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항림 작품집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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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권(馬券)



시게를 딜여다보는 척하면서 딱 하는 소리와 함께 굴러가는 꼴프알을 보고 동시에 무사히 넘어선 코-쓰를 한번 다시 흘터보며 회심의 웃음을 지여 웃는 상대자의 표정까지 곁눈 질하고 그가 자기편을 보기 전에 얼핏 시선을 시게우로 떠 러트렸다. 이것으로 빼삐꼴프 한번 치는 사이에 세 번째 시 간을 보는 셈이다. “저 미안하게 되었읍니다. 시간이 밧버서 껨 중도지만 실 레하야겠는데 용서하십시요.” “천만에요. 그리 밧부지 않으면 가치 치시면 좋을텐 데….” “중도에 참 미안합니다. 다음에 또 짬이 있으면―” 그 사이에 료금을 치르고 말을 끝까지 맛추기 전에 총총 걸음으로 달리듯이 꼴프장을 나왔다.―그런즉 어데로 갈까. 萬成이는 아직도 밧분 걸음을 늦잡지 않은 채 갈 곳을 적어

도 가도 좋을 곳을 찾노라기에 발보담도 머리가 분주히 도라 감을 늣겼다. 인제는 찾어갈 곳은 한 박휘 돈 셈이고― 옳지 도서관이 있지 않는가. 열람표를 사 쥐고 신깐으로 가는 동안 빼삐꼴프장의 일이 생각났다. 껨은 그렇지 않어도 이미 졋든 것이닛가 미련이 있을 리 없고 시게를 두세 번 끄내 보다가 밧버서 미안타고 중도에 나오고 보니 자기를 한가해서 견디지 못해하는 사람 으로는 보지 않을 것이다. 그만하면 거기서는 성공이다. “네?” 신 맣는 사람은 자기과 머라고 하는 줄 알었든지 신 21 마권


장에서 얼골을 돌리며 따진다. “아니 혼잣말이웨다.” 신문실로 들어세니 담뱃내가 자욱한데 칠팔 명 둘러앉어 신문을 읽고 있다. 남은 것이라고는 지방신문밖에 없다. 하 는 수 없이 福岡日報를 들고 그 읽기도 싫은 기사 우로 넘겨 다 열람자의 종루를 분루하기 시작했다. 바로 또어 안 편 의 자에 깊이 앉어서 신문을 들고 읽는 삼십 내외의 ‘쯔메에리’1) 와 그 마즌 편에 한 손으로 턱을 고이고 읽고 있는 이 또한 삼 십 갓가운 쯔메에리와 그 옆자리의 한옥은 분명히 신문이 읽 고 싶어서가 아니고 공부하다가 담배가 먹고 싶어 나려왔어 도 그 시간을 리용할려고 그러는 모양이다. 담배 빠는 데만 온 정신이 팔려 있는 것으로 알 수 있다. 그 반대로 만성의 바 른편에 앉은 작자는 년재소설을 읽노라고 불 꺼진 마꼬2)를 성급히 빨다가 다시 성낭을 그어댄다. 그때 만성은 자기 왼편 에 있는 중학생에게 주이가 끌리었다.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 고 뒤에서 보고 있는 줄도 몰으고 손에 못인지 펜 끝인지 뾰 죽한 것을 쥐고 우진3) 가리운 신문지 아레로 삽화를 따내서 는 남 몰으게 포켓에 구겨 넣는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보고 그때는 벌서 시침을 떼고 선 체 신문을 읽고 있는 만성의 뜻

1) 쯔메에리: 쓰메에리(つめえり). 양복의 세운 깃, 또는 깃을 세운 양복을 입 은 사람. 2) 마꼬: 식민지 시절에 시판됐던 5전짜리 싸구려 담배. 3) 우진: 우정, ‘일부러의 ’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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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않었든 존재에 저 혼자 열적어하며 신문을 이리저리 뒤 채다가 나가버린다. 그 틈에 얼핏 신문을 박구고 그 자리에 앉어서 가장 긴급하게 참작하여야 할 기사나 찾는 사람과 같 이 기사는 채 읽지도 않고 제목만 눈을 스처가며 한 장 두 장 넘기다가 양덕읍내 전화개통이라든가 최 모가 어느 사립학 교에 이백 원 기부라든가 하는 종류의 대스럽지 않은 곳에 잠 시 눈을 멈추었다가는 다시 넘긴다. 그러나 그실은 몇 곳이나 오려갔는지 혜보는데 약간의 흥미를 갖이고 여섯 곳을 찾어 냈을 뿐이다. 우로 올라가 책을 청할려고 보니 무슨 책을 택 할는지 카―드를 뒤저야겠으나 그것은 갔어도 좋을 곳을 찾 는 데 버금가게 있음즉하고도 없는 것을 찾는 어려운 일이다. 위선 월간잡지 한 권을 적었다. 그러나 잡지 한 권만 찾어들 고 어슬렁어슬렁 자리를 찾어가는 양은 아모래도 한가한 사 람으로 뵐 것에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하는 수 없이 카―드함 을 열려고 하는데 변호사시험공부를 한다는 풋낯4)이나 알든 사람이 열람실에서 나오다가 인사를 한다. 긴급히 읽고 싶은 것이 없고 따라서 책 선택에 망설이는 자기를 보여주는 것 같 어서 문득 생각나는 대로 적는다는 게 사 읽고 남은 ‘세스토 프’5) 선집이였다. 관원은 열람표를 받어들고 보드니 얼골을 찌프리며 책의 번호도 기입하지 않었고 성명도 쓰지 않었다 4) 풋낯: 서로 낯이나 익힐 정도로 앎. 또는 그 정도의 낯. 5) 셰스또프: 셰스토프(Lev lsakovich Shestov, 1866∼1938). 러시아의 철학 자, 문예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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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툭명스런 손세6)로 돌려준다. 조금 불쾌할 수밖에 없었으 나 밧버서 잊어버린 듯이 웃으며 머리를 벅벅 긁고 아모렇게 나 일흠을 갈겨썼다. 직업은 무어랄가 회사원은 이 시간에 올 것 같지 않고 예술가라고는 객적은 일이려니와 한가한 백성 이고 상업은 싫고 학생은 아니고 그타7)라는 것은 더 가딤이 고8)― 종시에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 책이 있기나 한가고 의심하면서 책 번호를 찾는 틈틈이 앗가의 그 사나이를 살핀 다. 변호사시험 준비에 그야말로 침식을 잊는다든 그는 공부 하노라고 얼골이라도 조금 수척했음즉한 일이건만 양데9)같 이 흠썩하다10). 개기름이 번지르한 얼골에는 때아닌 여드름 까지 펴릿펴릿11)해 가지고 소설 부문을 뒤지었다. 의학부문 의 카―드를 뒤채었다 하다가 라체미술전집 한 권을 적는 모 양이다. 만성의 책도 요행히 있어서 번호를 써넷다. 책을 받어들고 자리를 찾어앉으니 주위에 빽빽이 찬 군중 은 정숙에도 불구하고 想念을 간섭하여 마음을 가다듬을 길 없다. 잡지의 창작난을 펴놓았지만 각별히 읽고 싶은 글도 실 린 것 같지 않다. 첫머리의 몇 줄식 읽다가 밀어놓고 ‘세스토

6) 손세: ‘손짓의 ’ 사투리. 7) 그타: 기타(其他). 8) 더 가딤이고: 더 가림이고. 9) 양데: 콩과의 한해살이 넝쿨성 식물. 10) 흠썩하다: 마음에 들도록 매우 많다. 11) 펴릿펴릿: 퍼릇퍼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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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 선집을 되는대로 들처 놓았다. 앞 책상에서는 중학생들이 하든 공부는 집어치우고 산부인과책을 얻어다 피놓고 서로 쿡쿡 찔으며 소리를 죽여 웃고 있다. 그사이에 조름이 온다. 여기서 졸면 그건 정 창피다.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포켓 을 뒤지여 수지 겸으로12) 넣두었든 원고지를 끄내놓고 가장 긴급한 것이나 같이 엄숙한 표정으로 적는다. ‘二二는 四는 死의 처음이다’ 그 아레 난잡한 글시로 ‘그 리고 二二는 五는 발광의 처음이다. 死가 生 生이 死가 아니 라고 누가 말할 수 있는가 그건 세스토프 너의 고백이다. 산 보람이 없는 生, 발광에만 전도가 있다. 그리고 나 자신의 고 백이 또한 그렇지 않다고 누가 말할 수 있는가’ 다시, 졸리기 전에 곳 거기를 나왔다.

