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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의 원근법 사랑하면 가까워지고 시기하면 멀어진다. 대가 없는 사랑은 은혜가 되고 감동은 보은을 낳는다. 시혜와 보은은 사랑의 이름이다. 인간의 멀고 가까움이 여기서 비롯된다.

정 부인이 듣고 탄식하여 말했다. “하늘도 무심하지 않구나.”


인텔리겐치아 2132호, 2014년 7월 21일 발행

7월 신간 1. 박인희가 현대어로 옮긴 ≪명사십리(明沙十里)≫

이때 북두칠성(北斗七星)은 중천에 빗기어 명랑한 서기(瑞氣)가 왕 씨가 누운 옥창(獄 窓)으로 전기 광선을 쏘듯 하는데, 왕 씨 부인 은 복중이 점점 요란하여 정신을 수습하지 못 할 즈음에 그 학이 조그마한 유리병 하나를 물어다 부인 앞에 놓으니, 부인이 먹으라고 하는 줄 알고 의심 없이 따라 먹으니 이윽고 배 속이 편안해지며 일개 옥동자(玉童子)를


낳으니, 부인과 춘매 기뻐하며 한편으로 아 이를 살펴보니 골격(骨格)이 비범하고 왼팔 에 은은한 칠성(七星)이 완연히 있어 부인이 탄식하여 말했다. “천우신조(天佑神助)하여 목숨만 살아나 면 장 씨 후사(後嗣)를 빛내려니와 당장 목숨 을 어찌 보전하리오.” 한편으로 눈물을 머금고 강보에다 싸니 홀연 그 학 둘이 앞에 와서 날개를 잇대고 엎 드리며 삐죽한 입으로 부인의 옷을 물고 지근 지근하였다. 부인이 그 거동을 보고 깨달아 말했다. “이는 천지신명이 장 씨 무후(無後)함을 애석히 여겨 저 학으로 아이를 데려다 살리게 함이니 내 무엇을 의심하고 지체하리오.”


하고 한편으로 옷 동정을 떼어 손가락을 깨물어 아이의 생월생시를 쓰고 이름은 장유 성이라 지었는데, 이는 끼칠 유(遺) 자, 별 성 (星) 자였다. 끼칠 유 자는 유복자(遺腹子)를 응함이요, 별 성 자는 왼팔에 북두칠성을 응 하여 지은 것이었다. 쓰기를 마친 후 아이를 싼 강보에 넣고 학의 등에다 업히어 단단히 매니, 학 하나는 그 위에 가 엎드리어 날개로 아이를 가려 보호하며 일시에 날아 중천으로 솟더니 부지거처(不知去處)로 가 버렸다. - ≪명사십리≫, 지은이 모름, 박인희 현대어로 옮김, 87~89쪽


옥동자 장유성은 누구의 자식인가? 아비의 이름은 충신 장경문이다. 간신 정필 구의 모함으로 유배 가고 아내는 옥에 갇혀 출산한다. 하늘이 불쌍히 여겨 청학을 내려 보낸다. 모함의 연유가 무엇인가? 정필구가 권력을 제 마음대로 휘두르자 이 를 바로 잡기 위해 황제에게 상소했기 때문 이다. 청학이 날아간 부지거처는 어디인가? 장유성의 할아버지 장연수에게 은혜를 입은 윤광옥과 진평중에게 데려간다. 이 둘은 어 릴 적 부모를 여의고 장연수의 집에서 자랐


다. 자신들이 입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장 유성을 살리려 한다. 생존을 도모하는 방책이 무엇인가? 윤광옥은 자신의 아들과 장유성을 바꾸고 산 으로 도망간다. 진평중은 윤광옥의 아들을 장유성인 체하고 일부러 정필구에게 잡혀 죽 기를 작정한다. 은혜를 갚기 위해 자식과 자신의 목숨을 던지 는가? 그렇다. 윤광옥은 자기 자식을, 진평중은 자 신의 목숨을 던지려는 것이다.


산으로 도망간 장유성은 살아남는가? 윤광옥 밑에서 자라다가 하옥산 진인에게 맡 겨져 8년 동안 공부한다. 그러던 중 정필구가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는다. 비범한 능력으로 전쟁터에 나가 반란을 평정하고 정 필구를 사로잡아 황제에게 바친다. 아버지, 어머니와도 해후한다. 진평중과 윤광옥은 어떻게 되는가? 진평중은 가족과 상봉하고 윤광옥은 오래전 에 헤어진 아들을 만난다. 이 과정에도 장경 문과 진평중에게 은혜를 입은 이들의 도움이 있었다.


