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문감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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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濟文鑑 경제문감


경제문감서(經濟文鑑序)2) 정총(鄭摠)

≪경제문감≫은 판삼사사(判三司事)3) 봉화백(奉化伯)4) 정공(鄭公)이 지은 것이다. 공은 어려서부터 배우기를 좋 아해 경학(經學)을 연구했으며, 재능을 지니고 도덕을 품고 있었다. 현실을 개탄하여 나라를 경영하고 세상을 제도하 려는 뜻이 있었는데 우리 전하께서 천명을 받아 나라를 만 들어 세움에 공이 의심스런 일들을 해결하고 정책을 결정해 성대하게 공훈을 이룬 신하가 되었다. 문장과 무예를 갖춘 지략으로써 장수와 재상의 소임을 겸해 무릇 국가의 정치에 있어서 옛날 법도를 끌어들이고, 때에 맞게 참작(參酌)해 이익은 일으키고 해악은 제거해 백성이 그 혜택을 입었으니 공이 나라를 경영하고 세상을 제도한 것이 컸도다. 옛사람을 숭상해 논의하면서 역대 이래로 직분 임무의 잘잘못과 인물의 잘남 못남을 널리 가려내어 글로 기록했으 며, 선대 선비들의 학설을 인용하면서 그 사이에 자신의 의

2) 경제문감서: ≪삼봉집(三峯集)≫ 권6과 ≪복재선생집(復齋先生集)≫ 권하, 서(序) 가운데 실려 있다. 3) 판삼사사: 전곡(錢穀)의 출납과 회계를 맡아보던 관청의 수장이다. 4) 봉화백: 경상북도 봉화의 수령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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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을 덧붙였는데 식별하지 못할 정도로 간단하되 소략하지 않고, 상세하되 번잡하지 않았으니 법이 될 만하고 주의할 만했다. 장차 세상의 관직에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소임 이 쉽지 않아서 부지런히 힘쓰고 성실하게 실행하지 않을 수 없음을 알게 하며, 그 직분에 맞게 행해야 하는 까닭을 생각하게 했으니 세상에 도움을 준 것 또한 컸도다. 내가 이 책을 보니 재상의 업무를 첫머리에 둔 것은 재상 의 소임이 도덕을 의논하고 나라를 경영하며, 음양의 여러 방면을 고르게 잘 다스리고 관계함이 매우 중요해 다른 관 직에 비할 바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옛날에 그 직분에 맞는 사람이 몇이나 되었겠는가? 삼대(三代)5) 이전에는 기( 夔 ) 6)· 고요( 皐陶) 7)· 후직( 后稷) 8)· 설( 契) 9)· 이윤( 伊 尹)10)·부열(傅說)11)·주공(周公)·소공(召公)을 일컬을

수 있으며, 한나라의 소하(蕭何)·조참(曹參)·병길(丙 吉)·위상(魏相)과 당나라의 방현령(房玄齡)·두여회(杜 如晦)·요숭(姚崇)·송경(宋璟), 송나라의 한기(韓琦)·

5) 삼대: 하(夏)·은(殷)·주(周)를 말한다. 6) 기: 순(舜)임금 때 음악을 관장하던 신하다. 7) 고요: 순임금 때 법률을 제정한 신하다. 8) 후직: 순임금 때 농사를 맡아보던 신하다. 9) 설: 은나라의 조상으로 순임금 때 사도(司徒)가 되었고, 우(禹)임금을 도와 치수(治水)에 공적을 쌓았다. 10) 이윤: 은나라 탕(湯)임금 때의 현명한 재상이다. 11) 부열: 은나라 고종 무정(武丁)의 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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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필(富弼)·왕증(王曾)· 범중엄( 范仲淹)· 사마광( 司馬 光) 등 여러 공을 일컬을 수 있을 뿐이다. 아! 재상의 업무가

