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은원기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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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은원기



나오는 사람들

왕바이량(王伯良) 왕중선(王重申) 메이셴(梅仙): 민며느리 왕성(王勝), 왕리(王利): 왕바이량의 호위병 허싼산(何三山): 자선단체 회장 량위루(梁玉如) 기생어미 샤오타오훙(小桃紅) 기생집 넷째 아줌마1) 아차오(阿巧) 메이옌(美娟), 시춘(惜春), 칭펑(靑風), 쑤팡(素芳), 푸룽화(芙蓉花): 기생 리젠자이(李簡齋): 샤오타오훙의 기둥서방

1) 중국의 전통적인 호칭은 가문, 직장 등 소속과 서열, 상대와의 관계(나리, 아줌마, 형님 등) 등의 정보를 조합해 만들어진다. ‘쓰아이(四阿姨)’라는 호 칭은 그가 ‘기생어미’와 맺고 있는 관계(예를 들면 혈연 같은)에서 서열상 넷째[四]라는 것과, 나이 든 여자(阿姨)라는 것을 알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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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집 손님 갑, 을, 병, 정 (거문고) 악사 (왕바이량 집) 유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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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막

인물: 기생어미, 넷째 아줌마, 리젠자이, 샤오타오훙, 아차 오, 량위루, 왕바이량, 왕성, 왕리, 기생, 기생집 손님, (거문 고) 악사, 허싼산 장소: 상하이(上海) 푸저우루(福州路) 윈난루(雲南路) 푸 샹리(福祥里) 시간: 신해혁명 1년 뒤 어느 가을날 오후 배경: 기생집. 중국식 홍목(紅木) 가옥. 온돌 침대가 놓여 있다.

막이 오르면 기생어미와 넷째 아줌마가 대화를 나누고 있 다.

기생어미 (손으로 물담배 통을 받쳐 들고 다리를 꼬고 앉아

담배를 한 모금 들이마시고 탄식한다.) 아이고! 요즘 같은 때 먹고살기 힘들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다고, 왜 꼭 우리 기생집 하는 사람들만 못살게 굴고 난리 야? 우리라고 모아 놓은 게 있는 줄 아나? 남의 속사 정도 모르고 참. 이러다가는 농담이 아니라 정말 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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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게 생겼어. 아, 정말이지 어떻게 될지 나도 모르겠 다니까. 그나마 몇 푼 남은 돈으로는 이것저것 땜질 하기도 바쁘다고. 넷째 아줌마 (한가롭게 마작 골패를 만지작거리며) 언니, 그

런 소리 마셔. 날 봐요, 관상을 딱 보면 운수대통 아 니오? 두고 보쇼. 문제없을 테니까. 기생어미 아이고, 넌 나랑은 딴 세상에 사는 모양이다. 난 요

새 뭔가 자꾸 쫓기는 마음이라 그저 낮이고 밤이고 머리가 아프도록 고민, 고민인데. 그런데 고민을 해 도 뾰족한 수가 없네. (팔뚝을 들어 소매를 걷어 올 린다.) 봐, 그 좋던 피부가 아주 이 꼴이 되어 버렸다 니까. 넷째 아줌마 (골패를 한쪽으로 치우며) 그러니까 내 말이 그

말이라니까. 그래 봤자 헛수고라고. 속 태워 봤자 아 무 소용 없다고 했잖소? 기생어미 이제 곧 추석 아니니? 주변에 선물도 안 보낼 수 없

잖아. 대체 그걸 다 어떻게 감당할지, 그런데 어떻게 걱정을 안 할 수 있어! 넷째 아줌마 언니, 추석 되면 또 좋은 일이 있을 거유. 이런

일이 또 그렇게 아예 아무 수가 없는 것도 아니니까, 염려 마요. 내가 늘 말하잖아요, 타오훙 그 아이만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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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면 만사 걱정 끝이라니까. 기생어미 그것도 걱정이야. 걔 요즘 리젠자이인지 뭔지한테

아주 푹 빠졌잖니. 얼마 전에도 손님들한테 하는 것 좀 보라지. 고분고분 장사를 하려 들지를 않아요! 넷째 아줌마 언니, 그 일 말인데, 일단 화내지 말고 들어 봐.