보은담인가? 작품 전체에 걸쳐 시은과 보은의 관계가 중요 하게 다뤄진 윤리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 시은과 보은은 어떤 특징을 갖 는가? 고전소설에서는 대개 주인공과 특정 인물 사 이에서만 시은과 보은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는 주요 등장인물들 사이에서 시 은과 보은이 얽힌다. 등장인물들 사이의 시 은과 보은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고 해도 과 언이 아니다. 시은과 보은이 얽히는 등장인물은 또 누구인가? 정필구의 부하 중에 김치근이라는 인물이 있


다. 그는 장경문에게 은혜를 입은 적이 있다. 이 때문에 정필구가 죽이라고 명한 장경문과 부인 왕 씨, 진평중과 윤광옥 아들을 차례대 로 살려 준다. 주인공 주변 인물로는 진평중 에게 보은하는 정 소저도 있다. 정 소저는 어떤 역할을 하는가? 목숨을 건진 진평중과 윤광옥 아들이 그녀의 집에서 지낼 수 있게 한다. 전에 진평중에게 은혜를 입었기 때문이다. ≪명사십리≫라는 제목은 시은과 보은을 의미 하는 것인가? 직접 관련은 없다. 명사십리는 본문 가운데 해당화가 활짝 핀 들판을 가리킨다. 제목을


그렇게 붙인 의도가 무엇인지 불분명하다. 시은과 보은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제목으로 는 ≪보심록(報心錄)≫이 분명하다. 보심은 보답이란 뜻이다. ≪보심록≫은 어떤 책인가? ≪명사십리≫보다 몇 년 전에 간행된 소설 이다. 유사한 작품으로 ≪금낭이산(錦囊二 山)≫도 있다. 세 작품의 내용은 몇 군데 차 이가 있지만 거의 유사하다. 이것들은 언제 간행된 작품인가? 개화기 때 간행된 작자 미상의 구활자본 고전 소설이다. 일찍이 김태준은 ≪조선소설사≫ 에서 이 작품을 영·정조 때 것으로 추정하기


도 했다. 그러나 그건 명백히 아니다. 개화기라고 단정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작품 속에 ‘전기 광선’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전기는 고종 때 경복궁에서 최초로 사용되었 으므로 그 이후에 나온 것이 맞다고 본다. 이 책이 대중의 흥미를 끈 이유는 무엇인가? 작품 후반부에 군담이 들어간 것이 한몫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시대적 배경을 생 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본다. 이 책이 간행된 때는 1910년대로 일제강점기다. 어려운 시 기에 시은과 보은의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더 욱 감동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박인희다. 국민대 교육대학원 교수다.


인간관계의 원근법 사랑하면 가까워지고 시기하면 멀어진다. 대가 없는 사랑은 은혜가 되고 감동은 보은을 낳는다. 시혜와 보은은 사랑의 이름이다. 인간의 멀고 가까움이 여기서 비롯된다.

정 부인이 듣고 탄식하여 말했다. “하늘도 무심하지 않구나.”


명사십리 지은이 모름 박인희 현대어로 옮김 한국 고전소설 2014년 6월 24일 출간 사륙판(128*188) 무선 제본, 260쪽 14,500원


작품 속으로

명사십리


화설(話說)1), 중국 명나라 성덕 연간(年間)2)에 변경(邊境) 대동부 연화방3)에 한 재상이 있으니 성(姓)은 장이요, 이름 은 연수였다. 대대 명문거족(名門巨族)으로 어려서 급제하 여 벼슬이 좌승상(左丞相)에 이르렀고, 사람됨이 정직하여 명망(名望)이 조야(朝野)4)에 진동하고 나라 사람들이 공경 하였다. 공(公)이 항상 예부상서(禮部尙書)5) 왕성일과 함 께 진충갈력(盡忠竭力)6)으로 나라를 도와 천하가 태평하 고 모든 백성이 격양가(擊壤歌)7)를 불렀다. 승상이 일찍이 다른 자녀가 없다가 늦게야 다만 한 아들

