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손_맛보기 by Communicationbooks

The Visible Hand 보이는 손 Ⅰ

서론: 보이는 손

이 책의 제목은 책의 초점이나 목적이 아니라 주장하려는 바를 지칭한다. 이 책은 미국에서 생산 및 유통이 변해 온 과 정, 그리고 이들이 관리되어 온 방식을 조사하는 것을 목적 으로 한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이 책에서는 이러한 과정들 을 수행했던 기업들에 초점을 맞춘다. 봉급 경영자(salaried manager)들에 의해 운영되는 대기업은 재래의 소규모 가족 기업을 대체하고 생산과 유통을 관리하는 일차적 기관으 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에, 이 책은 근대적 대기업(modern business enterprise), 그리고 그 경영자들의 성장에 특히 집 중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특정한 기업 제도와 특정한 기업가 계급의 역사다. 이 책에서 주장하려는 바는 경제 활동의 조율과 자원 배 분에서 근대적 대기업이 시장 메커니즘을 대신했다는 것이 다. 경제의 많은 영역에서 경영이라는 보이는 손(the visible hand)이 애덤 스미스(Adam Smith)가 보이지 않는 손(the invisible hand)이라고 지칭했던 시장의 힘을 대체했다. 시 장은 여전히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수요를 창출했지만, 근 대적 대기업은 현존하는 생산 및 유통 과정을 통해 상품 흐 름을 조율하는 기능, 그리고 장래의 생산 및 유통을 위해 자 금과 인력을 배분하는 기능을 담당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시장이 수행하던 기능을 도맡게 되면서, 근대적 대기업은

미국 경제에서 가장 강력한 제도가 되었고, 그 경영자들은 경제적 의사 결정자 가운데 가장 영향력 있는 집단이 되었 다. 미국에서 근대적 대기업의 대두는 경영자 자본주의 (managerial capitalism)로 귀결되었다.

근대적 대기업의 정의 근대적 대기업은 간단히 정의할 수 있다. 그림 1에서 볼 수 있듯이 이것은 두 가지 큰 특징을 지닌다. 하나는 다수의 구 분된 사업단위를 보유한다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봉급 임원(salaried executive)들의 위계 조직에 의해 운영된다는 것이다. 근대적 복수사업단위(multiunit) 기업 내의 각 단위는 독 자적인 관리 사무소(administrative office)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봉급 상근 경영자에 의해 운영되었다. 이들은 모두 상위 조직으로부터 분리되어 감사를 받을 수 있는 독자적인 장부와 회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론적으로는 각 단위가 독 립된 기업으로서 운영될 수 있었다. 반면 미국의 재래 기업은 앞서 밝힌 근대적 대기업과는 달리 단일사업단위(single-unit) 기업이었다. 그러한 기업에

현장 감독, 감독관 등

하급 관리자

중간 관리자

최고 경영자

(사각형은 사무소 하나를 나타냄)

그림 1. 근대적 대기업의 기본 위계 구조

서는 개인 혹은 소수의 기업 소유자가 작업장, 공장, 은행 혹 은 교통 기관 등을 하나의 사무소에서 운영했다. 보통 이러 한 종류의 기업은 한 지역에서 단일한 품목만을 취급하는, 단순한 경제적 기능만을 수행했다. 근대적 대기업이 출현하 기 전에는 시장 및 가격 메커니즘이 개인들이 소유하고 경 영하는 이러한 소규모 기업들의 활동을 조율하고 감독했다. 근대적 대기업은 다수의 사업단위를 관장하게 되면서 여 러 지역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는데, 종종 다른 종류의 경제 활동을 수행하기도 하고 상이한 종류의 재화와 서비스를 제 공하기도 했다. 결국 이 사업 조직들의 활동 그리고 그들의 상호작용은 기업 안으로 내부화(internalize)했다. 이들은 시장 메커니즘보다는 봉급 경영자들에 의해 감독을 받고 조 율되었다. 근대적 대기업은 관장하는 사업단위들의 업무를 감독하 고 조율하기 위해 봉급 받는 중간 관리자(middle manager) 및 최고 경영자(top manager)들의 위계 조직을 도입하게 되었다. 이들은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경영인 계급을 형성했다. 물론 재래의 단일사업단위 기업 중 몇몇 도 근대적 대기업의 말단 관리자가 담당하는 것과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관리자를 고용했다. 플랜테이션 농장, 공 장, 작업장, 은행의 소유자들은 사업장을 관리하거나 자신

들을 보조할 사람들을 고용했다. 이 단일사업단위 내부의 업무가 증대될 때, 이 관리자들은 노동자를 감시하기 위해 십장(foremen), 감독(drivers), 그리고 조수(mate) 등과 같 은 하위 관리자(subordinate)를 고용했다. 그러나 1840년까 지도 미국에는 중간 관리자, 즉 다른 관리자의 업무를 감독 하고 그 역시 봉급 경영자인 상위 임원들에게 보고하는 형 태의 관리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때까지도 최고 경영자들 은 대부분 기업의 소유자들로, 자신들이 경영하는 기업의 공동 출자자 혹은 대주주였다. 따라서 봉급 받는 중간 및 최고 경영자 집단이 운영하는 복수사업단위 기업은 근대적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하다. 이러한 유형의 기업들은 1840년까지 미국에 등장하지 않았 다. 그러나 제1차 세계 대전 즈음이면 이러한 유형의 기업들 이 미국 경제의 많은 영역에서 지배적인 형태가 되었다. 20 세기 중반이 되면 이 기업들은 수만, 수십만 명의 노동자를 고용하는 수십, 수백의 사업단위들을 보유했고, 이들을 감 독할 수백 수천의 중간 및 최고 경영자들을 고용했다. 이러 한 기업은 수만, 수십만의 주주들이 소유하고 있었고, 매년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심지어 지방 혹은 지역 시장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소규모 기업들도 최고 경영자와 중간 관 리자를 고용했다. 세계 역사상 그처럼 짧은 기간 동안 이렇

