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
岑參詩選 잠삼 시선 잠삼(岑參) 지음 주기평 옮김
대한민국, 서울, 지식을만드는지식, 2011
제 1부
서늘한 가을 8월의 소관 길, 북풍은 불어 천산의 풀을 끊고 곤륜산 남쪽, 달은 지려 하는데 호인은 달 향해 호가를 부네.
−<호가의 노래로 하롱으로 가는 안진경을 전송하며> 중에서−
봄날 언덕에 누워 왕씨에게 부쳐
밭 가운데 허름한 집 짓고 수풀 아래에 문 닫아 놓았네. 은거하는 이가 살고 있으니 무심한 구름도 절로 한가롭다네. 대나무 깊어 밤새 소리 떠들썩하고 꽃 시들어 봄 산이 드러나 보이네. 이 좋은 일들, 어찌 말로 할 수 있으리 왕손께선 떠나고서 돌아오질 않는구려.
丘中1)春臥寄王子2) 田中開白室3),
1) 구중(丘中): 언덕, 구릉. 여기서는 시인이 은거하고 있는 숭산(嵩山)을 가리 킨다. 숭산은 지금의 허난성(河南省) 덩펑현(登封縣) 북쪽에 있으며, 중국 의 오악(五嶽) 중 중앙에 있는 산이다. 봉우리가 세 개 있는데, 동쪽에 있는 것은 태실산(太室山), 중앙에 있는 것은 준극산(峻極山), 서쪽에 있는 것은 소실산(少室山)이라 부른다. 잠삼이 은거한 곳은 이 중 소실산이었다. 2) 왕자(王子): 왕씨 집안의 자제. 누구인지 분명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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林下閉玄關4). 卷跡人5)方處, 無心雲自閑. 竹深喧暮鳥, 花缺露春山. 勝事6)那能說, 王孫7)去未還.
해제
잠삼은 <옛날을 생각하며(感舊賦)> 서(序)에서 ‘열다섯에 숭 산(嵩山) 남쪽에 은거했었다(十五隱於嵩陽)’라 했는데, 이 시 는 이 무렵에 쓴 것으로 여겨진다. 시에서는 봄날 은거처의 경 관과 흥취를 노래하며 헤어져 있는 친구를 생각하고 있다. 제1∼2구에서는 수풀 아래 산밭 가운데에 자리한 시인의 거처 가 작고 소박하며 찾아오는 이 없이 늘 문이 닫혀 있는 상황이 나타나 있다. 제3∼4구에서는 이곳이 은자의 거처임을 밝히며
3) 백실(白室): 단청을 칠하지 않은 흰 집. 즉 작고 허름한 집을 가리킨다. 4) 현관(玄關): 자물쇠. 여기서는 출입문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5) 권적인(卷跡人): 자취를 숨긴 사람, 즉 은거인(隱居人). 여기서는 시인 자 신을 가리킨다. 6) 승사(勝事): 좋은 일. 7) 왕손(王孫): 본래는 왕족의 의미이나, 여기서는 왕자(王子)의 성이 ‘왕(王)’ 인 까닭에 그를 높여 부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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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산(嵩山)
무심히 한가롭게 떠가는 구름을 통해 세상사에 관심이 없는 은 자의 심정을 나타내고 있다. 제5∼6구에서는 은거처의 주변 경 관이 묘사되고 있다. 밤새들이 밤으로 착각해 울 정도로 대숲이 우거지고, 꽃이 시들어 떨어진 사이로 봄 산의 온전한 모습이 드 러나 보인다는 표현이 돋보이는데, 이를 통해 세상과 단절된 은 거처의 모습과 봄이 저물고 여름으로 접어드는 시기적 배경을 보여 주고 있다. 마지막 제7∼8구에서 시인은 이곳의 아름다운 경관과 그윽한 흥취를 혼자서만 느끼는 것을 아쉬워하며 멀리 있는 친구가 돌아와 함께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잠삼은 20세에 벼슬을 구하러 장안으로 나갔으니, 이 시는 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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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때에 쓴 것이다. 10대의 나이에 은거를 말하고 세상사에 대한 무심(無心)을 이야기하는 것이 실감으로 와 닿지는 않으 나, 다만 전인(前人)들의 시의(詩意)와 시상(詩想)에 대한 모의 (模擬)나 습작(習作) 정도로 이해해 줄 수도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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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 개울에서 유숙하며 왕옥산의 은자 이씨를 생각하며
산마을 사람들 우물을 파지 않고 모두가 샘 하나로 함께 한다네. 저녁 되어 남쪽 마을 어두워지고 비 내음은 인가의 밥 짓는 연기와 어우러지네. 서리 내린 밭두둑에 가을 나물은 자라고 모래톱 기러기는 강가 밭에서 울음 우네. 은자는 볼 수가 없고 산꼭대기는 날아가는 새 옆에 있네.
