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베도 시선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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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ología de la poesía de Quevedo 케베도 시선


<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은 인류의 유산으로 남을 만한 작품만을 선정합니다. 오랜 시간 그 작품을 연구한 전문가가 정확한 번역, 전문적인 해설, 풍부한 작가 소개, 친절한 주석을 제공하는 고급 시선집입니다.


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

Antología de la poesía de Quevedo 케베도 시선 프란시스코 데 케베도 이 비예가스 (Francisco de Quevedo y Villegas) 지음 안영옥 옮김

대한민국, 서울, 지식을만드는지식, 2015


편집자 일러두기 ∙ 이 책은 크로스비(Jemes O. Crosby)의 ≪케베도 시 모음집≫과 펠리시아 부엔디아(Felicia Buendía)의 ≪케베도 전집(Obras Completas Vs.2)≫을 저본으로 삼고 스페인 한림원에서 발간한 ≪모범 사전(Diccionario de Autoridades)≫과 코바루비아스가 편찬한 ≪스페인어의 보물(Tesoro de la Lengua Castellana)≫ 사전 등을 참조했습니다. ∙ 원문에서 대문자로 표기된 단어는 방점을 찍어 표시했습니다. ∙ 시 제목은 케베도의 첫 작품집을 펴낸 발행자가 붙인 것입니다. ∙ 본문의 주석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옮긴이가 추가한 것입 니다. ∙ 외래어 표기는 현행 한글어문규정의 외래어표기법을 따랐습니 다.


˙ ˙ 1) 제단 옆에 묻힌 신(新)그리스도인2) 성자 안톤

˙ ˙ 디에고 ˙ ˙ ˙ 3)가 묻혀 있다. 여기 모센 ˙ ˙ 옆 아주 가까운 곳에, 성자 안톤 그의 돼지에서 도망쳐4) 나오더니

1) 성 안토니우스를 말한다. 이집트 출신으로 ‘수도 생활의 아버지’라고 도 부른다. 그의 고행은 많은 예술의 테마가 되기도 했다. 보시를 비롯 해 여러 화가들이 주제로 삼은 <성 안토니우스의 유혹>, 플로베르 의 소설 ≪성 앙투안의 유혹≫ 등이 유명하다. 2) 가톨릭으로 개종한 유대인이나 무어인을 경멸적으로 부르던 말이다. 3) “모센(Mosén)”이란 카스티야인이나 순수 그리스도인이 아닌, 아라 곤인이나 카탈루냐인에게 붙여 주었던 일종의 타이틀이다. 711년부 터 1492년까지 스페인에는 이슬람교도인 무어인들이 살았고, 그리 스도를 신봉하던 스페인인들은 이 무어인들을 몰아내기 위한 국토 회복 전쟁을 하게 되는데 그 중심에 카스티야인들이 있었다. “디에고 (Diego)”는 앞의 신그리스도인이라는 용어와 함께 비교해 볼 때 ‘후 디에고(Judiego)’, 즉 유대인(스페인어로 ‘후디오’)의 냄새를 풍긴다. 4) “성자 안톤(Santo Antóm)”은 예부터 금식의 상징이자 가장 지독한 유혹에 견뎌 낸 저항의 상징이다. 스페인에서는 온갖 종류의 병에서 지키는 수호자로, 병을 위협하는 존재를 상징한다. “그의 돼지에서 도망쳐”란 바로 성자 안톤, 즉 병으로부터 도망쳐서라는 의미다. 케 베도는 여기서 돼지를 성자의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성자 안톤을 소개할 때 흔히 돼지를 썼던 관습 때문이다. 그를 그린 그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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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불구덩이5)에 머물고 말았구나.

