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자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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郭子 곽자


한수가 향을 훔치다

가공려[賈公閭: 가충(賈充)]1의 딸이 한수(韓壽)2 를 좋아했 는데, 하녀들에게 그를 아는지 물어보았더니 한 하녀가 말 했다. “그분은 옛 주인이셨습니다.” 그녀는 사모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는데, 하녀가 나중에 한수의 집으로 가서 그러한 사정을 갖추어 말했다. 한수가 곧 하녀에게 자신의 뜻을 전하게 했더니, 그녀는 크게 기뻐 했고 마침내 그와 사통했다. 일설에는 한수와 사통한 사람은 진건(陳騫)의 딸이라고 한다. 진건이 한수를 속관으로 삼았는데, 회견할 때마다 한 수에게서 진기한 향기가 풍겼다. 그 향은 외국에서 바친 것 으로 한번 몸에 차면 며칠 동안 향기가 사라지지 않는 것이 었다. 진건은 곰곰이 생각했다. ‘무제[武帝: 사마염(司馬炎)]께서 오직 나와 가충(賈充) 에게만 이 향을 하사하셨으므로 다른 집에는 이 향이 있을 리가 없다.’ 혹시 한수와 자기 딸이 사통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하여 딸 신변의 하녀에게 캐물었더니 하녀가 사실대로 대답했다. 27


진건은 즉시 딸을 한수에게 시집보냈다. 그런데 결혼하기 전에 그녀가 죽는 바람에 한수는 가씨[賈氏: 가오(賈午)]3 를 부인으로 맞이했기 때문에, 세간에서는 이로 인해 한수와 밀통한 사람이 가충의 딸이라고 전해졌다.

韓壽偸香 賈公閭女悅韓壽, 問婢識否, 一婢云: “是其故主.” 女內懷存 想, 婢後往壽家說如此. 壽乃令婢通己意, 女大喜, 遂與通. 與韓壽通者乃是陳騫女. 騫以韓壽爲掾, 每會, 聞壽有異香 氣, 是外國所貢, 一著衣, 歷日不歇. 騫計: ‘武帝唯賜己及 賈充, 他家理無此香.’ 嫌壽與己女通, 考問左右, 婢具以實 對, 騫卽以女妻壽. 未婚而女亡, 壽因娶賈氏, 故世因傳賈 充女. [≪世說≫<惑溺>篇注, ≪御覽≫五百·九百八十 一] 1.

가공려(賈公閭): 가충(賈充). 자는 공려. 사마씨(司馬氏)가 위나라를

찬탈하는밀모(密謀)에참여했다. 진나라초에사공(司空)·시중(侍中)· 상서령(尙書令)을 역임했다. 딸 가남풍(賈南風)은 혜제(惠帝)의 비(妃) 가 되었다. 2.

한수(韓壽): 자는 덕진(德眞). 품행이 고상했다. 증조부 한기(韓曁)가

위(魏)나라의 사도(司徒)를 지냈다. 3.

가씨(賈氏): 서진 혜제(惠帝) 가황후(賈皇后)의 여동생 가오(賈午)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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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여남이 스스로 혼처를 구하다

왕여남[王汝南: 왕담(王湛)]1은 젊었을 때 혼처가 없었는데 스스로 학보(郝普)2 의 딸3 을 구해달라고 했다. 부친 왕사공 [王司空: 왕창(王昶)]4 은 그가 어리석기 때문에 틀림없이 결 혼할 상대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의 뜻에 따라5 곧 허 락했다.

王汝南自求婚處 王汝南少無婚處, 自求郝普女.(郝氏, 襄城人. 父匡, 字仲時, 一名普, 洛陽太守.) 司空以爲癡,(司空, 昶也) 會無往婚對, 其音樂, 便許之. [≪御覽≫四百九十] 1.

왕여남(王汝南): 왕담(王湛). 자는 처충(處沖). 일찍이 여남 태수(汝

南太守)를 지냈기에 그렇게 불렀다. 2.

학보(郝普): 자는 도광(道匡). 일찍이 낙양 태수(洛陽太守)를 지냈다.

3.

학보의 딸: 왕담의 부인으로 왕승(王承)을 낳았다. 학씨는 가문이 매우

비천하여 혼인을 맺을 만한 상대가 아니었지만, 왕담이 일찍이 그녀를 보 고 곧바로 혼인하기를 구했다. 과연 그녀는 명랑하고 고매하여 어머니의 모범으로서 일족 가운데 으뜸이었다. 왕담의 통찰력 높은 식견과 여유 있 는 마음이 모두 이와 같았다. 4.

