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술 역사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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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술 역사


커뮤니케이션이해총서 급변하는 커뮤니케이션 환경 속에서 커뮤니케이션 지식에 대한 욕구 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하나의 커뮤니케이션 주제를 10개 항목으로 묶어서 달걀 꾸러미처럼 엮었습니다.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지식을 쉽게 알고자 하는 대중이나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지식을 단시간에 알고자 하는 연구자, 실무자, 학생에게 도움이 되는 책입니다.

편집자 일러두기 ∙ 이 책은 영화 제작의 세부 테크닉(technic)에 관해서가 아니라, 영화 매체와 테크놀로지(technology)의 발전사를 다룹니다. ∙ 외래어 표기는 현행 한글어문규정의 외래어표기법을 따랐습니다. ∙ 이 책에 실린 삽화는 이근명 화백이 그렸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이해총서

영화 기술 역사 정 헌

대한민국,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2013


영화 기술 역사

지은이 정 헌 펴낸이 박영률 초판 1쇄 펴낸날 2013년 2월 25일 커뮤니케이션북스(주) 출판등록 2007년 8월 17일 제313-2007-000166호 121-869 서울시 마포구 연남동 571-17 청원빌딩 3층 전화 (02) 7474 001, 팩스 (02) 736 5047 commbooks@commbooks.com www.commbooks.com CommunicationBooks, Inc. 3F Cheongwon Bldg., 571-17 Yeonnam-dong Mapo-gu, Seoul 121-869, Korea phone 82 2 7474 001, fax 82 2 736 5047 이 책은 커뮤니케이션북스(주)가 저작권자와 계약해 발행했습니다. 본사의 서면 허락 없이는 어떠한 형태나 수단으로도 이 책의 내용을 이용할 수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정 헌, 2013 ISBN 978-89-6680-193-0 책값은 뒤표지에 있습니다.


