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잡이공선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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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잡이 공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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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지옥에 가는 거야!” 두 사람은 갑판 난간에 기대어 달팽이가 발돋움을 하는 것처럼 늘어져, 바다를 껴안고 있는 하코다테(函館) 거리를 보고 있었다. − 어부는 손가락 부근까지 다 피워 버린 담배 를 침과 함께 버렸다. 담배는 우스꽝스럽게 여러 형태로 뒤 집히며 높은 배 옆을 거의 스칠 듯이 떨어져 갔다. 그는 온몸 에서 술 냄새가 났다. 빨간 올챙이배를 폭넓게 띄우고 있는 기선과, 한창 짐을 싣고 있는 듯 바다에서 한쪽 소매를 힘껏 잡아끌기라도 하 는 것처럼 한껏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것과, 노란색의 두 꺼운 굴뚝, 커다란 방울 같은 부표(浮標), 빈대처럼 배와 배 사이를 바쁘게 누비고 있는 작은 증기선, 추위 속에 으스스 살풍경하게 웅성거리고 있는, 그을음과 빵 부스러기와 썩은 과일이 떠 있는, 뭔가 특별한 직물과 같은 파도…. 바람의 영향으로 연기가 파도와 스칠 듯이 휘어져 후텁지근한 석탄 냄새를 풍겼다. 윈치의 드르륵 하는 소리가 때때로 파도를 통해 그대로 울려 왔다. 이 게잡이 공선 핫코마루(博光丸) 바로 앞에, 페인트가 25


벗겨진 범선이 뱃머리의 소 콧구멍 같은 곳에 정박해 있었다. 갑판을 마도로스파이프를 입에 문 외국인 두 명이 같은 곳 을 몇 번이나 기계인형처럼 왔다 갔다 하고 있는 것이 보였 다. 러시아 배 같았다. 틀림없이 일본의 ‘게잡이 공선’에 대 한 감시선이었다. “우리들 이제 한 푼도 없어. − 제기랄. 이거 참.” 그렇게 말하고, 몸을 붙여 왔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의 어 부의 손을 잡아 자신의 허리 근처에 가지고 갔다. 작업복 밑 의 골덴 바지 주머니에 바짝 대었다. 뭔가 작은 상자 같았다. 한 명은 잠자코 그 어부의 얼굴을 보았다. “히히히히…” 하고 웃으며, “화투야”라고 말했다. 배의 갑판에서 ‘장군’과 같은 모습을 한 선장이 어슬렁거 리면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뿜어내는 연기가 코앞에서 급히 각도를 꺾어 흩어져 날아갔다. 밑창에 나무를 박은 샌 들을 질질 끌며, 음식물 바구니를 든 선원이 바쁘게 ‘살롱’ 선실을 출입했다. − 준비가 다 되어, 이제 출항하기만 하면 되었다. 잡부가 있는 승강구를 위에서 들여다보자, 어두침침한 아치형 선반에 둥지로부터 얼굴만 불쑥불쑥 내미는 새처럼,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모두 열네댓 살의 소년 들뿐이었다. 26


“너는 어디서 왔니?” “××마을.” 모두 같았다. 하코다테의 빈민촌 어린이들뿐 이었다. 그런 것은 그것만으로 한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저쪽 선반은?” “남부.” “그쪽은?” “아키타(秋田).” 그들은 각각 선반을 달리하고 있었다. “아키타 어디?” 고름과 같은 콧물을 흘리며, 벌겋게 충혈된 것처럼 눈가 가 짓무른 아이가, “북아키타”라고 말했다. “농민이야?” “그래요.” 공기가 휙 하고 오는데 뭔가 과일이라도 썩는 것 같은 시 큼한 악취가 났다. 절인 음식을 몇 십 통이나 저장해 놓은 방 이 바로 옆이었기 때문에, ‘똥’과 같은 고약한 냄새도 섞여 있었다. “이제 아빠가 안고 자 주지.” − 어부가 실실 웃었다. 어스레한 구석 쪽에서 작업복을 입고 통이 좁은 바지를 입은, 보자기를 삼각형으로 쓴 날품팔이 같은 어머니가, 껍 27


