에 굴하지 않고 이 가상의 배후에서 본질을 파악할 수 있기 위해 변증법적 방법을 필요로 한다. 결국 자연과학의 ‘순수한’ 사실들이 성 립하는 것은, 어떤 생활 현상의 법칙성이 다른 현상에 의한 착란을 받지 않고 구명될 수 있는 그런 환경에 그 생활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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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현실적으로, 또는 사고상으로 놓임으로써 가능하다. 이 러한 [순수한 사실의 성립] 과정은 생활 현상이 숫자 및 숫자 관계로 표현되는 순전히 양적인 본질로 환원됨으로써 더욱 강화된다. 여기에서 기회주의자들이 항상 간과하는 점은 현 상들을 이러한 방식으로 생산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본질에 속한다는 점이다. 마르크스는 노동을 다루는 데에서 이러한 생활의 ‘추상 과정’을 철저히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여 기에서 문제 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역사적 특유성이라 는 점도 역시 철저하게 지적하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 “이 처럼 가장 보편적인 추상은 일반적으로 가장 풍부한 구체적 발전이 있는 곳에서만, 즉 하나가 여럿에 공통적인 것으로, 나아가 모두에 공통적인 것으로 나타나는 곳에서만 발생한 다. 그렇게 되면 그 하나는 더 이상 단지 특수한 형태로만 사 유 가능한 것은 아니게 된다.”56) 그런데 자본주의 발전의 이 러한 경향은 한층 더 나아간다. 경제 형태가 물신숭배적(物 神崇拜的, fetischistisch) 성격을 띠고 모든 인간관계가 사물

화(事物化, Verdinglichung)되며, 생산 과정이 추상적 · 합리 적으로 분해되고 직접 생산자들의 인간적 가능성과 능력에 무한한 분업이 끊임없이 확대됨에 따라, 사회 현상과 사회 현상에 대한 의식적 지각(意識的 知覺, Apperzeption)이 동 시에 변화된다. 이리하여 ‘고립된’ 사실, 고립된 사실 복합,

56) 마르크스, ≪정치경제학 비판≫, 전집 13, 6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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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의 법칙을 가진 부분 영역들(경제, 법 등)이 발생하는데, 이것들은 그 직접적 현상 형태에서 이미 그러한 [자연]과학 적 탐구를 위해 준비되어 있는 듯이 보인다. 그래서 사실들 자체에 내재하는 이러한 경향을 끝까지 사고해서 과학으로 끌어올리는 일이 특별히 ‘과학적’이라고 여겨질 수밖에 없 다. 반면에 이 모든 고립되고 또 고립시키는 사실들과 부분 적 체계들에 대비해서 전체의 구체적 통일성을 강조하고 이 가상(假象)이 가상임을−물론 자본주의에 의해 필연적으로 산출된 가상임을−폭로하는 변증법은 단순한 [자의적] 구성 (Konstruktion)인 듯한 인상을 준다. 따라서 겉보기에 그토록 과학적인 듯한 이런 방법의 비 과학성은, 그것이 자기의 근저에 놓여 있는 사실들이 지니는 역사적 성격을 간과하고 등한시한다는 데에 있다. 그러나 여 기에는 엥겔스가 확고하게 주의를 기울였던 단지 하나의 [그 런 고찰(방법)에 의해서 항상 간과된] 오류의 원천만 있는 것 이 아니다. 이 오류의 원천의 본질은 통계와 통계에 근거를 둔 ‘정밀한’ 경제적 이론이 항상 발전을 뒤늦게 따라간다는 점이다. “따라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시대의 역사를 고찰하 는 경우에는 흔히, 결정적 요인인 이것을 불변적인 것으로 취급하고 해당 기간의 처음에 있었던 경제적 상황을 전 기간 에 걸쳐 주어져 있고 또 불변적인 것으로 취급하거나, 아니 면 명백히 드러나 있는 사건들 자체로부터 발생하며 따라서 역시 명백히 밝혀져 있는 [경제] 상황의 변화만을 고려할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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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밖에 없게 될 것이다.”57) 이러한 고려 속에서 벌써 드러나 는 사태는,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가 자연과학적 방법을 받아 들일 소지가 있다는 것이야말로, 이러한 [자연과학적] 정밀 성(Exaktheit)의 사회적 전제야말로 문제가 있는 것이라는 사태다. 다시 말해서 ‘사실들’의 내적 구조와 사실들의 연관의 내적 구조가 본질상 역사적이라면, 즉 끊임없는 변혁 과정에 사로잡혀 있다면, [엥겔스가 지적한 오류보다] 한층 큰 과학적 오류는 어느 때 범해지는가 하는 점이 바로 문제가 된다. 내가 ‘사실들’을 어떤 대상성의 형태(Gegenständlichkeitsform) 속 에서, 또 법칙들−내가 이 법칙들이 이러한 사실들에 대해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는 방법적 확신을(또는 적어도 개연성 을) 가질 수밖에 없는 그런 법칙들−에 의해 지배되는 것으 로 파악할 때인가? 아니면 내가 이러한 사태로부터 결론을 이끌어 내고, 앞서 말한 방식으로 획득할 수 있는 ‘정밀성’을 처음부터 비판적으로 고찰하며, 이 역사적 본질, 이 결정적 변화를 현실화하는 계기들에 주목할 때인가? 과학에 의해 그토록 ‘순수하게’ 파악되는 듯이 보이는 저 ‘사실’이 갖는 역사적 성격은 더욱더 치명적인 방식으로 대