언닌 우선 자기가 한 일을 생각해 봐야 해. 아, 윗물 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은 법 아니겠어? 기생어미 뭐야? 얘는 왜 날 갖고 뭐라 그래? 넷째 아줌마 언니, 일단 내 말 좀 들어 보쇼. 일단 듣고, 내 말

이 틀렸으면 사과할게. 기생어미 그래, 좋아. 들어 보자.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

데? 넷째 아줌마 그러니까, 타오훙 걔가 리젠자이랑 좋아 지내는

건 다 언니한테 배운 거라고. 언니가 예전에 그 차이 (蔡) 씨하고, 아이고, 아주 닭살 돋았지. 그런 걸 걔 가 다 봤으니까, 생각 좀 해 봐요. 이제 스무 살 넘은 한창땐데, 걘들 가만있으면 근질근질하지 않겠어? 그러니까 결국은 걔가 리젠자이 녀석이랑 그러는 게 다 언니한테 배운 거라고. 그리고 언니도 미리미리 신경을 좀 썼어야지, 이제 와서 게네 아주 서로 푹 빠 졌지, 그 녀석이 또 좀 미남이우? 타오훙이 안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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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지. 그런데 인제 언니가 게네 를 억지로 떼어 놓으려고 한들 그게 되기나 하겠냐 는 말이지. 기생어미 야, 네 말을 듣다 보니까 걔가 저러는 게 다 나 때

문이라는 것 같네. 그럼 이제 걔가 아주 내 손을 떠났 다는 거니? 이 기생집 장사도 이제 아주 끝났다는 거 야? 넷째 아줌마 아이고, 언니! 언니도 참. 기생 장사 하면서 기

생을 영 모르시네. 타오훙 그 아이 성질을 아직도 몰 라요? 그 아이는 부드럽게 살살 구슬려야지, 강압적 으로 하면 오히려 더 말을 안 듣는다니까. 걔는 잘 구 슬리면 틀림없이 언니 말을 들을 거예요. 못 믿겠으 면 내 말대로 한번 해 보세요! 기생어미 알았어, 알았다고. 그럼 오늘부터 걘 너한테 맡길

테니까 네가 알아서 잘 좀 해 봐. 넷째 아줌마 언니, 두고 봐. 내 말만 믿어요. 내가 장담할게.

그 아이가 틀림없이 고분고분하고 싹싹하게 장사 잘 하게 될 테니까.

리젠자이 등장. 기생어미는 그가 싫은 내색이다. 탁자 위에 있던 물건을 정리해 퇴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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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젠자이 (기생어미가 퇴장하는 모습을 짜증 섞인 눈으로

바라보고) 넷째 이모, 타오훙은요? 넷째 아줌마 (골패를 정리하며) 아, 도련님이셔? 어째 성황

묘 쪽에 안 가시고? 타오훙은 오늘 벌써 소원 빈다고 성내에 들어갔는데. 어제저녁에 그 아이가 도련님께 말씀을 안 드렸나? 서서 뭐해? 앉아! (퇴장한다.) 리젠자이 (사방을 둘러보고 주머니에서 빈 담뱃갑을 꺼낸

다.) 이런 제기랄! 한 개비도 없네. 참 나, 재수가 없 으려니까. (계속 투덜대며 온돌 침대가 있는 곳에 가 서 눕는다.)

샤오타오훙이 아차오와 함께 손에 종이 가방을 잔뜩 들고 웃으며 등장한다.