게 중요하면서도 이처럼 광범위하게 확산된 제도는 없었다. 이처럼 역사적으로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삶에도 막대한 중요성을 지닌 제도와 계급의 등장을 서술하고 분석한다는 것은 미국 경제사 연구자들에게 매력적인 과제다. 이 제도 를 정의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쉬운 편이고 제도 자체가 비 교적 최근에 출현한 것이기 때문에, 학자들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와 같은 역사학자 고유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에 어려 움을 느끼지 않는다. 연구자들은 언제, 어느 지역에서, 어떠 한 방법으로 이 새로운 제도가 처음 출현하고 지속적으로 성장해 왔는지 정확하게 기록할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연구자는 봉급 경영자라는 새로운 변종 경제인의 등장을 파 악할 수 있고, 후일 미국에서 생산 및 유통 경영의 표준이 되 는 관행 및 절차의 발전도 기술할 수 있다. 일단 ‘언제, 어디 서, 어떻게’라는 역사학적 질문에 답하고 나면, 연구자는 왜 이러한 제도가 출현하게 되었고, 어떻게 이처럼 강력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을 제시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도전은 그동안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연구자 들에게 더 매력적일 수 있겠다.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이 제도의 역사에 대한 논의는 거의 없었다. 이것의 역사적 발 전에 대한 학자들의 관심 역시 놀랄 만큼 적었다. 1930년대 이전에 경제학자들은 이 제도를 마지못해 인정했고, 그 후

로도 대기업을 깊은 의혹을 가지고 바라보았다. 기본적인 경제 이론들은 여전히 생산과 유통 과정이 시장이라는 보이 지 않는 손에 의해 통제되는 재래의 소규모 기업에 의해 운 영되고 있거나 혹은 적어도 그래야 한다는 가정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러한 이론에 따르면 완전경쟁은 단일사업단위 기업 사이에서만 존재할 수 있고, 이러한 경쟁은 경제 활동 을 조율하고 경제적 자원들을 배분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 이 된다. 반면 근대적인 복수사업단위 기업은 이들의 관리 적 조율(administrative coordination)로 인해 불완전 경쟁 과 비효율적인 자원 배분을 초래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지 금까지 많은 경제학자들이 근대적 대기업을 일종의 일탈, 그리고 나쁜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이것의 기원을 조사하 고자 애쓴 사람은 매우 드물었다. 경제학자들은 독점력 행 사에 대한 갈망을 근대적 대기업의 출현에 대한 적절한 설 명으로 받아들였다. 역사학자들도 최근까지 근대적 대기업, 그리고 이를 운 영하게 된 경영자 계급의 대두에 대해 체계적인 관심을 거 의 기울이지 않았다. 역사학자들은 제도보다는 개인들에 대 한 연구를 선호해 왔다. 사실 근대적 대기업을 창설한 몇몇 을 제외하면 기업가들조차도 미국사 일반에서 거의 나타나 지는 않지만 말이다. 어쨌든 역사학자들은 기업가들에 끌리

기는 했지만, 이 기업가들이 창조해 낸 새로운 제도, 그것의 운영 방식과 기능, 그리고 창업자가 사라진 후 이 기업들의 경쟁과 성장 과정 등을 면밀하게 들여다보지는 않았다. 대 신 그들은 기업의 창립자가 도둑 귀족(robber baron)이었 는지 아니면 산업가(industrial statesman)였는지, 즉 나쁜 사람인지 좋은 사람인지를 가지고 논쟁했다. 역사학자들은 경제학자들만큼이나 그들이 세운 기업들을 불신했기 때문 에, 대부분 그 기업가들이 나쁜 사람이라는 데 동의했다. 그 러나 이 역사학자들은 미국 경제의 지속적인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새로운 경영자 계급에 대해서는 어떤 방향으 로건 판단을 내린 경우가 드물었다. 최근 몇 년간 경제학자들과 역사학자들은 근대적인 경제 제도에 점차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아돌프 벌(Adolph A. Berle Jr.)과 가디너 민스(Gardiner C. Means)의 선구적 연구에 뒤이어, 에드워드 메이슨(Edward S. Mason), A. D. H. 캐플런(A. D. H. Kaplan), 존 갤브레이스(John K. Galbraith), 올리버 윌리엄슨(Oliver E. Williamson), 윌리 엄 보몰(William J. Baumol), 로빈 매리스(Robin L. Marris), 에디스 펜로즈(Edith T. Penrose), 로버트 애버릿(Robert T. Averitt), 조지프 몬슨(R. Joseph Monsen) 같은 경제학자들 은 근대적 대기업의 운영과 활동을 연구했다. 그러나 이들

은 기업의 역사적 발전을 살피려 하지 않았으며, 그들의 작 업은 아직 경제 이론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기업은 본질적으로 생산의 기본 단위(a unit of production)로 남아 있으며, 기업 이론이 곧 생산 이론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역사학자 성향이 있는 경제학자들이 제도적 변화, 그리 고 그것이 산업 조직에 미친 영향을 막 연구하기 시작했을 뿐이다. 더글러스 노스(Douglass C. North)는 이 분야의 선 구자다.1) 랜스 데이비스(Lance E. Davis)와 공동으로 쓴 책 에서 그는 제도적 변화에 관한 가장 유효한 이론을 제창하 고 미국 경제 성장 분석에 이 이론을 적용했다. 또한 그는 로 버트 토머스(Robert P. Thomas)와 한 연구에서 산업 조직 의 변화가 서양의 대두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설명했다. 노 스와 동료들의 작업은 자신들의 이론을 검증하고 뒷받침하 며 정교하게 하는 데에 광범위한 역사적 사건들을 이용했 다. 하지만 그들은 특정한 경제 제도의 역사적 발전을 깊이 분석하지는 않았다. 미국사 전공자들도 제도 연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로버트 위브(Robert H. Wiebe), 모턴 켈러(Morton Keller),

1) 데이비스와 노스(Davis and North, 1971), 노스와 토머스(North and Thomas, 1973).

