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통의 죽음
나오는 사람들
국민의회 대의원들: 조르주 당통, 르장드르, 카미유 데물랭, 에로 드 세셸, 라크루아, 필리포, 파브르 데글랑틴, 메르시 에, 토머스 페인 공안위원회 위원들: 로베스피에르, 생쥐스트, 바레르, 코요 데르부아, 비요ᐨ바렌 쇼메트(시 참사회 의원) 푸키에ᐨ탱빌(검사) 디용(장군) 에르망, 뒤마(혁명재판소 재판장들) 파리스(당통의 친구) 라플로트 시몽(프롬프터) 쥘리(당통의 부인) 뤼실(카미유 데물랭의 부인) 로살리, 아델레드, 마리옹(창녀들) 민중, 형리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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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막
제1장
에로 드 세셸1)과 몇몇 귀부인들이 카드놀이를 하고 있다. 당통2)과 쥘리3)는 약간 떨어진 곳에 있는데, 당통이 쥘리 발 치 쪽 안락의자에 느긋하게 앉아 있다.
당통
저 아리따운 부인 좀 보라고. 카드 돌리는 솜씨 한번 멋지군! 저 여잔 정말 꾼인가 봐. 사람들이 그러는데 자기 남편한테는 언제나 하트를 내주고 남들에게는 다이아몬드4)를 내준다는군. 확실히 여자들은 사람
1) 마리-장 에로 드 세셸(Marie-Jean Hérault de Séschelles, 1759∼1794): 법 률가이며 국민의회의 의장으로 1793년의 헌법 제정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 다. 원래는 당통 이전에 체포되었으나 당통과 함께 처형당했다. 2) 조르주 자크 당통(Georges Jacques Danton, 1759∼1794): 프랑스 혁명을 주도한 인물로 1792년 10월 7일 왕권이 무너진 이래 법무장관을 지냈으며, 혁명재판소를 만들고 공안위원회를 창립하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천부적 인 웅변가로 반동세력에 대항하여 여론을 불러 모으기도 했다. 그는 온건 파인 지롱드 당뿐 아니라 급진적인 에베르 파 및 로베스피에르와 그 추종 자들의 광신적인 이데올로기도 배격했다. 1794년 4월 1일에 로베스피에르 의 추종세력에 의해 체포되어 동년 4월 5일에 처형되었다. 3) 쥘리(Julie): 당통의 두 번째 부인은 원래 루이즈(Louise, 1777∼1856)란 이 름을 지녔으며 당통은 1793년에 그녀와 결혼했다. 작중의 쥘리와는 달리 그녀는 당통을 따라 죽지 않고 재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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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속임수로 빠져들게 하는 데는 명수야. 쥘리
당신, 절 믿으세요?
당통
글쎄? 우린 서로 아는 것이 별로 없어. 우리 피부는 코끼리처럼 두껍다고. 서로 손을 뻗어보지만 공연한 짓이야. 우린 그저 거친 피부만 서로 비벼댈 뿐이란 말이야. 우린 정말 고독한 존재들이지.
쥘리
당신은 저를 알고 있어요, 당통.
당통
그래,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식으로 알고 있지. 당신 은 검은 눈을 가지고 있고, 곱슬머리이고, 피부색이 예쁘지. 그리고 나에게 항상 여보라고 부르고 말이 야. 하지만(그녀의 이마와 눈을 가리키며) 여기, 여 기, 이 뒤에는 뭐가 있지? 집어치워. 우린 감각이 무 뎌. 서로가 안다고? 상대방의 해골을 서로 한번 열어 서 뇌수로부터 생각들을 끄집어내기 전에야.
귀부인 (에로에게) 그 손가락 가지고 뭐 하시는 거예요? 에로
아무것도!
귀부인 엄지손가락 좀 그렇게 튕기지 마세요. 보기 안 좋아
요. 에로
이거 보세요. 이놈은 모양이 아주 독특합니다.
4) 외설적인 표현으로 여기서 다이아몬드는 여자의 허벅지를 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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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통
그래 쥘리, 난 당신을 사랑해. 무덤처럼.
쥘리
(몸을 돌리며) 여보!