해제

이 작품은 암시가 예술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보 여 줌과 동시에 케베도의 암시가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를 느 끼게 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이 시의 의미는 낱말들로 이루어진 문맥상 의미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 각 낱말이 담고 있는 의미 들로 이루어지고 있다. 케베도는 굳이 유대인에 대해 어떠한 말 로도 언급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1과 3행에서 충분히 그것을 알 수 있다. 유대인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보면, 그가 사막에서 명상하고 있는 장면과 그 발아래 돼지고기가 놓 여 있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숙어로 ‘성자 안톤의 돼지’란, 먹지 않 는데도 몸이 비대한 사람을 의미한다. 5) “그의 불구덩이”란 성자 안톤의 불구덩이, 즉 어떤 종류든 아주 고약 한 전염병을 말한다. 10세기에서 12세기에 걸쳐 사지 중 한 곳에 불에 타는 듯한 고통을 수반했던 괴저성(壞疽性) 전염병을 성자의 불 또는 큰 불, 혹은 성 안토니우스의 불이라고 일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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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쇠에게 부치는 글

이 땅 밑에 비천하고도 가엾고도 혐오스런6) 욕심쟁이 부자가 순금에 싸여 잠들어 있다.

십만 가지의 고통을 안고 죽었지. 고통을 치유할 수도 없었지. 그건 나쁜 체액조차도 버리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어.

해제

옛날 사람들에 따르면, 육체의 건강과 아름다움은 체내 나쁜 액 을 밖으로 내보냄으로써 유지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 시의 구 두쇠는 그 나쁜 체액조차도 버릴 수가 없어서 결국 죽었다는 것 이다.

6) 흔히 부자들은 돈은 많지만 외모는 초라하기 그지없었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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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말하는 한 의사의 묘비명

이 딱딱한 돌덩어리에 한 인간의 황폐한 육체와 차가운 재가 잠들고 있소. 본성이 칼7)인 의사 양반이로소이다, 바로 나의 모든 부8)를 가져다준 자라.

이제는 내가 이 깊은 구덩이에다 오랜 시간 그가 운전해 온 사지를 가두오. 나 비록 죽음이긴 하오나, 그러나 그에게서 죽이는 것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난 그에게 죽음을 주지 않았을 게요.

해제

환자를 치유하지 못해 죽게 만든 의사들에 대한 이야기들은 옛

7) “본성이 칼”이란 죽음을 은유한다. 즉, 죽음을 주는 자라는 뜻이다. 8) “나의 모든 부”란 죽음으로 생기는 물건들, 즉 시체들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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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에 종종 있었다. 그리스 시인들은 의사가 환자를 그저 건드리 기만 해도 죽음을 낳는다고 조소하며 읊기도 했다. 라틴 문학에 서도 이런 유의 풍자는 계속되었고, 중세와 문예 부흥기에 연계 되어 이 주제는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었다. 스페인에서는 케베 도가 다른 어느 시인들보다도 의사를 가장 많이 우롱했던 이였 을 것이다. 그는 의사를 “해골바가지”니 “헤롯”, “허락받은 독” 이니 “순교자 열전”, “사자의 직업”, “페스트”, “사형 집행인” 등 으로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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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저 너머의 사랑243)

백일(白日)이 나를 데려갈 최후의 그림자는 내 눈을 닫을 수 있을 것이며,244) 영혼의 간청에 귀 기울여 시간도 이 나의 영혼을 풀어 놓을 수 있을 것이다.245)

그러나 내 사랑이 불탔던 이 세상 강가246)에다 나의 영혼은 내 기억을 놔두지는 않

243) 이 소네트는 케베도가 쓴 시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랑의 시이며, 많 은 독자들이 가장 아름다운 시로 간주하는 작품이다. 다마소 알론소 는 케베도의 최고의 작품이자 최상의 스페인 문학 작품이라고 격찬 했다(≪스페인 시(Poesía Española)≫, 마드리드, 1950, 562쪽). 244) 백일은 대낮으로 삶을 의미하고 그림자는 죽음을 의미한다. 245) 생의 마지막 순간 영혼이 간절히 죽음을 청하매 이에 응한 시간은 나의 영혼을 육체로부터 분리할 수 있을 것이다. 246) “이 세상 강가”는 산 자들의 세상에 가까운 곳으로 “최후의 그림 자”와 마지막 “시간”의 곳과 대조를 이룬다. 강가란 망각의 강가로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제7장 715행)에 보면 사람이 죽 으면 영혼은 육체로부터 떨어져 나와 레테 강에서 조용히 긴 망각 의 물을 마셔서 기억을 이 세상에 놔두고 가야 한다. 그는 이 준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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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것이다, 나의 정염은 차가운 물을 헤엄쳐 준엄한 법을 무시할 줄 알기에.