새뮤얼 헤이스(Samuel Hays), 리 벤슨(Lee Benson) 등은 정치적, 사회적 그리고 경제적 조직들의 본질이 변화하는 것에 대해 면밀히 연구해 왔다. 그들은 미국사의 최근 연구 를 다룬 한 연구자가 “신제도주의(new institutionalism)”라 고 지칭한 연구 영역을 개척했다.2) 하지만 어떤 역사학자도 한 가지 제도가 처음부터 완전한 성장에 이르는 과정을 추 적하고자 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근대적 대기업, 그리고 그 것에 수반한 경영자 자본주의의 성장을 다루지 않았다. 이 연구는 특정 시기, 그리고 특정 기업 집단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이러한 공백을 메우려는 시도다. 시기적으로는 농업에 기반을 둔 미국 경제가 산업화하고 도시화하는 기간 인 1840년대부터 1920년대까지에 집중했다. 이 시기에 미 국의 생산 및 유통 과정에는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나 는 이 기간 동안 교통, 통신, 금융을 포함한 생산 및 유통의 이러한 변화들을 수행한 기업들이 어떻게 운영되고 조율되 었는지를 분석했다. 그러나 사업단위 혹은 조직의 노동자가 수행했던 업무나 노동자들의 열망 등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 았다. 근대적 대기업이 기존의 정치·사회 제도에 미친 영

2) 하이엄과 크레이거와 길버트(Higham with Kreiger and Gilbert, 1965), 231∼232쪽.

향에 대해서도 평가하고자 하지 않았다. 광범위한 정치적, 인구학적, 그리고 사회적 발전에 대해서는 그들이 기업의 생산 및 유통 과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때에만 다루 었다.

몇 가지 일반 명제 이 책은 역사 연구서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순으로 서술이 진행된다. 사람과 사건, 특정한 진행 과정들, 정책들, 작업 절차들, 그리고 기술 및 시장의 변화 등에 대한 상세한 기술 들로 채워져 있다. 역사가의 기본적인 책임감으로 말미암아 자료들이 직접 의미를 드러내게 했다. 이러한 기록들은 하 나하나가 여기에 제시되는 일반화의 기초를 제공한다. 이 자료들은 가설이나 일반 이론을 검증하거나 입증하기 위해 취사선택되지 않았다. 나는 여기에 제시되는 일반화에 부합 하는 질문이나 관심과는 다른 문제들에 관심이 있는 학자들 에게도 이 책에 수록된 사실들이 유용하기를 바란다. 복잡한 역사적 문제로 들어가기 전에 이 연구의 일차적 관심이 무엇인지 더욱 명확하게 해 주는 일반 명제들을 개 괄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이 명제들은 근대적 대기업의 본

질이 무엇인지, 그리고 시장 메커니즘(market mechanism) 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이 왜 경영이라는 보이는 손으로 대 체되었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나는 서로 연 관된 제도적 변화들의 복잡한 역사를 파악하는 길잡이가 될 수 있도록 이 명제들을 제시한다.

제1명제는 관리적 조율이 시장 메커니즘보다 더 높은 생 산성, 낮은 비용, 높은 이윤을 실현할 수 있을 때 근대적 복 수사업단위 기업이 소규모 재래 기업을 대체했다는 것이다. 이 명제는 근대적 대기업의 정의에서 직접적으로 도출된 다. 근대적 대기업은 이론적으로는 독립된 기업으로 운영될 수 있는 사업단위들을 설립하거나 매입함으로써, 다시 말하 자면 여러 사업단위들에 의해 수행되어 왔거나 수행될 수 있는 활동들 그리고 그들 간에 수행되어 왔거나 수행될 수 있는 거래들을 내부화함으로써 등장하고 성장해 간다. 이러한 내부화는 거대해진 기업에 유리한 점을 많이 가 져다주었다.3) 사업단위 간 거래를 정형화함으로써 거래 비

3) 코즈(Coase, 1937)는 사업단위를 내부화하는 이유에 대해 선구적인 분석 을 제공한다. 그의 작업은 올리버 윌리엄슨(Oliver Williamson), 특히 그의 ≪기업 통제와 경영 행위(Corporate Control and Business Behavior)≫ (1970), 7쪽에서 확장되었다. 기업 내의 조율과 배분에 대한 유용한 연구로

용을 줄일 수 있게 한다. 생산부서와 구매 및 유통부서의 경 영을 연결함으로써 판매 시장 및 원료 공급에 대한 정보 탐 색 비용도 줄였다. 더 중요한 것은 다수의 사업단위들이 하 나의 기업으로 통합된 결과, 한 사업단위에서 다른 단위로 상품 이동이 경영자들에 의해 조율될 수 있게 되었다는 점 이다. 작업의 흐름을 더욱 효과적으로 계획함으로써 시설과 인력을 보다 밀도 있게 활용하게 되었고, 이것이 생산성 향 상과 비용 절감을 가져왔다. 게다가 관리적 조율은 더 확실 한 현금 흐름, 그리고 사용한 서비스에 대한 더 신속한 지불 이 이루어지도록 했다. 이러한 조율로부터 나온 절약분은 정보 비용이나 거래 비용의 절감에서 나온 절약분보다 훨씬 컸다.

제2명제는 여러 사업 조직들의 활동을 단일한 기업 안으 로 내부화하는 것의 이득은 경영 위계(managerial hierarchy) 가 창출된 뒤에야 실현된다는 것이다. 내부화의 이득은 과거에 통상 가격과 시장 메커니즘에 의해 이루어지던 여러 기능들을 경영자 집단이 모여 수행할

는 애로(Arrow, 1964), 라이벤슈타인(Leibenstein, 1966), 앨키언과 뎀세 츠(Alchian and Demsetz, 1972), 리처드슨(Richardson, 1972) 등이 있다.

때에만 획득할 수 있다. 전통적인 단일사업단위 기업들의 활동이 시장 메커니즘에 의해 감독되고 조율되던 데 반해, 근대적 대기업의 생산 및 유통 조직은 중간 관리자가 감독 하고 조율했다. 최고 경영자는 중간 관리자의 업무를 평가 하고 조율하는 것뿐 아니라, 미래의 생산 및 유통을 위한 자 원 배분에서 시장을 대체했다. 경영자들은 이러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새로운 실행 방식과 절차를 고안해 내야 했 는데, 결국에는 이것이 미국의 생산 및 유통을 관리하는 표 준 방식이 되었다. 따라서 경영 위계의 존재는 근대적 대기업을 규정하는 중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경영자들이 없는 복수사업단위 기업은 그저 독립적인 사무소들의 연합에 불 과했다. 이러한 연합체는 기업들 간 경쟁을 조절하거나, 원 자재의 공급원 혹은 재화와 서비스의 판로 확보를 목적으로 형성되었다. 독자적인 개별 사업단위들의 소유ᐨ경영자 (owner and manager)들은 구매, 가격 결정, 생산, 판매 정 책을 공동으로 수행하는 데 동의했다. 만일 경영자들이 없 다면, 이러한 정책들은 경영 수단보다는 법적 수단에 의해 결정되고 집행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연합체들은 정보 비용 이나 거래 비용을 약간 감소시키기도 했지만, 생산성 증진 을 통해 비용을 낮추지는 못했다. 이 연합체는 근대적 대기

업의 핵심 기능인 관리적 조율을 수행하지는 못했다.