***

만성은 일기를 쓰고 잘려고 일기장을 펴놓고 하로 지낸 일을 회상하면서 앞에 씨운 생활을 한 번 다시 딜여다본다. 9월 12일 낮잠을 자고 있노라니 아버지가 들어와 깨우며 사람이 그렇게 먼숭먼숭 놀기만 하면 못쓴다고 훈게한다. 언 제는 한다고 야단 이제는 않한다고 걱정. 그리고는 죽은 사 람만 언제까지 생각지 말고 좋은 자리 있을 때 장가를 들라

12) 수지 겸으로: 휴지를 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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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으레히 나올 줄 각오했든 그 이약이다. 죽은 처를 못 닞어 재혼하지 않는다고는 웃어운 일이다. 그리고 便利하고 감사 할 일이다. 죽은 처에 대해서는 무엇보다 凡俗의 가정을 갖 이고 간 것을 감사하는 나이다. 창세와 두어 시간 갓가이 꼴 프를 쳤다. 九月二十三日 우진 아버지 보도록 六法全書와 法學通 論과 ≪趣味의 法律≫을 가지고 들어갈 때 그의 깃버함! 책

은 종서에게서 얻어온 것이고 책값으로 타낸 십 원은 술값으 로. 종서는 술 먹으면서도 ≪그레잍 앰븨숀≫만은 읽지 않 으야 한다고 하든가 만세! 박수! 만만세. 九月二十八日 또 낮잠. 하품, 글 몇 줄, 거리로―. 九月二十九日 또 그렇게. 九月三十日 또. 十月 一日 또.

’ 거듭되니 분주한 것 같아도 보인다. 十月 二日 또. ‘또가 (자유일기라 한 페―지에 5일 간의 일기를 쓰고는 하로도 빼논 길 없든 일기를 나흘 동안이나 쓰지 않었다.) 十月 七日 無爲의 生活을 하는 것은 자기에 대한 자기의

일이다. 무위의 생활을 하는 것 같이 보임은 세상에 대한 자 기의 일이다. 무위의 생활로 보이는 때문에 나의 생활이 더 욱 무위하게 되는 것 아닌가 남이 머라든 나는 나대로 주때 있는 생활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을 때는 그것은 문제 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그것을 용허할 여유가 있는가. 분 26


주한 척한다고 남을 속이는 즛은 결코 아니다. 나를 특별히 한가한 인종으로 차별하기를 중지함은 공평한 일이고 또 나 의 당연한 요구다. 注意 (1) 큰 거리로 여럿이 짝지여 단기지 않을 것 (2) 걸음발 빨리 할 것 (3) 할 것이 없으면 위선13) 그 리 반갑지도 않고 맞나야 할 일도 없는 동모들이라도 차레로 한번씩 찾어감도 무방 (4) 但, 한 시간이상의 長坐14)는 禁物. (그 후 몇일 동안 갑작이 일기가 길어지고 기억나는 껏의 친지를 방문하노라고 일없이 분주하든 일을 적은 것이 있었 으나 그것은 읽지 않고 만성은 오늘 일기를 만들려고 붓을 들었다) 十月 十四日 아츰잠이 늣다고 대장이 화를 낸다. 例의 하

로 벽두의 조그만 사건이다. 기림리로 A를 찾어갔다. A는 마 즌 편 집 앞에서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그의 고무신 가가15) 로 가서 삼십분 동안 앉어 있었다. 기림리서 전차로 황금정 까지. ‘뻐스 노리까애16)’. P를 찾어갔다. ‘스끼야끼’17)집도 술 장사라고 정오가 넘었는데도 아직 않 일어났다. 오래간만에 라고 가치 술잔이나 하자는 것을 분주타고 나와 버렸다. 빼 삐꼴프장은 한가한 인종의 장터다. 졋다고 등 달어 할18) 필

13) 위선: 우선. 14) 장좌: 오래 앉아 있는 것. 15) 가가: 가게. 16) 뻐스 노리까애: 버스를 갈아 탐. 17) 스끼야끼: ‘전골을 ’ 뜻하는 일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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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야 없겠지. 도서관에 들려 세스토프를 복습. 밤―창세와 종서가 집으로 찾어왔다. 가치 정섭의 집으로 갔다. 댓살 마 디이고 문단에 일흠이 조금 팔리였다고 우리들보다 퍽 어른 다운 척한다. 또 어른답기도 하다. 나보다 우리 대장이 어른 답듯.―찾어갈 곳이 벌서 없어젔다. 다음부터는 오늘 정섭 의 집에서 예술은 자기를 만족식이기 위함인가 하는 것으로 말한 것과 같이 되도록 큰 문제를 내걸고 론쟁해 보는 것도 좋다. 마음만은 분주할 것이고 무엇보다 일기의 내용이 풍부 해진다. 問題 (1) 행복이란 무엇인가? (2) 무엇 때문에 사는 가? (3) 죽엄이 두려운가? (4) 종교는 과연 애편인가?

***

일요일임으로 증서를 찾어가지고 창세의 집으로 갔다. 금방 읽다가 그대로 책상 우에 펴논 책을 턱으로 가라치면서 만성은 무슨 책인가 뭇는다. 창세는 그 말에는 대답지 않고 ‘사는 것은 수평적 타락이다’ 하며 혼자말같이 중얼거리였다. “누구의 말이가 네 말이가?”―“아니.” “누군지 우리보다 별로 잘난 놈도 아닌 모양인데―” “왜?―쟌, 콕토19)의 말이다.” 18) 둥달어할: 등 달아 할. ‘등(이) 달다는 ’ ‘마음대로 되지 않아 몹시 안타까워 하다라는 ’ 뜻. 19) 쟌 콕토: 장 콕토(Jean Maurice Eugène Clément Cocteau, 1889∼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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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성은 방석을 덥어 배이고20) 길게 누으며 연극 臺詞 읽 듯이 그 말을 한번 받어 외이었다. 종서는 옆에 누은 그의 허 리에 손을 얹으며 물었다. “수평적 타락이라니?” “글자 뜻대로지 별 것 있나.” 그 사이에 만성은 자기의 일기, 더욱이 어제 일기를 생각 하고 “그거야 생의 意義란 것과 련결되는 말이겠지. 무엇 때 문에 사는가 물을 때 그 목적이 없는 사람의 생활을 말함이 겠지.” “아니 그 목적에 대한 회이도 될 걸.” 종서는 동모들의 허무적으로―그의 생각으로서는―흘 러가는 경향을 막어볼려고 힘썼고 지금도 그들의 말이 몹시 합당치 못하게 들리었기 때문에 별로 흥미가 없는 듯이 잠자 코 그도 눗고 말었지만 그것은 반박을 강조한 쩨스츄어였다. 그런 때는 으레히 무관심한 척하는 태도를 짓고 있다가도 자 기 생각만 수습되면 돌연 공세로 나세는 그의 솜씨를 짐작하 는 만성은 은근히 그의 말을 꾀이듯이 “죽고 싶은가 물어서 그렇다고 대답하는 사람은 많지만 기게가 되겠는가 뭇는데 그렇다고 대답할 사람은 없지 않을가?”

