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ind spots, 이기적윤리_맛보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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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자신의 생각만큼 윤리적이지 못한 이유

우리는 1장에서 독자들이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자신의 윤리성을 평가 해 볼 것을 주문했다. 저자는 협상 강의를 수강 중인 임원들을 대상으로 비슷한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강의실 동료들과 비교해 자신이 덜 정직한 지, 비슷한지, 아니면 더 정직한지를 묻는 질문이었다. 그 결과, 여러분 이 짐작하는 대로 자신이 동료들보다 더욱 정직하다고 믿는 사람들의 비율이 월등히 높았다. 이번에는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최근의 설문조사를 살펴 보자.1 응답자 중 약 3분의 2의 학생들이 과거 시험 시간에 부정행위를 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3분의 1이 넘는 수가 인터넷에서 발견한 내용 을 표절한 적이 있다고 인정했으며, 80퍼센트 넘는 응답자가 부모님에 게 큰 거짓말을 한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응답 학생들의 93퍼센 트가 자신의 윤리 성향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행동윤리학 연구가 예견하는 것처럼, 윤리적인 문제로 최근에 크게 화제를 모은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은 자신에게 혐의를 제기한 사람들보 다 자신이 더 윤리적이라고 주장한다. 엔론(Enron)의 최고경영자 케네 스 레이(Kenneth Lay)는 재임 기간 중 전혀 잘못된 일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빌 클린턴(Bill Clinton) 전 미국대통령은 국민들에게 모니카 르윈스키(Monica Lewinsky)와 성관계를 한 적이 없다는, 어쩌면 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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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에 대한 합리화일지도 모르는 주장을 했다. 로드 블라고예비치 전 일리노이 주지사는 버락 오바마 의원이 대통령에 당선된 후 공석이 된 상원의원 자리를 큰돈을 받고 거래를 하려 한 혐의로 고발당한 뒤, 계 속되는 증거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결백하다고 주장했다. 윤리성에 대해 이렇게 결백을 주장하고 명백하게 부정직한 행동이 밝혀지고도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부정하는 데에는 몇 가지 설명이 필 요하다. 첫째, 그 사람은 정말 결백한지도 모른다. 다만 이 경우에는, 우 리가 그 사람이 하는 행동과 관련한 모든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경우에 한 해서만 그 사람이 스스로의 윤리적 성향에 대해 내린 평가에 동의할 수 도 있다. 둘째, 그가 실제로는 자신의 행동이 윤리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비윤리적인 행동에 따르는 피해를 줄이기 위해 그렇게 주장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세 번째가 바로 우리 저자들이 가장 가능 성을 두고 주장하는 설명인데, 이 안은 사람들의 행동을 개선한다는 측 면에서 보면 가장 문제가 될 여지를 안고 있다. 이것은 명백한 반대 증거 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선천적으로 자신의 윤리성을 신뢰하고 있을 가 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당신은 투자자들의 돈을 빼내 오기 위해 허위로 기업 파트너십을 형성하거나, 인턴과 성관계를 가지거나, 상원의원 자리를 매매한 혐의 로 고소당한 경험이 한 번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도 레이, 클린턴, 블라고예비치 그리고 보통의 사람들처럼 실제의 당신보다 스스로 더 윤 리적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당 신에 대해 판단하는 것보다도 자신이 더 윤리적이라고 믿고 있을 가능 성이 크다. 행동윤리학 연구는 사람들의 사고 과정에 내재한 이러한 편 향성이 자신의 윤리성에 대한 환상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한다. 저자의 동료인 크리스티나 디크만(Kristina Diekmann)과 킴벌리 웨이드-벤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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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는 이러한 편견은 의사 결정 과정에서 몇 단계에 걸쳐 발생한다고 주 장한다.2 윤리적 딜레마에 직면하기 전에는 사람들은 자신이 윤리적인 선택을 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러나 실제로 윤리 딜레마에 직면하게 되면 사람들은 비윤리적인 선택을 한다. 이후 그 상황에서 자신이 내린 의사 결정을 되돌아보면서도, 사람들은 자신이 아직도 윤리적인 사람이 라고 믿는다. 종합해 보면, 이 정도로 단단하게 뭉쳐진 편향성으로 말미 암아 사람들은 자신의 윤리성에 대해 잘못된 확신을 갖게 된다. 더 심각 한 사실은, 이러한 편향성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윤리성을 개선할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가로막아 똑같은 잘못을 계속 반복하도록 만든다는 사실이다. 4장에서는 행동윤리학자들이 밝혀낸 윤리적 의사 결정을 막는 세 단계의 심리적 진행과정에 초점을 두어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 세 단계 는 도덕적 의사 결정의 전(前) 단계와 의사 결정을 진행하는 단계, 그리 고 의사 결정 이후의 단계를 말한다.