샤오타오훙 아이고야, 너무 걸었나? 피곤해 죽겠네. 아차오 그러게 제가 진작부터 돌아오자고 했잖아요. 제 말

은 안 듣고 주취(九曲) 다리도 가 봐야 한다, 가산에 도 올라가 봐야 한다, 산 동굴도 들어가 보고, 그러니 피곤할밖에요. 어서 좀 쉬세요. 두 시간도 안돼서 또 바빠질 시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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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오타오훙 (앉으려다가 리젠자이가 침대에 누워 있는 걸

보고 아차오에게 손짓해 그가 깨지 않도록 주의를 준다.) 오늘은 안 온다더니 언제 왔지? 창문도 다 열 어 놓고, 감기 걸리겠네. 아차오, 하던 일은 일단 두 고 담요라도 가져다가 좀 덮어 드려. 아차오 우선 숨 좀 돌리세요. 도련님이 어린아이도 아니고,

날씨도 그렇게 춥지 않은데요. 담요는 제가 가져올 게요. (아차오가 담요를 가져온다.) 담요 가져왔어 요. 샤오타오훙 (탁자 위의 종이 가방을 연다.) 담요는 이리 줘.

이건 여기 두고, 나머지는 갖다 둬. (담요로 리젠자 이를 덮어 준다.) 리젠자이 (담요를 타오훙에게 던지며) 됐어, 됐다고, 됐다니

까! 나한테 잘해 주는 척하지 마. 제기랄! 한나절이 다 지나도록 누구랑 어딜 갔다 온 거야? 나는 어디 가 서 죽어 버리기라도 한 줄 알았네. 그래도 돌아올 생 각은 들었나 보지? 샤오타오훙 (담요를 받아 들고 킥킥거리며 웃는다.) 아이고,

아이고! 성질 좀 봐. 그럼 내가 안 왔으면 좋겠어? 아차오 아이고, 나무아미타불. 도련님은 하늘도 두렵지 않

으신가 보네. 도련님은 정말 양심도 없으셔. 우리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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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씨는 자나 깨나 늘 도련님 걱정, 도련님 생각만 하 는데. 아가씨가 도련님한테 얼마나 정성으로 대하는 데 도련님은 그걸 그렇게 몰라주세요? 오늘 성황묘 에 가서 향 태운 것도 다 도련님 위해서 비느라 그런 거라고요. 도련님이 요새 자주 몸도 안 좋고 운 없는 일도 많다고 아가씨가 특별히 해원향(解怨香) 태우 러 성숙전(星宿殿)에 간 거고요. 보살님께 도련님을 잘 보살펴 달라고, 늘 평안하도록 지켜 달라고 빌러 말이에요. 샤오타오훙 아차오, 말이 많구나. 오늘 속상한 일이라도 있

으신 모양이지. 속에 있는 말씀은 하셔야지 억지로 참다가 속병이라도 나시면 어쩌려고 그래? (탁자 위 에서 사탕 두 개를 들고 리젠자이에게 다가간다.) 이 제 화 다 냈어요? (사탕 하나를 리젠자이 입에 넣어 주고, 하나는 자기가 먹는다.) 아차오, 너도 하나 먹 어. 리젠자이 (눈을 감고 잠든 척한다.) 시끄러. 나 잘 거야. 샤오타오훙 아차오, 나 담배 좀. (리젠자이 곁에 앉아서) 아

유, 이제 화 그만 내. 아차오 아가씨, 담배요. 샤오타오훙 (한 개비 들고 불을 붙여 리젠자이 입가에 갖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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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다.) 어서 한 모금 피워 봐요. 어머, 어머, 이제 알 겠다. 담배가 없어서 화났던 거지? 한참 못 피운 모 양이네. 힘들었어? 리젠자이 (한 손으로 담배를 받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타오

훙의 볼을 살짝 꼬집는다.) 요 얄미운 주둥이를 어떡 하나? 샤오타오훙 아야, 아야! 왜 이래? 이렇게 세게 꼬집으면 어떡

해? 아파 죽겠네. (손으로 볼을 만진다.) 리젠자이 그러니까 누가 그렇게 호들갑 떨래? 난 아직 힘도

안 줬어. 샤오타오훙 정말 양심도 없어. 내가 이렇게 잘해 주는데, 정

말 모르는 거야? 리젠자이 그럼 말해 봐. 방금 한참이나 대체 어딜 가서 뭘 했

어? 바람이라도 피운 거 아냐? 아차오 도련님, 정말 너무하시네. 그렇게 사람 마음을 몰라

주나요? 요즘 우리 아가씨는 도련님 말고 다른 손님 은 받지도 않으신다고요. 그 때문에 주인 아줌마한 테 잔소리도 엄청 들었거든요. 우리 아가씨한테 자 꾸 이러시면 마른하늘에서 벼락 떨어져요! 리젠자이 알았어, 타오훙, 내가 믿지. 그래서 말은 하라고 있