프랑스의 시인·소설가·극작가·영화감독. 20) 덥어 배이고: 접어 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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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종서는 펄떡 일어나 앉으며 굵은 눈썹을 음칫하고 언제나 의지를 두 입술로 물듯이 꼭 다물고 단이든 입술에 힘을 주는 듯한 어조로 공세의 제일탄을 던지였다. “그렇지만 자살하는 사람보다 기게가 돼서라도 사는 사 람이 많지 않을가?” “그렇기에” 창세는 입으로 갖어가든 담배를 성급히 부벼 끈다. “사는 것은 수평적 타락이라고 하는 말이다. 기게가 돼 서야 멀하려 살겠나 말이다.” “사람이 있고 그 다음에 사는 것이 아니고 사는 것 가운데 사람이 있지 않을가? 죽엄은 인간의 문제가 아니고 인간의 끝이 아닐가?” “무섭게 운명적인데! 사는 것이 사람의 운명이라고는 무 서운 일이다” 하고 과장의 한숨까지 짓는다. “쟌·콕토! 자신도 살어 있는 한 어떻게 살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어 있다. 죽엄이란 생물학적 사실이 있을 뿐이다. 죽엄을 사상한다는21) 것도 사는 것이다. 그러고 죽엄의 사상 은 어떻게 살가 하는 절박한 문제에서 도피할려는 어리석은 수단이다.” “그건 상식이다.” 그 상식을 향해 던지듯이 불 꺼진 담배 를 힘 있게 메치면서 “피치 못할 엄숙한 죽엄의 문제에서부 터 눈을 가리우는 것이다.”

21) 사상(思想)한다는: 생각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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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성도 일어나 앉어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같이 춤까지 삼키며 듯고 있다. “죽엄없이 생의 가치를 어떻게 증명한단 말이가? 아모리 비열하고 초라한 생활이라도 네 말대로 하면 훌륭하다. 생물 학적으로 살어 있으닛가. 죽엄을 생각지 않고 어떻게 사니?” “그럼 생의 자극으로 죽엄을 생각할 필요가 있니?” “너는 왜 자기 생각에서 한 발자국 내딥기를 그렇게 무서 워하니?” 하고 만성은 또 한마디 던지듯이 빼앗어놓고 눕는 다. 종서는 맥 풀린 눈으로 만성의 얼골을 들여다본다. 그가 경계하든 동모들보담도 절망과 슲음이 가득 찬 표정이라고 만성은 마주 처다보며 생각했다. “너는 언제나 어떻게 살가 하는 걸 말하지만 어떻게도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 아니가?” “어떻게도 할 수 없어 보이는 현실을 어떻게 해볼래는 것 이 인간이고 사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옳다고 할 수 있겠지.” “그러나 그것을 아직도 자신을 가지고 말하는 것은 너다 운 곳이다.” 이에 창밖에서 기침소리가 나고 곤색 신사양복을 단정히 입은 사나이가 들어왔다. 창세의 팔촌형 벌 되고 만성이나 종 서와도 낯이 있는 태홍이다. 창세는 그 이외의 침입자가 없었 드면 좀더 열변을 토했을런지도 몰으지만 그만 멋적게 입을 다물고 입에 발린 쉰사22)이나마 대답할 줄을 몰은다. 좁은 방안에 넷이 들어 앉으닛가 가득 차지만 말을 하는 사람이 없 31 마권


으니 조용할 수밖에 없다. 수작에 쏠리여 잊었든 담배들을 일 제히 끄내문다. 방안은 순식간에 눈이 아리도록 연기가 가득 찬다. 태홍이는 바로 문 안에 앉은 창세더러 문을 열어놓라고 한다. 종서는 만성과 마조 보고 왜 웃느냐고 물으면서 자기도 딸어웃는다. 딸어웃는 그는 이유도 없이 반사적으로 그랬지 만 만성이가 웃기는 K전문학교를 졸업하고 理事 견습을 마 추고 처음으로 이곳 금융조합에 副理事로 부임되여 온 이 점 잔흔 신사가 만일 조금 전에 우리들이 짓거릴 때 밖에서 듯고 있었다면 어떻게 생각했을 것인가? 할 것 없는 사람들의 탁 상공론이라고 비웃었을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여 제각 기 딴 생각을 하노라고 말도 없이 눈만 멀진멀진하는23) 세 얼 골을 둘러보니 자연 실없은 우슴이 새나왔든 것이다. 어석버석한 침묵에서 한두 마디 말이 시작되자 殖銀24)의 초급이 얼마고 사택료와 보너쓰가 얼마고 누구누구는 판임 관25) 몇 급인데 월급이 얼마라는 종루의 세상물정을 소개하 는 태홍의 혼잣말이 되고 말었다. 그리고 금융조합리사의 월 급은 얼마며 판임관 몇 급의 것과 같느냐고 뭇는 만성의 물 음에는 당장에 주저치 않고 아르켜준다. 만성은 종서를 보며 또 웃고는 기침으로 우슴을 감추며 열려진 문 사이로 가래를

22) 수인사(修人事): 인사를 차림. 23) 멀진멀진하는: ‘멀뚱멀뚱하는의 ’ 사투리. 24) 식은(殖銀): 조선식산은행(朝鮮殖産銀行)을 가리킴. 25) 판임관: 일제 강점기에 장관이 마음대로 임명하고 해임하던 하위 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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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앗고 문을 닫었다. 다시 금융조합 마―크 설명으로부터 자력갱생이니 농촌 진흥이니 하는 동안에 서향방안은 벌서 불 켜지기를 기다리 게 되었다. 각기 집으로 갈려고 나오는데 창세는 뒤떨어저 나오는 만성에게 귓속말로 “태홍이 작자 요즘 색시 선보레 단기노라고 분주한 모양이다 오늘도 하나쯤은 보고 왔을 걸” 하며 웃는다.

그날 밤 만성과 창세는 영화를 보려갔다가 영사중에 停電 으로 하는 수 없이 그곳을 나왔다. 창세는 들으란 속이겠지만 누구를 향해서 하는 말도 아닌 것 같이 글 읽듯이 “순수한 밤이다. 별도 없고 달도 없고―. 전등이 켜지면 무어든지 뵐 것 같지만 진렬장이 뵈고 게집이 뵐 뿐이지 그 우에 무엇이 뵈는가?” 만성은 또 시작했다고 댓구를 놓을려다가 일일이 반대하 기도 어리석어 보이여서 뭇는 말도 아니니 못들은 척하는 수 밖에 없다 생각하고 회파람을 불면서 조금 떨어저 것고 있 었다. 그들의 이견이 맞는 일은 극히 드믈다. 종서를 상대로 할 때는 그의 리론에 립각한 自信에 반항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 나며 회의의 파문을 던질려고 결렀고 따라서 창세와도 마음 이 맞지만 창세만을 대할 때는 종서와의 경우 보담도 위험한 폭발성을 언제나 늣기는 것이였다. 화제를 박굴 필요가 있지 33 마권


않는가. 등불에 어름풋이 보이는 게시판 앞에 멈즛 셌다. “그건 좀 재미나는 일인데.” 창세는 자기 말이 재미난다는 줄 알었든지 “재미날 일이 아니네….” “아니 저것 좀 보게 장진강발전소의 고장이라닛가 오래 동안 정전될 모양인데. 일요일닛가 헤경이가 종서네 집에 찻 어오지 않었겠나. 불이 껌벅하고 꺼질 때 어드랬을까. 가서 몰래 드려다 볼까?” “건 머라고.” 어두운 길을 우진 종서의 집까지 더듬어 와보니 요행히 대문이 열려 있다. 어둠에 삼키우듯이 두 그림자는 소리도 없이 문 안으로 사라졋다.

