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응당시선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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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응당 시선



처음 금강산에 들어와 이암굴[利巖]이 텅 비어 거처 하는 스님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는 그곳을 찾아가 머물며 <산어(山語)>라는 시를 읊어 굴 벽 에 써 놓았다.

쓸쓸한 옛 암굴을 작은 외길 따라 찾으니 시냇물 맑아서 그림자 비치고 골짝은 고요해 온갖 생각 잊었지. 무순은 막 자라나고 포도 잎도 푸르러만 가는데 순간적으로 깜빡 졸다가 꿈 깨자 구름 밖으로 돌아왔지.

初入金剛 聞利巖曠無居僧 尋到掛錫 即咏山語 以書窟壁 之傍 蕭洒古巖窟 聞尋一路微 溪明堪照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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谷靜可忘機 蘿蔔芽初長 葡萄葉正肥 成然聊入睡 夢斷出雲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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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라암(松蘿庵) 스님에게 드림

큰 송라1)와 작은 송라 마주한 풍경 일찍이 보지 못한 것일세. 동쪽 절 종소리에 서쪽 절에서 일어나고 큰 암자 스님 말에 작은 암자 스님 대답하네. 물은 원래 한 우물이니 서로 함께 길어야하고 바위 본래 외로운 누대이니 반드시 함께 올라야지. 내 스님과 이 즐거움 맛보려 하였건만 인연에 이끌려 다시 내려가니 참으로 부끄럽네.

贈松蘿庵僧 大松蘿與小松蘿 相對風光見未曾 東寺鐘聲西寺起 大庵僧語小庵譍

1) 송라(松蘿): 소나무 겨우살이로 깊은 산중 소나무 가지에 붙어서 실같이 여 러 가닥으로 늘어지는데 길이는 30cm 정도고 빛은 엷은 황록색임. 사원 등 의 정원수로 키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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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元一井相同汲 巖本孤臺必共登 我欲與師甞此樂 牽緣還下愧無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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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마하연(摩訶衍)에 노닐며

신령하다고 사람들 입에 오르더니 산중에 제일가는 터전이로구나. 하얀 봉우리는 옛 빛을 머금었고 벌거벗은 나무엔 새 가지 자라났네. 시내소리 들으니 한스러움이 되살아나고 구름 바라보니 기쁨이 슬픔으로 변하네. 나그네 회포는 귀신도 모를 것이니 오직 부처님만이 알아주시리라. 내 나이 열다섯에 스승을 따라 이 암자 안에서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었 다. 그러므로 이 시 속에는 숨겨서 드러나지 않은 말들이 있다.

重遊摩訶衍 靈聞登人口 山中第一基 白峯含古色 赤木長新枝 聽澗蘇兼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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看雲喜却悲 客懷神莫測 唯佛只應知 余志學之歲 隨師到此庵中剃染 故 詩有隱而不現之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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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지암(佛地庵)에 묵으면서

두 봉우리 소매같이 처마 기둥 감싸 안아 그 형세는 왕유2)가 붓으로 그린 듯. 바람이 배꽃 스치니 온 나무에 향기 서리고 개울 소리는 한밤중 선객의 꿈 흔드는구나. 사람 사는 하늘과 땅엔 먼지 늘 자욱하나 별천지 신선 세계는 풍경 절로 맑구나. 동수3) 다시 찾아 두 손으로 떠 마시니 십여 년의 참선(參禪) 공부 모두 잊게 되네.

宿佛地庵 兩峯如袖擁簷楹 勢若王維畫筆成

2) 왕유(王維): 당의 기현(祁縣) 사람으로 자는 마힐(摩詰)이다. 관직이 상 서·우승(右丞)에 이르렀다. 이백·두보와 병칭되는 대시인이며 동시에 서화(書畵)에 뛰어나 중국남화(中國南畵)의 개조(開祖)라 일컬어진다. 산수운석화(山水雲石畵)에 특히 뛰어나다. 3) 동수(銅水): 자연동(自然銅)에서 우러나오는 물로 마시면 신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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風打梨花香一樹 澗搖禪客夢三更 人間天地塵常暝 壼裏乾坤景自淸 銅水更尋雙掬飮 都忘參學十年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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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적암 한(閑) 스님에게 드림

그윽이 깃들어 사는 맛 알려거든 소나무 창가 석양빛에 앉아보라. 지는 꽃잎 날아와 물 위에 떠 있고 약 달이는 탕기에선 향내가 나네. 마루에다 산 오르는 짚신 벗어 놓고 상 앞에선 벽곡4)할 생각 한참이네. 이것이 정도(正道)는 아닐지라도 지은 업 염라대왕도 두렵지 않네.

圓寂庵贈閑上人 欲試幽捿趣 松窓坐夕陽 落花飛泛水

4) 벽곡(辟穀): 곡식은 안 먹고 솔잎·대추·밤 등을 매일 조금씩 먹고 사는 것으로 도가(道家)에서 곡식을 먹지 않고 수도하는 장생술(長生術)의 하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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陳藥煮生香 軒脫登山屩 床披辟穀方 斯雖非正道 業不怕閻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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