사랑의 신의 포로가 되었던 내 영혼은, 그러한 열정에 체액247)을 공급했던 나의 혈관은, 영화롭게 타올랐던 나의 뇌수는,

육체는 버려도 사랑의 열정은 버리지 않으며,248) 재로 화할 것이나 느낌은 가질 것이며,249) 먼지로 남을 것이나 사랑에 빠진 먼지가 될 것이다.

법을 무시하고서라도 기억을 죽어서도 갖고 가겠노라고 고집하는 것이다. 247) 여기서 체액을 생명력이나 영양분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당시 사람 들은 인간의 육체는 체액에서 영양을 공급받아 유지된다고 믿었다. 248) 주어는 9행의 영혼이다. 죽음이 육체로부터 영혼을 분리하면 영혼 은 저세상으로 여행을 시작할 때 육체를 강가에 남겨 놓는다는 5∼ 8행의 내용이 계속 전개되고 있다. 249) 혈관은 재가 될 것이며 뇌수는 먼지가 될 것이다. 그러나 “준엄한 법”을 어겨, 재가 되기는 하나 느낌을 가지는 재가 될 것이며, 먼지 로 화하기는 하나 사랑에 빠진 먼지가 될 것이다. 케베도의 사랑의 정도가 얼마나 위대한지 추측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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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참 궁정 대신을 위한 조언과 갖추어야 할 구비 서류 에 대해

˙ ˙ ˙ , 궁전(宮殿)에 가는구나, 페리코 너의 젊음과 너의 발이 너를 궁으로 데려가는구나, 얘야, 신이 그 손으로 너를 지켜 주시기를.

너의 몸통은 자신감에 차서, 네 다리는 성급하고, 이를 드러낸 채 팔을 휘저으며, 달콤한 시선과 용기백배한 형세로.

그러나 만일 네가 그곳에서 즐겁게 보내기를 원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너의 우아함을 돈으로 대신 바꿔 가라는 내 말을 명심해라.

자신이 상당히 아름답기에, 그녀들471)은 미남자들을 필요로 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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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에게서 최상의 면모란 커다랗고 그득 찬 돈주머니지.472)

먹기 위해선 너의 이들은 네게 나서지도 말라고 할 거야, 그건 다른 자들이 너의 간식을 먹어 치울 더 훌륭한 이들을 갖고 있기 때문이지.

그녀들에게 많은 돈을 주게 되면, 아주 멋진 대우를 받을 거야. 블랑카473)를 주면 블랑카에게 모든 걸 승낙받기엔 시간이 걸릴 거야.

가게로 걸어 다닐 땐 너의 걸음걸이를 찬양할 것이며,

471) 그녀들은 궁전에 있는 여자로 돈만 많이 가지면 페리코가 함께 즐 기게 될 여자들이다. 472) 그녀들은 잘생긴 남자를 원하는 게 아니라 그저 부자이기만 하면 된다. 473) 블랑카는 옛날 돈으로 가치가 아주 미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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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주는 데 주의하지 않으면,474) 너의 그 주의력을 칭찬하지. ˙ ˙ 의 여자들은 궁전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 ˙ 토메 ˙ ˙ 475)들이야, 모두가 산토 물론 모두가 다 깜둥이476)라는 건 아니야.

세상에서 비싼 게 있다면, 정말 비싼 건 ˙ ˙ ˙ ˙ 의 여자들이지, 그녀들은 마드리드 예쁘기도 예쁘지만 얼마나 돈이 많이 드는데.