당통
그게 아니라고! 내 말 들어봐. 흔히 무덤 속에는 안 식이 있다고들 말하는데, 말하자면 무덤과 안식은 하나라는 거지. 그게 사실이라면 내가 당신 품에 누 워 있다는 건 땅속에 묻혀 있다는 얘기나 다를 바 없 지. 그대, 달콤한 무덤이여. 당신의 입술은 죽음을 알리는 종이요, 당신의 음성은 장례식의 종소리야. 당신 가슴은 내 무덤의 봉분이고, 당신 심장은 내 관 이라고.
귀부인 졌어요! 에로
사랑의 모험이었죠. 모든 일이 다 그렇듯이 이 사랑 의 모험도 돈이 들어요.
귀부인 그렇다면 댁은 사랑의 고백을 벙어리처럼 손가락으
로 한 셈이군요. 에로
왜 아니랍니까? 바로 이 손가락들이야말로 이해시키 는 데는 으뜸이란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난 트럼 프의 퀸하고 사랑놀이를 할 계획을 꾸몄었죠. 내 손 가락들은 거미로 변한 왕자들이었고, 부인께서는 요 정이셨습니다. 하지만 일이 잘 안 된 것이, 퀸이 항상 애를 배고 있었지 뭡니까. 매 순간 사내아이를 낳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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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니 말이에요. 내게 딸이 있다면 그런 짓은 절대 못 하게 할 겁니다. 남녀가 그렇게 볼썽사납게 뒹굴다 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사내아이들이 뒷구멍에서 튀 어나오니 말입니다.
카미유 데물랭5)과 필리포6) 등장
에로
필리포, 왜 그렇게 우울한 눈빛인가? 그 빨간 모자7) 에 구멍이라도 냈나? 아니면 성 야곱8)이 성난 얼굴 이라도 하던가? 혹시 처형장에 비라도 내렸나? 아니 면 자리가 나빠서 구경을 제대로 못한 건가?
카미유 자네, 소크라테스 흉내를 내고 있군. 그 성현이 알키
비아데스9)가 어느 날 축 처진 모습을 보고 그 사람한
5) 카미유 데물랭(Camille Desmoulins, 1760∼1794): 로베스피에르와 급우 관계였다. 바스티유 감옥의 습격을 주도했으며, 혁명에서 선전책 역할을 했고, 당통 일파의 기관지 편집을 맡기도 했다. 친구 당통과 함께 1794년 4 월 5일에 처형당했다. 6) 피에르 필리포(Pierre Philippeau, 1754∼1794): 당통이나 데물랭과 마찬 가지로 법률가였으며, 국민의회의 의원이었고 당통과 뜻을 같이했었다. 7) 자코뱅 당원의 모자는 빨간색이었다. 8) 수도회에 속하는 파리의 도미니크 수도원인 성 야곱(St. Jacob)은 자코뱅 당원들의 집회소였다. 자코뱅이란 이름도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9) 소크라테스의 제자로 아테네의 정치가 겸 군 지휘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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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 뭐라고 했는지 아나? “전쟁터에서 자네 방패라도 잃어버렸나? 달리기 아니면 칼싸움에서 지기라도 했 나? 혹시 다른 사람이 자네보다 노래를 더 잘 부르거 나 칠현금을 더 잘 타기라도 했나?” 자넨 정말 고전적인 공화주의자로군! 그런 거 집어 치우고 자네, 아예 단두대 예찬론이나 펴보라고! 필리포 오늘 또 스무 명10)이나 희생됐어. 우리가 잘못 생각
한 걸세. 저들은 조직적으로 일을 처리하지 못했다 는 이유만으로 에베르 파를 단두대로 보냈네. 아니 혹시 저 로마 대관(大官)11)들은 시민들이 자기네보 다 더 두려워하는 남자들이 단 일주일만이라도 있을 경우 자기들이 파멸하는 걸로 알았는지도 모르지. 에로
저들은 우리를 유인원으로 만들고 싶은 거야. 생쥐 스트는 우리가 네 발로 기어 다니길 바라는 인물이 지. 그래서 저 아라의 변호사12)가 제네바 시계공13)
10) 에베르 파의 사람들. 에베르 파는 쇼메트(Chaumette)와 함께 자크 르네 에베르(Jacques René Hébert, 1757∼1794)가 창당했다. 이들은 파리코 뮌의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이성의 여신에 대한 숭배사상을 도입하려 했 으나, 1794년 3월 24일에 처형되었다. 11) 9명 내지 10명의 자코뱅 당원으로 구성된 프랑스 혁명정부의 공안위원 들을 말한다. 12) 로베스피에르를 말한다. 그는 프랑스의 ‘아라’라는 도시에서 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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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역학을 본떠서 우리에게 안전모를 씌워주고 교육 을 시켜주고 신(神)을 만들어주길 바라고 있는 걸세. 필리포 저들은 자기들의 목적을 위해서 마라의 계산14)에 영
