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인근 작품집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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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인근 작품집


어머니


一 나는 녀름 방학이 되여 일 년 만에 그리운 싀골 집에를 가게 되엇다. 다른 학생들은 춘긔 동긔 방학에도 다 집에 다녀왓 지만은 그례도  녀름 방학이 되니 불야불야 그 잇흔 날로 다 나간다. 나도 가고 십흔 마암이야 굴독 갓헛지만은 고학이라고 하다가 밥갑도 밀니고 로쟈도 업서서 방학한 후 한 달 동안 이나 로동을 하여 밥갑을 겨오 회게하고 로쟈가 얼마간 부 죡하지만은 나는 것이다. 나는 아참을 먹지 아니하엿다. 어졔 저녁지 밥갑 회게 를 다한고로 오날 아츰을 먹게 되면 부죡한 로쟈에서  몃 십 젼을 헐어 쓰게 되는 닭이다. 경셩역에 와서 차표를 사 랴니 예산대로 두 정거장 차ㅅ갑이 모자란다. 할 수 업시 그 대로 삿다. 북적북적 는 만흔 사람 가운데 내 모양은 너머나 참혹 하엿다. 학생에게 흔히 보는, 새 모쟈를 헌 모쟈처럼 맨드러 쓰고 양복도 함부로 입고 구두도 생전 닥거 신지 아니하며 그보다도 굽 놉흔 일본 나막신을 신고 뒤에 수건을 느리고 다니는 그러한 모양을 가진 내가 아니엇다. 그 사람들은 그 러케 막 닙어도 어늬 구석에든지 돈 잇는 집 자식의 표가 나 61 어머니


고 풍셩풍셩한 긔운이 돈다. 그러나 내 양복은 로동쟈의 옷 이랄지 ― 로동쟈도 새 감으로 잘 닙은 사람도 만흐닌가 ― 거지의 옷이라는 것이 어상반할6) 것 갓헛다. 머리에서 발긋 지 내 몸에 붓친 물건, 옷 속에 든 물건지 통트러 노아도 몃십 젼의 가치가 업는 것이다. 거긔다가 얼굴지 누리퉁 퉁하고 음울한 긔운이 돌며 남 보기에는 누가 손가락으로 나를 건드리기만 해도 주린 사쟈처럼 덤비고 쌈을 할 듯한 셰상을 저주하는 독한 표정이 잇서 뵈일 것이다. 팔십 리나 걸어 나는 무겁고 압흔 다리를 즐즐 며 동구 밧게 니르럿다. 다리도 압흐거니와 배도 몹시 곱헛다. 다른  갓흐면 팔십 리이야 비호처럼 닥처 올 터이지만은 아 츰도 변변히 못 먹은 데다가 졈심지 이 고 종일 오 느라니 여간한 고이 아니엇다.  거긔다가 일 년 내내 두 고 닙든 옷부시럭이를 싸고 이 책 저 책 멧 권을 집어 너흐니 큼직하고 묵직한 봇다리가 되여 그것을 메고 오느라니 억캐 가 허지는 것 갓헛다.  게다가 날은 극히 더웟다. 밧삭 말은 길ㅅ바닥에서 확확 니러나는 더운 김은 숨을 막는다. 목이 말너서 주막집마다 물 한 대졉식 신셰를 졋다. 나는 배

6) 어상반(於相半)할: ‘어상반하다는 ’ ‘양쪽의 수준, 역량, 수량, 의견 따위가 서 로 걸맞아 비슷하다는 ’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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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흠과 다리 압흔 것을 니를 악물고 참엇다. 몸은 약한 편이 나 강단은 잇는 닭이다. 엇던 사람은 배곱흔 나 다리 압흔 는 풀이 죽고 맥이 풀니며 몸과 마암이 시들고 죽은 것 갓지만은 나는 너머도 만히 주리고 압흔 것을 지나서 그런지 배곱흐고 압흔 는 일층 이상한 용긔가 소사난다. 그짓 주림과 압흠에 내가 쇽박을 밧겟느냐 하는 일죵 반항심과 극긔심과 독한 마암이 소사난다. 차간에서도 벤도를 사느니 아이쓰크림을 사느니 -어 를 사느니 해서 양이 거의 찻슬 듯한데도 쉴 새 업시 입 놀니 는 사람들을 볼 , 주막주막에 쉬는 사람들이 을 먹느니 막걸니를 먹느니 참외를 먹느니 하는 것을 볼 도 눈을 감 고 참엇다. 논두둑 밧두둑에서 농부들이 돌나안저 박아치ㅅ밥을 먹 는 것을 보고 그런 뒤에 돌나안저 니야기하고 담배먹고 노 래하고  싯컴언 뱃댁이를 내놋코 벌덕 누워서 코 고는 것 을 볼  나는 새삼스럽게 부러웟고 그들의 행복을 쇽으로 축하하엿다. 그러나 나죵에는 졍말 다리가 압흐고 배가 곱허서 아가 시아 그늘에 펄셕 쥬저안즐  눈물이 핑−돌앗다. 배곱흔 것 다리 압흔 것도 졀졍(絶頂)에서 조곰 넘어가 63 어머니