57) 엥겔스, <마르크스의 ≪프랑스의 계급투쟁≫에 붙인 서론(Einleitung)>, 전집 22, 509∼510쪽. 그러나 ‘자연과학적 정밀성’은 바 로 요소들의 ‘항상성(恒常性)’을 전제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방법적 요청은 이미 갈릴레이가 설정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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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된다. 즉, 사실은 역사 발전의 산물로서 끊임없는 변혁에 사로잡혀 있을 뿐만 아니라 사실은−바로 그것의 대상성의 구조에서−자본주의라는 특정한 역사적 시대의 산물이다. 그렇다면, 사실이 직접적으로 주어지는 방식을 과학적으로 중요한 사실성(事實性)의 기반으로 인정하고 그런 사실의 대상성 형태를 과학적 개념 형성의 출발점으로 인정하는 저 ‘과학’이란, 단순히 그리고 독단적으로(dogmatisch) 자본주 의 사회라는 지반 위에 서 있으며, 자본주의 사회의 본질, 그 것의 대상 구조(Gegenstandsstruktur), 그것의 법칙성을 ‘과 학’의 불변의 토대로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셈이다. 이 러한 [과학이 보는] ‘사실’로부터 진정한 의미의 사실로 나아 갈 수 있으려면, 사실의 역사적 제약성(Bedingtheit) 자체가 통찰되어야 하며 사실을 직접적으로 나타나도록 하는 그 관 점이 버려져야 한다. 즉 사실 자체가 역사적 · 변증법적인 취 급을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마르크스가 얘기하듯이 “경제 적 관계들이 피상적으로 나타내 보이는 기성(旣成)의(fertig) 형태, 즉 그것들이 실재적인 실존(reale Existenz)58) 속에서,

58) (옮긴이 주) 실존(實存, Existenz)이란 현실적인 존재라는 의미다. 보 통은 시간 및 공간 내의 개체적 존재를 의미하지만 스콜라 철학 이래 이 말은 본질에 대립되는 말로 사용된다. 플라톤 이래 본질이 실존에 우선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지만 실존주의에서는 인간은 우선 실존하고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자기를 구성하기 때문에 “실존은 본 질에 우선한다”(사르트르)고 한다. 따라서 실존주의에서의 실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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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관계들의 담지자와 대행자가 이것들을 이해하고 자 갖게 되는 표상들(Vorstellungen) 속에서 나타내 보이는 형태는 내적이고 본질적이면서도 감춰져 있는 그것들의 핵 심 형태 및 이에 상응하는 개념과는 매우 다르며 사실상 이 와 반대되고 대립되기”59) 때문이다. 따라서 사실들이 올바 르게 파악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그것들의 실재적 실존과 내적 핵심 형태, 그것들에 관해 형성된 표상과 그것들의 개 념 사이의 이런 구별이 분명하고 정확하게 파악되어야 한다. 이 구별이야말로 진실로 과학적인 고찰의 첫 번째 전제다. 마르크스의 말에 따르면, 과학적 고찰은 “사물의 현상 형태