제3명제는 경제 활동의 규모가 증가해서 시장 메커니즘 보다 관리적 조율이 더 효율적이고 이익을 많이 내게 되자, 역사상 처음으로 근대적 대기업이 출현했다는 것이다. 경제 활동 규모의 증가는 신기술과 시장 확대로부터 비 롯되었다. 신기술은 재화의 생산과 이동을 전례 없는 수준 으로 끌어올렸다. 시장의 확대는 늘어난 생산을 흡수하는 데 필수적이었다. 따라서 근대적 대기업은 기술 진보와 시 장 확대가 두드러진 영역 혹은 산업 부문에서 출현하고 성 장했으며 번영을 이어 갔다. 반대로 기술이 급속한 생산 증 가를 가져다주지 못했거나 시장이 작고 분화되어 있던 영역 혹은 산업들에서는 관리적 조율이 시장 메커니즘보다 더 이 득을 가져다주지는 못했다. 이런 영역에서는 근대적 대기업 의 등장과 확산이 더뎠다.

제4명제는 일단 경영 위계가 형성되고 관리적 조율이라 는 기능을 훌륭하게 수행하면, 위계 조직 자체가 바로 영속 성, 권력, 그리고 지속적 성장의 원천이 된다는 것이다. 베르너 좀바르트(Werner Sombart)의 표현을 따르자면, 근대적 대기업은 ‘자체적인 생명’을 가지고 있다.4) 재래 기

업은 보통 존속 기간이 짧았다. 이들은 대개 조합(partnership) 형태로 운영되었는데, 조합원(partner)이 사망하거나 은퇴하면 조합은 재결성되거나 해체되었다. 아들이 아버지 의 사업을 물려받으면, 그 아들은 새로운 조합원을 찾았다. 조합원 중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손을 잡고 사업을 시작하 고자 하면 조합은 종종 해산되었다. 반면에 새로운 복수사 업단위 기업을 경영하게 된 경영 위계는 개인 혹은 개인들 이 모여 만든 기업을 넘어서는 영속성을 지니게 되었다. 어 떤 경영자가 사망, 은퇴, 승진 혹은 사직한 경우, 훈련된 다 른 경영자가 그 지위를 이어받도록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이 다. 사람은 오고 간다. 하지만 제도와 시설은 지속된다.

제5명제는 이러한 위계를 지휘하는 봉급 경영자의 업무 가 점점 더 전문화했다는 것이다. 전문적 기술이 요구되는 다른 위계 조직들과 마찬가지 로, 이러한 새로운 기업 관료제 내에서는 경영자들의 선발

4) 좀바르트(Sombart, 1930), III, 200쪽. 기업 내 자원이나 활동의 조율 및 배 분에 관한 글은 매우 드물지만, 근대적 대기업의 관료적 성격, 그리고 기업 경영자의 목적이나 동기에 대해서는 많은 문헌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들 중 어느 것도 경영 위계 그리고 시대에 따른 경영자 기능의 역사적 발전을 다루지는 않았다.

과 승진 등이 혈연이나 돈에 기반을 두기보다는 점점 더 훈 련과 경험, 그리고 성과에 기반을 두게 되었다. 근대적 대기 업의 도래와 함께 기업인은 처음으로 위계적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인생 계획을 인식했다. 기업 내에서 경영 훈련은 점점 더 길어졌고, 또한 체계화되었다. 각기 다른 기업에서 비슷한 업무를 맡아 하는 관리자들은 동일한 종류의 훈련을 받고 동일한 유형의 학교에 다녔다. 그들은 같은 정기 간행 물을 읽고 같은 모임에 가입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일을 하 는 데에서 소규모 재래 기업을 운영하는 소유ᐨ경영자보다 는 변호사, 의사, 목사 등에 더 가까운 방식을 취했다.

제6명제는 복수사업단위 기업의 규모가 커지고 업무 내 용이 다양해지면서, 그리고 그 기업의 경영자 역시 더 전문 화하면서, 기업 경영은 소유와 분리되어 갔다는 것이다. 근대적 대기업의 대두는 소유와 경영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했고, 이를 통해 미국 경제에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 를 가져왔다. 복수사업단위 기업이 등장하기 전에는 소유자 가 경영하고 경영자가 소유했다. 조합들이 주식회사로 전환 되기 시작했을 때조차 회사 주식은 소수의 개인 혹은 가족 의 수중에 있었다. 이러한 주식회사들은 두세 명 정도의 관 리자를 고용하는 단일사업단위 기업에 머물렀다. 따라서 재

래의 자본주의적 기업들은 개인 기업(personal enterprise) 이라고 명명하는 것이 적절하다. 그러나 근대적 대기업은 성립 초기부터 가족 혹은 동업 자들이 맡을 수 있는 수준 이상의 경영자를 필요로 했다. 몇 몇 기업들에서는 창업 기업가와 그의 최측근 동업자들(그리 고 가족들)이 계속해서 주식 대부분을 보유했다. 그들은 경 영자들과 친밀한 인적 관계를 유지했고, 금융 정책, 자원 배 분 그리고 최고 경영자의 고용처럼 경영상의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 많은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 같은 유형의 근대적 대 기업은 기업가 기업(entrepreneurial enterprise) 혹은 가족 기업(family enterprise)이라 부를 수 있고, 이런 종류의 기 업들이 지배적인 경제 부문 혹은 체제는 기업가 자본주의 (entrepreneurial capitalism) 또는 가족 자본주의(family capitalism) 체제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기업의 창설과 성장 과정에서 많은 액수의 외부 자본이 요구될 때는 소유와 경영의 관계가 달랐다. 자금을 제공한 금융기관은 통상 기업 이사회에 비상근 대표를 두었다. 이 러한 기업들에서 봉급 경영자는 해당 기업과 관계한 은행이 나 여타 금융기관의 대표들과 함께 최고 의사 결정을 내려 야 했는데, 자본을 대량으로 확보하거나 사용해야 할 때 특 히 그러했다. 이런 기업들이 지배적인 경제 체제나 경제 영