의사 결정 전 단계: 예측 오류 한 여대생이 생활비를 벌기 위해 교내 일자리를 찾고 있는 상황을 생각 해 보자. 마침 연구 보조 자리에 사람이 필요하다는 교내 광고를 보게 된 다. 근무 시간과 보수도 그 학생이 원하던 조건에 딱 맞았다. 그 학생은 얼른 지원서를 냈다. 면접을 보러 오라는 요청을 받고 찾아간 학생은 30 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성과 마주 앉았다. 그 남성은 면접 과정에서 다음 세 가지 질문과 함께 몇 가지 질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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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 친구가 있습니까? ∙ 당신은 성적 매력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 여성이 직장에서 브래지어를 착용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합 니까?

당신은 여대생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가? 그 여대생이 말도 안 되는 질문을 던진 면접관에게 격분하여 그에게 대항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당신 혼자만이 아니다. 이와 똑같 은 상황을 조사한 연구가 있다.3 면접에서 이와 같은 질문을 받을 때 자 신이라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예측해 보라는 설문 조사에서 62퍼센트 의 여대생이 질문의 불합리성과 그런 질문을 하는 의도를 면접관에게 따져 묻겠다고 응답했으며, 68퍼센트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거부하겠 다고 응답했다. 학생들이 이런 예측 답변을 내놓은 것은 어쩌면 놀랄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것이 정확한 예측은 아니다. 같은 연구에서, 여대생들에게 위 에서 설명한 것과 동일한 면접 상황을 조성해 실험을 했다. 면접관으로 나선 32세 남성이 여대생들에게 불쾌한 질문을 던졌다. 어떤 일이 벌어 졌을까? 여대생들 중 그 누구도 질문에 대한 답변을 거부하지 않았다. 소수의 여대생들만이 면접관에게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물었을 뿐이 다. 질문을 한 여대생들도 아주 공손한 자세로, 그것도 주로 인터뷰 말 미에 질문을 했다. 자기 자신의 행동에 대해 정확한 예측을 하지 못하는 인간의 성향 은 행동윤리학과 그 밖의 연구에서도 잘 정리되어 있다.4 사람들은 자신 이 맞닥뜨리는 상황에서 어떤 식의 특정 행동을 보일 것이라는 굳은 믿 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막상 그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다른 행동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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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다. 이러한 ‘행동 예측 오류’ 사례는 아주 흔하게 나타난다. 우리는 얼 마 만에 한 번씩 치과에 가게 될지 예측하지 못하며, 직장이나 집에서 어 떤 일을 마무리하는 데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 것인지 가늠하지 못한 다. 또한 직장 상사나 동료로부터 느끼는 압력에 영향을 받는 정도를 과 소평가한다. 정초에 하는 새해맞이 다짐은 행동 예측 오류의 전형이다. 새해 초가 되면, 사람들은 어떤 행동에 대해 기대치를 설정한다. 이 중 에는 도덕적 영역에 포함되는 기대치들도 있다. 사람들은 목표를 달성 하기 위해 여러 가지 궁리를 한다. 헬스클럽에 등록하거나 개인 트레이 너를 고용하기도 하고, 몸에 꽉 끼는 작은 사이즈의 옷을 사 놓기도 한 다. 더 큰 인내심을 기르고 여가를 이용해 자원봉사 활동을 하며, 에너 지 절약을 실천하기로 다짐한다. 그 결과, 새해에는 새로운 사람으로 거 듭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다가 12월 31일이 되고, 변화가 거의 없는 자신을 발견한다. 우리는 또 다시 내년에 실천해야 할 자신의 행동 을 놓고 똑같은 예측을 반복한다. 질병을 진단받은 환자가 임상실험에 참여해 보지 않겠냐는 권유를 받았다고 생각해 보자. 임상실험은 특정 질병 치료가 효과적인지 평가 하거나 치료약의 안전성을 평가하기 위해 실시된다. 임상실험에 참가 한 환자들은 그룹별로 나뉘어 서로 다른 치료를 받는다. 임상실험 마지 막에 각각의 치료가 질병에 미치는 영향력과 치료에 따른 부작용의 여 부 등 임상실험의 효과를 측정한다. 아무튼 환자와 가족들은 종종 “임상 실험 참여를 원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받게 된다. 환자들이 임상실험에 참여할 것인가에 대한 의사 결정은 종종 사회 적 딜레마가 된다. 3장에서 설명한 것처럼, 사회적 딜레마는 그룹의 이 해와 그룹 내 개인의 이해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발생한다. 