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과 제1장(第一課 第一章)
一 덜크덕덜크덕− 퍼언한 신작로에 소 마차 바퀴 소리가 외로 이 울린다. 사양(斜陽)에 키만 멀숙하니 된 가로수 포푸라 의 그림자가 느른하니 길을 가로막고 있을 뿐 별로이 행인 도 없는 호젓한 신작로다. 동리 앞에는 곰방대를 문 영감님 이 밝아숭이 손주 놈을 더리고 앉아서 돌 작난을 시키고 있 다. 약삭발른 계절(季節)에 뒤떨어진 매아미 소리는 마치 남의 나라에 가친 공주의 탄식처럼 청승맞다. “이러 이 소 쯔쯔!”1) 안반 짝 같은 소 엉둥이에 철썩 무푸레 호초리가 운다. 소란 놈은 파리를 날려주어 고맙게 역일 정도인지 아모런 반응도 없다. 그저 뚜뻑뚜뻑 앞만 내다보고 걸을 뿐이다. 소 마차가 동리 앞을 지날 때마다 주막집 뜰팡에 멍석을 깔고 땀을 드리던 일꾼들의 눈이 일시에 마차짐으로 옮겨진 다. 이삿짐을 처음 보아서가 아니라 그들의 눈에는 이 우차 우에 실려진 가구며 세간이 진기한 모양이다. 항아리니 독 이니 메주덩이 박아지 짝 ― 이런 세간은 한 개도 볼 수 없 고 농 짝은 분명히 농 짝이다. 생김생김도 그러려니와 시골
1) “이랴, 이 소야, 쯔쯔” 하는 소몰이할 때 쓰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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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는 볼 수 없는 허들겹스렇게 큰 장이다. 이모저모에 가마 니짝을 대어서 전부는 보이지 않으나마 넘어가는 해볕을 받 아 거울이 번적한다. 함 대신에 화류단 칭장 버들상자도 큰 것이 네모번듯하다. 뭣에 쓰이는 것인지 알 길도 없는 혼란 스러운 갓이며 검고 붉은빛이 도는 가죽가방 면장 나리나 무슨 주임 나리나가 놓고 있는 그런 책상에 걸상도 화려하 다. “뉘 첩 살림인 게군.” 키만 먹쑥하니 여덜팔 자 노랑 수염이 담숭담숭 난 헐일 없이 노름꾼처럼 생긴 한 친구가 이렇게 운을 뗀다. “토ᄉ자에 ᆨ햇네.” 누군지가 이렇게 받자, “토ᄉ자에 ᆨ도 트ᄉ자에 ᆯ일세.2) 어디루 보니 저게 첩 살림 같은가. 첩 살림이면야 자개장이 번득이면 번득였 지 사물상이 당한겐가. 짐 임자들을 보지!” 이사짐에서 여나무 간쯤3) 뒤떨어저서 곤색 저고리에 힌 바지를 받혀 입은 청년이 하나 딸아섰다. 아직 해ᄉ살이 따 거우련만 모자도 단정히 썼다. 나이는 한 삼십사오 세쯤 되
2) ‘틀렸다, 맞지 않았다’라는 뜻을 완곡하게 표현한 말. 3) 여나무 간쯤: 열 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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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을까… 청년은 한 손으로 양장을 한 오륙 세 된 게집아이의 손을 잡고 그 옆에는 청년보다는 열 살이나 차이가 있음직한 젊 은 여인이 역시 양복을 입힌 머슴애의 손을 잡고 간다. 한 너덧 살 되었음직한 토실토실하게 생긴 아이다. 과자 주머 니인지 발은손에는 새빨간 주머니를 느렸다. “아빠 아직두 멀었수?” 말소리까지 타박타박하다. “인저 조곰만 더 가면 된다. 에이 참 우리 철이 착하다.” 청년은 담배에 불을 붙혀 물고 덤덤히 마차 뒤를 딸아간 다. “화신상회만큼 되우?” 어린것은 몹시 지친 모양이다. “그래 그만큼 가면 되어.” 하고 안타까운 듯이 젊은 여인이 대신 대답을 하자니까 어린것이 고개를 반짝 들구서 항의를 한다. “뭘 엄만 아나? 엄마두 첨이라면서.” “그래두 난 알아. 그렇지요 아빠?” “암 엄만 알구말구.” 청년과 여인은 어린것을 번갈아 엎기두 하고 안기두 하 다가 몇 걸음 걸려도 보고 몹시 거추장스려우련만 별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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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티도 없다. 소에 끌려가는 이사짐처럼 그는 묵묵히 끌 려가고만 있다. “거 어디루 가는 이사짐요?” 동리 앞을 지날 때마다 소 보고 묻듯 한다. 마차꾼은 “나 는 소 아니오!” 하고 퉁명을 부리듯 “샌터4) 짐요!” 하고 돌아다보지도 않고 대답할 뿐이다. “샌터 뉘 집 짐요?” “난두 모르오!” 하고는 소 엉둥이에다 매질을 한다. “이러 이 소! 대ᄉ구하기 귀찮다. 어서 가자.” 동리를 빠저나오더니 청년도 여인네도 뒤를 한 번씩 돌 아다본다. 무슨 감시의 구역에서 벗어나기나 한 때처럼 여 인네는 가벼운 안도를 얼굴에 나타내기까지 한다. “인저 내가 좀 물어봐야겠군. 아직두 멀었어요?” “인저 얼마 안 돼. 전에 단일 때 얼마 안 되던 것 같았는 데 웨 이리 뭘까.” 혼자말에 우차꾼이 받아넘긴다. “여름이라 길두 늘어나 그렇지오.”