인간의 고유한 존재 방식을 일컫는다. 이 책에 나오는 실존은 실존철 학의 실존과는 다르다. 헤겔의 ≪논리학≫은 크게 ‘존재론’, ‘본질론’, ‘개념론’으로 나뉘고 ‘본질론’은 다시 ‘자기 내 반성으로서의 본질’, ‘현상’, ‘현실성’으로 나 뉘며 ‘실존’은 ‘현상’ 내의 한 항목이다. 쉽게 얘기하면, 실존이란 외 적으로는 다른 것들과 연관되면서, 세계를 구성하는 독립적 요소로 서 존재하는 낱낱의 사물들을 가리킨다. 반면에 현실성은 본질과 현 상의 통일, 즉 본질적 관계 속에 있는 사물들이다. ‘현상(실존)’에서 ‘현실성’으로 넘어가는 데 매개가 되는 것이 바로 ‘본질적 관계(전체 와 부분, 힘과 발현, 내면과 외면 등의 관계)’다. 59) 마르크스, ≪자본론≫ 제3권, 제1부, 전집 25, 219쪽. 비슷하게는 53, 324쪽 등. 이렇게 실존(이것은 가상, 현상, 본질이라는 변증법적 계기 들로 나뉜다)과 현실성을 구별하는 것은 헤겔의 ≪논리학≫에서 유 래한다. ≪자본론≫의 개념 구성 전체가 얼마나 강하게 이러한 구별 에 기초해 건축되어 있는가는 유감스럽게도 여기서는 상론할 수 없 다. 또 이와 같이 표상과 개념을 구별하는 것도 헤겔에게서 유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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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본질이 직접적으로 일치한다면 불필요할 것이다.”60) 따 라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한편으로는 현상들을 직접적 으로 주어지는 형태로부터 떼어 내는 것, 그것들을 그 핵심 내지는 본질과 연관시켜 주고 핵심 내지 본질을 파악하도록 해 주는 매개를 찾아내는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들의 이러한 현상적 성격, 즉 그것들의 가상(假象, Schein)을 필연 적인 현상 형태로서 이해하는 것이다. 이 형태는 현상들의 역사적 본질 때문에, 즉 그것들이 자본주의 사회의 지반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필연적이다. 직접적 존재를 이처럼 이중적 으로 규정하는 것, 즉 그것을 인정하는 동시에 지양하는 것 이 바로 변증법적 관계이다. 바로 이 점에서 ≪자본론≫의 내적 사유 구조는 피상적인 독자들, 자본주의적 발전의 사고 방식에 무비판적으로 사로잡혀 있는 독자들에게는 지극히 큰 어려움을 야기해 왔다. 그도 그럴 것이 한편으로는 [≪자 본론≫의] 서술은 모든 경제 형식들을 극단으로 밀고 나가 서, 사회를 ‘이론에 상응하는’ 것으로, 따라서 철두철미 자본 주의화되어 순전히 자본가와 프롤레타리아로만 구성되는 것으로 묘사함으로써 그 형식들이 완전히 순수하게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고상의 환경을 창출한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이 고찰 방식이 어떤 성과를 달성하자마자, 이 현 상 세계가 이론으로 응결되는 듯이 보이자마자, 이렇게 획득

60) 마르크스, ≪자본론≫, 제3권, 제2부, 전집 25, 8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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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 성과는 즉시 해체되어 단순한 가상으로, 전도된 관계의 전도된 반영으로, 즉 ‘가상적 운동의 의식적 표현에 불과한’ 반영으로 되어 버린다. 사회생활의 개개의 사실들을 역사적 발전의 계기로서 총 체성(Totalität) 속으로 통합하는 이러한 연관 속에서야 비로 소 사실들의 인식은 현실의 인식이 될 수 있다. 이런 인식은 방금 특징지어진 단순하고 (자본주의 세계 속에서) 순수하 며 직접적인 자연적 규정들로부터 출발하여 구체적 총체성 의 인식, 즉 현실의 사고상(思考上)의 재생산으로 나아간다. 이 구체적 총체성은 결코 직접적으로 사고에 주어지지 않는 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구체적인 것이 구체적인 이유는 그 것이 많은 규정들의 총괄체이며 따라서 다양한 것의 통일체 이기 때문이다.”61) 관념론은 여기에서 이러한 현실의 사고 상의 재생산 과정을 현실 자체의 구성 과정과 혼동하는 착각 에 빠진다. 왜냐하면 “구체적인 것은 현실적 출발점이고 따 라서 또한 직관과 표상의 출발점인데도 불구하고, 사고에서 는 그것이 총괄의 과정으로서, 출발점이 아니라 결과로서 나 타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속류 유물론은−그것이 아무 리 베른슈타인이나 다른 사람들의 경우처럼 현대적으로 위 장될지라도−사회생활의 직접적이고 단순한 규정들을 재 생산하는 데 머무른다. 속류 유물론은 더 이상의 분석이나

61) 마르크스, ≪정치경제학 비판≫, 전집 13, 6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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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 총체성으로의 종합이 전혀 없이 이 규정들을 단순하 게 받아들일 때, 그것들을 추상적인 고립 상태에 그대로 두 고 구체적 총체성과는 무관한 추상적 법칙성을 통해서만 설 명할 때, 특히 ‘정밀하다’고 믿는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조야함과 무개념성은 바로 유기적으로 전체를 이루는 부 분들을 서로 우연적으로 연관시키고 단순한 반성연관 (Reflexionszusammenhang)62) 속에 집어넣는 데 있다.”63)