이러한 예로, 석유를 보존하는 것이 사회에 이득이 된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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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것보다 자동차 타는 것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다. 이들은 ‘내 차가 내 뿜는 매연으로 크게 달라질 것은 없을 것’이라고 정당화한다. 이러한 사 회적 딜레마는 환경보호나 핵무기 감축, 또는 직장 내 그룹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다루기 곤란한 여러 가지 문제 속에 내재되어 있다. 사회적 딜레마에서 개인이 취하기에 가장 손쉬운 전략은 그 문제에 상관하지 않는 것이다. 멸종 위기에 있는 어류를 포획하거나 석유를 소비하는 행 위, 핵무기를 비축하거나 자신의 노력을 게을리하는 행동들이 이에 해 당한다. 하지만 이런 문제에 대하여 개인이 이탈해 버릴 때, 특정 어류 를 보존하고, 환경 개선을 이루며, 더 안전한 세상을 만들고, 프로젝트 를 완성하겠다는 그룹의 목표는 종종 희생되고 만다. 이러한 그룹 목표 를 위해 개개인이 조금씩만 협조한다면 그룹은 기대 이상의 큰 성과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의 입장에서 볼 때는, 자신의 이익을 따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목표로 비춰진다. 임상실험 참여 여부를 결정하는 일은 사회적 딜레마 유형에 해당한 다. 차후에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개인의 협조를 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임상실험에 참여한다고 해서 환자의 상태가 반드시 호전되는 것은 아니다. 환자는 임상실험에 참여함으로써 검증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현재 받을 수 있는 치료보다도 더 못한 치료를 받을 가능성도 있다. 많은 임상실험이 현재의 환자들보다는 미래의 환자들 에게 혜택이 될 새롭고 더 나은 치료법을 개발하는 데 목적이 있다. 더구 나 현재의 환자들에게 얼마나 혜택이 되고 그 비용이 얼마나 들 것인지 확실하지 않아서 그것을 산정하는 것도 매우 힘들다. 임상실험의 궁극 적인 목표는 치료약의 효능을 향상시켜 차후 모든 사람이 더 나은 치료 를 받고 질병의 예후를 더 잘 파악하자는 데 있다. 당신에게 임상실험에 참가하는 것과 관련한 결정에 대해 어떻게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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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할 것인가를 예측해 보라고 한다면, 당신은 임상실험 자격이 되어 참 가 권유를 받은 모든 사람이 임상실험에 참여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결 론에 도달할 것이다. 당신은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이 치료약 발전으로 얻어지는 공공의 이익에 기여하는 길이며, 따라서 당신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임상실험에 참여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생각의 결과로, 만약 위와 같은 상황이 당신에게 발생한다면 당신은 자 신이나 가족이 틀림없이 임상실험에 참여하는 선택을 할 것이라고 예측 한다. 이제 몇 년이 지나 당신의 아이가 생명을 잃을지도 모르는 위중한 질병을 진단받았다고 가정하자. 아이가 최신 치료법에 어떻게 반응하 는가에 달린 일이지만, 당신 아이의 5년 생존율에 대한 예후는 75퍼센 트에서 95퍼센트 사이다. 아이의 질병에 대해 조사를 해 보던 당신은 새 롭게 승인된 이 치료법이 아주 긍정적인 결과를 보이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한편 의사와 아이의 병에 대해 상의하던 중, 의사가 아이를 임상실 험에 참여시키는 데 동의할 것인지에 대한 의견을 묻는다. 아이가 어떤 치료를 받게 될 것인지는 컴퓨터가 결정해 줄 것이라고 한다. 의사에게 두 가지 치료법의 효과를 비교해 달라고 하자, 의사는 새로 나온 치료법 의 경과를 말하기에는 시기가 너무 이르기 때문에 대답해 줄 수 없다고 말한다. 당신은 결과가 불분명하며 잘 알려지지 않은 위험한 선택을 위 해 잘 알려진 승인받은 치료법을 포기할 수 있겠는가? 당신의 대답은 신 속하면서도 확고하다. 아니다! 우리 모두는 이렇게 극적이고 백팔십도 다른 선택 상황에 놓일 가 능성을 안고 있다. 당신 아이의 건강에 대한 의사 결정이 순전히 이론적 인 차원에서 이루어진다면, 충분히 고민한 후에 당신이 가진 윤리에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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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한 의사 결정을 내릴 호사를 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의사 결정 상황이 현실이 된다면, 공익을 염두에 두고 윤리적으로 고민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당신의 아이와 그 아이에게 최선이 되는 치료법이 가장 중요한 문제로 대두된다. 왜 이러한 행동 예측 오류가 발 생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하겠다.