4) 샌터: 샘(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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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안 가니 조고만 실개천이 흐른다. 청년 ― 수택은 어려서 수수미꾸리 잡던 기억도 새로웠고 땀도 드릴 겸 길 목 포푸라 그늘에서 참을 들이기로 했다. 이 개천을 건너서 한 십 분이면 그의 고향인 샌터에 다다르는 것을 알기 때문 이기도 했다. “영감두 쉬어 가치 갑시다. 자 담배 한 개 드슈.” “고약두 있으십니까.” “고약이라께?” “이런 담벨 피구 입술이 정할 수가 있을라구요.” 이렇게 자미있는 늙은인 줄 알았더면 정거장에서부터 말벗을 해왔더면 오는 줄 모르게 왔을껄… 하고 수택은 오 늘 처음으로 웃었다. 수택은 차를 먼저 가게 하고 천천이 세수도 하고 발도 벗 고 씻었다. 안해가 핸드빽의 조고만 면경을 꺼내어 화장을 하는 동안에 어린것들도 벗기고 말끔히 씨처주었다. 물에 손을 잠그고 있으려니 어려서 물장난하던 기억이며 그동안 세파와 싸운 삼십 년간의 생활이 추억되어 덜크덕덜크덕 멀 어저가는 이사짐 소리도 한칭 더 서글펐다. “패북자.”5)
5) 패북자: 패배자(敗北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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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가마니 이렇게 자기를 불러본다. 시내물은 조악돌 이 옹기종기 몰켜 있는 수택의 발밑을 지날 때마다 뭬라고 인지 종알대고 흘러간다. 이 물소리를 해득만 한다면 여러 가지 의미가 포함되었으리라. 그러나 지금의 수택으로서는 이 속사기는 물소리보다도 지난날의 추억보아도 패북자의 짐을 실고 가는 마차 바퀴 소리만이 과장이 되서 울리는 것 이었다. “패북자? 어째서 패북자냐? 오랜동안 동경해 오던 이상 생활의 첫 출발이지.” 누가 있어 자기를 패북자라고 불르기나 했던 것처럼 그 는 분명히 이렇게 반항을 해본다.
二 사실 이번 길은 수택의 일생에 있어서 커다란 분기점이였 다. 그것이 히망의 재출발이 될지 패북이 될지는 그가 타고 난 운명(?)에 맡기려니와 현재 그의 가슴에 채워진 감회도 이 둘 중 어느 것인지 그 자신 모르고 있는 터다. 그가 농촌 생활을 꿈꾸고 이른 봄 사−지6) 안을 두둑하게 넌 춘추복 안주머니에 너두었던 사직원이 이중 봉투를 석 장이나 갈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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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피우고 여름을 났을 때는 그래도 ‘패북자’란 감정이 없을 때었다. 일금 팔십 원의 쌜러리라면 그리 적은 봉급도 아니었다. 회사 총무부 주임 말마따나 이런 자리를 노리는 대학 출신 의 이력서가 기 백 장 설합 속에서 신음을 하고 있는 터다. 사변으로 해서 갑자기 물가가 고등해진 터라 이 정도에 수입만 가지고는 도저히 도회에서 생활을 유지하기가 어렵 기는 하나 그렇다고 전혀 수입이 없는 것보다 날 것은 주먹 구구까지도 필요치 않은 것이었다. 그의 게획을 듣고 친구 의 대부분이 ― 아니 거의 전부가 반대를 한 것도 실로 이 단순한 타산에서였다. 너 굴러든 복박아지를 차버리고 어 쩔 테냐는 듯싶은 총무부 주임의 눈치나 철없이 날뛴다고 가련해하는 눈으로 보는 동료들의 말투가 그의 결심에 되려 기름을 처준 것도 사실이기는 하나 수택의 게획은 그네들이 보듯이 그렇게 근거가 적은 것은 아니었다. 그의 게획의 무 모함을 충고하는 친구와 동료들의 거의 전부가 생활난에 중 점을 둔 것이다. 그러나 일찌기 수택만큼 생활고를 겪어온 사람도 그만한 났세로는 드믈 것이었다. 열두 살에 고향을 6) 사−지: 양복천의 하나, 사지천으로 만든 양복. 미군들이 즐겨 입던 모 직류다. 특히 하사관(Sergeant)들이 많이 입어 ‘사지(Sarge)’로 불린다 (‘sarge’는 ‘sergeant’의 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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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서 중학교를 고학으로 마첬고 열일곱에 동경으로 가서 C대학 전문부를 마추는 동안도 식당에서 벗겨내 버린 식팡 껍질과 먹고 남아 버리는 밥덩이를 사다 먹고 살아온 그였 고 일정한 직업이 없이 오륙 년 동안 동경서 굴르든 동안에 도 공중식당일망정 버졌하니 밥 한 끼 사 먹어 보지 못한 채 삼십 줄에 접어든 그였다. 