***

사실 만성의 말과 같이 그때 방안에는 단 둘밖에 없었다. 갑자기 전등이 꺼지자 서로의 호흡까지 들리는 아질아질한 침묵 속에서 헤경을 껴안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여전히 떠러 저 앉어 있는 것이 착각이 아닌가고 의심하여 보았다. 그러 나 다음 순간 종서는 태연히 일어나 성낭불로 초 한 자루를 얻어다 불을 켜놓았다. 그러고는 헤경의 편을 될 수 있으면 보지 않도록 남실거리는 촛불을 딜어다보며 “그래서 어떻게 34


됏소?” 하고 중단되엿든 이약이를 게속토록 재촉한다. 그것 은 그 뒤를 듯고 싶어서 뭇는 게 아니고 딴 생각의 ‘알리빠이’ 에 지나지 못하는 뜻 없는 목소리라고 해서 좋을 것이다. 벽력― 벽력이라고 할만한 일이 아닌가. 그것으로 서로 의 마음을 전달 식일려는 듯이 둘이서 직각으로 주시하든 촛 불이 별안간 꺼질 듯이 너풀거리며 방안으로 들어세는 늙은 아낙네를 비츠아냈다. 동시에 움칠 놀래는 그들을 추궁하는 말이 뜨겁게 얼골을 향하야 떠러졋다. “너이들 어두운 데서 멋하고 있니” 그래도 자기의 마련 없음26)을 깨달었는지 “어머니는 어 데 가셋니?” 하고 화데를 돌린다. 그는 메피스트27)도 요파28)도 아니고 몇 집 건너 사는 길 수 어머니었다. 촛불은 붓끝 같은 화심을 다씨 모아 가는 연기를 내둘으 고 있다. 종서는 얼골을 붉힌 채 레배당에 가겟다고 촛불을 향하야 대답한다. 그때 목소리는 그답지도 않게 떨리였다. 사년을 두고 사랑해오는 그리고 혼자 게신 어머니도 묵인하 고 일요일이면 그들을 위해서 밤레배가 끝난 뒤에도 반드시 어데 들리었다가 열시 지나서야 도라오는 사이의 헤경을 상

26) 마련 없음: 헤아림이 없음. 27) 메피스트: 메피스토펠레스(Mephistopheles). 중세 서양의 파우스트 전설 에 나오는 악마. 28) 요파(妖婆): 요사스러운 노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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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로 어둠이 갖어오는 충동을 눌으고 그런 테 없이 자연스런 동작을 갖일 수 있는 게 그의 노력의 한게가 아닌가. 길수 어 머니의 출현은 벽력에 틀림없다. 길수 어머니는 들어앉을 마음도 뒤를 니을 적당한 말도 없었든지 혹은 사태를 짐작하고 한탁내는29) 솜씨로 자리를 티워줄래는 셈인지 “불꺼진 대도 퍽으마 오랬지” 하며 대답 도 기다리지 않고 나가 버린다. 헤경도 조곰 더 앉어 있다가 덤비는 빛도 보이지 않고 도 라갔다. 종서는 대문가지 달어 나왔다. 그러나 어둠 속으로 멀어저 가는 구두 발소리가 동모들의 것인 줄은 알 길 없었다.

종서는 그 밤을 새워버리고 말었다. 그리고도 날이 밝고 그가 봉직하고 있는 S상회의 탁자에 앉어서 장부를 펴놓았 을 때는 그런 테 없이 붓대를 놀리고 있었다. 한고비 분주한 시간이 지나고 사무에 피곤함을 늣기자 머리가 묵어워지며 꺼질 듯이 졸리여서 바람이라도 쏘일 작정으로 길가로 나왔 다. 저편에서 만성이가 밧분 걸음으로 오는 것이 보인다. “어델 갓댔나?” “양복점에. 오늘내일하면서 언제 돼야지.” “외투….” “응” 만성은 버룩버룩30) 웃으며 곁으로 갓가이 와서 “어

29) 한탁내는: 한턱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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젯밤에 어떻게 됏니?” “무어가?” “정전됏을 때 창세하고 너이 집 갓댔다. 딜여다볼래는데 너이들 나오는 바람에 도망해 버리고 말었다. 그래도 시침따 겠니?” “그 따위 실없은 수작은 두었다 해라.” 다시 분주히 걸어가는 만성의 뒷모양은 자기를 조롱하노 라고 어그작거리는 것같이 종서에게는 보이였다. 실없은 억 측으로 자기를 놀려 먹을려는 그를 아모리 친한 동모 사이라 하드래도 요강에 물 떠먹은 것같이 꺼림칙해서 용서하고 싶 지 않았다.―불꺼지였다고 어떻게 된다면 문제는 간단하다. 냉정한 마음으로 해결할래도 해결할 수 없는 것을 불이 꺼지 였다는 우연에 막기여 될 대로 되여 버린다고는 너머나 통속 소설적이고 우연에 대한 인간의 패북31)이고 리지에 대한 본 능의 승리다. 이런 생각에 해를 지우고 저녁 전에 한잠 자리라고 큰마 음 먹고 총총히 집으로 도라왔다. 부엌에서 밥 짓는 어머니 와 이약이하며 벽 문턱에 섯든 길수 어머니는 부엌문에 기대 었든 몸을 도릿켜 들어오는 종서를 향하야 능측스런32) 웃음

30) 버룩버룩: 입을 크게 벌리고 흡족하게 자꾸 웃는 모양. 31) 패북: 패배(敗北). 32) 능측스런: 마음이 음흉하고 불량한 태도나 느낌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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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웃는다. 시침을 떼고 방안으로 들어갈려고 구두를 벗는 데― “너 장가가라고 왔다.” “흥.” 돌아보지도 않고 방문을 열어잡는 그를 붓잡듯이 말을 게속한다. “내 말 좀 들어라. 방금 그 말을 하고 있었지만 오늘 헤경 이 어머니를 길에서 맛낫댔는데 지금 차에서 내리는 길이라 며 몇일 묵어가겠다드라. 기회가 마츰 좋은데 이번에는 혼인 말을 내서 어떻게 하야지 않겠니.” “그런 말씀 마시소. 결혼이 다 무어요.” “그런 일이야 없을 줄 믿지만 젊은 아이들의 일이라 혹시 잘못 될지도 알간.” “그런 일이 있다고 하는 말씀이요 없다고 하는 말씀이요?” 그제야 아모 말 없든 어머니가 부지깽이를 든 채 부엌문 으로 내다보며 타일른다. “그게 다 널 위해서 하는 말인데 그렇게 말하는 법이 아니 란다. 싫으면 싫다고 하지.” “싫기는 머이 싫어. 공연히 그러는 게지 넌 가만 있으렴. 어른들이 어련히 좋게 처리하지 않으리.” 그는 무엇이 웃어 운지 깔깔 웃는다. 어머니도 따라 웃는다. 그 이상 문답할 필요가 없다 생각하고 방안으로 들어가 큰 댓자로 누었다. 어머니가 머라고 했는지 “그렇다고 팔십 까지 총각으로 둬두겠나. 좌우간 언제 한번 찾어가겠다고 말 38


해 두었음메니.” 그리고는 목소리를 나추어 귓속말로 할려 는 속이겠지만 “내일 내 가볼게. 그런 줄만 알지.” 하는 말이 기우리는 줄도 몰으게 기우리고 있는 종서의 귀에까지 똑똑 이 들린다. 일어나 부엌샛문을 열어잡었다. “제발 가느니 어드르니 하지 마시고 내말 들으시소. 그건 멀 창피스레 가시겠소. 누가 이십오 원짜리 월급쟁이한테 딸 주갔댑딧가?” “왜! 가문이 남만 못하나 인물이 빠지나. 단지 돈 한 가지 없지만 당자가 좋다면 그만 아니냐. 아주 쉬 어제만 해도 그 런 마음 없는 년이면 불 꺼진 방안에 남의 총각과 멋하레 앉 어 있겠니? 내가 그맛 눈치 없을 줄 아니? 그래 뵈도 다 알고 있단다. 그리고 넌 굿이나 받아 떡이나 먹으려무나.” 어처구니없어서 문을 닷고 되로 누었다. 이번에는 정작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소군거리는 모양이다. 그대로 내버려 두면 기어히 거기 갈 것이 분명함으로 다시 방문을 열어잡고 “이건 내 위신에도 상관되는 일이닛가 간다 치드래도 몇일― 한 댓새 기달려 가기로 하시소” 하는 말을 남겨 놓고 자기 어 머니만은 자기 마음을 리해할 것이라 믿고 대답도 듯기 전에 쾅하고 요란스러히 문을 닫어버리였다. 어제의 오늘인 만큼 갑자기 혼인 말을 내인다면 헤경이 가 자기를 어떻게 생각할 거인가 하는 불안에 마음이 초조 했다. 행복을 보장할 수 없는 결혼이고 무엇보다도 어제 일 로 해서 별안간 혼인 말을 내이고 사람을 보낸 것같이 보일 39 마권


것이 아닌가.

