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애보_맛보기

Page 1

순애보



바다에서 생긴 일

1 “누군지 아라 맛치세요.” 물결치는 해변에 이-젤(畵架)를 세워 노코 캔스에 그 림을 그리기에 열중하는 최문선(崔文善)의 뒤에서 갑자기 소리 업시 이러케 무언의 질문을 던지는 이가 잇다. “…?” 문선은 반사적으로 억개를 움추리면서 그림을 그리든 붓 을 왼손에 옴겨 쥐고 바른손으로 자기의 눈을 가리운 사람 의 손을 만져 본다. 그것은 부드러운 여자의 손이다. ‘누굴가?’ 하고 속으로 말하는 문선은 “인순 씨가 아니신가요?” 하고 뭇는다. “노-”(아니요) 문선의 두 눈을 잡은 사람은 목소리를 변하여서 대답한다. “멀 인순 씬데… 바로 맛첫지요?”

3


문선의 이 말에 “노-” 하고 그는 다시 대답한다. “암만 부인해도 인순 씬 걸 어케 해요?” “노-” 여전히 부인한다. “그럼 인순 씨 대신에 거짓말하는 인순 씨가 새로 탄생해 서 오신 게로군.” 문선이 놀리는 말에 “아이 선생님두!” 하고 그제야 인순은 문선의 눈에서 손을 다. 자주빗 해수욕복을 입은 인순은 탄력 잇는 육체의 곡선 을 길게 폭로식히면서 문선이를 보고 웃음을 지으며 이러케 뭇는다. “웨 저는 그만한 것도 닷지 못헌 둔감한 바보로 아십니 까?” 문선은 빙그레 웃으면서 다시 놀리는 말을 던진다. “원 선생님두! 작구 놀리시기만 하면 전 실어요!” 인순은 쌜죽해서 도라선다. “하아! 노하시는 모양이로군요.” “누가 노한대요?”

4


“그럼 연극을 노십니.” “아이  놀리시네! 난 몰라요.” 하고 인순은 어린아이와도 갓치 몸을 좌우로 흔들면서 웃는 시선으로 문선을 흘겨본다. “실례하엿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상쾌하게 조화된 아름다운 용모에 서늘하게 빗나는 눈을 가진 문선은 그 얼굴에 웃음을 날리면서 이러케 용서를 구 한다. “제가 도리어 용서를 구하여야겟서요. 그림을 그리시는 데 이러케 방해를 처드려서….” “원 천만에요.” 두 사람은 다시 서로 우슴을 보여 준다. 침착하고 청염한1) 문선이가 오늘은 이러케 전에 업시 자 기를 놀려 주기도 하고 여러 말로 대해 주는 것이 인순에겐 헤아릴 수 업는 즐거움이엿섯다. 인순이가 문선이를 알기는 지금으로부터 이주일 전인 멀 지 안흔 엿다. 인순이가 보모 일을 보는 경성 K유치원에 서 방학을 하자 인순은 개성 자기 집에 가서 몃칠을 유하고 는 이내 원산 송도원(松都園) 해수욕장으로 동무를 라 피

1) 청염(淸艶)한: 맑고 품위 있게 아리따운.

5


서를 오게 되엿다. 어느 날 인순은 혼자 -트를 타고 노 저어 가다가 - 트 압흐로 헤염치여 지나가는 한 여학생을 피하노라고 - 트의 머리를 갑재기 돌린 것이 어 남자가 탄 -트에 충 돌되여서 두 -트가 전복되자 그 두 -트에 탓든 두 사 람은 그만 물속에 지고 말엇다.

2 몃 시간이 지낫는지는 알 수 업스나 인순이가 제 의식을 회 복하엿슬 에는 자기 몸이 어 병실 침대 우에 누워 잇는 것을 발견하고 저윽히 놀라면서 머리를 들려고 하엿다. 그  인순이로 하여금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인순의 시야(視野) 에 한 청년 남자가 나타난 것이다. 상쾌하게 맑은 이마에 아름다운 용모를 가진 이 청년은 미분명하나마 아 자기 -트의 충돌을 밧어서 자기 - 트와 함 전복되든 그 -트에 탓든 남자임에 틀림이 업 서 보인다. 그런가 하고 다시 보면 그 남자 갓지 안키도 하여 보인다. “좀 어십니.”

6


침대 겻헤 노힌 의자에 안저서 인순을 직히고 잇는 그 청 년은 인순이가 눈을 는 것을 보고 기하는 표정을 얼굴 에 지으면서 이러케 뭇는다. “감사합니다….” 침상에서 몸을 일으키며 인순은 이러케 대답을 대신하여 인사를 하엿스나 이 이상 다른 말을 할 것을 잇고 다만 - 트가 전복되든 전말과 지금지의 경과를 알고 십흔 생각이 몬저 잇섯다. 더욱히 지금 자기 엽헤 안즌 청년이 자기와 함 물에  지든 그 남자인지? 만일 그 남자가 아니라면 그는 어케 되 엿나? 살엇는가? 죽엇는가? 인순의 머리에서는 궁굼증이 급 속도로 일기 시작하엿다. 그리고 자기의 부주의로 인하야 일 어난 참변을 생각하고 자기 몸을 습격하는 전율지 느겻다. 그 청년은 침상에서 일어나는 인순이더러 “일어나지 마시고 그대로 누워 게서요.” 하고 도로 눕기를 권한다. “네 괜찬어요.” “머 예의를 차리지 마시고 그대로 누어 게서요. 일어나시 면 몸에 해로울 것입니다.” “…” 인순은 감사하다는 을 목례(目禮)로 표한다. 그리고 자

7


기 몸을 지지할 힘이 자기 몸에 업슴을 닷고 하는 수 업시 “그러면 실례합니다.” 하고 자리에 다시 눕는다. “네 어서 누우세요.” 이윽고 인순은 “예가 어데에요?” 하고 청년더러 뭇는다. “도립병원입니다.” “예가 도립병원이에요?” “네.” “미안하지만 지금 몃 십니.” 청년은 시계를 집어내여 보더니 “지금 네시 십삼분입니다.” 하고 대답한다. “여러 말을 뭇게 되어 죄송합니다만 용서하시고 들어주 세요.” “네 좃습니다. 어서 물으세요.” “오늘이 칠월 십일일이지요?” “네 그럿습니다.” “그런데 제가 오늘 이 병원에 수용되엿군요?” “네.”

8


“어케 제가 이곳으로 오게 되엿서요?” “기억나시지 안습니.” “네.” “아 물에 지시든 일도?” “그 일은 기억납니다. 제가 탓든 트가 어 분이 탄  -트를 충돌식히면서 함 전복되든 일지는….” 인순은 말을 잠간 엇다가 “그런데 그분은 어케 되엿습니?” 하고 다시 뭇는다. “누구 말이신가요?” “아 제 -트에 충돌을 바다서 저와 함 물에 진 그분 말이얘요.” 인순은 이러케 물으면서 ‘그분이 바로 당신이 아닙니?’ 하는 의미의 시선을 청년에게 던진다. ‘만일 이 청년이 물에 지든 남자가 아니라면. 그보다도 그가 물에 진 채 생명을 일코 말엇다면…?’ 이러케 생각하는 인순은 자기의 잘못이 한 생명을 무참 히 죽이고 말지나 안엇나 하는 공포와 전율이 등 에 식은 을 도더나게 함을 달엇다.

9


Turn static files into dynamic content formats.

Create a flipbook
Issuu converts static files into: digital portfolios, online yearbooks, online catalogs, digital photo albums and more. Sign up and create your flip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