역은 종종 금융 자본주의(financial capitalism) 경제라고 불 린다. 대부분의 근대적 대기업은 은행이나 소유주 가족들에 좌 우되지 않았다. 소유권은 널리 분산되어 갔다. 주주들은 상 위 의사 결정에 참여할 만한 영향력도, 지식도, 경험도, 심지 어는 의지도 없었다. 봉급 경영자들이 단기적인 운영 활동 을 관리할 뿐 아니라 장기 정책들도 결정했다. 그들이 하급 이나 중간 관리는 물론이고 상급 경영도 지배했다. 이처럼 경영자들이 운영하는 기업들은 경영자 기업(managerial enterprise)이라 명명할 수 있을 것이며, 이러한 기업들이 지배하는 체제는 경영자 자본주의(managerial capitalism) 라 부를 수 있다. 가족 지배 기업이나 금융가 지배 기업들은 규모가 커지 고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경영자 기업으로 변모해 갔다. 기 업 소유자나 금융기관 대표들이 해당 기업 내에서 전업 경 영자가 되지 않는 한, 그들은 최상위 의사 결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할 만한 정보나 시간, 경험을 갖고 있지 못했다. 그들은 이사회의 일원으로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들은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 있고, 상급 경영자를 다른 사 람으로 교체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 을 제시할 만한 위치에 있지는 못했다. 결국 비상근 이사인

기업 소유자나 금융가는 통상의 주주들과 마찬가지 방식으 로 기업을 바라보게 되었다. 이들에게 기업은 소득원일 뿐, 관리해야 할 사업은 아니게 되었다. 필연적으로 그들은 기 업 운영과 장래 기획 업무를 직업 경영자들에게 넘겨주었 다. 미국 경제의 많은 산업 및 영역들에서 경영자 자본주의 는 곧 가족 자본주의와 금융 자본주의를 대체했다.

제7명제는, 직업 경영자(career manager)가 의사 결정에 서 현재의 이윤을 극대화하기보다는 기업의 장기적 안정과 성장에 유리한 정책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봉급 경영자들에게 자신들이 근무하는 기업의 존속은 생 애에 걸친 경력에서 핵심적인 문제다. 그들의 일차 목표는 자신들의 시설로 물품들이 끊이지 않고 흘러들어 옴으로써 그 시설을 계속 활용하는 것이다. 소유자들(즉 주주들)과 비 교할 때, 그들은 자신들이 속한 조직의 장기적 존속을 유지 하기 위해 당장의 배당을 줄이거나 심지어는 포기할 용의가 훨씬 컸다. 그들은 공급원과 판로를 보호하고자 노력했다. 또 기존 설비와 인력을 보다 잘 활용하기 위해 새로운 제품 이나 서비스를 받아들였다. 이 같은 확장은 또다시 더 많은 인력과 장비를 추가하도록 했다. 이윤이 충분히 높을 경우 그들은 이윤을 배당으로 지불하기보다는 기업에 재투자하

는 것을 선호했다. 이 같은 방식으로 조직을 완전히 활용하 려는 경영자들의 의지는 지속적인 성장을 가져오는 원동력 이 되었다.

마지막 제8명제는, 대기업이 성장해 경제의 주요 부문을 지배하게 되자, 그들은 자신들이 속한 부문은 물론이고 경 제 전체의 기본 구조를 변화시켰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새로운 관료적 기업 (bureaucratic enterprise)이 시장을 대신해 재화와 서비스 를 창출하는 제1의 원천이 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상품의 움직임과 관련한 당장의 결정, 또 자원 배분과 관련한 장기 적 결정은 당면한, 그리고 장기적인 시장 수요 예측에 기초 해서 이루어졌다. 새로운 기업들은 원료의 생산으로부터 여 러 단계의 생산 공정을 거쳐 최종 소비자에게 판매되기까지 의 과정을 조율하고 통합하는 것을 시장으로부터 넘겨받았 다. 기업들이 이렇게 한 분야에서는, 생산 및 유통이 소수 대기업에 집중되었다. 처음에는 기술 혁신과 시장 확장이 고속 대용량 처리(high-speed and high-volume throughput)를 가능하게 한 분야 혹은 산업들에서만 이러한 변화가 발생했다. 기술이 복잡해지고 시장이 더 확장되자, 관리적 조율이 경제의 점점 더 많은 부문에서 시장을 통한 조율

(market coordination)을 대체했다. 20세기 중반이 되면, 대 량 생산, 대량 판매, 대량 수송을 수행하는 비교적 소수의 대 기업에 종사하는 봉급 경영자들이 생산과 분배 과정을 거치 는 상품들의 흐름을 조율하며 미국 경제의 주요 분야에서 이루어질 장래의 생산 및 유통을 위해 자원을 배분했다. 미 국 기업의 경영 혁명은 이 시기쯤에 완성되었다.5)

이상의 기본 명제들은 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처음 셋 은 근대적 대기업의 등장, 즉 왜,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출 현했는가를 설명해 준다. 나머지 다섯은 어떤 기업이 창업 했을 경우 어디서, 어떻게, 왜 계속 성장하고 또 지배적 위치 를 지속할 수 있었는가라는, 근대적 대기업의 지속적 성장 에 대한 것이다. 근대적 대기업은 경영 위계가 시장 메커니 즘보다 더 효율적으로 많은 사업단위들을 감시하고 조율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등장했다. 이것은 계속 성장해서 여기에 속한 전문 경영자(professional manager)들을 완전하게 활 용했다. 하지만 이 위계는 기술과 시장 여건으로 인해 관리

5) 버넘(Burnham)의 1941년 저작은 이 현상을 서술하고 분석한 첫 연구였으 며, 이 책의 제7장에서 미국 기업에서 경영 계급에 대한 정의를 제시하고 있 다. 하지만 이 계급 혹은 이들에게 권력을 가져다준 제도의 역사는 서술하 고 있지 않다.