***

만성은 양복값으로 구십 원을 타냈다. 얼만한 잔 용돈 같 으면 머라고 군말을 할려다가도 두말없이 주는 것이지만 맛 구겠다고33) 탐탁히 의론한 일도 없는 양복값을 구십 원 돈이 나 졸지에 내라닛가 어이가 없는지 “구십환!” 하고 입을 딱 벌린 채 뒷말이 없다. 그러나 언젠가 “양복이 못 닙게 됏어요” 할 제도 “응” 하고 대답했고 “양복을 한 벌 하야겠어요” 할 제 도 “응” 하고 승낙한 일은 있었으므로 그것을 나물 수도 없는 일이다. 잡즛에 쓰겠다는 것도 아니고 의복값이라는데―이 렇게 생각하며 小切手帳34)을 금고에서 끄내면서도 “구십이 면 양복값이 너머 대단하구나. 그렇게 올랐니?” 하고 다시 뭇 지 않을 수는 없었든 모양이다. “외투도 했으닛가요.” “글세 그러면 그렇겠지.”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소절수를 써서 건닌다. 그래도 아수한지 “너 외투는 있지 않니?” 하고 뭇는다. “못 닙게 됏서요.” 돈을 받어쥔 이상 차언피언할35) 게 아

33) 맛구겠다고: 맞추겠다고. 34) 소절수장: 수표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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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라고 도라 세나가는 아들의 뒷모양을 내다보며 의아스러 운 듯이 “그것이 벌서 못 닙게 됏겄다. 재작년에 한 것이 벌 서” 하고는 십여 년 동안을 입고도 아직 몇 해는 넉넉히 수명 이 있는 자기의 덧저고리를 딜어다본다. 소절수장을 덥어서 금고에 넣는 길에 금고 속에서 몇십 년 동안이나 쓴 것인지 칼날이 칠분36) 이상 달어서 보기에도 흉측스레 된 면도를 끄 내 쥐고 거울을―이것도 면도와 동년대의 것인지 뒷면 水銀 이 군대군대 얽고 농이37)로 동여매이고 한 거울을 딜어다보 며 또 중얼거린다.―자식이 아니면 누가 그 꼴을 본담.” 그 러나 만성이가 중학교 사학년 때 독서횐가하는 것으로 검사 국으로 넘어갔다가 요행히 기소유예로 석방한다며 부형이 라고 불러다 놓고 주이식이든 말 가운데 “게모라고 하는데 사이가 어떳소? 흔히 이런 일에 참여하는 젊은 사람은 가정 이 불행한 사람인줄 명심하고 알어체리야 하오” 하든 검사의 말을 생각하니 역시 옷값 같은 것은 요구하는 대로 주지 않 으면 않되겠다고 너그러운 마음을 갖어보나 자기가 그렇게 한 닙 돈에도 구들거리면서도 아들이 청구하는 데는 돈을 앗 기지 않는 마음을 알어줄가, 또 저것이 재산을 물려주면 몇 일이나 딩길가38) 하는 안타가움에 앞이 캄캄해지는 것 같았

35) 차언피언할: 이 말 저 말 할. 36) 칠분: 10분의 7이라는 뜻으로, 어느 정도 상당한 부분을 이르는 말. 37) 농이: ‘노끈의 ’ 사투리. 38) 딩길가: ‘지닐까의 ’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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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거울에 비쵠 얼골이 한숨에 안게지어 사라진다. 그는 그 만 거울을 스칠려고도 하지 않고 면도를 꽁꽁 싸서 다시 금 고에 넣고 쇠를 잠근 다음에 거리로 나와 심심푸리하기에는 십상인 박참봉네 사전방39)에 들어앉었다. 행길40)에 오고가 는 사람들을 내다보고 있으면 시간가는 줄도 몰으고 지리하 지도 않었든 것이다. 그러나 오늘만은 못처럼 마음이 행길에 쏠리지 않었다. 두어 시간 갓가이 지나가고 그것도 단념할려 고 하는데 행길에서 낮닉는 만성이 음성이 들련다. “응, 저금할려고 금조융합엘 가든 길이네 그런데 어떻게 지큼 나왔나. 몸이 편치 못해서―그래도 시험 때는 들어가 지? 요즘은 조금 밧버서―짬 있으면 또 맛나세.” 집안에서 아버지가 내다보고 있는 줄도 몰으고 만성은 바 로 그 앞까지 와서 발을 멈추고 “진규!” 하고 돌아다보다가. “아니―다음에 맛나서 말하지” 하고 걸어가 버린다. 그놈이 저금은 무슨 저금을 하고 밧부긴 무엇이 밧부댄다노 하고 의 심하면서 우진 길로 나와 뒷모양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시선 을 생각지도 못하고 만성은 자기의 말대로 N금융조합으로 들어갔다. 은행에서 소절수를 박구노라고 기달리는 사이에 문득 생 각난 것은 어렸을 적의 은행노리란 것이였다. 지전을 만들어

39) 사전방: 쌀과 그 밖의 곡식을 파는 가겟방. 40) 행길: ‘한길의 ’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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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금하고 찻어내고 하며 놀든. 거기서 힌트를 얻어 특별당좌 예금에 오십 원을 저금하고 N금융조합에 또 저금할려고 그 리로 가든 길에 진규를 맛낫고 그의 아버지도 그를 보앗든 것이다. 금융조합에 이십 원을 처음으로 저금하고 그길로 우 편소로 갔어 이십 원을 저금하고 새 통장을 받어넷다. 이렇 게 구십 원을 세 곳에 널어놓았다. 그 이튼날은 금융조합과 우편소에서 십 원식 끄내다 은행 에 저금한다. 또 그 이튼날은 은행에서 육십 원을 찻어내다 우편소와 금융조합에 저금한다. 늦잠을 자고나서 그 세 곳을 단겨오면 비용드는 일도 없이 하로 해가 곳잘 지나갔다. 따 라서 양복을 다 지어놓고 기다릴 양복점에는 자연 발길을 하 지 않었다.

***

종서는 저녁을 필하고 헤경을 찻어갈른지 그만둘른지 망 설이다가 엇잿든 집을 나가기로 했다. 화요일이닛가 전 같으 면 으레히 헤경의 하숙을 찾어갔을 것이지만 그의 어머니가 왔다고 하닛가 갔어 좋을 린지가 疑問이였다. 그러나 길수 어머니가 가기 전에 헤경을 맛나 미리 말해 두지 않으면 않 될 일이 있고 또 도릿켜 생각하면 부모께 감추야 할 사이도 아니고 감출려고도 하지 않는 사이였다. 종서가 중학 오학년 때 외켠으로 일가벌 되는 헤경이는 그의 어머니와 함께 종서 43 마권


의 집을 찾어왔어 처음으로 그와 맛낫고 그 후로도 종서를 어떻게 생각했어가 아니라 단조한 寄宿舍 生活에서 집 그리 운 마음에 끌리여 친척집이라고 틈틈이 놀려왔든 것이다. 그 러는 동안에 종서는 시대의 巨濤41)와 步調를 같이하는 世界 觀과 젊은 열정을 가지고 졸업했건만 세상은 벌서 混迷한 寂 寞이 있을 뿐이고 졸업 후로 밀우웠든 포부를 살릴 길 없는

현실에 부닷기고 理論으로서는 克服했다고 믿든 가정과 빵 을 위하야 죽은 아버지의 친지를 찾어 이십오 원의 초라한 밥자리42)에 매달리였다. 그때 헤경은 異性으로서의 여자가 되였다. 이렇게 로맨틱한 아모 것도 없이 그들의 산문적 로 맨쓰가 시작되였다. 산문적이라고 한 것은 헤경에게서 異性 을 본 당초부터 종서는 결혼을 생각했고 결혼을 前提로 하지 않는 연애를 인정치 않는 그로서는 경제적 보장이 없는 가정 에 그를 맞어들일 자신이 없는 이상 적극적으로 사랑할 자격 이 없다고 스서로 생각했고 무엇보다도 아버지가 조금 남기 고 도라가신 가산은 그동안 깐뽀비해서 먹었고 지금은 집 한 채가 남었을 뿐이나 그도 어머니가 삭바누질로 그의 월급에 보태여야 겨우 생활해 나가는 형편인데 만일 결혼한다면 어 머니만 삭바누질 하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삭바누질이라도 할 각오라고 저편에서 적극적으로 나센다면 몰으지만 그렇