또한 어렵지 아니한가? 그러므로 임금은 마땅히 재상 뽑는 일을 가장 우선으로 삼아야 하고, 재상이 되는 사람도 마땅 히 자신이 직분에 맞는지 생각해야 옳은 것이다. 대간(臺諫)12)을 그다음에 둔 것은 대관(臺官)13)이 풍속 의 사악함을 규찰해 금지하고, 간관(諫官)14)은 임금의 잘못 을 논해 아뢰니 실로 국가의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데 이 관직에 있는 사람들이 어찌 그저 무턱대고 순종하며 한가롭고 여유롭게 지내면서 관직을 병들게 할 수 있겠는가? 장차 또한 부서(府署)와 관아(官衙)의 병사는 무예를 단 련하고 힘을 기르는 일에 종사하면서 나라에 일이 없으면 대궐 안에서 숙위(宿衛)해 비상시에 일어날 환란을 대비하 고, 나라에 일이 있으면 외적을 꺾어 무찔러 위급한 때에 일 어나는 난리를 평정해야 하니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다. 감사(監司)15)의 임무는 관직을 맑고 깨끗하게 하는 데

12) 대간: 사헌부(司憲府)와 사간원(司諫院)의 벼슬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 다. 사헌부는 정치의 잘잘못을 가리고 백성의 억울함을 다스리던 관청이고, 사간원은 임금에게 간언(諫言)하는 일을 맡아보던 관청이다. 13) 대관: 조선 시대 사헌부의 대사헌(大司憲)부터 지평(持平)까지의 관직을 이르던 말이다. 14) 간관: 사간원·사헌부의 관직 이름이다. 간신(諫臣) 또는 언관(言官)이 라고도 한다. 15) 감사: 관찰사(觀察使)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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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억세고 교활한 관리를 징계하며, 원통하고 억울한 사 정을 다스려 백성의 감춰진 고통을 구휼하며, 현명하고 재 능 있는 선비들을 천거하는 것이니 삼가지 않을 수 없다. 주목·군수·현령은 임금과 더불어 나라를 함께 다스리 는 사람이다. 따라서 그 사람이 현명하면 백성들이 이복(利 福)을 받고, 진실로 현명하지 못하면 백성들이 재앙을 받으

니 사람을 선택하지 않고 관직을 제수하는 것이 옳겠는가? 이러한 사람들은 또한 서로 이어져서 그 다음에 있는 것이 다. 그러하니 부서와 관아의 병사가 되거나 감사가 되거나 주목·군수·수령이 된 사람이 그 직분에 맞게 행할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라를 다스리는 요체는 이러한 몇 가지에 지나지 않으 니, 진실로 각자가 그 직분에 맞게 행할 수 있다면 비록 온 천하라도 다스리기가 어렵지 않거늘 하물며 하나의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어렵겠는가? 여기서 공의 학문에 연원(淵源) 이 있으며, 공의 재능이 적합하게 쓰이게 되었음을 볼 수 있다. 손님 가운데 나에게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대저 옛사람의 저서라는 것은 좋은 뜻이 들어 있으나 일 을 실제로 수행한 사람이 쓴 것을 볼 수 없었습니다. 정공 (鄭公)은 성스럽고 명철한 임금을 만나서 직위가 재상이 되 었으니 좋은 때를 만나지 못했다고 말할 수 없고, 바람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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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 행해지지 못했다고 말할 수 없는데 어찌 책을 지었습 니까?” 내가 말했다. “공의 마음은 반드시 요순임금처럼 백성을 다스리고 난 뒤에 그만두는 것이었습니다. 도를 행함에 한 터럭만큼이 라도 다하지 못하면 그 가운데 진실로 자기 뜻에 만족하지 못하는 면이 있었으니, 이것이 바로 공이 책을 지은 뜻일 겁 니다.” 창룡(蒼龍) 을해년 후 9월 하한(下澣)16)에 순충좌명(純 忠佐命) 개국공신 자헌(資憲)대부 예문춘추관 태학사 동판

도평의사사(同判都評議使司) 사세자(事世子) 우빈객(右 賓客) 서원군(西原君) 정총(鄭摠)17)이 서한다.

16) 1395년 음력 9월 30일, 태조 4년의 일이다. 17) 정총(鄭摠, 1358∼1397): 호는 복재(復齋). 본관은 청주. 시호는 문민 (文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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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상(宰相) [안(按)]18) 구본에는 ‘재상(宰相)’ 두 글자가 빠진 것을 보충했다.

1. 재상의 명칭 당우(唐虞) 시대에는 백규(百揆)라 했고, 하(夏)나라 시대 에도 그대로 했다. 백규는 온갖 정치를 헤아리는 관직이다.