을 몇 개 더 붙이는 것도 불사할 거야. 우린 아직 얼 마간이나 더 신생아처럼 핏덩이로 더럽게 있어야 하 는 건가? 관을 요람으로 삼고, 모가지 자르는 놀음을 얼마나 더 계속해야 하는가 말일세. 더 이상 가만히 있어서는 안 돼. 사면위원회가 조직되어야 하고, 파 직당한 대의원15)들은 다시 복직되어야 한다고. 에로
혁명은 재정비 단계에 들어섰어. 혁명은 이제 중지 되고 공화국이 시작돼야 한단 말이네. 국가기본법 조문에는 의무 대신 권리가, 도덕 대신에 국민의 안 녕이, 그리고 형벌 대신에 정당방위가 들어서야 해.
13) 제네바 출신의 프랑스ᐨ스위스계 문화비평가이자 철학자인 장 자크 루소 를 말한다. 그는 시계공의 아들이며 로베스피에르의 존경을 받았다. 14) 장 폴 마라(Jean Paul Marat, 1744∼1793)는 급진적인 민중 지도자였는데 왕정이 무너진 이래 당통 측에 가담하여 자코뱅 당의 당수로서 지롱드 당 과의 투쟁에 앞장섰으나 암살당했다. 여기서 마라의 계산이라 함은 그의 다음 구절을 일컫는다.−“오륙백 명의 머리를 잘라내야 그대들은 휴식과 자유 그리고 행복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오.” 15) 온건파인 지롱드 당원을 말한다. 이들 22명은 1793년 4월 15일에 국민의 회에서 추방당했으며 이들 중 다수가 체포되어 동년 10월에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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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자기의 가치를 인정받을 권리가 있어야 하 고, 자기 개성을 관철시킬 수 있어야 하지. 어느 개인 이 똑똑하고 똑똑하지 못하고, 유식하고 무식하고, 선하고 악하고 하는 따위는 국가와는 아무 상관없는 것이라고. 우리 모두가 백치일진대 그 누구도 다른 사람한테 자신의 우매성을 주입할 권리는 없는 법이 지. 누구든지 자기 방식대로 인생을 즐길 수 있어야 해. 그렇다고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주거나 다른 사 람의 흥미를 깨뜨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말일세. 카미유 국가체제는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옷 같아야
할뿐더러, 이 옷은 민중의 몸에 딱 들어맞아야 해. 맥 박의 요동이라든가 근육의 움직임, 동경에 찬 심장 의 경련 따위가 그대로 환히 드러나 보일 수 있어야 한다고. 형체가 아름답거나 추한 건 문제가 되지 않 아. 어떻게 생겼건 그 나름대로 존재할 권리가 있으 니까. 우리 마음대로 옷을 맞춰 입힐 권리가 우리에 겐 없단 말이야. 사랑스런 죄인(罪人) 프랑스의 어 깨에 옷이 걸쳐져 있지 않다고 해서 그 누가 수녀의 베일을 씌워주려 한다면 우린 그자의 손가락을 잘라 버려야 해. 우린 벌거벗은 신들을 원하지. 바커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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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녀들을, 올림포스의 유희를 필요로 해. 아아, 온몸 을 녹이는 사악한 사랑이여16)라고 노래하는 입술을 원한단 말이야. 우린 저 로마인들이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서 당근을 삶아먹는 걸 막을 생각은 없어. 하지만 우리에게 제 발 검투사의 경기를 보여주려고 하지는 말란 말이야. 저 성스런 에피쿠로스17)와 예쁜 엉덩이를 가진 비너 스가 성자 마라와 샬리에18)를 대신해서 공화국의 문 지기가 돼야 한다고. 당통, 자넨 국민의회에서 맹공격을 가해야 되네. 당통
‘우리가 그때까지 살기만 한다면 나도 하고 너도 하 고 그도 하지’라고 노파들이 말하지. 한 시간이 지나 면 60분이 흐른다네. 그렇지 않은가, 여보게?