적 조율이 시장을 통한 조율보다 더 이익이 되는 산업이나 영역들에서만 등장하고 확산되었다. 이 영역들이 미국 경제 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고, 또 이 영역들에서는 전문 경영 자들이 가족, 금융가 혹은 그들의 대표자들을 대신해서 의 사 결정을 하게 되었기 때문에, 미국의 근대 자본주의는 경 영자 자본주의가 된 것이다. 물론 실제 역사는 여기에 제시된 일반 명제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근대적 대기업, 그리고 이를 경영했던 새로운 경 영자 계급은 그들이 지배하게 된 부문 혹은 산업들에서조차 도 상이한 방식으로 등장하고, 성장하며, 번영했다. 요구되 는 사항이나 기회가 부서별로 또 산업별로 달랐기 때문에 경영 업무의 구체적 내용 역시 다양했다. 경영자와 소유주 의 관계 역시 그러했다. 일단 경영 위계가 완성된 뒤에 이것 이 발전해 가는 과정은 산업별, 부서별로 상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차이들은 한 가지 주제에 대 한 변주들로 이해할 수 있다. 신기술과 시장의 팽창이 생산 및 유통 과정에서 역사상 유례없는 고속 대용량의 처리를 가능하게 했던 분야와 시기에, 경영이라는 보이는 손은 시 장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을 대체했다. 따라서 근대적 대기 업은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나타난 급속한 기술 혁신, 그리 고 증가하는 소비자 수요에 대한 제도적 반응이었다.

제1부 전통적인 생산 및 유통 과정

역사 서술은 대부분 다루는 사건의 시작 이전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는 제도상의 혁신에 초점을 맞춘 역사 연구가 특히 그렇다. 근대적 대기업의 역사는 이것이 등장하기 전, 즉 관 리적 조율이 시장을 통한 조율보다 생산성이 더 높고 이익 을 더 많이 내게 되기 전에 생산 및 유통이 이루어진 방식을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이 시기에 대한 연구는 근 대적 대기업이 등장하고 지속적으로 성장한 특정한 조건을 파악하는 것이어야 한다. 혁신에 대한 분석은 이것이 발생 한 맥락을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 따라서 이 책은 미국 헌법의 비준이 이루어져서 국민경 제의 법적·정치적 기초가 마련되었던 1790년대부터, 새로 운 에너지원인 석탄이 생산 활동에 광범위하게 사용되기 시 작하고 철도와 전신이 신속하고 규칙적으로 자연조건에 구 애받지 않는 교통과 통신을 공급하기 시작하는 1840년대까 지 이루어진 생산 및 유통의 변화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필자는 통상 상업이라고 여겨지는 유통의 변화를 먼저 살펴 본 뒤, 다음에 생산에 대한 관리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미국 경제는 1790년에서 1840년 사이에 급속하게 성장 했으나, 기업의 규모나 성격 등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인구 가 390만 명에서 1,710만 명으로 증가하고, 사람들은 대륙 을 가로질러 서부로 이동하기 시작했으며, 생산되고 유통되

는 상품의 총량과 이와 관련된 각종 거래의 횟수는 어마어 마하게 증가했다. 하지만 이 과정들과 거래들을 수행하는 사업체들은 여전히 전통적인 단일사업단위 기업들이었다. 이 기업들의 수는 빠르게 증가했고, 애덤 스미스의 예견대 로 이들의 업무 역시 점점 전문화해 갔다. 하지만 이 기업들 은 여전히 소유주들에 의해 경영되었다. 소유주들은 재래의 경영 방식을 이용해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운영했다. 1840 년대 이전의 미국 경영에는 아직 제도상의 혁신이 일어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생산 및 유통 과정이 인력, 축력, 풍력과 같 은 전통적인 에너지원에 의존하는 한, 혁신 압력은 거의 존 재하지 않았다. 이러한 에너지원들은 거대한 경영자 기업의 탄생을 요구할 만큼, 혹은 새로운 기업 형태나 사업 행태의 발전을 요청할 만큼 많은 제품을 생산하거나 거래를 유발하 지 못했다. 상품의 생산 속도나 이동 속도가 낮다는 것은 개 인이 소유하고 경영하는 작은 기업들도 생산과 유통에서 최 대 업무량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1장 전통적인 상업 부문 기업

제도적 전문화와 시장을 통한 조율 헌법 비준 이후 약 반세기 동안 미국 기업은 상업과 생산에서 점차 전문화해 갔다. 특히 이러한 경향은 상업에서 두드러졌 다. 거래가 확장되고, 상업 활동이 전문화될수록 이를 조율 하는 시장 메커니즘에 대한 의존 역시 증대되었다. 식민지 시기 경제 분야에서 지배적 지위를 누렸던 일반 상인 (general merchant)은 1790년대에도 여전히 유통 전반을 담 당했다. 그들은 온갖 종류의 제품을 사고팔았으며, 기본적인 상업 기능을 모두 수행했다. 그들은 수출업자(exporter), 도 매업자, 수입업자(importer), 소매업자, 선주, 은행가이자 보 험업자이기도 했다. 그러나 1840년대가 되면 각 업무들이 서 로 다른 전문화한 기업들에 의해 수행된다. 은행, 보험회사, 운수회사 등이 출현했다. 상인들은 면화, 식료품, 밀, 의류, 철물, 의약품 가운데 한두 가지 상품 계열로 전문화를 시작 했다. 그들은 점차 소매, 도매, 수입 혹은 수출 등과 같이 특 정 기능에 집중했다. 경제의 팽창과 기업의 전문화는 미국 경제에서 활동하는

사업체의 숫자를 크게 증가시켰다. 1790년대에는 동부 항 구에 거주하던 소수의 상인들이 지역 상권을 넘어서는 거래 들 대부분을 담당했다. 그러나 1840년대가 되면 훨씬 다양 한 종류의 상품들이 서로 친분이 없는 수백 수천의 사업가들 을 통해 각종 생산 및 유통 과정을 거쳐 원료 생산자들로부터 최종 소비자들에게 흘러 들어갔다. 사업가들은 수많은 거래 들 각각으로부터 이윤을 얻고자 했고, 이러한 동기만으로도 경제는 성공적으로 작동한 듯하다. 애덤 스미스가 이야기한 바와 같이, 개별 사업가들은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해” 기업을 운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자신도 의도하지 않았던 목적을 이루게 된다 .”1) 애덤 스미스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사 업가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종종 공익을 진정으로 도모할 때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공익을 증진한다.” 경제 팽창은 기업 활동을 전문화했지만, 이 기업들의 내 부 운영이나 조직 혹은 거래 방식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1790년대까지도 미국의 사업가들은 몇 세기 전에 영국, 네 덜란드, 이탈리아 상인들이 고안하고 완성한 상업 관행과 절차를 전적으로 따르고 있었다. 스튜어트 브루키는 1790

1) 애덤 스미스(Adam Smith, 1937), 423쪽.