宿東溪8)懷王屋9)李隱者10) 山店11)不鑿井12),
8) 동계(東溪): 동쪽 개울. 여기서는 왕옥산(王屋山) 동쪽에 있는 청라하(靑羅 河)를 가리키는 듯하다.
9) 왕옥(王屋): 산 이름. 지금의 산시성(山西省) 양청현(陽城縣)과 위안취현 (垣曲縣) 사이에 있다. 10) 이 은자(李隱者): 은자(隱者) 이씨(李氏). 누구인지 분명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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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家同一泉. 晩來南村黑, 雨氣和人煙13). 霜畦吐寒菜14), 沙雁噪河田. 隱者不可見, 天壇15)飛鳥邊.
해제
이 시는 숭산(嵩山)에 은거하고 있을 때, 왕옥산(王屋山)의 은 자를 찾아가다가 동계(東溪)에서 하루를 유숙하며 쓴 것이다. 동계 마을의 화목한 분위기와 저물녘의 경관을 묘사하며 은자 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다. 총 8구 중 전(前) 6구가 동계에 대한 묘사로 이루어져 있는데, 제1∼2구에서는 땅에서 솟아나는 샘물 하나로 온 마을 사람들 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 동계 사람들의 화목하고 순박한 인정이 나타나 있다. 이어 제3∼4구에서는 이들의 평안하고 안락한 삶
11) 산점(山店): 산속 마을. 12) 정(井): 인공으로 판 우물. ‘천(泉)’은 땅에서 솟아나는 자연 상태의 샘. 13) 인연(人煙): 인가(人家)에서 밥 짓는 연기. 14) 한채(寒菜): 가을에 나는 나물. 15) 천단(天壇): 산에서 하늘에 제사 지내는 곳. 즉 산꼭대기를 가리키는 것으 로, 여기서는 은자 이씨가 은거하는 곳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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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모습이 비 냄새가 가득한 저녁, 하나둘 인가에서 피어오르는 밥 짓는 연기로 형상화되고 있다. 그러나 제5∼6구에서는 서리 내린 밭두둑과 모래톱 기러기의 울음으로 앞서와는 달리 쓸쓸 하고 서글픈 정서를 나타내고 있다. 이는 다음 두 구를 이끌어 내기 위한 전제로, 마지막 제7∼8구에서 시인은 은자가 있는 곳 이 멀리 하늘 높이 떨어져 있어 아직 만나지 못하고 있음을 안타 까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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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반두를 지나 황하 너머 영락 땅을 바라보며, 제량체를 본떠 아내에게 부쳐
출렁이는 한 줄기 강물이 가로놓이고 고요하고 적막한 이경 초의 밤.
물결 위에서 그대를 그리워하고 강가에서 그대의 편지를 생각하네. 달은 먹칠한 눈썹 같고 구름은 새로 빗은 머리칼 같네. 봄날 만물은 사람의 뜻을 알아 복숭아꽃조차 홀로 있는 그대를 조롱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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夜過盤豆16)隔河17)望永樂18)寄閨中19)效齊梁體20) 夜過盤豆1)隔河2)望永樂3)寄閨中4)效齊梁體5) 盈盈21)一水隔, 寂寂二更初. 波上思羅襪22), 魚邊憶素書23). 月如眉已畫, 雲似鬢新梳. 春物知人意, 桃花笑索居24).