카미유 난데없이 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당연한 얘기
가지고.
16) 그리스의 여류시인 사포의 시구에서 인용. 17) 그리스의 유물론자(BC 342/341∼BC 271/270)로 실천적 생활을 목표로 하여 이성을 통한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멀리하고자 했다. 18) 조제프 샬리에(Joseph Chalier, 1747∼1793): 리옹의 혁명 지도자로 왕당 파에 의해 1793년 6월 17일에 처형당했다. 파리의 한 교회의 제단에 세워 진 그의 흉상은 마라와 더불어 성자나 순교자처럼 경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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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통
오, 모든 게 다 당연하지. 도대체 누가 그 멋진 일을 모두 실천에 옮긴단 말인가?
필리포 우리와 그리고 그 고귀한 양반들19)이 하지. 당통
‘그리고’라는 그 접속사는 긴 단어일세. 이 단어는 그 명망 높은 사람들과 우리들 사이를 상당히 멀리 갈 라놓고 있어. 그들과 우리 사이의 거리가 너무 길기 때문에 우리가 이 거리를 좁혀서 서로 화합도 하기 전에 그 명망은 사라져 버릴 걸세. 그리고 설혹 그렇 지 않다손 치더라도 별 볼일 없는 것만은 틀림없다 고! 고귀한 사람들한테 고작 돈을 마음 놓고 빌려줄 수 있고, 대부(代父)를 서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들에게 딸들을 출가시키는 것, 이런 것들이 전부란 말이네!
카미유 그걸 알고 있었다면 자넨 왜 싸움을 시작했나? 당통
그 작자들이 역겹기 때문이었네. 그런 거드름을 피우 는 카토20) 일당을 발길로 한 번 차주지 않고는 견딜
19) 주로 프랑스의 구(舊)귀족을 칭하는데, 이들은 구체제의 옹호자들이며 전 래된 편견과 특권의식에 사로잡힌 자들이었다. 20) “고귀한 양반들”의 우스꽝스러운 오만함을 두고 하는 말이나, 한편으로는 엄격한 도덕관을 지닌 공화주의자 마르쿠스 포르키우스 카토(Marcus Porcius Cato, BC 234∼BC 149)를 빗댄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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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가 없었네. 난 천성이 그런 놈이라고. (일어선다.) 쥘리
가세요?
당통
(쥘리에게) 난 가야겠어. 이 친구들이 자기네 정략을 가지고 날 아직도 못살게 구는구먼. (나가면서) 바빠 서 먼저 실례하네만, 내 자네들에게 예언 한마디 해 주겠네. 자유의 여신상은 아직 주조되지 않았어. 용 광로가 아직 이글이글 끓고 있단 말이야. 자칫 하다 간 우리 모두 거기다 손을 델지도 몰라. (퇴장)
카미유 내버려 둬. 자네들, 저 친구가 막상 일이 벌어지면 손
을 뗄 것 같은가? 에로
하긴 그래. 하지만 장기 두듯이 단지 심심풀이로 덤 벼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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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골목] 시몽과 그의 처
시몽
(자기 처를 때린다.) 너 이 뚜쟁이 년, 너 이 쪼글쪼글 한 할망구야. 벌레 먹은 선악과 같은 년아!
시몽의 처 사, 사람 살려! 사람 살려요! 사람들 (달려오면서) 저 두 사람 떼어놔요, 저 두 사람 떼어
놓으라고요! 시몽
아닙니다. 날 놔두시오. 로마인들이여. 이년 뼈다귀 를 가루 내고야 말겠어요! 그래, 네가 베스타 여신21) 의 여신관이더냐?