결정의 순간: 욕구 자아가 두각을 나타낼 때 사회과학자들이 사람들은 종종 내부적인 갈등을 경험한다는 주장을 편 것은 꽤 오래된 일이다. 이러한 충돌 형태는 ‘욕구 자아(want self)’와 ‘규 범 자아(should self)’ 사이에서 가장 많이 발생한다.5 욕구 자아는 감정 적이고 정서적이며, 충동적이고 성급한 면을 이르는 용어다. 반대로 규 범 자아는 이성적이고 인지적이며, 생각이 깊고 냉철한 면을 뜻한다. 규 범 자아는 사람들의 윤리적 의도 그리고 윤리적 가치와 원리에 따라 행 동해야 한다는 믿음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반대로, 욕구 자아는 개인의 이익에 의해 규정지어지며 윤리적 고려를 묵살하는 사람들의 실제 행동 을 반영한다. 우리 저자들은 욕구 자아 또는 규범 자아가 시기별로 다르게 나타 나는가 하는 점에 대해 연구를 진행했다. 규범 자아가 의사 결정 이전과 이후를 지배하는 반면 욕구 자아는 주로 의사 결정의 순간에 승리를 거 둔다. 따라서 의사 결정에 이르기 전까지는, 사람들은 자신이 마땅히 그 래야 한다고 마음먹은 대로 의사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예측한다. 사람 들은 성적 모욕을 일삼은 면접관에게 반드시 대항해야 한다고 생각한 다. 따라서 면접 상황에서도 그렇게 행동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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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욕구 자아와 규범 자아 사이에서 벌어지는 싸움에 대한 시간 차원 관점 “나는 반드시 윤리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나는 반드시 윤리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 그러므로 나는 그렇게 했다.” ... 그러므로 나는 그렇게 할 것이다.” 기억 기억 수정주의 기준 변경

예측 예측 오류 규범 욕구 의사 결정 순간 윤리적 해이 본능적 반응

“나는 이 의사 결정의 윤리적 측면을 보지 않는다. ... 따라서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한다.”