공짜는 아무 데서도 못 찾아, 한물간 것을 파는 여자들인

474) 개의치 않으면. 475) 스페인어 ‘토마르(취하다)’에서 온 말로, ‘훔치다’라는 의미로 쓰고 있다. 476) 흑인을 경멸조로 부를 때 ‘토메’라고 했는데, 여기서 ‘메’를 생략해 개를 부를 때 썼던 호격 ‘토! 토!’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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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파들이나 신중한477) 추녀들을 쫓아다녀도 말이야.

무엇이든 줄 것이 있는 동안은 너를 즐겁게 해 줄 자를 만날 것이나, 주머니가 마지막 숨을 거둘 땐 자넨 “평안히 잠드소서”478)란 진혼 기도를 듣게 될 거야.

너를 포옹할 때, 그녀들은 곡식 베는 사람들을 닮지. 한 손으로는 너를 껴안으면서, 다른 한 손으로 너의 밑을 잘라낸다는 것을 명심해.479)

477) 케베도는 신중한 여자치고 미인이 없으며 현명하고 똑똑한 여자치 고 추녀가 아닌 여자가 없다고 믿었던 것 같다. 물론 케베도뿐만 아 니라 전통적으로 그렇게들 생각해 왔지만 케베도의 작품에서 특히 그 점이 강조되어 나타나고 있다. 478) 원문은 라틴어인 ‘Requiem aeternam’이다. 479) 다른 한 손으로 너의 돈주머니를 턴다는 의미다. 곡식을 벨 때 한 손 은 곡식 단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낫으로 밑을 잘라내는 농부의 몸놀림에서 연상한 듯하다. 물론 짐승들을 죽일 때 반항하지 못하 도록 오금을 잘라 버리는 이미지에서 따온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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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게 입 맞출 땐, 술주정꾼이 술병에다 입을 맞추듯 할 거야, 병이 기울도록 마시다가 어느 구석에다 처박아 버리지. ˙ ˙ ˙ 대사 ˙ ˙ 들의 궁전은 교황청 수천 가지 일을 갖고 있지,480) 그건 모든 ˙ ˙ 서기관 ˙ ˙ ˙ ,481) 여자들이 있는 자들은 교황 ˙ ˙ 교황청 ˙ ˙ ˙ 비서국장 ˙ ˙ ˙ ˙ 들482)이기를 원 들어오는 자들은 로마 하기 때문이야.

480) 교황청 대사가 하는 일들을 언급하고 있다. 대사가 도착하면 왕에 게 신임장을 주고 떠나는 일을 신참이 오면 그녀들에게 보고하고 신고하는 것으로 비유했다. 481) 교황 서기관들은 방문객들의 서류들을 선발 발췌하며 방문을 허락 받은 이들의 도착 출발에 대해 모두 기록한다. 482) “비서국장들”의 원문을 보면 ‘다타리오스(Datarios)’, 즉 ‘돈을 주 다’를 암시하고 있다. 직역하면 그들이 하는 업무를 두고 쓴 것인데, 업무란 자선 사업으로 식량을 나눠 주는 일이나 사고 팔 수 있는 직 업을 관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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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쇠를 마시니483) 어떤 금속484)도 마다하지 않아, 신(神)은 부지런한 자를 돕는다485) 하지만 그녀들과 지내는 데는 아니야.