년대 볼티모어의 상인이었던 올리버 가문에 대한 연구에서 이들과 베니스 상인들의 활동 방식이 ‘놀라울 정도로’ 유사 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15세기 베니스 상인을 보면, 올리버가의 조직 형태, 인사 방식, 자료 및 투자 관리 방법을 거의 즉각 이해할 수 있다.”2) 1790년대의 미국 상인과 1390 년대의 이탈리아 상인은 모두 조합 형태로 기업을 결성했으 며, 모험사업(Adventures) 및 상품 판매(Merchandise) 계정 이 두드러진 특징인 복식부기(double-entry bookkeeping) 를 사용했다. 양자 모두 자기 책임으로 표준화된 수수료율을 받고 위탁 판매를 했고, 화물선 선장과 화물 관리인 (supercargo)을 수탁인으로 계약했다. 또한 당시 미국인들 은 네덜란드인과 영국인들이 완성한 제도를 이용했는데, 시 장 거래를 정식으로 수행하는 것, 더 정교한 신용 거래 수단 을 활용하는 것, 그리고 상법의 개념과 사용 방법 등이 그러 했다.3) 미국인들이 계승한 이 같은 상업 관행들은 1840년대 이

2) 브루키(Bruchey, 1956), 370∼371쪽. 3) 개괄적인 묘사로는 노스와 토머스(North and Thomas, 1973), 53∼55, 134 ∼143, 149∼150, 155∼156쪽을 참조. 보다 상세한 서술로는 드 루버(de Roover, 1963), III, 49∼58쪽, 그리고 판 데르 비(Van der Wee, 1969), 323 ∼324, 328∼368쪽을 참조.

후까지도 충분히 쓸모가 있었다. 미국인들은 급속한 경제 성장과 연방 정부의 지향에 부응하도록 상법을 수정해 나갔 다. 그들은 16세기 영국에서 해외무역과 식민지 진출을 촉 진하기 위해 발전시키고 18세기에는 부두, 급수시설을 비롯 한 공공시설의 운영에 이용했던 주식회사(incorporated stock company)를 점차 활용했다. 비록 정교해졌지만, 12 ∼13세기 지중해 연안에서 일어난 무역의 성장 및 시장경 제의 도래에 부응해 진화했던 상업 자본주의(commercial capitalism)의 관행, 수단 및 제도들은 근본적으로는 변하지 않았다. 사업 운영 방식을 보면 1840년대 이전 미국에서는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상품의 대량 생산과 대 량 판매를 가능하게 하는 신기술과 시장이 도래한 뒤에야 거대한 전환이 이루어졌다. 20세기의 경영자 자본주의를 창 출하는 데 기여했던 이러한 제도 변화는 500년 전 상업 자본 주의의 발흥에 수반되었던 변화들만큼이나 심대하고 혁명 적인 것이었다.

식민지 시기의 일반 상인 1790년에는 일반 상인이 여전히 지배적이었다. 이 시기에

는 가족이 경제 활동의 기본 단위였다. 가족 농장(family farm)은 이러한 형태 중 가장 일반적인 것이었다. 1790년에 는 미국인 393만 명 가운데 겨우 20만 2,000명이 2,500명 이 상이 거주하는 소도시나 마을에 살았으며, 근로자 288만 1,000명 가운데 206만 9,000명이 농장에서 일했다.4) 오직 노예들이 작물을 경작하던 남부에서만 가족 단위 이상으로 작물 생산을 수행했다. 농작물 생산에서는 대농장(plantation)에서만 관리자 계층이 등장했다. 가정 밖에서 생산된 약간의 공산품들은 소규모 장인들에 의한 것이었다. 소도시에서는 장인들이 한두 명 정도의 도 제(apprentice)나 하급 장인(journeyman)들의 도움을 받기 도 했는데, 그들은 대개 가족의 일원처럼 여겨졌다. 절대적 으로는 매우 작았지만 항구에는 다소 큰 규모인 조선소, 밧 줄 제작소, 양초 제조 공장, 럼주 양조장 등이 운영되고 있었 다. 샘 배스 워너(Sam Bass Warner)는 미국혁명 직전의 필 라델피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이 소도시 경제의 핵심 요소는 1인 점포(one-man shop)다. 필라델피아인들 은 대부분 혼자 일했고, 간혹 한두 명에게 도움을 받기도 했

4) 별다른 언급이 없는 한, 이 장의 통계들은 미 통계국(U. S. Bureau of the Census, 1960)에서 나온 것들이다.

다.”5) 토지 외에 다른 자원들은 매우 한정된 범위 내에서만 사 용되었다. 메인 주와 노스캐롤라이나 주는 정규적으로 영국 해군과 서인도 무역상들에게 목재를 공급했지만, 나무를 베 는 일은 여전히 토지 개간의 부산물에 불과했다. 각지의 농 민들이 기둥이나 지붕널, 또는 주택, 교회, 창고 및 기타 건 물에 사용되는 판자, 나아가 돛, 통, 말뚝 등을 만드는 데 사 용되는 목재 대부분을 제공했다. 버지니아 주에 있던 식민 지의 유일한 석탄 광산들도 1년에 1,000톤 이상을 생산하는 곳은 거의 없었다.6) 일부 철을 제외한 모든 금속류는 수입 되었다. 광업이나 공업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사업체는 ‘철 플 랜테이션(iron plantation)’으로, 여기에서는 철광석을 캐고, 나무로 숯을 만들어 철광석을 선철(pig iron)로 만들고, 이 것으로 다시 단철(wrought iron)을 제조했다. 이 철 플랜테 이션들은 농촌에 위치했고, 주로 농한기에 작업이 이루어졌 으며, 한시노예(限時奴隸, indentured servants)나 흑인 노 예들을 활용했기 때문에, 많은 부분이 남부 식민지들의 쌀 혹은 담배 대농장들처럼 운영되었다. 5) 워너(Warner, 1968), 5∼6쪽. 빅터 클라크(Victor S. Clark, 1929), I, 특히 제8, 9장은 여전히 식민지 시기 공업에 대한 가장 유용한 자료다. 6) 미 통계국(1960), 761쪽 및 이븐슨(Eavenson, 1942), 32∼34쪽.