는 거 아니겠어? 그래, 좋아. 난 친구하고 청련각(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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蓮閣)에서 당구 약속이 있어서 가야 해. 타오훙, 저

녁에 다시 올게. (일어나 가려 한다.) 샤오타오훙 (품속에서 포개진 지폐를 꺼낸다.) 잠깐만! 옷깃

이 다 뒤집어졌네, 내가 펴 줄게. (리젠자이에게 가 까이 다가가서 지폐를 그의 주머니에 넣는다.) 금방 올 거지? 리젠자이 (걸어가며 돌아본다.) 12시 넘어서. 너희 가게 문

닫으면 올 테니까, 기다려.

리젠자이 퇴장한다. 타오훙은 문 가까이에서 내다본다. 넷 째 아줌마 등장.

넷째 아줌마 타오훙, 아이고, 그건 또 뭐 하는 짓이야? 그렇

게 못 보내겠으면 아예 치마폭에 싸 놓지 그래? 샤오타오훙 뭐예요? 재수 없게. 이모 또 나 놀리러 왔어요? 넷째 아줌마 닭살 돋을 짓은 자기가 다 해 놓고 나보고 뭐라

네! 자, 쓸데없는 소리는 집어치우고, 타오훙, 이리 와서 좀 앉아 보렴. 우리 얘기 좀 하자. 샤오타오훙 웬일이에요? 무슨 이야긴데요? 넷째 아줌마 여기서 이러지 말고, 그래, 우리 방에 들어가서

얘기 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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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 안으로 들어간다. 아래층에서 남자 종업원이 “손님이오!”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여자 종업원들은 커튼을 친다. 량위루 등장. 기생 어미가 맞이한다.

기생어미 어머나, 누구신가 했더니, 량 나리셨군요.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어 여기까지 오셨을까? 량위루 (웃으며) 어, 요 몇 달 후베이(湖北)에 있는 고향에

좀 다녀왔거든. 상하이에는 그저께 돌아왔네. 음, 내 가 자네 보고 싶어서 딴 데 안 가고 여기 왔지. 자네 만나러. 기생어미 량 나리, 말씀도 잘하시지. 보고 싶었던 사람이 혹

시 제가 아니라 타오훙 아니시고요? 량위루 오! 타오훙, 그 아이도 물론 보고 싶지. 하지만 오늘

은 순전히 자네 보러 온 거야. 우린 친구 아닌가? 그 것도 아주 오래된 친구.

넷째 아줌마 등장. 그들의 등 뒤에 소리도 없이 가만히 서서 이야기를 듣는다. 여자 종업원, 차를 따르고 물담배를 건넨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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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어미 (생각난 듯이) 나리, 아, 그렇지, 내 정신 좀 봐. 나

리는 시가 피우시죠. 저희 집에 많아요. 가져오라고 할게요. 넷째 아줌마 (갑자기) 어머, 알았어요. 제가 가서 가져올게

요. 량위루 (고개를 돌려 넷째 아줌마를 보고) 아! 누군가 했네.

넷째 언니가 계셨군. 넷째 아줌마 언니라뇨, 별말씀을. 두 분이 어찌나 정답게 대

화하시는지, 끼어들 틈이 없어서 인사도 못 드렸네 요. 금방 가서 시가 가져올게요. 기생어미 나리, 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 타오훙, 꼭 좀 도와

주셔야 해요. 말씀만 도와준다, 도와준다 하시지 말 고요. 넷째 아줌마 (시가를 량위루에게 건네주고 이어 불을 붙여

준다.) 나리, 한동안 안 오시니까 우리 타오훙이 나 리 그리워서 하루하루 날짜만 헤아리고 있었는데, 드디어 오늘 오셨네요. 제가 가서 초대장2) 가져올까