면 나흔 법인지 나는 어렵지 안케 참으면서 거름을 재촉하 엿다. 동구 밧게 니르러 그리운 본향의 욱어진 나무와 수풀 들의게 고흔 달빗이 환하게 빗최여 잇는 것을 볼  반갑고 재미잇는  쇽의 일 갓햇다. 동편 마을과 셔편 마을 사이에는  큰 내ㅅ물이 흘너갓 다. 우리 집은 셔편 마을에 잇서서 이 내를 건느게 된다. 동 에서 소사 나온 둥글고 큰 그려고 감으름ㅅ한 달이 되여 서 좀 붉은 긔운을 워 가지고 셔편 마을 뒷동산을 환−히 빗최고 잇다. 그 산은 나무도 업고 잔듸로만 둥그스름하게 생긴 산이다. 나무 만흔 산에 빗최인 달도 운치 잇거니와 나 무 업는 잔듸밧 산에 빗최인 달도 아름다웁다. 작년에는 이 내에 큰 다리가 잇더니 금년에는 장마에 다 리가 나간 모양이다. 할 수 업시 양말을 벗고 졍강이 차는 내ㅅ물을 건느게 되엿다. 이 의 확근확근하던 발이 찬물 에 잠길 순간에 산듯하고 시−원하고 자릿자릿한 이상한 쾌 감이 생겻다. 달은 내ㅅ물에 빗최여 건들건들 춤춘다. 나는 그것을 바 라볼  어려서 이 내ㅅ물에서 살살 긔여 다니며 고기 잡고 텀부덩텀부덩 목욕하는 광경이 오른다. 조곰 커서 동무들 과 고기잡어 숏 걸고 밥 해먹든 생각이 저−윗 편 강변에 달 빗에 싸혀 은은히 보이는 버드나무 숩을 볼  ‘아−재미스 64


러운 이엿구나하고 ’ 내 몸이 그리로 금방 녀가는 것 갓 흔 그리움이 생겻다. 나는 혼쟈 중얼거렷다. “아− 그 어릴 의 나와 지금의 나? 인생의 괴로움? 나 의 쟝래?” 나는 한참이나 내ㅅ물에 서서 이 귀여운 취한 듯한 마암 을 놋치지 안으랴고 붓잡고 잇셧다.

二 “어머니!” 하고 나는 조고마한 다 쓰러진 싸리ㅅ문을 드러스며 소 래 질넛다. “아이그! 몽득이냐.” 하고 어머니는 맨발로 여 나온다. 어머니와 내 얼골에는 푸르스름한 달빗이 빗최엿다. 셔 로 아모 말이 업시 일 년 동안 못 본 어머니의 얼골과 일 년 동안 못 본 아달의 얼골을 서로 욕심것 직혀보앗다. 어머니 의 볼에는 우슴이 움직이고 눈에는 눈물방울이 젹거렷다. 얼는 보아도 일 년 동안에 몹시 늙고 바스러지고 여윈 것이 65 어머니


나타낫다. 이것이 일 년 만에 어머니와 아달−그것도 유달니 이 셰 상에는 아모 다른 식구와 친쳑도 업는 다만 유일한 나의 어 머니와 다만 유일한 그의 아달인 나와 만나는 슯흐고도 깃 븐 씨−ㄴ7)이엿다. “몽득아, 잘 왓다. 오작 다리가 압흐고 억개가 압헛겟늬.” 하고 어머니가 봇다리를 밧어 가지고 돌아설  행주치마로 눈물을 씻는다. “어머니, 마루로 올나오세요.” “졀 하랴고 그러늬. 얘, 그만 두어라. 어서 옷이나 벗고 시원하게 세수나 하여라.” 하고 어머니는 불이낫케 부억으 로 들어간다. 내가 무거운 봇다리를 지고 다리 압흐게 온 것을 보고 어머니는 가삼이 여지는 듯한 애처러움이 니러난 것이 다. 나는  어머니가 눈물을 흘닐  아−내가 어서 공부 잘해가지고 돈도 벌어 어머니도 호강 식히고 나도 잘 지내 여 어머니의 마암을 깃브게 하고 십다 하는 생각이 니러난 다. 나는  보ㅅ다리를 으며 생각하엿다. 아−이 보ㅅ