시몽의 처 내가 베스타의 무녀라고? 어디 두고 봅시다. 내 두
고 볼 거예요. 시몽
내가 네년 어깨에 걸친 옷을 갈기갈기 찢어낸 다음 에 발가벗긴 채로 네 썩은 몸뚱이를 햇볕 쨍쨍 내리 쬐는 곳에다 던져버릴 테다. 너 이 갈보의 침대 같은
21) 로마신화에 나오는 부뚜막의 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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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아, 네 몸의 그 주름살 구석구석엔 음탕한 냄새가 배어 있어. (사람들이 이들을 떼어놓는다.) 시민 1 왜들 이러시오? 시몽
처녀 어디 갔어? 말해 봐! 아니야, 그렇게 부를 수가 없지. 아가씨 말이야! 아니 그것도 안 어울려. 부인, 계집, 그것도 저것도 맞지 않아! 딱 한 가지 이름밖에 없어! 오 생각만 해도 벌써 숨통이 막히는구나! 질식 할 것만 같아.
시민 2 숨이 막히기 천만다행이야. 그렇지 않았으면 그 이
름은 술 냄새가 날 뻔했지. 시몽
늙은 비르지니우스22)여, 숱 없는 머리를 덮으시오. 치욕스런 까마귀가 그 위에 올라앉아 그대의 두 눈 을 쪼아댈 테니. 나에게 칼을 주오, 로마인들이여! (쓰러진다.)
시몽의 처 아아, 이인 보통 때는 착한 남편이에요. 참을성이
많지 못할 뿐이랍니다. 독한 술이 저이의 발을 건 거 예요. 시민 2 그럼 세 발로 걷지.
22) 로마의 평민으로 독재자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로부터 자기 딸 비르지니 를 구하고 그녀의 자유를 지켜주기 위해 그녀를 죽인다. 이 사건으로 인해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는 실각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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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몽의 처 아니에요, 이이는 쓰러져요. 시민 2 맞았어, 우선 세 발로 걷다가 세 번째 발마저 쓰러지
면 그 위에 넘어지면 되는 거야. 시몽
네놈은 흡혈귀의 혀를 가지고 있구나. 내 뜨거운 심 장의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의 혀를.
시몽의 처 이 양반을 그냥 내버려들 두세요. 발작할 시간이
된 거예요. 조금 있으면 나아질 거예요. 시민 1 뭣 때문에 그러는 거요? 시몽의 처 들어들 보세요. 전 저기 양지쪽 바위 위에 앉아 있
었어요. 몸을 녹이고 있었던 거예요. 땔나무가 없기 때문이었죠. 시민 2 그럼 남편 코나 잡아보시지 그래요. 시몽의 처 …그런저런 이유로 제 딸년이 저 아래 골목 구석
으로 간 거죠. 그 애는 착한 아이랍니다. 자기 부모 를 먹여 살린다고요. 시몽
하, 이제야 고백하는군!
시몽의 처 이 유다야, 그 젊은 양반들이 그 애한테 바지를 벗
어놓고 가지 않았으면 당신 주제에 그나마 바지 몇 벌이라도 얻어 입었을 줄 알아? 이 술주정뱅이 영감 탱이야, 샘물이 말랐다고 목만 태우고 있을 작정이 냐고, 응? 우린 사지로 일을 하는데 왜 그걸로는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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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말라는 법이 있어? 제 어미도 그걸로 그 애를 낳았 어. 제 어미도 그때 고통스러웠다고. 그 애라고 제 어밀 위해서 그걸 사용하지 말라는 법 있어? 그 짓 하 는 데도 그 애한테 고통이 따른단 말이야, 이 멍텅구 리야! 시몽
아, 루크레티아!23) 칼을 주시오, 나에게 칼을 주시오, 로마인들이여! 하,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시민 1 그래, 이 사람한테 칼을 줘. 하지만 그 불쌍한 창부를
찔러서는 안 돼. 그녀가 뭘 잘못했다고. 하나도 잘못 한 거 없어! 그저 배가 고파서 몸을 팔아 비럭질을 한 거야. 칼은 우리 여편네하고 딸년들을 돈으로 사가 는 그런 놈들을 위해서 필요한 거야! 민중의 딸들과 농탕질 하는 놈들은 모조리 뒈져야 해! 여러분들은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는데 놈들은 배가 불러 씩 씩거리고 있어요. 여러분의 옷은 구멍투성이인데 저 들은 따뜻하게 껴입었다고요. 