2) 칭커탸오(請客條)를 말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한턱내겠다는 내용의 간단 한 초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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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량위루 그래, 한잔 사면 사는 거지. 그런데 내가 온 지가 언

젠데, 타오훙은 어떻게 여태 얼굴도 안 보이나? 집에 없나? 기생어미 넷째야, 어서 가서 데려와! 어서! 아차오 (등장하며) 어머, 량 나리, 아가씨는 지금 머리 빗고

있어요. 넷째 아줌마 내가 좀 들어가서 봐야겠다. 무슨 머리를 이렇

게 한참 빗나? (퇴장) 량위루 오호라! 아무래도 타오훙이 이제 유명해져서 나 같

은 건 상대하지 않을 모양이군. 기생어미 나리, 그렇게 말씀하시면 타오훙이 억울하죠. 걔

는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나리라고 하면 아마 반 가워서 어쩔 줄 모를걸요. 나리 오셨다는 소리를 듣 고 지금쯤 기뻐서 팔짝팔짝 뛰고 있을 거예요. 잘 아 시잖아요, 그 아이가 동작이 느려서 머리를 빗든 발 을 씻든 늘 다른 사람보다 좀 오래 걸리는 거. 넷째 아줌마 (등장하며) 량 나리, 이제 금방 와요. 머리는 다

빗었고요, 지금 나리 오셨다니까 위아래 옷을 싹 갈 아입고 있어요. 예쁘게 하고 와서 나리를 뵈려고요. 아차오 (문의 커튼을 걷는다.) 량 나리, 타오훙 아가씨 왔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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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 샤오타오훙 (얼굴 가득 웃음을 띠고) 나리, 죄송해요! 옷 갈

아입고 나오느라 좀 늦었어요. 화내시면 안 돼요. (량위루 가까이에 앉는다.) 량위루 오오, 타오훙, 이제 얼굴 보기도 어려워지는 모양이

지? 몇 번이나 오라고 해야 겨우 볼 수 있구먼! 샤오타오훙 어머, 세상에, 나무아미타불! 저는 나리 오셨다

는 말을 듣자마자 부랴부랴 옷 갈아입고 나와서 이 렇게 시중들고 있는데, 계속 나무라기만 하실 거예 요? 설마 (눈웃음을 치며) 끝까지 용서 안 해 주실 건 아니시죠? 량위루 좋아, 좋아. 진심이라고 믿어 주지. 그럼 나한테 와

서 뽀뽀나 한번 해 봐! 샤오타오훙 어머, 어머! 나리, 서두르시긴. 여긴 사람도 이렇

게 많은데, 누가 보는 데서 뽀뽀해도 괜찮단 말이에 요? 넷째 아줌마 맞아요, 맞아. 량 나리, 천천히 즐기세요. 좀 있

다가 방에 들어가서 마음껏 즐기실 시간은 얼마든지 있잖아요? 량위루 솔직히 말해서 말이야, 타오훙의 요 조그마한 얼굴

은 누구라도 좋아하지 않고는 못 배기지. 하지만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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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훙이랑 좋아지낼 행운은 없는 모양이야. 샤오타오훙 나리, 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세요? 알았어요. 누

가 나리 흉봐도 난 몰라요. (얼굴을 가까이 가져간 다.) 자, 자, 뽀뽀하세요. 량위루 어이쿠, 타오훙, 어떻게 이렇게 금방 대범해졌나? 이

거 내가 다 당황스럽네. 샤오타오훙 이번에는 제가 소심한 거 아니에요. 이번에는

제가 뽀뽀하게 해 드렸는데, 나리께서 안 하신 거예 요. 오, 알았다! 내가 지저분하다고 싫어하는 거죠? 량위루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멋대로 이유 붙이지 마. 타