질을 벗긴 사과를 선반에 누워 있는 아이에게 먹여 주고 있 었다. 아이가 먹는 것을 보면서 자신은 깎아서 뱅글뱅글 원 형이 된 껍질을 먹고 있다. 뭔가 말하거나 아이 옆의 작은 보 자기에 싼 것을 몇 번이나 풀거나 고쳐 주고 있었다. 그런 것 이 일고여덟 명이나 있었다. 누구도 환송해 주는 사람이 없 는 내륙으로부터 온 아이들은 때때로 그쪽을 훔쳐보듯이 보 고 있었다. 머리와 몸이 시멘트 가루투성이가 되어 있는 여자가 캐 러멜 상자에서 두 개 정도씩 그 근처의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우리 겐키치(健吉)하고 사이좋게 일해, 응?” 하고 말했다. 나무뿌리처럼 볼품없고, 크고 거친 손이었다. 아이의 코를 풀어 주는 사람과,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 주 는 사람과, 소곤소곤 뭔가 말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댁의 아이는 몸이 좋군요.” 어머니끼리였다. “음, 뭐.” “우리 애는 매우 약해요. 어떻게 할지 걱정이지만, 어쨌 든….” “그거야 누구라도 그래요.” − 두 명의 어부가 승강구로부터 갑판에 얼굴을 내밀고 28


한숨을 쉬었다. 언짢은 듯이 갑자기 입을 다문 채 잡부들이 있는 곳보다 더 뱃머리 쪽에 있는 사다리꼴 모양의 자기들 ‘거처’로 돌아갔다. 닻을 올리거나 내릴 때마다 콘크리트 믹 서 안에 처넣어진 듯이 모두 튀어 오르거나 서로 부딪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어두침침한 속에서 어부는 돼지처럼 데굴데굴하고 있 었다. 게다가 돼지우리 그대로 곧 웩 하고 토할 것 같은 냄 새가 났다. “냄새. 냄새.” “그래, 우리 처지이니까. 어느 정도 이런 썩은 냄새는 당 연해.” 빨간 맷돌과 같은 머리를 한 어부가 됫병째로 술을 이가 빠진 밥공기에 부어서, 마른오징어를 게걸스럽게 우적우적 하면서 마시고 있었다. 그 옆에 벌렁 나자빠져서, 사과를 먹 으면서 표지가 너덜너덜해진 야담 잡지를 보고 있는 자가 있었다. 네 명이 둘러앉아 마시고 있는데, 아직 술이 부족했던 한 사람이 비집고 들어왔다. “…그렇지. 넉 달이나 바다 위야. 이젠 이런 일밖에 할 수 없겠지….” 튼튼한 몸을 한 자가 그렇게 말하고 두꺼운 아랫입술을 29


가끔 버릇처럼 핥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근데, 지갑이 말이야.” 곶감처럼 찰싹 달라붙은 얇은 돈지갑을 눈높이로 흔들어 보였다. “저 과부, 몸은 이렇게 조그마한 주제에, 무지 능숙했어!” “이봐, 그만해, 그만해!” “좋아, 좋아, 계속해.” 상대는 헤헤헤 하고 웃었다. “봐, 감탄할 물건이지. 그렇지?” 취한 눈을 정확히 상대편 쪽 선반 아래에 붙박고, 턱으로 “응!” 하고 그 사람이 말했다. 어부가 그 여자에게 돈을 건네주고 있는 참이었다. “봐, 봐, 응!” 작은 상자 위에 꼬깃꼬깃해진 지폐와 은화를 늘어놓고, 두 사람이 그것을 세고 있었다. 남자는 작은 수첩에 연필을 핥고 핥으며 뭔가를 쓰고 있었다. “봐, 응!” “나도 마누라랑 자식은 있어.” 과부 이야기를 했던 어부 가 갑자기 화난 듯이 말했다. 거기서 조금 떨어진 선반에서, 숙취로 푸르퉁퉁하게 부 은 얼굴에 앞머리만을 길게 기른 젊은 어부가, “나도 이번엔 정말 배에 오지 않으려고 했는데”라고 큰소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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