알타미라에서 홀로그램까지

영화 기술의 진화 장 뤽 고다르(Jean-Luc Godard)는 ‘영화는 1초에 24번의 진실’이라고 말했다. 영화는 1초에 24프레임의 연속동작 을 통해 살아있는 현실을 보여 준다. 그러나 그 현실은 오 직 24번뿐인 진실이다. 움직이는 이미지 속에는 메울 수 없는 틈과 지각적 환영이 숨어 있다. 2012년 피터 잭슨(Peter Jackson)의 <호빗(The Hobbit)> 은 디지털 시대의 영화가 ‘1초에 48번의 진실’로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HFR(High Frame Rate) 3D 영화는 인간의 눈과 감각에 보다 가까이 다가간다. 디지 털 기술의 혁신은 현실과 환영, 틈과 이미지의 구분이 무 의미한 세계로 한발 더 나아간다. 오늘날 영화는 컴퓨터 합성의 가상 이미지 속에서 진실의 세계를 재영토화(reterritorialization)한다. 이 책은 영화 기술 역사를 다룬다. 기술의 역사를 다룬 다는 말은 기술을 인간 사회의 역사 속에서 고찰한다는 말 이다. 기술은 인간이 자신의 생존 목적에 맞게 자연을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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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온 방식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인류의 탄생과 진화, 사회의 형성과 발전 속에서 기술의 문제를 다룬다. 특히, 영화의 기술은 유사 이래 인류가 이미지를 생산 하고 소비해 온 역사적 과정에 맞닿아 있다. 영화의 역사 는 시청각 예술의 발달사다. 그것은 이미지 복제 기술의 역사이자 영사 기술의 발전사다. 이 책은 역사적 진화의 관점에서 움직이는 이미지의 기술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 지 살펴본다. 다른 한편, 영화의 기술 속에는 이미지의 기술과 함께 이야기의 기술도 공존한다. 영화는 이미지를 통해 시각적 스펙터클을 발전시켜 왔을 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통해 서 사 예술의 장르를 통합했다. 이미지의 기술은 영화의 기 계 장치, 촬영과 편집 기법, 스크린을 통한 영사 과정 등을 통해 발전해 왔다. 반면, 이야기의 기술은 시공간의 배열, 사건의 인과관계, 캐릭터의 구축 등을 통해 드러난다. 물론 이야기의 기술은 단지 할리우드의 연속적이고 폐 쇄적인 내러티브 방식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영화의 역사 를 통해 불연속적이고 실험적인 다양한 이야기 방식들이 존재해 왔다. 이 책은 이미지와 내러티브의 양 측면에서 영화 기술, 형식과 스타일의 변천이 어떻게 복합적으로 일 어났는지 되짚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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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지나간 기술의 역사를 단지 나열하는 데 그치 지 않는다. 이 책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관점은 오늘의 기술이다. 즉, 디지털 시네마 시대의 관점에서 기술의 역 사를 재평가한다. 달리 말하면, 우리는 지나간 영화 기술 역사를 재평가함으로써 다가오는 디지털 시네마 시대를 예비할 수 있다. 이미 1950년대에 앙드레 바쟁(André Bazin)은 ‘영화는 아직 발명되지 않았다’고 갈파했다. 어쩌면 영화 기술 역 사는 인류의 역사가 끝나지 않는 한 영원히 완료되지 않을 지 모른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신의 삶과 꿈을 표현하고 자 하는 욕망을 영원히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기술의 진화는 아직 완료되지 않았 다. 이미지를 통해 인류의 삶을 표현하고자 하는 시도는 알타미라에서 셀룰로이드까지 유구히 이어져왔다. 이미 지 재현의 기술은 카메라 옵스큐라, 매직랜턴, 사진술의 전사를 거쳐 시네마토그래프에 이르렀다. 무성에서 유성 으로, 흑백에서 컬러로, 그리고 오늘날 필름에서 디지털 로 끊임없이 진화해 왔다. 이제 영화를 말 그대로의 의미에서 ‘필름’이라고 부르던 시대는 과거가 되고 있다. 놀랍게도 1970년에 진 영블러 드(Gene Youngblood)가 예견했듯이, ‘사이버네틱 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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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cybernetic cinema)’와 ‘홀로그래픽 시네마(holographic cinema)’의 시대가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와 있다. 컴퓨터와 디지털 기술은 영화의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현실과 가상, 감각과 이미지가 하나 되는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아간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의 가능 성과 감각의 힘에 대한 신뢰다. 그러므로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과거의 기술을 들춰 보는 이유는 간단하다. 필름의 시대를 회고함으로써 오늘 의 기술을 반추하고자 한다. 그것만이 새로운 세계의 씨 앗이 되는 내일의 영화를 보여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호모 하빌리스의 예술 영화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인류학과 만난다. 하나는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 도구적 인간)’의 역사다.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2001: A Space Odyssey)>(1968)가 보여 주었듯이, 원시 인이 하늘높이 던져올린 뼈다귀 도구가 우주선으로 진화 하기 위해서는 인류 역사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다. 