1) 화설(話說): 고전소설에서 이야기를 시작할 때 관습적으로 사용하는 말. 2) 성덕 연간(年間) : 연간은 ‘어느 왕이 왕위에 있는 동안’을 말하며, 그 앞의 ‘성덕’은 ‘성덕’이라는 연호(年號)를 말한다. 연호란 왕이 즉위한 후 해의 차 례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하는 이름인데, 중국 명나라에 ‘성덕’이라는 연호 는 존재하지 않는다. 명나라에서는 선종(宣宗, 재위 1425∼1435) 때에 ‘선 덕(宣德)’이라는 연호를 사용했고, 청나라에서는 태종(太宗, 재위 1626∼ 1643) 때 ‘숭덕(崇德, 이 연호는 1636∼1643년 동안 사용함)’이라는 연호를 사용한 바 있다. 3) 대동부 연화방: ‘부(府)’나 ‘방(坊)’은 지방행정 단위. ‘대동’이라는 부(府)에 속한 ‘연화’라는 방(坊)을 뜻함. 4) 조야(朝野): 조정과 민간을 통틀어 이르는 말. 5) 예부상서(禮部尙書) : 예부의 장관. 6) 진충갈력(盡忠竭力) : 충성을 다하고 있는 힘을 다 바침. 7) 격양가(擊壤歌): 풍년이 들어 농부가 태평한 세월을 즐기는 노래. 중국의 요임금 때에, 태평한 생활을 즐거워해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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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얻었는데 아이가 비록 핏덩이를 면하지 못하였으나 골격 (骨格)이 심히 비상하였다. 승상 부부가 이름을 경문이라 하고, 자(字)를 천보라 하여 장중보옥(掌中寶玉)8)같이 몹 시 사랑하였다. 슬프다, 경문이 강보를 떠나지 못하여9) 모 부인이 우연히 병이 들어 세상을 떠나니 승상이 경문을 더 욱 불쌍히 여겨 사랑하는 마음이 일층 더하였다. 세월이 여류(如流)하여 어느덧 경문의 나이 십 세를 지 나니 얼굴은 관옥(冠玉)10) 같고 도량(度量)은 푸른 바다와 같아 글을 배우면 문일지십(聞一知十)11)하며, 이두(李 杜)12)의 문장(文章)과 왕희지(王羲之)13)의 필법(筆法)을

겸하였다. 승상이 크게 기특히 여겨 요조숙녀(窈窕淑女)14)

8) 장중보옥(掌中寶玉): 손안에 있는 보배로운 구슬이란 뜻으로, ‘귀하고 보 배롭게 여기는 존재’를 비유적으로 이르던 말. 9) 강보를 떠나지 못하여: ‘아이가 걷지도 못할 정도로 어릴 때’를 비유적으로 이르던 말. ‘강보’는 어린아이를 눕히거나 싸거나 업을 때 사용하는 포대기 를 말함. 10) 관옥(冠玉): 남자의 아름다운 얼굴을 비유적으로 이르던 말. 11) 문일지십(聞一知十):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안다는 뜻으로 매우 총명함을 이르는 말. 12) 이두(李杜): 이백(李白)과 두보(杜甫). 13) 왕희지(王羲之): 중국 진(晉)나라의 서예가(307~365). 붓글씨를 예술적 완성의 영역까지 끌어올려 서성(書聖)이라고 부름. 14) 요조숙녀(窈窕淑女): 말과 행동에 품위가 있으며 얌전하고 정숙한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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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구하여 원앙의 쌍유(雙遊)함15)을 보고자 하나 세상에 그 와 같은 짝이 없을까 항상 근심하였다. 하루는 공(公)이 한가하여 춘경(春景)을 구경하려고 대 지팡이를 짚고 후원에 올라 나무 사이를 따라 거닐며 좌우 를 바라보니, 어떠한 아이 둘이 나무를 베다가 성(城) 아래 에 앉아 졸고 있었다. 공이 한참 동안 유심히 바라보다가 이 상히 여겨 시자(侍者)16)로 하여금 불러다 보니, 두 아이가 다 십여 세쯤 되어 보이고 의복은 남루하여 살을 못 가리지 만 은은한 골격이 하향(遐鄕)17) 천인(賤人)의 자식은 아니 었다. 공이 심히 애석히 여겨 가까이 오게 하여 앉히고 각자 에게 그 내력을 자세히 물으니, 한 아이 이름은 윤광옥으로 그전 한림학사(翰林學士)18) 윤여성의 아들이고, 한 아이는 이름이 진평중으로 그전 어사중승(御使中丞)19) 진유제의 아들이었다. 두 아이가 모두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정처 없이 떠돌아