(1) 당(唐)19) 요(堯)임금이 순(舜)을 백규로 정했다. ≪서경(書經)≫에서 말했다. ‘삼가 오전(五典)20)을 아름답게 하시니 오전을 잘 따르게 되었으며, 백규에 들이시니 백규가 질서를 잡으며, 사방의

18) 안: 권근이 교정한 ‘근안(近按)’과 달리 ‘안은 ’ 세조 11년(1465)에 정도전의 증손 정문형(鄭文炯)이 간행한 ≪삼봉집≫을 정조 15년(1791)에 다시 간행 하면서 교정한 내용이다. 19) 당(唐): 제곡(帝嚳)의 아들인 요임금은 성이 이기(伊祁·伊耆), 이름이 방훈(放勳)으로 처음에 도(陶)에 봉해졌다가 다시 당에 봉해져 도당씨(陶唐 氏)라고 불렀다. 아들 단주(丹朱)가 현명하지 못해 제위를 순(舜)에게 물려주 었다. 20) 오전: 오륜(五倫)·오상(五常)·오교(五敎)를 말한다. 곧 부자유친(父 子有親)·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유별( 夫婦有別)· 장유유서( 長幼有 序)·붕우유신(朋友有信)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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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에서 제후들을 맞으시니 사방의 문이 화목하게 되었으며, 대록(大麓)21)에 들이시니 사나운 바람과 우레와 많은 비에 도 미혹되지 않으셨다.’22) [근안] 오전을 삼가 지키게 하는 것은 사도(司徒)23)의 직분이고, 사방의 문 에서 빈례(賓禮)를 행하는 것은 사악(四岳)24)의 직분이며, 큰 산기 슭의 숲에 들어가 산림을 다스리는 것은 사공(司空)25)의 직분이다. 백규는 통솔하지 않는 것이 없고, 사도 이하 모두 그에 속하는 것이 다. 그러므로 순(舜)으로 하여금 모두 겸하게 한 것이다.

(2) 우(虞)26) 순임금이 우(禹)를 백규로 정했다. 순임금이 말했다.

21) 대록: 총령(總領). 천자의 일을 통틀어서 기록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큰 산 기슭의 숲에 들어가 산림을 다스리는 것을 의미한다. 22) ≪서경≫, 우서(虞書), <순전(舜典)>. ‘愼徽五典 五典克從 納于百揆 百揆時敍 賓于四門 四門穆穆 納于大麓 烈風雷雨 弗迷.’ 23) 사도: 주나라 때 육경(六卿) 가운데 하나로 지관(地官) 대사도(大司徒) 다. 국가의 토지와 인민의 교화를 관장했다. 조선 시대 호조판서(戶曹判書) 에 해당한다.

24) 사악: 천자와 더불어 큰일을 의논했던 관직이다. ‘四嶽’으로도 쓴다. 공 공(共工)의 종손이 사악이 되어 사방의 제후를 관장하고 우의 치수(治水)를 도왔다. 25) 사공: 주나라 때 육경 가운데 하나로 동관(冬官) 대사공(大司空)이다. 공 정(工程)을 관장했다. 조선 시대 공조판서(工曹判書)에 해당한다. 26) 우(虞): 순임금은 성이 요(姚), 이름이 중화(重華)로서 이전의 나라가 우 에 봉해졌던 까닭에 우순(虞舜)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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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사악이여! 힘껏 일해 임금의 일을 빛나게 할 수 있겠 소? 백규를 정해서 정사에 도움을 받아 나라를 다스리고자 하오.” 모든 신하가 사뢰었다. “백우(伯禹)를 사공으로 삼으십시오.” 순임금이 말했다. “알았소. 아, 우(禹)여. 그대는 물과 흙을 고르게 하는 일에 오직 힘써 주시오.” [근안] 물과 흙을 고르게 하는 것은 사공의 직분이다. 우로 하여금 거듭 사 공으로 삼고 백규를 겸하게 했으니, 순임금이 백규로 하여금 대록의 일을 받아들이게 한 것과 같다. 여씨(呂氏)가 말했다. “순임금은 요임금의 지극한 정치를 이어받았는데 어찌 다시 마음과 힘을 다해 재빠르게 하고 몹시 흥분해 기운을 고조시켰던가? 대개 천하의 정치는 나아가지 않으면 물러서니 반드시 분발해 일어나는 마음을 항상 보존해야 날마다 새로워져 다함이 없는 정치가 있는 것 이다. 비록 지극한 정치가 이루어진 시대에 있더라도 이 뜻을 잊어서 는 안 된다.” 진씨(陳氏)가 말했다. “순임금이 어찌 우(禹)를 몰랐겠는가? 여러 사람에게 물었던 것은 여 럿이 의논하게 하고서 자신은 간여하지 않았던 것이다.”