오훙, 오늘은 내가 널 아주 황홀하게 해 줄 테니까. 샤오타오훙 정말요? 아이 좋아. 그럼 제 소원을 한 30개쯤

들어주세요. 량위루 30개나? (혀를 낼름 내민다.) 허, 그렇게나 많이, 사

람 놀라게 하는군. 샤오타오훙 왜요? 안 들어주실 거예요? 량위루 그렇게 많이는 곤란하지. 이렇게 하자. 내가 소원 딱

하나 들어주지. 샤오타오훙 좋아요, 소원 하나. 그럼 오늘 바로 들어주셔야

해요. 넷째 이모, 초대장 좀 갖다 주세요. 아차오 량 나리, 초대장 여기 있습니다. (초대장을 량위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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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건넨다.) 샤오타오훙 나리, 어서 쓰세요. 그래야 사람들한테 보내죠. 량위루 음, 잠깐만. 어떤 분들을 불러야 할까? (생각에 잠겼

다가 적는다.) 됐다. 샤오타오훙 (량위루가 초대장을 쓰는 사이 고개를 돌려 아

차오에게 귀엣말을 하며 리젠자이에게 쓴 편지를 건 넨다.) 넷째 이모, 어서 초대장 가져가세요! 넷째 아줌마 (큰 소리로) 얘들아! 여기 초대장 갖고 가서 전

해라! 샤오타오훙 나리, 저는 초대하시지 않아도 벌써 이렇게 나리

를 위해 싹 빼입었고, 여기 와 있답니다. (아편을 꺼 내며) 한 대 피우실래요? 량위루 타오훙, 내가 오늘 온 건 말이야, 정말이지 진심으로

널 위해서야. 내 말 알지? (사방을 둘러본다. 타오훙 은 뭔가 눈치를 챈다.) 모두 자리를 좀 비켜 주시오. 필요하면 내 부르지.

모두 밖으로 나간다.

샤오타오훙 나리, 제가 어떻게 나리 말씀을 안 믿겠어요! 량위루 타오훙, 내 오늘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오늘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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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초대한 사람 중에 말이야, 왕씨 성에 함자는 바이 량이라고 하는 분이 있는데, 전에 청나라 때 무과에 서 거인3)에 올랐고, 통대관4) 벼슬까지 했던 분이야, 신해혁명 후에 지금은 난징(南京) 총통부에서 금위 군 군장5)을 하고 계시지. 아주 높은 자리라고. 그런 데 요번에 상하이에 군수품 구매차 오시게 돼서 내 가 아주 꽉 붙들었지. 만약에 이번 거래만 성사되면 건당 2대 8로 수수료만 받아도 적지 않거든. 아마 다 들 한몫 단단히 잡을 수 있을 거야. 너희도 잘 기억해 뒀다가 절대 실수 없이 잘해야 해. 타오훙, 알아들었 지? 샤오타오훙 나리, 저한테 이렇게까지 관심을 가져 주시니 정

말 뭐라 감사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번 일 성사되라고 미리 축하드릴게요. 량위루 그래, 그리고 또 내가 말이야….

3) 거인(擧人): 명청(明淸)대 향시에 급제한 사람을 말한다. 4) 통대관(統帶官): 청대 고급 장교 계급중 하나다. 본래 “정참령(正參領)”이 었다가 청 말엽에 군대가 근대적인 체제로 개편될 때 명칭이 바뀌었다. 5) 금위군(禁衛軍) 군장(軍長): 원래 금위군은 황제를 호위하는 군대를 말했 지만 청말에는 유럽(프러시아) 군사제도를 모방해 만든 근대적인 군대를 가리키게 되었다. 군장은 원래 사령관을 뜻하는데 작품 내용으로 보아 퇴 역 군인에게 주어진 일종의 명예직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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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오타오훙 말씀하세요. 또 무슨 계획이신지 궁금해요. 량위루 타오훙, 내가 널 그 양반한테 소개하려고. 샤오타오훙 어머, 저야 좋죠. 혹시 농담하시는 건 아니죠? 량위루 내가 그런 일로 농담하겠어? 내가 왜 이 일을 너한테

다 이야기해 주느냐, 그건 바로 네가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라서 이러는 거라고. 어떻게든 그분을 꽉 잡고 절대 놓치지 말라고. 나중에 군장 사모님이 된 다음에 이 월하노인6)을 잊어버리지나 말고! 샤오타오훙 나리, 안심하세요. 이 타오훙은 절대로 화장실

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른 사람이 아니랍니다. 량위루 오, 그렇지. 우리 타오훙이라면 믿을 만하지!