은 또 당연히 치과에 가고, 가정이나 직장에서 일을 분담하며, 또래집단 이 주는 압력에 맞서 싸우고, 운동을 하거나 건강식을 먹어야 한다고 생 각한다. 또한 사회적 딜레마 상황에서 협력하고, 심지어 공익을 위해서 는 개인의 손해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말해 사람들 은 우리가 가진 원칙과 윤리적 이상에 근거하여 내리는 의사 결정, 즉 ‘규범적 의사 결정’을 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의사 결정을 내리는 순간에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 벌어진다. 의사 결정이 필요한 순간, 우리의 사고는 자신의 욕구를 따르는 행 동에 자리를 내주며, 규범적인 사고는 사라진다. 영화 대여 선호도에 관 한 연구는 의사 결정 순간에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는 욕구 자아를 생생 히 보여 준다.6 사람들은 자신이 아직 보지 않은 영화를 두 가지 기본 유 형으로 분류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자. 기본 유형은 꼭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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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한다고 생각되는 <90 Degrees South: With Scott to the Antarctic> 같은 교육 영화나 예술 영화, 그리고 <킬빌 2(Kill Bill 2)>처럼 자신이 실 제로 보고 싶은 영화 이렇게 두 가지다. 베이저만이 케이티 밀크맨(Katy Milkman)과 토드 로저스(Todd Rogers)와 공동으로 진행한 연구를 보 면, 사람들이 온라인 대여점에 ‘봐야 하는’ 영화보다 ‘보고 싶은’ 영화를 반납하는 시기가 놀랄 만큼 빠르다고 한다. 이것은 DVD를 보지 않은 채 거실 테이블에 방치하는 시간이 보고 싶은 영화보다 봐야 하는 영화가 길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연구에 참가한 사람들이 어느 영화를 볼 것인 지 결정하는 그 순간에 욕구 자아가 규범 자아를 물리친 것이다. 사람들이 영화를 보려고 주문하는 순간은 의사 결정의 예측 단계로 자신이 어떤 영화를 볼 것인지 예측해 보는 단계다. 그 순간 사람들은 봐 야 하는 영화를 먼저 떠올린다. 머릿속에서는 ‘하는 일 없이 앉아 있느니 교육적인 내용의 뭐라도 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규범 자아가 사고를 지배하게 되면서 당신은 교육적인 내용의 봐야 하는 영화를 한 편 주문한다. 이때 오락물도 몇 편 곁들인다. 하지 만 정작 어느 영화를 볼 것인지 결정하는 순간에 교육적인 생각은 당신 마음속에서 저 멀리 달아나 버린다. 당신의 실용적이고 성급하며 이기 적인 욕구 자아가 합리적이면서도 냉철한 규범 자아를 압도하게 되는 것이다. 당신은 결국 <킬빌 2> (또는 <킬빌 2>가 취향이 아니라면 가벼 운 코미디 영화) 앞에서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기로 결정한다. 그러면 이러한 추론을 윤리적 의사 결정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버나드 매도프와 로드 블라고예비치 사건처럼 최근에 발생한 사기 및 부 정한 일들에 연루된 자들의 행동을 보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은 결코 그런 행동에 연루되지 않을 것이며, 그렇게 할 것을 요구 받는다 해 도 그런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고, 자신이 목격한 잘못된 행위에 대해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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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시 보고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우리는 자신의 도덕과 이상, 그리고 원칙에 부합하며 자신이 반드시 그렇게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대 로 우리가 실제로 행동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행동윤리학 연구 는 사람들이 윤리적 측면의 의사 결정 상황에 직면할 때, 자신이 예상했 던 행동과는 다른 행동을 보인다는 사실을 아주 빈번하게 보여 준다. 우 리의 욕구 자아가 승리하면서 비윤리적인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왜 자기가 예상한 행동과는 다른 행동을 보이는 행태를 반 복하는 것일까? 사회과학자들은 자신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예측해 보는 순간과 자신이 실제 행동해야 하는 순간에 사람들은 의사 결정에 대해 완전히 다르게 생각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러한 차이는 시점 이 다른 두 순간에 나타나는 서로 다른 동기 유발 요인과 윤리적 해이 현 상에 의해 발생한다. 우리의 미래 행동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우리가 당 면하게 될 실제 상황을 예측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때 일반적인 원칙 과 태도에 따라 예측을 하게 되는데, 이는 나무를 보지 않고 숲을 보는 격이다. 상황이 닥쳐서야 비로소 나무가 보이면서 숲이 사라진다. 