15) 원앙의 쌍유(雙遊)함: 부부가 함께 즐겁게 사는 모습을 비유적으로 이르 던 말. 16) 시자(侍者): 귀한 사람을 모시고 시중드는 사람. 17) 하향(遐鄕): 중앙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지방. 18) 한림학사(翰林學士): 중국에서 황제의 조서(詔書)를 맡아 짓던 한림원 (翰林院)의 벼슬. 19) 어사중승(御使中丞): 어사대에 속한 벼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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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며 빌어먹다가 나이 십여 세가 되어 남의 고용(雇傭)20) 이 되어 나무 베기와 우마 치기21)로 살고 있었다. 승상이 한 편으로는 놀라며, 한편으로 생각하니 두 아이가 모두 예전 에 친밀히 지내던 벗의 아들이었다. 윤·진 두 사람이 이전 에 소인(小人)의 참소(讒訴)22)를 입어 고향으로 돌아간 후 지금까지 십여 년을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지 못하다가, 오 늘 그 두 사람의 아들을 만나 보니 옛일이 생각나서 가련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슬피 한숨을 지어 탄식하고 두 아이 를 데리고 부중(府中)23)으로 돌아와 친아들같이 사랑하며 경문과 함께 학업에 힘쓰게 하였다. 두 아이의 영민총예(英 敏聰叡)24)함이 비록 경문에게는 미치지 못하였으나 또한

드문 재주여서 승상이 더욱 사랑하였다. 그 아이들의 나이 가 경문보다 한두 살이 많은 까닭에 장성(長成)하기를 기다 려 각각 어진 가문의 숙녀를 얻어 결혼시키고, 그들에게 음 식을 사계절로 공급하기를 극진히 해 주니 두 사람이 그 은 혜를 뼈에 새겨 승상을 부모같이 섬기고 경문을 골육형제같

20) 고용(雇傭): 삯을 받고 남의 일을 해 줌. 21) 우마 치기: 소나 말을 돌보아 주는 일. 22) 참소(讒訴): 남을 헐뜯어서 죄가 있는 것처럼 꾸며 윗사람에게 고해바침. 23) 부중(府中) : 높은 벼슬아치의 집안. 여기서는 자신의 집을 의미함. 24) 영민총예(英敏聰叡) : 영특하고 민첩하며 총명하고 지혜가 뛰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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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랑하였다. 때는 성종25) 황제 즉위 삼 년에 천하가 태평하고 감로 (甘露)26)가 내리니, 상(上)께서 요순(堯舜)27)의 덕화(德 化)를 베풀어 과거 시험을 보이시니, 사방에서 선비가 구름

모이듯 한 가운데 장경문 삼 인28)이 또한 장내(場內)에 들 어가 글제29)를 보고 일필휘지(一筆揮之)30)하여 제일 먼저 바치고 결과를 기다렸다. 이윽고 전두관(殿頭官)31)이 이름 을 부르는데 장원(壯元)에 장경문이고 나이 십삼 세요, 윤·진 두 사람도 또한 차례로 참방(參榜)32)하여 상(上)께 서 세 사람을 인견(引見)33)하여 무수히 진퇴시키신34) 후,

25) 성종: 명나라 황제 중에 성종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제5대 황제가 ‘선종 (宣宗)’이며 연호가 ‘선덕(宣德)’이다. 26) 감로(甘露): 천하가 태평할 때 내린다고 하는 단 이슬. 27) 요순(堯舜): 고대 중국의 요임금과 순임금. 덕으로 천하를 다스린 임금으 로 평가받음. 28) 장경문 삼 인: 장경문, 윤광옥, 진평중 세 사람을 뜻함. 29) 글제: 글의 제목. 30) 일필휘지(一筆揮之): 글씨를 단숨에 죽 내리씀. 31) 전두관(殿頭官): 어떤 사람인지 명확하지 않다. 다만 내용으로 판단할 때 건물 앞에 나와서 여러 사람들에게 전달 사항을 알리는 사람으로 추정된다. 32) 참방(參榜): 과거에 급제해 이름이 합격자 명부에 오르던 일. 33) 인견(引見):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불러서 만나 봄. 34) 무수히 진퇴시키신: 임금이 불러 나왔다 들어가기를 수없이 반복함. 즉 임 금이 술을 수차례 하사해 잔을 받기 위해 나왔다 들어가기를 반복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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