밖에서 남자 종업원이 손님 왔다고 알리는 소리 들린다. 아 차오가 커튼을 걷는다. 계단에서 나는 발걸음 소리. 왕바이 량 등장한다. 량위루가 급히 맞이한다.

량위루 아이고 대장님, 이리 오시죠. 여기서 쭉 기다리고 있

었습니다. 왕바이량 아, 량 사장, 늦었네, 늦었어. 사과하지. 원래 바로

6) 월하노인(月下老人): 부부의 인연을 맺어 준다는 신선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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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려고 했는데 마침 고향 친구 하나가 와서 말이야, 몇 마디 나누다 보니까 이렇게 늦어 버렸군. 이거 미 안하게 됐네! 량위루 대장님, 아직 시간도 이른데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아, 그 친구분도 함께 오지 그러셨습니까? 왕바이량 그 사람은 벌써 치판(棋盤) 거리에 있는 자기 숙소

로 돌아갔다네. 량위루 그게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제가 바로 초대장을 써

서 그리로 보내죠. 대장님 명의로 보내서 대장님께 서 부르시는 걸로 하겠습니다.

넷째 아줌마는 물담배 통을, 아차오는 수건을 건넨다. 이때, 남자 종업원이 타오훙이 시중들러 왔음을 알린다. 타오훙 은 왕바이량 곁으로 가서 그의 어깨를 손으로 살짝 건드린 다. 아양 섞인 목소리로.

샤오타오훙 왕 나리, 량 나리, 편하게 앉으세요. 금방 다시

올게요. 왕바이량 (타오훙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가 짐짓 얼굴을

돌려 량위루에게 말한다.) 엊그제 부탁드린 일은 어 떻게 되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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량위루 왕 대장님, 그 일은 제가 벌써 친척하고 이야기를 했

고요, 오늘 이리로 부를 테니까 두 분이 직접 이야기 나누시면 될 것 같습니다. 왕바이량 만일 이 일이 잘만 된다면, 량 사장, 내가 크게 사

례하리다. 량위루 아이고, 감사합니다, 뭘 그렇게까지! 대장님께서 시

키신 일에 대해서만큼은 제가 미력이나마 다하겠습 니다. 왕바이량 내 생각엔 이 일은 빨리 할수록 좋을 것 같소만. 량위루 대장님 말씀은 정말이지 제 생각과 딱딱 맞아떨어지

는군요.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안 할 거라면 몰라도 하려고 들면 무슨 일이든 신속하게 해야죠. 아, 참! 대장님, 대장님 보시기에 저 타오훙이라는 아이, 어 떻습니까? 마음에 드신다면 그 아이를 대장님께 소 개해 드릴까 합니다만. 왕바이량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웃으며) 그 아이는 량

사장이 좋아하는 것 같은데, 옛말에 군자는 남이 좋 아하는 것을 빼앗지 않는다 했소. 그러니 그게 말이 나 되겠소? 량위루 대장님, 별말씀을요. 타오훙과 제가 비록 얼마간 알

고 지내기는 했지만 무슨 정분 같은 건 전혀 없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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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냥 좀 알고 지낸 것뿐이죠. 제가 알기로는 옛 날에도 시녀를 선물하는 아름다운 풍속이 있었다고 하던데요. 자! 그러지 마시고, 그 아이가 돌아오면 제가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왕바이량 뭔가 빼앗는 것 같아서 나는 아무래도 좀…. 량위루 대장님하고 저 사이에 별말씀을요! 우리 사이에 이

만한 일이 뭐가 문제겠습니까? 마음 불편해하지 마 십시오. 그럼 오늘 이 자리는 대장님께서 초대하신 자리로 하지요. 어떻겠습니까? 이렇게 하면 훨씬 자 연스럽겠지요?

손님들이 속속 도착한다. 왕바이량은 한 사람씩 소개한다. 연회석이 마련되고, 모두 자리에 앉는다. 이때 타오훙이 돌 아온다.