비슷한 의미에서 인류가 알타미라와 라스코의 동굴 벽화로부터 오늘날 영화라는 기계적 이미지 복제의 예술에 도달하기 까지 대략 1만 5000년의 세월이 있어야 했다. 이미지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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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진화를 통해 인류는 삶과 죽음, 노동과 욕망의 역사를 표현해 왔다. 영화의 탄생은 직접적으로 19세기 근대 과학기술의 성 과다. 필름, 카메라, 렌즈, 편집기, 영사기, 스크린 등 영화 의 기계 장치 속에는 인류가 만들어낸 도구적 기술 문명의 성과가 집약되어 있다. 영화는 광학, 생리학, 화학, 기계학 등 근대 과학기술의 총화였다. 영화는 20세기를 통해 소리와 색깔의 기술을 첨가했다. 영화 기계는 인간의 눈뿐만 아니라 귀와 감각의 확장을 가 져왔다. 이제 21세기 영화는 컴퓨터와 모바일에 기초한 사이버 기술 문명과 만나고 있다. 영화는 점점 더 보고 듣 는 것을 뛰어넘어 온몸으로 체험하는 놀이의 도구가 되고 있다. 다른 한편, 영화의 역사는 ‘호모 에스테티쿠스(homo aestheticus: 미학적 인간)’의 역사다. 엘렌 디사나야케 (Ellen Dissanayake)의 말처럼 예술은 인류의 ‘진화적 유 산(evolutionary inheritance)’이다. 그것은 먹고 입고 자 야 하는 우리의 일상생활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생존과 적 응을 위한 본질적 활동이다. 인류는 예술을 통해 추상적 사고를 하고 지적 능력을 발전시킨다. 예술은 감성적 표 현과 사회적 소통을 위한 인류학적 생존 활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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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aesthetics)의 어원은 지각(perception) 또는 감각 (sense)이다. 미학적 인간은 아름다움(beauty)을 느끼고 지각하는 인간이다. 하지만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 단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예술(art)의 어원은 기술(techne)이며, 예술의 역사는 인간 노동과 기 술의 발전사와 함께하기 때문이다. 1895년 근대 과학기술의 성과로 탄생한 영화는 예술의 역사를 다시 쓴다. 영화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인간의 손 떨림을 벗어난 기술적 자동성의 예술로 등장했다. 영화는 기술 도구이면서 동시에 예술이 된다. 영화가 예술일 때, 그것은 인간의 삶과 문화를 표현하 는 도구가 된다. 예술로서 영화는 삶과 노동의 철학이자 미학이다. 그것은 인간의 꿈과 상상, 욕망과 정신을 노래 한다. 이런 의미에서, 일찍이 이탈리아 평론가 리치오토 카누도(Ricciotto Canudo)는 시, 건축, 조각, 회화, 음악, 무용에 이어서 영화를 제7의 예술이자 종합예술로 지칭 했다. 그러나 영화가 애초부터 예술로 간주되었던 것은 아니 다. 그것의 기술적 특성으로 인해 영화의 예술적 가능성 에 대한 많은 의문이 제기되었다. 영화는 이제까지의 모 든 예술들과 확연히 달랐기 때문이다. 회화와 조각 등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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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 예술들이 인간의 수공업적 작업과 장인적 정신에 의해 의존했던 반면, 영화 이미지는 기계적 자동 장치에 의해 만들어졌다. 영화라는 호모 하빌리스의 예술에 대해 처음으로 주목 했던 사람은 독일의 비평가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이었다. 그는 ‘기술복제 시대’에 영화가 만들어내는 미학 사적 의미에 대해 통찰한다. 벤야민에 따르면, 영화가 예 술인지 아닌지가 문제가 아니라 영화로 인해 예술의 의미 가 바뀌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벤야민의 탁월함은 영화 예술의 등장을 인간 감각의 변화에 연결시켰다는 점이다. 회화와 같은 전통 예술이 인간의 관조적 시각에 의존해 온 반면, 영화는 움직이는 이미지의 충격 효과로 인하여 온몸 의 경험과 촉각적 지각을 요구한다. 또한, 벤야민은 영화 가 스크린을 통해 여러 곳에서 대중적, 집단적 방식으로 수용된다는 점에 주목한다. 영화는 대중 예술이자 대중 민주주의의 도구가 된다. 영화는 파시즘의 ‘정치의 예술 화’을 극복하고 ‘예술의 정치화’를 구현해야 한다. 벤야민 은 대중 예술로서 영화의 실천적 의미를 제시한다. 벤야민 외에도 많은 논자들은 영화의 기술적 특성이 지 닌 예술적 성격을 밝히고자 노력했다. 앙드레 바쟁의 ‘사 진적 존재론’,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Siegfried Kracau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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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물질적 현실의 복원’, 레지스 드브레(Régis Debray)의 ‘비디오스페르(Videosphere)’, 빌렘 플루서(Vilém Flusser) 의 ‘기술 이미지’, 스탠리 카벨(Stanley Cavell)의 ‘자동성 (Automatism)’ 등이 그것이다. 영화 기술의 미학을 파헤친 견해들의 공통점은, 영화가 기술적 자동성에 기초를 두고 있다고 해도 충분히 창조적 예술로 간주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영화라는 ‘기술 적 예술’의 인류사적 의미와 가능성을 강조한다. 영화는 자연의 시공간을 복제하고 인간의 감각과 의식을 확장한 다는 것이다. 미국의 문명비평가 루이스 멈퍼드(Lewis Mumford)의 말처럼, 기계문명의 발전을 만들어내는 결정적 도구는 결 국 ‘마음의 발명품’일 수밖에 없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영 화 기계는 인간 정신의 역사와 결합한다. 호모 하빌리스 는 영화를 통해서 호모 에스테티쿠스와 만난다.