여러분들의 손엔 못이 박여 있는데 놈들은 비단결 같은 손을 가지고 있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뼈 빠지게 일하는데 23) 프롬프터 시몽은 술에 취해서 비르지니와 루크레티아를 혼동하고 있다 (루크레티아는 독재자의 아들에 의해 정절을 잃은 후 자살한 로마의 여 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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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놈들은 빈둥빈둥 놀고먹는다는 얘기예요. 여러분 들이 힘들여 벌어놓으면 저 작자들이 훔쳐가는 거예 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그 도둑맞은 재산을 몇 닢 다 시 찾기 위해서 몸을 팔아야 하고 비럭질을 해야 하 는 겁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놈들은 도둑놈들입니 다. 우린 놈들을 때려 죽여야 해요. 시민 3 저들의 혈관에는 우리한테서 빨아먹은 피밖에 없어
요. 저들은 우리보고 귀족들은 늑대니까 때려죽이라 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린 귀족들을 교수형에 처했 죠. 국왕이 거부권24)을 통해 우리의 빵을 빼앗아 처 먹는다고 해서 우린 그 거부권을 폐지했습니다. 그 리고 또 지롱드 당원들 때문에 우리가 배를 굶주린 다고 해서 그들도 처단했어요. 그런데 그 죽은 자들 의 옷은 저자들이 벗겨 입고 우리는 예전과 매한가 지로 이렇게 맨발로 다니며 추위에 떨고 있어요. 놈 들의 넓적다리 살가죽을 벗겨서 바지를 만들고, 놈 들의 기름기를 빼내서 우리 수프에 넣어 먹읍시다. 갑시다! 옷에 구멍이 나지 않은 놈들은 모조리 쳐 죽 입시다!
24) 국왕이 국민의회의 결정사항에 대해 행사하는 거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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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1 글씨를 쓸 줄 알고 읽을 줄 아는 놈들은 모두 타도합
시다. 시민 2 외국 놈들과 내통하는 놈들을 때려죽입시다! 일동
(소리 지른다.) 죽여라, 때려죽여!
몇 사람이 어떤 젊은이를 끌고 온다.
몇몇 소리 이자는 손수건을 가지고 있소! 귀족이오! 교수형
에 보내! 교수형 감이야! 시민 2 뭐라고? 이자가 손가락으로 코를 풀지 않았다고? 매
달아! (교수목이 세워진다.) 젊은이 아, 신사 양반님네들 왜 이러시는 겁니까? 시민 2 여기 신사는 없어! 매달아! (몇 사람이 노래한다.)
저기 땅속에 누워 있는 자들 벌레들이 갉아먹으리라. 차라리 공중에 매달리는 편이 땅속에서 썩는 것보다 낫다네!25)
25) 독일 민요의 한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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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 자비를 베풀어주세요! 시민 3 밧줄로 목을 한 번만 감으면 끝나는데 뭘 그러나! 한
순간이면 된다고. 우린 너희들보다 훨씬 자비로운 사람들이야. 우리는 일생 동안 죽도록 일만 하지. 말 하자면 60년 동안을 줄에 목매달려 허우적거린단 말 이야. 하지만 그놈의 줄을 끊어버릴 날도 멀지 않았 어. 매달아! 젊은이 맘대로들 하시구려. 하지만 날 매달았다고 세상이
금방 밝아지지는 않을 거요! 둘러선 사람들 맞았어, 맞아! 몇몇 소리 그 사람 풀어줘! (젊은이 달아난다.)
로베스피에르26)가 하층민 아낙네들과 남자들을 대동하고 등장한다.
로베스피에르 시민 여러분, 무슨 일입니까?
26)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Maximillien de Robespierre, 1758∼1794): 법률가이며 1789년 이래로 자코뱅 당의 당원이 되었고, 1792년 이후부터 는 산악당(자코뱅 당 안에서도 과격파로 구성됨)의 지도자로 군림하면서 지롱드 당을 붕괴시키고 에베르 파와 당통의 처형을 주도했다. 자코뱅 당 의 공포정치를 창도하고 영혼불멸설을 그의 도그마로 만들었으나 1794년 7월 27일에 실각당하여 다음날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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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3 무슨 일이 있을 것 같습니까? 8월과 9월27)의 피 몇
방울 가지고는 민중의 뺨이 붉어지지 않아요. 단두 대는 너무 속도가 느리단 말입니다. 우린 소나기처 럼 화끈한 것이 필요하다고요. 시민 2 마누라와 애들이 빵을 달라고 아우성입니다. 귀족들
의 살점으로 저들의 배를 채워줄 수밖에 없어요. 흥, 옷에 구멍 나지 않은 놈들은 모조리 때려잡아! 일동
때려잡자, 때려잡아!