우리 의 행동은 추상적인 원칙이 아니라 세부적인 요인에 의해서 추진된다. 미국암학회(American Cancer Society)에서 주최하는 ‘수선화의 날’ 자선 기부에 대한 연구를 살펴보자. 기부를 위해 수선화를 사겠느냐는 질문을 받은 연구 참가자 중 80퍼센트 이상이 수선화를 구입할 것이라 는 예상 대답을 내놨다.7 하지만 막상 의사 결정의 순간이 되자 실제로 수선화를 구입한 사람은 구입 의사를 밝혔던 연구 참가자의 겨우 반 정 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은 좋은 취지에 공감하여 수선화를 살 의사를 틀림없이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실제 기부 시점에 직면한 자신 의 시간과 경제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예측한 생각이었다. 실제 의사 결 정의 순간에 직면하자, 그들은 아마도 이전에 이 순간을 예상하면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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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행동을 예측했을 때는 떠오르지 않았던, 점심을 사먹어야 하는 필 요성과 넉넉지 않은 주머니 사정을 돌아보게 되면서 실제적인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수선화를 살 것인지 점심을 살 것인 지를 놓고 고민하다가 결국 점심 쪽의 손을 들어 준 것이다. 사람들의 실제 행동이 자신이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나타나게 되는 한 가지 이유는 두 시점의 동기 요인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협상 행동 연 구에서 협상가들은 경쟁적인 상대를 만나게 된다면 자신도 경쟁적으로 치열하게 협상에 임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8 하지만 막상 경쟁적인 사람과 맞닥뜨리면 협상가들은 예상보다 덜 공격적이 된다. 더 공격적 으로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예상과 실제 행동의 차이는 두 시점의 동기 부여 요인의 차이에서 찾을 수 있다. 경쟁적인 상대와 만났을 때 자신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예측해 볼 때는 ‘이기겠다’는 동기와 상대방이 자 신을 이용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동기가 부여된다. 하지만 실제 협상에 서 협상가들은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하고 떠나는 것보다는 합의를 해 서 뭐라도 얻어야겠다는 동기가 부여된다. 비슷한 예로, 사회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아이를 임상실험 센터에 등록시킬 것인지의 여부를 예측하 는 상황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동기부여는 의사 결정의 순간, 자신의 아이에 초점이 맞춰진다. 데이비드 메식과 공동으로 진행한 앤 텐브룬셀의 연구는 윤리적 측 면의 의사 결정에서 사람들이 예측하는 행동과 실제로 나타나는 행동의 차이점을 유발하는 또 다른 중요한 요소가 윤리적 해이 현상이라는 사 실을 보여 준다.9 사람들은 아마도 예측 단계에서 이미 그 의사 결정이 가지는 윤리적 측면을 확실히 보았을 것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도덕적 가치를 떠올리면서, 사람들은 자신이 그 가치에 따라 행동하리라고 믿 는다. 2장에서 설명한 것처럼, 철학자들이 개발한 윤리적 의사 결정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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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은 도덕적 깨달음이 도덕적 행동을 유발할 것이라고 보통 예측한다.10 하지만 의사 결정의 순간, 윤리적 해이가 발생하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그 의사 결정에 내포된 윤리적 측면을 보지 못하게 된다. 대신 영업상 최 선의 의사 결정 또는 법률상 최선의 의사 결정이 뇌리를 사로잡는다. 의 사 결정이 윤리적 원칙과 무관해 보이면서 더 이상 윤리적인 원칙이 의 사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되고, 그 결과 사람들은 비윤리적으로 행동한다. 1970년대에 발생한 악명 높은 포드(Ford) 핀토(Pinto) 자동차 사례 는 의사 결정 순간에 발생하는 윤리적 해이가 어떻게 끔찍한 결과로 이 어지는지 잘 보여 준다. 핀토 자동차의 후미 추돌사고 발생 시 연료 탱크 폭발 비율이 일정 수준을 초과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한 핀토 자동 차 사고 시에 자동차 문이 열리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는 일이 발 생했다. 이러한 사고의 여파로 핀토 자동차의 잘못된 디자인을 초래한 의사 결정 과정이 면밀히 검토되었다. 당시 폭스바겐과의 치열한 경쟁 체제 에 있던 포드에서 핀토의 제작에 들어가기까지 걸린 시간은 통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에 비해 현저히 짧았다. 사전 충돌 시험에서 연료 탱크 가 파열되고 그에 따른 잠재적 위험성이 발견되었지만 조립라인의 오케 이 사인과 함께 핀토의 제작이 결정되었다. 이 결정은 경제적인 효과 분 석에 근거하여 이루어졌다. 