41) 거도(巨濤): 큰 파도. 42) 밥자리: ‘일자리를 ’ 낮잡아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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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않는 이상 될 수 있으면 성을 초월한 그 무엇이라 설명 해버릴려는 노력을 잊지 않엇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보다 도 영리한 헤경이가 그런 마음속을 간파하지 못하리라고는 그도 생각지 않었다. 그 努力을 알어준다면 그만이였다. 처 음부터 자기의 사랑을 그런 노력으로 감싸고 그 우에 그 사 랑의 構造를 보일려는 意圖였는지도 몰은다. 상급학교 갈 수 있으면서도 졸업하자 전문학교 다니는 여 자들의 젠 척하는 꼴을 비웃으며 학교도 가지 않고 그의 아 버지가 면장 노릇 하는 S촌으로 가지도 않고 집의 반대도 무 릅쓰고 설비가 불완전한 B유치원의 보모자리를 얻어 기숙사 에서 하숙으로 옴겨 앉은 것도 헤경이가 자기를 사랑하고 그 대로 떨어지기를 싫어하는 증거라고 자신을 가지여 생각하 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테없이 좀더 친함을 보일려고 하거 나 좀더 자조 맛나기를 원하거나 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고 한 주일에 한번씩 판에 찍은 듯이 찾어오는 헤경의 리지적 去就는 더욱이 종서께 무장한 것 같은 조심상스러움을 잊지

않도록 강제했든 것이다. 이러한 두 威信의 경주가 게속 되 는 사이에 헤경은 종서를 일요일에 종서는 화요일에 각기 ‘방 문하는 ’ 습관이 생기고 알리지도 않은 창세와 만성도 어느새 눈치를 채이였든 것이다. 지금 갑자기 사람을 보내서 혼인이니 무어니 한다면 엿대 것의 주의와 긴장과 노력은 도리혀 반대의 인상을 주는데 효 과 있을 것 아닌가. 결혼한다 치드래도 직접 맛나 이약이해 45 마권


봐야 하겠고 결혼하지 않는 경우에는 더욱이 자기의 위신만 은 건저내야 할 것이 아닌가. 집을 나올려고 차리는데 마츰 헤경의 어머니가 찾어왔다. 그는 문득 헤경이가 하숙에 혼저 있을 것을 생각하고 곳 집 을 나셋다. 긴급히 할말이 있다고 헤경을 다리고 나와 조용한 M‘그 릴’ 이층 한 목행이43)에 자리를 잡었다. 청한 음식이 오기를 기달리며 생각한다―흥분해서 떠버리거나 혀과 굳어지거나 해도 창피한 일이고 말을 끄내기가 거북해서 우물쭈물 하는 것도 약점을 보이는 즛이닛가 냉정히 그리고 물마시듯 자연 스러히 말을 시작해야한다고. “어제 상회서 집에 오닛가 길수 어머니가 장가를 가라느 니 중매를 한다느니 하기에 제발 빌고 막었지만―” 종서는 어떻게 말할려든 작정이었는지를 갑작이 잊어버리여 담배 를 피워 물고 생각을 수습할 여유를 만들었다. “그 수다스런 늙은이는 막는 데도 집어머니한테 찾어 갈 모양입디다. 그렇 게 되면 내가 우진 보낸 것이나 같이 기분 낫분 일이 아니요?” 또 말이 막히였다. 담배를 한 목음 깊이 드레 빤다. “물론 내 태도나 말하든 것을 보아서도 우진 보낸 것으로 생각지 않으 리라고 믿소. 성격 같은 것은 나와 공통되는 곳이 많고 대체 로 말해서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요. 그러나―” 또

43) 목행이: ‘모퉁이의 ’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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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드레빤다. 층게를 올라오는 소리가 쿵쿵 나고 음식이 들어온다. 그것을 테불에 버려놋는 동안에 모앗든 숨을 가만 히 내쉬였다. “호이를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뽀이가 나려가자 자기의 明瞭치 못한 意見을 責하듯이 게속한다. “반듯이 결 혼을 전데로 하는 것은 아니요. 결혼이나 연애를 전연 생각 지도 않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이런 말을 갑자기 하 닛가 불쾌하지 않소?” 하며 먹고 싶지는 않지만 흥분하기 때 문에 못 먹는 것같이 보일까 하는 생각에 ‘스픈을 ’ 들었다. “아니요. 할말이야 하야지요. 남들이 어떻게 보든지 그것 은 그 사람의 자유지만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저 도 호이를 갖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곳 연애나 결혼의 이사를 이미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바로 그것 말이요. 얼골이나 보고 꽁무니를 딸어단니며 죽느니 사느니 하는 그따윗 축과 마참가지로 볼래니 맥냥 한44) 일이지요. 조금만 친한 걸 보면 덮어놓고 연애니 무어 니 하고 공론을 하니―” “저보고도 너이 연인이 엇잿느니 무어가 엇잿느니 하며 막 놀려먹을려고 해요. 찍해도 연애 짹해도 연애하는 그런 철없는 애들은 모멸하지 않을래도 하지 않을 수 있어야지요.” “누가 그래요?”

44) 맥냥한: 맹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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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도 그 모양이지요. P는 얼마 전에 날과45) 연인의 이약 이하라고 다작구46) 졸으다가 나는 연인이 없다고 하닛가 결 국은 자기 연인의 이약이를 하는데―누구라고 말하면 알겠 지만―열렬히 사랑한다고요. 그런데 본처가 있고 아들까지 있다고 고백을 하더래요. 그래도 서로 사랑을 배반할 수는 없다고 나종에는 눈물을 흘리고 야단이애요. 남과 말하라고 졸르드니 제 사정 말하고 싶어서 그러든 모양이얘요. 생각하 면 웃어워 죽겠어요.” 종서는 그 말에 딸어 모멸의 웃음을 웃으면서도 마음속으 로는 적지 않게 놀랬다. 마치 그들 어리석은 무리와 섞이지 않고 똑똑한 인간이 될래면 연애를 부정하지 않으면 않된다 는 律法이라도 있었든 듯싶이 되지 않었는가. 그러나 헤경 이가 冷情한 척한 태도로 종서의 ‘위신’ 우에 자기의 ‘위신을 ’ 올려놓을려고 애쓰는 것을 보고 그대로 있을 종서가 아니였 다. “그렇게 남의 일에 참견하기 좋와하는 사람이라곤! 원 누 구가 장가를 가겠다며 중매를 해달라기에 그러는지―” “글세나 말이지요. 왔으면 코빵을 마칠걸, 호호, 우정과 연애는 딴 것이 않얘요. 그렇지 않어요.” “나도 물론 결혼하자고 하드래도 단연 거절했을 것이요.” 누구든지 하나가 나는 그대를 끝없이 사랑하고 결혼해 주

45) 날과: ‘나보고라는 ’ 뜻의 사투리. 46) 다작구: 다잡고. 다그쳐 단단히 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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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를 바란다는 이미의 말을 어떻게 서투른 형식으로라도 밝 히였다면 당장에 그리고 즐거히 몸을 그의 가슴에 던지거나 혹은 힘차게 끌어안을 만한 마음의 준비를 사년의 세월이 그 들에게 주지 않었다고 어떻게 단언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 고 그렇게 되면 그것을 合理化할 理論이 그들의 리지에 준 비되여 있지 않었을 것인가. 그러나 지금 그것은 한갓 공상 에 속한다. “그런데 왜 도모지 먹지 않소.” “방금 저녁을 먹었댔어요.” 종서는 배불은 때는 먹지 않는 것도 자연스런 일임을 새 삼스러히 느끼며 고개를 끄덕끄덕 하고 담배를 피워 물었다.