이 생산 단위들의 활동은 항구나 강변 소도시에 거주하 는 상인들과의 거래를 통해 조율되었다. 이 정주 상인 (resident merchant)들은 소규모 기업들의 제품을 유통하거 나 판매했으며, 아울러 그들에게 원료, 도구, 필요물품 등을 공급했다. 이 때문에 이 만능 사업가들이 경제를 지배했 다.7) 그는 온갖 종류의 제품을 국내외에서 팔고 샀으며, 도 매와 소매도 가리지 않았다. 자주 거래하는 고객들을 위해 서는 자기 명의로 상품을 구매했다. 그는 다른 항구 상인들 의 상품을 받아 일정한 수수료를 받고 판매하는 주재원 (correspondent) 혹은 대리인(agent)의 역할도 수행했다. 정주 일반 상인들은 지역의 금융가 역할을 수행했으며, 상품의 유통뿐 아니라 운송도 담당했다. 그들은 수송 중인 곡물이나 공산품들에 대해 단기 자금을 빌려 주었으며, 농 장주나 농민이 개간을 하거나 장인들이 설비를 개선할 수 있도록 장기 대부도 제공했다. 그들은 대개 다른 상인들과 협력해서 이 상품들을 운반하는 데 필요한 선박을 주선했으 며, 종종 동업자들과 함께 이 배들을 소유했다. 그들은 다른

7) 식민지 상인들의 기업 활동은 브루키(Bruchey, 1966), 특히 3, 4부와 브루 키(1965), 55∼63쪽에 잘 서술되어 있다. 아울러 베일린(Bailyn, 1955), 제 7장, 해링턴(Harrington, 1935), 51∼73쪽, 그리고 헤지스(Hedges, 1952) 를 참조.

상인들과 함께 선박과 창고에 대한 보험도 제공했다. 또한 그들은 다른 상인들과 함께 부두도 건설했다. 그들은 자신 들이 거주하는 항구도시에서 혼자 혹은 다른 상인들과 함께 럼주 양조장, 양초 공장, 밧줄 제작소, 조선소 등과 같이, 소 규모 가족 작업장들에서 장인들이 수행하는 것 외의 제조업 시설들을 건설하는 데 필요한 자금 조달을 도왔다. 식민지 상인은 이 모든 활동에 관련된 사람들 대부분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다. 가능한 한 그는 런던, 서인도제도, 그리고 다른 북미 식민지들에서 자신의 가족이 대리인으로 활동하게끔 했다. 만일 그가 가족이나 완벽하게 신뢰할 수 있는 동업자들을 통해 상품의 배송과 매매를 수행하지 못할 경우, 그는 선장이나(배에 탑승한 사업 대리인인) 화물 관리 인이 원거리 거래를 수행하도록 의뢰했다. 후자도 종종 아 들이나 조카였다. 상인은 같은 도시에 사는 다른 정주 상인 들과도 친분이 있었는데, 자신의 개인용 혹은 사업용 물품 을 공급하는 선박 제조업자나 밧줄 제조업자, 또는 지역 장 인들과 알고 지내는 것처럼, 다른 정주 상인들과 서로 배에 대한 보험을 들거나 소유하는 데에 협력했다. 마지막으로, 상인은 자신이 물품을 구매하기도 하고 또 물자를 공급하기 도 하는 어부, 제재업자, 대농장주들, 농민들, 시골 상점주 들(country storekeeper)과도 잘 알고 지냈다.

정주 상인들이 활동하는 항구가 거의 없었던 볼티모어와 찰스턴 사이 지역에는 다소 상이한 양상의 상업이 발달했 다.8) 메릴랜드 주와 버지니아 주, 그리고 더 남쪽에서는 대 농장주들이 영국 상인들에게서 직접 구매했다. 런던에 있는 중매인(factor)들은 담배와 쌀의 판매를 주선할 뿐 아니라 그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의 구매도 수행했다. 대농장주들은 종종 그들이 영국의 중매인들로부터 받는 동일한 서비스를 인근 자영농민들에게 제공했다. 18세기 중엽 담배 재배가 점차 내륙으로 확산되자, 스코틀랜드 상인들은 중매인들과 대리인들을 보내 상설 상점을 세웠는데, 이 상점에서는 고 지대 농민들과 대농장주들을 위해 담배를 매집하고 상품을 판매했다. 더 남쪽에서는 찰스턴이나 서배너 같은 도시들의 정주 상인들이 북부 상인들과 매우 유사한 방식으로 자기 지역의 교역을 관장했다. 정치적 독립과 함께 이러한 개인적 친분에 근거한 가족 기업의 세계는 변화하기 시작했다. 영국과의 단절은 오래된 거래 유형의 붕괴를 가져왔고, 이는 다시 미국 상인들을 발 트 해, 레반트, 중국, 인도, 동인도제도를 포함한 새로운 영

8) 브루키(Bruchey, 1966), 제3부 외에도 랜드(Land, 1967), 그리고 솔토 (Soltow, 1959) 등이 특히 유용하다.

역으로 인도했다. 인구의 지속적 증가, 그리고 서부로는 켄 터키 주와 테네시 주, 북부로는 메인 주, 남서부로는 조지아 주 등으로의 급속한 인구 확산은 항구도시들의 성장이 그러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국내시장을 키웠다. 프랑스 혁명에 따른 전쟁들이 종료된 이후, 혁명 이래로 중단되었던 유럽 및 서인도제도와의 교역이 다시 흥성했다. 하지만 프랑스의 정치 혁명보다 미국 경제에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영국에 서 진행되던 산업혁명(industrial revolution)이었다. 미국 이 하루아침에 주요 원료 공급원이자 새로운 기계로 생산된 직물 제품들의 주요 시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새로 운 교역의 도래는 기업의 전문화, 그리고 기업 활동의 탈인 격화(impersonalization)를 가져온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

상업 부문의 전문화 면화와 방직업(textile)에 호황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1790년 이후 50년 안에 상업 부문 기업의 전문화는 반드시 도래했 을 것이다. 미국 혁명 전에 이미 뉴욕, 필라델피아, 그리고 그 밖의 대도시에서는 상품 유통에서 전문화가 나타나기 시 작했다. 상인(merchant)과 상점 주인(shopkeeper)의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