왕사공(王司空): 왕창(王昶). 자는 문서(文舒). 일찍이 사공(司空)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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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그의 뜻에 따라: 원문은 ‘기음악(其音樂)’. 이대로는 의미가 통하지 않

는다. ≪세설신어≫<현원(賢媛)>편에는 ‘임기의(任其意)’라 되어 있 는데, 문맥상 타당하므로 이것에 따라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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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동해가 처음 강남으로 건너가다

왕동해[王東海: 왕승(王承)]1가 처음 강남으로 건너와서 낭 야산(琅邪山)에 올라 탄식했다. “나는 여태껏 근심이 없었는데 오늘만은 근심스러워지 는구나!” 사마태부[司馬太傅: 사마월(司馬越)]2 가 말했다. “그땐 몸과 혼이 모두 나간 듯했었지.”

王東海初過江 王東海初過江,(王承, 字安期, 東海內史) 登琅邪山, 歎曰: “我由來不愁, 今日直欲愁!” 太傅云: “當爾時, 形神俱往.” [≪類聚≫三十五, ≪御覽≫四百六十九] 1.

왕동해(王東海): 왕승(王承). 자는 안기(安期). 담백하여 욕심이 적었

고 자신을 치켜세움이 없었다. 일찍이 동해 내사(東海內史)를 지냈는데, 정사를 처리함이 청정하여 관리나 백성들이 그를 흠모했다. 난리를 피하 여 장강을 건넜는데, 그때는 길에 도적이 있어서 사람들이 걱정하고 두려 워했지만, 왕승은 곤경을 당할 때마다 태연스럽게 대처했다. 원제[元帝: 사마예(司馬叡)]가 진동대장군(鎭東大將軍)이 되었을 때 그를 불러 종 사중랑(從事中郞)으로 삼았다. 2.

사마태부(司馬太傅): 서진 동해왕(東海王) 사마월(司馬越). 자는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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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元超)이며 팔왕(八王) 가운데 하나. 팔왕의 난 때 태부가 되어 태재 (太宰) 하간왕(河間王) 사마옹(司馬顒)과 함께 정사를 보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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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안기가 동해 태수가 되다

왕안기[王安期: 왕승(王承)]가 동해 태수(東海太守)로 있을 때, 어떤 말단 관리가 연못 속의 물고기를 훔쳤다. 주부(主 簿)가 그에게 죄를 묻자 왕안기가 말했다.

“뭇 백성과 함께 공유함이 마땅하니1 물고기가 무에 그리 아깝단 말인가?”

王安期爲東海太守 王安期爲東海太守, 小吏盜池中魚, 綱紀推之, 王曰: “與衆 共之, 魚何足吝?” [≪御覽≫四百九十九] 1.

뭇 백성과 함께 공유함이 마땅하니: 원문은 ‘여중공지(與衆共之)’. 주

(周)나라 문왕(文王)은 사방 70리나 되는 동산을 백성들과 함께했기 때 문에 백성들은 그것도 작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맹자(孟子)≫<양혜 왕하(梁惠王下)>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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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안인과 하후담이 미려한 용모를 지니다

반안인[潘安仁: 반악(潘岳)]1과 하후담(夏侯湛)2 은 모두 미 려한 용모를 지녔는데, 한번은 함께 걸어갔더니 당시 사람 들이 그들을 ‘딸린 옥[連璧]’3 이라고 불렀다.

潘安仁·夏侯湛有美容貌 潘安仁·夏侯湛並有美容貌, 嘗同行, 人謂之“連璧”. [≪初 學記≫十九, ≪御覽≫三百八十] 1.

반안인(潘安仁): 반악(潘岳). 자는 안인. 진나라 초의 저명한 문학자.

일찍부터 재능이 빼어나 이름이 알려졌으며, 용모가 매우 준수했다. 2.

하후담(夏侯湛): 자는 효약(孝若). 위(魏)나라 정서장군(征西將軍) 하

후연(夏侯淵)의 증손. 재능이 풍부하고 문장이 뛰어났으며, 명성이 반악 에 버금갔다. 중서시랑(中書侍郞)을 역임했다. 3.

딸린 옥: 한 쌍의 옥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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