(3) 하(夏) ≪서경≫에서 말했다. ‘오직 이윤(伊尹)이 몸소 먼저 서쪽에 도읍했던 하나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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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펴보았는데, 스스로 충성과 신의로써 끝을 맺었더니 재 상들도 오직 끝을 잘 맺었습니다.’27) 충신(忠信)을 ‘주(周)’라고 한다.

(4) 상(商) 탕(湯)임금이 처음으로 좌우에 두 재상을 두었으니 이윤 이 우상(右相)이 되고, 중훼(仲虺)가 좌상(左相)이 되었다. 태갑 때에는 이윤이 아형(阿衡)28)이 되었다. 고종(高宗)이 부열(傅說)을 얻어 이윽고 재상으로 세워놓고 주위에 두며 말했다. “아침저녁으로 가르침을 주어 나의 덕을 도우시오.”29)

(5) 주(周) 주공(周公)이 총재(冢宰)의 지위에 있으면서 모든 관직을 거느렸다. 또 주공은 왕사(王師)가 되고, 소공(召公)은 보 좌(保佐)가 되어 성왕을 도왔다. [근안] 재상 업무의 큰일은 임금의 마음을 바르게 함을 근본으로 삼는 것이

27) ≪서경≫, 상서(商書), <태갑(太甲) 상>. “惟尹躬先見于西邑夏 自周 有終 相亦有終.” ≪서경≫에서는 ‘주(周)’를 ‘임금[君]’의 뜻으로 풀이했으나 여기서는 정도전의 주석에 따른다. 28) 아형: 이윤이 처음 지낸 벼슬로, 재상을 말한다. ‘아(阿)’는 의뢰한다는 뜻 이고, ‘형(衡)’은 형평·공정을 이룬다는 뜻이다. 29) ≪서경≫, 상서, <열명(說命) 상>. “朝夕納誨 以輔台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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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요순임금의 당(唐)·우(虞) 시대에는 성인(聖人)이 성군(聖君) 을 보필해 ‘아! 아!’30) 하며 정치가 하늘을 감동시켰으니 만세에 이르 도록 이보다 더할 것이 없었다. 이윤과 부열이 은나라의 재상이 되 고, 주공과 소공이 주나라의 재상이 된 것은 또한 모두 정성스럽게 나아가서 임금을 경계했기 때문이니, 아름다운 계책과 아름다운 계 략이 서책에 넘쳐서 만세에 법도가 되었다. 임금을 사랑하는 정성과 임금을 바르게 하는 도리가 이와 같이 지극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태 갑(太甲)과 성왕(成王)의 곤지(困知)31)로도 마침내 좋은 임금이 되 어 지극한 정치를 일으켰으니, 이른바 ‘오직 대인(大人)이라야 임금 마음의 그릇됨을 바르게 할 수 있다’32)고 한 것이 이것이다. 후세에 임금과 재상이 된 사람이 어찌 거울로 삼지 않을 수 있으며, 권면하 지 않을 수 있겠는가?

30) ≪서경≫, 우서(虞書)에 나오는 감탄사로, 요순임금의 재상들이 임금의 정치에 감탄하고 경계하는 어조로 탄식한 말이다. ‘도유(都兪)’는 잘한 점에 감탄한 것이고, ‘우불(吁咈)’은 경계의 어조로 탄식한 것이다. 31) ≪중용≫, 제20장. ‘혹은 나면서부터 알며, 혹은 배워서 알며, 혹은 막혔다 가 알지만 그 앎에 미쳐서는 한 가지다(或生而知之 或學而知之 或困而知之 及其知之 一也).’ 이는 ≪논어≫, <계씨(季氏)>의 ‘나면서부터 아는 자는 으뜸이고, 배워서 아는 자는 다음이고, 막혀서 배우는 자는 또 그다음이니, 막 혔는데도 배우지 않으면 백성이 이에 하류로 여긴다(生而知之者 上也 學而 知之者 次也 困而學之者 又其次也 困而不學 民斯爲下矣)’에 근거하는 말 이다. 32) ≪맹자≫, <이루(離婁) 상>. “惟大人 爲能格君心之非 君仁莫不仁 君義莫不義 君正莫不正 一正君 而國定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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