디지털 기술과 내일의 영화 1932년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는 <멋진 신세계 (Brave New World)>에서 과학기술 문명이 초래할 디스 토피아의 삭막한 미래를 경고했다. 그가 그리는 신세계는 기술의 도움으로 인간의 모든 불안과 고통이 사라진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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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다. 아이는 인큐베이터에서 태어나고 공장의 부품처 럼 길러진다. 평생토록 정해진 계급을 부여받고 같은 일 을 하도록 교육받는다. 전쟁과 폭력이 사라진 극도로 안 정된 사회에서 인간의 고민과 불안은 제거된다. 이 세계 는 기술 만능과 향락 추구에 의해 유지된다. ‘소마(soma)’ 라는 알약은 인간의 우울증을 제거하고 행복감만을 느끼 게 만든다. 부모도 사랑도 결혼도 책임도 없으며, 오직 자 유로운 섹스와 쾌락만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 세계는 결 코 그렇게 아름답지도 바람직하지도 못하다. 왜냐하면 인 간은 만족과 쾌락의 과잉 속에서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잃 어버리기 때문이다. 헉슬리는 이 통찰력 있는 소설 속에서 미래 영화의 모 습을 실감나게 묘사한다. 그는 시청각뿐만 아니라 맛, 냄 새, 촉각 등 인간의 오감이 총동원되는 쌍방향 입체 영화, 즉 ‘촉감 영화(a feely)’의 미래를 예견한다. 물론, 그는 이 촉감 영화가 인간을 쾌락과 즐거움의 노예로 만든다는 점 을 잊지 않고 비판한다. 오늘날 영화 기술의 발전 방향에 비추어볼 때, 헉슬리 의 예언은 그렇게 틀리지 않는 것 같다. 애당초 필름 이미 지로 출발한 영화는 1927년 <재즈싱어>를 통해 소리를 통 합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1950년대 이래 컬러 영화와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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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스크린의 대중화는 우리에게 보다 실감나는 시청각 적 쾌락을 선사해 왔다. 1990년대 이후 디지털 영화의 등 장은 이제 점점 더 우리의 육체와 감각을 종합적으로 자극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3D 영상과 돌비 애트모스 (Dolby Atmos) 사운드 시스템은 ‘온몸으로 느끼는’ 입체 영화의 환상적 매혹에 한발 더 다가간다. 현재의 기술 추 세에 비추어볼 때, 안경 없는 3D 영화는 물론이고, 맛과 냄새가 첨가되는 4D 영화의 대중화가 눈앞에 와 있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면 입체 영화의 미래는 홀로 그램의 기술과 결합해 갈 것이다. 홀로그램은 그리스어 ‘hollos(완전하다)’와 ‘grammar(그림)’의 합성어다. 레이 저 빛의 굴절 및 간섭현상을 이용하여 평면 위에 3차원 입 체 정보를 구현한다. 홀로그램은 이미지의 평면성을 극복 하고 입체적 깊이와 다면성을 실현한다. 미래 영화는 홀 로그램 입체 영화의 단계에서 새롭게 재정의될 것이다. 이 단계에 이르면 인류는 역사상 최초로 현실과 이미지의 분리를 철폐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영화의 사실성과 환 상성은 완벽하게 하나로 통합된다. 이제 영화는 영화가 아닌 어떤 것으로 새롭게 진화해 갈 것이다. 헉슬리가 암울한 디스토피아 악몽을 전하고 있다고 해 도, 과학기술 문명을 미래 세계의 원죄로 간주할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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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다. 기술은 그 자체로 절대악도 절대선도 아니다. 