겨울에는 태양을 취하려고,486) 들과 언덕을 차지하고 있으니, 그녀들에게서 멀리 있고자, ˙ ˙ 은 도망갈 생각을 했지. 태양

어느 곳을 가도 그녀들로부터 자유로워지지는 못할 거야, 대문을 잠그면 문틈으로 해서 네 집으로 들어갈 거거든.487)

483) 당시에는 폐색증을 고치기 위해 철을 섞은 물을 마셨다. 484) 돈. 485) 스페인 속담이다. 486) 태양은 황금색이다. 그러므로 태양을 취한다는 것은 돈을 강탈한다 는 뜻이다. 487) 옛날에 마녀들은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 없다고 믿었다. 케베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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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알지 못하는 여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많은 처녀들을 만나게 될 거야, ˙ ˙ ˙ 나돈 ˙ 이나 처녀좌 다를 바 없는 것이거든.488)

키 큰 여자들을 알게 되겠지만, 그녀들은 모두가 벌통 같아. 반은 비어 있는 데다489) 코르크490)이며

여기서 궁전의 여자를 마녀로까지 생각했다. 488) 네가 성적으로 알지 못한 모든 여자들은 처녀일 것이다. ‘돈(Don)’ 은 스페인에서 남자 이름 앞에 붙였던 경칭으로, 자비로 주는 선물 이란 의미도 있다. 케베도는 당시 스페인에서는 존경을 받을 만한 인물이 아닌데도 이 ‘돈’이란 경칭이 남용되고 있음을 조롱하면서, 아무 데나 붙일 수 있다는 점에서 처녀성이나 돈이나 같은 것으로 보았다. 아울러 처녀좌가 처녀성을 언급하고 있음을 시사하면서 점성학에 따른 12궁의 해석이 터무니없고 우스꽝스러운 것이라고 조롱하고 있다. 489) 당시 유행한 여자들의 옷은 스커트 안에 페티코트를 넣어 부풀렸 다. 490) 나막신을 언급한 것이다. 특히 이 나막신은 보통 나막신이 아니라 진흙길을 지나갈 때 발이나 옷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혹은 키가 커 보이기 위해 적어도 손가락 네 배 두께의 코르크를 신발 밑에 덧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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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반은 꿀에 밀랍491)이란다.

네게서 돈 냄새가 나면 중매를 서 주겠노라고들 나설 거야. 널 속여 먹지 못하도록 남편 될 생각은 아예 말아.

약속하는 데는 네게 모든 걸 허락하마, 그건 네가 여자들에게 단지 약속하는 것만으로 온 세상이 네 것이기 때문이지.

주지 않는 것이 없을 정도로 넘칠 정도로 바치겠노라 하라고, 약속한다고 가난해지는 건 아니잖아, 이행만 안 하면 되는 것이지.

네 성일(聖日) 전야에는

것으로 보통 나막신보다 훨씬 높았다. 491) 꿀과 밀랍은 당시 여자들이 사용했던 화장품의 주성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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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한 일이 있어도 모습을 보이지 말아, 네 목에 걸어 준다고 하면서,492) 네 주머니로 너의 목을 조를 것이기 때문이지.

축제가 있는 날에는 아프다고 침대에 드러누워 있고,493) 투우 경기가 있을 때는 창문이 성가시니494) 교회에 박혀 있도록 해.

보석상에 가느니 불 속에 들어가는 게 낫고, 금은방에 가느니 조역형(漕役刑)에 처해져라.495)

492) 성일을 맞이한 사람에게 선물을 할 때 보통 보석이 박힌 금이나 은 목걸이를 목에 걸어 주곤 했다. 493) 축제날은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돈을 요구할 기회를 많이 마련해 주 기 때문이다. 494) 투우가 있을 때는 집 안에 있는 이들에게 창문에 걸터앉도록 요구 하기 때문이다. 495) 당시 보석 상인이나 귀금속 장사들은 모두 도둑으로 취급할 정도로 사기성이 농후했다. 물론 그곳은 여자들이 득실거리는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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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어느 집에든 들어가기를 원한다면, 먼저 문간에 서서 누가 길에서 소리치고 다니는지 잘 들어 봐, 네게 빚 가지고 들러붙지 않게끔 말이야.496)

네가 신중하고 쩨쩨하다고 널 좋아하는 사람이 없어져도, 옷차림은 시원찮으나 잘 만들어진 ˙ ˙ ˙ ˙ 여인들497)은 있을 거거든. 수천의 아일랜드