***

“심부름 왔댔나….” 은행에서 나오는 만성에게로 걸어오며 그를 퍽 찻어다니 였었는지 맛나기가 바뿌게 창세는 말을 끄낸다. “참말 놀랬다.” “무슨 일이 있었나?” “집에 곳 가야하나?” “아니 저금하려 왔댔지만 않 가도 좋네.” 창세는 골목을 빠지여 강변으로 나가며 이야기를 게속 했다. 49 마권


“그야 태홍이 아니라도 떨지 않을 일인가. 미아이(見 合)47)만 하드래도 여자는 어쩔 줄 모르지 않겠나. 남자 편에

서 그러드래도 몰으겠는데 여자 편에서 사궤보고 마음을 작 정하자고 하드래지. 그것도 그렇지만 집에서 나오는 길에 첫 마디로 술담배를 먹느냐 뭇드래. 태홍이 작자는 참하게 뵐려 고 않 먹는다고 하니까 손수 담배를 사주며 남자가 담배 못 먹어 어떻게 하는가고 하드래요.” “헤경이가?" “응, 그러커구 돌아오는 길에 식당에 저녁 먹으려 들어갔 을 제는 뭇지도 않고 ‘비-루’48)를 식이여 주드래지. 작자가 조금 떤 모양이데.” “흥 매우 ‘모-던인데 ’ .” “처음 맛나는 남자에게 술담배를 권할 만큼 새로운 ‘타잎’ 의 여자인 척하고 異性을 대해서 태연한 척하지만 어떻게 하 면 자기의 새로운 것을 뵐까 해서 그래보는 것이지 정작 술 먹고 주정을 부래보지 머라나.” “우진 파혼하도록 만들려고 그랬는지도 몰으지. 그래 불 량소녀라지 않든가.” “오늘 중매쟁이가 왔어. 색시네 집에서도 만족해하며 반 허락이나 하는 모양이니까 이제는 본촌 아버지의 승낙만 있

47) 미아이(見合): 맞선. 48) 비-루: ‘맥주를 ’ 뜻하는 일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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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면 되겠다고 기뻐만 하드라.” “부잔가 태홍이네?” “먹을 것이나 있지.” “그러면 자기 손탁49)에 마음대로 놀리리만큼 만만한가 시험해 보느라고 그랜 모양이다. 밥걱정이나 없고 넉넉히 남 편의 코를 잡을 수 있어 보이는데 시집가는 게 제라는 여자 의 소위 理想이다. 초라한 리상이다. 새롭기는 무엇이 새로 워 안일한 생활을 구하는 사람이 위트러워서50) 어떻게 새로 운 것을 찾을 수 있겠나?” “도모지 알 수 없는 일인데 좌우간 밤에 종서한테 물어 보세.”

그렇게까지 취하지도 않었는데 창세의 음성은 너무 높다. 헤경의 약혼의 顚末은 처음부터 그의 어머니한테 들어서 알 고 있었지만 그것이 당연한 일이고 조금도 고통으로 생각지 않는다고 종서 자신이 태연한 일에 흥분하는 양이 만성에게 는 웃어웠다. “흥분하쟌어도 좋지 안나. 종서의 일이지 네가 당한 일은 아니니까.” 창세는 귀에 거슬리는지 한번 도라보고는 여전히 종서와

49) 손탁: 손아귀. 50) 위트러워서: ‘위태로워서의 ’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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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개를 겻듯이 앞서 것는다. 입은 다문 모양이다. 빈 전차가 시간 늦은 거리에 요란스런 소음을 널어놓며 뒤로 물러간다. 좌우의 건물이 커서 그런 것도 아니련만 사람 없는 거리 의 임자인 척 가슴을 버치고 걸어가는 두 개의 뒷모양이 처 마 끝에 어울지도51) 않게 매달린 ‘네온’ 아레로 끝없이 초라 하게 보인다. 어수선한 적막이여. 또 다시 게속 되는 말다툼은 끄기를 잊고 가버린 ‘네온’ 보 다도 머리에 어지럽다. “그러면 날과 울란 말인가?” “울 필요가 없단 말이겠지.” “나는 연애지상주이자는 아니다.” “물론 그렇다. 일에서 십까지 변증법적 유물론자다.” ―변증법적유물론자가 될려다가 못 된 무리들, 그것을 나물려는 속인가.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고 하는 여자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 못 하고 무슨 잔말이 그리 많은가. 그리고 창세는 아버 지의 악착스런 고리대금에 충고할 수 없든 밸부림52)을 종서 에게 할려는 셈인가. ―열정 없는 청춘이여 어둠을 탄식하는 개구리의 무리여.

51) 어울지도: 어울리지도. 52) 밸부림: 분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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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어진 종서의 목소리는 거리의 적막을 깊이 할 뿐이다. “그것이 한 개의 포―즈에 지나지 못하면 어떻다는 말인 가. 가령 거세인 인간인 척 강철의 인간인 척 하지만 그것은 한 개의 포―즈, 나약한 두부와 같이 나약한 자기를 감추고 자신을 속이는 포―즈이라면 무엇이 옳은가. 내가 두부 같 다면 더욱이 강철의 그릇이 필요하다.” 만성과의 거리가 점점 멀어간다. 꺼림없이 짓거리는 말 소리가 간신히 들린다. 어처구니없는 자식들, 두부와 같은 눅거리53) 生活들. 자 기는 두부와 같은 놈이라고 고함친다면 누구가 동정할 줄 아 는가. 醜態 자랑은 그만하면 족하지 않는가. “자기를 속이고 어떻게 사니?” “두부와 같다고 생각하고는 어떻게 사니, 자기를 나약한 인간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쉽다. 자기의 잘못은 전부 자기의 나약한 천성의 탓으로 미루고 힘든 일이면 피하기 십상 좋 다. 그렇지만 그것은 자기를 속이는 즛이 아닌가? 그렇게까 지 安逸을 구하는 게 량심의 명령인가?” 창세가 뒤를 니어 뭐라고 웨치는 듯싶었으나 만성은 듣지 않고 요행이 골목을 맛난 김에 동모들이 깨닷기 전에 그리로 다름질치면서 마음속으로는 고함질으고 있었다. 밤새도록 이라도 짓거리라 개구리들!

53) 눅거리: 내용이 보잘것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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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속이고는 살지 못할 인간이 있을런지도 몰은다. 그러나 그것을 큰 고함치면서도 살고 있는 인간이 있다. 자 기의 無力을 알고는 살 수 없는 사람이 있을런지도 몰은다. 그러나 그것을 알면서도 살고 있는 인간은 너머나 많다. 생 활의 궁핍은 理論에 배불르는 법은 없다. 그것은 궁핍의 생 활에 自慰를 줄 수는 있을런지도 몰은다. 그러나 멀지 않어 서 궁핍의 생활은 몸서리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이 된다. 理 論의 魔術性도 魅力을 잃게 되는 때 그 理論 自體가 그 生 活의 一斷面임을 알게 된다. 개구리와 같이 어둠을 탄식한

다. 몸서리친다. 다시 自慰의 방법을 찾는다. 一時的인 줄 알면서도 다른 마술에 魅惑되고 만다. 形骸54)의 생활에 리론은 처음부터 필요치 않은 것이다.

인간의 문제는 生의 문제다. 生의 蟄居를 辯明할려는 인간 의 문제는 그 ‘파라독시칼한 ’ 魅力으로 약간의 自慰를 베풀 어준다. 無의 形骸를 분장하고 다른 그것과 자기의 그것을 구별할려고 한다. 아! 形骸. 生活. 形骸의 生活. 生活의 形骸. 그것에 미련 이 있는가 애착이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그것을 버릴 용기 가 없는가. 용기란 무언가. 그것도 形骸의 요소가 않인가.

54) 형해(形骸): 내용이 없는 뼈대라는 뜻으로, 형식뿐이고 가치나 의의가 없 는 것을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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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이 없고 애착이 없는 것을 버리는 데는 용기가 필요치 않다. 形骸는 애착이나 미련의 喪失과 동시에 버리여지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으면 지금의 形骸를 버린 다음에 붓 잡는 그것이 또 다른 그것일 것이 두러운가. 개구리와 같히 어둠을 탄식하며 새벽을 맞고 다음날의 탄 식만을 위하야 아츰 이슬을 마시지 않으면 않되는가. 개구리의 不幸은 오히려 가벼울런지도 몰은다. 不幸은 自覺하는 때부터 견딜 수 없는 것이 되지 않는가.

꼭 자야겠다고 생각하지도 않었지만 만성은 수없이 자리 를 뒤채이였다.