중요 한 것은 인류가 기술 문명을 무엇을 위해 어디로 이끌고 가는가 하는 점이다. 오늘날 디지털 기술의 발달은 영화 예술에 중대한 변화 를 불러온다. 필름의 사진적 존재론은 컴퓨터 합성 이미 지로 바뀐다. 컴퓨터 합성의 미학은 영화의 마술성과 판 타지를 강화한다. 영화는 인간의 꿈과 상상의 영역에 더 욱 더 가까이 다가간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은 영화의 스펙터클을 강화한다. 디 지털 영화는 서사적 이야기를 뛰어넘어 기술적 스펙터클에 치중한다. 기술적 스펙터클은 이미지의 감각적 매혹을 자 극한다. 디지털 영화는 이미지의 감각적 성격을 강화한다. 또한, 컴퓨터 시뮬레이션은 이미지의 정보적 성격을 강 화한다. 디지털 영화의 이미지는 수치적으로 계산되고 알 고리듬에 의해 변형되기 때문이다. 정보 이미지는 소프트 웨어와 데이터베이스에 의해 생산되고 컴퓨터 네트워크 에 의해 유통된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은 영화의 멀티미디어 성격을 강화 한다. 모든 시청각 이미지는 단일한 디지털 포맷으로 변 환된다. 텍스트, 이미지, 사운드 등은 디지털 콘텐츠가 되 어 하나로 묶인다. 다매체 다채널 시대에 디지털 영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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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미디어 콘텐츠가 된다. 멀티미디어 콘텐츠가 된 영화 는 불 꺼진 영화관에서 부동의 자세로 바라보는 관조적 성 찰의 영역을 뛰어넘는다. 영화는 극장을 뛰어넘어 컴퓨터 와 모바일 네트워크 속에서 들어간다. 그러므로 현대 영 화는 대중의 실시간 참여와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에 기초 한 새로운 매체로 진화한다. 디지털 기술에 의한 영화 매체와 예술의 변화는 인류에 게 무엇을 가져다줄 것인가? 많은 긍정적 변화가 존재한 다. 영화는 디지털 기술의 도움으로 인간의 꿈과 상상을 보다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매체가 될 수 있다. 기술의 스 펙터클은 초기 영화가 보여 주었던 이미지의 감각성과 매 혹을 살려낼 것이다. 인류는 디지털 영화를 통해 감각과 의식을 확장하고 소통의 새로운 방식을 향유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디지털 영화는 헉슬리의 ‘소마’와 ‘촉감영화’ 로 전락할 수도 있다. 닐 포스트만(Neil Postman)의 현명 한 지적처럼 인류는 자신이 증오하는 것에 의해서가 아니 라 자신이 ‘죽도록 즐기는 것’에 의해 몰락할 수도 있다. 디지털 영화는 현실의 고통과 분열을 무마하는 대중의 환각제가 될 수 있다. 할리우드 영화 자본이 오랫동안 입 증해 왔듯이 기술의 발전은 순식간에 오락적 엔터테인먼 트 산업으로 전락한다. 그것은 폐쇄적 내러티브의 지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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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와 결합한다. 디지털 영화는 기술적 스펙터클 의 홍수 속에서 감각적 쾌락과 자본주의 물신숭배의 도구 가 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디지털 영화의 운명은 유토피아와 디스 토피아의 갈림길 위에 놓인다. 자, 이제 누가 그것을 결정 할 수 있을 것인가? 디지털 영화의 가상적 쾌락과 감각적 유희는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 것인가? 아마도 그 운명은 미리 결정되어 있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오직 내일의 영 화를 위한 인류의 미학적 고뇌와 탐험의 역사와 함께할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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