누가 반의 반쪽과 물과 색색이 알사탕만으로,498)

496) 네가 들어가려고 하는 그 집의 누군가가 빚 독촉을 받고 있는지를 살펴보라는 말인데, 당시 빚을 진 사람이 빚을 잘 안 갚을 때는 채권 자가 채무자 집으로 가는 길에서 큰 소리로 그 사실을 공표하곤 했 다. 그러다가 누구든 돈 있어 보이는 사람이 그 집으로 들어서면 그 사람에게 빚을 받아 내곤 했다고 한다. 497) 당시 스페인에서 아일랜드 여자에 대한 평판은 아주 나빴다. 죄덩 어리들로 보았다. 498) 누가 반의 반쪽에 술 대신 물, 색색들이 알사탕은 사육제 때 서로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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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는 싼 값에 피라모스 ˙ ˙ ˙ 도 향유하거든.500) ˙ ˙ ˙ 499) 티스베 어떠한 가예가

내 충고만 듣는다면, ˙ ˙ ˙ , 넌 땅 위에서 페리코 만족스러운 부자로 살 거야,501)

대방에게 던지는 놀이에 쓰였던 여러 가지 색깔의 조그마한 사탕 들을 말한다. 모두 싼 것들이다. 499) 가예가는 갈리시아 지방의 여자를 일컫는다. 케베도 시대에 주로 하녀 신분이었고, 더럽고 멍청한 추녀로 풍자가들의 작품에 등장 한다. 500) 피라모스와 티스베는 바빌로니아 전설 속의 연인들이다. 이들에 대 한 이야기는 오비디우스의 ≪변신≫(제4권, 55∼165행)에 나오며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이들은 연인 사이였으나 가족의 반대로 비 밀리에 사랑을 나누었다. 하루는 샘 옆 뽕나무가 있는 니노라는 묘 지 근처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먼저 도착한 티스베는 마침 그 때 먹이를 잡아먹고 물을 마시러 온 사자에게 쫓겨 베일을 떨어뜨 린 채 달아났고 사자는 그 베일을 먹이인 양 갈가리 찢어 놓고 피까 지 묻혀 놓았다. 뒤에 온 피라모스는 그것을 보고 티스베가 사자의 밥이 된 줄 알고 자기 칼로 목숨을 끊는다. 피신했던 티스베가 돌아 와 차갑게 식어 버린 연인의 몸을 보자 자기도 그의 몸에 꽂혔던 칼 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들의 피로 그때까지 하얗던 뽕나무 열 매가 빨갛게 변해 버렸다고 한다. 이런 사랑의 주인공들을 여기서 는 완전히 격하해서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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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시여 그렇게 되도록 해 주소서.

그러지 않는다면, 넌 ˙ ˙ ˙ ˙ ˙ 이나, 포주들 ˙ ˙ ˙ 이나 장모들 ˙ ˙ ˙ 의502) 아주머니들 밥이 되든지, 코 없고 눈썹도 없이 고약과 연고로 떡칠하며 살게 될 거야.503)

501) 스페인어로 ‘땅 위에서 살다’란 속담은 사람이 무슨 말을 하든 개의 치 않고 어떤 일에도 걱정 없이 사는 사람을 일컬을 때나 비겁자를 칭할 때도 쓰인다. 502) 친척을 팔아먹는 아주머니, 처녀를 파는 포주, 딸을 파는 장모를 케 베도는 그의 <지옥의 꿈>에서 삼위일체로 보고 있다. 모두가 여 자들을 파는 일에 관여한다. 503) 임신 중 산모가 매독에 걸리면 칼슘 부족으로 납작코가 나온다는 설을 암시했다. 즉, 페리코가 앞으로 걸리게 될 병을 분명히 밝혀 주 고 있다. 눈썹이 없는 것은 매독에 걸려 탈모 증세가 있음을 말한다. 연고와 고약은 매독을 치유하기 위한 처방약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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