62) (옮긴이 주) 반성(反省, Reflexion)이란 어원상으로는 굴곡되어 되돌 아오는 것을 말하고 빛에 관련해서 보자면 반사의 뜻을 갖는다. 일반 적으로는 어떠한 활동에서 되돌아와 이 활동 자체에 주의를 기울여 음미하고 사색하는 것을 말한다. 헤겔에서 반성이란 우선 외적인 연관을 의미한다. 이러한 ‘반성에 의 한 통일을 최고의 것으로 하는’ 철학을 헤겔은 ‘반성철학(Reflexionsphilosophie)’이라 불렀다. 그는 칸트, 야코비, 피히테 등이 주관과 객 관, 관념적인 것과 실재적인 것을 오성적으로 분별하여 대립시킴으 로써 그것들을 외적으로 관련지었다는 점에서, 그들을 반성철학자 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반성은 상관적인 것들의 내적 관계를 나타낸다. 헤겔에 따르면, 상관적인 두 측면은 서로 구별되는 것이면서 동시에 상대방과의 관계 속에서만 자기 자신의 규정을 갖 는다는 것이다(좌와 우, 남과 북 등). 반성규정(Reflexionsbestimmungen)은 헤겔 ≪논리학≫ ‘본질론’의 한 부분이고 여기서 동일성, 구별(⟶ 대립), 모순이 차례로 다뤄진다. 주의할 점은 헤겔에서 반성 이란 단순히 사고의 과정일 뿐 아니라 존재를 구성하는 것이라는 점 이다. 마르쿠제는 반성의 긍정적 측면에 주목하여 “반성의 법칙들이야말 로 변증법의 근본 법칙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루카치가 ‘반성연 관’, ‘반성규정’, ‘반성철학’이라 할 때는 부정적 의미를 띤다. 즉, 루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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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반성연관의 조야함과 무개념성은 무엇보다도, 그 것을 통해서 자본주의 사회의 역사적이고 일시적인 성격이 모호하게 되고 이 규정들이 무시간적이고 영원하며 모든 사 회 형태에 공통적인 것처럼 나타난다는 데 있다. 이는 속류 부르주아 경제학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났지만 곧이어 속 류 마르크스주의도 똑같은 길을 밟았다. 변증법적 방법이 흔 들리게 되었고, 이와 함께 개별 계기들에 대한 총체성의 방 법적 우위가 흔들리게 되었다. 부분들은 더 이상 전체 속에 서 그 개념과 진리를 찾지 못하게 되었고, 전체는 비과학적 인 것이라고 해서 고찰로부터 제외되거나 부분들의 단순한 ‘이념(Idee)’ 내지는 ‘총합(Summe)’으로 바래져 버렸다. 이렇 게 되자 곧, 고립된 부분들의 반성연관이 모든 인간사회의 무시간적 법칙인 듯이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각 사회의 생산관계들은 하나의 전체를 형성한다”64)는 마르크 스의 진술이야말로 사회관계를 역사적으로 인식하기 위한 방법적 출발점이자 열쇠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모든 고 립된 개별 범주는−이런 고립 상태에서−모든 사회 발전 속

치에서 반성이란 헤겔이 비난하는 ‘반성철학’에서의 반성이며, 무매 개성, 추상성 등을 특징으로 한다. 63) 같은 책, 620쪽. 반성연관이라는 범주도 헤겔의 ≪논리학≫에서 유 래한다. 64) 마르크스, ≪철학의 빈곤≫, 전집 4, 130∼1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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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항상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되고 취급될 수 있다(어떤 사 회에서 그것을 발견할 수 없다면, 이는 바로 규칙을 확증해 주는 ‘우연’이다). 그러나 사회 발전의 여러 단계들이 지니는 현실적 차이점은 이 개별적이고 고립된 부분적 계기들이 겪 는 변화 속에서 표현되기보다는, 전체 역사 과정에서의 그 계기들의 기능 또는 사회 전체와 그것들의 관계 등이 입는 변화 속에서 훨씬 분명하고 명백하게 표현된다.

3. 변증법적 방법과 속류 마르크스주의의 방법 이와 같이 총체성을 변증법적으로 고찰하는 것은 겉보기에 는 직접적 현실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고 또 현 실을 매우 ‘비과학적으로’ 구성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것 이야말로 현실을 사고상으로 재생산하고 파악하기 위한 유 일한 방법이다. 따라서 구체적 총체성이란 본래 현실성의 범 주(Wirklichkeitskategorie)이다.65) 이러한 견해의 정당성은

65) 방법적인 문제에 보다 깊은 관심을 가진 독자들에게 우리는 여기서 다음과 같은 것을 주목하도록 하고 싶다. 그것은 헤겔의 ≪논리학≫ 에서도 전체와 부분의 관계라는 문제가 실존에서 현실성으로의 변증 법적 이행을 형성한다는 것이며,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은 거기에서 다 루고 있는 내면과 외면의 관계라는 문제도 역시 하나의 총체성의 문 제라는 것이다. 헤겔, 전집, 4, 156쪽 이하(헤겔 ≪논리학≫의 인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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