7) 씨−ㄴ: 신(scene).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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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쇽에는 어머니 쓰시라고 어머니 잡수시라고 사온 물 건이 하나도 업다. 셔울처럼 됴흔 데 잇다가 일 년 만에 오 는 나로서 뷘숀으로 어머니를 대하게 되니 너머도 과한 나 의 신세이다. 나는 댈그럭댈그럭하며 밥상을 차리느라고 부억에 잇는 어머니를 향하야 숀을 합하며 용서하라는 긔 도를 하엿다. 어머니는 밥상을 가지고 나왓다. 쌀 한 알도 셕기지 못한 보리밥과 된쟝과 간쟝, 고치쟝 무슨 나물, 열무국이다. 어머 니는 반찬 업는 밥상을 갓다 놋키가 너머도 어려운 듯한 표 졍은 참말로 보기 어려웟다. 어머니는 반드시 이러한 신셰 자탄을 하엿슬 것이다. “오래간만에 오는 다만 하나인 외아달의게 고기 한 칼 사 서 못 먹이는구나. 고기는커녕 흰 쌀밥 한 사발도 못 먹이는 구나.” 하며 목이 메고 가삼이 압헛슬 것이다. 나의 고학−밥갑은 몰니고, 책은 사야겟고 월사금은 내 야겟고 이리로 더리로 냉졍한 거리를 쏘다니는 것과, 어머 니의 살님−늙은 몸으로 논매고 밧매는 품파리와 내 바느 질품으로 겨오 호구해나가며 거긔다가 기나긴 봄날, 기나긴 겨울밤에도 아달을 생각하는 걱졍으로 지내는 것과, 그 두 신셰가 비참하지만은 서로 염려하고 미안히 생각하고 죄숑 히 생각하고 셔로 애처럽게 생각하는 그 사랑은 보통 어머 67 어머니


니와 아달 사이보다는 굿셰엿다. 나도 냉졍한 사회에서 알 들살들 쳔대를 밧고 구박을 밧으며 지내다가 어머니의게 도 라와 비로소 듯한 사랑, 귀여움을 밧게 되엿다. 넓은 텬지 에 밋을 사람은 하나도 업지만은 어머니는 밋을 사람이다 하는 것을 졀실히 늣겻다. 어머니 품, 어머니 졋곡지보다 나 흔 것이 왼 우쥬 가운데 무엇이  잇스랴 하는 것을 알엇다. 다시 한 번 죽은 뒤에 일이 생각된다. 내가 셰상에서 고생하 다가 쇼위 본향과 갓흔 속으로 뭇칠  거긔에도 어머니 와 갓흔 사랑이 기다리고 잇슬가? 하는 것이엿다. 나는 물만 작고 먹히고 배곱핫든 비례로 말하면 젹게 먹 은 셰음8)이지만은 어머니가 졍셩것졍셩것 해주섯는데 하 는 생각을 문문 하고 숫갈로 잔득 퍼서 맛잇게 만히 먹 엇다. 밥상을 치운 뒤에 어머니는 “몽득아-” 하면서 니야기를 붓친다. 내 아명이 몽득이어서 어머니는 늘 몽득이라고 부른다. 커서도 그 일홈을 부를 마다 녯젹을 그리워하는 생각이 나서 둇케 들녓다. 몽득이란 은 에서 어덧다.  문에 나핫다 함이다. 하로는 어머니가 내ㅅ물가에서 내를 하

8) 셰음: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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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데 뎌 편에서 엇던 졈잔은 대사 두 사람이 오더니 날나갈 듯이 합쟝재배를 하고 지나가랴는 것을 다시 불러 집으로 다리고 가 하−얀 밥을 지어서 대졉하는 을  그 달브터 태긔가 잇섯다 한다. 내가 날 에도 태ㅅ줄을 언메고9) 나 와 중의 삼신이 졈지하엿다 한다. 나는 마루 헤 안저 맑고 긋한 달을 처다보고 잇는데 어머니는 담배를 피우면서 이런 니야기 저런 니야기를 하엿 다. 비가 안 오고 오래 감으러서 곡식이 모다 타 죽어 인심이 흉흉하다는 말, 누가누가 죽엇다는 말, 누구누구는 며나리 보고 손쟈 보앗다는 말이엇다. 그 헤 어머니는 “이애, 인제 너도 그만치 공부도 하고 나희도 먹을 만치 먹고 에미는 밤낫 자나나 네 걱졍으로 편할 날이 업고, 업 는 살님사리에 고생하는 것이야 우숩다만은−그러나 하로 라도 너하고 갓치 살다가 죽어야 하지 안늬, 내가 살면 몃 해 나 더 살겟늬. 며나리나 보고 죽어야지, 손자지 볼 욕심은 내지도 못한다만은-” 하며 담배ㅅ대를 마루 헤 탁탁 털 어 다시 담배를 담는다.