***

이튼날 만성은 일즉이 일어나 진규를 찾어가서 胃病 때 문에 이번 학기에는 못 드러가겠다는 말을 듣고 사정을 말한 다음 C대학 학생증과 철도활인권을 빌렸다. 그길로 은행과 금융조합과 우편소를 歷訪55)하고 저금을 찾어냈다. 우진 세 곧에 널어논 작난56)이 긴급한 때에는 얼마나 씻그러운 일이 되는 것인가.

55) 역방(歷訪): 여러 곳을 차례로 방문함. 56) 작난: 장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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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날에는 저녁이 일으다. 집으로 도라오니 벌서 저녁 상이 들어오고 있었다. 창세가 찾어왔댔다는 말을 듣고 저녁 뒤에 곳 그를 찾어 갔었으나 어데론지 나간 뒤였다. 종서를 찾어갔다. 종서는 외투를 께입고 나오며 뭇는다. “어제 어델 갔댔나?” “…” “한참 가다가 돌아보니까 없기에 찾노라고 둘이서 수태 싸다녓다.” “…” “그러커구 둘이서 술을 또 먹었다. 어제같이 취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 “창세가 취해 가지구 다작구 울어서 난처했댔다.” 대답도 없는데 혼자 말하기가 객쩍었든지 혹은 그런 만성 의 태도에 성을 냈든지 종서는 말을 멈추고 찌풋한 얼골로 것는다. 그래도 조금 가다가 “바람세가 비올 것 같다” 하고 말을 건네 본다. 만성은 입을 열었다. 이때껏 다물고 있든 입하고는 가벼 운 어조였다. “나는 동경 갈랜다.” “언제?” “오늘 밤차로.” 56


“왜 그렇게 갑작이?” “어제밤에 벌서 작정한 일이다.” “이제 간대야 학교도 못 붙을 텐데.” “붙는 대도 학비를 보내주지 않을게다.” “그러면 멋 하레.” “몰으지, 여기 잇어도 소용없으니까 간다.” “그렇드래도 어떤 생활을 바란다는 것이야 있겠지. 지금 따라 신문배달을 하고 싶어 하지도 않겠고―그렇다고 노동 을 하고 육체노동 가운데 更生의 길을 찾겠다는 ‘쎈치’57)도 아니겠지?” “왜 알지 못할 미래만을 뭇나. 눈앞의 현재를 어떻게 할 소 견인가. 生活을 잃은 形骸를 버리는 데 미련이 있단 말인가?” “그거야 추상적 리론으론 그럴 수 있을런지도 몰으지만 사실로선 구체적 사실로선 한 개의 생활에서 그저 뛰여나올 수는 없는 일이다. 한 개의 생활에서 다른 생활로 옴겨앉든 지 발전하든지 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나?” “그러면 문어저가는 집안에서 뛰여 나오는 사람에게 나 와서 거할 집을 미리 생각하고 나오라든지 나와도 거할 집이 없으니까 되루 드러가라고 할 작정인가?” “그런 응급을 요하는 경우와 네 경우와는 다르다.” “과거를 청산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새로운 출발점은 어

57) 쎈치: 센티멘털리티(sentimentality)를 가리킴.

57 마권


떤 것인가 이렇게 뭇는 말이겠지. 그것도 한 ‘쩨네레이숀’58) 전의 일이다. 발전 가운데 과거를 청산하는 것은 내게는 유 쾌한 고담소설의 이야기에 지나지 못한다. 나는 단순히 버리 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 생활의욕이나 리지적 판단을 버리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버린다면 자살이다. 나는 生活없는 形 骸를 버릴 뿐이다. 이것으로 나를 좀더 발전식힐 수 있다면

횡재다, 다행이다. 또 그렇기를 바란다. 여기 통용치 못하는 ‘루불지페가 ’ 있다면 그리고 그것으로 馬券59)을 살 수 있다 면 그것도 도박이라고 위험하다고 할 수 있겠나. 나는 요행 을 바라고 마권을 산 것이다.” “통용 못할 ‘루불로 ’ 단정한다는 것은 현실이 아니고 너의 주관이다. 곤난과 절망은 반듯이 ‘씨노님’60)은 아니겠지?” “너는 아직 ‘루불’ 지폐를 금고에 넣어두고 재산으로 믿고 있다.” “절망이라고 생각하는 주관에만 절망이 있다. 객관은 곤 난할 따름이다. 사람은 可能한 문제만 제출한다. 인간의 문 제는 가능한 문제다. 노력해도 얻는 것이 없을런지도 몰으지 만 그 노력이 어느 모멘트61)에 달하면 소득이 있어진다. 그 것이 말하자면 변증법이라겠지. 量으로부터 質에―그것을

58) 쩨네레이숀: 제너레이션(generation). 세대. 59) 마권(馬券): 경마에서 이길 것으로 예상되는 말에 돈을 걸고 사는 표. 60) 씨노님: 시너님(synonym). 동의어. 61) 모멘트(moment): 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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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아르켜준 사람이 바로 너겠다.” “변증법은 네게 있어서는 한 개의 주관, 한 개의 히망이 다. 어느 구체적 현실이 量에서 질로 변한다는 사실을 인정 하는 것이 아니고 곤난 가운데서도 노력이 어느 정도가 되면 소득이 있겠다는 히망이다. 창세는 절망에 빠지여 있다. 절 망을 감각하고 절망을 부르짓는 가운데 일종의 安易한 쾌감 을 찾는다. 그것에 빠지여서는 그것을 思惟할 수 없지 않은 가. 나는 주관이 섞이지 않은 객관적 립장으로 현실을 봣다. 思惟의 결과는 절망이다. 거기 비로서 맹렬한 주관의 활동

이 시작된다. 절망의 힘이 생기는 것이다. 무소유자의 힘이 생기는 것이다. 너는 절망적 현실에서 눈을 가리우고 理論 이란 장님의 집행이만을 의지하고 것고 있다. 어째서 눈을 뜨고 다름질 칠래고는 하지 않나?” “리론이 장님의 지팽이라면 눈 뜨고 다름질 치는 것은 꿈 속의 일이겠지 그리고 네가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고 절망이 라고 생각했다는 데가 의심스럽다. 그때 과연 주관이 없었는 지를 말이다. 처음부터 절망이라는 선입감을 갖이고 思惟를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네가 말하는 맹렬한 주관을 그 관찰에 도 작용식히였드면 절망은 없었을 것이다.” 서로 할 말은 다 해놓고 가븐가븐한 발은 흥분에 상기된 머리를 조용히 옴기고 있었다. 그 머리를 식힐려는 듯이 차 거운 빗방울 몇이 떠러진다. 만성은 아까보다는 퍽 정다운 목소리로 변했다. 59 마권


“솔직한 말이지만 나는 어제밤에 너를 너뿐 아니고 우리 들을 경멸했다. 그러나 지금 말하는 가운데 너를 全的으로 경멸할 수 없는 것같이 생각됏다. 모도 개성의 문제같이 생 각됏다. 理論 가운데 사는 보람이 있는 것 같은 快感을 느꼈 다. 나는 거기서 내 결심을 새로히 굳게 할 필요를 느꼈다. 너는 헤경과의 경우에 理論을 몰랐다면 좀더 人間味가 있는 인간이 됏을런지도 몰은다. 나는 理論이 싫어졌다.” 만성이가 집에 들리여 남 몰으게 트렁크를 갖이고 驛으로 나왔을 때는 初冬의 비는 제법 좍좍 소리를 내서 퍼붓고 있 었다. “萬成이란 이름을 지을 적에는 萬事 成就하라고 지은 것 이겠지만 지금 보면 웃어운 일이다. 昌世란 이름도 당치않 은 일이다. 네 이름만은 그럴 듯할런지도 몰으지만―” 이런 가벼운 弄談을 하고 웃으며 만성은 기차에 올라탓 다. 빗소리를 지우는 汽笛에 종서는 억개를 부르르 떨었다. 사람을 보내고 난 프랱․폼은 빗소리에 한칭 더 적적했다. ―어느 長篇의 一部인 短篇

<단층> 1호, 193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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