로베스피에르 법의 이름으로! 시민 1 법이란 게 도대체 뭡니까? 로베스피에르 민중의 뜻이오. 시민 1 우리가 바로 민중이오. 하지만 우린 법 같은 거 원하
지 않아요. 그러니까 이러한 우리의 뜻이 곧 법이란 말이오. 고로 법의 이름으로 법은 없어졌소. 고로 때 려죽입시다! 몇몇 소리 아리스티데스28)의 말을 들어봅시다. 이 청렴한
27) 1792년 8월 10일에 있었던 파리 튈르리 왕궁 습격으로 인한 학살사건과 1792년 9월 2일과 5일 사이에 왕당파와 성직자들에게 가해진 학살사건을 뜻한다. 이 사건으로 16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해되었다. 28) 아리스티데스는 청렴결백한 품성으로 인해 길이 칭송을 받던 아테네의 정 치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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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의 말을 들어보자고요! 아낙네 선택하고 심판하기 위해서 보내진 이 메시아의 말을
들어봅시다. 이분은 악인들을 날카로운 칼29)로 치 신답니다. 이분의 눈은 선택의 눈이시고 이분의 손 은 심판의 손이십니다! 로베스피에르 가난하고 성실한 민중이여!30) 여러분들은 의
무를 지키고 원수들을 타도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위대합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면모를 보여줌 에 있어 번개와 천둥31)처럼 지엄하십니다. 하지만 민중 여러분, 여러분은 자칫하다가 여러분들이 휘두 른 칼에 여러분 자신이 다칠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 해서 여러분들이 그렇게 분노에만 싸여 있다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는 얘기입니다. 제힘에 지쳐서 쓰러진단 말씀입니다. 여러분의 적은 그 점을 잘 알 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선량인 입법자들은 깨어 있 습니다. 그들은 여러분들의 손을 잡고 인도할 것입 니다. 그들의 눈은 속일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여러
29) 민수기 21장 24절 참조. 30) 로베스피에르는 “가난하고 성실한 민중이여!”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는데, 매번 이 말이 그의 입에서 나올 때마다 청중의 반응이 뜨거웠다고 한다. 31) 출애굽기 19장 16절 및 20장 18절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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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의 손을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나와 함께 자코뱅 당으로 갑시다! 여러분의 동지들이 두 손을 들어 환 영할 겁니다. 우린 적들에게 피의 심판을 내릴 것입 니다. 여러 사람들 자코뱅 당으로 갑시다! 로베스피에르 만세! (모
두 퇴장) 시몽
비통하구나, 난 버림받은 몸이야! (일어서려고 애쓴 다.)
시몽의 처 잡아요! (그를 부축한다.) 시몽
오, 내 바우치스32)여, 못된 남편을 이렇게 대해주니 부끄러울 뿐이구려.
시몽의 처 자, 일어서세요! 시몽
당신 등을 돌리는군. 그래 날 용서해 줄 수 있겠소, 포르키아?33) 내가 당신을 때렸소? 그건 내 손이 한 짓이 아니오. 내 팔이 한 짓도 아니고 광증이 장본인 이지.
32) 그리스의 신화에 의하면 바우치스는 부부간의 사랑과 정절을 잘 지키는 모범적인 아내였다. 33) 카토의 딸이며 정절을 잘 지킨 여인으로 유명하다. 그녀는 남편 브루투스 가 패한 후 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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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증은 가련한 햄릿의 적이라오. 그건 햄릿이 한 짓이 아니라오. 햄릿은 그 행동을 부정했다오.
우리 딸 어디 갔소? 산 어디 있어? 시몽의 처 저기 거리 모퉁이 부근에 있어요. 시몽
그 아이한테로 갑시다. 내 정숙한 아내여. (둘 다 퇴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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