9) 언메고: 엇메고. 엇비스듬하게 둘러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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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 혼인−혼인 하야 될 것은 나도 발서브터 알엇다. 그야 물론 일 잘하고 튼튼한 촌색시와 할 것이다. 가정 형편 경데상 엇 지 할 수 업는 사실이다. 하로라도 쇽히 쟝가드러 어머니의 외로움을 도아주고 일을 도아 줄 안해를 어더야 할 것이다. 그러나 되지 못한 공부ㅅ쟈나 하고 연애니 리상젹 가졍이니 신녀쟈이니 하는 것을 귀털고 드른 나로는  그러케 가갸 뒷다리도 모르는 녀쟈와 혼인하기는 실헛다. 그야 그러한 녀쟈와 혼인하야서 어머니와 갓치 촌에서 농사나 하고 지냇 스면 어머니의게는 더 업는 행복을 주는 것이요, 내 자신의 게도 행복이 될는지 모르지만은 그는 발서 틀닌 노름이다. 나의게는 는 감졍과 공상과 욕망이 여간 굉쟝치를 안이하 엿다. 한 내 대로 될 자신도 확실하엿다. 그러타고  지금 당쟝 신녀쟈와 제법 훌늉하게 혼인할 처지가 못 되고 그러한 자격이 나의게는 업다. 나 개인으로 는 훌늉한 쳥년인지 모르지만은 녀쟈가 보는 눈은 그러케 너그럽지 못하다. 현대 혼인 조건의 쳣재는 이러니 뎌러니 하여도 돈이다. 황금이다. 돈 업는 사나희는 제 아모리 쇽에 육조배관을 하엿드래도 혼인하기는 좀 어렵다. 나는 첫재 재산 문뎨로 구두 신고 머리 튼 실긔스러운 신녀쟈와 혼인 70


못 할 것은 백번이나 생각한 것이다. 구식 녀쟈와도 혼인할 수 업고 신식 녀쟈와도 혼인할 수 업는 기셰양란인 쳐지에 운 나로 작고 혼인하라고 졸으는 어머니의 그럴 듯하고도 모순되는 애처러운 말을 드를  나는 마암이 무겁고 답답 하엿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 염려 마서요. 차차 혼인하게 될 터이지요.” 하고 벌덕 니러스며 “밧게 가서 돌아다니다가 드러올게요.” 하고 싸리ㅅ문 밧그로 나왓다. 내 동내 압헤는 쟝광이 삼십 리나 되는 넓은 들이 잇다. 그 넓고 크고 푸른 들을 고흔 달이 환−하게 빗최여 잇는 것 을 볼  나는 가삼이 탁 열니는 것 갓고 시원하엿다. 그러고 그 은물결 치는 들 우헤를 이리로 왈칵 뎌리로 왈칵 다람질 하며 고 춤추고 십흔 츙동이 니러낫다. 그려고 환히 멀니 보이는 아름다운 찬란스러운 希望의 將來가 그림처렴 눈압헤 나타난다. 나는 가삼이 는 깃브

고 재미스러운 흥분에 못 익이여 중얼거렷다. “불상한 어머니 ― 혼인 ― 안해, 아들  ― 다 일 업다. 나는 배화야겟다. 모르는 진리를 캐야겟다. 참사람이 되여 하로라도 참생활을 하다가 죽자. 사회에 가졍에 돈에 무엇 무엇에 밤낫 을켜 허둥지둥할 것 업다. 나가자. 압흐로 나가 71 어머니


자, 쳘두쳘미하게 ― 혼인? 흥! 혼인하는 날이면 볼 일 다 본 다. 어린 것이 ― ” 내 머리에 얼기설기 엉크러졋든 것이 솔솔 풀니는 것 갓 고 무겁고 단단하게 감겻든 태엽이 확− 풀니는 것처럼 마 암이 시원하여졋다. 뎌편 둥구나무 밋헤는 멍셕을 고 동내 늙은이들이 모 혀 안저 부채를 활활 붓치면서 무에라고 웅성웅성 니야기도 하며 갓금 너터리 우슴으로 허, 허, 허 하는 소리가 들닌다. 이 편 길바닥에는 동내 젊은이, 어린이들이 모혀 주고 밧고 노래를 한다.

<조선문단> 1호, 192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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