조립 공정을 손보는 데 드는 최소한의 비용 (자동차 한 대에 필요한 한 공정당 약 11달러)과 교통사고로 인한 잠재 적 법률 소송 합의금을 분석한 결과, 포드 측은 조립 공정을 수리하는 것 보다 소송 합의금을 무는 쪽이 더 저렴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핀토 자동 차는 잘못된 디자인 그대로 8년 동안이나 제작되었다. 이처럼 말도 안 되는 의사 결정에 참여한 포드 경영진의 어느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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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사전에 자신이 그렇게 비윤리적인 선택을 하리라는 사실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불구로 만들 고 사망에 이르도록 하는 결정을 선택했다. 이유가 무엇일까? 의사 결정 순간에 그들은 사안을 ‘윤리적인 의사 결정’보다는 ‘사업상의 의사 결정’ 입장에서 바라본 것이다. 포드 경영진은 대부분의 경영대학원 커리큘 럼에서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비용-편익 분석을 적용했다. 이 분석 방법은 그들이 사안을 바라보고 의사 결정을 내리는 데 하나의 근거로 작용했다. 이러한 의사 결정 과정에서 윤리는 퇴색했다. 상해와 사망이 내포하고 있는 도덕적인 측면은 그들이 따져 본 방정식 내에 존재하지 않았다. 계산상으로 볼 때 디자인을 변경하지 않은 채 자동차를 생산하 는 것이 사업상 최선의 결정이었기 때문에, 위험한 연료탱크 디자인은 그대로 남게 되었다. 이 사례에서 윤리적 해이가 발생한 원인은 무엇일가? 어쩌면 우리 몸에 내재된 선천적인 욕구가 그 원인일지 모른다. 의사 결정 순간에 본 능적인 반응이 나타나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는 것이다.11 사람들은 살 아남기 위해 이러한 메커니즘으로 뇌를 단련시켜 왔다. 예를 들어, 배고 픔은 우리 몸이 영양소를 필요로 한다고 말하는 뇌가 보내는 메시지이 며, 고통은 우리가 위험한 환경에 처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리는 뇌 의 신호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오는 우리 행동은 뇌가 보내는 메시지를 실행하도록 자동화된 것이다. 이러한 영향력에 지배당하는 우리의 반 응은 의사 결정의 순간 생존의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의사 결정을 하게 된다. 이러한 메커니즘은 분명 영양분을 섭취하고 위험을 피하는 등 우리 가 필요한 행동을 하도록 안내해 주는 가치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 하지 만 사람들의 이러한 본능적인 반응이 다른 영역에서는 역효과를 불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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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한다. 당신이 내일 해야 할 일을 수행하기 위해 아침에 일찍 일어나 기로 결정한다고 가정하자. 오직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일념하에 시계 알람을 새벽 5시 30분에 맞춘다. 하지만 알람이 울리자 잠을 더 자고 싶 다는 욕구가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해 버린다. 당신은 알람을 꺼 버리고 다 시 잠 속으로 빠져든다. 의사 결정의 순간에 눈앞의 이익에 급급한 나머 지 본능적인 반응이 표출되는 것이다. 우리는 자기를 보호하려는 본능 적인 욕구를 만족시키는 쪽으로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다른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문제나 자신의 장기적 관심사를 고려해 보겠다는 다른 목표는 사라져 버린다. 핀토 자동차의 연료탱크 의사 결정 사례를 보면, 타사와의 경쟁에 대한 압박이 생존 본능과 유사한 감정을 유발했 을 것이다. 거래 손실을 피하고, 막대한 보너스를 챙기고, 기업 내부적 으로 ‘그럴듯해 보이는 일’은 의사 결정의 순간에 포드 경영진에게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되었고 결국 윤리적 고찰은 무시된 것이다. 또한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윤리적 딜레마에 직면한 경우에는 행 동이 추론을 앞서게 된다. 다시 말하면, 상황을 논리적으로 곰곰이 따져 보기보다는 순간적인 감정에 의해 빨리 결정해 버리는 것이다. 의사 결 정 순간에 사람들의 본능적인 반응이 훨씬 우세하여 다른 모든 고려 사 항을 덮어 버린다. 사람들은 자신의 회사가 시장점유율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원하며, 이윤을 내 보너스를 받기를 원한다. 그 결과, 욕 구가 승리하고 규범이 패배한다. 행동윤리 연구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가 어떤 도덕적 추론을 하게 되는 것은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고 난 이후다. 이러한 도덕적 추론의 목적은 의사 결정에 도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그러기에는 너무 늦었다-이미 내린 의사 결정을 정당화하려 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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