16) 반두(盤豆): 지명(地名). 지금의 허난성(河南省) 링바오현(靈寶縣) 서쪽 의 판더우진(盤豆鎭)이다. 17) 하(河): 황하(黃河). 18) 영락(永樂): 지명. 지금의 산시성(山西省) 루이청현(芮城縣) 서남쪽의 융 러진(永樂鎭)이다. 19) 규중(閨中): 규방(閨房). 일반적으로 여인의 방을 가리키며, 여기서는 아 내를 의미한다. 20) 제량체(齊梁體): 남조(南朝) 제량(齊梁) 시기에 유행했던 염려(艶麗)하고 기려(綺麗)한 시풍. 21) 영영(盈盈): 물이 출렁이는 모양. 22) 나말(羅襪): 비단 버선. 여인을 비유하는 말로, 여기서는 아내를 가리킨다. 23) 소서(素書): 흰 비단에 쓴 편지. 옛날 문장이나 편지를 쓸 때 주로 1척 길이 의 흰 비단에 썼던 까닭에 ‘척소(尺素)’라고 했다. 24) 삭거(索居): 홀로 살다. 여기서는 시인과 헤어져 홀로 있는 아내를 가리킨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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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
이 시는 시인이 황하를 건너며 고향에 홀로 남아 있는 아내를 생 각하고 그리워하는 시다. 정확한 작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시 의 내용상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개원(開元) 22년(734), 20 세 무렵에 지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잠삼은 이 무렵부터 시작해 천보(天寶) 3년(744) 과거에 급제해서 우내솔부병조참군(右內 率府兵曹參軍)이 될 때까지 10년간을 장안(長安)과 낙양(洛 陽) 등지를 오가며 관직을 구했다.
시에서는 아내에 대한 그리움뿐만 아니라 홀로 남겨진 아내에 대한 걱정과 미안함이 함께 나타나 있다. 제1∼2구에서는 길을 떠나 밤에 황하 가에 다다른 시인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 비록 이미 아내와는 멀어져 있으나 이제는 다시금 큰 강물을 사이에 두고 있어야만 한다는 사실에 시인의 애틋함은 더욱 깊어져만 간다. 제3∼4구에서 시인은 차마 강을 건너지 못하고 강물만 바 라보며 아내에 대한 그리움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눈에 보이는 어떤 것도 아내를 떠올리게 하니, 제5∼6구에서 하늘의 달과 구 름마저도 아내의 모습으로 비치고 있다. 마지막 제7∼8구에서 시인은 홀로 남겨진 가여운 아내를 행여 복숭아꽃이라도 비웃 을까 걱정하며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을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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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업성에 올라
말에서 내려 업성에 오르나니 성은 텅 비어 다시 무엇이 보이겠는가? 동풍에 도깨비불은 날리어 날 저물어 비운전으로 들어가네.
성 끝에서 남으로 망릉대를 마주하니 장수(漳水)는 동으로 흘러 다시 돌아오지 않는구나. 위 무제 때의 궁궐 사람들은 다 떠나갔건만, 해마다 봄 색은 누구를 위해 오는가?
登古鄴城25) 下馬登鄴城, 城空復何見. 東風吹野火26), 25) 업성(鄴城): 위(魏)의 도읍. 건안(建安) 18년(204) 조조(曹操)가 위왕(魏 王)으로 등극하며 도읍으로 삼았다. 지금의 허베이성(河北省) 린장현(臨 漳縣) 서남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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暮入飛雲殿27). 城隅28)南對望陵臺29), 漳水30)東流不復回. 武帝31)宮中人去盡, 年年春色爲誰來.
해제
이 시는 개원(開元) 27년(739) 25세 때, 장안에서 하삭(河朔, 황 하 이북) 지역을 유랑할 때 업성(鄴城)에 올라 쓴 것이다. 시에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전반에서는 업성의 황폐하 고 황량한 모습을 묘사하고, 후반에서는 옛날의 화려했던 모습 을 회상하며 옛사람들은 가고 없어도 무한히 반복되는 자연현 상을 묘사함으로써 인생의 유한함과 덧없음을 말하고 있다. 형 식에 있어 전, 후반을 각각 5언과 7언의 장단(長短) 형식으로 구 분해 사용함으로써 유한한 것과 무한한 것의 차이가 리듬과 호
26) 야화(野火): 도깨비불. 27) 비운전(飛雲殿): 업성의 궁전 이름. 28) 성우(城隅): 성 끝. 성 모퉁이. 29) 망릉대(望陵臺): 업성의 누대로, 동작대(銅雀臺)를 말한다. 30) 장수(漳水): 물 이름. 장하(漳河)라고도 한다. 칭장수이(淸漳水)와 줘장 수이(濁漳水) 두 강이 지금의 산시성(山西省) 동남부에서 발원해 허베이 성(河北省) 허장진(合漳鎭)에서 합류하는데, 이를 가리킨다. 31) 무제(武帝): 위왕 조조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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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을 통해서도 극명하게 대비되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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