량위루 귀빈 여러분, 오늘 이 자리는 본래 대장님께서 초대

하신 거라서 결코 제가 나설 자리는 아니겠습니다 만, 다만 여러분께서 이곳 상하이에 처음 오셔서 아 직 여러모로 낯설어 하실 것 같아 저더러 여러분을 접대하라고 특별히 지시하셨습니다. 타오훙, 어서 이리 와서 대장님께 한잔 올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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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훙이 여러 손님들에게 술을 따른다. 모두 일어선다.

모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왕바이량 (일어서서) 여러분께서 와 주신 덕분에 얼마나 기

쁜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혹시 대접에 소홀한 점이 있더라도 부디 용서해 주십시 오. 량위루 혹시 여러분 가운데 잘 아는 분이 계시면 지금이라

도 어서 초대장을 보내십시오. (모두 한 번씩 사양한 다음 초대장을 쓴다.) 넷째 아줌마, 어서 보내세요. 넷째 아줌마 나리, 전부 이리 주세요. 금방 전할게요.

남자 종업원이 손님 도착을 알린다. 허싼산이 가방을 옆에 끼고 다리를 절며 등장한다.

허싼산 허허허, 바이량 형. 아니, 어, 어떻게 이런 델 다 와

계시오? 난 원래 이런 곳에 오지 않는 사람인데, 초 대를 받으니 거절할 수도 없고, 오자니 참 낯 뜨거워 서. 솔직히 말해 이런 기생집엔, 내 나이 예순여덟에 처음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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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바이량 나를 봐서 이렇게 와 주니 정말 고맙소이다. 량위루 이분이 바로 그 고향 친구분이라는 허 선생이시로군

요. 이렇게 고매하신 분을 몰라뵈었군요. 외람된 말 씀이겠습니다만, 제 짧은 생각으로는 살면서 그래도 이것저것 다 해 봐야 속이 시원하지 않을까 싶습니 다. 자, 자, 그럼 허 선생님께도 제가 기생 하나 불러 올리겠습니다! 허싼산 아주 훌륭한 말씀이지만 이 늙은이는 생각이 좀 다

릅니다. 예로부터 기생집이라는 곳은 대개 타락한 곳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 곳에 저는 아무렇지 도 않게 다니기가 좀 불편합니다. 왕바이량 허 선생,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 하지 않소? 어쩌

다 한 번쯤이야 무슨 문제가 되겠소?

기생들이 속속 도착한다. 본당 기생이 선창하면 외부에서 온 기생이 답하여 노래한다.

푸룽화 (짙은 화장) 어느 분이 허 선생님이셔요? 량위루 오, 푸룽화, 이리 와. (허싼산을 가리키며) 저기, 저

분이 허 나리시다. (푸룽화가 허싼산 곁에 앉는다.) 이분으로 말하자면… 아, 허 나리, 올해 연세가 어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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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허싼산 (난처해하며) 그게 무슨 상관이오? 이제 그만합시

다. (가방을 손에 들고 일어나 가려 한다.) 량위루 허 나리, 옆에 기생도 왔는데, 웬만하면 그냥 계시죠.

우리 모두 이렇게 한자리에 모이기도 했는데 말이 죠. 푸룽화 허 나리, 경극 노래 듣고 싶은 것 있으면 뭐든 말씀하

세요. 제가 잘 모실게요. 허싼산 아니, 난 모르네. 경극이고 뭐고 몰라. 량위루 허 나리께 담배라도 하나 붙여 드리지 그래. 푸룽화,

그럼 어디 제일 잘 부르는 걸로 하나 뽑아 봐. 푸룽화 (일어나서 노래한다. 한 곡 부르더니 허싼산 품에 확

안긴다. 허싼산은 놀라서 소리를 지를 뻔한다.) 잘 못 불렀죠? 죄송해요.

밖에서 산터우루(汕頭路)의 화샤오위(花小玉) 기생집에서 푸룽화를 찾는다고 알린다.

푸룽화 허 나리, 죄송해요. 저 가 봐야 할 것 같아요. 좀 있다

가 그리로 오실래요? 량위루 알았어. 알았으니 가 봐. 내가 좀 있다가 모시고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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