조선에 나와서도 지금의 문사 사 회부 기자라는 직업을 얻기까지의 삼 년간은 십 전짜리 상 밥으로 연명을 해온 그였고 직업이라고 얻어서 결혼을 한 후도 고기 한 칼 떳떳이 사 먹어보지 못한 그였다. 더욱이 십 개월이란 긴 동안 신문이 정간을 당코 푼전의 수입이 없 었을 때도 세 끼나 밥을 못 곦히고 인왕산 중허리 같은 배를 끌어안고 숨까지 가뻐하는 안해와 만 하로를 얼굴만 쳐다보 고 시간을 보낸 쓰라린 경험도 갖고 있는 그였다. 이 십 개월 동안에 그는 평상시 오고 가던 친구들도 수입 이 끊어지는 날로 거래가 끊어지는 것도 경험했고 쌀말이나 설넝탕 한 그릇도 월급봉투가 없이는 대주지 않는 것도 잘 안 터였다. “인전 널 것도 없지?” 하고 물을 때, “입은 것밖에 ―” 하고 대답하던 안해의 우울한 음성도 아직 귀에 새로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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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십여 장이나 되는 전당표를 삼 개년 게획으로 찾아내던 쓰라린 경험도 아직 기억에 새로운 터였다. 바로 신문이 해 간되던 바로 그 전달이었지만 막역지간이라고 사양해 오던 M이라는 친구한테 마침 그날이 월급일이라서(아니 월급날 을 일부러 택한 것이었지만) 삼 원 돈을 취대하러 갔다가 거 절을 당코 분김에 욕을 하고 돌아온 사실을 기록해 둔 일기 가 아직도 그의 책상 어느 구석에 끼어져 있을 것이었다. 이 수택이가 선선히 사직원을 내놓고 나선 것이니 놀랄 만한 사실임에 틀림은 없었다. “그래 갑자기 살 구만두면?” 마즈막으로 사직원을 접수한 R 씨가 이렇게 말했을 때 그는 금후의 생활 설게를 설명하는 데 조곰도 불안을 느끼 지 않았던 것이었다. 다행히 고향에 가면 십여 두락의 땅이 있고 생활 수준이 얕어질 것이오 고료 수입도 다소 있을 것 이오… 마치 R 씨까지도 유인해서 끌고 나갈 듯이 호기가 있었던 것이었다. “좀 더 신중히 하지?” 호의에서 나온 이런 말에 그는 적의나 있는 듯이 “그럴 필요 없지요.” 하고 그 자리서 내찼던 것이다. 사직 이유는 병이었다. 간부 측에서 병? 하고 반문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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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큼 그는 그렇게 말 못 된 병자는 물론 아니다. 병이라면 그것은 생리적인 병보다도 정신적인 병이 더 위기에 가까웠 었다. 의사들이 페가 어떠니 늑막이 위험하니 할 때도 한편 겁은 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속짐작이 있기는 했었다. 그 와 가치 소설을 써오던 H가 자기와 같은 자신으로 버티다가 쓸어진 그 길로 끝을 막은 무서운 사실에 잠시 ‘아차’ 하는 생각도 없지는 않았지마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직업을 버 릴 만큼 심약한 그도 아니었다. 이른 봄 그가 안해도 몰래 사직원을 쓰고 도장까지 단정히 눌러 가진 것은 그의 조고 만 영웅심에서였다. 수택은 동경서부터 소설을 써왔다. 장방형도 아니오 삼 각형도 아니오 그렇다고 똑떨어진 원도 아니다. 세상에서 는 그를 혹은 스타일리스트라고 불렀고 한때 경향문학이 성 할 때는 혹은 반동 또 혹은 동반자라고 불렀고 또는 허무주 의자라고 야유도 했다. 그러나 기실은 그중 어느 것도 아니 었다. 그 자신 자기의 특징이 어디 있는지를 모르는 작가였 다. 소설가로서 차차 알려질 임시해서 ― 아니 그 덕택이었 겠지마는 ― 그는 취직은 했었다. 그것이 그의 작가 생활의 마즈막이었다. 쩌날리슴이란 문학의 매개체를 통해서 그 갖난애 숨길 만한 잔명을 유지해 왔다. 첫 월급을 타던 기쁨은 ‘지난 ×일 밤 자정도 가까워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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